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인간: 중국과 서양의 관점

INTELLIGENZA ARTIFICIALE E PERSONA UMANA
Prospettive cinesi e occidentali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와 토마스 밴쵸프
Antonio Spadaro, S.I. & Thomas Banchoff
이진현 라파엘 신부(예수회) 옮김

La Civiltà Cattolica, Q. 4055 (1 Giu 2019 II), 432-443

  들어가며

  2019년 4월 3일부터 3일까지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의 산타클라라 대학교에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세미나가 열렸는데, 이 행사는 ‘기술과 인간의식 선도 연구소’(Tech & the Human Spirit Initiative at Santa Clara)에서 주최하고 ‘문명간대화를 위한 중국포럼’(치빌타카톨리카와 조지타운 대학 협력으로 설립된 단체)와 성청 문화평의회가 후원했다.

  이 모임에는 인공지능 주제와 관련해 두 명의 저자를 비롯해 중국과 미국 및 유럽 출신 학자 11명이 참석하여, 현재 진행 중인 중대한 변화가 그리스도교와 유교 전통을 비롯해 다른 종교와 세속 전통에 어떤 도전을 주는지 고찰했다.

  최근 10년 동안 인공지능 분야에서 이루어진 엄청난 진보가 역사적 불연속의 성질을 보여주면서 중국과 서구 사회는 그 의미를 다루기 시작했다. 장기적으로 인공지능 혁명은 몇 가지 근본적인 철학적 질문을 재정의할 수 있다. 만약 기계가 인간지능을 능가한다면, 인간의 고유성과 존엄성 및 자유는 어떻게 될 것인가? 컴퓨터가 ‘자의식’을 갖고 ‘창의적’이 될 것인가? 만약 그렇게 되면 우리의 문화 개념은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경험·기술·사유의 전통

  오랫동안 우리의 사회적, 문화적 세계 경험은 기술로 매개되어 왔다. 그러나 지금 시대의 [기술은] 질적인 변화까지 추동하고 있다. 공공장소와 자동차, 일터와 집에서 사람들은 점점 휴대전화·태블릿·노트북·헤드셋·이어폰 등에 점점 더 의존하면서 기술이 매개하는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 디지털 도우미 [기기와 앱들]은 여행경로·맛집·영화 추천에서 최적의 답을 알려 준다. 이런 식으로 디지털 기술은 끊임없이 우리의 욕구와 필요에 대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된 이해를 끌어모은다. 그리고 가상현실 기술은 우리를 인공세계에 점점 더 몰입시킬 것이다. 지금의 기술혁명이 인간에 대한 우리 개념에 함축하는 의미는 무엇이고,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지칭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인간 존엄성을 핵심에 두는 가톨릭 윤리신학은 이 질문에 답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2015년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LS)에서 기술이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의 고통, 두려움, 기쁨, 복잡한 개인적 체험을 직접 접하지 못하게 하고 고립감이라는 해로운 정서를 증가시킬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LS 47).

  중국의 주요 철학과 종교 전통인 유교와 도교 및 불교는 차례로 다양한 철학적·윤리적·신학적 소재들을 이 주제로 가져온다. 이들 전통은 신성과 영혼과 불멸성의 존재와 본질을 포함하는 근본적인 주제에 있어서 그리스도교와 상이하고 그들 서로간에도 다르다. 이들은 자기 자신과 공동체에 이바지하는 도덕적 삶에 대한 성찰의 중요성이란 가치에 집중한다. 설령 각 전통이 다르게 이해되더라도 이들은 대인관계와 삶의 의미를 반추한다.

  이 모든 전통들은 선한 삶에 대한 성찰의 출발점으로, 살과 피의 인간세계로부터, 그리고 신체적·정서적·대인관계 상호작용의 중심성으로부터 단서를 얻는다. 그리고 먼 과거의 역사적 기원을 고려한다면 달리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여기서 논의되는 주제는 “새로운 기술적 매개 세계의 성장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고 대응해야 하는가”의 문제인데, 이와 관련하여 세 가지 양상이 나타난다.

  1. 전화에서 라디오, 텔레비전, 그리고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 이르기까지 장거리 통신의 발전은 사람들이 서로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거나 익명의 사람들과도 교류하는 데 쏟는 시간과 에너지의 양을 크게 증가시켰다.

  2. 디지털 도우미들assistants로 더욱 두드러진 인공지능의 빠른 등장은 인간이 기계와의 상호 작용에 전념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확대하고 있다. 그리고 기계는 우리의 욕구와 필요를 이해하고 응답하며, 심지어 형성하고 조절하는 능력에 있어서 점점 더 자율적이 되고 있다.

  3. 아직 초기단계이긴 하지만 ‘몰입형’immersive 가상현실의 등장은 개인들로 하여금 비물리적 공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한다. 인공지능의 발전과 디지털 처리능력에 힘입은 가상세계의 현실감 증대는 상업·오락·교육·관광 및 기타 부문에서 혁신을 일으킬 것이다.

  이 신흥세계와 기존 전통들, 즉 그리스도교·유교·불교·도교 사이의 상호작용은 산타클라라 세미나의 시작점이었다. 인공지능 윤리에 관한 현대의 성찰은 종종 출발점부터 물질적이고 계몽적인 입장을 취한다. 성찰은 자유롭고 자율적이며 합리적인 개인들로부터 이루어진다. 핵심 문제는 인공지능과 관련 기술들이 자유와 번영 및 평화의 의미에서 인간의 복지를 향상시킬 수 있는가 여부이다. 이들 전제에서 개인정보보호data privacy·얼굴인식·자율주행차·자동화무기 등의 문제에 대한 논쟁들이 생겨난다.

  이것들은 필요하고 중요한 토론 주제들이지만, 우리는 산타클라라에서 재개할 의도가 없었다. 대신 우리는 고대 종교와 철학 전통에 대한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문제들과 관련하여 현재 진행 중인 기술혁명과 그 의미를 고찰하고자 했다. 발표와 대화들에서 논의된 주요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가. 인공지능과 관련 기술의 출현으로 인간과 대인관계에 어떤 위험과 기회가 뒤따르는가?

  나. 기술진보는 인간의 자기반성과 자유의지 능력을 약화시킬 것인가? 아니면 실제적인 관점에서 그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가?

  다. 기술진보는 위협인가? 아니면 가족과 직장 및 사회에서 타인들과 깊고 지속적으로 관계 맺는 인간 능력에 대한 지원인가?

  인공지능과 인간: 세 가지 핵심 사항

  여기서 우리의 목표는 짧은 보고서와 광범위한 토론에서 나온 성찰들을 충분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몇 가지 핵심 사항들을 간추려 볼 수 있다.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은 확실히 기술의 미래와 그것이 인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중요한 의문을 제기했다. 중국과 서양 모두 여러 양상에서 불확실성과 식별의 시기에 있다.

  첫 번째 양상으로 드러난 것은 최근 몇 년간의 정치와 사회 발전과 관련이 있는데, 이는 디지털 기술 성능이 우리 세계를 더 나은 환경으로 만들 것이라는 순진한 낙관론을 떨쳐버리게 했다.

  두 번째 양상은 인간과 기계의 공존 문제와 관련이 있는데, 이는 우리가 여전히 동서양 문명의 갈등과 통합에 몰두하는 동안 발생했다. 이 경우 핵심 이슈는 인간과 자연 또는 사회와의 관계가 아니라 인류와 인공물(우리가 만든 창조물)과의 관계이다.

  세 번째 문제는 ‘창의성’과 관련이 있다. 우리 인간이 또 다른 지적 존재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은 명시적이든 함축적이든 창조 개념의 영향을 받은 많은 서구인들에게 더 큰 우려가 되는 반면, 대부분의 동아시아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전통 안에 창조 개념이 없어서 [그런 우려가 상대적으로 덜하다].

  비서구의 비계몽주의적 접근법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이 주제에 관해 ‘세속적 접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채택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공지능 윤리에 관한 대부분의 논쟁은 “자유롭고 합리적이며 자기 결정적 개인”이라는 계몽주의적 이상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공지능은 인간의 자율성과 역량을 높이고 동의와 사생활을 존중하며 편견을 피하는 한, 윤리적이라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세미나의 모든 발표와 토론들은 대신에 인간에 대한 보다 복잡한 접근방식을 채택했다. 교회의 사회교리에 기초한 이들은 사람의 자유와 존엄성에 대한 계몽주의적 강조를 공유하되, 이성의 행위(자연법)와 계시에 기초한 더 넓은 도덕적 사회적 의무의 맥락에서 그것을 강조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인공지능의 윤리는 자유와 책임 문제를 훨씬 넘어서 인류 공동체에서 연대와 정의를 증진시키는 데 있어 기술의 의미를 다루고 있다.

  유교와 도교는 인간관계에 중점을 둔다. 유교적 관점에서, 고립된 개인은 결코 윤리적 성찰의 출발점이 될 수 없다. 남녀 인간은 가족과 사회에서 상호 헌신의 필수 연결망 안에서 태어난다. 핵심 질문은 “인공지능이 가장 직접적인 인간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인데, [유교의 입장에서 보면 서구 그리스도교의] 보편적 사랑의 차원과 초월적 하느님의 차원은 우선적 고려사항이 아니다.

  도교에서도, 매력적이고 역동적인 관계, 그리고 인간이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자연질서에 중점을 둔다. 한 발표자는 “자아·자유·인간존엄성·공동선·우주 등과 관련해서 인공지능을 재설정하여 도道를 닦을 정도까지 되면, 도교 신도들Taoists이 호의적으로 인공지능을 바라볼 것”이라고 전망했다.

  불교의 관점에서 볼 때, ‘깨달음’awakening의 길로 사람들을 성장시키는 기술은 환영받겠지만, 그것들이 늘 인간과 대인관계에 명확한 의미를 주는 것은 아니다. 한 전문가가 말했듯이 “불교는 고정된 원인의 존재를 부인한다. 고정된 절차를 따르는 전환의 과정은 없다. 모든 것은 업業Karma(운명, destiny)에 따라 변한다. 삶은 윤회든 해탈이든 무한한 다양성을 지닌다.”

  [세미나의] 대화는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한 다양한 전통을 끌어와 총체적인 접근법으로 수렴되어 사람의 지성적·정서적·신체적, 때로는 영적 차원에 주목했다. 한 참가자가 제안한 것처럼, “인간과 자연은 모호하고 신비스러워 보이지만 윤리적인 것들을 포함해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하고 이해될 가치가 있다.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최선을 다해 자연과 인간을 디지털 데이터로 환원시킬 때, 우리가 바라는 점은 그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다른 방식들에 대한 존중을 계속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기술은 중립적 도구인가, 삶의 일부인가?

  세미나 토론에서 기술과 인공지능에 대한 두 가지 사유 방식 사이에는 분명한 긴장이 있었다.

  첫 번째 관점은 기술을 도덕적 관점에서 선한 목적이나 악한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중립적인 도구로 이해한다. 예를 들어, 한 참가자는 이렇게 말했다. “인공지능이 개인에게 노출되는 위험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인간이 악용하고 남용하려는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도교의 관점에서 주목할 점으로, “기술은 오용되면 우리를 [자연] 본성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 있다.”

  두 번째 접근은 기술을 인간 삶의 세계에서 환원 불가능한 부분으로 여기는 것으로, 이는 우리 자신과 자유의지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또 다른 참가자가 말했듯이 “기술은 단순히 수동적인 대상으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인공지능과 기타 기술과의 상호작용에서 우리 자신, 곧 “우리 몸·생각·감정·욕구·능력”이 재구성된다. 같은 맥락에서 기술은 또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조직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별도의 맥락이 아니라 일상생활 환경과 연결되어 점점 더 통합되고 있다.”

  이들 두 관점은 상반된 것이 아니다. 첫 번째는 기술이 던지는 도전들에 응답하는 데 있어 인간의 책임에 주목하는 반면, 두 번째는 ‘기술을 받아들일 것인가’의 물음이 아니라 ‘어떻게’라는 물음을 상기시켜 준다. 한 참가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기술이] 인간의 자기반성과 자유의지 능력을 제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 스스로가 그 역량을 발휘하고 발전시키는데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더 엄격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함양의 중요성

  중간토론회interventions는 자기 함양의 중요성에 동의했다. 도덕적 삶은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람들이 변화하는 환경에 덕성을 채택하고 적응시키는 방식에 따라,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성격과 인성을 계발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지적 역동성이 아니다. 거기에는 강력한 정서적 실용적 요소가 있다.

  한 참가자가 고찰한 위대한 유교 사상가 맹자(370–289 BC)에 따르면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이유로 측은지심compassion을 함양하기 때문에 “스스로 인간이 되는 법을 배운다.” 점점 더 널리 퍼져가는 몰입형 기술은 이러한 도덕교육에 위협이 된다. 이 참가자가 주목한 것은 예를 들어, “인내심과 자제력, 지성적·도덕적 식별같은 덕성의 함양과 관련하여 인공지능도 초기 단계부터 게임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리 인간들을 겨냥한 무기로 바뀐다는 점이다. 아마도 가상세계가 덕성 형성의 장이 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을 수 있다.

  또 다른 참가자가 인지한 바에 따르면 “가상현실의 ‘가공세계’는 ‘실제세계’가 될 수 있고 거기서 우리는 속성 윤리학습으로 더 나은 사람들이 되도록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수많은 비디오 게임은 아이들과 청소년들로 하여금 서로 다른 배경의 타인들과 만나게 한다.

  긍정적인 가능성들이 언급되었는데, 예를 들어 “우리와 전혀 다른 누군가의 몸에서 아바타로 살거나 가상의 몰입여행으로 가난한 나라에 가는 것, 심지어 예수의 생애에 [몰입되는] 가상현실 계정 체험 제안도 있었다.

  교육, 특히 인터넷이나 개인맞춤형 인공지능 도우미 혹은 몰입형 가상현실 체험을 통해 제공되는 도덕교육과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과의 직접 접촉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학생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교사들은 그들이 자신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 그들은 전문 지식과 기술의 전수를 넘어 인격적 유대를 맺고 어떤 식으로든 사람으로서의 변화에 헌신한 사람들이다. 유교적 관점에서는 인공지능 보조교육이 “평생학습 수행의 기초가 되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인격적인 유대를 훼손시키면 안 된다”는 경고가 나왔다.

  사회성 영역의 균열

  길거리는 물론 내부 공간에서도 더더욱 널리 퍼져나간 휴대전화에서 아마도 가장 분명한 수준에 도달하는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은 교육적인 맥락 밖에서도 사람들간의 연결에 위기를 초래한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social media는 개인의 시야를 넓히는데 유용한 연결성을 위한 공간으로 오랫동안 칭송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에 논평자들은 인간의 퇴보와 모두가 똑같이 생각하는 그룹으로 나눠져 공공영역이 점차 적대적인 세계로 전환되는 상황을 우려했다. 이러한 경향은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정보와 사람들을 기존 선호도에 따라 분류함으로써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한 참가자는 이렇게 말했다. “디지털 네트워크가 인간의 연대를 증진할 수 있는 잠재력에 도달하려면 대화의 기술이 회복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타자’에 귀 기울이고 그 목소리로 방어벽을 극복할 수 있다면 그들은 기꺼이 이해하게 된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나그네를 사랑하고 자신의 주변과 온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공공영역의 균열은 그리스도교에 특별한 문제를 제기한다. 특히 “가톨릭 사회사상은 인간발전을 우선시하는 데 뿌리를 두고 있어서 이들 새로운 기술을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집 안과 밖에서의 만남과 동반이 필수적이다.”

  노인 돌봄

  노인 복지는 수많은 노인들의 외로움과 유능한 간병인의 부족을 감안할 때 인공지능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분야들 중 하나로 확인됐다. 유교적 관점에서, 가족을 돌보기 위해 로봇에 의존하는 것은 특히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분야의 인공지능 응용프로그램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런 우려를 한다. “좋은 로봇이 실제적 필요 없이도 노부모를 정성스럽게 돌본다면, 로봇은 성인 자녀의 노부모 부양 부담을 덜어낸다. 그렇게 되면 노부모는 자녀보다 로봇에 더 의존하게 됨으로써 로봇이 자신들의 안녕을 진심으로 보살핀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상호관계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노인을 돌보는 경우와 같이 단방향 의존의 상황이 있더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에 중점을 둔다. 한 중국인은 이런 관점을 제시했다.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필요와 욕구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누군가’나 ‘무엇인가’와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이 타자를 그러한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유일무이한 인간으로 여겨야 한다. 자원은 다른 사람이나 아마도 기계로 대체될 수 있지만, 사람들은 대체될 수 없다.” 인간관계에서 상호 취약성의 중요성에 대한 유사한 관찰이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이루어졌다.

  신체적 요소

  전인적이어야 효과가 드러나는 노인 돌봄의 예는 신체중심성으로 이어진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신체적 존재로서 서로 만난다. 그러나 “인간의 몸은 기계의 경우가 아닌 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미래의 로봇들이 이 경험을 재현할 수 있을지는 예측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마음과 상상력을 동원하는 가상현실이나 컴퓨터 게임과 같은 상호작용 기술들은 우리 몸을 배제시켜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왜곡할 위험이 있다. “몸(신체)은 마음(정신)으로부터 분리되지 않으며, 유교의 인격수양 개념에서 몸은 마음만큼 중요하거나, 어쩌면 마음보다 더 중요하다.”

  미래 전망

  [세미나의] 모든 발표와 논평들은 미래의 역사적 또는 유토피아적 비전을 포용하려는 유혹을 거부했다. 세미나 참가자들은 우리가 지금 선택하는 것들이 개별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인공지능으로 하여금 인간을 도와주거나 해를 끼칠 수 있는 방향으로 설정할 수 있음을 인정했다.

  주목할만한 점은 인공지능과 다른 첨단기술들이 사회의 모든 병폐들을 해결할 수 없고 중국과 서구의 위대한 전통의 중심에 있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성찰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불멸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고, 고통을 끝내지 못할 것이며, 삶의 신비를 풀지 못할 것이다. 관찰한 바와 같이, “사람의 완성을 위한 불교의 노력은 기술적 차원이 아니라 정신적 차원에 기초하고 있다. 도교는 분명히 자연의 흐름에 자유롭게 참여하는 데 중점을 둔다. 상호의존과 호혜성의 대면 관계는 유교 전통의 핵심으로 미래 인공지능의 경로가 어떻게 되든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교는 생명과 죽음에 대한 하느님의 초월적인 능력을 계속해서 주장할 것이다. 돌이켜보건대 “기술인도 똑같이 영적인 사람이다.”

  비록 진보된 기술이 인류를 위한 위대한 전통들과 그 가르침들을 무효화시키지는 않지만, 그것은 계속해서 인간과 인류 복지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증대된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은 대인관계 중심성을 약화시켜 인간성의 의미에 대한 기존의 개념에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실제로 세미나는 이 점을 지적했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상호작용이 우리 일상생활에서 사람들간의 상호작용을 더 많이 대체할수록, 우리의 인간성을 경험하고 상호 성장에 참여할 기회가 줄어들 것이다. 인공지능의 기능적 지원이 바람직해지는 그만큼, 그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 자신이 인류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좋든 싫든 우리의 경제와 정치 시스템에 내장된 기술적 필수요소들은, 동서 문명 모두에서, 그리고 우리의 광범위한 소비자 문화 속에서, 통신·오락·의학·운송 및 기타 부문에서 인공지능 주도 애플리케이션의 지속적인 성장을 가져올 것이다. 정확히 이것은 불가피한 사실이기 때문에, 우리는 인공지능 혁신이 잠재적으로 건강·교육·생산성에 미칠 긍정적인 영향을 놓쳐서는 안 된다.

  상상할 수 있는 미래에 우리는 “즐거움을 위한 작품을 창작하고 제작함으로써 창의성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일하도록 동기 부여를 받을 것이다.” 한 참석자는 말했다. “낙관론을 펼치자면, 인공지능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이 도道Tao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도록 인간지능을 모방하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유학자 왕양명王陽明(1472-1528)의 성찰로 시작하자면, “위대한 사람은 천지만물을 한몸으로, 천하를 한가족으로, 나라를 한사람으로 여긴다.”(大人者, 以天地萬物爲一體者也. 其視天下猶一家, 中國猶一人焉. «大學問»). 왕왕명에게 이 ‘한몸의 원리’는 존재론적으로 자연과 인간 및 그들의 창조물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것들 사이의 근본적인 관계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향상된 성능을 가진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과 협력하여 지구를 더 좋고 안전하게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기계가 스스로를 인식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우리가 거부할 수 있음”에 회의적이라는 것 또한 명심해야 한다. 물론 이 문제는 매우 민감하고 논쟁을 일으킨다.

  우리는 특이점에 가까워지고 있는가?

  지난 세기에 이미 ‘기술적 특이점’singularity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이 표현은 기술적 진보가 인간의 이해와 예견 능력을 넘어서는 문명 발전의 순간을 의미한다. [특이점 논의는] 인공지능이 인간지능보다 우월해지고, 그러한 사건에서 뒤따를 온갖 기술적 진보도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세미나 [참가자들은] 특이점의 순간이 아직 멀었다는 것에 동의했다. 하지만 그 동안 우리는 가족·우정·성을 비롯해 교육·돌봄·연대 같은 삶의 영역들을 보게 되는데, 이들 분야에서 인공지능의 성장과 기술의 편재는 기존의 인간과 대인관계 개념에 질문을 던진다. 한 참가자가 말했듯이 우리는 특정 경계의 중요성에 대해 동의할 수 있다. “우리는 원하는 것에 제한을 둘 수 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제한을 둘 수 있다. 우리는 인공지능에 제한을 둬야 하고, 우리의 야망에는 한계가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겸손이다.”

  무엇을 제한할 것인지, 어떻게 제한할 것인지는 복잡한 문화적·사회적 문제이자 궁극적으로 정치적 문제이다. 우리 세계의 문화적·국가적·이념적 다양성을 고려할 때, 적어도 가까운 장래에는 균일한 대응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한 참가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특정 지역공동체에서 널리 받아들여진 사회규범은 인공지능에 윤리를 통합하는 과제를 이행해야 하고, 다른 맥락에서는 그러한 사회규범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되는 변형이 있을 수 있다.” 물론 그러한 변형의 적절한 규모가 무엇인지, 그리고 범지구적 관점과 전세계적 해결의 가능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들은 여전히 열려 있다.

  나가면서

  여기서 이 세미나를 특징짓는 토론의 풍성함을 모두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 요약을 통해 우리는 그 중요성과 주제의 폭을 알 수 있다. 점점 커져가는 컴퓨터의 데이터, 단어, 이미지 이해와 조작 능력은 실제로 혁명적 돌파구breakthrough로서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통신·교통·로봇·의학·경제·법률 및 기타 여러 분야에서 인공지능의 적용은 인간으로서 우리 자신에 대한 개념과 우리의 행동과 책임에 대해 새로운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중국과 서양 모두 각 종교 전통과 세속 철학 전통의 입장에서 [인공지능과 인간성에 관해] 묻고 있다.

  * 이 세미나는 산타클라라의 예수회 이냐시오 교육센터 소장 도리안 르웰린(Dorian Llywelyn) 신부가 주관했고, 참가자들은 아래와 같다.

  Bai Tongdong (Fudan University),
Thomas Banchoff (Georgetown University),
Brian Green (Santa Clara University),
Daniel Bell (Sandong University),
Julie Rubio (Santa Clara University),
Li Silong (Peking University),
Bishop Paul Tighe (Pontifical Council for Culture) 성청 문화평의회 폴 티게 주교,
Peng Guoxiang (Zhejiang University),
Fr. Antonio Spadaro (La Civiltà Cattolica),
Robin Wang (Loyola Marymount University),
Shannon Vallor (Santa Clara University),
Tan Sor Hoon (Singapore Management University),
Wang Pei (Fudan University).
Fr. Dorian Llywelyn, director of the Ignatian Center for Jesuit Education at Santa Cla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