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프란치스코 교종까지 예수회 역사”
잔니 라 벨라의 책에 관하여

«I GESUITI. DAL VATICANO II A PAPA FRANCESCO»
Un volume di Gianni La Bella

La Civiltà Cattolica, Q. 4059-60 (3 ago 2019) III, 308-315

아르투로 소사Arturo Sosa S.J. 신부 (예수회 총장)
이창욱 펠릭스 옮김 (바티칸뉴스 한국어판)

  성 요한 23세 교종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첫 회기를 주재했을 때, 나는 중학교 2학년 과정을 시작할 무렵이었고 카라카스의 성 이냐시오 신학교가 마련한 청년활동에 참가했다. 1965년 12월 8일 성 바오로 6세 교종이 공의회를 마무리했을 때, 나는 예수회 수련기에 들어가기 위해 청원을 했는데, 불과 몇 개월 전(1965년 5월 22일) 페드로 아루페 신부님이 총장으로 선출됐다. 결국 공의회가 진행되던 시기에 내 예수회 성소도 무르익었던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예수회 역사에 관해 서술한 잔니 라 벨라의 책1)은 57년간 내 개인적 역사에 대한 감동을 되살려주었다. 그 기간 동안, 예수회 역사의 주인공들의 계보를 잇는 후계자로서 이 책의 4장에 나오는 성과 이름을 들여다보게 된다. 성 요한 23세 교종, 성 바오로 6세 교종,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종 등 세 명의 성인 교종과 두 명의 살아있는 교종, 즉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종과 현재 왕성한 활동 중인 프란치스코 교종의 책임 아래 지나온 교회의 역사와, 나의 수도 가족인 예수회의 역사 안에 복합적인 변화의 순간을 맞이했던, 페드로 아루페, 페터-한스 콜벤바흐와 아돌포 니콜라스다.

  역사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잘 양성 받은 전문적인 교육 외에도, 적절한 자료를 찾을 줄 아는 재능, 역사적 사실에 접근하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인내, 줄거리를 엮어내며 (과거에) 일어난 내용을 여러 수많은 이유로 역사에 관심을 갖고 있는 다양한 독자들에게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전달하는 역량이 요청된다.

  더욱이 현대 역사를 다룬다면, 그 책임은 훨씬 큰 지성적 도전이 된다. 한편, 저자는 사건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고 목격증인이나 주인공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가진다. 다른 한편, 과학적 분석의 관점에서 사건을 보고, 관념론에서 자유로운 입장을 유지하면서 이를 증명하여, 질적으로 좋은 자료를 활용하고 이해과정에서 중압감을 정확하게 재단하도록 요청하는 역사적 방법론의 엄격함을 존중해야 하는 불리한 점도 직면해야 한다.

  현대 역사에 관한 독자도 이와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는 저자와 내레이션을 통해 대화로 들어가면서, 자신이 살고 움직이는 세상과 자신의 생명과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잔니 라 벨라의 책을 읽어가는 내 경험의 차원이다.

  내 삶 자체, 내가 몸 담았던 예수회, 그리고 교회를 더 잘 이해하게 도와주었던 책이었다. 나는 가능한 더 나은 방식으로 교회의 사명에 협력하고 싶다. 이 책은 가톨릭교회와 예수회의 중요한 단계에 대한 매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예수회에 대한 지식과 이해는, 수많은 사람이 살았던 삶을 공평하게 대하는 것 외에도, 현재를 잘 활용하고 희망을 품으며 미래를 바라보게 해준다.

  “로마 교종 아래 오직 주님과 그분의 신부인 교회만을 섬길 것”

  로마 교종을 통해 예수회와 가톨릭교회 사이에 정립된 관계는 예수회가 무엇인지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문화적으로 서로 다르지만, 지성적으로 잘 교육받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모임이고, 주 예수님과 맺고 있는 개인적인 우정이 그들로 하여금 교회의 봉사에 동료가 되게 부추겨준다. 왜냐하면 예수회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인간 역사를 화해시키는 사명을 이끌어나갈 책임을 받았기 때문이다.

  “로마 교종 아래”라는 표현은 자기지시적인 많은 유혹을 피하면서, 어떤 곳에서든 불어오는 성령을 따른다는 보장이다. 교종에게 사명을 받는다는 것은 세상 도처와 인간 현실의 모든 측면으로 전개해야 할 사명을 더 효율적으로 봉사하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교종에 대한 봉사에 무조건적으로 임하는 자세는, 시샘하며 자신의 손에만 쥐려고 하기보다 결정을 다른 손에 맡기면서, 이쪽이나 저쪽이나 어느 한 편으로 기울지 않고 기꺼이 준비된 자세를 취하려는 열망을 실현한다.

  일반적으로 예수회는 “교회의 가장 막강한 수도회”로 정의되지만, 그와 같은 자질은 삶 자체에 의해 부정된다. 이 책은 이런 의미에서 두 가지 좋은 사례를 인용한다. 곧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종이 1981년에 예수회를 통솔하기 위한 그의 대리자를 임명했을 때 예수회원들의 태도와, 클레멘스 14세 교종이 1773년 예수회의 폐지를 반포했을 때 예수회원들의 입장이다.

  이냐시오 로욜라 성인이 ‘예수의 미소한 동반자’minima Compagnia di Gesù라고 했던 것은 예수회원들이 소수였기 때문이 아니다. 성인의 생애 동안 예수회는 매우 급속히 팽창했고 회원수도 폭발적일 정도로 증가했다. 성인의 카리스마가 가난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에 대한 체험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모든 사물을 새롭게 보도록 성 이냐시오의 삶을 변화시켰다.2)

  이와 같은 체험은 교회나 세속의 ‘고위직’ 수락으로 삶을 보장받거나 혹은 그런 삶을 영위하는 특권을 포기할 정도로 자신을 전환시킴으로써, 가난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의 동반자가 되려는 선택을 하게 된다. 예수회에 입회하면, 서원자들은 자신을 위한 경제적 지원을 보장해주는 수입의 유혹을 자기 자신을 위해서나 동료를 위해서나 피하겠다는 서약을 한다.

  잔니 라 벨라의 작품은 예수회원들이 “로마 교종 아래” 있는 방식을 주의 깊게 소개한다. 책의 분문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완전히 긴장된 관계를 보여준다. 예수회 안에는 세상을 보고 신앙을 생각하는 방식이 독창적이고, 지성적으로도 좋은 양성을 받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제시된 바를 앞으로 끌고 나가는 일을 책임 맡은 아주 강한 인물도 넘쳐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구조와 그리스도인 삶의 모든 차원을 쇄신하는 도전을 형성했다. 그러한 도전이란 복음의 기쁜 소식을 현실화함으로써 새로운 형태를 상상하며 역사의 경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과감한 사람을 요구한다. 그뿐 아니라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고, 공의회의 혁신적 결정 사항에서 영감을 받은 열망들을 일상생활에서 실현하는 사람들을 요청했다.

  교회 내 다른 수도회 상황에서 그랬던 것처럼, 예수회 안에서도 강력한 저항과 더불어 온갖 형태의 시도가 발전됐다. 예수회의 제도적 최고 권위, 다시 말해 총회는 예수회 사명의 형태에 독창적인 지평을 열었다. 제31차 총회와 제32차 총회 결정문은 창립 카리스마의 원천에서 길어내고, 하느님 체험을 쇄신하며, 인간 현실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다양한 문화와 종교 간 대화를 개방하면서, 정의 증진과 신앙을 위한 유일한 몸으로서 노력하려고 전력을 다하는 살아있는 몸을 제시했다. 그 몸이란 제35차 총회와 제36차 총회가 명확하게 제안했던 것처럼, 예수회 내부에서 인류의 화해 직무와, 인간 불의에 의해 상처받은 상황과, 그리고 자비로우신 아버지와 동일시된다.

  그 당시 총장들인 페드로 아루페, 페터-한스 콜벤바흐와 아돌포 니콜라스는 예수회 안에서 그리고 사도직 활동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꿈을 실현할 책임과 필요한 권위를 받았다. 이들은 19세기에 재구성된 예수회 내부에서든, 그리스도교에 대한 향수가 넘쳤던 교회 내부에서든, 그 자체로 분쟁을 일으키는 자로서 역할을 충분히 맡았다. 당시 세상은 성령의 영감을 받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천리안을 가지고 통찰했던 역사적 변화를 그 자체로 가져왔고 거대한 탈바꿈을 향해 열려 있었다.

  잔니 라 벨라의 작품은 로마 교종 아래에서, 가능한 최고의 방식으로, 화해 직무에 공헌하려고 애쓰는 예수회의 과정을 눈부신 필체로 묘사하고 있다. 공의회 이후 교종들의 임무는 훨씬 더 복잡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54년이 지난 상황에서, 공의회가 제시한 교회의 모델은 앞으로 나아가고는 있지만, 완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위대한 지성을 갖춘 교종들에 의해 활성화된 교회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지만, 그 척도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꿈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충분한 변화에 이른 것은 아니다.

  공의회 이후 교회는, 물론 교회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예수회도 마찬가지로, 어디로 가야 할 지 주님께서 알려주기를 기다리는 아브라함처럼 여정에 나섰다. 교회 안에는 가벼운 장비를 가지고 나아가기 위해 그물과 배를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전 삶에서 축적된 모든 것을 짊어지고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게다가 그 여정은 힘들고 굽이굽이 휘어진 데다, 이만큼이나 왔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쉬었다 가라고 유인하는 공간도 갖추고 있다. 자신들에게 더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모퉁이에 자리 잡기 위해 대열에서 벗어나는 이들도 없지 않다.

  여기서 들려준 역사의 흥망성쇠는 창립자들이 가졌던 본래적 통찰력의 지혜를 확인해준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명하고자 하는 우리 공동체에서 십자가의 깃발 아래 하느님께 군복무를 수행하고, 오로지 주님과 그의 지상의 대리자인 로마 교종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3)

  창조적 충실

  벨라는 예수회와 교회의 수장들이 겪었던 과정을 페터-한스 콜벤바흐 신부가 창안한 표현, 곧 “창조적 충실”이라는 표현을 통해 설명했다. 이 표현은 지적인 언어유희가 아니라, 예수회 카리스마 본연의 절박함을 드러내준다. 그러한 상황에 따라 예수회는 기존하지 않는다면 새로 만들어내면서까지, 자신의 사명을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여정을 찾고,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로마 교종 아래” 봉사한다는 본래의 정신에 대한 충실성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예수회의 가장 흥미로운 측면들 중 하나는 모든 대륙에서 각종 문화의 찬란한 다양성 안에 대담하고 복잡한 토착화 과정의 결과인 다문화의 확산이었다. 오늘날 예수회는 지리적으로뿐 아니라 아주 다채로운 문화로 “흩어진”4) 다문화적 수도 단체다. 예수회 입회를 선택한 이들 각각을 변화시켜주시는 주님과 만나는 개인적 체험에 충실함으로써 결속되는, 언제나 유일한 수도단체이다. 아울러 통솔구조와 스타일에 대한 충실성과도 결속된다. 통솔구조의 유연성은 이 단체의 머리와 지체들 간 지속적인 소통과 회원들 각자의 깊은 신뢰 덕분에 가능하다.

  복음과 그리스도인 삶의 토착화를 위한 절박함은 교회 자체와 더불어 생겨났다. 이 때문에 우리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축일을 함께 거행한다. 예수회 역사 안에서도 나아가야 할 선교 양식에 대한 끊임없는 내부 갈등이 있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뒤이은 시기가 토착화된 복음화와 그에 수반되는 긴장에 큰 자극을 주었다고 단언하는 것은 옳다. 대부분 교회 성장은 복음 메시지를 토착화할 수 있는 선교사들의 대담함 덕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문화를 획일화하는 규범이라고 전제하면서, 토착화과정을 위협하고 일치를 획일화와 혼동하는 뜬구름 잡는 이들이 교회 안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창조적 충실은 토착화를 심화시키고, 대화를 통해 다문화에서 이질문화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도전을 우리 앞에 내건다. 대화야말로 상이한 문화를 인간의 풍요로운 원천이 되게 해주고, 이러한 원천을 통해 일치된 다양성 안에서 창조주의 다양한 모습을 반영해주는 인류를 향해 향상될 수 있다.

  협력자인 작은 동반자

  예수회의 제34차 총회(1995년)는 결정문 13항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면서 시작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부터 시작하여 시대의 표징을 읽어내는 독서는 의심할 여지없이 다가올 새천년기의 교회는 ‘평신도 교회’가 될 것임을 보여준다.” 같은 단락에서 이같이 마무리 짓는다. “우리는 평신도의 사명이 완전히 실현되도록 도와주고 그들의 사명에 협조하면서 좋은 결론에 이르도록 노력하며 이러한 은총에 응답하기를 바란다.”

  이는 창조적 충실의 또 다른 중요한 차원이다. 교회 삶의 공의회 이후 단계는 우리로 하여금 창조적 충실로 향하도록 부추겼다. 많은 갈등과 적지 않은 어려움 가운데, 개인으로서 예수회원들과 단체로서 예수 동반자는 다른 이들, 특히 평신도들뿐 아니라 다른 수도회 수도자들 및 교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배웠다. 토착화 과정의 풍성한 결과로서 우리는 다른 믿음을 가진 종교인들 혹은 아무런 종교도 갖지 않은 이들과 걸어가는 것도 배우고 있다.

  예수회원으로서 우리는 “다른 이들을”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함께” 존재하기를 배워가고 있다. 최근 수십 년 간 동반자의 사도직활동은 타인과 일하는 것을 배우는 이 중요한 수습기간 덕분에 쇄신되고 확장되었다. 우리는 하느님 백성의 일원으로서 봉헌생활을 살아가는 은총을 경험했고, 하느님 백성과 함께 교회의 사명을 앞으로 이끌어 나간다. 교회의 사명이란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사명을 계속 이어가는 사명을 말하는 것으로, 그분께서 당신 성령을 통해 우리를 계속 동반해주시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냐시오 로욜라 성인이 “미소한 동반자”라고 표현했던, 가난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따르는 추종에 대한 충실은, 오늘날 하느님 백성 전체와 협력하는 것을 의미하고, 모두가 안전하고 정의로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고 그러한 세상에서 모든 인간이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하도록 적합한 조건을 조성하는 데 기여하는 모든 이들과 협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여기서 우리는 겸손을 협력으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 인간 역사 안에 걸어가는 여정에서 하느님 백성이라는 그분의 몸에 속하면서,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의 추종자로 인식하고, 그리스도 사명의 협력자로 인식한다.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 전체를 위해 자신의 모든 열정, 에너지와 재능을 쏟는 협력자인 작은 동반자로서 우리 자신을 인식하는 것을 배워가고 있는 것이다.

  페드로 아루페 신부의 발자취를 따라

  이런 과정은 프란치스코 교종이 설정한 방향 덕택에 새로운 추진력과 다각적인 차원을 얻게 된다. 여러 순간을 통해 많은 방식으로 교종은 우리에게 예수회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설립된 것이 아니라, 과정을 시작하고 동반하기 위해서” 설립된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교회가 인류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봉사에 더 적합한 것에 기꺼운 자세를 취하기 위해 우리의 개인적인 내적 자유를 쇄신하라고 계속해서 우리를 초대한다. 창조적 충실이라는 노선에서, 인류의 새 시대에 복음 메시지를 현재화시키는 새로운 방식을 계속 찾기 위해, 개별적으로 자발적인 예수회원뿐 아니라, 과거의 집착에서 자유롭고, 가벼우며 유연한 사도직 단체가 요청된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하느님 백성 전체에 적용시키기 위해 예수회의 도움을 요청하고 교회 전체를 초대하고 있는 식별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조건은 내적 자유다.

  제36차 총회는 공동 식별이라는 분위기에서 전개됐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관례적인 방식을 고찰하도록 예수회를 초대했다. 구체적으로, “보편적 사도적 선택(Preferenze Apostoliche Universali)”에 관한 공동식별 작업을 실시하도록 총장신부에게 요청했다. 이 같은 우선순위의 식별은 사도직 사명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을 중시해야하는 것처럼, 예수회 전체의 가능한 한 많은 참가에도 중요성을 둬야 할 것이다.5)

  이 지시는 바오로 3세 교종에게 ‘예수회 기본법(Formula Instituti)’을 제출했을 때 초기 예수회원들의 경험과 유사한 경험을 예수 동반자 안에 독려했다. 주의 깊은 준비를 거친 다음, 공동식별 작업이 실시됐고, 이 식별 작업에 예수회 공동체, 동반자의 사도직 활동에 협력하는 이들, 관구통솔과 지역구 장상회의(Conferenze dei Superiori maggiori) 및 총장 자문회의(il Consiglio ampliato del padre Generale) 같은 조직들이 대거 참가했다. 그 결과물이 프란치스코 교종의 손에 넘어갔고, 교종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돌려주었다. “제가 여러분의 사명으로 인준하고 확정하는 이 작업에 대해 감사합니다.”6)

  향후 10년간 예수회는 수도회의 모든 작업과 사도직 계획을 교종에게 부여받은 보편적 사도적 선택에 따라 방향을 잡게 될 것이다. 이는 곧 보편적 사도적 선택을 세계화된 세상으로 특징되는 세속사회에서 복음적 메시지를 현재화하고, 구조적 불의의 근원을 이해하며, 가난한 이들과 젊은이들로부터 그리고 그들과 함께 출발해서, 변화에 기여하고, 디지털 시대에 지배적인 인간학에서 희망을 발견하며, 자연을 존중하는 인간 삶을 선택하려 노력하면서, 환경 악화를 늦추는 데 진지하게 협력하는 특별한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 내용과 적용에 대해 자세한 설명에 들어갈 시점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는 보편적 사도적 선택을 열거하는 것으로 그치겠다. 보편적 사도적 선택은 다음과 같다.

  – 영신수련과 식별을 통해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을 보여주기.

  – 화해와 정의의 사명 안에서 가난하고 세상에서 쫓겨난 이들, 그 존엄성이 훼손된 이들과 함께 걷기.

  – 희망찬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젊은이들과 함께하기.

  – 우리의 공동의 집을 돌보기 위해 함께 협력하기.

  프란치스코 교종에게 받은 이 사명을 우리의 일상생활과 활동 안에 육화시키는 높은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이며 무엇보다 제도적인 회심의 복잡한 과정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우리의 십자가-부활의 체험을 심화시키고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적 시대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기 위해, 보다 인간적인 선택을 조성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 우리의 지적 능력을 연마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이러한 사명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함께해야 할 책임을 강화하며, 로마 교종 아래 교회를 섬기는 카리스마를 확인해주고, 잔니 라 벨라의 작품이 제시하는 것처럼, 우리를 페드로 아루페, 페터-한스 콜벤바흐와 아돌포 니콜라스의 발자취로 이끄는 것이다.


성경·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 G. LA BELLA, I Gesuiti. Dal Vaticano II a Papa Francesco [예수회 역사.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프란치스코 교종까지] (Milano: Guerini e Associati, 2019).
2) 『이냐시오 로욜라 자서전』 Autobiografia di Ignazio di Loyola, n. 30 참조.
3) 교종 바오로 3세의 사도서한 『전투 교회를 표방하는 수도회 통솔』Regimini militantis Ecclesiae에서 승인된 「예수회 기본법」 “Formula dell’’Istituto della Compagnia di Gesù” (1540, 9.27), * 역주: 본문 번역은 이냐시오 영성 자료실을 참조한 것이다. 본문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예수님의 이름을 영예롭게 부여받기를 원하는 우리 예수 동반자(예수회) 안에서, 십자가의 깃발 아래 하느님을 위해 병사가 되고자 하고 오로지 주님과 그분의 지상 대리자인 로마 교종을 섬기고자 하는 이는 누구든지…”
4) “예수회원은 활동 공간의 특수성을 강화하는 사명의 보편성이라는 지평, 배경을 가진다. 활동 공간은 역설적으로 지방분권적이자 동시에 중앙집권적인 힘을 가진 예수회 조직의 회원을 가리킨다(communitas ad dispersionem: 흩어지는 공동체).” (Papa Francesco, Nel cuore di ogni padre [모든 아버지의 마음으로], Milano, Rizzoli, 2014, 46). * 역주: 이 책은 J.M. Bergolio, Meditaciones para religioso [수도자들을 위한 묵상] (Buenos Aires: Mensajero, 2013)의 이탈리아어 번역서이다.
5) 제36차 총회(Congregazione Generale XXXVI), 결정사항(decreto) 2, n. 14.
6) 「예수회 총원장에게 보낸 프란치스코 교종의 서한」“Lettera del Papa Francesco al Superiore Generale della Compagnia di Gesù” (2019,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