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사명과 올바른 경제 관리

Missione della Chiesa e corretta amministrazione economica

© La Civiltà Cattolica, Q. 4091, 5 Dic 2020 IV 487-497
페데리코 롬바르디 Federico Lombardi 신부(예수회)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전주교구) 옮김

  최근 교황이 내린 몇 가지 결정은 언론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바티칸 기관들이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자원과 교회의 목적을 위해 그들의 올바른 관리에 대한 질문과 논쟁을 다시 한번 제기하였다.1) 본 기사는 이러한 최근의 사건들을 더욱 넓은 맥락에 놓고서, 교황의 방향과 그가 내린 결정에 대한 문제와 동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라테란 조약과 새 바티칸 시국

  회고하는 종합적인 시선은 전혀 쓸모가 없다. 옛 교황 국가와 포르타 피아(Porta Pia)의 위반의 결과로 돌아가지 않고, 경제 조직 분야에서, 라테란 조약과 바티칸 시국의 헌법과 함께 비오 11세 교황의 재위 기간은 여전히 근본적인 통로로 남아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좋다. 1926년에 비오 11세 교황은 이미 새로운 “사도좌재산관리처”에 기존의 여러 회계관리국을 단호하게 통합하였다. 그 관리처는 1870년 이후에 교황청에 남아 있는 부동산을 관리하였고, 여러 부서의 직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였으며, 공동 경비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교황은 라테란 조약과 그에 따른 이탈리아와 교황청 간의 재무협약으로 이탈리아가 지불한 엄청난 금액을 보상으로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금액 가운데 대략 1/3은 새로운 작은 바티칸 시국의 건립과 조직을 위한 거대한 건물에 사용되었고, 1/3은 해외 주재 교황청 대사관과 교황청연락사무소의 본부를 재건하기 위해, 그 나머지는 교황의 통제 아래에 재산을 형성하기 위해 사용되었다.2) 비오 11세 교황은 새로운 “사도좌특별관리처”, 더 간결하게 이른바 “특별관리처”의 대표로 전적으로 신뢰하는 전문가이며 현명한 사람인 베르나르디노 노가라(Bernardino Nogara)를 임명하여 자금 관리를 맡겼다.

  노가라는 이탈리아 상황에 너무 의존하지 않기 위해, 여러 나라(스위스, 파리, 런던 등)의 채권, 주식, 부동산에 다양한 투자 정책을 펼쳤다. 비록 여느 때처럼, 그렇게 문제가 많은 사항에 다양한 판단이 있었지만, 노가라의 경제 행위는 일반적으로 신중하고 현명하다고 여겨졌다. 교황은 특별관리처에 다른 기부금들과 베드로 성금에서 생기는 중요한 자원, 곧 개별 가톨릭 신자들과 전 세계의 가톨릭 기관들이 교황 국가가 끝난 후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교황에게 보내는 자발적인 경제적 기부금도 맡겼다. 새로운 바티칸 시국의 상황과 (건축, 경제, 문화적) 많은 활동의 집중적이고 급속한 발전은 동시에 “종교 사업(또는 바티칸 은행?) 관리처”의 자연스러운 재편성으로 이어졌다. 이 관리처는 본디 종교 사업(또는 바티칸 은행?)에 사용될 기부금을 보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곳은 어떤 의미에서 많은 종교 기관의 예금과 재무 거래를 위한 “은행”이 되었고, 해외 관계의 분야에서도 필요한 서비스를 수행하는 데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발전과 위기

  교황좌에 오른 비오 12세 교황은 주요 관리처들을 통제하기 위한 다양한 추기경 위원회를 설립했다(바티칸시국 행정부, 재산관리처, 특별관리처, 종교사업(또는 바티칸 은행) 등). 또한 베드로 성금과 다른 기부금을 직접 관리하기 위해 (당시 “차관”인 몬티니 몬시뇰의 직속에) 국무원의 회계관리국을 설립하여, 2차 세계대전 동안 그가 수행한 경제 원조의 대규모 분배를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 분배를 위해 그는 종교 사업(또는 바티칸 은행)의 운영 구조와 관계를 이용했지만, 법적, 외교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그들에게 새로운 법적 지위(status)를 주었다. 그리하여 1942년에 “고유 법인과 교황청 사무처들과 따로 독립된 책임을 맡고” “종교 사업(또는 바티칸 은행?)에 사용될 자본의 보호와 관리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3) 하는 바티칸 은행(IOR)이 설립되었다. 전쟁 후에 그리고 그리스도교 민주당의 주도로 이탈리아의 경제를 재건하는 시대에, 특별관리처와 바티칸 은행은 행운을 달리하며 사업, 은행, 부동산 분야에서 관계와 투자의 정책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어려움(이른바 “배당세”라는 새로운 이탈리아 세금처럼)도 많았고, 나아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막대한 지출과 점점 더 많은 바티칸 시국과 교황청의 인사에 대한 지출도 증가하였다. 바오로 6세 교황 때, 교황청의 기구에 관해, 공의회 후에 출판된 새 교황령 「보편 교회의 통치」(1967년)는 (하나의 회계관리국을 갖추고 있는) 국무원의 중심 역할을 인정한다; 새 “사도좌재산관리처”(APSA)에 “재산”과 “특별관리처”를 통합한다; 새로운 부서, 곧 “재무심의처”를 설립하는데, 교황청과 관련된 다양한 부서와 기관의 예산을 통제하는 임무와 동시에 그들의 경제적 조정을 담당하며 동시에 기존의 수많은 관리처 가운데에서 적어도 주요 관리처들의 결과를 통합하면서 교황청의 “통합 예산”을 수립하는 임무를 맡는다. 그들은 당연히 운영의 어려움과 심지어 저항을 만나는 어려운 과정을 거쳤다. 한편, 바티칸 은행(IOR)은 그의 특별 정관으로, 새 심의처와는 독립된 실재로 남아있다. 바오로 6세 교황의 재위 기간이 끝날 무렵, 바티칸 재정은 심각하게 어려운 상태에 처한다. 이 상태는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고 무엇보다도 예산을 보충하기 위해 베드로 성금을 광범위하게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교황청에 물적 지원을 할 때 보편 교회의 공동 책임을 다하기 위해 두 가지 중요한 발전을 꾀한다. 매년 교회의 중앙 기관의 예산을 제출하는 “교황청 조직과 재정 문제를 연구하는 추기경 위원회”(여러 대륙의 추기경들로 구성된 이른바 “15인 위원회”)를 구성하고, 교회법 제1271조에 표현된 의무, 곧 모든 주교가 사도좌의 물질적 요구에 기여해야 할 의무를 상기시킨다.4) 동시에 투명성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모든 주교는 중요한 정보를 받고, 요약 자료도 공개된다. 각 주교회의와 개별 주교의 반응은 긍정적으로 전개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언급하였듯이, 다양한 경제 관리의 “내부” 합리화 과정 외에도, 은행계와 기업계의 수많은 인물과 기관과 관련된 외부 관계와 연결망도 크게 발전하였다. 세상은 그 함정을 잘 드러낸다. “바티칸”이 명성이 높고 매력적이며 덜 통제받는 파트너처럼 보이고 동시에 거기에는 가능한 함정에 취약한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여러 해가 흐르면서 바티칸의 재정뿐만 아니라 아마도 좋은 평판에도 매우 심각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상황이 생길 것이다. 특히 우리는 “(미켈레) 신도나Sindona 사건”(1974년), 나중에 “(로베르토) 칼비Calvi 사건”(1981년), 그리고 그 후 다시 한번 뇌물수수와 관련된 “(라울) 가르디니–에니몬트Gardini–Enimont 사건”(1990–91)을 기억할 수 있다. 만일 떠들썩한 몇몇 사건들에서 약점이 바티칸 은행이었다면, 그 문제가 더 일반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좀 더 복잡한 세상과 그 뒤를 따라가려는 노력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세상은 변하였다. 세계화와 세계 금융과 국제 테러(쌍둥이 빌딩Torri Gemelle에 대한 공격은 현대사를 나타낸다.)의 발전이라는 맥락에서, 경제와 재무 분야의 범죄 활동, 이 범죄와 다른 범죄로부터 나오는 자금 세탁 그리고 테러 자금에 대한 우려는 매우 커지고 있고, 국가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규범과 협약을 개발하도록 이끌었다. 바티칸도 반드시 이 과정에 관여해 왔다. 유로 지역에 들어가기를 원하였고 유럽연합과 새로운 협정에 서명(2009년 12월 18일)하였을 때, 감시와 통제 시스템의 참된 변화를 요구하는 일련의 약속을 지켜야 했다. 이는 바티칸 시국의 새로운 법들, 곧 새로운 감시 기구인 재무정보국(AIF)의 설립, 교황청 기관의 활동에서 그리고 인사가 새로운 법들을 거슬러 저지른 우발적인 범죄를 조사하고 기소하기 위한 재치권을 바티칸 시국의 법원에 귀속, 테러의 순환과 자금 조달에 대한 예방과 대응 조치의 시행과 효과를 정기적으로 평가하는 국제 통화기금 위원회의 검사 환영 등을 가져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2010년 12월 30일 자의 “자의 교서”Motu proprio를 통해 근본적인 결정을 내린다. 그 결정을 현실로 옮기는 것은 이러한 임무(예를 들어, 법원과 국가헌병대)에 맞지 않는 기존의 기관에도 매우 힘든 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재위 기간은 이전의 발전과 연속성에 놓여 있지만, 그 내부에 경제 분야의 부서와 조직의 개혁을 포함하는 교황청의 전반적인 개혁을 목표로 하면서 새로운 자극도 준다. 길은 험난하게 보이고 때때로 새롭게 하거나 “깨끗하게 하려는” 의도는 대담하거나 고통스러운 결정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용한 점진적 방법에 따르면, 오늘날 획득한 결과를 달성할 수 있다. “15인 추기경 위원회”는 새로운 “재무평의회”로 대체되며 전반적인 경제 활동을 감독하고 지시하는 임무를 맡는다; 1명의 추기경 의장, 7명의 고위급 성직자 회원과 7명의 다른 회원, 곧 분야의 평신도 전문가(자문 회원이 아니라 실제 회원임을 주목하라)로 구성된다. 이 평의회의 최근 개정에서 이 회원들 가운데 6명이 여성이다.

  새 교황청 재무원(높은 수준의 책임을 확인하기 위해 “사무국Segretariato”이 아니라 “사무처Segreteria”임을 주목하라)이 설립되는데, 재무심의처가 수행한 임무, 곧 여러 기관의 예산을 통제하고, 통합 예산을 편성하며 재무평의회의 지도 아래에 전반적인 “경제 정책”의 실현을 위해 더 큰 권한을 가지고 개입하는 임무를 흡수한다. 또한 앵글로색슨 전통에서 영감을 받아 예산 통제와 개정 기능을 갖춘 새 총감사원을 설립한다. 후자의 두 가지 실재의 참신함은, 그들 권한에 대한 정의가 “사도좌재산관리처”(APSA)의 권한 및 국무원의 권한과 비교하여 긴장과 해결의 시기를 거치게 한다. 여기에 호주에서 완전히 다른 성격의 고발과 조지 펠George Pell 추기경에 대한 재판의 특수 상황이 더해진다. 그는 교황청 재무원의 수장으로서 그의 활동을 중지해야 한다. 이러한 개혁들은 더 건설적인 분위기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기 전에 어느 정도 교착상태에 빠질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은행(IOR)에 개입하여 이전 교황 재위 아래에서 이미 시작된 기존 계정의 완전한 개정을 완료하고, 교회 기관들과 교황청과 바티칸 시국의 인사들에게 봉사하기 위한 목적으로 연구소의 활동을 더 엄격하게 제한하는 새로운 정관을 제정하게 하였고, 특히 테러의 순환과 자금 조달의 예방과 대비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며 국제와 국내 규정을 완전히 준수하게 한다. 이 중요한 업무는 2019년 8월 8일 자의 바티칸 은행(IOR)의 새 정관과 일치하였다. 그러나 불법적이고 범죄적인 활동을 감시하는 모든 바티칸의 규범과 제도 또한 개정되고 강화되었다. 특히 2019년에 재무정보국(AIF)은 새 국장을 맞이하였고 인사의 수를 늘렸으며, 지금 정관의 추가 개정이 발표되었다.7)

  교황 자신이 지적하였듯이, 최근 몇 년 동안 구축된 시스템은 효과적인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언론에 떠도는 반향에도 불구하고 런던 투자 심의와 이와 관련된 사건들에 대한 최근의 조사는 외부에서 온 통고가 아니라 바티칸 실재의 내부(구체적으로 바티칸 은행(IOR)과 총감사원장의 보고)에서 나온 보고로 시작되었고 바티칸 시국 법원의 법무부 장관(“검찰국”)의 지시에 따라 행하는 조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8)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경제

  경제 부서들을 재편성하고 조정하는 정면에서 새 교황청 재무원 장관으로 후안 안토니오 게레로Juan Antonio Guerrero 신부가 임명되면서 그 여정이 재개되었다. 바티칸 언론과 가진 두 차례의 인터뷰9)에서 그는 “사도좌재산관리처”(APSA), 국무원, 인류복음화성, 바티칸 시국 정부와 협력하면서 재무평의회와 합의한 노선을 설명했다. 게레로 신부는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우리는 기업이 아닙니다. 우리는 회사가 아닙니다. 우리의 목표는 이익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부서, 모든 기관은 봉사를 수행합니다. 모든 봉사는 비용이 듭니다. 우리의 업무는 최대한 단순하고 명료해야 합니다. 우리의 업무는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예산이 되어야 한다. 곧, 교황청의 사명과 숫자를 연관시키는 예산입니다. 전제로 보이는 이것이 문제의 본질입니다.” 대화와 평화를 도모하는 외교, 교황이 행하고 말하는 것의 홍보, 가난하고 어려운 교회들에 대한 지원 등은 비용이 들고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활동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용 가능한 재산의 좋은 관리와 기부금을 통해 지원되어야 한다. 이제, 비용을 억제하고 합리화하기 위해서 그리고 사명의 목표를 희생하지 않고 가장 정확한 자원 관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재무 투자를 중앙 집중화하고, 인사의 관리를 개선하고, 계약의 관리를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후자, 곧 계약의 관리에 대해, 올해 5월 19일에는 “교황청과 바티칸 시국의 공공계약의 투명성, 통제 및 경쟁에 관한 규범”의 새로운 법안을 공표하였다. 이는 합리화 외에도, 경제적, 도덕적 질서에 대한 부정적인 결과들과 함께 계약의 분야에서 고객주의와 편애의 위험을 없애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투자의 중앙 집중화와 관련하여, 국무원의 회계관리국의 불행은 마침내 교황이 지체하지 않고 이것으로부터 모든 금융자금과 이용 가능한 (목적을 변경하지 않고 어쨌든 존중되어야 하는) 부동산자산의 운영과 관리를 “사도좌재산관리처”(APSA)로 이전하게 하는 명확한 결정을 이끌었다. 또한, 교황청 재무원은 국무원과 이전에 관련된 기관들을 포함하여 교황청의 모든 기관이나 부속 기관들에 관한 관리와 재정 문제에서 통제와 감독 기능을 맡게 될 것이다.

  그 다음, 비밀에 부쳐진 “비밀” 경제 문제들에 대해서, 국무원은 2020년 10월 5일 자로 교황이 이러한 목적으로 임명한 위원회의 지도를 받을 것이다. 이로써 경제뿐만 아니라 교황청의 전반적인 개혁의 중요한 측면을 묘사한다. 교황이 말하듯이, 국무원의 기능은 “의심할 여지없이 임무를 수행하는 교황의 활동을 더 가까이서 직접 지원하는 부서”로 남으며, “교황청과 그 부속 부서들의 생활에 필수적인 기준점을 나타낸다.”10) 그 기능은 교황에게 봉사하고 전 세계에서 “외교”의 중심을 이루는 그의 본질적인 기능에 최대한 유리하게, 교황청의 전반적인 통제와 감독 시스템과는 독립된 경제력의 중심이 된다는 중압감과 위험에서 자유롭게 된다.

  몇 가지 성찰

  1933년 11월 30일, 러시아의 경제 원조에 관한 질문에 대해 비오 11세 교황과 대화한 후, 그 당시 젊은 도메니코 타르디니Domenico Tardini 몬시뇰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하지만 교황청의 돈을 특정한 증권, 외화 등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였을까? 그리고 오늘날 여러 나라에서 부동산을 사는 것은 현명한가? 투기 분야에 조금 지나치게 들어가지 않았을까? 그리고 더 조용하고, 더 안전하고, 더 안정적인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이것이 바로 매우 중대하고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물론, 만일 잘못되었다면, 교황청은 저지른 실수에 오랫동안 시달릴 것이다. 그리고 교황청과 더불어 전 세계에 있는 가톨릭 신자들의 많은 활동이 영향을 받을 것이다. […] 바로 이것이, 나의 판단으로는, 현재 교황의 머리를 어지럽히고, 귀찮게 하고 괴롭히는 생각이다.”11) 게레로 신부가 올바르게 지적했듯이, 결국 많이 이야기하는 “바티칸의 돈”은 매우 많지 않다. 이는 “미국의 평균 대학”이나 일부 대형 교구의 예산보다 적고, 교육계, 상업계, 은행계(교황청의 비용은 연간 약 3억 2천만 달러에 달한다.)의 주요 기관들에 비해 매우 적은 규모의 예산을 가진 관리소들이다. 이는 그들의 기원, 곧 현재나 과거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일반적으로 신자들의 관대함을 위해서든, 그들의 독특한 목적, 곧 교회의 사명에 대한 봉사를 위해서든 현명하고 정확하게 관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돈은,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항상 선을 위해 사용해야 하지만, 종종 탐욕과 유혹의 대상이다. 이것이 미래에도 계속해서 불법, 사기, 도둑질 등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일일 것이다. 이러한 것들에 대처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미덕, 정직, 마음의 자유와 가난, 현명함이 확실히 필요하지만, 능력과 경험도 필요하고, 엄격한 통제를 허용하고, 불법 행위의 위험을 줄이고, 공정성을 보장하며 실수와 범죄를 기소하는 규범과 절차도 필요하다. 작은 국가로서든, 교황청(곧 세상 교회의 중심과 정부)으로서든 “바티칸”은 세계화된 현대 세계의 점점 더 복잡한 – 우리는 더 위험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 현실의 맥락에서 경제와 재무 분야에서 활동하는 어려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는 일반 조직과 관리 기술의 혁신뿐만 아니라 – 우리가 본 것처럼 – 전반적인 통제 시스템의 개발도 요구한다. 비록 이것이 때때로 “작은” 바티칸의 상황에 너무 많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상황이 위대한 영적 사명을 위한 경제적, 재무적 자원을 사용할 때 단순함과 현명함, 투명성과 정직함을 최대한으로 증언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야 한다.


1) 우리는 지난 몇 년 동안 국무원의 회계관리국에서 행한 관리와 투자 조사에 대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는 조반니 안젤로 베추Giovanni Angelo Becciu 추기경이 시성성 장관직 사임을 수락하였고 추기경과 관련된 권리와 특권들을 포기하였다는 소식(2020년 9월 24일 자)과 지금까지 그곳에서 운용된 자금의 운용과 관리를 “사도좌재산관리처”(APSA)에 이전한다는 결정(2020년 8월 25일 자의 서신, 이는 2020년 11월 5일 자로 교황청 공보실에서 반복해서 공표하였다)을 언급하고 있다.
2) 재무협약에 명시된 총액은 10억 7천만 리라였으며, 일부는 현금이고 일부는 무기명 증권이었다. B. Lai, Finanze vaticane. Da Pio XI a Benedetto XVI, Soveria Mannelli (Cz), Rubbettino, 2012, 14s 참조.
3) 1948년 교황청 연감, 921.
4) “주교들은 일치와 애덕의 유대로써 자기 교구의 능력대로 사도좌가 보편 교회에 대한 봉사를 올바로 할 수 있도록 시대의 조건에 따라 필요로 하는 수단을 조달하는 데 기여하여야 한다”(교회법 제1271조).
5) 바티칸 시국의 임무는 “모든 면(교황청 – 부속 기관 – 수도회 – 가톨릭 기관 – 성좌 주재 외교 사절단 – 교황청 직원)에서 가톨릭 교회에 봉사하고, 이들이 맡긴 재산을 보존하고 관리하며 그들에게 세계적인 수준의 헌신적인 현금 지불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6) 이탈리아와의 “재정 평화”는 2015년 재정 협약에 서명함으로써 승인되었다. 우리는 바티칸 은행(IOR)과 이탈리아와의 관계는 이탈리아 당국이 명령한 바티칸 은행(IOR)의 2,300만 유로를 압류한 이후 2010년 이후 이탈리아와의 관계는 특히 긴장이 고조되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당시 바티칸 은행(IOR)의 세 경영진– 고티 테데스키Gotti Tedeschi, 치프리아니Cipriani와 툴리Tulli는 모두 이탈리아에서 압류에 관련된 행위로 재판을 받았지만 –몇 년 후에– 완전히 무죄로 선고받았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은 옳다고 본다.
7) 재무정보국(AIF) 장관 카르멜로 바르바갈로Carmelo Barbagallo와 카를로 마로니Carlo Marroni의 인터뷰: “Scoperchiata la pentola. Ora la fase 2 della trasparenza finanziaria”, Il Sole 24 Ore, 2020년 7월 3일 자 참조.
8) 런던 투자 사건에 관해 유포되고 있는 많은 질문에 대한 정확하고 명확한 답변은 2020년 11월 1일 사도좌재산관리처(APSA) 장관 눈치오 갈란티노Nunzio Galantino 몬시뇰이 Avvenire와 가진 인터뷰에서 나왔다. 오늘날 이 분야에서 조사는 매우 복잡하고, 법원의 검찰국과 국가헌병대처럼 “작은” 바티칸 기관들은 국제적인 협력에 폭넓게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재무정보국(AIF)도 역시 다른 나라의 유사한 기관과 접촉하고 협력해야 한다.
9) A. Tornielli, “Guerrero: quello della Santa Sede è un bilancio di missione”, 바티칸 뉴스(Vatican News), 2020년 5월 13일 자; Id., “Guerrero: Ecco il bilancio della Curia, a servizio del Papa e della missione”, ivi, 2020년 10월 1일 자 참조.
10) 프란치스코 교황, 8월 25일 자의 서신, 2020년 11월 5일 자의 교황청 공보실에서 공표.
11) C.F. Casula, Domenico Tardini (1888–1961), Roma, Studium, 1988, 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