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애는 형제살해보다 강하다

교종 프란치스코의 이라크 사도방문

안토니오 스파다로 (예수회)
*이태리어 원문: https://www.laciviltacattolica.it/articolo/la-fraternita-e-piu-forte-del-fratricidio/
*영어 원문: https://www.laciviltacattolica.com/fraternity-is-stronger-than-fratricide-pope-francis-apostolic-journey-to-iraq/

  2021년 3월 5일 오전 7시 30분, 알리탈리아Alitalia 여객기가 프란치스코 교종과 수행인 및 기자들을 태우고 바그다드를 향해 떠나 현지 시각으로 오후 2시에 도착하였다.

  출발 전날인 3월 3일 저녁 일반 알현에서 밝힌 교종의 심경. “저는 엄청난 고통을 겪어온 사람들을 오래 전부터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땅에 세워진 교회의 순교자들입니다. 우리는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형제 신앙인으로서 앞을 향해 한걸음 내딛을 것입니다.” 그는 “이라크 국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며, “그들을 또 한 번 실망시킬 수 없습니다.” 하고 마무리하였다.

  프란치스코의 서른세 번째인 이번 사도적 여행은 사실 성 요한바오로 2세가 일찍이 밝힌 소망을 이루는 것이다. 2000년 대희년 순례 때에 교종 보이티야는 먼저 시나이를 방문하였고, 다음 달에는 거룩한 땅의 느보산과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다. 그의 소망은 이 두 차례 순례에 이어 이라크의 칼데아에 있는 우르Ur에도 가는 것이었다. 1999년 12월에 여행 준비를 마쳤지만 갈 수가 없었다. 빌 클린턴 시절 당시 미국이 반대하였는데, 교종의 방문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강화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결국 사담 자신이 교종의 방문을 반대하였다.

  교종 요한바오로 2세가 목소리를 높여 반대한 두 번째의 서방 군사원정인 2003년 ‘번개 전쟁’으로 사담 정권이 전복되었다. 교종의 의견이 묵살된 것이다. 그 이후 그 나라는 근본주의자 단체 “이라크와 레반트의 이슬람 국가”(IS)에 의해 자행된 폭력의 소용돌이에 빠졌고, 혼란이 거듭되어 마침내 교종의 방문 계획조차 신기루처럼 보이게 되었다.

  이라크 방문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최근의 긴장 상태

  프란치스코는 다양한 계획을 엮어서 여정을 편성했는데, 이것을 이해하려면 이라크의 현재 상황과 함께 이라크가 인류 및 종교들의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1) 성경의 에덴 지역으로 여겨지는 이곳은 극심한 긴장과 상처가 현존하는 땅으로 프란치스코가 손수 방문하여 손으로 만져보고 증거하고 치유의 몸짓을 보이고 싶은 전형적인 장소 중 하나다. 이라크를 가로 지르는 두 개의 큰 강,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의 물이 공급되는 비옥한 땅과 풍부한 유전은 큰 축복과 전쟁과 고통의 원천이 되었다. 우리 치빌타 카톨리카는 계속 여기에 관하여 수많은 소식을 전해왔다.

  메소포타미아는 세 개의 위대한 고대 문명, 즉 수메르와 바빌로니아 그리고 아시리아 문명의 요람이었다. 여기서 최초의 성문법인 함무라비 법전이 나왔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신앙이 태어났다. 여기서 몇몇 예언자들이 설교했고, 에제키엘, 요나, 나훔 등의 몇 예언자가 묻힌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서 사도 토마스로 연결되는 최초의 복음화가 꽃피었으며, 여기서부터 동쪽으로 교회가 뻗어나가 페르시아만을 따라 인도와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고대 중국에 이르기까지 많은 열매를 맺으며 발달하였다. 여기서 이슬람은 첫 번째 정복을 이루어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열을 경험했다.2) 여기서 위대한 신학 작품들과 위대한 성인들 그리고 그리스도교 작가들과 이단들이 생겨났다. 이후 이라크는 오스만 제국의 일부였다가 제국의 멸망 이후 1920년 세브르 조약에 의해 국제연맹이 영국에 위임하였다가3), 1932년 왕정국가로 독립하였고 1958년 7월 14일 공화국이 되었다.

  이 땅은 최근의 숱한 분쟁들로 피에 젖은 땅이기도 하다. 걸프전이 1991년과 2003년 두 차례 일어났고, 이 역사의 무게는 오늘날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어깨에 고스란히 지워졌다. 전후 1년여 동안 임시 연합정부의 지배를 받고는 2004년 다시 한 번 독립 주권 국가가 되었으며 2005년 10월 15일 국민투표로 새 헌법을 승인했다. 새 헌법은 지방정부에 강력한 자치권이 부여되는 연방의회를 중심으로 한다. 헌법은 “국가는 개인을 지적, 정치적 및 종교적 강요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개인은 지성과 양심 그리고 신앙의 자유를 누린다.”고 선언하였다.(37조 2항 및 42조)

  더디고 힘겹게 진행되던 정상화 과정이 2014년에 소위 ‘이슬람국가Islamic State’(= IS)의 부상과 함께 갑자기 중단되었다. 당시 총리였던 하이다 알 아바디Haydar al-‘Abadi는 이 단체와의 전쟁을 공식 선포하였으며 2017년 12월 9일 승리를 선언했다.

  IS 반군의 반격이 재개되고 2021년 1월 21일 바그다드의 재래시장 공격과 같은 민간인에 대한 공격이 몇 차례 일어나면서 국내 정치는 계속 불안정해지고 있다. 바그다드 사태로 인한 사망자는 35명, 부상자는 100명에 이른다. 최근 몇 달 동안 쿠르드족을 이라크 영토까지 침공하면서 공격한 책임이 있는 터키와 이란 같은 외세의 간섭도 불안정을 가중시킨다. 특히 2020년 1월 3일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이란 장군 카셈 솔레이마니를 살해한 뒤에 테헤란과 미국 사이의 관계가 악화됨에 따라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의 활동이 증가했다.4)

여기에 힘든 경제 여건과 청년들에게 사회적 전망과 고용의 희망이 거의 없다는 점도 작용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평가에 따르면 이라크 경제는 올 한 해에 11% 감소할 전망이며 빈곤층은 40%에 가깝다.

  그리스도인들의 존재와 도주

  해묵은 갈등의 무게까지 그리스도인들의 어깨 위에 지워졌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수세기동안 적응하면서 생존해왔는데, 불안한 공존과 권위주의적 압력, 차별과 박해를 극복하고자 노력했지만, 지난 100년 동안 인구수가 극적으로 감소하였다.

  메소포타미아에서 그리스도교의 존재는 사도행전이 증언하듯이 그리스도교의 기원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전통에 따르면, 실제로 그리스도교는 1세기에 토마 사도와 그의 제자들의 설교로 이 땅에 전파되었고 동아시아까지 확산되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칼데아족과 시리아족, 아르메니아족과 라틴족, 멜키족과 정교회 및 개신교인으로 나뉘어 있다.

  제2차 걸프전 전날 이라크의 그리스도인은 100~140만 명으로 (인구의 6%) 추정되었다. 그 이후로 그들의 존재는 약 1.5%, 가장 최신의 추정치로는 30만에서 40만 명가량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메소포타미아 그리스도교의 역사적 요람인 니네베 평야가 IS에 점령당하여 이 지역의 그리스도교가 궤멸된 것이다. 10만 명 이상의 그리스도인들이 야지디족Yazidis과 같이 박해받는 다른 소수 민족들과 함께 고향을 떠나야 했다. 이들 중 다수의 가족들이 이라크 쿠르드족에서 은신처를 찾았다. 60개 이상의 교회가 망가지거나 파괴되었다.

  국제 가톨릭 공동체의 끈질긴 연대의 노력에 힘입어 본래 거주하던 니네베 평야에서 이슬람 폭력 때문에 밀려났던 가족들 중에서 45% 이상이 귀환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어려움과 두려움 때문에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공포의 주된 원인은 지역 민병대의 폭력적 행동과 IS의 귀환 가능성이다.

  이러한 이유로 신뢰를 재건하는 것이 기본이며, 민족 종파5)처럼 “그리스도인 군락”을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 “신앙으로 활기를 되찾은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에서 뒤쳐진 것이 분명하지만 그 간격을 회복하기 위해 애쓰는 소수자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공동의 고향과 차별 없는 시민권의 개념에서 그리고 인권 헌장과 누구도 배제되지 않은 집합 선과 현대적이고 합리적인 조직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6)

  새로운 시민권 옹호 : 당국을 향한 연설

  바그다드에 도착한 프란치스코 교종은 총리의 환영과 인사를 마치고 바함 아흐메드Barham Ahmed Salih Qassim 대통령이 이끄는 공식 환영식을 위해 대통령 궁으로 갔다. 사적인 대화와 선물 교환 후 약 150명의 정치 및 종교 대표, 외교단과 기업인들, 사회 및 문화계 대표들과 만남이 이루어졌다.

  대통령은 인사말을 통해서 프란치스코의 방문이 “역사적, 종교적 및 인간적 차원”을 갖는다고 평가했다. 이어서 말하기를 “이라크 국민들은 전염병으로 세계가 겪고 있는 예외적인 상황 때문에 방문을 연기하라는 권고와 상처 입은 우리나라가 직면한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국빈으로 이 자리를 찾아주신 성하께 자부심을 표합니다. 이러한 모든 여건을 극복하고 와주시어 이라크 국민들로서는 방문의 가치가 사실상 배가 됩니다.”

  대통령의 인사 후 교종은 연설을 통해 이라크를 “선조 아브라함과 수많은 예언자들을 통해 구원의 역사 그리고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및 이슬람과 밀접하게 연결된 문명의 요람”이라 규정했다. 이 서문은 2019년 2월 4일 아부다비에서 서명한 세계 평화와 함께 살기 위한 인류 형제애에 관한 문서7)를 참조한 것인데, 이는 우리가 “형제자매로서 함께 여행”할 수 있다는 희망과 “종교의 진정한 가르침은 우리에게 평화와 상호 이해와 인류의 형제애 그리고 조화로운 공존의 가치”에 뿌리를 두도록 권한다는 확신에서 나온 것이다. 프란치스코가 이 나라에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의 핵심은 이것이다. “경쟁과 반대를 극복하고”, “수천 년 동안 이라크 사회의 특징을 이룬 종교와 문화 및 인종의 다양성”을 “건강한 다원주의”가 요구되는 “가치 있는 자원”으로 여기고 일치를 이루라는 것.

  이 연설은 건강한 이라크 시민 사회를 건설하는 두 가지 길을 분명히 제시하였다. 첫째는 내부적인 것으로 시민권이다. 프란치스코는 호소했다. “대화를 통해 그리고 솔직하고 성실하며 건설적인 논의를 통해 이 나라를 건설하는 데 협력하려는 모든 시민들, 화해를 위해 헌신하고 공동선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양보할 자세를 갖춘 시민들에게 자리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라크는 최근 몇 년 동안 민주 사회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이를 위해서 모든 정치, 사회 및 종교 단체의 참여와 모든 시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아무도 2등 시민으로 간주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이라크에 외부적인 것으로 국제 사회의 헌신이다. 이는 “이 땅과 중동 전체의 평화 증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여기서의 도전은 “무엇보다도 이 지역의 안정을 위협하는 경제적 불평등과 지역적 긴장을 해결하기 위해 […] 정치 및 이념적 이해를 강요하지 않고 세계적인 규모로 협력할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난민과 국내 실향민에 대한 재건과 지원을 위한 헌신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동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지금까지 지배적이었던 식민주의적 관점과 정반대에 서 있다. 이라크를 “문명화할 임무”라는 것은 없으며 이라크가 최대한 조화로운 방식으로 이라크답게 되고 자기 결정을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라크 교회들, 다채로운 색실로 짜인 하나의 카펫

  교종은 오후 4시 15분경 대통령 궁을 떠나 시내의 대형교회 중 하나인 바그다드의 시로-가톨릭 대주교좌 사이닷Sayidat al-Nejat(구원의 성모) 대성당으로 이동했다. 이 성당은 2010년 10월 31일 자칭 IS가 일으킨 두 차례 테러 공격의 표적이 되었는데, 그중 한 번은 사제 2명을 포함해 48명이 사망하고 약 70명이 부상을 입었다. 폴란드 건축가 카프카가 현대적인 양식으로 설계한 이 교회는 폭풍우 속에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태운 배처럼 신자들을 지켜주는 배를 나타낸다. 2010년의 공격 이후 교회는 수리되었고 희생자들을 위한 기념관이 세워졌습니다.

  주교와 성직자, 수도자와 신학생 및 교리교사를 포함하여 약 100명이 대성당에 모였다.8) 총 대주교 루이스Louis Raphaël Sako 추기경이 교종을 맞아 “용기있는 방문”이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항구하게 살아가고,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그리고 우리가 형제처럼 사랑하는 무슬림들과 서로 형제적 관계를 공고히 하게끔 자극을 줍니다.” 하고 인사했다.

  인사말에 이어 교종은 연설을 통해 무엇보다도 먼저 “아주 초기부터 이 땅에 교회가 중단 없이 존재”해왔음을 상기시켰다. 그러나 어려움도 있었는데, 그 때문에 “국내 이주민과 특히 그리스도인의 경우 수많은 이주민들이 발생하여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는 “희망”의 “백신”으로 “낙심의 바이러스”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교종은 친숙한 카펫 이미지를 제시했다. “이라크에 존재하는 여러 교회들은 각각 오래된 역사적, 전례적 및 영적 유산을 가지고 서로 엮여서 하나의 아름다운 카펫을 구성하는 수많은 개별적인 색실과도 같이 우리의 형제애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원천을 가리킵니다. 바로 하느님이 이 카펫을 상상하시고 인내롭게 엮으시고 조심스럽게 수선하시는 작가이기 때문에 그분의 아들과 딸로 우리가 긴밀하게 짜여있기를 바라십니다.”

  나자프 : 시아파 성지의 교종

  토요일 오전 7시 45분 교종이 탄 이라크 항공 비행기가 바그다드Baghdad를 떠나 나자프Najaf를 향해 그곳 주지사의 환영을 받았다. 나자프는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약 160km 떨어진 이라크 중부에 있는 도시이다. 이라크의 시아파 주요 종교 중심지인 이곳은 이슬람의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한 사람인 알리 이븐Ali ibn Abi Talib의 -무하마드의 사촌이자 사위로 시아파의 첫 이맘으로 이맘 알리Imām ʿAlī라고도 한다.- 무덤이 있는 곳으로 전 세계 시아파의 순례지이다.

  도착한 후 교종은 이맘 알리 모스크 내부에 있는 그랜드 아야톨라 알-시스타니Grand Ayatollah Sayyid Ali al-Husayni al-Sistani의 거처로 가서 골목을 지나 가까이 갔다. 알-시스타니al-Sistani가 추종하는 이슬람 경전 해석에 따르면 종교 지도자들은 직접적인 정치 활동을 삼가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란이 추종하는 아야톨라 호메이니Ayatollah Khomeini의 해석과 대조를 이룬다.9) 2004년에 알-시스타니는 이라크에서 자유선거를 지지하여 이라크 최초의 민주 정부 추진에 중요한 기여를 했으며, 2014년에는 이라크 국민들로 하여금 자칭 IS(= Islamic State: 이슬람 국가)에 맞서 싸울 것을 촉구했다.

  2003년 바트 정권을 무너뜨린 미국 주도의 군사 개입 이후, 아야톨라 알-시스타니Ayatollah al-Sistani가 선언한 파트와(신앙생활에 대한 결정)는 모든 시아파 무슬림에게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소수 신앙 공동체의 구성원을 학대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그들을 외국 군대의 “제5열”(외부의 적과 내통하여 혼란을 일으키는 국내 반란 세력)10)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종이 방문한 곳에는 프란치스코와 알-시스타니의 사진과 이맘 알리Imām ʿAlī의 유명한 경구와 함께 환영 포스터가 있었다. “사람은 두 가지 유형이다. 네 믿음의 형제이거나 너와 동등한 인류이다.”

  회담의 몇 가지 이미지를 통해 시아파 지도자 가정의 엄격함을 전할 수 있겠다. 빈 방에 두 개의 길고 좁은 소파가 있는 환경이며 나누는 대화는 매우 따뜻했다. 아야톨라Ayatollah는 국가 지도자를 맞은 적도 없고 결코 일어선 적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여러 차례 일어섰다. 만남은 약 45분간 진행되었으며, 두 지도자는 공동선언에 알린 대로 종교 공동체 간의 협력의 중요성과 조화 및 평화로운 공존과 인간적 연대의 가치를 강화하는 것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고, 그 바탕에는 권리의 증진과 다른 종교와 지적인 경향을 따르는 사람들 사이에 상호 존중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국가의 선익과 모든 인류에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프란치스코는 3월 10일 일반 알현 때에 “잊을 수 없는” 회담이라 묘사했다.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 재임 당시 이란의 부통령이었던 모하마드 알리 압타히Mohammad Ali Abtahi는 이 회의가 “신성한 종교들의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트윗에 올렸다.11)

  지정학적 함의: 패러다임 전환

  프란치스코의 여행은 시아파의 “성도” 나자프Najaf를 부각시키고 이슬람 내부의 대화가 가능하도록 세 개의 유일신교가 공유하는 성조 아브라함의 연관성을 제시하면서 화해를 위한 중요한 전망을 연다.

  로마로 돌아가는 길에 기내 기자 회견에서 프란치스코는 이슬람과 내부 긴장에 대해 회상하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예를 들어서 30년 전쟁과 성 바르톨로메오 기념일을 봅시다.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지요. 우리 사고방식이 어떻게 변하는지요.” 17세기에 그리스도교 안에 있었던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들 사이의 긴장과 이슬람 내부의 긴장을 나란히 비교하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그 당시 30년 전쟁은 새로운 합스부르크 황제의 열망에 제동을 걸고자 하는 독일 제후들의 열망 때문에 일어났다. 황제는 스페인의 도움을 받아 독일 영토 내의 종교를 결정할 권리를(cuius regio eius religio. 지역은 그 주권자의 종교를 따른다.) 박탈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전쟁은 베스트팔렌 평화조약(1648년)으로 종결되었는데, 국가들이 그 주권자의 신앙을 넘어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국제질서가 시작되었다. 이로써 장기간의 종교 분쟁이 막을 내리고 이어지는 유럽의 분쟁들은 본질상 정치적인 것에 국한되었다. 알-시스타니 방문이 주는 메시지는 이슬람이 “다원적”임을 평화로이 인정한다는 것이며,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국가란 모든 구성원에게 시민권을 보장하는 다원주의자 집단임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알카디미al-Kadhimi 총리는 이 메시지를 받고 3월 6일을 관용과 공존의 국경일로 선포했다.

  교종이 바라는 회담은 다른 합의에서처럼 누군가에 대항하여 일치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다. 나자프가 –그리고 곧 보게 될 우르가- 제안하는 평화는 “반대”가 아니고 이원론이(선과 악의 적대적인 구도) 아니며, 깊이 존중하며 포용적이다.

  이 모두는 40년 동안 고통과 투쟁을 겪은 나라가 자신의 삶에 대해 내린 그리고 더 광범위한 논제에 대해 내린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전환이다. 사실 프란치스코는 이 지역에서 능동적으로 활동하는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와 영국 (그리스도인), 사우디 아라비아와 터키 (수니파) 그리고 이란과 친이란 민병대(시아파) 그리고 지금은 중국이 포함되는 모든 주요 국가들에 널리 퍼진 견고한 담론과 지정학적 전략을 암시하면서 그것들을 무너뜨리고 있다.

  첫째는 많은 해를 끼친 견고해진 담론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이란의 시아파와 사우디 아라비아의 수니파처럼 서양의 제5열(내부 파괴자)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항구적인 갈등을 가져온 종교적 담론으로, 시아파 진영에서는 호메이니식 신정정치를 지향하는 시아파가 우세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시아파가 한 가지가 아니며, 바로 알-시스타니에 속하는 전통적인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셋째는 바그다드가 중심이라는 복잡한 지정학적 전망으로 묵시론적 이념에 의해 성장해왔다.12) 사실, 수니파와 시아파 둘 다 정치적 이슬람의 이익을 종교와 연계하여 때로는 종교를 희생하고 때로는 이용해 왔다.

  환영사에서 이라크 대통령은 교종 방문의 의미를 잘 요약하여 “대화를 위한 항구적인 심포지엄으로 바티칸과 나자프Najaf, 알-아자르al-Azhar, 자이투나Zaytuna 및 주요 종교 센터의 대표자들의 감독 하에 성물과 설형문자 유산에 비추어 공통되는 다양한 역사를 연구할 것”을 제안하였다.

  대통령은 교황청과 나자프 및 알-아자르를 인용하여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조화를 촉구함으로써 기존의 담론과 지정학을 무너뜨리려 하였다. 이는 교종이 이라크 땅을 밟을 때부터 시작된 자연스러운 변화 과정이다. 성 요한바오로 2세의 방문이 결국 양측의 거부로 인해 이루어지지 못하였지만, 만일 성사되었더라면 그 고난의 땅에서 많은 유혈 사태를 일찍이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프란치스코의 방문은 오직 교종이 갖는 도덕적, 영적 권위만이 이 복잡한 퍼즐 조각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에야 비로소 그 지정학적 의미를 올바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르Ur, 미래를 건설하는 현장: 아브라함의 기억과 복음의 지혜

  시아파 지도자와의 만남을 마치고 교종은 공항으로 가서 나시리야로 갔다가 그곳에서 수메르 제국의 수도였던 칼데아의 우르로 이동했다. 수메르족은 기원전 3천년 무렵 메소포타미아 전체를 지배하였다.

  우르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 위치하여 상업이 발전하였고 정치적 지배력을 행사하였다. 우르는 아브라함의 아버지인 테라의 고향이며, “아들 아브람과, 아들 하란에게서 난 손자 롯과, 아들 아브람의 아내인 며느리 사라이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칼데아의 우르를 떠났다. 그러나 그들은 하란에 이르러 그곳에 자리잡고 살았다.”(창세 11,31)

  2020년 1월 25일, 프란치스코는 이라크 대통령 바함 살리Barham Salih를 영접하면서 서로 선물을 교환하는 순간 이라크 대통령에게 “신분증”을 받고 싶다는 소망을 표현하였다. 다름 아니라 “교종 프란치스코는, 아브라함의 아들의 아들의 아들의, …. 아들임”을 증명하는 증서였다. 이번 방문으로 교종은 그러한 신분증을 어떤 식으로 받은 셈이고, 이라크 국민들도 그런 증서를 요청하도록 상징적으로 그들을 초대한 것이다.13)

  실제로 우르에서 종교 간 모임이 열려 성경과 코란을 함께 읽고 신앙 증언을 들었다. 이라크 땅에서 선포된 종교들이 대표가 되었다.14) 강렬한 영적 사건은 지구라트ziggurat를 배경으로 하고 고대 유적지가 있는 밝은 사막평야를 무대로 하여 일어났다. 여러 증언들 중에서 이라크 국민의 단결에 대해 말한 사바-만데스 종교에 속한 여성의 증언이 있다. “우리는 피가 섞인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엠바고의 쓰라림을 함께 경험했으며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계속해서 “성하의 이라크 방문은 메소포타미아가 여전히 존경과 감사를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의 방문은 미덕의 승리를 의미하며 이라크 국민들에 대한 감사의 상징입니다.”

  교종은 연설을 하고나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아브라함 자손의 기도”를 소리내어 바쳤다. 그의 우르 연설은 여행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으며 더 깊이 성찰할 만하다. 프란치스코는 성조 아브라함이 중심에 있음을 되풀이하였다. “이 축복된 곳은 우리를 우리의 기원, 하느님의 일이 시작된 원천, 종교들의 탄생지로 되돌려줍니다.” 그리고 하늘을 쳐다보라는 호소.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세어 보라고 하셨습니다.(창세 15,5 참조) 그 별들에서 그는 후손들의 약속을 보았습니다. 우리를 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 유다인과 그리스도인 그리고 무슬림들은 다른 종교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우리 아버지 아브라함을 존경하여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하늘을 쳐다보면서 땅 위를 여행합니다.” “수많은 별들이 빛나는” 저 “하늘을 쳐다보는” 것은 “일치의 메시지”를 인식한다는 뜻이다. “우리 위에 계신 지극히 높으신 분은 스스로를 이웃과 분리하지 말도록 초대합니다. 하느님의 타자성은 우리를 다른 사람들, 우리의 형제자매들에게 향하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테러와 증오는 종교와 결합될 수 없다. “테러는 종교를 남용한다.”

  교종은 어두운 공포의 순간에도 “별들이 빛난다.” 고 하였다. 그는 “모술의 젊은 무슬림 자원봉사자들이 교회와 수도원을 복원하는 일을 도왔으며, 증오의 잔해 위에서 형제적 우정을 쌓고, 지금 모스크와 교회를 함께 복원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무슬림들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르에서 강력한 일치의 메시지, “같은 방향으로 함께 모으라는” 부르심이 나온다. 자신을 고립시키는 것은 단지 벽을 쌓아 올릴 뿐이다.

  그러나 하늘을 쳐다본 다음에는 “땅 위를 걸으라.”는 초대도 하였다.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땅과 집과 친척을 떠나야 했던” 것처럼 각자 “떠나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가족을 포기함으로써 그는 민족들의 가정에서 아버지가 되었다. 아브라함은 사회의 모델이 되었고, 정치 행위의 모델, 국가 재건을 위한 헌신의 모델이 되고 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우리 그룹” 안에 폐쇄하면서 “다른 이들 안에서는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는” 그런 유대와 애착을 버리라.” 는 초대이다.

  “평화의 여정은 어디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까?” 교종이 자문하였다. 그의 답변에서 길이 분명히 보인다. “적을 갖지 않기로 결정하는 데에서, 입니다. 별을 쳐다볼 용기가 있는 사람, 신을 믿는 사람은 적과 싸울 일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맞서야 할 적은 단 한 명, 마음의 문에 서서 들어오려고 문을 두드리는 적입니다. 그 적은 증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친구가 되기보다 적을 만들려고 하고,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희생하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약속의 별을 보는 사람들, 하느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은 누군가를 대적할 수 없고 모든 사람을 위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할 수 있다면 스스로를 지키세요.” 가 금방 “모두에 대해서 모두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말로 바뀔 것이다.

  그는 우르Ur 연설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하였다. “종교가 다른 형제자매 여러분, 바로 여기가 우리 고향입니다. 여기서부터 우리가 함께 하느님의 꿈을 실현하려는 다짐을 하기 바랍니다. 인류 가족이 모든 하느님의 자녀들을 환대하고 환영할 수 있게 되는 꿈 말입니다. 인류 가족은 같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평화롭게 같은 땅에서 여행을 할 것입니다.” 우르는 이제는 과거의 상징이 아니라 미래의 건설 현장이다.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공동 운명의 인식으로 많은 이라크 국민들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내밀한 화음이 건드려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뿐만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오늘의 행보가 “이라크와 중동 및 전 세계에 축복과 희망의 표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우리 함께 구체적인 선을 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종은 나시리야 공항으로 가서 바그다드의 교황청대사관에 이르렀다.

  오후 5시 30분, 교종은 경사진 지붕,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으로 장식된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인 성 요셉의 칼데아 성당으로 갔다. 여기서 그는 칼데아 예식으로 미사를 거행하였다. 그는 세 가지 주제, “지혜, 증거, 약속”이라는 세 가지 핵심 단어로 강론을 했다.

  고대부터 이 땅에서 지혜가 자라났다. 여기서 프란치스코는 아침에 했던 말을 “지혜”라는 용어로 바꾸어 표현하면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확증하였고 복음적인 진복팔단의 언어로 영적인 기초로 삼았다. 성경적 지혜는 인간적 지혜의 “완전한 반전”이다. 사실 지혜서는 공통의 관점을 뒤집어서 “미천한 이들을 자비로 용서를 받지만 권력자들은 엄하게 재판을 받을 것이다.”(지혜 6,6)라고 한다. 복음은 “가난한 이, 슬퍼하는 이, 박해받는 이”들이 행복하다고 한다. 증거는 진복팔단에 나타난 예수님의 지혜를 육화하는 길이다. 보상은 하느님의 약속에 내포되어있다. 아브라함처럼 “하느님은 그에게 수많은 자손을 약속하지만 그와 사라는 나이가 많고 자녀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적을 일으키시고 그들에게 아들을 주신 것은 바로 참을성 있고 신실한 노년기 때였습니다.”

  여기서 교종은 저녁 식사와 휴식을 위해 교황청대사관저로 돌아왔다.

  아르빌Erbil, 모술Mosul, 카라코시Qaraqosh: 광신주의에 대비되는 다양성의 아름다움

  3월 7일 일요일 오전 7시 15분에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라크 북동부에 위치한 이라크 쿠르드족 자치지역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인 아르빌을 향해 이륙했다. 아르빌은 이라크 북동부에 위치한 도시로 2005년에 채택된 새 헌법의 도입으로 공식 인정되었다. 2018년 1월 12일과 2020년 2월 18일 이라크 쿠르드족 자치지역 정부 총리인 마스루르 바르자니Masrour Barzani가 교종을 만나 이 지역 방문을 초청하였다. 현재 쿠르드족 자치지역에는 백만 명이 넘는 난민이 있으며 이 지역은 소수 민족의 피난처가 되었다.

  아르빌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며, 최초의 도시 설립은 기원전 2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수메르족과 아시리아족, 바빌로니아인과 사산인, 메데스인과 로마인, 압바시족 및 오스만족이 차례로 정착하였다. 이 도시는 시리아 난민 외에도 약 54만 명의 이라크 난민을 난민수용소에서 맞아들였는데, 이라크 난민은 자생적 IS를 피해서 이곳에 온 것이다.

  공식 인사를 마치고 교종은 헬리콥터를 타고 모술로 향했다. 기원전 7세기에 설립된 모술은 2,500여년동안 아시리아 제국의 일부였으며, 다양한 민족, 언어 및 종교 집단이 구(舊)도심의 성(城) 안에서 공존해온 덕분에 2014년 6월과 2017년 7월 사이에 자칭 IS 군대에 3년간 점령되기 전까지 다원적 정체성을 지닌 이라크의 대표적인 도시였다. 도시는 조직적인 황폐화를 겪었다. 많은 그리스도인을 포함하여 약 50만 명이, 2004년 현재로 180만 명 이상의 인구를 지닌 모술을 떠났다. 파괴적인 분노는 교회뿐만 아니라, 고고학적 발굴과 풍부한 고문서와 서적들을 파괴하였다.

  교종은 4개 교회 (시리아 가톨릭,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시로 정교회, 칼데아 교회) 광장인 호쉬 알-비에아Hosh al-Bieaa로 갔는데, 교회들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먼저는 IS 무장세력에 의해 그리고 다음에 정부군의 연합폭격으로 파괴되었다. 이곳에서 오전 10시에는 수니파 무슬림과 한 수녀의 증언과 함께 전쟁 희생자들을 위한 청원기도가 열렸다. 프란치스코는 기도하기 전에 인사말에서 다음과 같은 증언을 회상하고자 하였다. “이 도시의 진정한 정체성은 서로 다른 기원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의 조화로운 공존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애가 형제살해보다 더 강합니다.” 하고 확신한다. 형제애는 프란치스코의 연설에서 하느님과 더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인류의 영원한 열망을 증언하는 두 가지 상징인 알 하드바Al Hadba 첨탑과 함께 알-누리Al-Nouri 모스크와 시계의 성모 교회에 대한 언급을 통해 가시화되었다. 떠나기 전 프란치스코는 광장 주변의 폐허를 돌아보고 시로-가톨릭 교회 폐허 앞에 멈춰서 기도하였다.

  모술에서 교종은 헬리콥터를 타고 주요 그리스도교 도시인 카라코시로 이동했다. 카라코시는 인구 5만 여명 가운데에서 90%가 그리스도인인데, 2014년 여름 자칭 IS 민병대의 침공을 받았다. 수만 명의 그리스도인이 집을 버리고 대부분 이라크 쿠르드족 지역으로 피난처를 찾아 떠났다. 국제기구들은 이라크에서 가장 큰 그리스도교 교회인 무염시태 대성당 등의 파괴된 시설을 재건축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교종은 12시경에 도착하였다. 파괴되고 불에 탄 교회의 이미지를 본 다음에 현재의 복구된 교회를 비교해 보면 놀랄 만하다. 그 분위기는 큰 잔치와 같았고 마치 부활을 경축하는 것 같았다.

  여기서 교종은 연설을 하고 삼종기도를 바쳤다. 삼종기도 역시 다양성을 경축하는 절호의 기회였다. “아름다움은 단색이 아니라, 다양성과 차이를 통해 빛나는데” 이 다양성과 차이를 “폭력의 파괴력”은 없애려고 하는 것이다. 광신(狂信)은 단색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위대한 영적 유산”을 남겨주신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의 신앙 모범을 눈앞에 두고 재건에 힘쓸 때다. 프란치스코는 여기서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다시 풀어놓는다. 노인과 젊은이가 만날 때 “노인은 젊은이를 위한 미래의 꿈을 꾸고, 젊은이는 이 꿈과 예언을 이어받아 실행에 옮길 수 있습니다.” 유대를 계속 유지하여 뿌리를 사랑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모임이 끝나고 교종은 현재 이라크에서 유일한 아르빌 소재 성 베드로 신학교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는 프란소 하리리Franso Hariri 스타디움으로 갔다. 거기서 그는 4시 30분에 특별한 보안장치가 없는 무개차를 타고 가서 미사를 거행하였다. 강론에서 그는 예수님의 지혜에 대해 말하였는데, 그분의 지혜는 “가족과 신앙과 공동체에 대해서 분리하고 반대하고 배제하는 편협하고 분파적인 관념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서 우리가 모두에게 열리고 우리 형제자매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궁박한 처지에 빠진 이들을 염려하는 교회와 사회를 건설할 수 있게 합니다. 이와 동시에 그는 우리를 강인하게 하여 끝없는 보복의 소용돌이에 빠뜨리는 복수하고자 하는 유혹에 저항하게 합니다.” 그러면서 프란치스코는 “오늘 나는 이라크 교회가 살아 있고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며 거룩하고 충실한 백성 안에서 일하시는 것을 직접 볼 수가 있습니다.” 라고 결론을 내렸다.

  마지막으로 교종은 방문에 따른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슬픔과 상실의 목소리와 함께 희망과 위로의 목소리도 들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미사 후 프란치스코는 아르빌 공항으로 가서 바그다드로 돌아갔다.

  3월 8일 월요일 아침 미사를 비공개로 거행한 후 교종은 교황청 대사관저를 떠나 바그다드 공항으로 향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이라크 대통령 내외의 영접을 받고 몇 분 동안 사적인 만남을 가졌다. 오전 9시 40분에 이륙하여 로마의 참피노 공항에는 오후 12시 30분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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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0일 일반 알현에서 교종은 “이 순례의 속죄적 의미를 강하게 느꼈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는 “가톨릭 교회의 이름으로 수년간 짊어진 십자가”를 짊어짐으로써 순교 당한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라크를 여행하면서 그는 노아의 방주의 기원지인 메소포타미아로 물리적으로 돌아갔다. 방주는 증오와 분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수고, “순교자”와 “배교자”만 보이는 사이비 묵시론적 사고의 온상을 모두 없애고 우리 모두가 형제가 되는 그곳에 다시 나타났다. 프란치스코는 이라크로부터 새로운 휴머니즘, 그가 「모든 형제들」(8항)에서 묘사한 바 있는 휴머니즘을 소환하였다. “한 인류로서, 같은 인간 육신을 지닌 길동무로서, 우리 모두를 환대해주는 같은 땅의 자녀로서, 저마다 신앙이나 신념의 부요함을 지닌 개개인으로서, 저마다 목소리를 지닌 개개인으로서, 모든 이가 형제자매로서 우리 함께 꿈꿉시다!”

  형제애는 힘이나 경제의 균형에 관심을 갖는 조약이 아니라, 가장 진실하고 진정한 인간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것이 우리를 홍수에서 구해줄 수 있는 방주이다.


DOI: La Civiltà Cattolica, En. Ed. Vol. 5, no. 4 art. 1, 0421: 10.32009 /22072446.0421.1
1) Cf. F.Filoni,“Dove è nata la fede di Abramo”, in Oss.Rom.,December 10, 2020.
2) Cf. G. Sale, Isis, Islam e cristiani d’Oriente, Milan, Jaca Book, 2016, 69-128.
3) See Id., “I Trattati che fecero il Medio Oriente”, in Civ. Catt. 2020 II 141-151.
4) 이 민병대 중 한 명이 2월 15일 아르빌에 있는 미국 주도의 국제 연합군 기지를 공격하여 1명이 사망하고 최소 9명이 부상당했는데, 이 공격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2월 20일 수도에서 북쪽으로 80km 떨어진 수니파 삼각 지대에 있는 발라드의 대형 공군기지에 4발의 로켓포가 떨어졌다. 2월 25일, 미국은 이란이 지원하는 민병대의 기반 시설을 표적으로 하여 이라크 국경에 있는 동부 지역의 시리아를 폭격했다. 17명의 친이란 전투요원이 미국의 공격으로 사망했다. 미 국방성은 이 폭격이 지난 2월 15일 이라크에서 발생한 미사일 공격에 대한 대응 공격이라고 설명했다.
5) 2013년 1월 30일, 칼데아 총대주교 사코는 당선되자마자 즉시 경고음을 울렸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종파들에 감염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런 말을 듣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기보다는 아르메니아인이다, 그리스도인이기보다는 앗시리아인이다, 그리스도인이기보다는 칼데아인이다. … 이런 식으로 그리스도교가 소멸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살아가는 병든 형태의 삶에 대해 경계해야 합니다.”
6) F. Filoni, “Dove è nata la fede di Abramo”, op. cit. 이 점에서 알 카디미al-Kadhimi로 알려진 무스타파Mustafa Abdellatif Mshatat 현 총리는 이탈을 막기 위해 구체적인 지지를 보였으며, 심지어 크리스마스를 전국 공휴일로 선언하는 등 매우 상징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7) 치빌타카톨리카는 이 주제를 깊이 연구한 글들을 발표했고 나중에 ‘형제애’로 발행하였다. La Civiltà Cattolica, 2020, «Accènti», pubblicato con sponsorizzazione dell’Higher CommiteeforHumanFraternity: https://www.laciviltacattolica.it/prodotto/fratellanza ]
8) 이라크 가톨릭주교회의는 칼데아교회(정교회의 5개 대교구와 4개의 부교구), 시리아 가톨릭교회(2개의 대교구와 1개 교구, 1개의 정교회), 아르메니아 가톨릭교회(아르메니아 교회의 바그다드 대교구), 멜키타교회(이라크 정교회 소속) 및 라틴교회(서방교회의 바그다드 대교구) 주교들을 소집하였다. 회의 주재는 칼데아 교회의 바빌로니아 교구장인 라파엘 사코가 하였다. 라틴교회의 바그다드 주교는 아랍 지역 서방교회 주교회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이라크 전체로는 주교 19명, 사제 153명(교구사제와 수도회 사제 포함), 종신부제 20명, 수녀 365명, 신학생 32명, 교리교사 632명이 있다. Cf. F. Filoni, La Iglesia en la tierra de Abraham. Dalla diocesi di Babilonia dei latini alla nunziatura apostolica in Iraq, Milán, Rizzoli, 2006; Id., La Chiesa in Iraq. 바티칸시의 처음부터 현재까지 역사와 발전 및 사명. Libr. Ed. Vaticana, 2015.
9) Cf. R. Cristiano, Tra lo scià e Khomeini. ‘Ali Shari’ati: un’utopia soppressa, Rome, Jouvence, 2006. 리카르도Riccardo Cristiano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이라크 사도 방문의 의미와 영향을 잘 해석할 사람이다. 그의 다양한 출판물에서 교종의 여행 전 과정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
10) 2005년 요한바오로 2세가 사망했을 때 아야톨라 알-시스타니가 바티칸 국무장관 안젤로 소다노Angelo Sodano 추기경과 당시 이라크의 교황대사였던 필로니Fernando Filoni 대주교에게 전보를 보내어 교종의 죽음에 대해 모든 가톨릭 신자들에게 애도를 표하면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종교간 대화를 장려하신 분입니다. 그는 모든 종교를 매우 존중하는 교종이었습니다.” 라고 상기시켰다.
11) 여행을 앞둔 인터뷰에서 나자프에 있는 알코이 연구소의 사무총장이자 알-시스타니의 교사 가족인 사예드Sayyed Jawad Mohammed Taqi al-Khoei는 “우리는 교종을 단지 가톨릭교회의 지도자만이 아니라, 평화와 절제의 상징으로 여깁니다. 교종 프란치스코의 이라크 방문은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어디서나 평화를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12) Cf. A. Spadaro, “Defy the Apocalypse”, in laciviltacattolica.com/ defy-the-apocalypse; Id. “Beyond the Apocalypse. Starting again from Baghdad”, laciviltacattolica.com/beyond-the-apocalypse-starting-again-from-baghdad/
13) 프란치스코는 2017년에 시아파와 수니파, 그리스도인과 야지디스, 사빈인과 만데스인을 위한 이라크 총감독을 맞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지상에서 공통의 조상 아브라함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첫 번째 떠남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함께 왔습니다. 우리는 형제들이고, 형제이기에 손가락처럼 모두 다르고 똑같습니다.: 다섯 손가락은 하나의 손가락이지만 모두 다릅니다.”
14) 어떤 사람들은 유대인의 부재에 놀랐다. 그 이유는 종교간 회의의 참여가 이라크 시민들로 제한되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안타깝게도 수년 동안 이라크에서 유대인 공동체의 존재는 미미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종은 우르 연설에서 “오늘날 우리들, 곧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 무슬림은 다른 종교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우리 아버지 아브라함을 공경하며 그분이 한 것처럼 합니다. 우리는 하늘을 쳐다보고 땅 위를 걷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