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호킹의 저술에 나타나는 하느님의 이미지

L’immagine di Dio negli scritti di Stephen Hawking

  © La Civiltà Cattolica, Q 4073, 7 Mar 2020 I, 477-485
넬슨 벨란디아 Nelson Velandia 신부(예수회)1)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전주교구) 옮김

  2년 전 스티븐 호킹이 타계했는데,2) 그는 블랙홀, 양자 우주론 그리고 우주의 기원에 관한 연구에 힘입어 세상에서 가장 권위 있고 유명한 이론 물리학자들 중 한 명이었다. 그의 대중적인 인기는 그의 전달 능력 덕분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교황청 과학원 회원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를 기억하는 것은, 20년 전 진단받은 질병으로 1980년대부터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의사소통은 음성 변환기에 의존하였다. 그리고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중적 이미지는 현대과학의 유명한 아이콘들 중 하나가되었다.

  본 주제의 핵심으로 들어가기 전에 몇 가지 미리 알아두어야 할 사항들을 제시하는 것이 좋겠다. 첫 번째는 신학적 고찰이다. 사회가 가장 보수적인 것에서 가장 자유주의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역사의 과정에서 만들어가는 하느님의 이미지들이 존재한다. 하느님의 사실적인 이미지에 대해 말할 수 있을 때도 ‘진짜’ 이미지가 무엇인지 단정하기 위한 열쇠나 대답을 우리에게 줄 수 있을까? 그리스도교에서하느님의 모습은 우리 가운데 살고 계시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신 예수님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진다. 이를 말한 호킹은 분명 간접적으로 받을 수 있는 종교 문화와 형성에 익숙하지 않다. 우선 우리는 호킹이 제시한 모습이 그리스도교의 이미지가 아니고, 또는 더 좋게 말하면 매우 제한적이고 육화하신 하느님의 체험을 흐리게 하는 이미지라고 말할 것이다. 두 번째로 우리는 본 조사가 살아생전이나 사후에 출간된 호킹의 대중적인 저서들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는 그 과학자 호킹이 추정했던 하느님의 이미지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장할 수는 없지만, 그의 저서들은 그가 만든 하느님 개념에 관한 좋은 단서를 제공한다.

  본 기사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과학과 신앙 사이의 대화를 시작하고, 우리가 과학 연구의 도움을 받아 자연의 신비를 더 깊게 알며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에서 우리의 위치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신학은 우리 가운데에서 하느님의 다양한 체험을 드러내고 신성을체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없다는 것을 발견하도록 도움을 준다. 사실 이것은 더 나은 신학적 연구의 첫 단계가 될 수 있고, 여기서 제시된 원문들을 다시 읽고 비판 신학에 근거한 분석을 진행하여 호킹의 저서들에서 하느님의 이미지에 대한 몇 가지 결론을 끌어낼 수 있다.

  하느님 부재에 관한

  이 기사에서 우리는 호킹이 가진 하느님 이미지, 곧 역사와 하느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체험 자체에 의해 매개되는 인식과 관련 있는 몇몇 주제들을 다룰 것이다. 우리가 사람들을 영적으로 동반하는 체험은 하느님께서 스스로 모든 존재에게 드러내신다는 것을 단정하도록해준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육화된 존재이고, 우리는 중재가 필요하다.

  흥미롭게도 칼 세이건Carl Sagan은 호킹의 저서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 빅뱅에서 블랙홀까지』(1988)에 대한 서문에 이렇게 언급했다. “이 책은 또한 하느님에 관한 책 … 또는 아마도 하느님 부재에 관한 책이다. 하느님(神)이라는 말은 이 책의 면들을 채우고 있다. 호킹은 ‘하느님이 우주를 창조할 때 어떤 선택을 했는가?’라는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탐구를 감행한다. 호킹은 자신이 명확히 언급하듯이 하느님 마음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적어도 지금까지 그의 노력의 결론을 훨씬 더 예상치못하게 만든다. 곧 우주는 공간에서 경계가 없고 시간에서 시작이나 끝도 없으며 창조자에게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3)

  일반적으로 호킹이 자신의 저서들에서 표현한 논평은 가톨릭 교회의 경험을 대상으로 삼고 있고 그의 비판은 부적절한 하느님 시각visione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창조의 하느님

  이것은 저자가 말하려고 하지 않은 것을 원문에서 말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만일 우리가 본문을 주의 깊게 읽는다면 우리는 호킹이 신성에 닫혀있지 않고 우주의 창조에 대한 하느님 참여를 선험적으로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이들은 과학이 법칙들의 첫 번째 부분만 신경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그들은 최초 상태의 문제는 형이상학이나 종교에 맡겨야 할 주제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에 따르면, 하느님은 전지전능하면서 마음대로 우주의 모든 시작 조건을 정할 수 있었다. 그것은 사실일 수도 있지만,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마찬가지로 하느님이 – 자신의 전지전능함에 기초하여 – 완전히 임의대로 이를 발전하게 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그(=하느님)는 정해진 법칙에 따라 매우 규칙적인 방식으로 이를 진화시키기로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초기 조건 또한 매우 정확한 법칙에 따라 지배받았다고 가정하는 것은 그만큼 타당하다고 본다.”4)

  철학에서는 “창조자(데미우르고스) 신”dio demiurgo의 개념, 곧 우주를 창조한 후 다시는 개입하지 않거나, 더 좋게 말하면, 우주에 다시는 개입하지 않는 신성의 개념이 존재한다. 만일 우리가 주의 깊게 읽는다면, 호킹에게 그리스도교 신학은 우주에서 활동하는 하느님을상당히 천천히 이 인류가 역사를 건설할 때 인류의 편에서 걷고 스스로 헌신하는 신이 아니라 ‘마술사’mago로 생각한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사랑이신 하느님은 당신 모습대로 만든 인간에게 준 완전한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 오히려 존중한다.

  호킹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라플라스(Laplace, 1749-1827)의 결정론은 두 가지 면에서 불완전하였다. 그의 이론은 법칙이 어떻게 선택될수 있는지 말하지 않았고 우주의 초기 형태, 곧 하느님에게 남겨진 문제들을 명시하지 않았다. 우주가 어떤 방식으로 시작되어야 하고 어떤 법칙을 따라야 하는지를 선택하는 것은 하느님에게 달려 있었지만, 그(=하느님)는 일단 우주가 시작된 이후로 다시는 우주에 개입하지 않았다. 하느님은 사실 19세기의 과학이 이해하지 못했던 지역에 한정되어 있었다.”5)

  이 구절은 위에서 말한 과학과 신앙 사이의 분리, 하느님 존재와 무관한 영역들이 있고, 그리고 과학이 그의 관점을 제시할 수 없는 다른 영역들이 있다는 사고를 잘 요약한 것이다. 다른 한편, 하느님이 어떤 방식으로 우주를 창조하였는지를 표현할 때 반어법의 정점을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이전에 살펴본 내용의 결과다. 곧 하느님은 우주를 창조하였고, 그러고 나서 창조된 모든 실재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절대자에 대한 개념이 있었다. 당연히 호킹은 과학적 관점에서 이 개념을 공유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신학은 더 나은 해석을 제공하였고 그의 사고방식은 현실로부터 분리된 한 분 하느님과 동떨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그한 분 하느님은 인간이 이를 허락하는 한 언제나 창조를 새롭게 한다.

  만일 모든 것을 사전에 통제하고 우주와 인류에게 어떤 자유의 공간도 주지 않는 “신”을 믿는다면 하느님은 우주의 미래와 다음 단계를 “알지” 못한다고 말할 때 모순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반대로 만일 우주와 함께하는 역사에 구체화된 하느님을 믿는다면, 분명히 인류또한 그가 다른 길보다는 한 길을 따르는 것을 문제로 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다른 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과학자 스티븐 호킹의 저서 『호두껍질 속의 우주』(2002년)에서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이 저서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지만 시간의 시작과 끝은 일반 상대성의 방정식이 적용되지 않는 장소이다. 그래서 이론은 빅뱅에서 무엇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에 따르면, 이것은, 하느님이 어떤 방식으로든 마음대로 우주를 시작하는 데 자유롭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면, (나를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에 따르면, 우주의 시작은 다른 순간에도 적용되는 동일 법칙에 따라 지배되어야 한다.”6)

  시간도 공간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빅뱅 이전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는 주장은 시간도 공간도 없었기에 창조 이전에 하느님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뒤따르지 않는다.

  다른 한편, 이를 주장하는 것은 하느님을 “인간 동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친밀함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신성을 이해하는 그런 방식은 부분적으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류의 기대에서, 특히 현대의 인간 중심주의와 인간의 합리성의 한계 내에서 하느님을 축소하려는 기대에서 나온다. 호킹은 그의 저서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서』(2002년)에서 이 개념을 언급할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이것은 우주에 대한 우리의 시각에 큰 변화를 의미하였다. 만일 우리가 중심에 있지 않다면 우리의 존재는 어떤가치가 있을까? 왜 하느님이나 자연의 법칙은 코페르니쿠스가 우리에게 남겨둔 태양 주위를 도는 세 번째 바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걱정해야 하는가?”7) 여기에서 우리가 과학자 호킹의 다양한 저서에서 다시 찾아보는 신성의 개념, 곧 자연의 법칙에 대한 하느님의 동등함도 나타난다. 이러한 하느님의 식별 모델은 이미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그의 저서들에서 제안한 것이었다.

  우리는 앞서 말한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만일 하느님이 있다면, “창조주가 되는” 이미지가 일종의 창조자(데미우르고스), 다시 말하면역사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 한 분 하느님, 창조할 때 등장하지만 진화 과정과는 동떨어진 한 분 하느님이다. 진정한 문제는 하느님이 우주를 위해 어떤 과정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문제임을 생각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워진다.

  반면에 근본적으로 고려할 점은 하느님이 우주에 첫 자극을 주었고 그러고 나서 역사에 함께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호킹은 그의 저서 『시간의 역사』8)에서 과학과 신앙 사이에 큰 차이를 제시하는데, 여기에서 하느님의 역할은 분명히 우주와 함께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양자 중력이 우주가 특별한 단일성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았지만, 오히려 경계나 한계가 없는 일종의 곡률에 대해 말할 수있다고 추론할 수 있게 하였다고 주장한다. 우주의 기원을 이해하는 이러한 방식은 한 분 창조주의 존재와 모순되지 않는다. 우주에서 멀리 떨어진 한 분 창조주는 아니지만, 처음, 중간 그리고 이후에 있는 창조자이다.

    2005년에 호킹은 『신이 만든 정수: 역사를 바꾼 수학적 돌파구』(“신이 완전정수를 창조했다”)라는 제목의 저서를 출간하였다. 호킹과 하느님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사람에게 적절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그 저서는 그러한 관계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영국의 과학자호킹이 이러한 제목을 붙인 이유에 대한 우리의 가설은, 피타고라스의 시대에 무리수를 생각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문제를 제기하였고, 따라서 감히 그 문제를 대담하게 더 깊이 파고드는 것은 형성된 질서, 그리고 분명 종교 문제를 다르게 생각하는 것과 같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서 이러한 주제에 대한 명확한 언급을 찾을 수 없다. 그것은 다양한 수학자들의 원문들을 모은 선집이기 때문이다. 호킹은 현상과 다르게 생각하는 이런 가능성을 남겨 놓는다.

  과학과 신앙 사이의 논쟁

  2010년에 호킹과 레너드 믈로디노프가 쓴 또 다른 저서 『위대한 설계』9)가 출간되었다. 그러자 언론은 호킹이 이 원문에 언급한 인용문을 매우 강조하였는데, 거기에서 라플라스는 우주의 상태에 대해 말하기 위해 하느님의 가설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공교롭게도 그 결과는, 우선 과학 교과서가 종교 주제를 다룰 때 제기하는 논쟁이 일시적으로 유보되었다는 점이다. 둘째, 이 저서에는 믿음과 과학 사이의 대화를 위한 요소를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는 훨씬 더 흥미로운 다른 인용문들도 있다. 예를 들면 기적의 주제와 데카르트10)가 이를 대하는 방식이다. 비록 이것이 호킹에게 직접적인 관심을 끄는 주제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유형의 문제들을 다루는 것이신앙과 과학, 신앙과 이성에 관해 시작되는 토론을 향한 첫 단계라고 본다.

  물론 호킹의 저서는 신자들이 속해 있는 그리스도교 입장과 일치할 수 없다. 그렇지만 만일 논쟁에서 입장을 취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비판하고 있는 것을 가까이에서 아는 것이다. 이것은 호킹이 실제로 그의 어떤 저서에서도 하지 않는 연습이다. 그의 비판 가운데 많은 것은 일상사에서 나오고, 그리고 나아가 – 이것은 아마도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 그는 결코 현대 신학자와 대화를 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많은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신자들에서도 다른 관점에 대해 개방된 학술 연구를 찾을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논쟁은 상상이나 전통적으로 축적된 자료에서 생겨나지만, 드물게 상대방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수고를 떠맡는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보완적인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인데, 거기에서 모든 지식은 하나의 진실을 추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상대방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내세우고 이러한 진실이 다른 사람들의 시간과 체험으로 발전하고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한 논쟁에서 호킹이 그의 저서에서 제시하는 인용문이나 질문을 첨부하는 것이 적절하다. “우리는 생명이 가능한 우주]에 살고있지만, 만일 우주가 조금만 다르다면, 우리와 같은 존재들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미세한 조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그것은 결국 우주가 자비로운 한 분 창조주에 의해 계획되었다는 증거인가? 아니면 과학은 다른 설명을 제공하는가?”11). 그리고 다시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런 식으로 우주를 창조하기로 선택한 한 분 하느님이 존재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누가 또는 무엇이 우주를 창조했는지 물어보는 것은 타당하지만, 만일 그 대답이 하느님이라면, 문제는 단순히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누가하느님을 창조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된다. 종교 개념에서 한 분 창조주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실체가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되며, 이 실체를하느님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하느님 존재를 위한 제1원인에 대한 논증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반면에 우리는 어떤 신성한 존재도 요구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과학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으면서 이러한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12)

  마지막으로 호킹의 사후의 저서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을 고찰해보자. 우리가 보기에 호킹은 여기서 종교를 이해하는 자신의 방식을 선회한다. 우리는 그가 신앙을 받아들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가 대화에 열려 있고 그의 입장은 다른 저서들에서처럼 급진적이지 않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인용문을 언급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나는 하느님과 전혀 관계가 없다. 내 작업이 하느님 존재를 증명하거나 반박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내 목표는 우리를 둘러싸는 우주를 이해하게 해주는 합리적인 틀을 찾는 것이다.”13)

  우리가 이미 말한 대로, 여기서도 호킹이 하느님 존재에 관해 묻는 것은 흥미롭다고 본다. 아마도 그는 신학적 수준에서 많은 요소들을제공하지 않지만, 이 문제를 제시한다는 단순한 사실은 이미 과학과 신앙 사이의 대화를 흥미롭게 만든다. 동일 저자는 하느님의 이미지그리고 하느님과 그에게 부여된 특징과의 관계가 무엇인지 명확히 한다. “나는 아인슈타인이 그랬던 것처럼 자연의 법칙을 나타내기 위해 ‘하느님’이라는 용어를 비인칭적 의미로 사용한다. 그러므로 이런 관점에서 하느님의 마음을 아는 것은 자연의 법칙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예측은 금세기 말까지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14)

  우리가 호킹 책을 읽으면 그의 하느님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조물주’fattore 신이라는 인식이 강화되고, 결국 ‘신’은 아무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당연히 하느님은 그런 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게 그 해결책은 이런저런 입장들 가운데에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능력의 영역을 합법적으로 존중하면서 풍요로운 방법으로 구축해야 하는 대화이다.

   결론

  우리가 설명한 내용에서 몇 가지 결론적인 고찰을 끌어낼 수 있다. 호킹은 과학–종교, 과학–하느님 논쟁에서 다양한 단계를 따른다. 그의 하느님의 이미지는 실재와 분리된 신, 자연법칙과 동일한 신, 철학자들의 신으로 남아있다. 호킹은 어떤 현대 저자도 인용하지 않는다. 그의 입장은 때로는 하느님 존재를 제쳐두고, 때로는 대화에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거기에는 일종의 뿌리깊은 편견이 있는 것 같은데, 여기서 그의 하느님 ‘가설’이 애매하고 일관성 없이 전개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보기에 호킹은 시대에 뒤떨어진 신학에속하는 하느님 이미지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현재 신학은 물론 학술적인 수준의 개념보다는 의심할 여지 없이 그가 학교에서 받은교육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록 호킹은 신자가 아니고 애써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고 학술 논쟁에서 이 주제와 관련하여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성경·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 Nelson Velandia insegna Fisica nella Pontificia Universidad Javeriana de la Compañía de Jesús, sede Bogotá, Colombia. 벨란디아 예수회 신부는 콜롬비아 보고타 교황청립 하베리아나 대학 물리학 교수이다.
2) Stephen Hawking: 1942년 1월 8일 옥스퍼드에서 출생, 2018년 3월 14일 캠브리지에서 사망
3) S. Hawking, A Brief History of Time: From Big Bang to Black Holes Dal big bang ai buchi neri. Breve storia del tempo, Milano, Rizzoli, 2015, 10].
4) Ibid., 24 s.
5) Ibid., 194.
6) S. Hawking, The Universe in a Nutshell L’universo in un guscio di noce, Milano, Mondadori, 2017, 35].
7) Id., On the Shoulders of Giants: The Great Works of Physics and Astronomy, Philadelphia, Running, 2002, 10.
8) S. Hawking – L. Mlodinow, A Briefer History of Time, New York, Bentam Dell, 2005 참조.
9) S. Hawking – L. Mlodinow, The Grand Design Il grande disegno. Che cosa sappiamo oggi dell’universo, Milano, Mondadori, 2010].
10) cfr Ibid., edizione Kindle, pos. 258 ss.
11) Ibid., pos. 1618.
12) Ibid., pos. 1620.
13) S. Hawking, Brief Answers to the Big Questions Breves respuestas a las grandes preguntas, Barcelona, Critica, 2018, 54 (in it., Le mie risposte alle grandi domande, Milano, Rizzoli, 2018)].
14) Ibid.,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