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스승, 미겔 앙헬 피오리토

MIGUEL ÁNGEL FIORITO, MAESTRO DI DIALOGO

© La Civiltà Cattolica, Q 4070, 18 Gen 2020 I, 105-120

 

교종 프란치스코 담화(2019, 12.13)

장동훈 빈첸시오 신부(인천교구) 옮김

 

  2019년 12월 13일 금요일 오후, 교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Jorge Mario Bergoglio 자신의 영적지도 신부이기도 했던 예수회 미겔 앙헬 피오리토(1916-2005) 신부의 글들을 모아 다섯 권으로 엮은 전집을 소개하기 위해 예수회 총원을 찾았다. 전집은 호세 루이스 나르바하Jose Luis Narvaja가 편집하여 『치빌타 카톨리카Civiltá Cattolica』가 발행하였다. 발표회 중 행해진 교종의 연설을 몇 가지 즉석에서 덧붙여진 것들을 포함해 아래 옮겨 싣는다.

  스파다로 신부님은 저에게 다섯 권에 달하는 피오리토 ‘사부Maestro’의―저희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예수회원들은 그분을 이렇게 부르는데 친숙합니다―전집Escritos를 주시며 출판기념회가 있을 예정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사실 이 책들은 호세 루이스 나르바하 신부님이1) 엮어 치빌타 카톨리카에서 발행한 것들입니다. 거기에 저도 참석하고 싶어서 “그 분의 제자들 중 하나가 발표하도록 하면 어떨까요?” 스파다로 신부님께서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예를 들자면 누가 있을까요?” 그에게 답했습니다. “저요!” 그래서 제가 여기 있습니다.

  서문에서 호세 루이스 신부님은 피오리토 신부님의 면모를 ‘대화의 스승’으로 심화시켜 주셨습니다. 저는 이 호칭이 마음에 듭니다. 왜냐하면 스승Maestro으로서 신부님의 면모를 일종의 역설로 부각시켜 오히려 잘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피오리토 신부님은 말수가 적었지만 듣는 데 있어서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이 경청의 능력은 식별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대화를 떠받치는 기둥들 중 하나입니다.

[* 편집자 주: maestro 란 단어는 같은 본문에서도 맥락에 따라 ‘장인, 사부, 스승’ 등  다르게 번역될 수 있다.  이날  호세 루이스 신부가 먼저 발표한 피오리토 신부의 면모는 그의 전문성이 부각되어 대화의 ‘장인’으로 들린다면, 프란치스코 교종의 나눔은 피오리토의 영적 지혜가 더 강조되므로 대화의 ‘스승’이 더 적절해 보인다.]

  따라서 피오리토 신부님이 대화를 실제 어떻게 실천하고 가르치셨는지 앞서 모든 면에 걸쳐 살펴보았던 연구를 다시 환기하고 싶습니다. 학교라는 공동의 정신 안에 이루어지는 스승과 제자들간의 대화, 저자들과, 텍스트와 나누는 대화, 역사, 그리고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 제가 제1권에 실린 서언에서 했던 몇 가지 성찰들을 넓혀가며 발표문을 구성하는데 있어 저에게 도움이 되었던 두 가지를 언급하고자 합니다.

  먼저 피오리토 신부님께서 『이상적 학교로서의 플라톤 아카데미L’Accademia di Platone come Scuola ideale』라고 제목을 붙인 연구에서 사용하신 표현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스승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Magister dixerit2)라는 표현입니다. “스승이 말한 것”에 특정하여 언급되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훌륭한 제자라면 그가 받은 가르침의 가치에 책임을 느끼고, 그 가르침을 지키길 원하며 스스로 이렇게 말할 것이란 것입니다. “스승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3) 다양한 글들을 다시 읽으며 “이와 같은 상황에서 스승이라면 무엇을 말했을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실상 그것은 “무엇을 말했을까”보다는 실제로는 “어떻게 말했을까”에 가까울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나르바하 신부님이 강조한 또 다른 한 가지, 즉 피오리토 신부님이 자신을 해설가(commentatore), 그것도 문자적 의미로서의 해설가로 여기길 좋아했다는 사실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함께 생각하며(co-pensando) 해설하는(commenta) 사람, 즉 저자와 [상대와] 함께 생각하는(com-mentum) 것입니다.4)

  그러니까 오늘 제가 하려는 것도 일종의 ‘함께 생각하기’commento입니다. 저에게 매우 유익했고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몇가지를 피오리토 신부님, 그리고 나르바하 신부님과 함께 생각하는 것입니다. 적절한 비평자료와 더불어 원문 모두를 함께 실은 훌륭한 작업 덕택에 작품들을 어려움 없이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피오리토 신부님은 자신의 글들Escritos을 이와 같이 펴낸 것에 대하여 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우선은 아마도 먼저 성 이냐시오 연구자들이라는 좁은 영역을 제외하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저자인데 과연 이럴만한 가치가 있었겠느냐는 것일 겁니다. 저는 그러나 영신수련을 이끌고 영적으로 동반하는 이들, 더 풍요로운 영신수련을 제공하고 다른 이들을 지도하는데 실제적 도움을 주길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신부님의 글들에 관심을 가질 것이란 사실에는 그분도 동의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피오리토 신부님은 자신을 많이 드러내진 않았지만 좋은 스승으로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훌륭한 저자들을 많이 알려주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분은 저자들을 선별해 아르헨티나 예수회 관구의 월간지 『영성회보』Boletín de espritualidad에 저술들을 해설하며 우리에게 최고 중의 최고를 맛보게 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교회에 말씀하시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였던, 동시대와 고전에 이르는 저자들의 엄청나게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늘 시대의 징표들을 찾던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설해 주셨던 작품들은 당대의 문제들만이 아니라 좀 더 깊은 차원의 우려들에도 답을 제시하며 새롭고 창의적인 제안들을 일깨웠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 신부님께는 가치 있게 보였던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처음 그분의 이름을 공적으로 언급했던 것은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예수회원들과의 만남에서였습니다. 그들 중 양성담당자였던 한 분이 저에게 젊은 예수회원을 위해 어떤 모델을 추천하겠느냐고 물어왔습니다. 두 개의 표상이 떠올랐습니다. 첫 번째는 그다지 확신할 수 없었던 반면 다른 하나는 매우 그러한 인물, 바로 피오리토 신부님이었습니다. 엔지니어로 일하시다 예수회에 입회하셨습니다. 철학부의 교수이자 학과장이었지만 영성을 사랑하셔서 우리 학생들에게 이냐시오 성인의 영성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에게 “식별의 길”을 가르친 이도 신부님이셨습니다.5) 그곳 미얀마에서 신부님의 이름을 거론하게 되어 기쁘다고 덧붙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 생각엔 신부님도 당신의 이름이 그렇게나 먼 곳에서 언급되리라곤 결코 상상하지 못하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모임과 같은 행사에서도 말입니다.

 신부님은 당신의 제자들 중 한 명이 당신의 글들을 출판하고, 오늘 그들 중 또 다른 한 명인 [제가] 그것을 소개하는것에 많이 흐뭇해 하셨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복음적 의미에서 진정한 스승은 자신의 제자들 또한 한 때 제자였던 자신의 처지를 늘 간직한 채 스승이되는 것을 기뻐합니다.

  나르바하 신부님이 보여주신 것처럼, 피오리토 신부님은 “지적 재산은 공동체적 의미를 지닌다”는 “학교의 정신”을 전해주셨습니다. 사실 “다른 이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어떤 제자도 자기 스승의 유산에 대해 절대적 주인으로 행세할 수 없습니다. 역으로 제자는 같은 영적 보물을 지닌 이들이 더 많아지도록 그것을 나누길 원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그것이 더 잘 나누어질 수 있는 방식으로 나누어지길 희망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피오리토 신부님은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그리스도교 가르침”De Doctrina Christiana에서 사용한 탁월한 표현을 인용하십니다. “모든 것은 사실 그것을 나눌 때 소진되지 않습니다. 만일 그것을 나누지 않고 소유하기만 한다면 소유하길 원하는 만큼 소유할 수 없습니다.” (I, 1)6)

  총원의 이 대강당에서 신부님의 저술들을 소개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저에게는 예수회가 저에게 주었고 저를 위해 베푼 모든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피오리토 스승님의 인격에는 저를 양성하신 수많은 예수회원들도 포함됩니다. 이 자리에서 저는 온생애에 걸쳐 겸손한 봉사자로 머무는 기쁜 표양의 스승이신 여러 평수사 형제들을 특별히 언급하고 싶습니다.

  동시에 이것은 또한 영적 동반의 은사에 충실한 수많은 남녀들에게 격려와 감사를 보내기 위해서인데, 그들은 이 사명에서 형제 자매들을 안내하고 지지하며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 최근 제가 『사제들에게 보내는 편지』Lettera ai sacerdoti에서 “스스로 제자임을 깨닫는 체험을 하도록”7) 인도하는 길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이미 제자로 존재하는 것도 대단한 것이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제자임을 인식하게 되는 체험 (영신수련에서 성 이냐시오께서 언급하신 것처럼 이 은총을 열매 맺기 위해 자주 묵상하면서) 말입니다. 실제로 주님은 홀로, 멀리 떨어진 교단에서는 더 더욱 가르치지 않으셨고, “학교”를 이루어 언젠가는 다른 이들의 스승이기도 할 자신의 제자들에 둘러싸여 가르치셨습니다. 우리 안에 이러한 인식은 그분의 말씀을 더 비옥하고 풍요롭게 합니다.

  소개글에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미겔 앙헬 피오리토 신부님의 저술Escritos 전집은 그분의 제자였고 제자이며 여전히 그분의 가르침을 양식으로 살아가는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서입니다. 온 교회에게 큰 유익이 되는 글들입니다.” 저는 이를 확신합니다.

간추린 역사

  우리 아르헨티나 예수회원들에게 이 책들의 글들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의 역사를 다시 읽는 것을 의미합니다. 연대기 순으로 배열되어 70년에 이르는 우리 가족의 삶을 담고 있는 글들은 우리로 하여금 그 맥락을 떠올리게 합니다. 거기에는 단순히 당장의, 특정한 것만이 아니라 더 넓은, 피오리토 신부님이 후고 라너Hugo Rahner를 쫓아 “영성의 메타 역사metastoria8)라고 부른 보편 교회의 흐름도 포함됩니다. ‘메타 역사’은 피오리토 신부님에게 있어서 핵심 개념입니다.

  “문헌에는 일종의 메타 역사가 존재하는데, 이것은 때때로 정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어떤 신비적 지성의 신원에 뿌리내려, 가시적 교회 안에 비가시적으로 현존하는 하나의 동일한 성령의 지속적 활동에 의해, 각기 다른 시대의 다양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 영적 동질성의 궁극적이지만 초월적 이유로 작용합니다.” 피오리토 신부님은 최근 제가 시성한 존 헨리 뉴먼(John Henry Newman) 성인이 교회에 대해 전망한 것을 자신의 통찰로 삼으셨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절대 한번 소유했던 것을 잃지 않는다. […] 교회는 삶의 한 국면으로부터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기보다, 자신의 늙음 안에 자신의 젊음과 완숙함을 모두 간직한다. 교회는 자신이 소유한 것을 바꾸기보다 쌓아왔고, 상황에 따라 자신의 보화로부터 새 것이나 옛 것을 끄집어낸다.”9) 구스타프 말러의 아름다운 구절이 생각납니다. “전통은 잿더미를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보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기서 잠시 몇 가지 날짜들과 의미 있는 저작들을 예로 들까 합니다.

  저는 1961년 칠레에서의 예비연학과정juniorato 과정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피오리토 신부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분은 부에노스아이레스 관구 산 미겔San Miguel에 있는 예수회 양성 공동체인 산 호세 막시모 신학원Colegio Máximo de San Jose의 형이상학 교수님이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신부님을 신뢰하기 시작하였고 그분은 저의 영적 지도자가 되어주셨습니다. 그 즈음 신부님은 영신수련을 동반하고 영성에 관련된 글들을 쓰는데 온전히 투신하기 위해 철학 강의를 내려놓을 수도 있는 깊은 식별의 과정을 지나고 계셨습니다. 1961년에서 1962년에 해당하는 제2권에는 『성 이냐시오의 “원리와 기초”Principio e Fondamento 속 그리스도 중심주의』10)라는 연구가 실려 있는데 저에게 매우 큰 영감을 준 글입니다. 그때부터 저를 인도해 준 몇몇 저자들에게 신뢰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 분들은 과르디니Romano Guardini를 비롯해, 성 이냐시오 영성의 역사적 기원에 관한 책을 쓰신11) 후고 라너, 그리고 “영신수련의 변증법”을 쓰신 페사르Gaston Fessard입니다.

  피오리토 신부님은 “과르디니가 설명하는, 특별히 성 바오로 안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과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 안에서 우리가 발견했다고 믿는 그분의 모습 간의 유사성”을12) 깨닫도록 해주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이냐시오의 “원리과 기초”가 단지 그리스도 중심주의만이 아니라 참되고 진정한 “초기 형태의 그리스도론”도 담고 있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리고 성 이냐시오가 “하느님 우리 주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는 구체적으로 육화하신 말씀, 역사의 주님만이 아닌 우리들 실제 삶의 주인이기도 한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임을 보여주셨습니다.

  후고 라너의 면모 역시 강조하고 싶습니다. 워낙 말수 없는, 자신에 관해 말할 때는 더 그런 스승께서 당신의 영적 회심을 풀어놓을 때의 한 대목을 옮겨오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이를 설명하는 것은 우리 관구의 삶에 하나의 계기로 각인되었고 저의 교종직에서도 영적 식별과 동반에 관련된 것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피오리토 신부님은 1956년 이렇게 썼습니다. “제 편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이냐시오 영성을 숙고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첫 번째 영신수련을 진지하게 마쳤을 때부터, 반대되는 두 개의 영이 갈수록 조금씩 어떤 개인적 선택의 두 단어 안에 인격화 되어가며 서로 번갈아 다가옴을 감지했습니다.” 성찰은 이어집니다. “그러던 중에 가장 사소하고 단조로운 방식으로 – 마치 독일어를 익히기 위한 독서처럼– 제 손 안에 들어온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것은 저에게 표현을 위한 하나의 가능성에 대한 빛나는 계시라기보다는 오래전에 직관했던 이상ideale의 충만한 표현 같았습니다.” 피오리토 신부님은 덧붙입니다. 후고 라너의 경우처럼 “다년간에 걸친 저의 작업이 되어야만 했던 그것은 다른 이들의 작업의 결과에 대한 즉각적 수용이었습니다.”

  후고 라너는 스승의 영혼 안에, 그리고 다른 많은 이들의 영혼 안에, 세 가지의 은총을 자리 잡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냐시오 영혼의 그릇이자 봉인, 열망의 제한 없는 경계인 마지스 magis (ad majorem Dei gloriam); 무의미한 시험들이나 장해물 없이 성인에게 많은 능력을 드러내도록 한 영들에 대한 식별(discernimento degli spiriti); 그리고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전투에서 세운 자신의 공로로서 이냐시오의 영혼 안에 피어난 분별 있는 사랑(charitas discreta)의 은총. 이 전선은 성인의 밖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의 영혼의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지나갔고, 그 때문에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직 양자택일만 남아있는 두 개의 ‘나’로 영혼을 나누었습니다.”13) 이것으로부터 피오리토 신부님은 내용만이 아니라,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당신 주석들의 양식까지 이끌어 냈습니다.

  또 하나의 날짜는 1983년 33번째 총회가 열렸을 때 우리는 아루페Pedro Arrupe 신부님의 마지막 강론을 들었습니다. 피오리토 신부님은 “부성와 영적 분별”14)이란 글을 썼습니다. 이 글을 언급하는 이유는 ‘영적’spirituale이란 용어를 사용할 때 그것이 의미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정의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의 “영성으로의”alla spritualita 회심을 말하며 사용했었습니다. 이 말이 오늘날 자주 축소된 형태로 해석되고 있다고 느껴지는 만큼, 그것의 정의를 회복하는 일은 의미 있어 보입니다. 피오리토 신부님은 이 말을 오리게네스로부터 다시 가져오십니다. “영적 인간은 이론과 실천, 즉 이웃을 돌보는 일과 이웃의 유익을 위한 영적 은사가 통합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카리스마 중에”, 피오리토 신부님은 이어갑니다. “오리게네스는 디아크리시스 diakrisis, 또는 다양한 영들을 분별하는 재능이라고도 지칭한 카리스마를 무엇보다도 강조합니다.”15) 논문에서 신부님은 영적 부성과 모성이 무엇이고 또 무엇을 동반하는지 심화하십니다.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두개의 카리스마를 갖는 것입니다. 영들에 대한 식별, 또는 분별력, 그리고 영적 대화 안에서 언어로 이를 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16) 식별만으론 충분치 않고 “옳고 분별있는 생각을 표현할 줄 알아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이들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17) 이것이 미래에 대한 지식이 아닌, 영적이고 인격적인 체험의 소통을 뜻하는 ‘예언’profezia의 은사입니다.

  신부님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 그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것입니다 – 2005년 8월 9일, 돌아가시기 얼마 전이었습니다. 생일이 지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주일 아침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분의 생일은 7월 22일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이기도 했습니다. 신부님은 알레만Alemán 병원에 입원해 계셨습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더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말하는 능력을 잃으셨던 것입니다. 그저 바라만 보셨습니다. 아주 깊게. 그리고 우셨습니다. 조용한 눈물이 각각의 모든 만남들 속에 살면서 나누었던 깊이를 말해주었습니다. 피오리토 신부님은 영적 위로의 표현인 눈물이라는 능력을 지닌 분이셨습니다.18)

  영신수련 첫 번째 주간에 주님의 시선에 대해 말할 때면 신부님은 베네딕토 성인이 눈물에 두었던 가치를 설명하셨고, 이어 “간신히 밖으로 드러나지만 안으로 모여 가슴을 채우기 전까지 멈추지 않는 하느님의 감미로움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작은 자국이 눈물”19)이라고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Gaudet et exultate에 썼던 한 가지가 떠오릅니다. “사물을 참으로 존재하는 그대로 보고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는 사람은, 삶의 깊은 곳까지 다다를 수 있고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세상이 아니라 예수님께 위로 받습니다.”(GE 76)

  재미있는 일화입니다. 신부님은 하품의 재능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분에게 속내를 열어 보일 때면 때때로 스승은 하품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을 감추지 않고 대놓고 하셨습니다. 지루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것이었고 종종 “나쁜 영을 밖으로 끄집어내는데” 필요해서라고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영혼을 전염시키듯 확장시키는 것은 육체적 차원의 하품과 마찬가지로 영적 차원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대화의 스승

  “대화의 스승”이라는 호칭에서 떠오르는 몇 가지를 자유롭게 설명하고자 합니다. 예수회에서 ‘스승’Maestro라는 호칭은 아주 각별한 것으로 수련장Maestro dei novizi와 제3수련장Istruttore di terza probazione를 지칭합니다.20) 총장 신부님께서 신부님을 제3수련장으로 임명하셨고 여러 해 동안 이 소임을 맡으셨습니다. 수련장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관구장은 신부님을 수련원에 살도록 파견했습니다. 수련장에게는 훌륭한 조언자이셨고 수련자들에게는 하나의 모범이셨습니다.

  스승으로 있는 것, 가르침의 직무munus docendi를 수행하는 것은, 단지 주님의 가르침의 내용을 순수하고 완전무결하게 전달하는 것에만 있지 않고, 가르침을 받을 때와 같은 성령으로 함양하여 “제자로 삼도록” 하는 것에 있습니다. 곧 그 가르침을 듣는 이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가치를 따르는 이들로, (단순) 개종자가 아닌 자유인이자 사명을 지닌 제자들로, 유일한 스승님unico Maestro의 가르침을 수용하고 실천하며, 그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이르신 대로 모든 남녀 백성들에게 선포하러 나가는 열정을 지닌 제자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진정한 스승이란 복음적 의미에서 보면 언제나 제자입니다. 참 스승은 결코 제자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루카 복음에서 주님은 ‘반(反) 스승’anti-maestro의 표양을 보여주시기 위해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느냐?”는 비유를 들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루카 6, 40).

  저는 이 구절을 이렇게 읽고 싶습니다. 스승 위에 올라서지 말라는 것은 단지 우리의 유일한 스승이신 예수님 위에 올라서지 말라는것만이 아니라 우리 사이 사람들 스승 위에도 올라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훌륭한 제자는 스승을 뛰어넘거나 때로는 어떤 가르침들에서 그와 동일해질 때에도 스승을 존경합니다. 지식의 진보가 가능한 것은 실상 훌륭한 스승이 그만의 방식으로 씨앗을 심었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이 뿌린 씨앗이 살아남아 성장하고, 자신을 넘어서기를 소망하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의 구원을 위해 적절한 순간에 적합한 방식으로 복음을 적용해서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잘 식별할 때, 우리는 ‘스승처럼’ come il maestro 됩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확신을 단지 말로만이 아니라 자비의 행위로 실천하는 모습의 가르침으로 보여주십니다. 이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실 때 참 스승이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것들을 잘 알아차리고 그분처럼 행동한다면 그분처럼 될 것입니다. (요한 13, 14-15 참조)

  자비와 관련해, 피오리토 신부님의 글은 영적 자비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모르는 이를 위한 가르침, 필요한 이를 위한 훌륭한 조언, 실수한 이를 위한 교정, 슬퍼하는 이에게 위로, 그리고 이냐시오 성인이 말한 것처럼 “결코 바꿀 수 없는” 실망에 인내를 지키기 위한 도움들. 이러한 모든 은총은 식별인 영적 자비라는 위대한 작품으로 합쳐지고 종합을 이룹니다. 식별은 하느님의 시간과 그분이 찾아오는 시간을 알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영적 눈멀음”cecità spirituale이란 가장 슬프고 측은한 질병에서 우리를낫게 해줍니다.

피오리토 신부님의 가지 특별한 면모

  아주 두드러진 신부님의 특징을 이런 표현으로 묘사하고 싶습니다. 영적 동반에서 당신의 사정을 그분에게 설명하면 그분은 줄곧 떨어져 있었습니다si teneva fuori.21) 어떤 권고나 판단도 없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다시 반추하도록 자유롭게 놔두었습니다. 당신을 존중하시는 것이죠. 자유로움을 신뢰하셨던 것입니다.

  제가 “줄곧 떨어져 있다”si teneva fuori고 말할 때는 관심이 없거나 또는 당신의 사정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잘듣기 위해 밖에 머물러 있음restava fuori을 의미합니다. 피오리토 신부님은 무엇보다 경청이란 점에서 대화의 스승이셨던 것입니다. 당사자의 문제에서 떨어져 있는 것은, 그가 속에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방해받지 않고, 질문 없이,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도록 경청의 공간을 마련해주는 그분의 방식이었습니다. 말하게 놔두는 것이었죠. 그리고 시계를 보지 않으셨습니다.

  신부님은 당신의 마음을 내어준 채 스승님이 가지셨던 평온함 속에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기 마음을 괴롭히고 있는 것을 스스로 들을 수 있도록 경청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으로 “그에게 이야기하러 가기”라고 말했듯이, 우리는 깊숙한 내면에서 영적 투쟁이벌어졌음을 느낄 때면, 직면해야만 하는 몇 가지 결정을 둘러싸고 서로 격돌하는 영들의 움직임을 “피오리토 신부님에게 상의하러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이러한 것들을 경청하는 것에, 보통 사람들이 최신 소식을 듣는 것에 열중하듯, 아니 그보다 더 열중하셨다는 것을 압니다. 막시모 신학원에서 “피오리토 신부님께 상의하러 가라”는 일종의 ‘반복어구’frase ricorrente였습니다. 우리는 이 말을 장상들에게 말했고, 우리 사이에도 주고받았으며, 또 양성 중에 있는 이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분의 “떨어져 있기”는 경청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갈등을 다루기 위한 숙달된 자세이기도 했다. 종종 벌어지는 바와 같이, 들어주고 도와주어야 할 사람이 입장을 취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뒤섞으며, 객관성을 잃어버려 오히려 문제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결과들을 초래하곤 하는데, 이 ‘떨어져 있기’는 거기에 휘말리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론적 주장이 아닌 실천적 방식에서 피오리토 신부님은 지나치게 이념화된 시대에 관구의 위대한 ‘탈이념론자’disideologizzatore이셨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분은 자기 자신과 타인들, 그리고 주님과 잘 대화하려는 열정을 일깨움으로써 탈이념화를 실현했습니다. 유혹과 나쁜 영, 그리고 악마와 “대화하지 않는다”는 것도 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마귀와는 대화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결코 마귀와 대화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성경의 세 구절로 답하시고 쫓아버리셨습니다. 절대로 마귀와는 대화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념은 늘 한가지의 생각과 나누는 독백입니다. 피오리토 신부님은 내담자가 그 안에 있는 본인 자신의 목소리로부터 선한 목소리와 악한 목소리를 구분하도록 도우셨고, 그리고 이것은 다른 이들과 하느님에게 마음을 개방함으로써 우리의 정신을 열어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신부님은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상대방이 이야기 중간에 끼워 넣는, 겉으론 매우 합리적이고 좋은 의도로까지 보이는 어떤 하나의 말이나 행동 안에서 나쁜 영의 유혹을 ‘낚는’pescare 능력과 – 신부님은 어부셨습니다! – 상대가 이를 알아보도록 하는 재능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신부님은 우리에게 잊혀진 1700년대 샹틸리Chantilly의 영적 지도자 클로드 주드Claude Judde 신부님을 알려주셨습니다. 주드 신부님은 책 전체가 악한 영들의 움직임을 해석하는 것과 관련된 작품을 남겼습니다. 매우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피오리토 신부님은 그 책을 발견하고 공부한 후 우리에게도 알려주셨습니다. 신부님은 상대에게 “당신이 사용한 그 표현”(통상 다른 이들을 향해 경멸을 드러내는)에 대해 묻고 이어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유혹에 넘어갔군요!” 그리고 숨기지 않고 호탕하게, 그러나 기분 나쁘지 않게 웃으셨습니다. 상대가 사용한 표현의 객관적 측면을 단죄하지 않고 알려주셨습니다.

  스승님은 각각의 사람과 나누는 당신의 개인적 대화 안에서 공동체적 대화를 가꾸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부님은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을 즐기지 않으셨습니다. 참여한 공동체 모임들에서는 조용히 들으시며 메모하는 일에 몰두하실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영성회보』Boletín de espritualidad의 다음 호 주제나 『연구, 기도, 행동』studio, preghiera e azione의 몇 쪽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모두 이것을 알고 있었고 모두에게 전해졌습니다. 즉 우리가 몰두했던 주제들에 관해 『회보』Boletín를 찾아보고 “스승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엇이 쟁점인지 그 ‘행간’을 읽곤 했습니다. 신부님은 “행간”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스승이셨던 것입니다.

  다른 한편, 잡지가 당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과 반드시 관련 있지는 않았습니다. 나르바하 신부님이 당신의 연구를 위한 실마리를 얻은 피오레토 신부님의 플라톤의 아카데미에 대한 논문처럼, 오늘날 현재적이고, 학교의 정신lo sprito della Scuola을 따라 스승과 제자 간의 관계라는 열쇠로 우리 시대 전체를 ‘읽도록’ 하는 글들도 있습니다.

  신부님은 관구와 공동체 안에 선한 영이 있는지 염려하셨습니다. 만일 선한 영이 있다면, 그냥 “가버리게 내버려두지”않고, “저 너머로 가자고 초대하는” 뭔가를 쓰셨습니다. 지평을 여셨던 것입니다.

  더욱이 앞서 언급한 “떨어져 있기”도 설명 가능한데 [신부님은] 그것이 실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보여주십니다. 즉 “평온함을 유지한 채”mantenendosi in pace 주님께서 직접 상대방을 움직이시도록, 좋은 의미에서 그를 흔들도록, 또한 그를 평안하게 하여 선하게 행동하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대가 자신의 것들과 화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평화를 거스르는 유혹들을 거부하며 적극적으로 평정심을 지켜내는 것입니다. 그 유혹들이란 과거에 대한 후회와 자신의 탓이라는 유혹들, 미래에 대한(또는 일어날지도 모르는) 걱정의 유혹 그리고 현재의 방심과 불안 등입니다. 신부님은 ‘일어날 수도 있다’라는 가정들futuribili에 기초해 결정하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일어날지도 모르는 것에는 하느님이 없다!”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피오리토 신부님은 당장의 상황들에 대해 위로하며 상대방을 안정시키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상대가 영혼 깊숙한 곳에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하지 않는 한, 당신의 침묵으로, 아무것도 놀라게 하지 않고, 당신 긴 호흡의 귀 기울임으로 먼저 상대를 안정시키셨고, 그리고 선한 영이 이끄는 대로 상대를 위해 결정하셨습니다. 스승님은 종종 “좋습니다”라는 간단한 말로 대화가 끝났음을 알리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자유롭게 떠나도록 놔두셨습니다.

  이냐시오는 영신수련을 이끄는 이와 누군가를 지도해야 하는 이에게 “어느 한쪽을 편들거나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말고 저울추처럼 중간에 서서 창조주가 피조물과, 그리고 피조물이 그의 창조주 주님과 직접 일하도록 두어야한다.”(영신수련, n.15)라고 충고합니다. 영신수련 밖에서 “상대방을 움직이는 것”은 정당하지만, “창조주 주님께서 손수 그 사람과 통교하시어 당신 사랑으로 그를 껴안아 당신을 경배하게 하고 앞으로 당신을 더 잘 섬길 수 있는 길을 준비시키도록”하기 위하여 피오리토 신부님은 이 편이나 저 편,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태도를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이 “떨어져 있음” 덕분에 신부님은 최소한의 편파적 그늘 하나 없는, 모든 사람에게 일종의 기준 같은 분이셨습니다. 물론 적절한 순간, 신부님과 영신수련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하다면 – 가령 어떤유혹들에 가로막혔거나, 또는 그 반대로 그 자신이 “선택”을 내릴 좋은 상황에 놓여있다면 – 스승은 자신의 결정을 말하기 위해 강제로 개입하셨고, 그리고 다시 하느님께서 영신수련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 안에 일하시도록, “줄곧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신부님은 강약을 조절할 줄 아는 분이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부님은 우리 관구에 불로 새긴 각인과 같은 깊은 인상을 몇 가지 남기셨습니다. 예를 들자면; 영적투쟁, 영들의 활동은 좋은 신호이다; 의심스러운 고요에 있을 때 영들을 움직이도록 “무언가를 더하길” 제안하라; 이 영들의 움직임을 분별하기 위해 “물이 너무 요동치지” 않도록 항상 영혼 깊은 곳에 평화를 구할 필요가 있다… 신부님 안에는 “커다란 것들 앞에 위축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되, 가장 작은 것들 안에 머물게 놔두는 것은 거룩한 것이다”22)라는 이냐시오 성인의 말씀이 항상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특징은 재촉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하는 대신 조용히 상대에 귀 기울이셨고 서재에서 가져온 ‘쪽지” 한 장을 건네주셨습니다. 신부님의 서재에는 특별함이 있었습니다. 책장과 책들 같은, 말하자면 보통의 벽면에 더해, 작은 서랍들로 이루어진, 거의 너비 6미터, 높이 4미터에 달해 벽 하나 전체를 차지하는 책장 하나를 더 가지고 계셨습니다. 각각의 서랍에는 예를 들어, 영신수련 또는 예수회 회헌과 관련한 어떤 하나의 주제를 담고 있는 ‘쪽지들’foglietti과 연구와 기도 및 행동을 위한 독서카드들을 분류해 넣어두셨습니다. 신부님은 영신수련 중인 이에게 그가 신부님에게 토로한 고민들에 관련된 답이나 또는 신부님 자신이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식별한 것들과 관련된 쪽지들을 말없이 건네주시기 위해 때로는 위태롭게 사다리를 올라타서 그것들을 찾으셨습니다.

  쪽지들로 가득한 그분의 서랍들 안에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었습니다…마치 이미 상대에게 필요한 조언이나 영혼의 병에 대한 처방 등이 항상 준비되어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 서재는 약국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피오리토 신부님은 현명한 영혼의 약사 같았습니다. 아니, 그 이상의 무엇이셨습니다. 왜냐하면 고해신부가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해도 들으셨지만 신부님은 모든 사제가 공통으로 짊어지는 주님 자비의 봉사자로 살아가는 은사carisma 외에도 또 다른 은사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소개글에서 오리게네스를 인용하며 제가 말씀드린 ‘영적인 사람’이란 은사입니다. 곧 자신의 삶에서 체험한 주님의 은총을 나눈다는 의미에서 식별과 예언의 은사입니다. 사실, 그 서랍들에선 처방만 나온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들, 특별히 올바른 질문과, 가야할 방향을 알려주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할 지혜로운 말씀의 보화를 거기서 찾고자 하는 누군가의 뜨거운 열망이 기다리던 성령의 것들이 나왔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세 번째 특징으로 스승님은 질투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질투심 있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쓰셨고 그리고 다른 이들과 함께 서명했고, 출판했고, Escrito 전집 덕분에 더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실제로는 다른 이들 생각의 실제적 가치와 핵심을 잘 보여주기 때문에 매우 큰 가치가 있지만, 자주 자신의 생각을 간단한 주석으로 제한하며 그들의 생각을 더 명확하게 보여주고자 노력하셨습니다.

  제가 판단하기에 이런 방식으로 학교에서 이루어진 지적 작업의 가장 충만한 결실의 예는 피오리토 신부님이 하이메 아마데오(Jaime Amadeo)와 함께 작업한 피에르 파브르(Pierre Favre)의 영적 비망록의 주석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진정한 고전입니다. 이념이나, 배운사람들만을 위한 박식함을 뽐내지 않고 작품은 우리를 파브르의 영혼, 그의 순수함과 감미로움, 모든 이들을 향한 대화의 능력, 영신수련을 이끄는 노련함과 만나게 합니다. 스승님은 파브르의 감수성을 실제로 상당히 냉철하고 객관적인, 한때 엔지니어로서의 자신의 사고방식과 양극의 긴장 속에 함께 나누어 가지고 계셨습니다. .

  신부님의 면모를 소개하려는 이와 같은 기회에 저에게 언급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 네 번째 특징은 판단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단지 가끔, 제가 기억하는 것으로는 저의 경우 두 번 그러셨습니다. 그 방식을 잊을 수 없습니다. 자, 이런 식으로 판단하십니다. 상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이야기하는 것이 성서에서 말하는 것과, 성서에 있는 이 유혹들과 얼마나 같은지 바라보십시오.” 그리곤 상대가 기도하고 결말을 도출할 수 있도록 놔두십니다.

  이 지점에서 피오리토 신부님이 나쁜 영을 감지하는 특별한 후각을 가지셨음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신부님은 행동을 알아보실 줄 아셨고 강박적 행동을 구분할 줄 아셨으며, 실망의 흔적과 씁쓸한 뒷맛, 나쁜 열매로부터 뒤에 숨어있는 나쁜 영의 가면을 벗겨낼 줄 아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신부님은 단 하나의 적과 맞선 전사이셨습니다. 나쁜 영, 사탄, 악마, 유혹자, 고발자, 우리 인간 본성의 원수, 그리스도의 깃발과 사탄의 깃발 사이에서 신부님은 우리 주님 편을 몸소 기꺼이 선택하셨습니다. 다른 모든 것에서 “~만큼 ~인 한 (tanto… quanto, tantum quantum)”23)을 식별하고자 했고, 모든 사람에게 자애로운 신부, 인내하는 스승, 경우에 따라서는 단호한 반대자, 그러나 항상 상대방을 존중해 주고 그에게 충실했던 분이셨습니다. 결코 적대자는 아니었습니다.

  끝으로 신부님 안에 매우 눈에 띄는 것이 있습니다. 그 분은 “고집 센 사람(testa dura)”들에 대해서 많은 인내심을 가지셨습니다. 상대방이 인내심을 잃게 만드는 경우들 앞에서 신부님은 이냐시오 성인이 시몬 로드리게즈Simón Rodríguez를 많이 참아주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만일 상대가 완고한 사람이고 자신의 방식을 고집했다면 신부님은 그에게 우선 그의 방식대로 흘러가도록 시간을 주셨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상대방이 혼자 생각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셨습니다. 그 과정들을 존중하셨습니다.

  제가 시몬 로드리게즈를 언급했으니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돌이켜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습니다. 시몬 로드리게즈는 늘 “흥분되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이들과 함께 한달 피정을 하지 않았고 마지막 서원도 늦췄습니다. 그는 인도로 가기로 되어 있었지만 결국에는 포르투갈에 남았고, 본인과 그곳 예수회원들의 선익을 위해 이냐시오가 그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하였으나 어떻게 해서라도 끝까지 그곳에 남아 있으려 했습니다. 피오리토 신부님은 리바데네이라Pedro Ribadeneira가 「예수회가 겪은 박해들에 대한 소고」Tratto delle persecuzioni che ha subìto la Compagnia di Gesú라는 제목의 미편집 친필 저술에서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설립 이래, 예수회가 통과했던 가장 끔찍하고 위험했던 폭풍 중의 하나는 복자 이냐시오 신부님이 아직 살아계실 때에 적대자들로부터가 아닌, 자신의 후예들로부터,24) 바깥 바람이 아닌 같은 바다의 내적 동요로부터 이런 일이 벌어졌다. […] 예수회가 순풍을 타고 항해하던 중에, 모든 선의 원수가 시몬 신부를 유혹하고 하느님이 그를 위해 이루신 열매로 그의 눈을 흐리게 만들었다. 그는 복자 이냐시오 신부님과 예수회 전체에 속한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예수회를 흔들었다.  시몬 신부는 그래서 포르투갈의 것들을 예수회의 업적이 아니라 마치 자신의 업적으로 여기기 시작하였고 장상에 대한 순명을 거부하고 포르투갈 관구를 독립시켜 따로 통치하려고 했다. 포르투갈의 왕들로부터 많은 호의를 받았기에 그가 보기에 더 이상 로마에 가는 일 없이 일을 쉽게 성사시킬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나라에 살고 있는 거의 모든 예수회원들이 그가 받아들이고 양성시킨 후예들이고 수족들이었기에 시몬 사부 외에는 총장 신부와 다른 장상을 알지 못하였고, 마치 그가 예수회 설립 주인공인 것처럼 그를 존경하고 사랑했다. 그가 점잖고 자애로운 사람이었고 자기 사람들을 거의 압박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것도 이를 부추겼다. 이러한 것들은 인간 공통의 약함 때문에 보통 그들이 원하는 것을 다 허락해 주고 사랑으로 지도받기를 바라는 자기 아랫 사람들의 영혼과 의지를 정복하는데 매우 효과적이었다.”25)

  이냐시오는 매우 인내심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피오리토 신부님은 그를 닮았습니다. 그분은 이런 이야기들 안에서조차, 시몬 로드리게즈 안의 좋은 것을 볼 줄 아셨습니다. 신부님은 이냐시오와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했던 그의 솔직한 모습을 강조하셨습니다. 당연히 이런 길고 긴 인내가 이냐시오에게 열매를 선사했습니다. 시몬 로드리게즈의 “반란”은 비화로 남았고 견고해지거나 그를 뛰어넘지 못했으며 코임브라(Coimbra)의 예수회원들에게 이냐시오 성인이 보낸 편지처럼 문자들로만 우리에게 전해질 뿐입니다. 이 위대한 인내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시간 속의 성령의 활동을 신뢰하는 참된 스승의 기초적 덕목입니다.

맺음말

  작은 일화입니다. 관구장이었을 때 저는 피오리토 신부님의 연례 “양심현현”racconto di coscienza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 때 그분은 수련자였습니다. 성숙한 수련자였죠. 신부님께서 어떻게 자신의 것들을 이야기 하셨는지 기억을 떠올릴 때면, 한때 신부님의 제자였던 한 사제의 제자로 계셨던 것임을 느낍니다. [* 편집자 주: 베르골료는 피오리토의 장상이었고 나중에 피오리토는 베르골료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그 때의 대화를 모두 이해할 순 없지만, 그분 영혼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증거였습니다. 예수회원으로서 미겔 앙헬 피오리토 스승님에게는 시편 1편의 때마다 꽃과 열매를 주는 물가에 심겨진 나무의 모습이 어울립니다. 성경의 이 나무처럼 신부님은 아르헨티나 산 미겔의 성 요셉 막시모 신학원에서, 당신 역할의 최소한의 공간에 자신이 담기도록 맡겨 버리는 것을 아셨고, 그분의 이름(Fiorito, 꽃핀)이 잘 묘사하듯, 거기에 뿌리를 내리셨고 영신수련 학교의 우리 제자들의 가슴속에 꽃과 열매를 내주셨습니다. 부디 지금, 위대한 꿈의 크기를 품고 있는 신부님의 이 훌륭한 전집Escritos 덕에 영신수련을 이끌고 해설하며 신부님이 받았고 현명하게 전달할 줄 알았던 같은 은총을 먹고 살아갈 많은 이들의 삶 안에 그분이 뿌리를 내리고 꽃과 과일을 내기를 희망합니다.


성경·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 Escritos의 구입과 내려 받기는 WWW.laciviltacattolica.it/fiorto에서 가능하다.
2) M. A. Fiorito, Escritos I (1952-1959), Roma, La Civiltá Cattolica, 2019, 188(이하 Escrtios, 권, 페이지로 인용)
3) Cfr J. Narvaja, 『Introduccíon』, in Escritos I, 16. (Civiltá Cattolica)
4) Ivi, 20s.
5) Cfr Francesco, 『“Essere nei crovevia della storia”, Conversazioni con i gesuiti del Myanmar e Bangladesh』, in Civ.Catt. 2017 IV 525.
6) Escritos I, 18.
7) Lettera del Santo Padre Francesco ai sacerdoti in occasione del 160° anniversario della morte del santo Curato d’Ars, 4 agosto 2019.
8) Escritos I, 165-170. [편집자 주] metastoria (meta-history)는 문맥에 따라 ‘역사 초월, 역사 너머, 역사의 역사’ 등 다양한 뜻을 제시할 수 있는데 그 어느 것도 완벽하지 않아 ‘메타 역사’로 번역하는 것이 낫다. 이 글의 맥락에서는 보편 교회의 흐름 안에서 동질적이고 초월적인 영성의 특성과 관련시켜 ‘역사 초월성’을 제안해 본다.
9) J. H. Newman, La mission de saint Benoit, Paris, Bloud, 1909, 10.
10) Escritos II, 27-51.
11) Escritos I, 164.
12) Escritos I, 51, 각주 88.
13) Escritos I, 163s.
14) Escritos V, 176-189.
15) Escritos V, 177.
16) Escritos V, 179.
17) Escritos V, 181.
18) “위로란 (…) 영혼이 창조주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오를 때다.(…)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눈물이 쏟아지는 경우이다.” (영신수련, n. 316)
19) M.A.Fiorito, Buscar y hallar la voluntad de Dios, Buenos Aires, Paulinas, 2000, 209.
20) 제3수련기는 최종서원 전, 예수회원 양성의 최종 단계다.
21) [편집자 주] “si teneva fuori”: “밖에 머물러 있기, 떨어져 있기.” 이냐시오 영신수련 맥락에서는 상대방의 정서에 공감하거나 그 영적 움직임을 주목하되, 즉 귀 기울여 듣고 주의 깊게 살펴보지만 그것에 애착을 가지지 않는 탈착의 태도, 어느 한 편에 기울어지지 않는 불편심, 초연함의 자세를뜻한다.
22) Non coerceri a maximo, contineri tamen a minimo, divinum est.
23) [편집자 주] 영신수련에서는 사람이 창조된 목적, 즉 하느님을 찬미하고 흠숭하며 섬기기 위해 영혼을 구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면 ‘그만큼 더’ tantum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아니라면 ‘그만큼 덜’ quantum 이용하며 멀리 하라는 뜻으로 쓰인다(23번). 사물 그 자체를 무시하거나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창조된 목적을 향한 영적 여정에 장애가 된다면 대상에 대한 애착과 집착에서 떨어지거나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24) [편집자 주] dai suoi stessi figli: 직역은 “자기 자식들에 의해서,” 여기서는 자신의 후예들, 예수회 창립 동지들과 초대 이냐시오 총장 시기 회원들을 뜻한다.
25) Escritos V, 157, 각주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