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종 프란치스코와 이냐시오 영성

Papa Francesco e la spiritualità Ignaziana&&

잔도메니코 무치 S.J.**

이진현 라파엘 S.J. 옮김

  2013년 세계청년대회에 참석하고 7월 28일 저녁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돌아오는 기내에서 교종은 수행 기자단의 여러 질문에 답변했다. 한 프랑스 기자는 ‘교종으로 선임된 이후에도 여전히 예수회원이라고 느껴지는지’ 물었다. 교종은 이렇게 대답했다. “제 가슴에 지닌 영신수련의 영성 안에서 예수회원임을 느끼고 있습니다.”1) 또 교종은 언젠가 이탈리아 언론인 에우제니오 스칼파리Eugenio Scalfari와의 대담에서, 예수회 설립자 이냐시오 성인을 신비가라고 이야기했다. 신비가들이 교회에서 중요한지 묻는 대담자에게 교종은 ‘핵심적’fondamentali 이라고 답하며 ‘신비가들이 없는 종교는 철학에 불과’una religione senza mistici è una filosofia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신비가란 ‘자신의 행위, 사실, 목표는 물론 선교 사목 직분까지 비울 수 있는 사람이자 예수님이 말씀하신 참 행복과 일치를 이루기까지 자신을 고양하는’ 사람이다.2)

  교종은 청년기와 초기 장년기 대부분을 예수회에서 보내고 거기서 사제 서품을 받았으니 자연스럽게 자신을 이냐시오 영성의 제자로 여길 것이다. 그의 강론이 이냐시오 영성의 중요한 주제들을 반영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 교종의 성향과 강론에는 부차적이라고만 할 수 없는 측면이 있는데 그가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본지 편집장 스파다로 신부와의 대담에서 교종은 이냐시오 성인을 침묵과 속죄로 살아가는 고행자가 아니라 신비가로 묘사했다. 말한 사람의 경험과 권위의 무게가 담긴 이 판단은 예수회 설립자의 면모 및 활동에 대한 세간의 오해와 분명히 상반된다. 문학, 회화, 논쟁에서는 대개 성 이냐시오를 가톨릭교회가 종교개혁에 대응하던 16세기의 음울한 고행자로 표현하는 데 그쳤다. 역사상 예수회의 역할과 그 후 계몽주의가 부여한 관련 해석이 이런 묘사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외부에서 만들어진 변형된 성 이냐시오의 이미지는 예수회 안에서도 퍼졌다. 이런 오해는 설립자가 직접 쓴 신비주의적 저술들이 정작 예수회 안에서 뒤늦게 알려졌다는 사실로 일부 설명된다. 이냐시오 자서전은 1731년에 라틴어로 처음 나왔고, 1904년에서야 첫 인쇄본이 나왔다. 성인의 영적 일기는 1892년에 처음으로 일부 출판되었고, 전체는 1934년에서야 간행되었다. 그의 저술들이 수 세기 동안 출판되지 않았다고 해서 순전히 금욕적이지만 않고 신비적이기도 했던 이냐시오 성인의 심오한 영혼이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앞서 언급한 대담에서 교종이 보인 확신은 특별히 흥미롭다. “저는 오히려 루이 랄르망Louis Lallemant3)과 장-조제프 쉬랭Jean-Joseph Surin4)의 신비주의 경향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파브르Pierre Favre는 신비가였습니다.”5) 이들 저술가에 관해서는 개괄적인 그리스도교 영성사, 이냐시오 영성사, 전문 사전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여기서 우리의 강조점은 교종의 이야기 가운데 나온 ‘오히려’invece라는 단어이다.6) 언뜻 보기에는 상술詳述하는 말, 단순한 역접 부사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이냐시오 영성에서 내적 흐름의 전개에 속하는 어떤 감수성의 표시이며, 이냐시오 후예들의 성덕과 가르침으로 유명해졌고 이제는 영성사 전문가들의 영역을 넘어 교종의 분명한 지지로 명성을 얻고 있다.

  성 이냐시오의 알려지지 않은 면

  학문 영역과 대중 신심 영역 모두에서 이냐시오 성인은 성화聖化에 적극 투신하는 이들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성화는 물론 은총에 힘입어 이루어지지만, 또한 개인의 노력, 확고한 자기희생, 그리고 교회에 봉사하며 주님께 자신을 내어 맡김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런데 성 이냐시오가 성화의 수용적이고 신비주의적 측면에서도 영성의 대가라는 점은 덜 알려져 있다.

  우선 명확히 말하자면, 더 넓은 신학적 의미에서 신비주의란 인간의 일상적인 활동과 다르게 작용하시는 성령의 빛과 움직임을 받기 위한 인간 정신의 내적 준비와 참여를 뜻한다. 이 빛과 움직임은 하느님께서 이미 영혼에 심으신 성령의 선물을 실현한다. 신비주의를 이렇게 이해하면, 신비적 삶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성령을 향한 통상적 순응이다. 이와 반대로, 좁은 의미에서 신비주의는 주입 관상, 즉 그 통상적 순응의 여러 형태들과 단계들 중 하나에 깊이 스며드는 관상이다. 다시 말해 형언할 수 없는 느낌, 인간이 어떤 방법으로도 고양시킬 수 없는 주님 현존의 체험이다. 성 이냐시오는 후자의 의미에서 신비가였다.7)

  역사적인 질문

  성 이냐시오가 스페인 황금기의 위대한 신비가들 가운데 한 명이라는 사실을 오늘날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20세기에 앙리 브레몽Henri Brémond의 촉발로 역사적 성격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었고, 일부 학자들이 이냐시오 영성과 예수회 혹은 예수회원의 영성을 구분하게 되었다. 이냐시오 영성은 이냐시오라는 특정 인물의 영성이고, 예수회 영성은 예수회가 전파한 영성인데,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영신수련의 일부 측면만 강조하고 다른 면들을 간과하여 금욕 수행을 지나치게 내세우며 (바로 시망 호드리게스Simon Rodriguez의 영향이 컸다) 신비적 지평을 향한 길을 막아버렸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항상 사부의 가르침에 가장 잘 부합하는 요소들의 색조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는데, 성 이냐시오의 후예들은 대체로 그들 자신이 받았던 영신수련의 견고한 일관성과 탁월한 풍성함을 제거해 버렸다. 그 결과 영신수련의 저자인 성 이냐시오를 두고 상충하는 요소들이 치명적으로 혼합되는 현상이 일어났다.8)

  오늘날 예수회 영성은, 설립자의 신비주의적 원고들을 재발견한 결과이기도 하거니와, 엄격하게 수덕적9)이거나 순전히 금욕주의적인 영신수련 해석과는 거리가 멀고, 금욕주의와 신비주의라는 두 가지 경향이 영신수련이라는 유일한 원천 안에 담겨 있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인다. 당연히 호드리게스는 랄르망이 아니며, 벨라르미노도 쉬랭도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교종 자신이 랄르망과 쉬랭의 신비적 사조를 통하여 고유한 이냐시오 영성에 의해 성장했고 성장하고 있다고 한 이야기와 의미가 통한다. 그러므로 이냐시오 영성과 예수회 영성을 별개로 분리하여 이야기하는 일이 자의적이라면, 하나의 이냐시오 영성 안에서 역사적으로 식별할 수 있고 정의 내릴 수 있는 두 가지 경향을 구별하는 것이 옳다. 이제 이 두 경향의 특징들에 초점을 맞춰보자.

  금욕주의 경향은 [단계별로 이어가는] 담화적 묵상과 개별 덕목의 체계적인 수련에 기초한다. 이는 영적인 삶의 중요한 원칙들을 차근차근 가르치며, 결점들과 하나씩 싸우고 덕목들을 하나씩 키우는 노력을 강조한다. 반면 신비주의 경향은 초반의 엄격한 금욕 수행 이후 마음을 정화하여 성령의 활동에 내맡길 것을 강조한다. 악습에 맞선 싸움과 덕행 실천은 부차적이다. 금욕주의 경향에 속하는 신부들은 호드리게스Rodriguez, 부우르Bouhours, 부르달루Bourdaloue, 쥐드Judde, 라비냥Ravignan, 올리뱅Olivaint 등이다. 신비주의 경향의 신부들은 알바레스Álvarez, 랄르망Lallemant, 쉬랭Surin, 리골뢰Rigoleuc, 기요레Guilloré, 드코사드de Caussade, 라푸엔테La Puente 등이 있다. 신비주의 경향에서는 이탈리아 저자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이하다.10)

  두 흐름 모두 예수회 전통 안에서 온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양쪽 저자들 모두 성 이냐시오의 후예들이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 세기 동안 예수회 공식 지침들은 금욕주의적 경향을 선호해왔다. 아마도 이것이 영적으로 더 안전하다고 여겨졌고, 식별 없이 신비주의를 언급하는 곳이면 늘 혹은 거의 언제나 숨어있는 환상으로 기울지 않으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신비주의 조류가 아주 금지되거나 제한받지는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다. 신비주의 성향의 저자들이 누려왔고 누리고 있는 보편적인 명성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그들이 맺은 성덕의 열매들 때문이기도 하다. 캐나다의 순교 성인들만 생각하더라도 그들은 랄르망의 제자들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교종도 자신을 그의 제자라고 선언하고 있다.

  예수회는 이냐시오 성인의 유산과 전언에 관한 교육과 지침 및 해석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예수회의 관심은 오직 한 가지이다. 예수회원들이 구세주와 함께, 그분의 발자취를 통해, 그분의 길을 따르며, 그분과 일치하여, 자기 사랑과 이권은 모두 부정하고 주님께 관대하게 사랑받아 사도적 봉사를 살아가는 일이다.11) 1940년 칠레 가톨릭대학교에서 열린 회의에서 알베르토 우르타도 크루차가Alberto Hurtado Cruchaga성인이 말했듯이, 예수회 삶의 본질은 “모든 것 안에서 그리스도와 일치되는 사람의 내적 태도, 즉 그리스도께서 내 입장에 계셨다면 하셨을 방식으로 그 분과 일치하는 태도를 얻는 것이다.” 그것은 팜플로나와 만레사의 위대한 신비가가 직접 체험하여 알게 된 하나의 목표로, 오로지 ‘성령께서 마음에 아로새겨주신 애덕과 사랑의 내적인 법’12)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다.


* La Civiltà Cattolica, 3921 IV (2 novembre 2013), 284-288.
** Giandomenico Mucci S.J.
1) 참조: L’Osservatore Romano, (2013. 7. 31), 6.
2) 참조: L’Osservatore Romano, (2013. 10. 2), 4.
3) 역자 주: 루이 랄르망Louis Lallemant 1578-1635은 프랑스 예수회원이다. 1605년 입회, 수련장과 제3수련장을 역임하면서 예수회원들이 활동과 연학에 바빠 기도를 소홀히 하고 지나치게 세속적인 정서에 빠지는 것을 염려하여 관상생활을 사도직보다 우위에 두려고 했다. 오늘날 『영적 가르침』Doctrine Spirituelle으로 잘 알려진 그의 영적 격언과 지침은 제자인 장 리골뢰Jean Rigoleuc 신부가 모아서 펴낸 것이다.
4) 역자 주: 장조제프 쉬랭Jean-Joseph Surin 1600-1665은 예수회 신비주의자, 신심 서적 저술가, 구마사제이다. 1616년 입회하고, 파리 클레르몽 대학에서 연학하였다. 사제가 된 후에도 외부 접촉을 차단하고 극기 고행에 전념했으며, 1634-37년 루됭Loudun에서 구마예식을 거행했다.
5) Antonio Spadaro, “Intervista a Papa Francesco”, La Civiltà Cattolica, 3918 III (19 settembre 2013), 457.
6) 역자 주: invece는 ‘대신에, 반대로, 오히려’라는 뜻이다.
7) 참조: Miguel Nicolau, “San Ignacio, místico”, La Vida Sobrenatural 58 (1957) 241-257, 329-346; Joseph de Guibert, La spiritualità della Compagnia di Gesù. Saggio storico, (Roma: Città Nuova, 1992), 3-46; 133; Paul Imhof, “Ignazio di Loyola (1491-1556)”, in Grandi mistici. Dal 300 al 1900, eds., Gerhard Ruhbach – Josef Sudbrack, eds., (Bologna: EDB, 20032), 317-340.
8) Innocenzo Colosio, “Variazioni sulla spiritualità della Compagnia di Gesù”, Vita Cristiana 18 (1949), 563.
9) 역자 주: 원문은 ‘monistica’(일원론적)이라고 쓰여 있는데 ‘monastica’(수도승적, 수덕적)을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 앞뒤 문맥상 ‘수덕적’이 더 자연스럽다.
10) 참조: Henri Brémond, Histoire littéraire du sentiment religieux en France depuis la fin des guerres de religion jusqu’à nos jours, vol. V, (Paris: Bloud et Gay, 1923); Ibid, vol. VIII, 1928; Georges Bottereau, “Lallemant Louis”, in Dictionnaire de Spiritualité, vol. IX, 125-135; Giovanni Colombo, “Studio introduttivo”, in Louis Lallemant, La dottrina spirituale, (Casale Monferrato (Al) – Milano: Piemme – Áncora, 1984), 7-60.
1)1 참조: Joseph de Guibert, “I tratti caratteristici della spiritualità di S. Ignazio”, La Civiltà Cattolica, 1939 III, 105-119; Guibert, Spiritualità della Compagnià, 112-135.
12) 『예수회 회헌』, 134번; 『영신수련』, 189번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