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전환과 회심을 향하여

PER UNA CONVERSIONE ECOLOGICA

오세일 S.J.
*이태리어 원문: https://www.laciviltacattolica.it/articolo/per-una-conversione-ecologica/
*영어 원문: https://www.laciviltacattolica.com/for-an-ecological-conversion/

코로나-19와 글로벌 위험 사회

코로나-19는 인류가 최첨단 기술로 세계화된 오늘날의 세상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글로벌 위기에 직면하도록 만들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은 학교, 교회, 스포츠, 시장 등에 영향을 미쳐 전 세계 모든 국가와 지역의 모든 사회 조직의 정규적인 관행과 활동들을 중단시켰었고, 오늘날까지도 그 기능들을 마비시키거나 약화시켜 왔다. 현대 과학과 기술이 모든 정령들을 숲에서부터 몰아내고 인간 사회의 모든 측면을 통제했다는 환상에 빠져 있다면, 우리는 틀렸다.1)

현대과학과 기술은 바이러스에 대한 대책이 될 만한 만병통치약을 우리에게 아직 제공하지 못 했다. 전염병은 탈주술화된 이 세상에서 글로벌 사회의 취약한 본모습을 명백히 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2)] 따라서 인류는 위험에 기반한 현대의 글로벌 사회에 대한, 특히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생태적, 문화적, 영적 차원에 대한 (개인적이기 보다는) 집합적이고 (형식적이기 보다는) 실질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컸던 저명한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1944~2015)는 세계화와 위험에 대해서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특별히 ‘성찰’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세계 위험 사회”의 문제에 대한 도덕적 치료법으로 제시하기도 하였다.3) 이러한 그의 통찰은 프란치스코 교종이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이하 FT라 한다.)” 회칙을 통해 기후의 변화, 생태 위기, 심각한 양극화, 가난한 자들의 배제, 공동선과 민주주의를 향한 위협 등과 같은 국제 사회 문제들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것과 같은 맥락이다.4) 세계적인 근대화 과정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라는 글로벌 이데올로기 아래, “도구적 합리성”과 “현대 국가”의 세속적 신화에 의해 촉진되는 경제성장에만 중요성을 부여하는 편협하고 제한된 비전을 우리에게 제시해 왔다. 벡Beck의 관점에서 볼 때, 인류는 개별 국가 내부의 경쟁과 국가들 사이의 경쟁에 몰입하면서 가장 중요한 범세계적인 안목, 즉 개별 국가의 문제에 더해 인류 공통의 문제를 평가하고 해결해 나가야한다는 사실을 망각해 왔다.

동시에 세계 무역기구(WTO), 국제 통화 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과 같은 국제기구는 가난한 나라의 빈곤을 퇴치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의사 결정 과정의 실제적 집행은 “오늘날 경제와 금융에 의해 장악되었고”(FT 12항) 최강대국들에 의해 통제되었으며, 따라서 그들 자신의 정치경제적 이익에 따라 이루어지며 결과적으로 (중심부의) 단일 문화를 강제한다. 그래서 다국적 시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숨겨진 계략을 막을 수 없다. 공동선에 관한 무관심은 글로벌 경제의 이해관계 속에서 단일문화 모형의 강요를 위한 도구가 되었다.(참조, FT 12항)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제기구들은 최소한의 수준을 제외하고는 세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의 공의로운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비상사태는 제한 없는 글로벌 시장을 촉진하는 자유방임laissez-faire 패러다임의 한계를 드러내었다.

“찬미 받으소서Laudato Si(이하 LS라 한다.)”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은 생태적 전환과 회심의 과정에서 전진해 나아가는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교회의 영적 지도자로서 그는 현재와 미래의 전지구적인 문제에 대하여 심도 있게 언급하였고, 이를 통해 우리가 인류라는 ‘공동의 집’의 공동선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FT에서, 그는 특히 모든 인간의 인류애와 사회적 우정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교종의 관심과 아울러, 이 글을 통해 세계적인 사회-문화 및 정치-경제 환경을 조명하고 무엇보다 위험에 처한 세계 사회에 대한 영적 성찰을 제공하고자 한다.

공공 규제 대(對) 개인의 자유

우리는 먼저 전염병이 확산되는 사회에서 ‘정부의 규제’와 ‘개인의 자유’ 간의 커다란 긴장과 충돌을 목격할 수 있었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바이러스 감염 예방에 효과적인 보호 방법이라는 사실이 의학계에서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구 국가에서는 역설적이게도 정부의 규제에 반발하며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벗을 자유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달라.”라고까지 외치며 개인의 자유를 절대시하며 공적 규제에 저항해 온 사람들이 있다. 한편으로 저개발 국가에서는 위생 및 검역 규정을 위반한 사람을 향해 매우 가혹하고 비인간적인 집행을 강제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군인들은 방역 수칙 위반자에게 총으로 위협하거나 동물 우리에 실제로 가두기까지 하였다. 아직 팬데믹이 종식되지 않은 글로벌 위기 속에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적절하게 소통하고 평가할 수 있는 성찰적인 능력을 반드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기실, 코로나 대유행이 오랜 기간 계속됨에 따라 우리의 생계와 경제 활동의 기반이 되는 기본적인 삶의 토대가 많이 손상되었다. 더욱이 우리는 언제 이를 극복할 수 있을지, 또 언제 코로나 시대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조차 전혀 알 수 없는 오리무중 상태이다.

공동선을 위협하는 정치-경제적 양극화

위기 속에서 불확실성이 커지면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과 신념을 집단적으로 표출하는 창구로서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의지하고 신뢰하는 경향을 가지게 된다. 전염병이 지역, 국가 및 국제 수준의 경제 시스템에 커다란 타격을 입혔으며 우리의 일상생활과 생계방식에 심각한 손상을 안겼다. 팬데믹 대유행의 시기를 겪으면서 플러스 경제 성장을 보인 국가는 없었으며, 세계적인 전염병 대유행으로 인한 위기로 이미 만연했던 정치-경제적 양극화를 가속화시켰다. 그 결과 불확실성과 불안이 더욱 커지는 가운데, 우리는 반복되는 불안정한 정세에 시달리곤 한다.

팬데믹의 광범위한 영향으로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는 사회에서, 일부 보수 정치인들은 잔인하고 공세적인 전략으로 공동선을 훼손하고 있는 현상을 보이곤 한다. 이들은 “민주주의와 자유”의 이름으로 그들의 기득권과 이익을 수호함으로써 현상 유지를 위해 우익 극단주의자들과 포퓰리스트들이 지지하는 “증오 발언”들을 일삼았다. 반대편에 서 있는 일부 진보 정치인들은 소외된 사람들과 그들의 권리를 지원하기 위해 공공재의 광범위한 분배를 통하여 구조 개혁을 촉진하려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 위기와 정치적 분열의 시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공동선을 추구하며 위기와 분열이 초래한 위협에 대처해 나갈 수 있을까?

코로나 시대에 새롭게 재구성되고 있는 시장 구조에 대해 구체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자. Zoom 및 기타 웹 기반 애플리케이션과 같은 디지털 플랫폼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해야 하는 코로나 환경 속에서 새로운 해법을 제공하는 디지털 서비스(온라인 네트워크 또는 전자 상거래)를 공급함으로써 디지털 기반 산업은 천문학적인 이익을 얻고 있다. 반면, 고객 또는 환자에게 물리적으로 직접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배달 기사, 간호사 또는 도우미와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은 감염에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는데, 최저 수준의 임금을 받고 생존을 위한 곤경에 처해있다.

정의와 공정, 그리고 인간 노동의 지평이 다시금 확립되어야만 한다. 주변화된 시민들은 생존을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일터로 내던져진다. 이들이 종사하는 업무는 사회에서 필수적이고 또 매우 중요하기에 영국의 공중 보건 전문가들은 이들을 “핵심 근로자(key workers)”라고 부르는데, 다른 일각에선 이들을 “필수 근로자(essential workers)”라고도 부른다.5) 배달기사, 점원, 웨이터, 간호사와 같이 직접적인 신체 접촉이 필수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 즉 “보이지 않는” 이러한 “핵심/필수 노동자들”의 현존 없이는 정보 및 기술 기반 서비스가 고객의 수요와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켜 줄 수 없다. 요컨대, 정치-경제적 양극화는 이러한 위기 속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가늠케 하는 가치판단의 선택을 강요하며, 모든 인류로 하여금 필수불가결한 가치들의 근본 토대를 재확립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이렇게 절박한 상황에서 우리는 이전부터 확립해온 가치판단의 기준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성찰해야만 한다.

글로벌 위기에 대한 구조-문화적 성찰

사회-정치-경제적 모델의 위기(危機)6)는 우리에게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제시한다는 차원에서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도전한다. 비록 현재는 전염병의 증상이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면서 현재 상황을 ‘뉴 노멀(new normal)’이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러한 위기현상은 전염병 확산과 관련된 구조적이고도 문화적인 문제에 대한 분석적인 성찰을 그 자체로 제공해주지는 못한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FT(모든 형제들)과 LS(찬미 받으소서) 회칙에서 강조되듯이, 펜데믹으로 인한 위기는 인간 사회에서 완전히 새로운 상황은 아니다. 이전에도 메르스, 에볼라, 사스 등과 같이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이 존재했었다. 그러나, 이들 중 그 어느 것도 코로나-19와 같이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친 질병은 없었다. 코로나-19는 야생 동물에서 비롯된 전염성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야기된 “생태적 혼란ecological chaos”의 가장 강력한 징후 중 하나가 되었다. 인류는 아마존 숲이나 남극과 같은 미지의 공간을 탐험하고 착취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한 앞으로도 이러한 질병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 시대는 신자유주의 이념과 글로벌 시장의 재편성에 따라서 경제성장을 획일적이고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발전을 추구하였다. 그런데 오늘날 신자유주의 경제구조는 글로벌 위기에 직면하고 있으며 각 국가는 자국의 시장을 보호하기에만 분주하다. “더 큰 이익과 효율성”을 제공하는 것만을 목표로 하는 시장 중심의 산업 구조는 오늘날의 펜데믹 상황에서 충분한 기능을 수행하지 못 한다. 다국적 회사와 초국적 기업이 자국 영토를 넘어서서 상품의 생산, 배송 및 소비를 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은 분명하다.7)] 자유무역협정(FTA)은 국내 시장을 보호하려는 강대국의 외교 정책을 통한 위협과 갈등으로 인해 약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과 미국 사이의 외교적-경제적 긴장 관계는 관세와 무역 금지에 의한 분쟁뿐만 아니라 IT, 농업과 산업 전반에서 고조되고 있다.

현대적인 문화, 즉 삶의 방식은 이른바 “사회경제적 발전”이라는 전제 하에 이러한 근시안적인 국익과 시장 주도적 목표를 요구하고 또 지원해 왔다. 우리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해로운 “잡식성 포식자ominivorous predator”가 되었다. 우리는 발견되지 않은 모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착취하여 소수의 이익을 위해 독점적으로 소비되는 자원을 생산한다. 우리가 무자비하게 지구를 착취하는 것을 중단하지 않는 한, 미래의 피조물들에 대한 결과는 지금보다 훨씬 더 참혹할 것이다. 우리 삶의 방식에 큰 변화를 불러오지 않는다면 더욱 심각한 환경적 재앙을 낳는 생태 위기를 모면할 수 없을 것이다.

생태적 회심은 모든 인류의 연대와 함께…

프란치스코 교종은 회칙 LS(찬미받으소서)에서 ‘생태적 회심’을 촉구하였는데, 사회회칙 FT(모든 형제들)에서 이를 더욱 지지하고 있다. 요약하면, 코로나-19가 암울한 구름을 덮씌워 놓은 폐쇄된 세상에서 모든 인류에게 필수적인 요소는 창조주의 사랑과 자비에 대한 개인적인 동시에 집단적이며 구조적인 전환으로 이해되는 생태적 회심이다. “하느님은 모든 인간을 동등한 권리와 의무와 존엄성를 지니도록 창조하시고, 형제자매로 함께 살아가도록… 모든 인간을 부르셨습니다.”(FT 5).

우리는 그러한 생태적 전환의 특성을 설명하는 교종의 문헌들을 여기에서 간추려 설명한다.성 요한바오로 2세는 그의 첫 번째 회칙인 “인간의 구원자Redemptor Hominis”(이하에서 RH라 한다.)에서 인간은 종종 “자연 환경의 다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즉각적인 사용과 소비 목적에 부합하는 것만 인식한다.”고 경고했다.(RH 15) 나중에 “백주년Centesimus Annus”(이하에서 CA라 한다.)에서 그는 “진정한 인간 생태를 위한 도덕적 조건을 보호”(CA 38)하려는 노력이 거의 없었다고 지적한 다음 2001년 1월 17일 일반 청중에게 생태학적 회심을 촉구하였다.

프란치스코 교종에게 세상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맡기셨으며 인간의 생명은 그 자체가 다양한 형태의 타락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는 선물이기 때문에 인간 환경의 파괴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세상을 치유하고 개선하려는 열망은 “생활양식, 생산과 소비 양식 그리고 오늘날 사회를 다스리는, 이미 확립된 권력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청합니다.”(LS 5)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생태적 회심”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의 결실이 그들을 둘러싼 세상과의 관계에서 온전히 드러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작품을 지키는 이들로서 우리의 소명을 실천하는 것이 성덕 생활의 핵심이 됩니다.”(LS 217)

우리는 외부에서 세상을 바라볼 뿐만 아니라 (Diognetus에게 보내는 편지 참조) 하느님이 우리를 모든 존재와 결합시켜 주신 유대를 인식하면서 내부에서도 바라보도록 부름을 받았다. “생태적 회개는 하느님께서 신자들에게 주신 고유한 능력을 증진시켜 주어, 창의력을 전개하고 열정을 북돋우게 하며,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하느님께 자신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마 12.1)로 봉헌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탁월함을 개인적 영광이나 무책임한 지배의 근거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에서 비롯된 막중한 책임감을 부여하는 특별한 능력으로 이해합니다.”(LS 220) “우리 신앙에 대한 여러 다양한 확신들이 이 생태적 회심의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해 줍니다. 여기에는 모든 피조물들이 하느님의 모습을 어느 모로 반영하며 우리를 가르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이 물질세계에 몸소 오시고 이제 부활하시어 모든 존재의 내면에 현존하시며 사랑으로 감싸주시고 당신 빛으로 밝혀 주신다는 확신이 포함됩니다.”(LS 221)

프란치스코 교종의 새로운 회칙 FT에서 되풀이해서 언급되는 내용은, 점점 더 혼잡한 글로벌 문화가 코로나 전염병이 확산되는 동안에 ‘주변화된 사람들’을 더욱 심하게 착취해 왔다는 현실이다. “신자유주의는 사회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마치 마술과 같은 이론인 ‘파급’(spillover) 또는 ‘낙수(trickle)’ 효과를 신봉하도록 설파해 왔고 그러한 시스템을 재생산해 왔을 따름입니다. 사회조직을 위협하는 새로운 형태의 폭력을 일으키는 불평등은 이른바 ‘파급’이론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이 간과되고 있습니다. ‘생산의 다각화와 기업의 창의력을 고무하는 경제의 증진’을 지향하고 일자리를 감축하는 대신 새롭게 더 창조해 내는 주도적인 경제 정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 전 세계적 감염병 확산 앞에서 드러난 세계체제의 취약성은 자유 시장의 원리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또한 이는 금융 원리에 종속되지 않는 건전한 정치를 회복해야 한다는 사실과 더불어 ‘우리는 인간 존엄을 다시 중심에 두고, 이 버팀목 위에 우리에게 필요한 대안적 사회구조들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FT 168)

“보건 위기가 지난 뒤에 최악의 반응은 열광적 소비주의와 새로운 형태의 이기적 자기보호에 더욱 더 깊이 빠져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건대, 이 모든 위기가 지나간 후에 우리는 ‘다른 이들’이라는 용어가 아니라 오로지 ‘우리’라는 용어로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던 또 하나의 되풀이된 심각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었기를 바랍니다.”(FT 35)

요약하면, 코로나-19로 인한 이 글로벌 위기는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서 우리 이웃들, 특히 소외된 사람들을 -시장의 힘과 이원론적 사고를 넘어서- 사회적 및 생태적 유기체의 근본적인 지평 안에서 만날 수 있도록 촉구한다.

공생: 새로운 지평에서의 사회 유기체

많은 과학자들은 강력한 백신으로 이 전염병 사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해 왔지만, 오늘날 적지 않은 감염학자들이 현재까지 의약품으로 승인된 백신들이 (빠르고 강력하게 발전하고 있는) 변종 바이러스들에게 얼마나 효과적일지에 대해서 심각한 의문을 품고 있다.

한편, 우리는 이러한 바이러스의 존재에 대해서 보다 더 신중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우리 인간은 지구에서 이백만 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살아왔던 반면, 바이러스는 지구상에서 수십억 년 동안 살아 남아왔다.8) 우리 인간은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에 두려는 강력한 의지를 안고 살아왔지만, 이렇듯 오만한 ‘인간 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해독제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공생은 우리가 우주의 모든 피조물들과 함께 살도록 요구한다. 우리와 다른 피조물들과 다른 민족 집단들은 우리의 풍요로운 사회를 위해 착취를 당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의 집’인 지구를 어떻게 적절하게 회복하고 재건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도덕 질서에 관하여 고심했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특별히 인간 사회에서 발견되는 ‘성스러움’에 초점을 두고 인간 사회의 결속력의 역학관계를 분석했는데, 그 요지는 개인이 뿌리깊이 소속한 집단을 경계로 자기 집단의 상징과 문화는 성스럽게 여기고 타집단의 것들은 속되게 바라본다는 것이다.18) 현대 정치는 포퓰리즘의 영향 속에 ‘편 가르기’를 동조하며 ‘내’ 소속이 아닌 반대편을 향한 끝없는 증오심을 불러일으킨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맥락에서 바라보면, 비슷한 생활 방식을 공유하는 사회적 동질성에 배태된 ‘정체성의 정치’는 자기 초월에 대한 영적 의식spiritual awareness이 결여된, 격렬한 정치적 전쟁이 수행되는 성스러운 자리처럼 보인다. 이러한 사회적 경향이 전통적이고 가부장적인 체제에서 억압되고 소외되어 왔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공적으로 드러낼 수 있게 하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체성의 정치는 개인의 자기 초월, 타인과의 대화와 서로 간의 성찰이 가능한 공간들을 제공하지 못하고, 온갖 종류의 당파적 파벌을 초래할 수도 있다.

사회-문화적인 맥락에서 살펴보았을 때, 자기의식self awareness은 실상 (비반성적인 채) 그 자체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의식은 또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속 시대에서 자기만의 이익을 넘어 더 큰 ‘삶의 충만함’을 지향하며, 상호 이해를 통한 새로운 지평의 융합을 펼쳐낼 수 있다.9) 우리는 우리가 소유하거나 전용할 수 없는, 그러나 공생하는 삶의 궁극적 의미의 공간을 펼쳐주는 ‘완전한 타자totalier aliter’로서10) 하느님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생태적 위기를 대처할 때 우리는 세계적이고 역사적이며 통합적인 접근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며, 포스트모던 파벌주의11)에 의해 이끌리거나 전체주의에 갇혀버려서도 안 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공생을 지향하는 사회 유기체의 패러다임을 조망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닫힌 눈을 뜨게 하고, 비로소 하느님의 사랑스럽고 자비로운 시선의 관점에서 모든 창조물을 연민(애간장이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며 바라볼 수 있게 한다. 허버트 스펜서와 같은 19세기의 사회 진화론자들social Darwinists이 사회 유기체에 관해서 구상했던 그림에서는 사회 전체와 부분, 구조와 개인 간에 위계적이고 불평등한 관계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이 부족했다. 현대 이론가들은 이러한 사회 유기체의 위계적 분류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특히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영성과 책임이 하나로 결합할 수 있는 사회 유기체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생태적 영성과 성찰적 책임

프란치스코 교종은 LS를 통해 생태적 회심ecological conversion을 위하여 새로운 방법을 모색할 것을 촉구한다. 성경적 맥락에서 ‘회심’이란 metanoia(마음의 변화)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shuvah(몸과 마음을 포함한 전체적인 변화)의 의미를 가진다. 이 회심의 장소는 인간 개인의 마음속에 국한되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그 안에서 상호작용하고, 다른 인간과 피조물들이 창조되고 또한 파괴되는 이 행성, 지구 또한 우리 회심의 장소이다. 예수회 신학자인 로너간Bernard Lonergan은 회심의 영역에 지적, 도덕적, 영적 회심을 포함하였다면, 도널드 젤피Donald L. Gelpi는 더 나아가 이를 사회 및 공동체 수준의 회심을 포함하는 영역으로 확장하였다.19)

오늘날 교회와 세속적 지도자들은 특히 포스트-세속 사회에서 그들의 영적, 제도적, 공적 책임을 직시해야만 한다.12) 오늘날 문명사회에서 공적 영역 혹은 공론장은 헤게모니를 쟁취하기 위한 필수적인 지형이기도 하며, 그 시대의 표징을 반영하고 있다. 모든 인류를 섬기는 교회는 공적 영역에서 펼쳐지는 인간 사회의 다양한 담론에 심혈을 기울이며 경청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반면에 교회의 목표는 공적 영역에서의 이러한 세속적 싸움 너머에 존재한다. 따라서 이러한 교회의 종말론적 전망eschatological vision은 교회로 하여금 초월적인 관점에서 역사적이고 공적인 인간 사회의 문제를 다루도록 이끈다.13)

회심은 언제나 도덕적, 사회적 책임의 의미를 내포한다. 성경에서의 죄 사함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와 같이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보살핌과 도덕적 책임을 지속적으로 수반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루카 10,30-37)14) 우리가 가지는 실천 지향적인 관점에서 생태 영성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차원의 책임을 포함한다.15)

1) “영적 책임”은 개인과 공동체 차원에서 하느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기 위한 필수 요소이다. 우리는 관상 기도contemplative prayer와 하느님과의 가장 진실된 만남을 통해서만 영적 책임을 스스로 일깨워 실천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영적 책임을 가짐으로써 우리는 세속적 재화가 지니는 보다 심오한 의미를 포착해내고, 우리가 이를 소유하거나 사용할 때 옳고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준을 갖게 되어,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끔 전진해 나갈 수 있다. 각 개인은 식별의 주체로서 삶에 따르는 책임감을 일정 부분 고려해야 하며, 나아가 개개인은 우리의 공동 식별을 통한 의사결정에 대해서도 공동의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2) “제도적 책무성”은 교회와 사회의 모든 제도적 문제에 필요한 요소인데, 특별히 제도 기관에서 ‘권력’은 모든 ‘의사 결정’과 직간접으로 관련되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소외된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가는 것은 취약한 사람을 향한 남용과 폭력을 방지하고 인권을 강화하는 제도적 책무성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집단적 도덕의식의 필수적인 요인이다. 제도적 책무성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다양하고도 불일치한 목소리를 듣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무관심과 적대감을 초월하여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회복하고, 모든 구성원들에게 더 의미 있는 공통 기반, 즉 공동선을 실제로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제도적 책무성은 교회의 통치구조 뿐만 아니라 세속 기관과 정부에서도 ‘함께 하는 정신, 공동합의성synodality’을 구현해내는 수단이다.

3) “공적 책임”은 ‘시대정신(Zeitgeist)’의 영향을 받으며, 인간 사회의 공적 영역에서 드러난다. 하버마스Jürgen Habermas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인간이 합리적이고 열린 마음으로 의사소통하는 공적 영역인 이 공론장은 시민 사회와 민주주의를 보다 더 풍요롭게 만들며, 반복적으로 발생되는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터넷, 소셜 네트워크, 인공 지능 및 기타 다양한 미디어 채널들이 사람들 간의 물리적 공간적 제약을 없애주며 밀접하게 연결시켜주는 가운데 오늘날 초국가적 글로벌 사회에서는 더 높은 수준의 공적 책무가 요청된다.

근본적으로 인간이 지녀야 할 책임은 하느님의 자비를 통해 일깨워지고 더욱 확장되어야 한다. 이는 우리 인간이 성령의 도움으로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신 분을 세상 한복판에서 드러내고 또 따르는 방식이다. 한편으로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들은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한 교회 지도자들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절망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하느님의 백성을 위해서 활동하시며, ‘바람과 같이’(요한 3,8) 그 음성을 들여주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영적으로 민감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세속 사회의 지도자들은 기업이나 정부 내에서 권력과 권위를 갖는 사회적 행위자로서 자신의 결정에 대한 책무감을 가져야 한다.

등대로서의 교회

역사적으로 위기의 시기에 교회는 “필수적이며 임계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16) 초기 중세 시대 때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기에 두 위대한 교종, 대 그레고리오와 대 레오는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 주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전세계적인 확산으로 인류를 뒤덮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우리 교회는 세상에서 소금과 누룩이 되어야 하는 우리의 사명을 인식하고 복음의 기쁨 안에서 전진해 나아가야 한다.

전염병의 확산이 심각할 때에는 신자들의 미사 참석이 제한되어 왔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교회는 소외된 사람들의 존엄성과 공동의 집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예를 들어, 한국 천주교회는 감염 예방을 위한 방역 규칙을 수용하고 국가 방역 수준에 맞추어 본당 사목 지침을 세부적으로 규정하였고, 모든 본당은 이러한 지침을 철저히 따라왔다. 이와 함께 한국 가톨릭 교회는 ‘가톨릭 기후 행동Global Catholic Climate Movement’과 ‘팍스 크리스티Pax Christi’와 같은 조직을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기후 변화와 지구온난화, 생태 문제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펼쳐 왔다.

우리의 지평선 가득 어둠이 드리워진 세상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의 “창조주께 드리는 기도”는 오늘날 우리 인간이 글로벌 위기에 직면한 “뉴노멀” 사회 안에서 우리 인류가 함께 식별하고 전진해 나가야 함을 깨우쳐 준다. 교종과 함께 아래 기도를 봉헌하자.

창조주께 드리는 기도

주님,
모든 사람을 동등한 존엄으로 창조하신
저희 인류 가족의 아버지,
저희 마음을 형제애로 가득 채워 주시어
저희가 새로운 만남과 대화, 정의와 평화를 꿈꾸게 하시고
더 건강한 사회와 더 품위 있는 세상,
기아, 빈곤, 폭력과 전쟁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도록
저희를 이끌어 주소서.

저희가 이 땅의 모든 민족과 나라를 향하여 마음을 열어
주님께서 저희 각자 안에 씨 뿌려 주신
선과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일치와 공동 계획과 함께 나누는 희망의 유대를
굳건히 다지게 하소서. 아멘.17)


1) 막스 베버Max Weber(1864-1920)는 이같은 묘사로 ‘세계의 탈주술화disenchantment’를 합리화의 과정으로 설명하였다. 그는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경제와 사회” 등을 저술한 법률가, 경제학자이며 사회학자로서 근대사회의 합리화가 현대사회의 과학기술과 관료제적 지배체제로 인하여 합리성에 기반을 두고 진행되었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는 말년에 ‘삶의 목적과 가치’가 전도된 ‘도구적 합리성’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자유의지를 잃고 쇠우리iron cage에 갇혀서 살아가게 되는 현상에 대해서 심히 우려하였다. 이는 “찬미 받으소서”에서 오늘날 ‘기술관료 패러다임’이 획일적 경제성장을 기준으로 환경 파괴를 정당화해 온 현실을 지적하는 맥락과 상통한다.
2) 인간의 취약성은 (역설적이게도) 사회적, 실존적, 영적 여정의 기회를 제공한다. 피파 노리스와 로널드 잉글하트는 “Sacred and Secular” (Cambridge Studies in Social Theory, Religion and Politics)에서 사회복지제도, 의료, 위생, 보험, 보건, 안전망 등이 발달되지 못 해서 “취약한 삶의 조건”에서 살아가는 저개발 국가에서 종교성이 높게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로버트 벨라는 “Habits of the Heart” (University of Berkeley Press, 1985) 와 “Beyond Belief” (University of Berkeley Press, 1970)에서 인간 삶의 취약성을 인식하는 것은 공동체 삶의 필수 조건이며 더욱이 가장 발전된 선진국인 미국사회의 한복판에서 인간 연대성의 필수 전제임을 강조한다. Bryan S. Turner 역시 “Vulnerability and Human Rights” (University Park, Pennsylvania University Press, 2006)에서 과학만능 기술 시대라 하더라도 인간이 불멸의 존재가 아니기에 인간의 취약성이 인권 증진을 위한 궁극적인 필수 요소임을 확인해 준다. 한편, 그리스도교 영성에서 자신의 취약함(=완벽하지 못함)을 인정하는 것은 자기를 포기하고 하느님의 은혜에 힘입어 “자기 초월”의 길을 통해 “삶의 충만함”으로 나아가는 데 필수 조건이라고 본다. [참고로, ‘삶의 충만함the fullness of life’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이 제시하는 ‘세상 속의 교회’가 공동선을 통해서 인류와 공유해야 할 근본가치로 제시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FT에서 이를 오늘날 사회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인 ‘행복’과 ‘삶의 질’과 연결시키고 있는데, 충만한 삶의 핵심은 곧 자기로부터 벗어나 타자를 하느님 안에서 우리로 만나는 데에 있다고 강조한다.]
3)] Cf. Ulich, Beck. The Risk Society: Towards a New Modernity , London, Sage 2000; Id., The World Risk Society, London, John Wiley & Sons, 1999.
4) 사회학자인 Beck은 그의 저서 “세계화 시대의 권력과 대항권력” (홍찬숙 번역, 길 출판사: 2011)에서 기업, 국가 및 시민운동 간에 전개되는 글로벌 권력 게임에서 ‘대항권력 counter-power’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나 교종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자비는 모든 인간에게 열려 있으며 전 인류의 공동선을 위해서 모든 인간에게 ‘생태적 회심’와 ‘개방된 연대성’으로 초대한다. 아울러, 교종은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선이 온전히 추구될 수 있는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제도적 개혁을 촉구한다.
5) Kate Pickett and Richard Wilkinson, 2018, The Inner Level: How More Equal Societies Reduce Stress, Restore Sanity and Improve Everyone’s Well-Being.
6) 위기(危機)의 한자어는 위험과 기회를 각각 의미하는 두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7) 2020년 6월 경제 협력 개발기구(OECD)의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는 전염병으로 인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전반적인 경제 성장률이 주로 마이너스, 즉 하락세로 예측되었다. 미국 -7.3%, 영국 -11.5%, 이탈리아 -12.4%, 스페인 -18.5%로 예측되었다. 한국은 전염병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로 인해 -0.8%로 전망되었다. (www.oecd.org/economic-outlook/june-2020 참조).
8) Cf. 에드 용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 기상천외한 공생의 세계로 떠나는 그랜드 투어”, 양병찬 옮김 (어크로스: 2017). (Ed Yong, 2016, I Contain Multitudes: The Microbes within Us and a Grander View of Life.)
9) Cf. Charles. Taylor, A Secular Ag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7. [찰스 테일러는 오늘날 북미, 유럽권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철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 캐나다의 가톨릭 평신도이다. 그는 오늘날 신성과 형이상학적 전제를 수용하지 않고 살아가는 ‘세속 시대Secular Age’에서 현대인들이 추구하고 도달해야 하는 공통의 윤리와 도덕에 관한 새로운 지평을 제안한다. 그는 특정한 종교 신념이나 형이상학적 토대를 가정하지 않고 인류의 공통된 목적(공동선의 발현)으로서 ‘삶의 충만함’을 화두로 제시한다. 국내에 소개된 그의 책으로는 「자아의 원천들」, 「세속화와 현대문명」, 「근대의 사회적 상상」, 「현대종교의 다양성」, 「불안한 현대사회」 등이 있다.]
10) “젠더 트러블” 저서로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미국 여성학자 Judith Butler는 Emmanuel Lévinas의 ‘타자’의 관점을 수용하여, “윤리적 폭력 비판” (양효실 옮김, 인간사랑 2013년, 10쪽)에서 “the Other”는 무한한 윤리적 관계의 placeholder의 역할을 하고, “other”는 다른 인간으로서 특별한 인간 타자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을 자비로우신 아버지이시며, 인간 초월의 궁극적인 토대로서 ‘완전히 타자totalier alter’로 제안한다. 바로 그런 하느님의 지평 안에서 우리는 내재성(the Immanent)이 복음의 기쁨을 통하여 초월자와 진정으로 통교할 수 있다.
11) 포스트모던으로 인한 분열과 파벌은 “인간의 자유가 무에서 시작하여 모든 것을 창조하였다고 주장하는 일종의 ‘해체주의’가 (되어) 현대 문화에 침투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역사의식이 계속해서 약화되고 있습니다.”(FT 13)
12) Cf. Jürgen Habermas, “Secularism’s Crisis of Faith “Notes on Post-Secular Society” in New Perspectives Quarterly [25(4), 2007]: pp. 17-29. [참고로, 위르겐 하버마스는 합리적 소통과 의사소통에 기반한 합리적 세계 구축에 천착한 세계적인 독일 철학자, 사회학자이다. 그의 저술 “공론장의 구조 변동”, “의사소통 행위 이론” 등은 오늘날 시민사회와 인터넷/SNS 공간에 ‘공론화’를 통하여 사회문제를 공적 의제로 발전시키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하버마스는 인간의 의식이 아니라 언어 소통에 기반해서 보편적 이해와 판단을 도출하는 보편화용론의 차원에서 ‘이상적 담화 상황 (ideal speech situation)’을 제시하였는데, 이후 여성학자 셀리아 벤하비브는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축적/배태된embedded 경험이 다른 이들, 특히 여성과 소수자, 주변인들the marginalized이 공론장에서 자유롭고 편안하게 공적 담화를 하지 못 할 수 있는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여 그들의 주체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서사적 언술을 존중하는 ‘평등주의적 상호성’을 제안하여 보완하였다. 이에 관해서 오세일이 작성 중인 “‘공동합의성’에 내포한 숙의와 합의, 공동식별과 의사결정과정에서 ‘성령의 영감과 주도권’”이라는 다음 논문을 참조하시오.]
13) Cf. 오세일, “포스트 세속 사회에서 한국 천주교회의 위기: 정당성 위기의 관점에서”, in Catholic Theology and Thoughts , vol. 76, 2015년 12월, 83-117. (Seil Oh, “The Crisis of Korean Catholic Church in the Post-Secular Society: In the Light of the Legitimacy Crisis” Catholic Theology and Thoughts. 2015.)
14)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으로서 모든 인간의 마음에 뿌리를 둔 사랑은 특정한 정체성 정치를 극복할 수 있다. “사랑은 상처 입은 형제나 자매가 어디 출신인지 따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우리를 고립시키고 분열시키는 사슬을 끊고 그 자리에 다리를 놓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우리 모두가 집에서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위대한 가족을 이루게 합니다. 사랑은 연민과 존엄의 향기를 발산합니다.”(FT 62).
15) 이 세 가지 차원은 오세일의 졸고를 참조하라. “교종 프란치스코와 함께 한국 천주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 가톨릭 신학과 사상, vol. 81, 2018 년 7 월, 235-269. (Seil Oh, “Tasks for Korean Catholic Church on the Path of Pope Francis” Catholic Theology and Thoughts, 2018.)
16) 문화인류학에서 ‘임계liminal’는 limen(= threshhold, 문지방)에서 파생된다. 빅터 터너는 원래 프랑스 인류학자인 Arnold Van Gennep의 ‘임계성liminality’이라는 개념을, 변화하는 ‘여정 중에 있는’ 과도기적으로 충만한 공동체의 의미를 설명하고자 했다. [참고로, 예수성심전교회 소속 디아무이드 오무르크 신부는 교회의 역할, 특히 수도자의 역할이 이 세상에서 저 세상(=하늘나라)의 가치를 구현하는 임계적이며 예언자적 존재로 설명한다.]
17) 이 기도문은 프란치스코 교종에 의해 작성되었으며 그의 회칙 “모든 형제들(FT)”의 맨 끝에 나온다.
18) 에밀 뒤르켐(1858-1917)은 경험연구에 근거한 사회학의 시조로 인식되고 있는데, 그는 유대인 랍비 가문 태생으로서, 드레퓌스 사건을 통해서 심각하게 분열된 프랑스 국가사회의 도덕적 통합을 추구한 인물이다. 그의 생애와 연구 속에서 ‘성과 속’의 대비와 ‘사회통합’의 문제는 그 만큼 중요한 화두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멀치아 엘리아데(1907-1986)는 ‘종교현상학’의 관점에서 ‘성’과 ‘속’을 구분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연구한 인도 힌두이즘의 종교적 현상에 기반해서 일반 종교의 지향성 혹은 상징체계로 확장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달리, 뒤르켐은 “종교생활의 원초적 체험”을 통해서 성스러움 체험의 사회적 토대에 관해서 논한다. 자기가 속한 원초적 집단 (부족, 민족, 국가 사회 등)은 –다른 집단과 비교해서- 고유한 의미(sui generis)의 거룩함을 지니고, 그 밖의 집단과는 속됨의 경계를 구성한다고 본 것이다. 필자는 영성사회학자의 입장에서 교종 프란치스코의 사회회칙 “모든 형제들”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지향은 -개인의 의식과 실존적 체험이나 사회구성적 소속과 경계를 넘어서- 하느님의 공통된 자녀로서의 인격과 품위에 바탕을 둔 보편적 사랑에 관한 초월적이며 영적인 “깨달음”이 동반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19) 도날드 젤피의 회심론: 미국 예수회 신학자 버너드 로너건은 회심 (conversion) 이론을 개인의 지적, 도덕적, 영적 차원에서 설명하는데, 도날드 젤피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여정은 단지 개인 차원의 의식과 책임, 영적 체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차원과 대사회적 차원에서의 변화를 함께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젤피는 J.S.T.B (버클리 예수회 신학교)에 재직하면서 RCIA (성인을 위한 가톨릭 교리서)에 개인, 공동체, 사회 차원에서의 회심을 소개하며, 사목과 학문을 통합하는데 공헌하였다. 요컨대, 교의적으로 회심 이론의 핵심은 ‘인간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여정’을 근본 전제이자 최종목적으로 본다. 전통 수덕(修德)생활에서의 회심은 개인 차원의 조명과 정화를 통한 일치, 즉 ‘신비적 합일 (unio mystica)’을 종국적 목적으로 기술한다. 그런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이 제시한 ‘세상 속의 교회’라는 지평에서 신앙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회심은, 개인과 타인, 개인과 사회/환경 속에서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그 신비’를 따라 살아가는 관계적, 실천적 영성을 요청한다. 교종 프란치스코는 우리 시대에 필요한 회심과 실천을 촉구하면서 특히 “복음의 기쁨”에서 ‘사목적 회심’, “찬미 받으소서”에서 ‘생태적 회심’, “모든 형제들”에서 ‘사회적, 정치적 애덕’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