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망각, 필수 불가결한 조합

MEMORIA E OBLIO. un binomio indispensabile1)

© La Civiltà Cattolica, Q. 4088, 17 Ott 2020 IV, 120-131
죠반니 쿠치 Giovanni Cucci 신부 (예수회)
임숙희 레지나(엔아르케성경삶연구소) 옮김

  모든 것을 기억한다는 것, 바람직한 이상인가?

  우리가 인식하고 살아가는 것을 기억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생에서 근본적인 측면이다.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 부분을 특징짓는 정신질환과 기억력 약화가 사람을 얼마나 무력하게 만드는지 잘 알고 있다. 기억의 어려움은 일상에서 많이 직면하는 문제들 중 하나다. 학위 취득을 위해 바친 세월, 직업, 취미 독서, 전화번호, 사람들과 사건들이 쉽게 희미해지고 잊혀진다. 그리고 오늘날 기억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점점 더 커져간다.

  조슈아 포어(Joshua Foer)는 『전부 기억하는 법』2)에서 ‘정독’(lettura intensiva, 한 권을 여러 번 읽기)에서 ‘다독’(lettura estensiva, 여러 권을 한 번만 읽기)로 넘어가는 것이 어떻게 기억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주목한다. 저자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이 문제에 관하여 솔직하게 실망을 드러낸다. “내가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1년 후에 그 책의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 만약에 그것이 에세이라면, 논문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논문에 대해서는 […] 줄거리가 있는 책이라면 이야기의 큰 흐름, 주요 인물들에 대한 얼마간의 정보, 종합적인 판단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네 가지 정보도 얼마 안 가 사라져버릴 수 있다. 나의 깨어있는 시간을 빨아들인 책들을 볼 때마다 나는 정말 낙담한다. 『백년 동안의 고독』3)에 대해서는 단지 저자의 마법적인 사실주의와 내가 이것을 얼마나 좋아했는지만 기억할 뿐이다. 이게 전부다. 하물며 내가 언제 이 책을 읽었는지조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폭풍의 언덕 Wuthering Heights4)에 대해서는 두 가지만 기억에 남아있다. 고등학교 영어 수업 시간에 이 책을 읽었으며 주요 주인공 한 명의 이름이 히드클리프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좋아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 그런데 우리는 읽고 읽고 또 읽으며 잊고 잊고 또 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그렇게 수고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5)

  그러나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은 그 실현 가능성을 넘어 정말로 바람직한 이상일까?

  보르헤스의 이야기

  이 문제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유명한 단편 「기억의 천재 푸네스」 에서 아주 적절한 문학적 표현으로 승화되었다.6) 주인공 푸네스는 사고로 망각 능력을 상실한 후에 모든 세부사항이 마음에 새겨진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그에게 유리하기보다 오히려 저주가 된다. 푸네스는 일종의 생생한 기록자의 유형이 된다. 그는 사사건건 모든 일에 주의를 기울이느라 더 이상 잠들 수 없게 된다. 보르헤스는 “잠을 잔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잔다는 것은 이성이 작동하는 단계가 아니다. 푸네스에게는 동물에 속하는 종으로서의 ‘개’를 이해하는 것이 힘들 뿐만 아니라 크기와 형태가 다른 다양한 개들을 어떻게 그렇게 광범위한 조합에 함께 묶어서 설명할 수 있는 지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프로필에서 보이는 세 살과 열네 살의 개와 바로 앞에서 보이는 세 살과 네 살의 개체가 같은 “개”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이 그를 짜증나게 했다. 그는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와 라틴어를 쉽게 습득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사고능력은 별로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부하가 걸린 푸네스의 세계에는 단지 즉각적인 세부사항만 존재할 뿐이었다”.7)

  푸네스는 기억의 흐름에 사로잡힌 포로로 남아있었고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도 없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이 오히려 사건의 줄거리에 필수적인 재작업과 평가를 막았기 때문이다. 만약 푸네스가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줄거리 전체를 펼치느라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는 마치 녹화된 테이프처럼 모든 세부사항을 열거했으며 현재의 순간을 제대로 살 수도 없었다. 그는 기억을 회상하느라 자기 전부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작가 보르헤스의 천재성은 인간의 근본적인 면을 이해하는 능력에서 드러난다. 실제로 보르헤스의 이야기에서는 러시아 심리학자 알렉산더 루리아(Aleksandr Romanovič Lurija)8)가 1968년 영어로 출판한 책, 『아무 것도 잊어버리지 않는 한 남자의 정신 여정 Viaggio nella mente di un uomo che non dimenticava nulla9)에 등장하는 세레세브스키(Solomon Shereševskij, 1887-1958)의 서사와 딱 맞는 내용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보르헤스는 이 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가 집필한 «푸네스»는 1942년에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루리아는 조심스럽게 세레세브스키를 방문하고 보르헤스가 쓴 것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세레세브스키는 매우 긴 단어, 숫자, 자신이 모르는 언어로 집필된 책(예: 단테의 『신곡』)을 쉽게 기억했다. 이런 식으로 그는 15년이 지난 후에도 매우 정확하게 텍스트를 반복하거나 어려움없이 암송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해 그는 엄청난 대가를 치루어야했다. 세레세브스키는 논리가 부족했고 액체 목록과 동물 목록을 구별하거나 속담의 의미를 설명 할 수도 없었다.

  엄청나게 축적된 세부 사항은 그에게 평화를 주지 못했다. 차별화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기억된 내용은 푸네스의 경우처럼 “폐기물”이 되었고 가장 평범한 행동조차 불가능하게 했다. “언젠가 나는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다. 판매원에게 다가가서 그녀에게 어떤 유형의 아이스크림을 갖고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과일 아이스크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마치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듯한 거친 목소리로 나에게 대답하면서 내가 아이스크림을 사는 것을 막았다.”10)

  세레세브스키는 자신이 읽은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즐거움조차 얻지 못했다. 그가 읽은 말들은 각기 다른 상황으로 그를 보냈다. 그는 내러티브 흐름을 따라가지도 못했고 목소리와 얼굴도 알아볼 수 없었다. 엘리아스 카네티(Elias Canetti)의 격언으로 요약될 수 있는 끔찍한 고통이었다, “절망의 단계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 무언가를 기억하는 것,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11)

  잊어버리는 것은 항상 나쁜가?

  인간 기억의 비범한 능력을 찬미하고 기억의 쇠락을 한탄하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지적 건강 측면에서 망각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관심을 덜 기울인다. 실제로 두 과정은 서로 반대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상호 도움을 구성한다. 망각은 그 자체로 기억의 결함이 아니라 건전한 필요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미묘하고 정의할 수 없는 균형이 상실되면 기억과 망각 둘 모두 건강에 해로워진다.

  기억은 단순한 녹음이 아니다. 일어난 일이 정말 “우리 것”이 되려면 그 일에 거리를 두었다가 현재 그것을 다시 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분리가 없으면 시간적 차원을 상실하게 된다. “너무 완벽한 기억은, 설사 우리가 결정하는데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우리가 추억에 얽매이게 하고 과거를 잊을 수 없게 할 수 있다.”12)

  [줄거리] 재구성과 전개는 인간의 기억에 필수적인 기능이며, 일어난 일을 단순히 기록하는 것으로만 축소될 수 없다. 이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를 마르셀 프루스트가 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The Search for Lost Time13)의 한 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다. 프루스트는 비가 내리는 평범한 광경을 주의깊게 관찰하면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놀랍게 표현했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기억의 점진적인 재구성을 시각적인 방식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연못 안에 기와지붕이 생겼다. 비가 그치고 다시 해가 비치자 연못에 분홍색 마블링이 탄생했다. 전에는 결코 주목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 위, 그리고 집 벽 표면에 생긴 옅은 미소가 하늘의 미소에 응답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말아놓은 내 우산을 흔들면서 열광하며 외쳤다. ‘우와! 정말 대단해!’ 그러나 이내 나는 이런 단순한 감탄에 만족하지 않고 나의 이 벽화 안에서 뭔가 더욱 명확하게 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내 의무라고 느꼈다.14)

  이것은 인상과 표현 사이의 투쟁, 또는 단테가 말했듯이 물질과 예술 사이의15) 투쟁에 대한 가르침이 되는 묘사이다. 이것은 고통스럽지만 필요한 수고이며 잃어버린 좋은 것을 다시 되찾기 위한 요구를 소개한다. 이런 방식으로 그 체험의 의미 안에서 그 체험 자체의 진정한 차원을 재발견한다. 인간의 기억은 선택적이면서 정서적이다. 기억을 형성하고 거기에 색깔을 칠하며 일부 세부 사항을 강조하고 나머지는 배경에 남겨둔다. 그러므로 잊는 것은 전기의 양극과 음극처럼 기억을 위한 조건이다. 둘 다 지식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기억과 집중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무언가를 전경에 두려면 배경에 다른 것을 남겨두어야 한다.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다른 것을 보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보르헤스가 지적하듯이 망각이 없는 순수한 기억은 삶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방해가 된다. “기억하는 것과 잊는 것은 밀접하게 연결된다. 두 가지 모두 우리 의식의 변화하는 리듬을 조직하기 때문이다 […]. 사실, 기억은 감각 채널을 통해 뇌에 도달하는 감각 꾸러미에서 몇 가지만 받아들이면서 망각의 필터에 크게 의존한다. 그리고 관점, 관련성, 정체성에 대한 전제조건을 제공한다.”16)

  “빅 데이터”

  푸네스와 세레세브스키에게는 절박한 예외인 것이 이제 디지털의 출현으로 가능해졌다. 1998년에 두 명의 미국 학자들이 전자 가족 앨범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가장 친한 여자 친구와 어린 시절에 대한 대화를 녹음하거나 자녀의 인생 초기 몇년에 그들이 말한 수백만 개의 귀중한 문장을 담은 완전한 오디오 도서관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17) 우리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녹화하거나 다운로드할 수 있는 소셜 네트워크와 스마트폰으로 쉽게 실현할 수 있는 프로젝트이다.

  컴퓨터와 온라인 검색은 앞에서 조수아 포어가 표현한 낙담을 잊지 않고 개선할 수 있는 정교한 도구를 제공한다. 도서관, 문서고, 데이터 베이스, 웹의 검색 엔진이 점점 더 강력해진다. 이런 방식으로 도서관에서 헛되게 찾은 인용문이나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인용문을 식별하거나 텍스트에서 관심있는 내용을 강조 표시하고 나머지는 제외하는 작업이 훨씬 쉬워진다. 그리고 원할 때마다 그것을 다시 불러낼 수 있다. 인생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가능해진다. 일단 소셜 네트워크에 게시되면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남아있다.

  자연스럽게 이 놀라운 데이터 보존은 학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열띤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학자들은 이것에 열광하는 사람과 비방하는 사람으로 나누어졌고 새로운 발견이 기억에 미칠 수 있는 이점이나 해로운 점을 지적했다. 그런데 이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문제이다. 플라톤은 쓰기의 발명이 데이터를 보존하지만 기억을 약화시킨다는 것을 이미 알아차렸다.18) 저장 속도는 느리고 반복해서 저장해야한다. 문서화의 신속성은 느림과 반복을 요구하는 기억화에 방해가 되었다.

  심리학자 린다 헨겔(Linda Henkel)은 인간의 기억이 디지털 기억으로 옮겨가는 것처럼 미술관에서 사물을 촬영하는 경향이 그것을 기억하는 능력을 약화시킨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반면에 단순하게 사물을 관찰한 사람들은 더 많은 세부 사항을 기억했다. 저장된 이미지 수가 많을수록 주의력이 줄어들어 메모리가 약해졌다. 그러나 연구를 위해 세부 사항에 머물렀다면 기억에 도움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디지털 이미지는 선택성을 존중하고 단순한 데이터 축적으로 축소되지 않을 때 기억을 돕는다.19)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삶을 위해 망각이 요구되는 다른 측면이 있다.

  망각이 필요할 때

  웹으로 가능해진 모든 것을 보관하려는 경향과 엄청난 가능성은 또한 새로운 형태의 고통을 불러온다.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파일의 영구 보존은 계속해서 죽은 이의 유해를 찾아내는 것에 비교할 수 있다. 그렇게 죽은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방식으로 현존한다. 이런 상황은 남아있는 사람들이 계속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애도인 망각의 형태에 문제를 제기한다. “실제 삶 안에서 그 연결은 대부분의 경우에 서 서서히 느슨해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특정한 지점에 묘지는 닫힌다[…]. 반대로 전화기에 현존하는 온라인 묘지를 생각해보라. 죽은 이는 확실하게 우리와 대화를 나누고, 보고 있는 비디오, 듣고 있는 음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또는 전날 저녁에 방송된 영화가 그에게 좋았다면 우리 메일을 통해 방영 시간도 알려준다”20)

  이런 가능성이 비극적인 사건과 연관된다면 더욱 혼란스럽고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몇 가지 중요한 사례를 인용할 수 있다.

  2014년 2월 18일, 20세 영국 소녀 홀리는 남자 친구에게 살해당했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를 기억하기 위해 디지털 앨범에 있는 그녀의 프로필 사진을 찍기로 결정했는데 대부분의 사진이 그녀와 살인자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공포에 질렸다. 그녀의 아버지는 BBC 방송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사진을 보면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 그 사진을 보지 않고는 가족과 친구들이 홀리의 프로필을 볼 수 없다는 게 정말 속상합니다.” 문제는 소녀가 자신의 프로필에서 이런 자료를 제거할 수 있다는 지침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리자가 마음대로 변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긴 법정 싸움과 11,000명의 서명 끝에 그 사진들이 프로필에서 제거되었다.21)

  또 다른 사례는 워싱톤 포트스 기자 길 브록켈(Gill Brockell)의 이야기다. 그녀는 임신 기간 동안 모성 광고 기사 링크에 접속했다. 그러나 그녀는 몇 달 후 유산했는데 신형 유모차, 젖병, 기저귀 광고 메시지를 계속해서 수신해야 했다. 기쁨의 원인이었던 것이 끝없는 악몽으로 변할 위험이 있었다. 브록켈은 링크를 제거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헛수고였다. 결국 그녀는 페이스북에 편지를 쓰면서 그 광고를 다시는 보내지 말아달라고 간청했다.22)

  스테파노 로도타는 구글의 잡식성(무엇이든 먹어치우는) 기억에 대해 생각하면서 인간 존중에 필수적인 삶을 지속하기 위해 잊혀질 권리를 승인한 2012년 1월 25일 유럽위원회 법의 중요성을 회상했다. “한 사람이 원치 않는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권리를 거부당했을 때, 어떤 정보에 즉시 액세스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 그들의 상호 연결, 검색 엔진에 자신에 관한 내용이 넘겨질 때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 그 장면 뒤로, 보이지않는 곳으로 물러나려면? […]. 잊혀질 권리는 자신의 기억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권리다. 각자에게 자신을 새롭게 창안해내고 개성과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잊혀질 권리는 어디든지 존재하며 전체적인 기억 안에 모든 사람을 가두기를 원하는 감옥의 폭정에서 벗어나게 할 권리다.23)따라서 잊혀질 권리는 “기억의 독재”가 침입하는 관음증의 새로운 형태로부터 개인의존엄성, 보호를 보장하는 방법이다.

  공적 생활에서 망각의 역할

  위 사례들은 망각의 공적인 역할, 이 역할과 프라이버시와의 관계, 웹 탐색에서 얻은 개인 데이터의 삭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떠도는 개인정보는 2018년에 일어난 Cambridge Analytica [정보 남용] 사건에서 보았듯이 수백만 건의 개인정보가 유권자들의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데 사용된 것처럼 정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싱글맘들에게 개별적으로 가정에서 공격당하는 것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을 부추기며 총기 로비를 지원하도록 그들을 설득한다 […]. 캠페인의 가장 효과적인 발표 중 하나는 “클린턴(Clinton) 재단에 대한 10가지 불편한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서로 주고 받았던 그래픽이었다.”24)

  데이터 삭제 여부에 대한 논쟁도 오래된 주제인데 이것을 중요하게 응용할 수 있는 분야은 정치다. 기원전 403년의 트라쉬불로스(Thrasybulus)25) 법령을 ​​생각해라, 이것은 아테네에서 삼십명의 폭군이 추방된 후에 공포되었다. 이것은 도시 평화를 회복하여 복수의 소용돌이와 개인적인 결산을 종식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망각의 조약”이라고 부른다.26) 자발적인 망각이다.

  1598년 헨리 4세가 공포한 유명한 낭트 칙령도 매우 유사한 용어로 표현되었는데 이 칙령으로 프랑스의 종교전쟁이 종식되었다. 그것은 “1585년 3월초부터 우리가 왕관을 취득할 때 까지 […] 두 당사자가 수행한 어떤 행동에 대한 기억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소멸되었다”는 것을 결정하면서 시작된다. 다음 조항에서 확인된 금지 사항이다.27) 무엇을 잊을 지뿐만 아니라 얼마나 오래 잊어야 할 지 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예들은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다. 30년 전쟁을 종식시킨 1648년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영원한 망각과 사면”)부터 2차 세계대전 다음날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의 연설까지(“만약 우리가 끝없는 불행과 결정적인 쇠락으로부터 유럽을 구원하려면 우리는 유럽 가정에 대한 믿음의 행위와 저지른 모든 범죄와 오류의 망각 행위 위에 그런 구원을 구축해야합니다.”28) 기억과 망각의 양극은 화해와 용서와 연결된 법률적 또는 도덕적 맥락에도 매우 많이 존재한다. 특정 시간이 흐른 후 한 사람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그 사람을 기소하는 것을 금지하는 공소시효 형태로 존재한다. 그것은 행위와 그 행위자 사이의 연결이 취소되는 사면(대사)의 형식으로 존재한다. 철학자 폴 리쾨르(Paul Ricœur)는 첫 두 개의 사례 안에서 망각은 명령형(“당신은 잊어야 합니다!”)이지만 용서는 부여된 것이 아니라 희구 형태로 표현된 갈망으로 놓여진다고 말한다. “망각의 형태가 합법적으로 호소될 수 있다면, 이것은 악에 침묵을 지키는 의무가 아니라 분노 없이 평화를 건설하는 방식으로 그것을 말하는 의무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런 화법은 더 이상 계명, 명령이 아니라 희구적인 방식에 대한 희구에 대한 서약으로 이루어질 것이다.”29)

  이 모든 경우 – 항상 저지른 악을 속죄해야 할 필요가 있음 – 기억과 망각이 배제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흥미로운데 의식적인 취소로 사람이 한 일과 과거의 상태를 그 사람과 영원히 동일시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구원(riscatto)의 가능성에 필수적이다. 다른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사회적인 차원에서 푸네스의 절망적인 상태 안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기억이 도움이 될 때

  기억의 치유에 없어서는 안될 화해와 용서의 과정은 연구와 탐구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개인의 내러티브 정체성을 위해서, 일어난 일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디지털의 새로운 발견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언급했듯이 상상력과 정서(affetti)에 의해서 수행하는 역할은 인간의 기억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선택성은 기억의 정서적인 색채와 함께 변형되고 과거에 정의를 주지 않는 화면이 될 수 있다.

  30세가 넘은 성인 4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중요한 사실이 드러났다. “더 젊은 자신”에게 조언하기 위해 자기 삶을 검토해보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가장 많이 나왔던 사항은 자신이 했던 것에 대한 비난 또는 후회, 잘못한 일부 선택이었다. 이런 부정적인 시선은 현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건의 다른 측면을 잊음으로써 비난이나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경향을 증가시켰다.30)

  오늘날 위에서 언급한 많은 기회로 인해 더 광범위한 기억이 가능해졌는데 이것은 사건의 복잡성을 더욱 존중하고 살아낸 것을 재해석하거나 운명론이나 자기 비난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다른 해석을 선호할 수 있다. 또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판단의 성급한 편파성의 위험을 피하게 할 수 있다.31)

  이것은 자신과도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과의 정의와 화해에도 근본적이다. 내적인 콤멘트는 중요한 세부사항을 흐리게 할 수 있다, 만에게 드러나면 의심의 이점을 선호하고 요약 판단의 선-악의 극단에 질문을 제기한다.

  더 완전한 자료(문서고, archivio)에 접속하는 것은 현상학이 획기적이라고 부르는 태도, 즉 심판의 유예에 유리할 수 있다. 그리고 감사의 장소인 긍정적인 기억을 장려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억의 봉사와 망각

  기억과 마찬가지로 망각도 복합적이고 다양한 의미를 가진 활동으로 밝혀졌다. 이 글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들을 일부 소개했다. 알에이다 아스만(Aleida Assmann)32)은 망각의 다양한 가치에 대해서 적어도 일곱가지를 알고 있는데 세 가지 기본 양식으로 구분된다: 1) 인지적 (자동적·보존적·선택적) 망각; 2) 현실 도피적(억제·방어적) 망각; 3) 긍정적(건설적·치료적 망각). 특히 마지막은 기억행위를 요구하는 것 외에도 기억을 정화하고 강화한다. 왜냐하면 이런 기억은 사물의 복잡성을 복원하고 요약 판단으로부터 보호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기억 덕분에 이렇게 할 수 있다. “이미지로 말했듯이, 치료적 망각이란 이것을 의미한다. 책 페이지를 그냥 넘겨버리기 전에 그것을 읽어야 한다. 잊기 위해서 기억하는 것이다. 가톨릭의 고해성사를 예로 들 수 있는데 사제의 사죄로 죄를 용서받기 전에 먼저 죄를 인정하고 고백해야한다.”33)

  단테는 레테, 망각의 강을 지상의 낙원 안에서 연옥 꼭대기에 놓는다. 여기서 영혼들은 그들의 죄를 알고 속죄한 후에 낙원의 영원한 행복에 다가가기 위해 그것들을 마침내 잊을 수 있다(참조. 지옥편, XIV, 136-137; 연옥편, XXVIII, 121 이하). 그들에게는 오로지 좋은 것에 대한 기억만 남을 것이다. 반대로 지옥에서 단죄받은 이들, 곧 이 기억의 정화를 수행하지 않은 이들은 자신이 저지른 악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영원히 자신을 비난해야 한다.


1) © La Civiltà Cattolica 2020 IV 120-131|4088 (17 ott/7 nov 2020)
2) 역주: 조슈아 포어(1982년~):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이며 주로 과학 분야 글을 쓰고 있다. 2011년 그는 Moonwalking with Einstein: The Art and Science of Remembering Everything (New York: Penguin Press)을 출판했다. 이 책은 2011년 3월 27일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3위에 올랐고 8주 동안 계속 이 순위를 유지했다. 국내에서는『1년 만에 기억력 천재가 된 남자』(갤리온, 2016년)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3) 역주: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2014)가 스페인어로 쓴 소설이다. 1967년에 출판되었으며 ‘마술적 리얼리즘’의 소설이자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다. 마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대표적인 소설로서 제3세계 문학의 시대를 열었다. 콜롬비아를 상징하는 마콘도라는 가상의 마을에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집안이 겪는 일을 사실적인 문체로 전개한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사회적 이중성을 파헤친 작품이다.
4) 역주: 영국 작가 에밀리 브론테(1828-1848)가 필명 엘리스 벨(Ellis Bell)로 출간한 유일한 소설이자 유작 소설이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와의 사랑을 묘사한 작품으로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가 뛰어난 것이 장점이다.
5) J. Foer, L’arte di ricordare tutto [전부 기억하는 법] Milano, Tea, 2013, 166s.
6) “Funes the Memorious” (스페인어 원제: “Funes el memorioso”)는 저명한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 (Jorge Luis Borges, 1899-1986)가 쓴 판타지 단편 이야기이다. (송병선 역, 「기억의 천재 푸네스」,『픽션들』, 민음사, 2018년).
7) J. L. Borges, in Id., Tutte le opere, Milano, Mondadori, vol. I, 2005, 714 s.2,
8) 알렉산더 루리아(1902년–1977년)는 러시아 신경심리학자로 종종 현대 신경심리학의 아버지로 평가 및 인정받아 왔다.
9) R. Quian Quiroga, Borges e la memoria. Viaggio nel cervello umano da Funes al neurone Jennifer Aniston [보르헤와 기억: 푸네스에서 제니퍼 애니스톤의 뉴런까지 인간 뇌 여행], Trento, Erikson, 2018, 50s.
10) «Solomon Šereševskij», in Wikipedia, https://it.wikipedia.org/wiki/Solomon_Šereševskij
11) E. Canetti, La tortura delle mosche, Milano, Adelphi, 1993, 69. 어느 날 세레세브스키는 루리아에게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만약에 한 문장에 제가 다른 데서 읽은 세부적인 내용이 있다면 그것을 읽기가 특히 힘듭니다. 이 경우에 저는 한편으로는 읽기 시작하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읽기를 마치는 자신을 발견하고 머리 속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집니다. […] 한 사람의 표현은 그의 영혼 상태와 그것을 마주하는 본인의 상황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이 계속 변하고 표현의 뉘앙스가 다르면 저는 혼란스러워지고 그것들을 기억하기 힘듭니다”(R. Quian Quiroga, Borges e la memoria. Viaggio nel cervello umano da Funes al neurone Jennifer Aniston, Trento, Erikson, 2018, 50).
12) V. Mayer-Schönberger, Delete. Il diritto all’oblio nell’era digitale, Milano, Egea, 2016, 10.
13) “이 작품은 질적, 양적 측면에서 독자들에게 가장 읽기 힘든 작품 중 하나로도 꼽힌다. 그러나 이 작품을 온전히 읽거나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오늘날 우리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 발상, 즉 기억이 감각 경험, 오늘날 비자발적 기억이라 불리는 것에서 촉발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 비자발적 기억이라는 관념은 이후 20세기 문학을 지배했을 뿐만 아니라 심리학에서도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작품이 두서없어 보이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허물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요소들이 프루스트를 ‘현대소설의 창시자’라고 부르는 이유다”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63XX19000075
14) M. Proust, Alla ricerca del tempo perduto. 1: Dalla parte di Swann, Milano, Mondadori, 2004, 189.
15) “형태에 대해 일치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예술의 의도에 대해 많은 해석이 가능하다/왜냐하면 그 물질은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Paradiso, I, 127-129).
16)A. Assmann, Sette modi di dimenticare, Bologna, il Mulino, 2019, 15; 62.
17)9. G. Bell – J. Gemmell, Total Recall. Memoria totale. Ricordare tutto? Inquie￾tante, ma reale, Milano, Rizzoli, 2012, 20.
18) Cfr Platone, Fedro, 274-278. 문제 전반에 대해서는 참조: G. Cucci, Internet e cultura. Nuove opportunità e nuove insidie, Milano, Àncora – La Civiltà Cattolica, 2016.
19) Cf. LA Henkel, «Point-and-Shoot Memories: The Influence of Photography on Memory for a Museum Tour», in Psychological Science 25 (2014 / 2) 396-402.
20) G. Ziccardi, Il libro digitale dei morti. Memoria, lutto, eternità e oblio nell’era dei social network, Milano, Utet, 2017, 203; cfr G. Cucci, «Morte e digitale», in Civ. Catt. 2020 II 543-553.
21) Cfr J. Commons, «How Facebook Refused To Take Down Pictures Of Mur￾dered Hollie Gazzard With Her Killer», in Grazia (13 febbraio 2019.13).https://graziadaily.co.uk/lifereal-life/facebook-refuses-take-pictures-murdered-hollie-gazzard-killer
22) «기술 회사에게: 저는 여러분이 제가 임신했던 것을 알고 있음을 압니다. 제 잘못입니다. 저는 인스타그램의 해시 태그에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Facebook에서 제공하는 출산 의류 광고를 한두 번 클릭했습니다 […]. 그리고 제가 처음으로 목록을 만들었을 때 Amazon.com은 당신에게 제 만료일이 1월 24일이라고 알려주었을 것입니다 […]. 그러나 당신은 “부서진 마음”, “문제”, “사산”같은 키워드가 달린 제 아기의 죽음 소식과 제 친구들이 보낸 200개이 이모티콘이 달린 포스팅을 보지 못하셨나요? 그리고 수백만 명의 상심한 사람들이 “나는 이 광고를 보고 싶지 않습니다”를 클릭 할 때 당신의 알고리즘, 기술 회사들이 무엇을 결정하는지 아십니까? 회사는 당신이 출산했다고 결정합니다. Experian은 모든 것 가운데가장 낮은 추적 히트로 출시됩니다. 스팸 이메일은 “당신 아기의 등록을 완료하라”라며 아기의 평생 신용의 자취를 간직하기를 권장합니다. 제발, 기술 회사에게 부탁드립니다. 알고리즘이 제가 임신했거나 출산했음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하다면 분명히 제 아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저에게 광고를 중단할만큼 똑똑할 수 있습니다.”(G. Brockell, «Dear tech companies, I don’t want to see pregnancy ads after my child was stillborn», in The Washington Post, 12 dicembre 2018).
23) S. Rodotà, Il diritto di avere diritti, Roma – Bari, Laterza, 2012, 405 s. 전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참조. U. Ambrosoli – M. Sideri, Diritto all’oblio, dovere della memoria. L’etica nella società interconnessa, Milano, Bompiani, 2017.
24) H. Fry, Hello World. Essere umani nell’era delle macchine, Torino, BollatiBoringhieri, 2019, 47 s. Cfr B. Kaiser, La dittatura dei dati, Milano, HarperCollins, 2019; Sh. Zuboff, Il capitalismo della sorveglianza. Il futuro dell’umanità nell’era dei nuovi poteri, Roma, Luiss, 2019; N. Tirino, Cambridge Analytica. Il potere segreto, la gestione del consenso e la fine della propaganda, Lecce, Libellula, 2019. Cambridge Analytica 데이터는 도날드 트럼프와 테드 크루즈의 선거 캠페인, 2016 브렉시트 국민 투표와 2018년 멕시코 선거에 사용되었다.
25) 트라쉬불로스(기원전 440년경-기원전 388년):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장군으로 민주정의 지지자로 과두정 정권인 삼십인 참주와 싸웠다.
26) “누군가가 과거의 범죄에 대해 복수하는 것은 합법적이지 않습니다”(Aristotele, La Costituzione degli Ateniesi, 39, 6).
27) “우리는 어떤 상태든지 조건에서도 그런 사실의 기억을 쇄신하고, 일어난 일에 대해 서로 비난함으로써 서로 공격하고, 분개하고, 모욕하고, 자극하는 모든 것을 금지합시다. 대신 모두 형제, 친구, 동료 시민으로서 평화롭게 살기를 권고합니다”(www.athenapiatreste.it/7-leuropa-dellintoleranza).
28) W. Churchill (ed.), The Sinews of Peace. Post-War Speeches, London, Cassell, 1948, 200. 20. P. Ricœur, La memoria, la storia, l’oblio, Milano, Raffaello Cortina, 2003, 646. Cfr G. Cucci, P. come perdono, Assisi (Pg), Cittadella, 2011.
29) P. Ricœur, La memoria, la storia, l’oblio, Milano, Raffaello Cortina, 2003, 646. Cfr. G. Cucci, P. come perdono, Assisi (Pg), Cittadella, 2011.
30) Cfr R. M. Kowalski – A. McCord, «If I knew then what I know now: Advice to my younger self» [지금 알게 된 것을 그 때 알았더라면 –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조언하기], in The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91 (2020/1) 1-20. 22. Cfr G. Cucci, «Per un umanesimo digitale», in Civ. Catt. 2020 I 27-40.
31) Cfr G. Cucci, «Per un umanesimo digitale» 디지털 인본주의를 위하여, in Civ. Catt. 2020 I 27-40.22
32) 역주: 알에이다 아스만(1947- )은 영어와 문학을 가르치는 독일 교수이며 이집트학을 공부하였고 문화인류학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33) A. Assmann, Sette modi di dimenticare, cit., 98; cfr 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