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존 헨리 뉴먼의 신앙·성덕·상상력

San John Henry Newman: Fede, Santità e Immaginazione

© La Civiltà Cattolica, Q. 4064 (19 ottobre 2019 IV), 163–176
니콜라스 스티브 Nicolas Steeves, S.J. (예수회)
안소근 실비아 수녀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 옮김

  요약

  2010년 시복되고 작년 2019년 10월 13일에 시성된 존 헨리 뉴먼의 아름답지만 고난 가득한 삶은 ‘보편적 성화의 소명’la vocazione universale alla santità이란 지평 위에서 드러난다. 그의 성덕은 다름아닌 상상력과의 관계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는 강론과 성가 및 산문을 통해 상상을 추구했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의 행복이 무엇인지 상상하게 했습니다. 또한 그는 늘 신앙이 그리스도에서 비롯된 거룩함 및 상상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핵심 좌우명 “마음은 마음에 말한다”Cor ad cor loquitur(이심전심, 마음과 마음의 소통)는 이 상상력의 비전을 시적으로 요약하여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믿고 행동하도록 초대한다. 저자 니콜라스 스티브Nicolas Steeves 신부는 예수회 소속으로 교황청립 그레고리안 대학교의 기초신학 교수이다.

  머리말

  카탈루냐의 피레네 산지 세르다냐Cerdagna 고원 작은 고을들에는 모태처럼 단단하고 어두운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들이 있다. 종종 바로크 시대의 전환기적 세련됨으로 인해 아주 높고 아름다운 제단들이 세워질 수 있었고, 황금 나선 기둥들에는 서로 다른 시대 다양한 신분의 성인들의 상들이 가득 채워졌다. 이렇게 하여, 생마르탱 딕스Saint-Martin d’Hix 성당의 제단 장식에서는 성당 수호성인과 성모뿐만 아니라 농부 이시도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안토니오 아빠스, 성 로코, 그리고 몇몇 무명의 성녀들의 모습도 볼 수 있게 되었다.

  거기에서 세례를 집전하는 사람은 이 신앙의 성사를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헌장이 역설한 보편적 성화의 소명과 쉽게 연결시킬 수 있다. 성덕은 프란치스코 교종이 자주 강조하는 “일상의 지평”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흔히 성덕이란 일상생활과 거리를 두고 많은 시간을 기도에 할애할 수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으로 살아가고 각자 어느 곳에 있든 날마다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고유한 증언을 하면서 거룩한 사람이 되라고 부름을 받았습니다.”1)

  이렇게 하여 세대를 이어 “보통 사람들의 성화”가 이루어진다.2) 제단 장식을 조각한 이들은 3세기 후 교회 교도권이 말로 표현할 것을 자신들의 상상력으로 먼저 이루어냈다. 실상 성경의 은유와 전례 거행이 종종 정통 교의 정식의 필수적인 정확성을 시적으로 예언하는 것처럼 신앙과 교회의 역사 안에서 이미지가 글을 앞서가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2019년 10월 13일 프란치스코 교종이 시성한 존 헨리 뉴먼(John Henry Newman)은 17세기 이후 가톨릭 교회가 성인으로 인정한 최초의 영국인이다. 최근의 인물들을 비롯해 여러 나라의 수많은 남녀들을 시성함으로써 보편적 성화의 소명을 드러내는 것은 성 바오로 6세의 관심사였고, 성 요한 바오로 2세와 그의 후계자들에게서 더욱 심화되었다. 그들은 수도자, 성직자, 그리고 근대 이전의 군주들이라는 통상적 범위를 넘어서 “성화된 보통 사람들”에 속하는 수많은 일반 신자들을 성인으로 인정했다. 이들은 얼마나 많은 근대와 근대 이후의 평신도들, 즉 젊은이들과 노인들, 순교자와 고백자들이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세상과 자기 자신을 성화시키는 데 헌신했는지 분명하게 알려주었다.

  독신 사제였던 뉴먼 추기경은 언뜻 보기에 시성된(제단의 영광에 승격된) 성직자들의 “흔한 범주”에 들어맞는 사람 같다. 그러나 그의 국적과 시대, 템즈 강에서 테베레 강까지(런던에서 로마까지) 여정, 장례와 시신 발굴의 상황, 100년 넘게 기적 사례가 알려지지 않은 점, 기타 여러 미묘한 사항들이 실제로 그를 특별한 경우로 만들었다. 좀 더 고찰하자면 뉴먼의 성덕은 ‘정신의 확장’ampliamento della mente이면서 또한 참으로 그리스도교적인 상상력의 사용을 요구한다. 그래서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뉴먼의 성덕은 다양한 수준에서 우리의 상상력과 교차한다. 이 글은 그 중 몇 가지를 간략하게 보여줌으로써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 신앙을 일깨우고자 한다.

  오늘날 많은 신학 연구들은 신앙과 상상력의 연결을 추구한다. 그 선도자들 중에는 금언의 지혜를 사유하는 미국 예수회원 윌리엄 린치William Lynch를 기억할 수 있다. 그리고 더 체계적 방법으로 두드러진 칼 라너Karl Rahner와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Hans Urs von Balthasar가 있다. 윤리신학의 관점에서는 윌리엄 스펀William Spohn이 있고, 더 넓은 문화적 관점에서는 예수회 신학자이자 문학 교수인 마이클 폴 갤러거Michael Paul Gallagher가 있다.3) 이 마지막 저자는 본지에 여러 편의 글을 기고하여 신앙과 문화 및 상상력 사이의 유기적 연관성을 보여 주었다.양심 뉴먼 추기경의 몇 가지 전기적 사항들은 갤러거 신부의 글 “복자 뉴먼, 신앙의 수호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존 헨리 뉴먼은 1801년 2월 21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의 삶은 19세기 전체를 포함했다. 영국 성공회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1816년에 종교적 회심을 체험했다. 한 개신교 목사의 영향으로, 인격적 하느님의 실재와 자기 양심의 중심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옥스퍼드에서 공부한 후 21세에 오리엘Oriel 대학의 일원이 되었고 학자이자 성공회 성직자로서 20년 이상 옥스퍼드 대학교와 관계를 유지했다. 그는 특별히 초세기 교회를 연구했다. 이탈리아 여행 중에 시칠리아에서 심각한 질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영국에 돌아온 그는 유명한 저자이자 설교가, 그리고 옥스퍼드 운동의 지도자로 유명해졌는데, 이 운동의 목적은 영국 교회로 하여금 고대 영성과 성사 전통으로 돌아가 더 큰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었다. 뉴먼은 교회사와 신학사를 연구하면서 ‘중도’via media를 걷던 자신의 길에 조금씩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 당시 영국 교회는 이 ‘중도’ 덕분에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양 ‘극단’의 입장들 사이에서 스스로가 현명한 타협을 이루고 있다고 여겼다. 1845년 10월 9일, 여러 해에 걸친 식별 끝에 뉴먼은 가톨릭 교회에 받아들여지기를 청했다. 1년간 로마의 포교성성Propaganda 신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한 다음 사제품을 받았고, 오라토리오회에 입회한 후 고국으로 돌아가 버밍햄에 수도원을 세워 그곳에서 평생 거주했다. 1850년대 초 더블린의 신설 가톨릭 대학교 학장으로 파견되었고, 그곳에서 대학의 본질에 관한 유명한 강의들을 했다. 그러나 이 학교는 성공하지 못했고 그는 1858년에 사임했다. 뉴먼은 가톨릭 신자가 되기로 한 결정을 결코 의문시하지 안았지만, 몇 년 동안 자신이 쓸모 없다고 느끼고 몇몇 저술들에 대한 비판을 받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그러다 1863년 자신의 자서전 『그의 삶을 위한 변론』Apologia Pro Vita Sua에서 근거 없는 악의적 비난에 맞서 스스로를 변호하면서 새로운 힘을 얻었다. 이 책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성공회와 가톨릭 양쪽에서 그의 명성을 회복시켜 주었다. 1870년 뉴먼은 그의 가장 유명한 책 『동의의 문법』An Essay in Aid of a Grammar of Assent 을 출간하여 신앙의 확실성을 옹호하였다. 그의 교리적 정통성이 일부 의심을 받았는데, 이는 그가 제1차 바티칸 공의회 중 교종 무류성 선언의 시기와 절차에 관하여 어느 정도 망설였기 때문이다(단 이 교의의 내용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1879년 레오 13세 교종은 뉴먼이 오랜 세월 교회에 봉사한 점을 인정하여 그를 추기경으로 임명했다. 이 후 그는 10년을 더 살았는데 많은 사람들과 접하며 평온한 노년을 보내다 1890년 8월 11일에 선종했다.4)

  갤러거 신부는 2010년 뉴먼의 시복에 즈음하여 기고한 글에서5) 이 복자가 신앙·인생·현실·마음·양심·상상력의 관계를 명시적으로 탐구한 첫 그리스도교 사상가들 가운데 하나였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뉴먼이 언제나 종말론적 관점에서 이 탐구를 진행했음을 알아두어야 한다. 결국 그는 은총의 도움으로 마음과 양심을 준비하여 하느님을 맞이하고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성화와 축복에 항상 초점을 두었다. 이제 우리는 뉴먼과 함께 신앙과 성덕 및 상상력과의 관계에 주목하고자 한다.

  오늘날 신빙성 있는 복음적 성덕 상상하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중요한 결실 가운데 하나로, 보편적인 성화 소명을 바탕으로 시성의 지평이 넓어진 것을 들 수 있다. 한 해에도 여러 차례 시성 미사 때에 성 베드로 성당 전면의 외벽에 걸렸던 성인들의 많은 얼굴들이 그 증거이다. 이 얼굴들은 구체적으로 우리의 신학적, 종말론적 지평을 넓혀 준다. 로마에 사는 우리에게나 매체들을 통하여 시성식 전례를 바라보는 이들에게나, 그것은 참으로 “옆집의 성덕”을 보여준다.6)

  흔히 우리는, 오늘날 어떻게 복음을 신빙성 있게 선포할 수 있을까를 묻는다. 지금의 교회가 여러 이유로 그 신빙성의 많은 부분을 비참하게 잃어버렸다는 것은 이미 누구에게도 비밀이 아니다. 적어도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의 – 오래되었으나 언제나 참된 – 규칙들을 적용해야 할 것이다. 이에 따르면, 많은 대중에게 우연적인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진리를 드러내고자 하는 사람은 그 대중에 의하여 덕스러운 사람으로서 신빙성이 있다고 인정을 받아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호사와 정치인들에 대하여 이를 요구했었다. 이것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 안에, 이미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이스라엘의 구체적 역사와 그리스 지역의 역사의 교차점에 육화한 하느님의 말씀이며 유일무이한 인간인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 자신이 성인이 아니라면 우리는 복음을 신빙성 있게 선포할 수 없다.7)

  그리고 여기에서,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아무도 수를 셀 수 없는 큰 무리”(묵시 7,9) 가운데에서 뉴먼은 그의 삶과 글들로 오늘날 신빙성 있는 성덕이란 무엇인지를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뉴먼의 아름답고도 파란만장한 삶은 우리에게, 1800년대의 영웅적이고 낭만주의적이며 감상적인 성덕이 아니라 부활의 빛에 비추어 오늘날 다시 상상할 수 있고 상상해야 하는 성덕을 보여준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세상은 다시 그리스도의 복음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성 바오로 6세의 유명한 문장에서 시작해 보자. “현대인은 스승의 말보다 좋은 표양을 주는 사람의 말을 기꺼이 듣습니다. 스승의 말을 듣는다면 스승이 좋은 표양을 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8) 교종은 『현대의 복음 선교』에서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교회가 세상을 복음화하는 것은 말과 행동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교회의 충실, 청빈과 희생, 현세 권력에 굴하지 않는 자유, 한마디로 성덕 생활의 표양으로 세상을 복음화할 수 있다.”(41항).

  바오로 6세 교종의 이 말을 인용한 것은 세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로, 바오로 6세는 존 헨리 뉴먼에 대해 큰 애정을 품고 있었다. 둘째로, 그것은 본고의 주장과 연관된다. 오늘날 복음화를 위해서는, 인간 실존의 아름다우면서도 굴곡이 많은 이 현실을 반영하는 이야기들을 통하여 신앙인을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한 상상력의 관점에서(sub specie imaginationis) 회심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이유는, 뉴먼이 우리에게 삶과 말의 성덕의 흥미로운 모델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상상력에 힘입어, 그는 그리스도의 얼굴과 그 복음을 신빙성 있게 만든다. 그는 자신의 삶으로써뿐만 아니라 “상상력이 풍부한” 복음적 성덕을 드러내는 그의 글들을 통해서도 이러한 일을 한다.

  성덕은 상상해야 하는 것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심오하게 인간적이고 보편적인 상상력의 특성에 관하여 흥미로운 경구을 썼다. 그 프랑스어 원문에는 언어유희가 들어있다. “사람은 상상하는 존재이다”(L’homme est un être à imaginer). 이를 번역하면 그 구절을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상상할 능력이 있는 존재이고 상상되어야 하는 존재이다.”9) 이 격언은 유비적으로 성덕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리스도교적 성덕은 상상할 수 있으며 상상되어야 한다.” 이는 뉴먼의 경우에서 확인된다.

  젊은 본당신부로서 했던 첫 강론들에서부터 그는 성덕에 매혹되었음을 드러낸다. 『본당 강론집』 여덟 권을 시작하는 첫 강론의 제목은 “Holiness Necessary for Future Blessedness”, 곧 “미래의 축복을 위하여 필요한 성덕”이었다. 뉴먼은 1826년 8월에 이 강론을 했는데, 당시에 그는 25세였고 영국 성공회 신부가 된 첫 해였다. 연대기적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실제로 첫 강론는 아니었지만, 그 방대한 강론집을 바로 성덕과 미래의 축복에 대한 강론으로 시작했던 그 편집자의 – 강론자 자신과 합의한 – 선택은 매우 눈에 띈다. 그 후에 뉴먼은 영국 성공회에서이든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이든 여러 차례 성덕에 관하여 강론할 것이었다.

  “미래의 축복을 위하여 필요한 성덕”은 히브리서의 한 구절로 시작된다. “거룩해지지 않고서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12,14) 뉴먼은 청중들에게 신약성경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수사학적 질문을 하고, 성덕에 관한 몇 가지 정의로 이에 대답한다. 성경에 따르면, 성덕은 여러 가지의 총합이다. “사랑하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하느님께 순종하기; 의롭고, 정직하고, 온유하고, 마음이 순수하고, 용서하고 자신을 버리고자 하며, 종교적으로 감도되고, 겸손하고 포기할 줄 알며[…], 종교적이고 초자연적이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죄를 멀리하고 세속과 육신과 악마의 일들을 미워하기. 하느님 계명을 기쁘게 준수하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처신하기, 미래의 세상을 바라보듯이, 현세의 삶의 사슬을 이미 끊어버리고 이미 죽은 듯이 일상을 살기.” 이어서 강론자는 긴급하고 실존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사고방식과 기질 없이는 우리가 구원될 수 없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 비롯됩니까?”10)

  그러므로 뉴먼에 따르면 성덕은 우선적으로 선행을 행하는 데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내적인 자세이고, 근본적인 시각(세계관) 내지 토마스 쿤Thomas Kuhn이 말하는 상상력의 “패러다임”11)으로부터 비롯되는 일련의 덕들이다. 뉴먼이 제시하는 성덕은 하느님, 자신, 다른 이들과 우주를 상상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그러므로 “만일 거룩하지 않은 사람이 천국에 받아들여진다면, 그는 그 곳에서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가 그 곳에 들어가도록 허락하는 것은 자비가 아닐 것이다.”12) 악인들이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것을 하느님이 막으시는 것이 아니다. 그들 자신이 천상적인 것들에 길들여지지 않은 정신을 갖고 있기에, 이 지상에서 교회에서 지루해 하듯이 천상에서도 지루해 하게 되는 것이다. 뉴먼은 반어적인 어조로 이렇게 말한다. “신중치 못하고 감각적이고 신앙이 없고 하느님을 사랑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 좁고 현세적인 시각을 지니고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하며 양심에 어두운 정신, 자기 스스로 만족하며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정신은, 지금 ‘기도합시다.’라는 말에 즐거워하지 않듯이 마지막 날에 ‘와서 네 주님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라는 말에도 즐거워하지 않을 것이다.”13)

  그러나 악인은 지옥에 가는 더 큰 즐거움도 누리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더 간단한 문제이다. 장소는 하나이지만, 스콜라학의 금언이 적용되는 것이다. “수용되는 모든 것은 수용자의 방식에 따라 수용된다”(Quidquid recipitur ad modum recipientis recipitur).14) 그러므로 뉴먼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순수하지 못하고 타락한 영혼에 대한 징벌을 상상하려 한다면, 그 영혼을 천국으로 불러들이는 것보다 더 큰 벌은 공상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두 영어 동사, ‘상상하다’imagine와 ‘공상하다’fancy를 사용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뉴먼은 실제로 청중들에게, 단죄받은 이에게 합당한 벌을 상상하게 한다. 그런데, 왜 개념화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을 해야 할까? 불경함과 성덕은 너무나 높으면서 또한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추상적인 지성으로 개념화되는 것이라기보다 육화한 상상으로 떠올려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 종말에 관련해서는 개념들도 교의들도 배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강론 곧 케리그마의 맥락 안에서, 곧 복음의 본질적 측면을 목적으로 하는 직접적 선포에서는, 상상력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적절하다. 이렇게 상상력을 사용하는 것은 온전히 ‘인식적인’ 목적에서이다.

  하지만 종말을 상상하는 것에는 인식적 측면만이 아니라 행위와 연관된 ‘윤리적’ 측면도 있다. 보통 우리는 개념들을 기초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 속의 상상을 기초로 행동한다. 많은 이들이 상상이 환상이며 비현실적인 것을 살아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여겨 상상을 믿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어떤 사람이 “상상력이 많다”고 하면 이는 그를 생각 없는 예술가와 같다고 하는 셈이 된다. 하지만 뉴먼이 상상력을 그렇게 중시하는 것은, 그가 삶이 추상적 사변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행동을 위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15) 그리고 삶이 행동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살아 있는 상상력을 지녀야 한다.

  상상력과 행동 사이의 이러한 연관을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삶에 적용할 것인가? 여기서 뉴먼은 일종의 선순환을 드러낸다. 한편으로, 사물을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정신은 선한 행위들을 하게 되고, 그것들은 그를 조금씩 하늘로 다가가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 선한 행위들은 거룩하고 상상력 있는 정신을 길러 준다. “어떤 정신의 형태(forma mentis), 어떤 마음과 감정의 상태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우리의 행위들은 특히 그것들이 그러한 정신의 형태를 산출하거나 강화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구원에 기여한다[…]. 이들은 하느님 은총의 도움을 받아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 안에 넣어 주신 성덕의 원리를 강화하고 분명하게 하는 수단들이다[…]. 성덕이 없이는 하느님을 볼 수 없다.”16) 그런데, 이러한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있어야 한다. 개념들만으로는 선한 행위와 마음의 거룩한 상태 사이의 풍요로운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상상력이든 상관없는 것은 아니다. 아래에서 보게 될 것처럼, 복음적 성덕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에 의하여, 그분의 비유들과 그분의 삶과 죽음과 부활로 이루어진 상상력을 요구한다.

  뉴먼의 첫 본당 강론의 준엄한 어조는 놀랍게 보일 수 있다. 여기에는 분명 칼뱅주의적인 색채가 있고, 이 강론자가 십년 전 고등학생 때에 겪은 개인적 회심의 흔적이 있다. 반면 성덕에 관한 그 후의 많은 강론들에서는 경험의 결과로 이루어진 더 평온하고 성숙한 어조를 볼 수 있다.17) 그중 어떤 강론들에서 그는 몇몇 구체적인 성인들, 사도들, 복음서 저자들, 또는 위대한 수도자들, 예를 들어 성 베드로, 성 마태오, 성 베네딕토, 성 도미니코,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등의 삶을 서술하기 위하여 상상력을 사용한다.

  뉴먼의 강론에서 나타나는 성덕에 대한 상상력 있는 묘사 외에, 그의 소설과 시들에서 나타나는 묘사도 빼 놓을 수 없다. 거기에서도 성덕은 상상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학 작품들을 통하여 우리는 성덕과 상상력 사이의 두 번째 연관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것은, 성덕이 스스로 상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것이다.

  상상력 성덕은 상상할 수 있는 능력

  1855년에, 웨스트민스터 대주교인 와이즈먼(Wiseman) 추기경의 요청으로 뉴먼은 역사소설 『칼리스타』(Callista)를 썼다. 여기에서는 3세기 북아프리카의 몇몇 그리스도교 성인과 순교자들의 상상적인 이야기를 제시한다. 일차적으로, 뉴먼으로 하여금 독자들 사이에 성덕에 대한 갈망을 일으키는 소설을 쓸 수 있게 한 능력과 영감은 뉴먼 자신의 성덕이라고 – 그리스도, 교회, 그리고 개별 신자들에 대한 그의 충실성이라고 –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차적으로, 뉴먼은 성덕이 그 자체로 어떻게 세상을 상상하는 새로운 하나의 방법이 되는지에 관한 깊은 직관을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

  칼리스타는 젊고 아름다운 그리스 여인으로, 오늘날의 튀니지에 해당하는 곳으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오빠와 함께 이교 신들의 신상을 조각하는 일을 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교 신앙에 만족하지 못한다. 어느 시점에서 그녀는,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지만 신들에게 분향하기를 거부하여 감옥에 갇힌다. 이 상황에서 그녀는 사제 체칠리오가 준 복음서 사본을 읽기로 결심하는데, 체칠리오는 실상 카르타고의 주교인 성 치프리아노이다.

  뉴먼은 복음을 발견하는 여인의 내밀한 인상과 그 신앙을 환시, 표상, 상상의 어휘들로 묘사한다. “그것은 오직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온 선물이었다. 그것은 있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게 보이는 존재들의 새로운 상태, 새로운 공동체를 보게 해 주었다. 사물들의 새로운 상태만이 아니라, 정신이 최고로 상상력을 펼치는 순간에 상상해본 어떤 완전한 이상과도 완전히 다르고 거리가 먼 어떤 분의 현존까지도 보게 해 주었다. 그것은, 그의 지성이 담아낼 수 없으면서도 지향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자신이 만들어낼 수 없는 분 앞에 서 있을 때, 그녀는 그분을 확인하고 알아볼 수 있었다. 그분은 그녀의 양심 안에서 말씀하시던 분이었다. 그녀는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의 인격을 찾고 있었다. 그분은 치오네와 아젤리우스의 뺨을 달아오르게 했다. 이러한 표상은 그녀 안에 깊이 스며들었다. 그녀는 이것이 현실이라고 느꼈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것은 시인의 꿈이 아니다. 이것은 어떤 실제 인물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다른 무엇이기에는 너무 큰 진리와 자연이, 너무 큰 생명과 정확함이 있다.’ 그러나 그녀는 스스로 움츠러들어 그로부터 거리를 둔다. 자신과는 다른 어떤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전에 없던 비참함이 그녀의 마음 속 깊이에 자리 잡았다 그녀는 매일 점점 더 자신을 낮추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양심의 가책 속에서 자신을 안심시켰던 많은 이야기들을, 특히 잔치에서 그분의 발에 기름을 부었던 불쌍한 여인에 대한 그분의 자애와 그분의 사랑에 대한 구절들을 생각했다. 눈물이 눈에 가득 고였고, 그녀는 자신이 그 죄 많은 여인이며 그분께서 자신을 내치지 않으신다는 것을 상상했다.”18)

  여기에서도, 뉴먼에게 성덕으로 인도하는 신앙은은 자신과 주변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이라는 점이 나타난다. 그것은 새로운 지각, 새로운 상상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예술적 상상력의 결실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고전 그리스 시대 예술가였던 칼리스타는 혼자서는 결코 그렇게 아름다운 것을 상상해낼 수 없었다. 이러한 환시는 그녀에게, 신비주의 전문가들이 “이중의 인식”이라고 부르는 은총을 가져다 준다. 이중의 인식은, 자신의 비참함과 죄인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를 함께 알게 되는 것이다. 곧 칼리스타는 신앙의 이름으로 데치우스 황제 때에 순교자가 될 것이고 그럼으로써 성덕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에, 그리스도에 대한 그녀의 인격적 신앙은 그녀가 성경을 읽고 거기에서 죄인들에게 자비로운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에 상상했던 새로운 세상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그러므로 뉴먼에게 신앙, 성덕, 상상은 분명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었다.

  뉴먼식 그리스도교 신앙: 자기 성화를 위한 실재 상상

  1854년에 뉴먼은 아일랜드 가톨릭 주교들의 요청으로 더블린의 새 대학교 학장 소임을 받았다. 그는 이 기회를 통해 과거에 이미 시작했던 대학의 양성에 관한 고찰들을 계속 전개했다. 그는 자신의 여러 연설들을 모아 1858년『대학의 이념』이란 제목의 책을 엮었다.

  이 책의 여섯 번째 연설 “배움과 관련해서 본 지식”에서 그는 지성을 완성시키고 지성에 덕을 부여하는 원리를 지칭하는 정확한 영어 명칭이 없다고 설명한다. 그것은 “철학, 철학적 지식, 정신의 확장”19)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정신의 확장”20)은 순전히 지성적이거나 이론적인 것만이 아니고, 단편적이고 서로 연관되지 않은 학문적 지식의 공허하고 헛된 축적도 아니다. 오히려 뉴먼은 “참된 정신의 확장은 오직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보는(동시에 하나의 전체로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으로 이루어진다[…]”고 단언한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으로 이어지도록 인도한다. 그 능력은 전체 표상을 각각 별개의 부분에 전달함으로써, 그 전체가 상상력 안에서 하나의 영과 같이 되도록 한다. 그 영은 구성하는 모든 부분들에 스며들고 관통하며 그들에게 특정한 의미를 부여한다.”21)

  그런데, 『동의의 문법』과 같은 뉴먼의 다른 여러 글들에 따르면 이 종합능력은 다름 아닌 상상력이다.22) 지성에 적용되면, 그 능력은 사물들을 체계적이고 엄정한 것이 되게 하지는 않지만 그들을 연결하여 살아있는 유기체가 되게 하는 상상적 패러다임을 형성한다. 그 유기체에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령이 살아있고 숨을 쉰다. 그러나 뉴먼에 따르면, 정신이 확장되기를 바라는 지속적이고 거룩한 갈망으로 강화되는 이 인식적 유기체는 성전과 성경이 “신앙”이라고 부르는 그 덕과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여기에서 제시하려고 하는 마지막 단계이다.

  그러나 먼저 잠시, 앞서 성덕과 관련하여 언급한 종류의 상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기에서, 뉴먼이 언제나 모든 형태의 상상에 무조건적으로 열광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진실과 아주 거리가 멀다. 분명 그는 언제나 적극적인 상상력이 있었지만, 또한 언제나 그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알고 인식하고 있었다.

  1865년에 자신의 삶을 변호하기 위해 쓴 『변론』에서 그는 자신이 19세 때에 썼던 몇몇 자서전적인 글들을 인용한다. 그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엄하게 판단한다. “나는 『천일야화』가 사실이기를 바라게 되었다. 나의 상상력은 미지의 영향, 주술적 힘, 부적들에 팀닉했다… 나는 삶이 꿈일 수 있다고, 또는 내가 천사이고 이 세상이 모두 거짓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23) 18세의 뉴먼은 이미 낭만적인 어떤 종류의 상상력의 기만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그는 상상에 지나치게 열광하는 그 나이의 많은 젊은이들과 매우 다르다. 실상 그러한 열광은 19세기 후반의, 상상에 대한 인식론적 경멸을 초래하게 되고, 그것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교회가 근래에 뉴먼에 대해 성덕을 인정한 것은, 철학자와 신학자들이 상상력이 인식과 행위에 기여할 수 있음을 재평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24)

  30년 후인 1849년에 뉴먼은 가톨릭 설교자로서, 겉모습은 그리스도인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소설가와 시인들을 비판한다.25) 그는 성인·순교자에 대해 시적인 글을 쓰는 것과 참된 가톨릭 신자가 되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라고 준엄하게 말한다. 그가 보기에 상상 그 자체는 실상 아무것도 아니며,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를 향하지 않는다면 기만이 될 수 있다. 1857년 7월 23일의 짧은 비망록에서 그는 “신앙의 큰 원수는 이성이 아니라 상상”이라고까지 말한다.26) 실상, 우리의 상상이 어떤 것에 고정되면 – 예를 들어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심한 회의에 고정되면 – 그 설득력은 이성적 논거들로 바꾸어놓을 수 없는 것이 된다. 이는 뉴먼이 대학의 학생들에게서 보았던 사실이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두 형제들의 경우에 대해 평생 애석해 했던 사실이기도 하다. 그 형제들 가운데 한 사람은 공공연한 무신론자이고 빈곤했고, 다른 한 사람은 환상적인 신학의 강론가였다. 상상은 그 자신의 영토에서, 곧 역사, 표상, 이야기, 예술로 논박해야 한다. 요점은, 성경 전체가 상상력의 대죄인 우상 숭배와 맞서 싸울 때에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에 봉사할 수 있기 위하여 우리의 상상력은 “좋은 것들로”, 즉 하늘 나라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복음의 비유들로, 그리스도교 예술과 문학으로,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에게서와 같은 영신 수련으로 길러져야 한다. 그러나 또한, 우리를 우리의 창조주와 구세주께 이르게 하는 아름답고 참된 것, 선한 것으로부터도 길러져야 한다. 상상력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봉사한다면, 신앙은 상상력과 같다.

  요한이 그의 복음서 서문에서 시적으로 표현하듯이 그리스도는 세상에 육화한, 아버지의 영원한 말씀이다. 그뿐 아니라, 성 바오로는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콜로 1,15)이라고 가르친다. 뉴먼은 그리스도교 계시 전체가 하나의 모상, “이념”, 형상으로 집중된다고 확신한다. 그 모상은 그리스도의 모상이다. 그분은 우리의 병들고 고정된 상상들을 다시 만들어, 우리를 하느님과 교회에 순종하면서도 자유로운, 성령으로 고취된 충실하고 창조적인 상상이 되게 한다.27)

  뉴먼은 “보통 마음에는 이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상상을 통해서 도달한다.”28)고 썼다. 그의 추기경 표어인 “마음은 마음에 말한다”(Cor ad cor loquitur, 以心傳心)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마음에서 우리의 마음으로, 한 인간의 마음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이끈다. 뉴먼에게서 그러했듯이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과 다른 이들의 마음으로 움직여지고 상처를 입게 된다면, 우리는 교회 안에서 상상력의 성덕을 향해 걸어가게 될 것이다. 뉴먼과 더불어 우리는 많은 측면에서 “성덕은 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29)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 프란치스코, 사도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Gaudete et exsultate (GE), 14항.
2) 프란치스코 교종은 프랑스 소설가 조셉 말레그(Joseph Malègue)가 시작한 이 아름다운 문학적 표현을 자주 인용한다. 예를 들어,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7항, 각주 4.
3) 상상력의 신학적 위치에 관한, 이들을 포함한 여러 저자들의 견해에 관하여, 참조. N. Steeves, Grazie all’immaginazione. Integrare l’immaginazione in teologia fondamentale, Brescia, Queriniana, 2018.
4) M. P. Gallagher, «Il beato Newman, “defensor fidei”», nota 1.
5) 참조: M. P. Gallagher, «Il beato Newman, “defensor fidei”», in Civ. Catt. 2010 IV 8, cit.
6)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7항.
7) 참조. G. Piccolo – N. Steeves, E io ti dico: immagina! L’arte difficile della predicazione, Roma, Città Nuova, 2017, 82–86.
8) 바오로 6세, 사도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 41항에 인용된 성청 평신도위원회 위원들에게 행한 연설, 1974년 10월 2일.
9) G. Bachelard, La poétique de la rêverie, Paris, PUF, 1968, 70; it ed., La poetica della rêverie, Bari, Dedalo, 2008, 87.
10) J. H. Newman, Parochial and Plain Sermons, London – Oxford – Cambridge, Rivington, 1869, I, 1, 2–3; It ed., «La santità è necessaria per la beatitudine futura», in www.newmanfriendsinternational.org
11) 참조. Th. Kuhn,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02.
12) J. H. Newman, 본당 강론 및 일반 강론 모음 Parochial and Plain Sermons, cit., I, 1, 3.
13) Ivi, I, 1, 6. 1
14) 참조. 예를 들어, Tommaso d’Aquino, s., Sum. Theol., I, q. 75, a. 5, resp.
15) J. H. Newman, Discussions and Arguments, IV, 6, 295; Id., An Essay in Aid of a Grammar of Assent, I, 4, § 3, 95에 인용됨.
16) Id., Parochial and Plain Sermons, cit., I, 1, 8–9.
17) 참조. Id., «Evangelical Sanctity the Completion of Natural Virtue», in Oxford University Sermons, London, Longmans, 1902, III; «Saintliness not Forfeited by the Penitent», in Sermons on Subjects of the Day, London, Longmans, 1902, II; «Saintliness the Standard of Christian Principle», in Discourses addressed to Mixed Congregations, London, Longmans, 1906, V; «Nature and Grace», ivi, VIII; «Illuminating Grace», ivi, IX.
18) Id., Callista. A Tale of the Third Century, London – New York – Bombay, Longmans, 1901, XXIX, 325–326.
19) Id., The Idea of a University, ivi, 1907, VI, 1, 114, 이탈리아어역, «L’idea di università», in Id., Scritti sull’università, Milano, Bompiani, 2008, 263.
20) 이 개념에 관하여, 참조. 베네딕토 16세, «Fede, ragione e università. Ricordi e riflessioni». 레겐스부르크 대학교에서 행한 연설, 2006년 9월 12일, in w2.vatican.va/ 이 연설에서 베네딕토 16세는 “우리의 이성 개념과 그 사용의 확장”을 강조한다.
21) J. H. Newman, The Idea of a University, cit., VI, 1, 136–137; 이탈리어어역, Id., Scritti sull’università, cit., 283–284.
22) 참조. Id., An Essay in Aid of a Grammar of Assent, cit., I, 4, 특히 § 3.
23) Id., Apologia pro vita sua,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13, I, 2; 이탈리아어역, Apologia pro vita sua, Milano, Jaca Book, 19952, 18.
24) 상상에 관한 뉴먼 사상에 대한 근래의 깊이있는 연구로, 참조. B. Dive, John Henry Newman and the Imagination, London, T&T Clark, 2018.
25) 참조. J. H. Newman, Discourses to Mixed Congregations, cit., VIII, 156–157.
26) H. M. de Achaval – J. D. Holmes, The Theological Papers of John Henry Newman on Faith and Certainty, Oxford, Clarendon, 1976, 47.
27) 참조. J. H. Newman, The Via Media of the Anglican Church, London, Longmans, 1901, Pref., xvii; Id., An Essay on the Development of Christian Doctrine, I, 1, 4, 36; Id., Oxford University Sermons, cit., XV, § 11, 322; Id., An Essay in Aid of a Grammar of Assent, cit., II, 10, § 2, 464.
28) Id., Discussions and Arguments, cit., IV, 6, 293; An Essay in Aid of a Grammar of Assent, I, 4, § 3, 92에 인용.
29)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9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