이태리판 4100호 소개

이태리어 La Civilta Cattolica 4100호 요약 소개

2021년 4월 17일

마리아 막달레나와 루카 복음의 부활

마리아 막달레나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열쇠가 되는 인물이다. 네 복음서에 모두 등장하는 그녀는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며, 부활하신 분을 맨 처음 목격하는 특전적 증인이 된다. 동방교회에서는 그녀를 “사도들 중의 사도”라 부른다. 본고에서는 특히 4세기 이후에 형성된 막달레나에 관한 전승을 간단히 지적하는데, 그녀는 매춘부이며 죄인으로 복음서에 등장하는 익명의 여성들과 동일시되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루카 7,36-50에서 용서받은 죄녀가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식이다. 그러나 복음서 어디에도 그런 동일화의 근거가 없다.

https://www.laciviltacattolica.it/articolo/maria-maddalena-e-la-risurrezione-nel-vangelo-di-luca/

트라우마를 이야기하기: 삶을 계속하기 위해 불가결한 행위

현재의 팬데믹과 관련하여 트라우마로부터 공동의 삶을 위한 교훈을 얻어내야 할 텐데 그 사건들을 서술하기가 어렵다는 이슈가 있다. 본고는 작가의 선행적 기여인 소위 “최소 지향성” 화법, 즉 묵시론적 장르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이 화법은 항상 희망의 메시지가 없는 듯이 보인다. 인류의 멸망은 늘 진행되고 있고 피할 수 없다.

https://www.laciviltacattolica.it/articolo/raccontare-il-trauma/

나폴레옹 서거 200주년

올해는 1821년 5월 5일 헬레나 섬에서 죽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서거 200주년이 되는 해다. 그는 황제였으나 “유럽의 대격돌”의 승리자들에 의해 유배되었다. 나폴레옹은 19세기와 20세기 전체에 걸쳐 불편하고도 모순되는 신화같은 존재였다. 올해 들어서 불란서와 이태리에서 여러 기관과 학자들이 전혀 다른 관점(또는 목표)으로부터 그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알레산드로 만조니는 나폴레옹이 사망한 다음날 그가 “진정한 영광”이었는지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작은 코르시카 장군”이 도입한 많은 개혁은 근대 유럽의 역사와 문화 및 제도에 한 획을 그었다. 사실, 그가 제정한 시민법과 여타의 입법 개혁을 통해서 나폴레옹은 불란서혁명의 이상과 정치적 기반을 자기 방식으로 대륙 전체에 확산시켰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한다. 나폴레옹은 현대 국가의 기초를 놓은 것으로도 잘 알려졌다.

https://www.laciviltacattolica.it/articolo/bicentenario-della-morte-di-napoleone-bonaparte/

구원과 유다인

요한 복음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는 “구원은 유다인들에게서 온다.”(요한 4,22)로 말한다. 유다인들의 구원과 관련해서 더욱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 본고의 저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Nostra Aetate) 이래로 교회는 유다인과 유다교를 존중하는 태도를 새로 취하였는데, 이는 사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구원의 보편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고 믿는다.

https://www.laciviltacattolica.it/articolo/la-salvezza-e-gli-ebrei/

어둠 속으로 후퇴한 미얀마

2월 1일 쿠데타 이후 타트마다우Tatmadaw는 –미얀마 군대의 공식 명칭- 민주적으로 선출된 미얀마 정부를 축출한 군부에 대항하는 시민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였다. 불행하게도 이 잔인한 조치는 최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군부 세력의 지원 하에 발생하는 정치집단의 정부개입이라는 퇴행적인 경향의 최근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독재적 행태는 태국과 캄보디아를 포함하는 미얀마 인접 국가들에서 참여적 민주주의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라오스와 베트남에서의 장기적인 권위주의적 정부들은 민주주의나 인권 존중을 증진시키는 어떤 일도 하지 않으며,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및 필리핀의 민주주의는 취약한 상태다.

https://www.laciviltacattolica.com/myanmar-steps-back-into-darkness/ [영어]

https://www.laciviltacattolica.it/articolo/passi-indietro-in-myanmar/ [이태리어]

신앙과 문화의 대화에서 대중적 종교성

신앙과 문화의 대화는 교회의 출발부터 지속적으로 대면해 온 도전들 중의 하나다. 사실 복음은 그 시대의 문화적 특성들 속으로 선포되고 전파되는 것이다. 이 모두는 강생의 역동에서 비롯된다. 본고의 논지는 신앙의 순수성이 문화와 접촉함으로써 오염된다거나 복음과 온전히 동일시될 수 있는 문화가 존재한다는 잘못된 이상주의적 오류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문화”를 그리스도교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에버리 덜레스가 내린 문화의 정의를 하나의 참조로 삼고자 한다. “인간 정신의 물질화이면서 동시에 물질의 영성화이다.”

https://www.laciviltacattolica.it/articolo/la-religiosita-popolare-nel-dialogo-tra-fede-e-cultura/

성 이냐시오 로욜라에 있어서 프란치스칸적 측면들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의 성 베드로 신심은 비교적 잘 알려진 반면에, 회심의 시기에 성인들 중에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그에게 가장 친밀한 분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적다. 이냐시오와 세라핌적 영성의 연결관계를 재조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애초에 1957년 IHSI(예수회 역사연구소)에서 출판된 베드로 레투리아(1891-1955)의 연구 성과를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그는 프란치스코회에 속한 몇몇 가족 덕분에 특히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구체적으로 프란치스코의 정신의 영향을 받은 것을 보여준다.

https://www.laciviltacattolica.it/articolo/aspetti-francescani-in-santignazio-di-loyola/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지 못할 때: Benjamín Labatut의 소설

오늘날 사회와 문화에서 현대물리학의 개념, 특히 양자 역학에 대한 깊은 관심의 싹이 나날이 자라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인식의 한계를 접하고 양자 물리학을 발견하게 된 과학자들의 인간으로서 고통스러운 모험을 기술하는 Benjamin Labatut의 소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지 못할 때”를 제시한다. 이들의 고충은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고안해낸” 데에 있다. 그 전까지 물리학은 원인과 결과 사이의 확고한 연관성을 기반으로 했다.

https://www.laciviltacattolica.it/articolo/quando-abbiamo-smesso-di-capire-il-mondo/ [이태리어]

https://www.laciviltacattolica.com/perhaps-god-does-play-dice/ [영어]

가능성 안에서 살아가기

디에고 마테이Diego Mattei S.I.의 “커피가 뜨거울 동안에”. 우리가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기를 원할까? 일본 작가 도시카츠 가와구치의 소설 “커피가 뜨거울 동안에”를 읽으면서 이런 저런 질문들이 떠오른다.

https://www.laciviltacattolica.it/articolo/abitare-nella-possibilita-4100/

4100호 서평

“La Civiltà Cattolica” 4100호가 선정한 서평은 ⑴ “예술에서 본 파스카: 부활하신 분과의 만남들” ⑵ “레위기 1~7장에 관한 오리게네스의 설교” ⑶ “그리스도의 사제직의 중심에서” 등 12권이다.

https://www.laciviltacattolica.it/articolo/rassegna-bibliografica-4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