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는 교회의 변화를 원하십니다

발트 지역 예수회원들과 나눈 사적 대화

교종 프란치스코 S.J.
김학준 라우렌시오 S.J. 옮김

  교황님은 교황대사 관저로 들어가셔서 비드만타스 심쿠나(Vidmantas Šimkūna) 관구장을 시작으로 예수회원 한 명 한 명과 인사를 하셨다. 총 28명의 예수회원들이 그 자리에 참석했다.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 관구에서 22명, 리투아니아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두 명의 미국 예수회원, 그리고 4명의 예수회원 주교들이다. 주교들을 살펴보면, 카우나스Kaunas의 리온기나스 비르발라스Leonginas Virbalas 대주교, 그의 전임자로서 KGB에 의해 투옥된 적이 있는 시기타스 탐케비치우스Sigitas Tamkevičius 대주교, 텔시에이Telšiai의 은퇴 주교인 요나스 보루타Jonas Boruta 주교, 그리고 리투아니아에서 수련기를 보낸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Novosibirsk의 요세프 베르쓰Joseph Werth 주교이다. 교황님은 이태리어로 말씀하셨고, 비르발라스 대주교가 리투아니아어로 통역하였다.

  안토니오 스파다로, SJ 정리

  이렇게 와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만약 예수회원과 함께 간다면, 예수님과는 같이 못 갈 것이다…”(Si cum Iesuitis itis, non cum Iesu itis…)라는 얘기가 떠오릅니다. [이 부분에서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바쁜 하루였지만, 교회의 선익을 위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의 모임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여러분이 질문을 하시고 제가 답하는 것입니다. 괜찮습니까?

  비르발라스 대주교가 “관구장 신부님의 말씀으로 모임을 시작해도 좋겠습니다.”하고 제안하자, 교황님은 “네. 물론이지요. 그럼 권력 서열에 따라 해 볼까요!”하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한 번 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관구장 신부가 일어나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 관구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였다. “저희는 교황님의 방문을 기뻐합니다. 그리고 교황님께서 사제와 수도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희 예수회원들에게는 고무적인 일입니다. 저희는 작은 관구입니다. 저에게는 한 가지 걱정이 있는데, 예수회원들이 자신을 혹사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희는 세 가지 혹은 네 가지 일을 맡고 있기에 게으를 수가 없습니다. 저희에게 기쁨과 힘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예수회가 해산을 겪기 전에, 리투아니아 관구는 천 명 이상의 회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고작 34명이고, 이제 곧 오스트리아와 독일, 스위스, 헝가리와 함께 하나의 관구가 될 예정입니다. 저희는 리투아니아에 세 개의 학교와 네 개의 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근 저희는 리가(Riga)에 공동체를 하나 열었는데, 교황님께서 내일 방문하시게 될 곳이기도 합니다. 저희는 이냐시오 영성을 알리기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이 일과 관련하여 루터교 신자들과 초교파적으로 협력하는 좋은 체험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관구의 원로 회원들에게 특별히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소비에트 통치 때, 이 분들은 수련원과 교구 사제들을 위한 신학교를 운영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들을 비밀리에 해야 했습니다. 일부 리투아니아 예수회원들은 관구 밖인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준관구가 미국에서 만들어진 셈입니다. 그 뒤 자유를 얻게 되면서 미국에 있던 일부 예수회원들이 이곳으로 돌아와 저희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으로 살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 당시 저희는 자유가 부족한 시기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자유를 잘 누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저희와 저희의 미션에 대해 교황님의 축복을 청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예수회원이 몰래 비밀스럽게 일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예수회원은 하느님의 밭에서든 악마의 밭에서든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휴고 라너 신부님은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제 생각에 식별은 우리에게 이 초자연적인 감각, 곧 인간의 삶과 역사 속에서 신성한 것과 악마적인 것을 분별하는 능력을 줍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과 우리 본성의 원수가 지닌 의도와 속임수를 알기 위해 질문해야만 합니다. 심지어 예수회원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관구장 신부님이 말씀하신 것 가운데 제 마음에 드는 것은 서너 가지의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예수회원들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녹초가 되어버릴 위험성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식별이 필요합니다. 악한 영은 “불충분하게 일했다는 콤플렉스” 속으로 우리를 끌고 갑니다. 조심스럽게 자신의 건강을 약간이나마 챙겼다는 것 때문에 이따금 죄책감을 갖기도 합니다! 이것은 유혹입니다. 예수회원은 평화를 잃지 않으면서, 주님과 대면하면서, 또 휴식을 취하면서 일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회원의 사도직에서 첫 번째 법칙은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법칙은 일work이 주님과 친밀감을 갖는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법칙은 일 때문에 평화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법칙은 다른 사람들에게 위임할 수 있는 일을 굳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관구장 신부님의 염려에 대한 응답으로 제 머리 속에서 떠오른 생각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잘 하는 일입니다.

  다음으로 탐케비치우스Tamkevičius 대주교가 말했다. “35년 전 제가 KGB에 의해 투옥되었을 당시에 교황님께서 언젠가 감옥을 방문해주실 거라는 상상을 했더라면, 감옥 생활의 고통을 훨씬 수월하게 견딜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교황 성하! 저에게는 이 만남이 꿈만 같습니다. 이 리투아니아 골고타를 방문하러 오시다니요!

  이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도 지옥에 내려가셨으니, 사람들이 있는 지옥으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때때로 이것은 악마의 소굴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고통은 인간적이고 사회적이며 양심의 것이어서… 우리는 지옥으로 내려가 그곳에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상처를 만지십시오. 사람들의 상처를 만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상처를 만지는 것입니다. 예수회원은 결코 이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손길로부터 받는 것은 은총입니다. 이러한 상처들은 빌뉴스Vilnius1)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과거에만 존재했던 것도 아닙니다. 이와 똑같은 일이 많은 사회정치적 상황 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일어납니다. 저는 인신매매범들이 북아프리카에 지은 몇몇 수용소의 상황을 증언해주는 영화가 생각이 납니다. 정부들이 살아남은 사람들을 돌려보내자, 인신매매범들은 가장 끔찍한 고문이 자행되는 이 수용소에 그들을 가둬버렸습니다. 바로 이것이 대주교님께서 수감 생활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수감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사람들이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얘기를 해봅시다. 오늘날 우리는 공산주의자들과 나치들, 파시스트들이 저질렀던 일에 대해 참회를 합니다만… 현재는 어떻습니까? 지금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보다 지능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냐시오 성인이 영신수련 3주간을 제시할 때, 너무나 의지주의자인 것처럼 생각되는 면이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매우 인간적인 것입니다. 성 이냐시오는 수난을 겪으시는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가 힘써 고통을 경험하고 눈물 흘릴 것을 당부하십니다. 이것은 펠라기우스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냐시오는 우리 마음 안에 타인의 고통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저항감이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냐시오 성인이 우리가 애써 노력해줄 것을 당부하신 이유입니다. 또한 주님의 수난에 대해 묵상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에게 이 얘기를 해드려야겠습니다. 저는 주머니에 주님의 수난을 떠올리게 하는 십자가의 길via crucis을 소지하고 다닙니다 [그리고 교황님은 그것을 주머니에서 꺼내 보이셨다]. 이 십자가의 길은 오늘날 감옥에서 고문당하고 있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기도 합니다. 십자가의 길에 대해 묵상하는 것은 저에게 유익합니다. 대주교님,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증언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탐케비치우스(Tamkevičius) 대주교는 이에 덧붙여, “저는 1994년에 수도생활에 대한 시노드에 참석했는데, 아르헨티나에서 온 젊은 예수회원 주교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 주교가 바로 교황님이셨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주교가 된 지 2년 됐을 때였습니다. 이미 선출된 두 명의 주교가 교구 출신이었기에, 시노드를 위해 수도회 출신 주교도 한 명 넣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뽑혔지요. 1994년이었고, 우리는 당시 함께 있었습니다!

  참석자 중 한 명이 또 다른 질문을 하였다. “저는 리가Riga에 있는 새로운 예수회 공동체를 위해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이곳은 영신수련 피정집이고, 성 베드로 파브르가 주보성인이십니다. 바르샤바에서 온 예수회원 한 명이 초상화를 하나 그렸는데, 이 그림을 축복해주시고 저희 사도직에 교황님의 강복을 청하고 싶습니다. 이 일은 교회일치를 위해 너무나 중요합니다. 사실 관구장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라트비아에 있는 루터교 신자들은 영신수련에 관심이 많습니다. 리가Riga의 루터교 대주교께서는 영국에서 ‘이냐시오의 달’ 프로그램을 마치시고 스페인 만레사에서 영신수련 피정을 하셨습니다. 그 분에게 영신수련은 매우 중요합니다. 요즘과 같은 세속화된 시기에 이것은 긍정적인 교회일치 표징입니다.”

  네, 저 역시 루터교 신자들에게 영신수련 피정을 동반해주는 예수회원을 한 명 알고 있습니다. 피정집의 수호성인으로 파브르 성인을 모신 것은 잘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대화와 경청, 가까이 머무름, 여정을 구현하시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카니시우스 성인과는 달랐고, 반대나 토론을 즐기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셨습니다. 그 분의 『비망록』Memoriale을 읽어보면 잘 아시겠지만, 영적인 달콤함을 지니신 분이셨습니다. 그 분은 천사들의 도움을 받아 일하셨습니다. 그 분은 자신의 수호천사가 당신이 만나야 할 상대방의 수호천사와 얘기나누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천사들마저 좌지우지하는 엄청난 마피아였던 것이죠! 스톡홀름의 아르보렐리우스 추기경은 루터교 사목자들에게 피정을 주기도 합니다. 대화는 보태는 것이지, 없애는 것이 아님을 기억합시다. 저는 여러분의 영신수련 사도직이 잘 되어가기를 희망합니다. 영신수련을 열망하는 청년들은 아름다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앞으로 나아갑시다!

  또 다른 예수회원이 일어나서 말했다. “저는 교황님께서 젊은이들과 이들을 위한 사도직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교황님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사람들, 잃어버린 이들, 버려진 사람들에 대해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원로 예수회원께서 젊은이들에 대해 이렇게 멋지게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니 기쁩니다. 젊은이와 노인의 만남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기억과 경험, 종교를 손주들에게 전달해주는 사람이 바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들도 뭔가를 주기는 하지만 그 뿌리는 노인들에게 있다는 점에서 부모들은 아직 과정 중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젊은이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처럼 젊은이들도 연장자의 얘기를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다른 예수회원이 프란치스코 교황님에게 얘기하였다. “교황 성하, 오늘 오후 대성당에서 ‘가까이 머무름’nearness에 대해 교황님께서 강조하실 때 커다란 감동을 느꼈습니다. 지금 이 나라에서 잃어버린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사람들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여 거리를 두게 됩니다. 교황님께서 고해성사에 대해 말씀하셨던 것이 특히 강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해소는 자비의 사도직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저는 아직 부제라서 고해성사를 준 경험은 없습니다. 그러나 교황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강하게 저를 내리칩니다. 심지어 사죄경을 줄 수 없는 경우에서조차 따뜻한 환영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씀도 인상적입니다.”

  가까이 머무름nearness은 하느님이 갖고 계시는 가장 오래된 자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가까이 머무름’의 방식으로 다가오십니다. 신명기에는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2)라고 말씀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가까이 계시는 분으로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더 가까이 오셔서 우리 중에 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자기 낮춤’Synkatabasis, 곧 하느님께서 ‘아래로 내려오셔서 우리와 더불어’down-with-us 육신으로 가깝게 되시는 것입니다. 모든 사목활동은 이것을 명심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소외받은 이들, 죽은 이들 – 그 분이 일으키신 – 그리고 죄인들, 세관원들, 창녀들과 가깝게 되셨습니다… 그래서 깨끗한 사람들, 종교 제사장들은 분개하였습니다. 만약 어떤 사제가 고해자를 무례하게 쫓아낸다면, 관할 주교는 그 사제의 성사권을 박탈해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고해사제는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을 지녀야 하기 때문이지요. 고해사제가 존재하는 이유는 잃어버린 아이인 탕자를 받아들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정말 언제나, 만약 당신이 아버지라면 항상 용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로마에 있는 한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고해성사를 하는 교황청의 어떤 추기경은 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몇몇 고해사제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쫓아낼 수 있는지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저는 항상 고해자들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잘 말하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결코 고해자에게 이상한 것을 물어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만약 제가 그 사람에게 사죄경을 줄 수가 없는데도 그 고해자가 용서를 간청하는 상황이라면, 과연 어떤 아버지가 자기 자녀를 용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추기경의 증언은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저는 우리가 관대해야만 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자비와 관대함은 서로 별개의 것입니다. 우리는 자비로운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카푸친 수도회에 소속된 훌륭한 고해사제가 있습니다. 그의 고해소 앞에는 항상 줄이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온갖 유형의 사람들이 그를 찾아 갑니다. 평신도, 사제들, 수녀들, 부자들, 빈자들… 그는 용서에 탁월한 사람입니다. 좋은 고해사제가 되기 위해, 여러분도 용서하는데 탁월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농인인 편이 낫습니다. 때때로 고해사제는 자신이 너무 잘 받아주고 용서해주는 게 아닌가 하는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그래서 그는 감실 앞에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제가 너무 많이 용서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먼저 [많이 용서하시는]3) 나쁜 선례를 보여주셨습니다!” 이 고해사제는 그저 관대한 사람이 아니라 진정한 아버지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신학을 공부한 젊은 리투아니아 예수회원 한 사람이 질문하였다. “당신께서 교황으로 선출되셨을 때 저는 신학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3년 전 제가 사제품을 받았을 때, 교황님은 예수회 사제인 저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교회에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저희가 어떻게 교황님을 도와드릴 수 있을지 말씀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구체적으로 뭘 부탁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네요. 그러나 오늘날 필요한 것은 깊은 영적 쇄신 속에서 교회와 함께 해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교회가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날 교회의 왜곡된 모습이 바로 성직주의라는 것을 수차례 얘기했습니다. 50년 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교회헌장」Lumen Gentium 12항을 읽어보십시오. 제가 생각하기에, 주님께서는 공의회가 교회의 길을 개척하길 원하십니다. 이제 중간쯤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 만약 저를 돕고자 하신다면, 교회 안에서 공의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기도를 통해 도와주십시오. 저는 기도가 많이 필요합니다.

  또 다른 예수회원이 질문하였다. “교육은 저희 관구의 우선순위입니다. 저희가 운영하는 두 개의 학교에 220명의 교사와 1500명의 학생이 있습니다. 저희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교육과 관련하여, 교사들과 교육에 종사하는 예수회원들에게 도움이 될 얘기를 몇 가지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온갖 생각들로 머리를 채우려는 비전을 지닌 계몽주의의 부정적인 유산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날 학교와 대학들은 소위 ‘성공’을 위해 학생들을 준비시키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자신의 머릿속을 관념들로 채웁니다. 교육은 단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전인적whole person으로 하는 것입니다. 여러 번 얘기했지만 다시 반복하겠습니다. 즉, 이성의 언어도 있는 반면 마음과 감정의 언어도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교육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서와 감정의 교육이 필요한 때입니다. 또한 손hands의 언어도 있습니다. 이것이 함께 가야 할 세 가지 언어입니다.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느끼고 행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하고 행하는 것을 느끼며,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도록 요청 받습니다. 우리가 지닌 것은 인간적이라서, 타인에 대한 관심이나 대면engagement을 포함한 모든 것은 인간 내부에서 발견됩니다. 감정과 정서를 잊지 않도록 합시다. 이냐시오 성인은 정서와 관련하여 훌륭한 교육자이셨습니다. 이 정서가 교육의 길이 되어야 합니다. 명백하게도 학교에서 일하는 예수회원의 임무는 능력있는 교육자들을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예수회원들은 상황을 식별할 줄 아는 교육 공동체를 형성해야 하고, 마음heart과 지성head, 손hands이라는 세 가지 언어 속으로 교육을 가져오기 위해 배워야 합니다. 절대로 예수회원들이 교육을 포기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이 길은 강력한 길이기에, 예수회는 결코 이 미션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원로 예수회원이 질문하였다. “성모호칭기도Marian litany에 ‘리투아니아의 여왕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는 전구기도intercession를 덧붙여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지요! 예수회원들이 “예수회의 여왕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고 기도하듯이, 여기 여러분들 사이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하세요!

  교황님께서는 질문 하나만 더 받겠다고 하셨다. 젊은 예수회원 한 명이 일어나 질문하였다. “교황 성하, 당신께서는 저희가 사람들이 있는 길거리로 나아가야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교회가 야전병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혼란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세상은 혼란 속에 빠진 것처럼 보입니다. 어떻게 하면 저희가 두려움 없이 혼란과 마주할 수 있을까요?”

  자, 만약 당신이 혼자서 혼란 속으로 들어간다면, 두려워하는 게 당연합니다. 그 혼란이 모든 걸 끝장내버릴 테니까요. 그러나 만약 당신이 관구장과 소속 공동체의 영적 조언의 은총을 지니고 혼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또 미션으로서 주님과 함께 들어가는 것이라면, 당신이 느끼는 두려움은 악한 영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오늘날 혼란이 존재하지요. 이냐시오 성인의 두 개의 깃발에 관한 관상기도에는 불과 연기가 피어오르는 자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라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 자신의 열망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라면 말입니다. 하느님은 강하십니다. 하느님은 가장 강력하신 분입니다! 휴고 라너 신부님을 떠올리면서 전에 말한 적이 있기는 합니다만, 여러분은 두 가지 밭에 다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심지어 혼란이라는 원수의 밭에도 말입니다. 기왕 질문하셨으니 이 부분을 좀 더 얘기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질문이 제가 오늘 말하고 싶었던 것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혼란과 어려운 상황 속으로 들어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라, 여러분의 장상 및 공동체와 대화하는 가운데 주님과 함께 들어가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양심현현’account of conscience이라는 주제가 등장하게 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관구장은 형제입니다. 어쩌면 내일은 관구장이 여러분에게 양심현현을 해야 할 차례가 될 지도 모릅니다. 이 ‘개방’opening up의 은총은 장상과 현현자가 주님께 더 잘 봉사하기 위해서 함께 공유하는 것입니다. 양심현현은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관구장은 자신이 듣고 있는 형제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고,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이는 예수회원은 장상의 삶과 연결되게끔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상호작용의 대화이고, 이를 통해 장상과의 모든 갈등이 해소됩니다. 그리고 예수회는 혼란에 맞서는 조직이 되어 갑니다. 공동체와 형제애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도록 합시다.

  마무리하면서 교황님께서 말씀하셨다.

  감사합니다! 저를 만나러 와 주셔서 감사드리고, 교회를 위해 해주신 것에 대해서도 감사드립니다! 기도하십시오! 저는 예수회원들을 보면 두 가지를 읽어보라고 자주 권합니다. 1974년 12월 3일에 교황 바오로 6세께서 32차 총회에 모인 장상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제가 보기엔 역대 교황님께서 예수회원들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 최고의 것입니다. 이것은 보물입니다. 이것을 갖고 성찰하십시오. 그리고 아루페 신부님이 태국 난민캠프에서 일하던 예수회원들에게 하신 말씀이자 그 분의 마지막 말씀도 읽어보십시오. 이것은 그 분의 ‘백조의 노래’swan song입니다. 곧이어 로마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그 분은 뇌졸증을 일으키셨습니다. 난민들과 일하는 예수회원들에게 그 분이 하신 말씀은 ‘여러분의 기도생활을 간과하지 마십시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자료를 읽어보십시오. 제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엄청나고 유익한 것들입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 예수회의 여왕이신 성모님과 함께 기도합시다. . .

  기도와 추가 개인 알현을 끝으로 1시간 남짓 이어진 모임은 마무리 되었다.


성경·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 리투아니아의 수도
2) 신명기 4:7.
3) 역자 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