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아루페: 시복 소송 시작

PEDRO ARRUPE: APERTA LA CAUSA DI BEATIFICAZIONE*

엘리아스 로욘 S.J.**
노우재 미카엘 신부 옮김 (부산교구 수정본당 주임)

  2018년 11월 14일 성 주세페 피냐텔리 축일에 예수회 총장 아르투로 소사 신부는 ‘베드로 아루페 신부의 시복 청원 절차가 시작’되었다고 모든 회원에게 알렸다. 예수회는 아루페 신부가 선종한 로마교구의 대리구장에게 그의 영웅적인 덕행에 관해 교회가 식별해 주기를 요청했었고, 그의 선종 28주기인 지난 2월5일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시복 소송의 공식 시작을 알리는 기념식이 개최되었다.

  성 이냐시오의 28대 후계자로서 예수회를 인도한 인물에 대한 기억과 유산이 전 세계 곳곳에서 생생하게 남아있는 것을 최근 몇 달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었는지 총장은 그의 서한에서 밝혔다.

  아루페는 1907년 11월 14일 스페인 빌바오에서 태어났다. 1923년부터 마드리드에서 의학을 공부하다가 1927년 로욜라에서 수련자로 입회했다. 인문학과 철학 과정을 밟은 후 신학 과정을 마치고 1936년 7월 30일 네덜란드 발켄뷔르흐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예수회원들은 1932년 스페인에서 추방당했다).

  그는 일본 선교를 보내주도록 장상들에게 요청했고 1938년 일본으로 파견되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 사건을 목격했을 때, 그는 수련장이었다. 예수회 일본 관구가 설립된 직후인 1958년 관구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제31차 총회에 참가했고, 여기서 1965년 5월22일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공의회의 마지막 단계에 참여했고, 장상 연합회의 대표로 세계 주교대의원회의에 여섯 차례 참석했으며, 라틴 아메리카의 메데인 회의(1968)와 푸에블라 회의(1979)에도 참석했다.

  1981년 8월7일 뇌졸중이 발병했고, 1983년 9월3일 제33차 총회는 그의 총장직 사임을 수락했다. 10여 년간 병상 생활을 하다 1991년 2월 5일 로마 총원에서 선종했다. 베라노 묘지에 안장된 그의 유해는 1997년 11월 14일 예수 성당으로 옮겨졌다.

  하느님의 사람, 성령의 사람

  아루페 신부는 잠을 매우 적게 자면서 오랫동안 기도했다고 그의 전기 작가들이 모두 말한다. 수많은 일정을 소화해야 했지만 ‘자그마한 대성당’cattedrale piccola-grande이라 즐겨 부른 개인 경당에서 오랜 시간 기도했다. 그는 기도를 많이 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범주에 따라 성찰하고 결정했기 때문에 ‘하느님의 사람’uomo di Dio이었다. 하느님의 전망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서, “내 모든 지향과 행동과 작용이 존엄하신 하느님을 섬기고 찬미를 드리는 데에 순수하게 향하도록 우리 주 하느님께 은총을 청한다.”(『영신수련』, 46번)는 영신수련의 준비 기도를 내면화했다.

  이냐시오의 훌륭한 제자로서 그는 주님을 자기 생애의 절대 차원으로 인식했다. 다른 모든 것은 상대적이었다. 그는 자신 안에 ‘하느님의 사람과 성령의 사람’uomo di Dio이 결합되게끔 했다. 다시 말해, 하느님께서 인도하시도록 자신을 내어맡기며, 그분께 어떤 한계도 두지 않고 그분을 인간의 빈약한 범주 안에 가두지 않기 위해 주의를 다하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는 성령께서 교회를 다스리시고, 또 교회 안에서 예수회를 다스리신다고 참으로 믿었다. 주님의 손에 맡겨진 ‘도구’strumento가 되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매우 잘 알고 있었다(『예수회 회헌』, 638항 참조).

  여기 사람을 감화하는 그의 낙관성이 깊이 뿌리 박혀 있다. 어떤 이들은 그의 낙관성을 두고 순진하다고 했고, 심지어 통솔 능력이 없다고도 했다. 그는 자신이 낙관주의자라고 고백하면서 그 이유도 밝혔다. “저는 하느님과 인간을 믿기 때문에 낙관주의자입니다.” 주님을 믿고, 회헌이 천명하듯 ‘그분께만 희망을 두면서’(812항), 그는 당대 복음화 문제의 해답을 찾고, 미래를 예언자적으로 직관했다. 그의 사도적 열정과 담대함, 굳셈의 원천이 거기 있었다.1)

  그는 하느님을 온전히 믿었고, 인간이 응답하고 회심할 가능성을 완전히 신뢰했다. 그래서 그는 위대한 이상을 주저 없이 제시하면서도 실현가능성을 의심하지 않고 확신했다. 매우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면서도, 하느님을 믿는 믿음과 인간에 대한 믿음이 하나 되는 이러한 희망과 낙관을 잃지 않았다. 그의 낙관성은 역사를 주도하시는 주님께 대한 신뢰와 상황을 개선하는 인간 능력에 대한 신뢰로 공고히 이루어졌다. “우리가 전하는 희망은 인간의 근원적인 무능함과 한계를 겸손하게 인정하는 데 기반을 둡니다.”2)

  내면의 전기: 하느님의 신비 안에 끌어안긴 이

  아루페 신부에 관한 글은 매우 많다. 다양한 전망과 척도에 따라 가시적이고 평가 가능한 사실들, 결심들, 결정들, 행동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사건들과 평행을 이루는 내적 생활이 있다. 그 안에까지 들어서야 하는데, 바로 거기 외적인 사건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열쇠와 동기가 있기 때문이다.

  1977년 1월 15일 예수회 입회 50주년 강론에서 아루페 신부 스스로 이렇게 언급했다. “사람들의 인생사를 들으면, 말해질 수 없는 것이기에 말하지 못한 어떤 것이 있다고 알아차립니다. 자기 자신도 다 알지 못하는 사람의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 자신에게도 이렇게 숨겨지거나 반쯤 감춰진 것이 참으로 흥미로운 것입니다.” 그 까닭을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바로 사랑이신 하느님과 … 자기 존재 밑바닥에서부터 응답을 드리는, 역사를 통틀어 똑같은 응답이라고는 찾을 수 없기에 유일한 응답을 드리고 있는 한 사람 사이 가장 긴밀한 관계입니다.”3)

  이는 우리 각자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인격적 사랑의 신비가 드러나는 역사이며, 또한 그 사랑에 응답하는 각 사람의 내적 생활의 신비이기도 하다. 이런 영적 차원에 관해 쓰인 기록이 적기에, 찾아 드러내 보일 필요가 있다. 이야말로 참으로 흥미로운 것이다. 이런 영적 차원을 알지 못하고서는 아루페 신부의 행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그의 생애와 행적의 진정한 의미도 놓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내밀한 기록들, 가장 개인적이고 자연스런 기록들을 통해 그의 내면생활 안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 기록을 언급하기만 하거나, 그의 외적 태도로 이들 기록을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말이다.4)

  아루페 신부는 제수 성당에서 예수회 형제들에게 입회 50주년을 맞이하여 참으로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고백했다. “지난 50년간의 예수회 생활을 통해 다양한 경험들을 하면서 제 안에는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 몇 가지 특별한 사랑이 자라나고 커졌습니다. 더 많이 고통 받을수록 더 많이 사랑한다는 모든 참된 사랑의 고유한 특성도 함께 말입니다.”5) 이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예수회를 향한 사랑이었다.

  예수 그리스도, 아루페 신부 생애의 ‘모든 것’

  필자는 로마에서 예수회 신학생이었을 때 아루페 신부의 라디오 방송 인터뷰를 들은 기억이 있다. 진행자는 “당신께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아루페 신부는 잠시 침묵하며 자신의 영혼을 깊숙이 바라보듯 하더니 “모든 것입니다.”라고 간결히 답했다. 이어서 덧붙였다. “예수님 없는 제 인생은 모래성처럼 무너져버릴 겁니다.”6) 사실, 아루페 신부의 생애 안에 하나의 확실한 열정이 있었다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다. 이냐시오의 전형적인 두 낱말, ‘모든 것’tutto과 ‘더 큰 것’più은 그의 내면의 전기를 요약해준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 이로서 그는 ‘우리가 창조된 목적으로 더 우리를 이끄는 것만을 바라보고 선택’하며 살았다.(『영신수련』, 23번)

  이런 신앙 경험에서 출발해서만 아루페 신부의 인격과 업적을 이해할 수 있다. 바로 거기, 그의 이냐시오적 정체성이 환하게 드러난다.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내어맡기고, 사명을 수행하는 데서도 신비가가 되는 것 말고 그는 아무 것도 찾지 않았다.

  그의 영성은 영신수련의 ‘원리와 기초’Principio e fondamento가 전하는 이냐시오의 ‘치우지지 않음’에 집약된다. 그는 끊임없이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현하려고 했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오직 우리 주 하느님께 대한 섬김과 찬미, 그리고 내 영혼의 영원한 구원’(『영신수련』, 169번) 외에 어떤 것도 아니어야 한다. 그리고 영신수련의 역동성 안에서 ‘사랑을 얻기 위한 관상’의 ‘모두 당신 뜻대로 하소서’(『영신수련』, 234번)를 지향한다. 저의 뜻이 아니라, 당신 뜻대로 하소서.”

  이것이 바로 아루페 신부가 ‘참으로 흥미로운 것’quella veramente interessante이라고 규정했던 ‘우리 자신에게도 숨겨지거나 반쯤 감춰진 부분’의 내용이다. 1965년 영신수련을 할 때 남긴 영적 일기의 특출한 본문도 이와 밀접히 관련한다. 그 본문은 세 구절로 요약된다. “[총장으로 선출되어] 감사를 드리면서 주님께 참으로 충실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면 내가 보기에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거부해서는 안 된다.” “가능한 한 가장 내밀하고 지속적으로 주님을 만나기 위해 내 영혼은 참으로 순결해야 한다. 우리 주님께서 당신 은총으로 나를 움직이고 빛을 비추어주셔야 한다. … 주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뜻을 잘 알아듣기 위해서는 마음이 완전히 순수해야 한다.” 마지막은 이러하다.

  그리하여, 이미 평소에도 그러했다면, 이제 완덕 서원은 정말로 중요한 현실이 된다. 지금 나는 극도로 열심히 완덕 서원을 지켜야 한다. 그토록 열심히 완덕 서원을 지키면서만 듣고, 보고, 주님의 손안에 있는 도구가 되도록 스스로 준비할 수 있다. 그렇게 해야 모든 것 안에서 그분의 뜻을 행할 수 있다.7)

  이글레시아스 신부는 ‘베드로 아루페 신부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가장 잘 보여주는 자화상의 스케치’가 여기 있다고 서슴없이 말한다.8) 여러 영성 운동 안에도 존재하는 ‘완덕 서원’voto di perfezione 또는 ‘더욱 완전함의 서원’voto di ciò che è più perfetto은 하느님께 더욱 순응하기를 계속 갈망하겠다는 약속을 뜻한다. 하느님의 뜻이라고 밝혀지는 것에 의해서만 움직이도록 자신을 내어맡기고, 예수 그리스도께 매혹되어 그분의 뜻에 자신의 내적 시선을 온전히 맞추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이러한 열망, ‘신중한 결심’determinazione deliberata은 이미 청년 아루페가 했고, 그의 일생을 통해서도 작용했다.9) 1933년 신학생 시절 한 기도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오 주님, 당신을 사랑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당신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반복해서 기꺼이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모르모트처럼 어떤 시험을 받아도 좋습니다. … 제가 제 뜻대로 하지 않도록, 필요하시다면, 저를 묶어주시고 못 박아주십시오.10)

  예수회 입회 50주년 기념 미사에서 아루페 신부는 똑같은 취지의 말을 남기면서, 사랑하는 분의 얼굴을 지속적으로 바라본 삶이었다고 그의 생을 요약했다. “칠십 평생 가운데 저는 50년을 예수회원으로 살았습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제 인생의 중요한 단계들, 제 여정의 근본적 전환점들은 항상 생각지도 않게 일어났다고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부조리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항상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급격한 변침을 일으키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알아보아야 했습니다.”11)

  아브라함은 그가 선호하던 모범이었다. 부르심, 하느님의 개입, 불확실한 운명을 그에게서 알아보았다. 또한 예상하지 못한 길을 따라 나서는 확고한 응답, 하느님 말씀을 믿는 믿음만으로 지탱되는 그러한 응답을 알아보았다. 아루페 신부의 마음속에는 아브라함이 이사악에게 대답한 말이 늘 울려 퍼졌다.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창세 22,8) 끊임없는 대화 가운데 계속되는 부르심의 신비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를 경이로, 인간의 관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곳으로 인도했다. 아루페 신부는 자기 인생의 ‘급격한 변침’i colpi di timone을 하느님의 뜻을 알려주는 표징으로 받아들이면서, ‘하느님의 신비’mistero di Dio 안에 젖어들어 ‘모르모트’처럼 살았다. 이냐시오처럼 그는 오롯이 주님의 뜻을 찾는 ‘순례자’pellegrino가 되었다. ‘자신의 생활을 정돈해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구하는 것’(『영신수련』, 1번)이야말로 그에게 중요했던, 그가 전념했던 바다.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 뜻대로 하소서’의 인간’il disponibile이라고 즐겨 부르던 그 또한 ‘당신 뜻대로 하소서’의 인간이었다.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히브 10,9)

  이러한 ‘하느님 신비의 경이’sorprese del mistero di Dio 가운데 하나인 ‘급격한 변침’i colpi di timone이 새로이,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마지막 사건으로 1981년 8월 6일에서 7일로 넘어가는 밤사이 일어났다. 뇌졸중이 발병하여 예수회 총장직에서 사임해야 했고, ‘저의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만 작용하는 하느님의 신비스런 침묵 속에서 10년 가까운 ‘순례’peregrinare 생활을 끝까지 해야 했다. 움직이지도 못했고, 목소리를 내지도 못했지만, 예수님을 위해 지속적으로 고통을 받으며 자신의 세 가지 사랑인 그분과 교회, 예수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늘 함께 있었다. 이 마음과 더불어 미소와 ‘밝혀진 마음의 눈’(에페 1,18 참조)으로 꿰뚫어보는 시선을 간직했다.

  1983년 9월 3일 그는 제33회 총회에 사임서를 제출했다. 혼자서는 메시지를 작성할 수도, 읽을 수도 없었지만, 내용은 그가 뜻한 바였고, 명시적으로 확인도 했다. 다시금 우리는 그의 전 생애를 인도한 성령의 이끄심을 알아본다. 하느님의 손길 안에 머물고, 하느님의 신비 안에 잠겨들어 살아가고, 그분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도록 성령께서 인도하셨던 것이다. 사임서에서 그는 이렇게 밝혔다.

  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주님의 손길 안에 있다고 느낍니다. 젊은 시절부터 평생 저는 주님의 손길 안에 머물기를 원했습니다. 지금도 그것만 바랍니다. 차이가 분명 있긴 합니다. 지금은 주님께서 주도권을 전부 다 갖고 계십니다. 저는 주님의 손길 안에 온전히 놓여 있다고 느끼고 또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심오한 경험입니다. …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주님의 뜻에 맡겨드리라고 말씀드립니다. 우리에게 하느님은 언제나 만물의 중심이셔야 합니다. 그분의 음성을 듣도록 늘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분을 더욱더 섬길 수 있도록 우리가 해야 할 바를 찾고, 다른 데 정신 뺏기지 말고 최선을 다해 사랑으로 우리가 할 바를 행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참으로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감각을 지녀야 합니다.12)

  그다음 날, 이냐시오의 향기가 배어있는 라 스토르타 경당에서 미사를 거행했다. 그는 시메온의 노래를 기도하며, 자신의 생애를 동반한 신비, 바로 그 자리 이냐시오의 신비 체험에 뿌리내린 그 신비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환난, 반대, 아드님을 섬김, 교회, 내가 로마에서 너희에게 호의를 보이겠다, 위로. “그렇습니다. 저는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항상 위로를 얻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저는 하느님의 손길 안에 있다고 의식합니다. 그분 하느님께서 저의 주인이십니다.”13)

  식별의 인간

  여기서 출발하면 아루페 신부가 어떻게 식별의 인간이었는지 잘 알 수 있다. 이냐시오 영성에서 찾은 식별을 그는 모든 예수회원과 그들 기관에 알리고 또 실천하도록 했다. 자신의 뜻과 개인적 생각을 넘어 우선적으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항구히 찾고 그것을 실천하려는 태도가 식별이다. 내어맡김과 식별은 그에게 함께 작용했다.

  아루페 신부는 내어맡김과 식별의 통합적인 삶을 살았고 예수회 형제들에게 이를 전수했다. 총장으로서 첫 메시지에서 그는 먼저 “무엇이 영구한 것이고 무엇이 지나가는 것인지 알기 위해 물음의 개별 요소들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식별해야 한다.”14)고 이미 분명히 밝혔다. 이러한 실천은 이후 예수회 안에 널리 퍼졌고, 그 후 전체 교회에도 확산되었다.

  그의 이 말은 가장 내밀한 그의 영적 생활에서 나왔다. 열성을 다해 찾고 기쁘게 실천하는 뜻, 여기서 『영신수련』의 생활 선택에 관한 이냐시오의 지혜가 드러난다. “주님이신 하느님께서 내 의지를 움직여주시고, 제안된 것에 대하여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영혼에 심어 주시기를 청한다.”(『영신수련』, 180번) ‘저의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마태 26,39; 요한 6,38)을 찾는 것이다.

  이러한 내어맡김, 또는 ‘치우치지 않음’indifferenza이 ‘우리들 신원의 핵심, 곧 ‘내어맡김의 존재인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서 우리들 실존을 규정하는 바의 핵심’15)이라고 확신하면서, 그는 전체 예수회가 자신의 생활과 사명 안에서 이를 항상 깨어 간직하도록 권고했다.

  거룩한 어머니, 교계제도의 교회를 향한 사랑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열정으로부터 아루페 신부에게는, 성 이냐시오 안에서처럼, ‘우리의 거룩한 어머니, 교계제도의 교회’를 향한 사랑이 생겨났고, 또 ‘그분의 신부인 교회를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인 로마 교종 아래에서’ 섬기는 마음이 솟아났다. 그의 전 생애 안에 스며든 첫 사랑과 열정으로 교회를 향한 그의 사랑이 자라났다. ‘전투 교회에서 진정한 감각을 지니기 위한 규칙들’에서 그는 이 사랑을 익혔다. “우리는 신랑이신 우리 주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인 교회 안에서 우리 영혼의 구원을 위해 같은 영이 우리를 다스리시고 인도하고 계심을 믿는다.”(『영신수련』, 365번)

  사랑이 합류하는 여기, 하느님의 뜻이 자신의 삶과 행위를 다스리도록 하는 열망인 완덕 서원의 내용이 있다. 사실 교종에 대한 순명을 약속하는 예수회 넷째 서원은 ‘원리와 기초’Principio e fondamento로서, 자기 신원의 종합이고 자기 카리스마의 표현이 된다. 그 주요 목적 하나는, 1550년의 기본법Formula에 따르면, “우리들의 의지를 최대한 끊고 성령의 더욱 확실한 인도를 따르는 것이다.”(3항)

  아루페 신부는 교종에 대한 순명 서원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올바로 식별하고, 더 큰 섬김이 필요한 곳에 파견되도록 자신을 내어놓아야 한다고 의식하면서 자기 생애의 본질적 열망을 기꺼이 살아갔다. 그래서 그가 어떻게 이 넷째 서원을 아주 편안하게 느끼며 지켰는지 잘 알 수 있다. ‘급격한 변침’i colpi di timone과 하느님 신비의 놀라움을 받아들이면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찾고 이를 부지런히 실행하려고 그는 정성을 다했다.

  아루페 신부는 예수회와 모든 예수회원이 교종에게 충실하도록 여러 차례 글과 말을 남겼다. 이런 충실성 안에 예수회 카리스마의 중요한 것이 담겨있다고 확신하고 강조했다. 1978년 2월 18일 로마 이냐시오 영성 센터에서 ‘교종에게 순명하며 주님과 그분의 신부인 교회만을 섬기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담화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 주제는 성 이냐시오가 예수회를 설립하면서 식별한 것과 특별히 관련한다. “성령으로 감도된 말씀, 이 말씀 안에서 이냐시오와 그 동료들은 오랫동안 찾아온 그들의 사도적 신원의 마지막 결실을 글자 그대로 봉헌했습니다.”16)

  아루페 신부는 예수회에 참으로 중대한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고 의식했다. 몇 년 전, 1972년 1월 25일 그는 예수회에 짧은 서한을 보내면서, “이 시점 우리의 책임과 우리의 사명을 깨닫기” 바란다고 했다. “저는 교종에게 충실한 정신을 말합니다. 이 정신은, 성 이냐시오에게 예수회의 원리와 기초였던 우리의 제4서원에서부터 인도되고, 400년의 전통으로 확인 받았습니다. 우리들 영혼 깊이 뿌리 내려야할 정신입니다.”17)

  아루페 신부에게는 예수회 카리스마와 본질적으로 결부된 역사적 사실을 지적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그 이상의 것이 있었다. 그가 관계를 맺는 모든 교종 개개인에 대한 진실한 신심이었다.18) 몇 년 후 콜벤바흐 신부는 이러한 ‘신심’devozione을 제4서원의 구성요소라고 규정했다. “교종에 대한 특별한 순명을 다만 파견에 국한하려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교회법적으로야 그럴 수 있겠지만, 만일 우리 마음이 그 서원에 있지 않으면 어떻게 우리 파견의 결실을 맺을 수 있겠습니까?”19) 베네딕토 16세는 예수회 제34차 총회에서, 예수회의 제4서원을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이해하며 말했다. 그는 “베드로의 후계자에 순종을 발하는 여러분의 특별한 ‘제4서원’quarto voto에 담긴 충만한 의미를 다시 찾아가기 바랍니다.”고 예수회원들에게 권했다. “이 서원으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를 ‘실제적이고 또 마음을 담은’effettiva ed affettiva 신심으로 기꺼이 ‘사랑하고 섬기며’amare e servire, 그의 소중하고 대체할 수 없는 협조자가 되는 것입니다.”20)

  공의회 이후 쇄신의 예언자

  아루페 신부는 공의회에 뒤늦게 합류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주역이라고 할 수도 없다. 1965년 가을에 열린 공의회의 마지막 제4차 회기 직전에 총장으로 선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의회 이후의 주요한 핵심 인물로 인정받았다. 교회 생활을 진작시키는 데 열정적으로 공헌했던 것이다. 복음화와 교회의 내적 쇄신, 특히 수도생활의 쇄신에 항상 전념했다.

  교회를 향한 사랑과 공의회에 대한 충실성을 가지고 그는 수도생활과 예수회 자체의 쇄신에 열정적으로 헌신했다. “보편 공의회 안에서 교회가 보인 모범에 따라 우리는 참으로 진지하고 신중하게 문제를 다루어야 합니다.”21) 수도회 총장 연합회의 의장으로서 그는 공의회 이후 모든 시노드에 참석했다.22)

  그는 공의회 이후 몇 년간의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야 했다. 충실함과 창의성, 카리스마와 제도, 구조와 자유, 과거로 시선을 돌리는 전통과 미래를 바라보는 예언 등과 같은 단순하지 않은 긴장들을 중재해야 했다.

  2007년 아루페 신부 탄생 100주년, 콜벤바흐 신부는 빌바오의 데우스토 대학교에서 그를 ‘공의회 쇄신의 예언자’profeta del rinnovamento conciliare23)로 소개했다. 그의 모범적인 모습을 일깨우면서 “아루페 신부는 공의회가 가져온 새로움에 대해 … 우파나 좌파 한쪽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과거를 고수하거나 현재에 사로잡히지 않고 미래를 향해 열려 있었습니다.”라고 강조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공의회가 가져온 새로움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면서 아루페 신부는 교종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로마의 그레고리안 대학교 예수회 교수들에게 훈화하신 바를 새겨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과거에 유익했던 것에 너무 쉽게 만족하지 말고 날마다 창의적이 되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은 신중하게 새로운 길을 찾는 용기를 가지십시오.’

  그리고 아루페 신부가 교종의 권고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설명했다. “성 이냐시오의 경험에 입각하여 아루페 신부는 기도하고 식별하면서 신중함을 얻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주님 안에서 진리의 모든 것을 분별하여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바를 읽어냈습니다.”

  아루페 신부는 이냐시오의 신비체험을 살아간 신비가로서, ‘열린 눈으로’a occhi aperti 사람들 사이에 두 발을 굳건히 딛고 마음을 내었다. 삼위일체 신비를 믿는 깊은 신앙으로 그는 인간의 신비를 사랑하는 방법을 익혔다. 모든 사람과 인간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갖기 위해, 예수님처럼 사람을 바라보기를 배우려고 했다. 그에게는 쓸모없는 이분법 대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신앙과 정의의 복음적 통합이 있었다. 예수회 안에 ‘예수회 난민봉사기구’Jesuit Refugee Service를 설립한 것도 현재 난민 문제의 중대성을 보건대 참으로 예언자적인 통찰이었다.

  아루페 신부의 모습을 이렇게 그려내면서, 콜벤바흐 신부는 그의 낙관성을 잊지 않고 언급했다. “우리 모두가 똑같은 수준의 낙관성을 가져야 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비관주의에는 조금도 빠져들지 말아야 합니다.”라는 아루페 신부의 말을 전했다. 공의회 이후 바티칸의 고위층에게까지 비관주의가 확산되었지만, 아루페 신부는 당신 교회를 통해 이 세상의 면모를 새롭게 하시는 하느님 영의 자극을 받아 신뢰와 희망, 격려와 신앙의 말을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공의회 쇄신의 예언자 아루페 신부는, 모든 예언자가 그러했듯, 예수회 안팎에서 항상 잘 이해받지는 못했다. 그가 행동하고 말하고, 또 고통 받은 것은 모두 ‘오로지 주님 그분과 그분의 신부인 교회를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 교종 아래에서 섬기려는’ 열망에서 나왔다. 이러한 ‘사랑과 섬김’amare e servire 안에서 ‘순례자’pellegrino 아루페 생의 마지막 ‘드라마’dramma가 펼쳐졌다.

  그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를 ‘실제적이고 또 마음을 담은’effettiva ed affettiva 신심으로 사랑했고, 어떤 사람들은 순진하다고 했던 행동으로 그 사랑을 드러냈다. 주일마다 총원 입구에 서서 교종이 로마교구 본당 방문을 나가면서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봤던 것이다. 그에게는 순진함도 아니었고 형식적인 일도 아니었다. 다만 그리스도의 대리자에게 인사하러 내려갔던 것이다. 진정 ‘이냐시오적인 신심’devozione ignaziana이었다.

  아루페 신부는 공의회를 열심히 적용하며 생활했고, “교회 안에서, 교회와 함께,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식별하던 덕분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계시를 공의회 문헌들의 글자들 뒤편에서 항상 알아볼 수 있었다.” 콜벤바흐 신부는 이렇게 상기시켰다.

  1981년 8월 7일부터 그는 예수회 총원의 요양원에서 머물렀고, 10년 간 그곳에서 지내다가 1991년 2월 5일 죽음을 맞이했다. 1981년 10월 5일 요한 바오로 2세는 파올로 데차 신부를 예수회 총장 대리로, 주세페 피타우 신부를 그의 비서로 임명했다. 국무성 장관 아고스티노 카사롤리 추기경은 요양원에 누워있는 아루페 신부 앞에서 서한을 대독했다. 아루페 신부는 주의 깊게 경청했고,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는 조용히 눈물 흘렸다. 새롭고도 결정적인 ‘급격한 변침’i colpi di timone이었다. “저의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모든 모욕과 비난, 마음과 실제의 모든 가난까지도 참아 받으며 … 당신을 따르기를 원하고 바랍니다. 이것이 저의 신중한 결심입니다.”(『영신수련』, 98번)

  1982년 2월 27일 데차 신부는 예수회 모든 관구장을 로마에 소집했다. 개회 미사에서 피타우 신부는 아루페 신부가 구술한 강론을 낭독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잠시 후 우리를 맞이할 교종에게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를 알아보고 사랑합니다. 그분 아래에서 우리는 오직 주님과 그분의 신부인 교회를 섬깁니다. … 우리를 그분과 결합시키는 사랑과 섬김의 유대는 ‘우리의 원리와 기초입니다.’”24) 이어서 덧붙여 말했다. “저는 이 모든 것을 보고 관상하며 큰 기쁨을 느낍니다. 인간의 중재를 통해 저는 우리와 이웃들의 성화를 위한 은총의 원천이신 하느님의 뜻을 봅니다. 그리고 예수회 전체가 똑같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느님의 뜻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이 순간을 누리기를 바랍니다.”25)

  같은 날, 교종을 알현하면서, 아루페 신부는 그에게 큰 위안이 되었을 교종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지극히 공경하는 총장님은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모범적이고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갑작스럽고 생각지도 못한 병환 속에서, 또 성좌의 결정 안에서 하느님의 알아듣기 어려운 뜻이 드러났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뜻에 ‘그대로 이루어지소서.’fiat 하고 겸손하게 기도하며 더 높은 데서 오는 지시에 온전히 응답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큰 가르침이 됩니다. … 여기 계신 아루페 신부님께,자신의 병고를 예수회의 선을 위해 하느님께 봉헌하며 침묵 중에 말씀하시는 그분께, 저는, 여러분 수도회의 생활과 역사에서 특별히 중요한 이 시간, 교종과 교회의 감사를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26)

  결론을 내린다면, 아루페 신부는, 건강할 때나 병환 중일 때나, 예수회가 ‘주님과 교회를 교종 아래에서 섬기는’ 자기 고유의 카리스마를 살아갈 길을 자신의 태도와 자신의 고통으로 알려주었다고 하겠다. 생애 마지막 그는 침묵 속에서 자신의 뜻을 하느님의 신비에 계속 바쳐 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예수회에 대한 세 가지 사랑을 자신의 몸으로 온전히 살아냈다.


* La Civiltà Cattolica, 4049 (2/16 marzo 2019), 478-491.
** Elías Royón S.J.
성경·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 참조: Francisco Ivern, “L’uomo che ho conosciuto”, in Pedro Arrupe. Un uomo per gli altri, ed., Gianni La Bella, (Bologna: il Mulino, 2007), 1049-1061.
2) Pedro Arrupe, “La Chiesa è ancora portatrice di speranze per gli uomini?”, Omelia nel Congresso europeo degli ex alunni, Padova, 22-25 agosto 1977, in Appunti di spiritualità S.I., n.10, 1977, 12.
3) Pedro Arrupe, “Omelia per la concelebrazione in occasione del 50o di Compagnia”, (Roma, Chiesa del Gesù, 15 gennaio 1977), in Notizie dei Gesuiti d’Italia 10 (1977) 49.
4) 참조: Ignacio Iglesias, “Per una biografia spirituale”, in Pedro Arrupe, ed., La Bella, 987-1034. 이글레시아스 신부는 분명 다음과 같은 자신의 여러 저술 안에서 아루페 신부의 내면 역사 속으로 가장 깊이 들어간 인물이다: “Un nuevo y necesario acceso a Pedro Arrupe”, Manresa 74 (2002), 167-180; “Memoria de Pedro Arrupe”, Miscelánea Comillas 49 (1991), 291-299; “Las oraciones del P. Arrupe”, Manresa 62 (1990), 173-194; 특히 아루페 신부에 대한 입문: Aquí me tienes, Señor, (Bilbao: Mensajero, 2006).
5) Arrupe, “Omelia per la concelebrazione in occasione del 50o di Compagnia”, 52.
6) José A. García, ed., Pasión por Cristo, pasión por la humanidad. Escritos del P. Arrupe sobre la vida religiosa, (Bilbao: Mensajero, 2015), 11.
7) Iglesias, “Per una biografia spirituale”, in Pedro Arrupe, ed., La Bella, 991.
8) Ibid., 990.
9) 참조: Ibid., 1000-1003.
10) Ibid., 1005.
11) Arrupe, “Omelia per la concelebrazione in occasione del 50o di Compagnia”, 50.
12) Pedro Arrupe, “Messaggio alla 33a Congregazione Generale dopo l’accettazione delle sue dimissioni”, in Decreti della Congregazione Generale 33a della Compagnia di Gesù, (Roma: Curia provinciale dei gesuiti d’Italia, 1983), 82-84.
13) Pedro Arrupe, “Omelia a La Storta durante la concelebrazione con i Padri Congregati”, Ibid., 86.
14) Pedro Arrupe, “Discorso ai Padri Congregati nella prima seduta dopo l’elezione (24 maggio 1965)”, in Decreti della Congregazione Generale 31a della Compagnia di Gesù, (Roma: Curia provinciale dei gesuiti d’Italia, 1967), 583.
15) Pedro Arrupe, “Lettera alla Compagnia sulla disponibilità apostolica”(19 ottobre 1977), in Notizie dei Gesuiti d’Italia 10 (1977) 441.
16) Pedro Arrupe, “Servire soltanto il Signore e la Chiesa sua sposa, a disposizione del romano Pontefice”, Discorso al C.I.S. (18 febbraio 1878), Ibid., 11 (1978) 137.
17) Pedro Arrupe, “Fedeltà verso la persona del Sommo Pontefice”, Lettera a tutta la Compagnia (25 gennaio 1972), Ibid., 5 (1972) 65.
18) 참조: Darío Mollá, ed., Pedro Arrupe, carisma de Ignacio, (Bilbao-Santander-Madrid: Mensajero-Sal Terrae-U.P. Comillas, 2015), 139-147.
19) Selección de escritos del P. Peter-Hans Kolvenbach 1991-2007, (Madrid: Curia del Provincial de España de la Compañía de Jesús, 2008), 166.
20) Benedetto XVI, “Discorso ai Padri della Congregazione Generale nell’Udienza del 21 febbraio 2008”, in Decreti e Documenti della Congregazione Generale 35a della Compagnia di Gesù, (Roma: Curia provinciale dei gesuiti d’Italia, 2008), 238.
21) Arrupe, “Discorso ai Padri Congregati nella prima seduta dopo l’elezione (24 maggio 1965)”, 583.
22) 참조: Santiago Madrigal, “Il senso ecclesiale”, in Pedro Arrupe, ed., La Bella, 644.
23) Peter-Hans Kolvenbach, “P. Pedro Arrupe. Profeta de la Renovación Conciliar”, in Forum Deusto, Arrupe y Gárate: dos modelos, Bilbao, Universidad de Deusto, 2008, 99-113; 참조: www.deusto-publicaciones.es/deusto/pdfs/forum/forum21.pdf.
24) Pedro Arrupe, “Omelia per l’Eucaristia con i Provinciali prima dell’udienza con il Papa”(27 febbraio 1982), in Notizie dei Gesuiti d’Italia 15 (1982/3 suppl.) 34.
25) Ibid., 35.
26) Giovanni Paolo II, Discorso ai Padri Provinciali della Compagnia di Gesù, 27 febbraio 1982, Ibid.,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