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성장에서 어머니의 역할

Il ruolo della madre nello sviluppo del bambino

© La Civiltà Cattolica, Q. 4066, 2/16 Nov, 2019 IV, 334-347
죠반니 꾸치 S.I.
노우재 미카엘 신부(부산교구) 옮김

  모성, ‘생명’과‘영혼’의교차점 La madre crocevia tra «bios» e «psiche»

  수년 전 필자는 자녀 인생의 성장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다룬 적이 있다.1) 여기서는 언제나 어디서나 더 선명하게드러나는 어머니의 특별한 역할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사람에게는 생물학적 탄생과 심리학적 탄생이 일치하지 않는다. 생물학적 탄생은 정확히 규정하고 관찰할 수 있는사실이지만, 심리학적 탄생은 어머니가 필수불가결한 상대 역할을 수행하면서 이루어지는, 느리고도 복합적인 과정의산물이다. 심리학적 탄생은 항구적이면서도 단계적인 상호작용을 갖는데, 자녀가 부모로부터 서서히 점진적으로 분리되고 구별되는 개별화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또 자기들 편에서도 신뢰감을 주는 사람이 되어 이웃을 책임 있게 사랑하도록 하는 데 최종 목적이 있다. 이런 중요한 자질은 일생을 거쳐 여러 수준에서 작용하는 부모의 현존으로전달된다. “부모가 해주는 것보다 부모로 존재하는 것이 자녀의 자아 형성에 더 큰 영향을 준다. 부모의 신뢰가 확고하다면, 자녀는 아무리 심각하고 큰 충격을 겪으며 살아간다 해도, 부모의 사랑 가득한 미소로 말미암아 […] 자기 신뢰와 내적 안정을 잃지 않고 생생히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2)

  부모란 존재는 결정적으로 태아 때부터 함께 하는 것인데, 아이가 실존하는 첫 순간, 곧 수태부터 그의 역사와 인격을 형성한다. 탄생 이전 아기의 상태에 대한 최근의 출판물은 어머니 뱃속에서 인간 생명이 펼쳐지는 그 초기 단계가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데, 이어지는 생애의 여러 단계에서도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임신과 관련된 정황을 특별히강조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합당한 주목을 받고 있진 못하지만, 매혹적이고 중요한 주제임에 틀림없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자녀는 부모의 생식세포가 만나면서 잉태된다. 그러나, 이런 만남이 이루어지는 관계적이고 정서적인 상황은 또 다른 것이다. 에르메스 루파리아는 “생명의 가치와 생명이 태어나는 출산의 가치 사이에는 긍정적인 상관성”3)이 있다는 가설을 발표했다. 그 만남이 일어나는 상황 역시 신생아에게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애정 없는 폭력이나 무균실에서 인공적으로 이루어진 수정은 자녀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다.4)

  평생 사람을 따라다니는 첫 번째 트라우마는 충격적이지만 웅변적인 ‘실존적 강간’이라는 개념으로 표현된다. 저자는 이 개념으로 ‘부부 결합의 따뜻하고 정열적인’ 방식과 반대로 이루어지는 임신 상황을 가리킨다. 인간의 사랑에는 따뜻하고 정열적인 방식이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이런 면모가 확보되지 않으면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차원에서복합적인 ‘새로운’ 문제가 생겨난다. 서구 사회에서 증가하는 불안, 언어 장애, 기분 장애, 주의 장애, 집중 장애, 섭식 장애, 수면 장애, 공격성 장애 등의 병리 현상들이 그러하다.5) 신생아는 인간에게 고귀하고도 필수불가결한 특징이 되는 면모, 특히 그가 세상에 태어난 관계적 상황과 사연을 아직은 모른다. “이런 고귀한 특징은 생식세포의 수준에서 작용하는 내부적 계획의 산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는 [아버지, 어머니, 자녀의] 삼각 구도에 따라 외부적으로 발생하는 수동적인 것이다. 가장 훌륭한 가설에서 그러하다.”6) 입양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어려움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양부모가 자신의 생물학적 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자녀는 혼란에빠진다.

  태아시기 인간의 생명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신생아는 아무 정보도 없고 아무 것도 쓰여지지 않은 ‘빈 서판’tabula rasa이 아니다. “세포 염기서열에 새겨진 유전적 기억은 입력한 것을 의미 없이 반복하는 단순한 녹음기가아니다. […] 거기에는, 임신의 순간 시작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들 각자의 실존에 고유한 관계가 함축되어 있다. 그렇기에 인격체로서 개인의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다.’7)

  정신분석학적고찰

  정신분석학은 자녀의 어린 시절 생활과 어머니의 특별한 역할에 관해 중요한 성과를 남기면서, 어머니의 역할이 큰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당대 만연한 경향이 잦아들게 했다. 마시모 레칼카티는 이와 관련하여 이렇게 말한다. “정신분석학의 전망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역할은 일반적이고 막연한 부모의 역할을 뜻하지 않다. 어머니의 역할과 아버지의 역할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한 때 그러했듯, 부모1, 부모2처럼 그 역할이 익명적으로 규정되어서는 안 된다. 비익명적인 열망을 가진 존재가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열망이 전달되기 위한 배후의 조건이라면, 이 열망의 모성 편향은 부성 편향과는 상이해야 한다.”8)

  어린 자녀의 생애 초기 생활에 관한 연구들은 어머니의 역할을 부정적인 방식으로만, 곧 자녀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못하게 하는 식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긍정적으로도 이해해야 하는데, 곧, 어머니는 자녀가 처음 접하는미지의 어려운 상황에 개입하여 안정감을 주며 ‘모험’하도록 인도한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는 우리들 놀이방에서주위를 살피다가 경험적으로 불확실한 상황에 부닥친다. (예를 들어, 로봇, 바닥에 떠서 기어다닌 것, 이상하게 생긴 장난감 등이다). 그때 그 아이는 어머니를 쳐다본다. 어머니가 무서워하거나 화를 내면, 어린아이는 그 상황을 외면하고회피한다. 어머니가 기뻐하거나 관심을 두면, 어린 아이는 새로운 상황을 기꺼이 탐색한다. 어머니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정서적 신호들이 이러한 효력을 낸다. […] 어린 자녀에게 ‘사회적 참조’는 생후 육개월부터 시작하여두 살이 되면 급격히 작용한다. 새로운 상황을 마주하여 불안한 경우, 그는 다른 누군가를 (대개 어머니를) 바라보면서불확실성을 해소하고, 그러고 나서 자기 태도를 정하는 것이다.”9)

  어머니의 미소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마가렛 말러의 관찰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에 의하면, 어린 자녀는 어머니가 웃는 모습을 보고 따라 웃는데, 이로써 새로운 환경을 수용해도 좋다고 의식하며 거기 적응하는 것이다. 도널드 위니콧은 어린 아이가 욕구의 원리에서 현실의 원리로 건너가도록 느끼게 하는 ‘충분히 좋은 어머니’a good enough mother의 필요성을 말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충분히 좋은 어머니는 처음에는 자기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을거의 완전히 충족시켜 준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에게서 서서히 단계적으로 거리를 두면서, 어머니가 해주지 못하는 것을 알게 하는 능력이 생길 정도로 성장하게 한다.”10)

  이런 근본적인 단계를 밟아가려면, 어머니는 자기 욕심을 잠재우고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타인을 경청하고 타인을 위해 살 수 있어야 한다. 타인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의 요청과 필요가 무엇인지 알도록 배우고 익혀야 한다. 어머니는 자녀의 여러 성장 단계를 알고 존중하면서 성숙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런 단계들 속에 깃들어 있는 풍요로움과심오함을 찾도록 소명을 받은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기쁨과 고통이 동반한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유아의 생애 첫 몇 개월부터 자아와 세상과 이웃의 내적 표상을 일으키는 조직적이고 선천적인구조가 작용한다. 이런 구조는 항상 정서적인 관점에서 의미 있는 인물과 맺는 관계를 통해 드러난다. 위니콧의 진술을다시 인용하면, 이 인물은 자녀가 모험을 감행하고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신뢰와 관계 안에 젖어 들어가고 환경을 탐색하도록 하는 ‘충분히 좋은 어머니’이다. 정해진 규정에 맞추거나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만 따르는 것이 주체의 유일한 가능성이 아니다. 그 반대가 옳다. 어른이 되어 과도하게 엄격하거나 냉정하다면, 인격이 가능한 만큼 성장하지못한 것이다. 특히 신뢰심과 주도성이 발달하지 못한 결과이다.

  인간 생명에서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인간의 원초적 언어가 무엇인지 알아내려 했던 슈바벤의 프리드리히 2세황제의 실험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보모들로 하여금 몇몇 신생아를 양육하면서, 영양과 위생에 꼭 필요한 것을 공급하며 돌보되, 그들에게 아무 말도 걸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하면 신생아들이 스스로 어느 나라 말로 말할지 드러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실험은 비극적으로 끝났다. 아이들이 모두 사망해버린 것이다.11)

  최신 연구들은 평온함과 신뢰감을 주며 아동을 안정시키는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명확히 밝히고 있다. 만지고 바라보고 웃고 말을 건네면서 이루어지는 관계가 그러하다. 이 모든 것은 불안과 평정의 양극 사이에 놓인 기본 감정들을통합해 줄 뿐 아니라, 이웃에게 무엇이 좋은 것인지 배우고 익히면서 자신을 내어주고 공감하고 균형 잡힌 관계를 맺고살아가는 능력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와 관련하여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어머니와 맺는 관계에서 유래하고, 상호 행위와 건전하고 발달 가능한 자아의식을 고취하는 ‘원-신뢰’라는 기본 개념을 도입한다.12)

  인간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교육을 받고 장애를 이겨내면서 성장하고 발달한다. 성장의 능력과 단계에 맞추어 알맞은 교육을 받고 장애를 극복해 간다면 (위니콧이 말한 ‘충분히 좋은’ 어머니의 역할이다), 어린 아이는 적합한 현실감과 자존감을 배워 얻게 될 것이다.

  소유욕의위험

  이런 중요한 상호 행위는 건전하고 균형 잡힌 성장을 목표로 하지만, 어머니가 자녀의 요청에 ‘불충분’하고 무능력하게 대응하면 정반대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소유하려는 유혹이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자녀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소유욕을 정확하게 느끼는데, 그로 말미암아 자존감이 훼손된 채 상처를 눌러 안고 살아가게 된다.

  앨리스 밀러는 부모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는 ‘재능 있는’ 아동이 짊어져야 할 정서적 차원의 무게에 대해 유명한 연구를 했다. 대부분의 경우 관계가 역전되고 역할이 전도되어, 어린아이가 어른의 결핍을 채워주는 것이었다. 이런 전도는 큰 값을 치러야 한다. 아동이 억누른 정서적 요청은 시간이 지나면서 ‘딱딱하게 굳어진’ 상태로 다시 나타나고, 성숙한 어른이 되기를 가로막는다. 이른바 ‘피터팬 신드롬’이다.13)

  밀러는 20년간의 정신과 의사 생활 동안 이런 문제적 상황을 지속적으로 겪었고, 이와 관련하여 세 가지 중요한 사항을 지적했다. “(1) 감정수준에서매우불안한어머니는항상있어왔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정서적 안정을 얻기위해 자녀의 특정한 행동이나 태도에 의존한다. 그의 불안정은 권위주의적이거나 전체주의적인 엄격한 얼굴 뒤에 숨겨져 있고, 자녀와 주위 사람들에게 쉽게 감추어진다. (2) 자녀는 어머니나 부모의 이런 결핍을 즉각 알아채고 응답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 (3) 그렇게 하면서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확보하려 한다. 자기를 필요로 하는 사실을알고는 자기 생존을 보장받으려는 것이다.”14) 여기서부터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경향이 자녀에게 생겨난다. 이런경향은 직업을 선택할 때도 작용하여, 유아기에 해소하지 못한 정서적 공허감을 왜곡된 방식으로 보상받도록 한다.

  만일 어머니가 자녀를 자기 소유물로 생각하여 자기 결핍을 충족시키는 도구로만 여긴다면, 아이는 자기 정체성을찾고 현실 감각을 익히며 성장하는 과정을 밟아가기 무척 어렵게 된다. 말러는 어린 마크의 경우를 연구하면서 이렇게강조했다. “그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 마크와 매우 밀접하게 지냈는데, 그가 자기 소유물에서 벗어나려 하자마자 태도가 매우 모호해졌다. 어떤 때는 신체 접촉을 피하려고도 했고, 또 마크가 스스로 결정을 내리려 할 때는 그를 붙잡고 끌어안으며 말릴 정도였다. 물론 이것은 그녀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느꼈을 때 그렇게 한 것이었다. 마크가 요청한 것이아니었다. 어머니 편에서 불분명한 태도를 취하자, 마크는 자기 어머니와 거리를 두는 것이 어려워졌다.”15)

  여기서, 아버지의 역할이 어머니를 위해서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자신의 불안이나 욕구, 관심을 일방적으로 쏟아, 자녀가 어머니나 아버지의 ‘준-남편’ ‘준-아내’가 되는 왜곡된 관계의 위험을막으려면 부모가 서로 도와야 한다. 그렇게 해야 자녀가 유아기의 단계도 밟아갈 수 있고 자녀로서 자기 생활도 살아갈수 있다. 이 두 가지는 심리적이고 인지적이고 정서적인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다.

  남편-아내의 관계가 건전하고 애정이 넘칠수록, 자녀와 정당하고 좋은 거리를 유지하면서 아버지-어머니의 역할을더 잘 수행할 수 있다. “어머니는 아들과 완전히 밀착된 나머지, 아들이 정서적으로 떨어지려 하면 혼란과 충격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아버지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배우자가 유아적 감정에 휘말리지 말고 자기 자신을찾도록 도와야 한다. 아들과 떨어지지 못하는 아내와 아들 사이에 개입하여 아내가 자신을 되찾아 쉬면서 여유를 얻도록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배우자를 보호할 수 있다.”16)

  아버지가 없으면 어머니는 왜곡된 방식으로 자녀와 관계 맺을 위험이 생긴다. 자녀들을 숨 막히게 하면서 거리감을잃은 채 남편에게 못 받는 사랑을 받으려 하는 것이다. 그렇게 엄마는 자녀, 특히 아들에게 방어적으로 전전긍긍하게된다. 집에서 조금도 떨어지지 못하게 하고 자율적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한다. 이런 행동은 어머니의 혼란과 고통의 표현일 뿐이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과 똑같이 만들어 일방적인 관계를 통한 해결책을 찾으려는 절망적인 몸부림일지 모른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 트라우마 없는 건전하고 통합적인 성장을 충분히 보장하지는 못한다. 인간의 통교는 구조적 모호함이 그 특징이다. 주거니 받거니 하기도 하고, 아니면 받기 위해 주고, 또 아니면, 받지 못한 것을 받아내려고도 한다. 인간의 성장은 참으로 복잡 미묘하게 이루어지고, 시간도 많이 필요한 일이다.

  동물은 자기 새끼가 다 자라면 떠나보내지만, 인간의 경우에는 계속 부모로 남는다. 성인이 되면 어린 시절 겪은 숱한 사건이 다시 떠오르고 기대한 것, 상처받은 것도 다시 생각난다. 좋든 싫든 이 경험들을 다시 받아들이고 읽어 들여야 한다. 솟구치는 감정도 감당해야 하고, 그간 힘들었던 일도 다시 대면해야 한다. 프로이트가 정식화한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17)라는 패러독스가 여기서 확증된다.

  관계가부족할때

  신뢰와 존중, 사랑은 자녀에게 모유와 공기처럼 꼭 필요하다. 주위 환경이 물질적으로 안락하거나 안전하거나 하지못한 경우 더욱 그러하다. 정신분석학자 브루노 베텔하임은 이와 관련해서 제2차 세계대전 런던 대공습의 정서적 충격을 상기시킨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두려움과 불안을 나타내 보이면, 자녀들도 똑같은 감정을 드러냈다. 이와 달리 부모가 안정감을 주면 자녀들도 안심했는데, 효과가 무척 컸다. 아빠와 엄마가 가까이서 평온하게 말을 건네는 것만으로도아이들은 진정했고,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부모가 사건을 겪어내는 방식이 자녀의 모든 것을 바꾼다. 자녀는부모가 어떻게 살아내는가를 보며 세상을 스스로 해석하기 때문이다.”18)

  이와 반대로, 물질적으로 안락하다 해도 결속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신뢰감을 형성하고 진지한 관계를 맺는 능력을 얻기가 구조적으로 힘들어진다. 무관심한 관계로 이루어진 공동체 환경은 정서 발달의 장애가 된다. 예를 들어, 키부츠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깊은 감동을 느끼지 못하거나 그런 것을 어려워했다. “한 개인 청년이 어머니에게 가졌던애착의 요소를 알아채지 못하면, 그는 타인들에게 표피적인 애착만 느끼며 살아갈 것이다.”19)

  르네 스피츠는 고아원에서 발생한 전염병의 치사율에 관해 연구한 후, 1958년 <아기의 생애 첫해>Il primo anno di vita del bambino를 출판했는데, 상호 행위의 필연성을 비극적으로 확인시켜주는 지금도 중요한 책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부르주아 중산 계급은 자녀들에 대한 정서적 표현을 부정적인 것으로 평가했다. 자녀들과 함께 하루를 보내는 것을 불필요한 시간 낭비로 여겼고, 어른들이 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했다. 위생적인 측면에서도 신생아를 끌어안고 어루만지는 행위는 감염 가능성을 극도로 높인다고 의사들은 생각했다. 자녀들은 그렇게 아주 어린 시절부터 유모와 보모에게 맡겨졌다. 일곱 살부터는 학교와 다양한 기관에 가서 교육을 받았다. 가난하거나 주거 공간이 부족한 경우에도 자녀들을 어머니에게서 떼어놓았다. 두 경우 모두 자녀들을 어머니로부터 떨어뜨려 놓으면서 인간적가치를 극도로 훼손시킨 것이었다.

  스피츠의 연구에 따르면, 어머니 없이 자라는 아이들은 대개 이기심과 공격성, 우울함 등의 감정에 지배당했고, 우정을 나누거나 호감을 주지도 못해 고립되었고, 기쁜 마음을 보여주거나 자신을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지도 못했다. 음식과 의복은 있었지만 더욱 중요한 사랑의 돌봄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접촉도 없이 자란 아이들은 더 이상생존할 수 없었다. 영양 공급은 잘 받았지만 척박한 환경에서 말라 죽어갔다. 두 살까지 사망률이 70퍼센트를 넘어설정도였다.20)

  1947년 스피츠는 의사와 심리학자로 이루어진 공동 그룹에 짤막한 영화를 보여주었다. 어머니의 돌봄을 받던 아이들이 보육원에 맡겨지는 내용이었다. 무성 영화였고 해설도 없었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한 여자 아이가 등장하는데, 어머니가 석 달 동안 보육원에 맡긴 직후다. 어린 아이는 웃으면서 자기를 돌보는 어른과 놀기도 한다. 칠일 후, 같은 여자 아이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두려워하며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계속 울기만 하고 자기를 돌보는어른에게 발길질까지 한다. […] 다른 아이들도 침울하고 우울한 채 활력 없어 보인다. 많은 아이들이 깡말라 있고, 손을 물어뜯는 등의 습관적인 행동을 반복한다. 대부분 아이들은 앉거나 서지도 못한다. 우두커니 얼빠지는 듯 있으면서아무런 표현도 하지 않는다. 속이 빈 껍질 같다. 화면에는 이런 자막이 나온다. ‘돌봄: 아이를 어머니에게 돌려주세요.’”21)

  영화를 관람한 의사와 심리학자 공동 그룹은 큰 충격에 빠졌다. 몇몇은 울음을 터뜨렸고, 다른 이들은 부모와 신체적이고 정서적으로 접촉하지 않을 때 생겨나는 무서운 결과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영국인 정신의학자 존 보울비는 스피츠의 연구를 심화하여 오늘날까지 잘 알려진 ‘애착이론’을 발표했다.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이 유명한 이론에 따르면, 기본적인 감정은 생물학적이고 정서적인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관련하는대상인 어머니와 신체적으로 접촉하는 관계 안에서, 곧 만지고, 바라보고, 웃고 말하는 관계 안에서 적합하게 발달한다.

  보울비가 ‘안정애착’22)이라 부른 애착관계로 이루어지는 양육은 신뢰와 정서적 안정의 기반이 된다. 무엇보다사랑으로 돌보아 주기를 요청하는 아이의 생존 자체를 위해서도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애착관계가 시작되었을 때, 보육원의 사망지수도 떨어졌다. “어머니의 돌봄을 완전히 박탈당한 그 불운한 아이들에 대한 연구 결과는 보울비의 처음 주장을 확증해준다. 티자르의 후속 연구는 […] 육 개월에서 네 살 사이의 기간이 안정된 관계형성 능력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밝혀준다. 네 살 이후 입양된 아이는 양부모와 정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해도 학교에서는 반사회적이었다.”23)

  심리형성의 관점에서 볼 때, 가족과 같은 정서적으로 중요한 환경이 적극 작용해야 아이의 정체성 발달이 이루어진다고 하겠다.

  하느님의거울과같은모성

  애착 이론은 종교 경험에 관련해서도 큰 영향을 끼친다. 자녀와 어머니의 관계는 하느님을 표상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어머니의 시선과 어머니의 얼굴 전체는 어린 아이의 첫 번째 거울이다. 시간이 지나 그 경험은 하느님을 처음 이야기할 때 직접 활용될 것이다. 거울과 같은 그런 기능은 성경의 인간 창조 설화를 무척이나 흥미롭게 생각나게한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창세1,27).”24)

  종교심리학의 여러 연구에 따르면, 하느님 모상성과 어머니와 맺는 긍정적인 관계 사이에는 분명한 관련성이 있다. “위니컷은 가정의 복음화에 관해 질문 받은 자리에서, 갓난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 엄마의 시선을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주로 말하면서 대답했다. 말이나 생각을 통해서가 아니라,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품에 안고 바라보며 웃고 예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본래적인 각인(imprinting)과도 같은 문제라는 것이다. 균형 잡힌 인성과 건전한 종교성은 교리교사의 가르침보다는 정서적으로 긴밀하고 안정된 관계를 통해서 자라난다고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25)

  성경은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맺는 관계를 어머니가 자기 자녀를 돌보는 모습과 연관 지워 보여준다. 어머니의 돌봄은 굴곡 많은 인생의 어떤 사건과도 비교되지 않는, 굳건한 사랑과 믿음의 상징이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49,15).

  ‘마음의 움직임’miseri-cor-dia을 뜻하는 라틴어 ‘자비’와 달리 성경의 히브리어 단어는 자궁(rehamîm, 내장을뜻하는 rehem의 복수형; 예레31,20참조), 곧 어머니 오장육부의 내밀한 꿈틀거림과 연관하여 표현한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 사랑의 근간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26) 신약성경은 희랍어 단어 ‘내장’splankna를 똑같은 의미로 사용하는데, 그리스도교 이전의 환경에서는 알지 못했던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모성과 부성적 면모를 가리키고 있다(루카7,13;10,33;15,20참조).27)/p>

  인간의 어떤 관계도 자기 어머니와 맺는 관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어머니와 맺는 관계는 하느님 생명에 참여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이미지가 된다. 인간은 자기 정체성을 다시 찾기 위해 그 관계로 돌아가야 한다. 그 관계 때문에 고통 받고 버림받았다 해도 마찬가지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는 어머니를 잃었다가 다시 찾는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다. 역으로 어머니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이 소설은 (올리버가 세상에 태어난) 보육원을 기술하며 시작하고, 어머니 아녜스를 다시 만나는 장면으로 끝난다. 언뜻 보면 허무한 만남이다. 실상 어머니는 무덤 비석의 이름으로만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리버의 엄마 찾기는 헛되지 않았다. 디킨스가 소설의 마지막에 밝히듯, 어머니는 이제 다른 방식으로 올리버 가까이 현존하게 되었다. 만져볼 수야 없지만 아무 소용없는 게 아니다. “그 무덤에는 관이 없었다. 그러나 만약 죽은 자들의 영혼이 생전의 그들을 알았고 죽음 이후에도 그들을 계속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이 땅에 종종 돌아온다면, 분명 아녜스의 그림자는 많은 이들이 그녀를 위해 평화와 안식을 누리도록 기도한 그곳에 자주 드리워질 것이다.”28)


성경·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 Cfr G. Cucci, “Il padre è chiamato a svolgere un ruolo decisivo nella vita di fede” [아버지는 신앙생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도록 소명을 받았다], in Civ. Catt. 2009 III 118-127.
2) H. Kohut – E.S. Wolf, “Profilo riassuntivo dei disturbi del Sé e del loro trattamento” [자아 불안과 치료의 요약 개요], in H. Kohut, La ricerca del Sé [자아연구], Torino, Bollati Boringhieri, 1982, 178s. Cfr R. Siani, Psicologia del Sé [자기 심리학], Torino, Bollati Boringhieri, 1992, 83s; E. Pelanda, Modelli di sviluppo in psicanalisi [정신분석학의 성장모델], Milano, Raffaello Cortina, 1995, 302-305.
3) M.E. Luparia, Scienza, sapienza e presunzione. Riflessioni morali sulla ricerca scientifica e la realizzazione di nuove tecnologie [과학, 지혜, 추정: 과학연구와 신기술 구현에 대한 도덕적 고찰] Roma, Lateran University Press, 2018, 127. Cfr V. Tucci, “Il genoma materno: un vero leader della nostra evoluzione” [모계 유전체: 우리 진화의 진정한 리더], in Id., I geni del male [악의 유전자], Milano, Longanesi, 2019, 186-223.
4) Cfr F. Occhetta, “La maternità surrogata” [대리모], in Civ.Catt. 2017 II 368-379.
5) Cfr. M. E. Luparia, Scienza, sapienza e presunzione…, cit., 127; W. Matthys-J.E. Lochman, Oppositional Defiant Disorder and Conduct Disorder in Childhood [아동기 반항 및 행동 장애], Hoboken, Blackwell Pub, 2017; W. Ross Greene, The Explosive Child: A New Approach for Understanding and Parenting Easily Frustrated, Chronically Inflexible Children [반항하는 아이: 쉽게 떼쓰고 습관적으로 고집부리는 아동을 이해하고 훈육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 London, HarperCollins, 2014; C. Berg et Al., “Childhood obsessive compulsive disorder: a two-years prospective follow up of a community sample” [아동 강박장애: 공동체 사례에 따른 향후 2년간의 후속 조치], in 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Child and Adolescent Psychiatry [미 아동청소년 정신건강학회지] 28 (1989) 528-533; V. Hallette et Al., ‘Phenotypic and genetic differentiation of anxiety-related behaviors in middle childhood’ [중년기 불안관련 행동의 발현성 및 유전성 분화], in Depression and Anxiety [우울과 불안] 26 (2009) 316-324.
6) M.E. Luparia, Scienza, sapienza e presunzione…, cit., 128.
7) Ivi, 133 e 128. Cfr T.R. Verny, Vita segreta prima della nascita, Milano, Mondadori, 1981.
8) M. Recalcati, Le mani della madre. Desiderio, fantasmi ed eredità del materno, Milano, Feltrinelli, 2015, 75. 현재 서양 사회의 이런 혼돈과 혼란에 대한비판은 다음을 참조하시오: J.-P. Lebrun, La perversione ordinaire. Vivre ensemble sans autrui, Paris, Flammarion, 2015; Id., Fonction maternelle, fonction paternelle, Bruxelles, Fabert, 2011; Id., Les Couleurs de l’inceste. Se déprendre du maternel, Paris, Denoël, 2013.
9) R.N. Emde, “Development terminable and interminable,” in International Journal of Psychoanalysis 69 (1988) 1.
10) D.W. Winnicott, “Transitional objects and transitional phenomena,” in International Journal of Psychoanalysis 34 (1953) 94. Cfr Id., Sviluppo affettivo e ambiente, Roma, Armando, 1994, 41-65; M.S. Mahler, “On the First Three Subphases of the Separation-Individuation Process,” in International Journal of Psychoanalysis 53 (1972) 333-338; Id., “Rapprochement Subphase of the Separation-Individuation Process,” in The Psychoanalytic Quarterly 41 (1972) 487-506.
11) P. Watzlawick, Il linguaggio del cambiamento, Milano, Feltrinelli, 1991, 12s.에서 인용함. Cfr J.-P. Lebrun – N. Malinconi, L’alterité est dans la langue. Psychanalyse et écriture, Toulouse, Eres, 2015.
12) Cfr E.H. Erikson, Gioventù e crisi d’identità, Roma, Armando, 2000; Id., Infanzia e società, ivi, 2008; Id., Aspetti di una nuova identità, ivi, 1975.
13) Cfr G. Cucci, La crisi dell’adulto. La sindrome di Peter Pan, Assisi (Pg), Cittadella, 2012.
14) A. Miller, Il dramma del bambino dotato e la ricerca del vero sé, Torino, Bollati Boringhieri, 1999,16s.
15) M.S. Mahler, “On the First Three Subphases of the Separation-Individuation Process,” cit., 335s.
16) A. Philip, I ‘no’ che aiutano a crescere, Milano, Feltrinelli, 1999, 47s; Cfr. G. Cucci, Esperienza religiosa e psicologia, Leumann (To), Elledici, 20172, 77-90.
17) S. Freud, “L’interesse per la psicoanalisi,” in Id., Opere (1912-14), Torino, Bollati Boringhieri, 1975, vol. 7, 265.
18) B. Bettelheim, Un genitore quasi perfetto, Milano, Feltrinelli, 1990, 59.
19) W.R. Thompson – J.E. Grusec, “Studies of early experience,” in P.H. Mussen (ed.), Carmichael Manual of Child Psychology, New York, Wiley, 1970, vol. II, 622.
20) Cfr ivi, 603s; R.A. Spitz, Il primo anno di vita del bambino, Firenze, Giunti-Barbera, 1962.
21) J. Rifkin, La civiltà dell’empatia, Milano, Mondadori, 2011, 65; cfr R. Karen, Becoming attached: First relationships and how they shape our capacity to lov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4, 19.
22) Cfr J. Bowlby, “The growth of independence in the young child,” in Royal Society of Health Journal 76 (1956) 588; Id., Attaccamento e perdita, Vol. 1. L’attaccamento alla madre; Vol. 2. La separazione dalla madre; Vol. 3. La perdita della madre, Torino, Bollati Boringhieri, 1999-2000; Id., Una base sicura. Applicazioni cliniche della teoria dell’attaccamento, Milano, Raffaello Cortina, 1989.
23) J. Holmes, La teoria dell’attaccamento. John Bowlby e la sua scuola, ivi, 2017, 51; cfr L. Cozolino, Il cervello sociale: neuroscienze delle relazioni umane, ivi, 2008, 11s; B. Tizard, Adoption: a second chance, London, Open Books, 1977. 차우세스쿠 독재 시절 루마니아 고아원의 참담한 상황에 대한연구도 동일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M. Rutter et Al., ‘Early adolescent outcomes for institutionally-deprived and non-deprived adoptees. I: disinhibited attachment’, in Journal of child psychology and psychiatry, and allied disciplines 48 [2007] 17-30: T.-G. O’Connor – M. Rutter, ‘Attachment disorder behavior following early severe deprivation: extension and longitudinal follow-up. English and Romanian Adoptees Study Team’, in 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Child and Adolescent Psychiatry 39 [2000] 703-712).
24) A.-M. Rizzuto, La nascita del Dio vivente. Studio psicoanalitico, Roma, Borla, 1994, 286.
25) M. Diana, Ciclo di vita ed esperienza religiosa. Aspetti psicologici e psicodinamici, Bologna, EDB, 2004, 43s. Cfr G. Stickler, ‘Rappresentazione di Dio e immagine dei genitori nella esperienza degli adolescenti. Ricerca effettuata su 2255 adolescenti dai 14 ai 20 anni’, in Rivista di Scienza dell’Educazione 12 (1974/1) 39-75.
26) 다른 개념들, 예를 들어 hesed, hanan은 호의와 관대한 결정의 측면에서 자비를 말한다 (Cfr A. Sisti, ‘Misericordia’, in P. Rossano – G. Ravasi – A. Girlanda [eds], Nuovo dizionario di teologia biblica, Roma, Paoline, 1988, 978). Cfr Giovanni Paolo II, s., Lettera enciclica Dives in misericordia, 1980년 11월30일, 제4항.
27) Cfr H. Köster, ‘splanknon’, in G. Kittel – G. Friedrich (eds), Grande lessico del Nuovo Testamento, Brescia, Paideia, 1979, vol. XII, 906s.
28) Ch. Dickens, Oliver Twist, Milano, Feltrinelli, 2014, 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