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예수로부터

A partire da Gesù lavoratore

  © La Civiltà Cattolica, Q. 4081, 4 Luglio, 2020 III, 18-31

  Antonio Spadaro – Simone Sereni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와 시모네 세레니
이창욱 펠릭스(바티칸 뉴스 번역가) 옮김

  8월 7일은 티에네의 성 가에타노San Gaetano da Thiene 축일이다. 이날 수십만 명의 신자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시 외곽에 위치한 리니에르스Liniers 지역에 성인의 성상을 보관하고 있는 성지로 향한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성상을 모신 작은벽의 유리관에 입을 맞추고 ‘빵과 일자리’를 청한다. 매년 축일이 다가오면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이었던 베르골리오 대주교는 언제나 노동자들과 실업자들을 위해 설교했다.1) 이 설교는 아르헨티나 사회의 종교인과 일반시민들에게 일종의 양심성찰의 계기가 되었는데 그 목적은 책임감을 비롯해 정치적 계급의식까지 되찾도록 그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이었다. 베르골리오 대주교가 역설한 바에 따르면 노동이 없다면 사람은 인간성을 상실하고 그 존엄성이 심각하게 훼손된다. 사실 빵을 얻을 권리는 인간의 기본 권리다. 인간에게 가장 큰 굴욕 가운데 하나는 빵을 얻을 수 없는 조건에 처하는 상황이다. 소외보다 더 나쁜 형태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성 가에타노는 늘 희망의 수호자였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잘 알고 있던 신자들의 성 가에타노 이미지가 머리에 떠오른 것은 지난 6월 12일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로 피해를 입은 이들을 돕기 위한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제안되었을 때였다. 교종의 선도적 기획은 로마교구 총대리 안젤로 데 도나티스 추기경에게 썼던 편지에 잘 드러난다. “저는 로마 주교로서, 교구 카리타스에 기탁된 첫 번째 성금 100만 유로와 함께, 노동의 존엄성을 상기하기 위해, 로마교구 내 ‘거룩한 노동자 예수’ 기금을 설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기금은 “다시 자립해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제도적 보호에서 배제될 위험에 처한 사람들과 동반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생각해 낸 것이다.

  교종은 “일용직 노동자와 임시 노동자, 계약의 갱신이 이뤄지지 않은 계약직 노동자, 시간제 노동자, 인턴 직원, 가사도우미, 소상공인, 자영업자, 특히 (코로나19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분야와 관련 업종의 노동자들에게” 이번 기금이 지급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가 자녀들을 위해 힘겹게 식탁을 준비하는 한편, 자녀들에게 최소한의 필요를 보장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가정의 아버지요 어머니입니다.” 이런 내용을 읽다 보면, 성 가에타노 성지에서 순례 중인 신자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 기금이 “특별히 인간의 권리에 대한 위안, 희망, 보상을 바라는 이들을 향한 포용의 구체적인행위”로 상징되기를 원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 기금은 ‘거룩한 노동자 예수’라고 명명됐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바로 우리가 잠시 멈추어 고찰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노동자 예수 성상

  65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1955년에 일어난 일이다. 이탈리아 그리스도인 노동자 협회Associazioni cristiane dei lavoratori italiani (이하 ACLI) 설립10주년을 맞아 비오 12세 교종은 5월 1일을 노동자 성 요셉 축일로 제정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 노동절”이 1956년에 처음으로 거행됐다. ACLI에 가입한 그리스도인 노동자들은 그러한 상황에서 밀라노 주교좌성당 앞 광장에 거대한 집회를 주관했다. 이를 계기로 본지는 특집기사를 게재했는데, 여기에 인용해보자. “5월 1일, 노동자의 날이자 노동자 성 요셉 축일, 교종은 일반알현을 위해 베드로 대성전에 내려와 밀라노 국제대회에 모인 십만여명의 그리스도인 노동자 협회(ACLI) 회원들에게 특별 라디오 메시지를 전했다. (…) 그날 석양이 비출 무렵, 수많은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노동자 그리스도의 모습을 예술적으로 구현한 성상을 실은 헬기 한 대가 성 베드로 대성전 앞 계단 상단에 착륙했다. 이 동상은 교종의 축성을 받기 위해 그 직전 밀라노에서 항공편으로 싣고 온 것이다. 이 때 교종은수많은 신자들의 환호에 동참하여 개인 집무실 발코니에서 강복했다. 받침대에 ACLI 문장이 새겨진 1.3미터 높이의도금 청동상은 로마에 새로 지어진 ‘거룩한 노동자이신 그리스도 성당’ 안에 세워질 예정이었다. 한편 이 동상은 5월 2일 7개국 노동자 단체들과의 만남 행사 때 교종 앞으로 옮겨졌다.2)

  노동자 그리스도의 ‘동상(銅像)’은 이탈리아 노동운동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아름답고 흥미로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곧 종교 예술과 대중 신심의 역사이다.

  “단지 창의적인 작품만이 아니었다.”

  오늘날에도 ACLI 본부에 들어서면 곧바로 마주치게 되는 이 동상의 역사는 지난 2015년 5월 23일 바오로 6세 대강당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이 협회 회원들과 특별알현했을 때 드디어 문서보관소에서 세상으로 나와 밝혀지게 됐다.3) 이어지는 내용에서 알게 되거니와, 이 동상은 예수님을 상징할 고유의 운명을 가졌지만, 줄곧 성 요셉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졌다.

  사실 ACLI는 5월 1일 노동절도 ‘노동자 예수’에게 봉헌하고자 했고, 이미 1955년 ACLI 10주년에 이를 밝힌 바 있다.4) ACLI 본부 사목 담당 아울레리오 보스키니Aurelio Boschini 신부는 이 제안이 너무 “계급주의적”이라고 판단한 성청의 반대로 파첼리Pacelli (비오 12세의 세속명) 교종이 취소했다고 증언했다. 그 뿐만 아니라 특히 동상에 관한 당혹스러운이유들 중 하나는 아마도 라파엘로 파뇨니Raffaello Fagnoni가 설계한 ‘거룩한 노동자 예수’라는 이름의 로마 성당에 동상을 설치하기로 한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성청은 노동자 예수상은 결코 홀로 표현되어서는 안 되고, “노동의 놀라운 본보기”인 마리아와 요셉과 함께 성가정의 맥락에서 묘사돼야 한다고 1951년에 결정한 바 있다. 하지만 우리는 신성한 종교 건물에 설치되지 못한 예술가들의 수많은 작품들 중에 예수님이 홀로 표현되거나 다른 동료들 혹은 도와주던 이들과 함께 표현된 것들을 확인할 수 있다.

  아무튼 ACLI는 이듬해 1956년, 앞서 언급한 5월 1일 국제 노동자의 날을 맞아 ‘노동자 예수’가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한편 조반니 바티스타 몬티니Giovanni Battista Montini (바오로 6세 교종의 세속명) 대주교는 밀라노 대교구장이 되었고 ACLI 출범의 가장 확고한 지지자가 되어, 엔리고 넬 브로이닝Enrico Nell Breuning이 청동으로 만들어 그 위에 금을 입힌 ‘거룩한 노동자 예수’ 상을 축복했다5).

  동상은 헬기로 밀라노 두오모 광장을 떠나 성 베드로 대성전 입구로 옮겨져, 집무실 발코니에 서 있던 비오 12세 교종의 축성을 받았다.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많은 대중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이 장면은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감독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는 유사 장면을 촬영하여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이라는 영화에 첫 장면으로 사용했다.6)

  우리는 그 순간을 당시 ACLI의 회장이었던 디노 페나차토Dino Penazzato의 증언을 통해 되살려볼 수 있다. “라디오 전파를 통해 밀라노까지 전해진 교종의 연설에 군중이 우레 같은 박수로 화답을 마치자, 헬기는 밀라노 두오모 광장에서 올라가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잠시 멈춘 다음, 수직 상승하여 아주 맑은 롬바르디아 상공으로 날아 올라 안정된 비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수많은 군중 각자의 무엇인가를 싣고 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동상은] 단지 우연히 ‘발견한’ 천재적 작품이 아니고, 단지 감동의 한 순간도 아니었습니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했습니다. 십여만 노동자들의 마음에 가시적이고 가슴 뛰는 일치감을 부여했습니다. […] 헬기가 선체에 안전하게 싣고 갔던 노동자 예수의 모습은 태양을 배경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교종에게 이보다 더 뜻깊은 선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선물이기도 하지요.”7)

  동상은 그 다음 날 담당 주교인 루이지 치바르디Luigi Civardi 주교와 페나차토 의장을 필두로 한 ACLI 국제대회 참가자들을 맞이한 알현에서 교종 앞으로 옮겨졌다. 파첼리Pacelli (비오 12세의 세속명) 교종은 동상을 보자마자 “이 얼마나 아름다운 노동자 성 요셉 성상입니까!”라고 감탄했다. 치바르디 주교는 대화할 기회를 찾아 다음과 같이 귀띔했다. “성하, 이 성상은 거룩한 노동자 예수님입니다.” 교종은 치바디 주교를 바라봤고, ACLI 참가자들을 바라본 다음 이윽고 성청의 입장을 이렇게 밝혔다. “물론 그렇습니다. 거룩한 노동자라는 표현은 수용할 수 있습니다.”8) 그럼에도 사람들이 매우 가깝게 느꼈던 ACLI 운동의 추진력에 자극을 받은 대중 신심은 이미 그 경계를 넘어섰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ACLI와 관련된 수많은 주교들과 본당 신부들은 신축 성당들에 “거룩한 노동자 예수”라고 이름을 붙일 것이라 예상했고, 그런 까닭에 이탈리아 전역에서 “거룩한 노동자 예수” 성당들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연이어 이 동상은 ACLI 50주년 기념행사를 맞이해 1995년 5월 1일 다시 한번 성 베드로 광장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종 앞으로 옮겨졌다. 이 동상은 다시 장소를 옮겨 10년 후 2005년 5월 1일, 베네딕토 16세 교종이 부활 삼종기도Regina Coeli를 바칠 때 등장했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동상은 2015년 5월 23일 바오로 6세 대강당에 등장했다. 2020년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동상은 바티칸으로 돌아와 산타 마르타의 집 경당에 자리를 잡았고, 프란치스코 교종이 노동자 성 요셉축일 아침미사를 봉헌할 때 [제대 왼편]에 세워졌다.9)

  하느님께서는 노동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시어 당신 자신을 보여주신다.

  그러므로 “노동자 예수 성상”으로 탄생한 동상이 어떻게 “노동자 성 요셉 성상”이 되었는지에 대한 역사는 무척 흥미롭다.10) 혹시 “계급주의적” 판단 때문에 예수님을 “노동자”로 정의하는 데 거부감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해도, 우리는 어쨌든 노동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생생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대중 신심 또한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오늘날 프란치스코 교종은 그 신심과 다시 연결시키며 거기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강력한 의미를 회복시켰다.

  노동자 예수는 인간사에 몸소 관여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형상이자,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인간의활동을 동반하는 하나의 강생 신비이다.

  예수회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 신부는 『신의 영역』L’ambiente divino(1957)에서 깊은 영성적 가치를 담은 통찰력으로 이렇게 표현했다. “신은 당신 친히 우리에게 맡긴 일에서 우리의 시선을 딴 곳으로 옮기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신은 이 일 자체에서 우리에게 나타나 그를 만나도록 허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글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신은 그 본성으로나 육화된 사실에서나 우리에게서 먼 감각 세계 밖에 있지 않다. 신은 매순간 우리 행동과 그때그때의 활동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어떤 의미로 신은 나의 펜, 나의 곡괭이, 나의붓, 나의 바늘, 나의 마음, 나의 사상 그 첨단에 존재한다. 내가 형성해 가는 이 선, 이 점, 이 일격(一擊)이 자연적 최후의 성취에 이를 때 나는 비로소 나의 의욕이 향하는 최후의 목표를 파악한다.”11)

  노동자 그리스도께 바치는 예술과 기도

  노동자 예수에 관한 숙고는 1950년대에 매우 강렬했다. 노동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모든 문화와 정치 분야가 얽혀들었던 세계대전에 뒤이은 유럽 경제 회복에 있다. 노동자는 그 시대 문화적·정치적 메시지의 주요 수신자였다.

  영성적이고 신학적인 성찰의 장은 확실히 조반니 로시Giovanni Rossi 신부가 이끌던 아씨시의 ‘프로 치비타테 크리스티아나’Pro Civitate Christiana (그리스도인 시민을 위해)였다. 이 모임은 자신들의 조직이 무엇보다 예술가들에게 문을 활짝 개방하는 후원의 장소가 되길 원했다.12) 1951년에는 노동자 예수라는 주제에 관한 첫 번째 네 작품이 애호가들에게 선보였다. 이 작품들을 의뢰받은 미술가들은 다음과 같다. 페리클파치니Pericle Fazzini, 조반니 프리니Giovanni Prini, 치프리아노 에피시오 오포Cipriano Efisio Oppo와 조르지오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노동하는 그리스도를 표현하고 있는 약 200여점이 오늘날 아씨시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다양한 노동을 수행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음에 주목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목수 뿐아니라, 벽돌공·목공·직공·농부·나무꾼·목동·어부·의사, 그리고 오스마 윙클러Othmar Winkler의 작품에 나타난 것처럼 출판인으로 묘사되기까지 한다.

  이러한 시도를 지지했던 인물은 ‘치사 비스코사’Cisa Viscosa 회사 책임자인 프란치스코 마리오 오다소Francesco Mario Odasso 남작이었고, 그는 “많은 논쟁이 벌어지는 노동계”에서 예수를 표현하도록 제안했다.13) 그의 의도는 분명히 [노동으로] 고생하는 인류의 구원자에 대한 신심과 마르크스주의에 따른 유물론적 사회·역사 해석을 대립시키는 것이었다. 레오 13세의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1891) 발표를 시작으로, 이후 비오 11세의 회칙 「사십주년Quadragesimo anno」(1891)을 통해, 노동 문제는 가톨릭계 논쟁에서 주요 의제로 부각되었다. 1950년대에 들어 이 문제는 이탈리아 정치 논쟁과 산업 세계의 효소가 됐다. 1951년에서 1962년까지 10년 동안, 오다소Odasso와 프로 치비타테 크리스티아나Pro Civitate Christiana 덕분에 유명 예술가들이 참가하면서, 노동자 예수의 성화는 큰 발전을 이뤘다.14) 여러 사례들 가운데 특기할 만한 것은 레르카로Lercaro 추기경의 뜻에 따라 거룩한 노동자 예수께 봉헌한 조각가 에지디오 지아롤리Egidio Giarolli의 부조(浮彫) 작품을 볼로냐 가죠Gaggio 본당에 설치한 일이다. 마르게라Marghera 공업 중심지에 위치한 노동자 예수 성당 축성식도 론칼리Roncalli 추기경(요한 23세 교종의 세속명) 덕분에 이뤄졌다.

  1955년 오다소Odasso는 예수회원 로벨라Giuseppe Rovella 신부가 예술가들을 위해 엮은 『노동자 그리스도Cristo lavoratore15)라는 책의 출판을 위해 자금을 댔다. 그 책에는 가치 있는 작품들의 자료가 소개됐다. 이는 노동자 예수의 성화상iconografia에 대한 전문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졌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다. 이 자료에는 1800년대와 1900년대 미술 표현 양식과 노동자 예수에 관해 1953년에 로마에서 열린 세 차례의 강연 본문도 실렸다. 이 책의 서문은 짧은 축복 기도와 함께 비오 12세 교종이 서명했다. 교회 출판허가L’imprimatur는 1955년 4월 27에 주어졌는데, 이는 동상과 관련된 사건이 일어나기 1년 전으로 노동자 성 요셉 축일을 제정하기 며칠 전이었다. 비오 12세 교종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나자렛 목공소에서 일하던 노동자 그리스도(마르 6,3 참조)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아담으로 인해 잃었던 은총의 회복자로서, 여러분에게 그 힘을, 그 인내심을, 그 덕목을 베풀어주시어, 여러분이 흠숭하고 경배할 수 있는 가장 드높은 노동자의 모습을 갖추신 그분 앞에서 여러분을 위대한 사람이 되게 해주십니다. 여러분의 작업실에, 여러분의 공장에, 햇빛 쏟아지는 들판에, 그늘진 광산에, 용광로의 열기 가운데, 얼음의 차가운 냉기 가운데, 여러분의 예술, 형제, 조국, 평화가 필요로 하는 요청 등, 여러분을 인도하시는 분의말씀이 여러분을 부르는 곳은 어디든지, 여러분 위에 주님의 넘치는 은총을 내려주시길 빕니다.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에게 도움, 구원, 위로가 되고, 이 지상에서 여러분이 시간을 보내며 삶을 희생한 고된 노동을 저 세상의 행복을 위해 변화시켜 주시길 바랍니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여러분의 일터에서 그분을 뵐 수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여러분 가운데 거니시고, 여러분의 노고를 지켜보시며, 여러분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시고, 여러분의 마음을 위로 하시며, 여러분의 불일치를 다듬어주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나자렛 성지에서 변화된 작업실을 보게 될 것이고 하늘의 축복을 반영하는 그 신뢰, 그 질서, 그 일치가 여러분 사이에 군림하게 되는 것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늘의 축복은 이 지상에 퍼져나가고 하느님 사랑과 희망 안에서 믿음 안에 확고한 사람들의 선한 뜻과 정의를 뒷받침합니다.”16)

  비오 12세 교종이 쓴 이 내용은 이미 1943년 6월 13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발표한 “이탈리아 노동자 대표단에게” 했던담화문에서 사용됐다. 하지만 그 담화문에서는 “목수 그리스도”께 기도를 바쳤다. 이 책에 실린 그림 몇 장은 1956년로마에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출간된 『노동자 예수. 주님, 저희에게 일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Gesù lavoratore. Signore, insegnaci a lavorare!』라는 제목의 익명 작품에도 실렸는데, 예수회 로벨라Rovella 신부의 작품임이 분명하다. 이 책에 이런 글이 나온다.

  나자렛 공방에서 나왔던 상자, 의자, 탁자 등은 단순한 인간의 작품이 아니라, 하느님이기도 하신 인간의 작품이었다.” 저자는 다음과같이 계속 서술한다. “하느님의 아드님 안에서 긴 노동의 노고로 단련된 당신 몸의 지체는 신성의 도구였기 때문에 우리에게 ‘은총’을선사했다. 단순한 인간의 지체가 아니었다. 우리의 사랑을 위해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부지런한 손이었다.17)

  1956년 바로 그해에 교회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처음으로 5월 1일을 기념했고 ACLI에 가입한 가톨릭 노동자들은 밀라노 두오모 광장에 거대한 집회를 조직했다. 그러므로 거기서 동상이 몬티니 추기경에 의해 “노동자 예수”를 상징하는 성상으로 축성을 받았다. 하지만 그 동상은 로마에서 “노동자 성 요셉” 상이 되었다.

  노동자들을 주제로 작품 전시회

  1958년 5월에 “노동자 예수” 전국 경연대회 출품작들의 전시회가 개최됐다. 이 전시 기획은 노동자들에게 한정된 것이기에, 전문 예술가들은 참가에서 제외됐다. 전시회는 프로 치비타테 크리스티아나Pro Civitate Christiana 미술관의 후원을 받아, 복자 안젤리코 미술학교Istituto Beato Angelico에서 열렸다. 450여점의 작품이 출품됐다. 당시 출판협회장인 알도모로Aldo Moro가 명예 위원장을 맡았다.18) 전시회 도록은 이런 서언을 실었다. “노동자 예수에 관한 전시회는 거룩한노동자 그리스도와 감정의 일치를 이루며 일상의 힘듦으로 인한 곤궁하고 가혹한 삶을 맞닥뜨려야 하는 모든 이탈리아 노동자에게 원칙적으로 헌정된 것이다.”19)

  경연 공고문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본 전시회의 주제는 노동자로서 활동하신 예수님에 대한 단순한 역사적 개념을 아는 것을 넘어, (헌법 안에 노동을 공식적으로 촉구하는) 현실 사회가 예수님에 의해 해방되고 성화된 노동을 더 높은 존엄성과 이상적인 상승의 의미로 각인시켜야 할 시급성을 인지한 화가들과 조각가들이 열정적으로 직면한 주제입니다.” 카탈로그는 산 세베리노 마르케San Severino Marche의 석공이던 세티모 캄비오Settimio Cambio가 쓴 시를 게재했다.

노동자이신 주 예수님,
저 또한 사제처럼 매일 당신께 미사를 봉헌합니다.
돌 제대 위 책상을 하얀 석회로 칠합니다.
그런 다음 저의 감미로운 십자가인 망치를 들고
일용한 양식인 벽돌을 자르지요.
그리고 그 벽돌을 하늘로 들어 올려 당신께 축복을 청합니다.
제가 (벽돌에) 직각을 맞추는 규칙은
하얀 촛불처럼 태양에 불을 붙이는 겁니다.
수직선, 제 손에서 떨리는 추의 선은
노동에 향을 치는 향로랍니다.
긴 줄에 달려 흔들거리는 작은 물통은
하늘을 향한 종이랍니다.
크게 외치지 않고 자신의 호산나를 외칩니다.20)

  여기서 우리는 또 한 사람의 노동자이기도 했던 카롤 보이티와Karol Wojtyła(성 요한 바오로 2세 교종의 세속명)를 빼놓을 수 없다. 1957년 보이티와는 「채석장La cava di pietra」이라는 짧은 시를 작성했고 이후 교양지 『즈나크Znak』에 발표했다. 그는 이 잡지에 필명으로 8편의 연작시를 발표했다.21) 강제 이송을 피해 1939년에서 1944년까지 보이티와는 처음에는채석장에서 노동자로 일했고, 그 다음에는 크라쿠프 인근의 솔베이Solvay 화학공장에서 일했다. 보이티와는 노동자로서 시를 썼고 그의 시 몇 편의 주제는 바로 육체노동이었다. 이와 같은 경험은 그의 미래 교종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는 시구(詩句)에서 고단한 현실의 노동을 되살리면서 동시에 풍부한 은유로 노동의 위대함과 인간의 존엄성 사이 팽팽한 대조도 표현했다.

들어보세요.
전기 충격으로 돌무더기를 자르는,
매일매일의 [고됨을 통해] 내 안에 생각이 자라네.
노동의 위대함은 사람 안에 있으니.

  시인 보이티와는 중노동에 육체적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이 표현하는 바는 순수한 신체적 힘이 아니라, 생각과 마음의 힘이다.

단지 망치의 무게로만 손이 내려가는 것도 아니고,
단지 몸통이 몸을 지탱하고 근육들이 몸의 형태를 만드는 것도 아니며,
노동을 통해 자신의 가장 강렬한 생각이
이맛살 사이에 주름을 짜고,
머리 위 꼭대기 팔과 핏줄이 감싸 안은 끝점에 다다른다.

  건강한 신체의 묘사와 구체적인 세부 표현은 노동에 대한 폭넓고 깊은 시각을 수반하고, 지성과 열정을 통해 물질을 빚어낼 수 있다.

  노동자들의 예술 작품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노동자 예수” 전국 경연대회 출품 작품들로 돌아가 보자. 이 작품들을 신학적으로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 소개글에서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 마리노Mario Marino 신부는 아주 흥미로운 독서 열쇠를 제시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경연에 이토록 단체로 대거 참가한 것을 설명하기에는, 가장 신속하고 안전한 문화의 확산 선상에서, 우리나라의 가장 무감각한 모서리까지 도달하고, 결과적으로 예술로 표현되는 것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초래하는 더 크고 확산된 민감성을 언급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습니다. 여기에는 훨씬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시대의 종교적 감성은 노동자 예수님이라는 새롭고도 매혹적인 주제로 느리지만 확실하게 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리노 신부는 자신의 대담한 생각을 이렇게 표현했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문제들을 더 예리하고 생생하게 느낀다는 의미에서 오늘날의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십자가나 부활, 승천이나 탄생 사건과, 다른 한편으로는 단지 그리스도의 생애 한 순간이나 한시간이 아니라 더 지속적이고 영구적인 그의 임무를 표현하고 요약해주는 주제, 곧 가장 굴욕적이고 가장 찬양받는주제, 우리가 감히 ‘노동자 예수의 신비’라고 부르는 주제 사이에 있습니다. 이 둘 사이에서 망설이지 말고 선택해야합니다. 더욱이 예술 세계는 제대의 장식대pale와 뒤쪽 벽장식predelle, 제대 후면 판화장식ancone과 대형 패널 장식polittici 제작을 시작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급속한 기술 발전에 숨 막힐 정도가 된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이전에 전혀 보지 못했던 강렬한 예술적 가치를 갈망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제대와 벽 장식 앞에서, 제대 후면 판화와 대형 패널 장식 앞에서, 일자리와 책임 때문에 지치고 걱정에 휩싸인,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고통이라는 관점에서 삶과 화해하기 위해, 어쩌면 가장 열정적이고 감미롭게 기도할 것입니다.22)

  거룩한 노동자 예수님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울러 읽을거리는 저명한 도미니코 회원이자 이탈리아 가톨릭 기술인 연맹Unione cattolica italiana tecnici (UCIT)의 교회 고문인 로바센다Enrico di Rovasenda 신부의 평론이다. 그가 쓴 『예수와 노동Gesù e il lavoro23)은 “노동의 신성한 특징을 발견하기 위해 현대 노동은 모든 가치의 회복자인 그리스도를 찾아야 하고, 노동자 예수의 심오한 삶의 신비를 묵상해야한다”24)는 생각에서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현대 기술문명의 모든 장인들, 곧 발명가와 공학자와 기술자들은 노동자예수를 관상할 수 있다. [이들 관상 속의 예수는] 일상의 노고에서 장인 노동의 한계를 넘어 무리하게 일하지 않으며, 원자와 핵에너지 과학을 의식하고, 인간의 지구와 우주 지배를 위해 이상적인 기술 모델을 만들었다.”25)

  대중 신심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내용은 거룩한 노동자 예수가 단지 신학적 정의가 아니고 단지 예술가들에게만 소중한 이미지가 아니라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 이미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노동자 예수에 대한 하나의 신심으로 발전했다. 수많은 상본들은 손에 목수 연장을 들고 있는 모습의 예수를 표현했다. 상본 뒷면에는 널리 알려진 많은 기도문이 적혀있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나중에 이 기도는 수정되거나 축약시킨 여러 형태로 재인용되곤 한다. “예수님! 당신께서는 우주의 주인이시면서도 이마에 흐르는 땀을 통해 빵을 얻고자 몸소 노동의 수고에 순응하셨으니, 저희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저희 노동의 모범이요 구원자로 모시고자 합니다. 오! 나자렛의 거룩한 노동자시여, 저희가 매일 겪는 힘든 노고를 축복해주소서. 저희 이마의 땀을 축복하시어, 저희와 저희 가족을 위한 빵을 넉넉히 마련하게 해주소서. 새롭고 더 나은 사회 질서를 실현하고, 실제적이고 영적인 더 큰 행복을 전하려는 모든 이들의 노력을 축복해주소서. 정의와 평화에 기초한 그리스도인 사회에 영감을 불어넣는 우리 노동자들의 운동을 축복해주소서. 또한 끝없는 투쟁으로 고통받는 노동계에 언제나 당신 가르침의 태양을 비추시어 당신이 선사하시고 보장하신 사회적 평화의 토대를 굳건하게 하소서.”

  이 기도문을 읽어보면 신심의 의미 및 그 시대의 사회적 갈등의 파급효과도 깨닫게 된다. 특히 다음과 같은 대중적인 기도의 적어도 ‘첫마디’incipit에서 그 사실을 주목할 수 있다.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 제가 노동자인 것을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노동자야말로 부당한 처우로 많은 고통을 당하는 계층이지만 언젠가 보다 인간답고 그리스도인답게 되리라 간절히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중 신심과 기도가 가톨릭 상본 속에 묘사된 예수님의 모습을 뒷받침해주었다. ACLI 본부 책임신부인 루이지 치바르디(Luigi Civardi) 주교는 이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다음과 같이 썼다.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티눈으로 가득한 손, 직공의 앞치마를 두르고 작업대에 고개를 숙이고 계신 거룩하신 분에게, 주름살마다 땀이 흠뻑 맺힌 그리스도의 모습 앞에 모든 등불을 밝혀야 합니다.”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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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룩한 노동자 예수” 기금을 조성하려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기획은 앞에서 간략하게 설명했던 열띤 토론으로 이끌었다. 노동은 교종의 교도권 가르침의 중심 주제이다. 지난 2014년 10월 28일의 담화에서 설명했던 세 가지 ‘t’를 중심으로 한 “대중운동”에 대한 내용을 떠올려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셋은 tierra, techo, trabajo, 곧 땅과 집과 일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은 수차례 이 위기 동안 사람들을 동반했던 이들의 직업 목록을열거했다. “의료진들, 남녀 간호사들, 마트 직원들, 환경미화원들, 요양보호사들, 운송인들, 안전요원들.”[27]

  노동자들을 열거하고 그들에게 부어진 성령의 ‘도유’를 말하는 프란치스코 교종은 노동의 내밀한 영적 가치를 깨닫게 해준다. 하지만 그가 직접 노동자 그리스도를 언급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제네바 사목 방문 일정 중, 2017년 5월 27일 철강업체 일바Ilva의 노동계를 만난 자리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렇게 말했다. “교회와 노동 사이에는 언제나 우정이 있었습니다. 그 우정은 노동자 예수님에게서 시작해서 이어집니다. 노동자가 있는 곳, 바로 거기에 교회와 주님의 관심과 사랑의 시선이 있습니다. 이 사실은 아주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1) 강론은 다음의 책으로 발행되었다. J. M. Bergoglio, Nei tuoi occhi è la mia parola. Omelie e discorsi di Buenos Aires 1999-2013) [당신의눈 속에 제 말씀이 있나이다. 1999-2013년 부에노스아이레스 강론과 강연 모음], Milano, Rizzoli, 2016.
2) “Cronaca contemporanea (26 aprile – 9 maggio)” [현황 보고], in Civ. Catt. 1956 II 424-426. 실제로 동상이 현재 있는 장소에 설치되기 전에, 새로 설립된 본당으로 옮겨져서 진열됐는지는 사실 명확하지 않다.
3) 이 사건의 상황적인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자료도 참조하라. 프란치스코 교종, 「창립 70주년을 맞이하여 ACLI에 행한연설」, 2015년 5월 23일.
4) 앞서 간략하게 언급했던 것처럼, 이런 상황에서 교종은 다른 방식으로 결정했다. “이미 제정했던 것처럼, 우리는 정확히 5월 1일을 노동자 성 요셉의 전례 축일로 제정하기로 확정한다고 기꺼이 선포합니다. 사랑하는 남녀 노동자 여러분, 우리의 이 선물이 기쁘십니까? 나자렛의 겸손한 노동자는 하느님과 성교회와 더불어 육체노동자의 존엄성을 상징할 뿐 아니라, 언제나 여러분 가정과 여러분의 보호자가 되어주기에, 우리는 당연히 기뻐해야 합니다”(비오 12세, 「노동자 성 요셉 축일을 맞아 행한 연설」, 로마, 1955년 5월 1일). 사실, 보다시피, “노동자 성 요셉”도 아주 대담한 표현으로 여겨졌다.
5) 1955년 1월 9일 몬타니니 대주교는 세스토 산 조반니(Sesto San Giovanni: *역주-밀라노 북동부 공업지대)의 노동자들에게 말하는 가운데, 그가 대주교로 서임된 것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선임자였던 델아콰(Dell’Acqua) 대주교가 그를 ‘노동자들의 대주교’라고 정의했던사실을 떠올렸음을 기억하자. “(선임 대주교님은) 제가 노동자들의 대주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여기서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가능한 한 노동자들의 대주교가 되도록 전력을 다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제 임무를 다하고 싶습니다.”
6) 실제로 그 동상은 리나테(Linate)로 옮겨졌고, 거기서 참피노(Ciampino) 공항으로 보내진 다음 다시 소형 헬기에 실려 로마 중심부에도착했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1960년의 영화 La dolce vita [달콤한 인생]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https://youtu.be/OQQq5IHCROY
7) D. Penazzato, “Il nostro 1° Maggio” [우리의 5월 1일], in Il giornale dei lavoratori [노동일보] 1956.5.3.
8) A. Boschini, 「교회와 이탈리아 그리스도교 노동자 협회」(Chiesa e ACLI), Napoli, Edizioni Dehoniane, 1975, 37 s.
9) 이 행사의 재구성은 오랜 기간 ACLI 운영진 중 한 명이었던 란프란코 노르치니 팔라(Lanfranco Norcini Pala)의 협조로 이루어졌다. www.farebene.info 참조.
10) 성 요셉을 노동자로 기억하는 문서 증언은 1722년 유럽에서 작성된 문서에서 발견되는데, 이는 외경인Storia di San Giuseppe falegname [노동자 성 요셉의 이야기]의 라틴어 번역서를 통해서였다. 노동자 요셉에 대한 첫 번째 묘사는 초대 그리스도교 미술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가지 사례는 밀라노 주교좌성당의 복음서인데, 이는 5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상아로 장식된 그림 안에 예수탄생사화를 묘사하는 장면에서 성 요셉이 날선 칼날을 갖춘 톱을 움켜쥐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노동자 요셉을 표현한 성화는 탁발수도회들이 대중 신심의 확산에 불을 지핀 시기부터 더 폭넓게 퍼져나갔다.
11) P. Teilhard de Chardin, L’Ambiente Divino, Brescia, Queriniana, 2003, 39. (본문 인용은 이문희 옮김,『신의 영역』, 분도출판사, 2010, 38). * 옮긴이 직역: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분이 우리에게 부과하신 노동에서 우리의 눈 길을 돌리시거나 시간을 빼앗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바로 이 노동을 통해서 우리에게 도달하실 수 있는 분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 그분께서 활발히 살아계실 뿐 아니라 강생하신다는 점에서, 하느님은 손이 닿을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우리에게서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라, 매순간 우리의 행동 안에, 그때마다의 활동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신다. 어떤 식으로든 하느님은 나의 펜, 나의 곡괭이, 나의 붓, 나의 바늘, 곧 내 마음, 내 생각의 그 첨단에존재하신다. 내가 몰두하고 있는 선, 자극, 점이 자연적으로 마지막 완성에 도달할 때, 나는 비로소 나의 깊은 의지가 지향하는 최종 목표를 달성할 것이다.”
12) 아씨시 Pro Civitate Christiana 현대미술관에 보관된 노동자 예수를 묘사하고 있는 작품들을 가상으로 둘러보는 것이 가능하다. http://procivitate.assisi.museum/visvirt/visvirt63_1.htm
13) G. Rossi, “서문”(introduzione), in 「현대 예술에 나타난 예수」(Gesù nell’arte contemporanea), Assisi, Pro Civitate Christiana, 1964, 8.
14) 참조: F. Santaniello, “Gesù divino lavoratore. Una nuova iconografia per l’arte cristiana” [거룩한 노동자 예수 – 그리스도교 예술을 위한새로운 성화상], in S. Bignami – P. Rusconi – G.Zanchetti (edd.), Galleria d’Arte Contemporanea della Pro Civitate Christiana di Assisi [아씨시의 프로 치비타테 크리스티아나 현대미술관], Firenze, Giunti, 2014, 19-27
15) G. Rovella (ed.), Cristo lavoratore [노동자 그리스도], Roma, Società Grafica Romana, 1955 참조.
16) 상동. 굵은 글꼴은 글쓴이 강조.
17) Gesù lavoratore. Signore, insegnaci a lavorare!), Roma, Società Grafica Romana, 1956, 17.
18) 역주: Aldo Moro. 1963~64년, 1964~66년, 1966~68년,1974~76년, 1976년 등 이탈리아 총리를 다섯 차례 역임했던 기독교 민주당 대표
19) Primo Premio Nazionale Gesù Lavoratore per opere di pittura e bianco e nero riservato ai lavoratori. Catalogo [제1회 노동자 예수 전국 경연대회 수상작, 노동자들에게 헌정된 컬러와 흑백 작품 도록], Roma, Istituto Beato Angelico [복자 안젤리코 미술학교], 1958, 5.
20) Primo Premio Nazionale Gesù Lavoratore,15.
21) 1956년 6월에 포츠난Poznań의 노동자들은 노동조건 향상과 그들의 권익을 요구하며 시위를 감행했다. 공산 정부는 폭동을 진압하기위해 전차(戰車)를 동원했고, 50명 이상이 죽임을 당했다. 비록 그의 시에서 사건에 대한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아마 이 비극적인사건이 시작(詩作)에 영감을 불어넣은 동기 중 하나였을 것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종의 시에 대해서는 다음의 책을 참조하라. A. Spadaro, Nella melodia della terra. La poesia di Karol Wojtyła [지상의 멜로디 안에서. 카롤 보이티와의 시], Milano, Jaca Book, 2006.
22) Primo Premio Nazionale Gesù Lavoratore [노동자 예수 전국 경연대회 수상작], 상동, 18. 굵은 글씨 ‘노동자 예수의 신비’는 편집자 강조.
23)  같은 곳, 21-26.
24) 같은 곳, 21.
25) 같은 곳, 25.
26) L. Civardi, “Il culto di Gesù lavoratore” [노동자 예수 경배], in Azione sociale, 1953년 3월.
27) 역주: 프란치스코 교종, “코로나19, 성체강복 강론”, 2020년 3월 27일, <바티칸 뉴스>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