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지혜』: 중요한 삶의 주제에 대한 교종 프란치스코와의 대화

«LA SAGGEZZA DEL TEMPO»
Papa Francesco in dialogo sui grandi temi della vita*

디에고 파레스 S.J.**

오경택 안셀모 옮김 (춘천교구 퇴계본당 주임신부)

  나는 필리핀 방문을 아주 아름다운 기억으로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프란치스코 할아버지!”라는 뜻의 “롤로 키코!”를 연호하며 나를 환영했습니다. 그들은 정말 롤로 키코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나는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그들이 나를 할아버지 대하듯이 아주 가깝게 느끼는 것을 보면서요.

  교종의 이 말로 첫머리를 시작하는 책 『시간의 지혜』La saggezza del tempo는 이미 여러 언어로 출판되었고, 이탈리아에서는 마르실리오 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1) 이 책은 이탈리아 『치빌타 카톨리카』 편집장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가 편집했다. 그가 전 세계 90여 명의 노인들의 증언을 모았고, 교종은 노동, 투쟁, 사랑, 죽음, 희망이라는 삶의 중요한 문제들을 마주하면서 대화에 참여한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다섯 가지 주제에 관한 개괄적 성찰들과 서문을 이 대화에 엮어 넣는다. 서문은 젊은이들과 노인들 사이의 대화에 관한 교종의 생각을 간추려 쓴 것이다.

  고요하지만 생생한 대화

  프란치스코는 세대 간 대화를 그의 교황직의 근본 주제로 삼았다.2) 이에 대한 첫 언급은 교종으로 선출된 직후인 2013년 3월 15일 추기경들에게 행해졌다. 그 자리에서 교종은 “노년은, 저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만, 삶의 지혜가 놓인 자리입니다. 노인들에게는 삶을 걸어온 지혜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세월의 지혜』의 기본 발상은 오대륙에 걸쳐 노인들에게서 250여개 이야기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모든 이야기는 각각 고유한 지혜를 담고 있다. 그러나 문화적, 사회정치적 상황들이 저마다 다르고 이것들은 삶이 전개되는 데 종종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이 모음집이 풍성하고 다양한 이유는 바로 세계 각지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개인의 증언들도 담겼지만, 부부의 이야기도 있고, 더 나아가 사제나 수도자들의 증언도 담겨 있다. 각각의 체험은 간략하고도 본질적인 성찰 요점을 제시한다. 커다란 사진들이 실린 것도 이 책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로서 그들이 들려주는 각 이야기에 구체적인 얼굴을 보태준다.

  이 기획은 시카고에 소재한 로욜라 프레스 출판사가 주관하고 언바운드와 협력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언바운드는 세계 18개국에서 30만 명이 넘는 노인 및 아동들을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단체로서, 그들이 맺고 있는 노인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사, 작가, 사진작가, 번역가, 편집자들로 구성된 연대의 관계망을 동원하여 이 기획에 관대하게 기여했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기는 불가능했다.

  2017년 7월 28일, 스파다로 신부는 이야기들로 가득한 배낭을 짊어지고 산타마르타의 집을 찾아 교종을 만났다. 만남은 이틀 뒤까지 이어졌다. 스파다로가 큰 소리로 증언들을 읽는 동안 교종은 사진을 응시했다. 고요한 가운데 실제로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조부모를 생생히 기억하는데, 특히 할머니 로사에 대한 기억이 강렬하다. “할머니는 정서적 박탈감을 수없이 경험했지만, 언제나 높은 곳에 시선을 뒀습니다. 단순한 지혜에 대해서 말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충고도 적었고요. 하지만 성찰과 기도를 많이 하시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교종이 노인들에게서 찾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높은 곳에 두는 시선’sguardo in alto이다.

  책의 성격을 고려하여, 은퇴를 앞둔 저널리스트 톰 맥그래스Tom McGrath,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디지털 세계에서 나고 자란 이들의 관점을 가져올 수 있는 젊은 저널리스트 로즈메리 레인Rosmary Lane이 이 기획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총괄 역할로 합류했다.

  꿈과 비전

  “노인들은 꿈을 꾸며 젊은이들은 환시를 보리라.” 요엘 예언서(3,1)에 나오는 표현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기도 중에 이 구절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수많은 연설과 강론에서 이 구절을 거듭 언급했다. 어떤 의미에서 『세월의 지혜』는 이 성경 말씀을 심화하라는 교종의 요청에 대한 응답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교종은 꿈을 들려줄 수 있는 노인들의 모범과 증언 덕분에 젊은 세대가 ‘비전을 가질’avere visioni 수 있다고 여긴다. 프란치스코 교종에게 꿈이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것, 즉 경험을 지닌 이들의 것이다. 교종에게 꿈은 초자연적 유토피아주의의 관념과 맞닿아 있지 않고, 오히려 살아낸 삶의 결실이다. 하지만 꿈은 앞을 내다볼 수 있거나 그럴 기력이 있는 이들과 만날 때에야 성장한다.

  또 한편으로 교종은 젊은 세대가 ‘비전’visione 다시 말해 삶의 계획을 세워야 하는 전망의 세대라고 생각하며, 연장자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본다. 젊은이는 세월의 지혜와 대화할 때 비로소 미래를 볼 수 있으며, 그 지혜는 연장자만이 젊은이에게 전할 수 있다. 따라서 책의 서문에서 교종은 단언한다. “미래를 향해 걷기 위해서 과거가 필요합니다. 현재와 그 도전들을 살아내는 것을 도와주는 깊은 뿌리가 필요합니다. 기억이 필요합니다, 용기가 필요합니다, 미래에 대한 건강한 비전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내가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젊은이와 노인이 새롭게 포옹하며 살아가는 세상입니다.”(p.11)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교종 프란치스코는 서문에 다음과 같이 쓴다.

  우리 사회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목소리를 잠재웠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길 밖으로 밀어냈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이 자기 경험들을 나누고, 자기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자기 삶에 관해 공개적으로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분들을 한쪽으로 치워버림으로써 그분들이 가진 지혜의 보물을 잃어왔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나약함과 취약함이 빚어내는 두려움을 피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에게 지지를 못 받는다고 느끼고, 버림받는다고 느끼게 되는 노인들의 고통을 증가시킵니다.(p.9)

  노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른다는 점에서, 여기서 ‘버림의 문화’cultura dello scarto 가 이야기 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교종 프란치스코는, 노인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살아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감사와 존중과 환대의 시민 감각’senso civile di gratitudine, di apprezzamento, di ospitalità이 일깨워지기를 요청했다. 감각이 ‘시민적’civile 이다. 이 감각이 함양되지 않으면 시민적 삶이 영향을 받고 상처를 입는다. 정말로 그렇다. 세대를 연결하는 굳건한 교량이 없으면 역사가 단절되고, 본보기, 공유할 가치, 더 나아가 앞서 저지른 과오에 대한 증언(책에도 이러한 과오들이 언급된다)이 상실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종 프란치스코는 노인을 ‘기억의 지킴이들’memoriosi della storia 이라고 정의한다.(p.10)

  앙상블을 이룬 책

  이렇듯, 교종 프란치스코는 우리보다 먼저 삶을 경험한 이들의 격렬하고 용감한 증언을 듣는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초대하며, 또 한편으로 미래에 희망을 전하는 유일한 방식으로서, 세대 간의 대화를 통해 서로를 보듬는 일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 책은 앙상블을 이루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 안에서 많은 이의 인생사가, 그 자신 역시 노인임을 드러내는 교종의 단순하면서도 환대하는 말씀을 만난다. 교종은 그에게 전해진 이야기들에 깊은 공감을 형성하면서 자신의 체험을 관대하게 나누는데 거기에 기쁨과 슬픔, 상처와 변화를 겪어온 수많은 조부모들, 부모들, 어른들의 경험도 섞는다. 사는 동안 우리 각자가 마주하게 되는 경험들이다.

  증언들을 통해 다음과 같은 커다란 주제들이 부각되었다. 우리를 세상, 사람들, 땅, 그리고 우리 자신 외의 모든 것과 함께 ‘이야기’parlare 하도록 이끄는 노동의 가치. 실패를 받아들이고 거기서 배우는 일의 중요함. 삶이란 모든 장면을 이미 써 놓은 영화 각본이 아니라 자신을 던져야 하는 모험이라는 사실. 역사에 쓸려가는 것과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의 차이. ‘투쟁’lotta 으로서의 기도. 성공적인 결혼 생활의 비결. 죽음과 애도를 직면하는 경험. 살아왔다는 것의 의미. 하느님의 아이러니. 그리고 신앙. 이 신앙은 “천국에 가는 통행료를 지불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원의 댓가를 지불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자유롭게 주어진 하느님의 은총으로 나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하느님은 단지 우리를 사랑하기 원하시고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 되돌려주고자 하시는 것뿐입니다.”(p.171)

  시노드 중에 열린 출판기념회

  이 책은 10월 23일 로마에 있는 교부학 전문 아우구스티누스 대학원에서 교종 프란치스코가 함께한 가운데 젊은이들과 노인들이 만나는 자리에서 공식 소개되었다. ‘젊은이, 신앙, 성소 식별’에 관한 제15차 주교대의원회의(2018년 10월 3-28일) 중에 이뤄진 특별한 행사였다.3) 시노드 교부들도 여럿 함께한 이 만남에서 교종은 콜롬비아, 이탈리아, 몰타, 미국에서 온 젊은이들과 노인들이 던지는 질문에 즉석에서 대답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개인적 경험, 기억, 성경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 일상 삶의 수많은 구체적 예를 들었다.4) 이날 질문하던 노인들 가운데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Martin Scorsese도 있었는데, 그의 증언 역시 책에 담겼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세월의 지혜』에서 펼친 논거들을 다시 거론하면서, 증오를 심으며 생겨나는 대중주의, 버림의 문화에 의해 일어나는 위선적 시장 경제, 그리고 유럽 바다를 공동묘지로 만들고 있는 이민자들 면전에서 닫혀버린 문들에 대한 해결책을 노인들의 기억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질문들에 답변하면서 교종은 믿음도 우선 가정에서 그리고 조부모들이 겪은 역사의 가장 어려운 순간들 안에서 전해짐을 기억했다. 교종은 지난 세기 독재정권을 떠올렸다. 그때는 조부모들이 은밀히 손주들에게 기도를 가르치고 세례를 줬다. 한편, 교종은 젊은 수도승이 한 노인을 등에 업고 그의 꿈들을 이루어 나아가는 모습을 그린 보세 수도원의 이콘 ‘거룩한 친교’Santa Comunione의 이미지가 반영되기를 원했다.

  교종은,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은 뒤에 어떤 변화를 느꼈는지 물은 소녀에게 답하면서, 노인들이 받아들여질 때 뿌리를 되찾게 되며, 만일 뿌리가 잘리면 나무는 자랄 수도 없고 열매를 맺을 수도 없다고 했다. 이런 의미에서 송로버섯이 적절한 본보기가 된다. 이 버섯은 뿌리 가까이에서 자라고 모든 것을 흡수하여 귀중한 존재가 된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부유’liquidi하고 있는데, 그들 탓이 아니라 그들의 뿌리에서, 역사에서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월의 지혜』는 젊은이들을 위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삶의 모험에 대한 판단 기준과 방향 지침을 제시하고자 하며 우리가 이루려는 세상을 더 나은 모습으로 만들고자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노인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그들 역시 삶의 이 시기에 자신들을 ‘새롭게 만들’inventarsi 필요가 있다고 프란치스코 교종은 쓴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 짓는다.“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겪는 고령화는 새로운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정이 우리로 하여금 창조적이 되라고 촉구합니다.”(p.11)


* La Civiltà Cattolica, 4044 III (15 dicembre 2018/5 gen 2019), 607-611.
** Diego Fares S.J.
1) Antonio Spadaro, ed., La saggezza del tempo. In dialogo con Papa Francesco sulle grandi quesstioni della vita, (Venezia: Marisilio, 2018). 본문 괄호에 넣은 페이지 번호는 이 이탈리아어판의 페이지 번호이다.
2) 세대 간 대화는 베르골료가 예수회 관구장으로 있을 때도 깊은 관심을 가진 주제였다. 1976년 영신수련 중, 장상들에게 한 강론에서 ‘젊은이와 노인의 만남에서 펼쳐지는 신비’를 이야기했다. “주름진 노인의 얼굴은 지혜를 드러내고 젊은이의 서투른 성급함은 영적 유산을 망가뜨리지 않고 오히려 포용합니다.” Jorge M. Bergoglio – Papa Francesco, Nel cuore di ogni padre. Alle radici della mia spiritualità, (Milano: Rizzoli, 2014), 263s.
3) 참조: 「청년들이 일깨운 교회의 공동합의성」, 『치빌타 카톨리카』한국어판, 9권(2019, 봄), 41-47; 안토니오 스파다로 S.J.,「미래에 참여하는 교회: ‘젊은이, 신앙, 성소 식별’에 관한 주교 시노드」, 『치빌타 카톨리카』한국어판, 9권(2019, 봄), 130-151.)
4) 이 만남의 전체 내용은 바티칸 공보실 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https://press.vatican.va/content/salastampa/it/bollettino/pubblico/2018/10/23/0779/016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