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 문화, 식별: 아우구스티누스와 바실리우스의 경험

GIOVANI, CULTURA E DISCERNIMENTO: L’esperienza di Agostino e Basilio*

엔리코 카타네오 S.J.**
최원오 빈첸시오 옮김 (대구가톨릭대학교 유스티노 자유대학원 원장)

  그저 실용주의적 목적으로 지식 문화가 학교 교육과 양성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듯이 보이는 이 시대에 젊은이들을 인문학 문화에 가까이 또는 다시 가까이 다가가게 만드는 일은 더욱 시급하다. 관심도 필수적이다. 젊은이들에게는 자신이 살고 있는 문화 안에서 선한 것과 덜 선한 것을 식별하는 데 필요한 기준을 파악할 능력이 잠재되어 있고, 그들이 성숙해가는 여정에서 그 근본 물음과 문제의식을 끄집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바실리우스 두 교부의 개인적 경험―학교 경험과 그 시대의 문화와의 만남―을 살펴보면 흥미롭겠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예

  『고백록』1)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이 처음 학교에 들어갔을 때를 떠올린다. 그때 교육제도는 강압과 체벌을 기꺼이 활용했다. 아우구스티누스도 여느 아이들처럼 공부보다 놀기를 더 좋아했다. 그러나 선생들은 학생들에게 공부를 시키기 위해 체벌도 서슴지 않았다. “글을 배우라고 학교에 보내졌는데 가엾게도 나는 글을 배워 무슨 소용이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I. 9. 14)

  젊은이들이 세상에서 경력을 쌓고 부와 명예를 얻으려면 공부가 쓸모 있다는 사실을 아우구스티누스는 훗날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진짜 학교일까? 아우구스티누스는 제도의 모순을 알고 있었다. 아이들이 공부보다 공놀이를 하면 벌을 받지만, 어른들이 자신들의 ‘더러운 놀이’sporchi giocchi를 하면 아무 말도 듣지 않았다. 학교에서부터 이렇게 길들여졌기 때문이다.(I. 9. 15 참조)

  문제는 교육을 ‘잘 이용하는 것’bene uti이다.(I. 10. 16) 그런데 선을 위해 잘 이용하도록 가르칠 것은 누구인가?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린 시절부터 베르길리우스 같은 시인들에게 매력을 느꼈지만 문법 공부는 싫어했다. 그는 이렇게 묻기까지 했다. “어떤 것이 더 유익한가? 디도가 어떻게 그리고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아는 것인가, 아니면 읽고 쓰기를 배우는 것인가?”

  교과 과정에는 당시 외국어였던 그리스어 공부도 들어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나중에 후회했지만, 이 언어에 늘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 배우는 데에는 ‘엄격한 강요보다는 자유로운 호기심이 더 큰 힘을 발휘’(I. 14. 23)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둘 다 필요한 방법임을 인정한다. 좋아하는 공부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로운 쓴맛’salubres amaritudines이 있고 ‘해로운 재미’iucunditate pestifera가 있는 법이다.(I. 14. 23)

  공부할 때 내용에서 형식을 분리하기가 가능한지 아우구스티누스는 스스로 묻는다. 선생들은 학생들이 문법이나 구문을 틀리지 않도록 신경 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시인들은 추악한 인간 욕정을 신들의 속성인 양 거리낌 없이 묘사하며 신화 이야기를 전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젊은이들은 더 좋아했다.(I. 16. 25 참조) 그럼에도 아우구스티누스는 ‘문학 지식보다 더 내밀하게 우리 안에 새겨진’ 양심의 소리가 언제나 남아 있다고 여겼다.(I. 18. 29)

  고등교육을 받으러 카르타고에 도착한 아우구스티누스는 극장, 공연, 사랑 같은 도시 문화에 빠졌다. “사랑하기를 사랑했나이다.”(III. 1. 1) 이것이 그의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참된 목표는 아니었다. 강렬한 감성에만 이끌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따가운 염증과 흉한 종기와 피고름’(III. 2. 4)만 남겼을 따름이다. 그 당시 그가 던진 물음은 이러하다. “제 그런 삶이 삶이었나이까?”(III. 2. 4)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러한 윤리적 무질서 안에서도 “당신의 자비가 멀리서나마 충직하게 제 위를 휘돌고 있었다”(III. 3. 5)는 사실을 회심의 여정을 통해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내적 채찍질은 따끔했다. “당신께서는 매사에 저를 채찍으로 치셨습니다!”(III. 3. 5)

  아우구스티누스는 빼어난 지력으로 학급에서 첫째 자리를 차지했다. 이것이 그를 자만하게 했고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렇지만 신입생들 앞에서 으스대는 동급생들의 행실을 따르지는 않았다.(III. 3. 6 참조) 그러다가 그의 인생에서 새롭고도 앞날에 영향을 미친 사건, 그의 가슴 깊은 곳을 흔들어 깨운 사건이 있었다.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를 읽은 것이다. 이 책은 종교 서적이 아니라 철학에 초대하는 책이었다. 책의 말마디 하나하나가 난생처음 마음에 스며들었고 눈을 열어주었다. 이때 나이 열아홉이었다. “모든 헛된 희망은 갑자기 내게서 덧없어지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뜨거운 마음으로 불멸의 지혜를 열망하게 되었습니다.”(III. 4. 7) 그러나 이것은 길고 힘겹고 험난한 여정의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2)

  아우구스티누스는 우선 성경을 읽기로 했다. 자기 어머니가 기도하라고 가르쳐 준 그리스도를 거기서 만나게 되리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망했다. 그는 지식으로 성경에 다가갔고, 성경을 읽으면서 ‘키케로의 품위 있는 문체에 비길 바가 아니’(III. 5. 9)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의 오만방자함이 성경의 절제된 표현을 놓치고 말았고 제 지성의 정곡은 그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했습니다.’(III. 5. 9)3) 그리하여 마니교에 빠지게 되었다. 마니교 신자들은 수없이 진리를 지껄이면서도 이성을 따르지는 않았다. 오늘날에도 종종 벌어지듯, 그는 스스로 지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우스꽝스러운 신앙을 품어 안았다. 본질적으로 미신적인 종교에 넘어가 9년의 세월을 보냈다. 점성술과 별점에 빠지기도 했지만, 다행히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다.(IV. 3. 4 참조)

  그리고 절친한 동갑내기 친구의 죽음을 겪었다. 그때 비로소 삶의 의미에 관한 물음을 던지기 시작했고, 왜 그토록 큰 슬픔을 느껴야 하는지 묻기 시작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죽음뿐’(IV. 4. 9)일 정도였다. 그는 어떠한 해답도 찾지 못했다. “제 자신이 제게 커다란 수수께끼가 되었습니다.”(IV. 4. 9) 그러는 동안 아우구스티누스는 요샛말로 하자면 ‘대학’universitari 공부를 이어갔다. 백과사전식 공부였다. 수사학, 논리학, 천문학, 음악, 기하학과 많은 지식을 쌓았지만, 목표는 사회에서 권력과 특권을 누리는 것이었다.

  공부를 마친 아우구스티누스는 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로 갔다. 처음에는 로마에 머물다가 밀라노로 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를 버리고 회의주의 시기를 거쳐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설교를 통해 신앙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마지막 지적 걸림돌을 제거해 준 것은 역시 책이었다. 이 책들은 라틴어로 번역된 신플라톤 철학자들의 저술이었다. 그때 비로소 아우구스티누스는 무엇이 실재인지를 깨닫는다.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참된 것이 실재임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하느님은 광대한 공간적 영역을 차지하고 계시거나 하늘 위 더 높은 곳에 계시기 때문이 아니라 존재의 원천이기에 참된 실재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책들에서 저는 제 자신에게 돌아가라는 권유를 받았고 … 저의 내면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 저의 지성 위에 있는 불변하는 빛을 저는 보았습니다. … 이 지상의 모든 빛들과 아주 다른 빛이었습니다. … 진리를 아는 이는 그를 알고, 그를 아는 이는 영원을 압니다. 사랑이 그를 압니다. 오, 영원한 진리여, 참된 사랑이여, 사랑스러운 영원이여! 당신은 나의 하느님이십니다!(VII. 10. 16)

  그러나 아직 세 걸음이 더 남아 있었다. 교만을 버리고 ‘겸손한 예수님과 그분의 허약함이 가르치시는 바’(VII. 18. 24)를 깨닫는 것,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은총을 체험하는 것(VIII. 12. 29 참조), 그리고 마침내 세례로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는 387년 부활성야에 암브로시우스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다.(IX. 6. 14 참조)

  여기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젊은 방황은 끝난다. 그는 자신을 이런 사람들 부류에 놓는다.

  그들은 청춘이 끝나 갈 임시에나, 아니면 청춘으로부터 한참 멀어진 다음 어떤 신호를 발견하고서는 비록 풍랑 속에 까불리고 있더라도 아름다운 자기 고향 땅을 기억해 냅니다. 그러고서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또 어디로도 비틀거리지 않고 곧장 고향을 향합니다.4)

  바실리우스와 청년들

  아우구스티누스보다 30년쯤 먼저 카파도키아에서 세례를 받고 아테네 학교에서 교육받은 젊은이가 있었다. 바로 바실리우스이다. 독실한 그리스도교 가정 출신이었지만 그 당시 관행대로 세례를 연기했다. 그가 세례를 받기로 했을 때 그 결심은 부모가 물려준 신앙에 단순 가입하는 요식행위가 아니라 참된 회심이었다. 생애 말년에 쓴 자전적 기록의 한 대목에서 바실리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많은 시간을 헛된 것에 낭비했습니다. 저는 제 청춘 대부분을 무익한 일들에 허비했습니다. 저는 지혜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청춘을 바쳤으나, 그 지혜란 하느님께서 어리석은 짓5)이라고 꾸짖으신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 복음 진리의 놀라운 빛을 향해 눈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파멸하게 되어 있는 이 세상 우두머리들의’(1코린 2,6) 지혜의 무익함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제 비참한 삶을 슬피 울면서 경건의 원리를 향해 방향을 잡아줄 수 있는 길잡이를 저에게 보내 주시기를 청했습니다.(『서간집』 223,2)

  바실리우스는 여기서 그가 아테네에서 대학 공부를 하던 시절에 관해 말한다. 그때의 공부는 철학, 수학, 천문학, 의학, 특히 문학과 수사학을 아우르고 있었다. 바실리우스는 ‘세상의 지혜’sapienza di questo mondo를 반박하는 바오로의 성경 본문 두 대목을 바탕으로 이 모든 것이 ‘헛된 것’vanità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지금 인용한 바실리우스의 말은 맥락을 고려하여 읽어야 한다. 이 대목은 그에게 수행의 삶을 가르친 옛 스승에게 보낸 편지이다. 세속 지혜를 복음 진리에 비길 수는 없으니 세속 지혜를 찬양한다면 생뚱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세속 지혜를 단죄하지도 않는다. 다만 삶의 방향을 잡는 데 진정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할 따름이다.

  고전 문화에 관한 바실리우스의 생각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의 공부를 돕기 위해 저술한 소품 한 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실리우스는 여기서 교육 문제를 다룬다.6) 학교에서는 고전 작가들(특히 시인들)을 공부하지만, 그 작품들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윤리적으로 저속한 사건들을 그려낸다. 이때 그리스도를 믿는 젊은 학생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공부를 끊어버려야 하는가? 바실리우스는 그 방법은 제외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문화를 끊어버리는 셈이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식별의 기준을 지니는 일이다. 무엇이 인생의 궁극 목표인지, 무엇이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답게 만드는지 분명하게 식별해야 한다. 이것을 분명히 하지 않고는 어떤 만남도 결실을 맺지 못하고 식별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바실리우스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는가?

  위대한 카파도키아 교부 바실리우스의 심오한 사상을 파악하려면 그가 청년들을 위해 쓴 소품의 머리말을 다시 읽을 필요가 있다. 바실리우스는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자녀 여러분,’(바실리우스는 청년들을 이렇게 부른다) 여러분은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보다 경험이 많습니다. 존재는 항상 흔들리기에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는 사실을 나는 배웠습니다. 나는 아버지로서 여러분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헤시오두스 시인이 말한 바와 같이 ‘아무 쓸모없는 인간’의 범주에 속하느냐, 아니면 여러분의 내면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내 조언을 받아들이면서 진지하게 투신하느냐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선 책을 사랑하십시오. 책은 죽은 사물이 아닙니다. 책을 통해 “여러분은 고대의 빛나는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1,5) 그러나 그들의 손에 여러분 정신의 방향타를 내맡긴 채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을 따라가지는 말고, “유익한 것은 받아들이되 솎아내야 할 것을 식별하는 법도 배우십시오.”(1,6)

  책을 읽다가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가장 깊은 열망, 곧 진선미에 대한 숭고한 열망을 충족하며 살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존재 자체이신 분의 실재, 여러분의 존재,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들을 관상하려는 열망을 지녀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열망이 아름답고 매력적인 피조물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류에 빠지지는 마십시오. 그런 것들은 인간적 갈망의 대상이지만 궁극적 실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먼저 태어난 유명한 인물들에 통달하는 데 있지 않고, 아름답고 강인하고 튼튼한 육체를 지니는 데 있지 않으며, 모든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거나 정치 권력의 최고봉에 다다르는 데에도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인간적으로 바라는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 보십시오. 이 모든 것 가운데 그 무엇도 ‘우리의 희망’을 채울 수 없을 것입니다.”(2,2) 우리가 ‘온 힘을 다해 사랑하고 추구해야 하는 것’(2,3)은 ‘다른 종류의 삶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행복과 선과 진리가 영원한 삶입니다. 이 ‘참된 실재’에 비하면 지상 재화는 ‘그림자’와 ‘꿈’에 지나지 않습니다.(2,5)

  ‘참된 삶’이 무엇에 달려 있는지에 대한 지금 내 설명이 장황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아직 너무 젊기 때문입니다. 성경과 하나가 되면서 참된 삶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인생에 유익한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고전 문헌들을 통해 미리 훈련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존재의 투쟁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전투’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모든 전투 가운데 가장 큰 전투’입니다.(2,8) 그러므로 전투를 치를 준비를 잘해야 합니다. 이러한 저술가들이 비춰주는 진리와 선과 덕의 반영을 들여다보는 데 익숙해짐으로써 마침내 여러분의 시선을 ‘빛 자체’에 고정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2,10)

  바실리우스의 이러한 접근에는 특별한 면이 있다. 바실리우스는 교의적이거나 교조적인 차원을 넘어서 무엇이 삶의 궁극적 의미인지를 아는 데에, 우리가 무엇을 위해 창조되었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를 아는 데에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있다고 한다. 그리스도와 분리되지 않고 그리스도 위에 터 잡은 이 최종 지평이 없다면 바실리우스의 설명은 스토아 철학자들과 다를 바 없는 도덕적 잔소리로 축소될 위험이 있다.

  이 토대가 있다면 고전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도 위험하지 않으며 분별하면서 읽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세속 문화는 비록 한계가 분명하지만, 선을 위해 창조된 인간 본성 위에 세워져 있기만 하면 종종 그리스도교 윤리를 확증해 주기도 하고, 신앙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참으로 인간적인 것은 그리스도교적이다. 또한 그리스도교적인 것이 참으로 인간적이기도 하다. 바실리우스는 이 원리를 전제로 세속 문화와 그리스도교 문화의 만남이 가능하다고 본다. 성경 역시 모세의 모습에서 이미 본보기를 제공하고 있다. 모세는 이집트의 지식을 교육받았고, 존재(자신을 ‘있는 나’라고 밝히신 분에게서 존재를 받아 ‘있게’ 된 것들)의 실재에 관한 거룩한 계시의 은총을 받았다. 마침내 자신의 이 모든 경험(인간적이고 신적이기에 참된 지혜)을 입법자요 교육자로서 하느님 백성을 섬기는 데 사용했다.(3,3 참조)

  바실리우스는 모세의 사건들을 통해 자신의 개인사를 반추한다. 먼저 인문 지식(아테네 유학)으로 양성된 다음 성경에 계시된 거룩한 지혜의 아름다움을 발견했으며, 마침내 하느님 백성을 섬기는 주교직을 받아들인 것이다.8)

  결론

  젊은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그들을 능동적 시민이자 사회의 주역으로 만들어줄 기초 문화 교육을 받는 곳도 학교다. 젊은이가 문화를 접하지 못하면 세상에서 차단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그에게는 장래가 없다. 그렇지만 세상의 모든 젊은이가 쉽게 교육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국가들은 아직도 여자아이들을 학교교육에서 배제하는 구시대적 잔재를 유지한다.9) 공부하고 배우는 일은 어떤 식으로든 수고와 노력이 필요한 과제이다. 이 때문에 학교에 다닐 기회를 얻은 많은 젊은이들이 학교를 떠나거나 아무 결실도 없이 수동적으로 다니기도 한다. 문화란 학문을 배우는 일일 뿐 아니라 직업의식을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점도 덧붙이고 싶다.

  일반적으로 지식 문화와 인문학 문화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수학, 화학, 생물과 같은 지식 내용은 어디에서나 똑같고 문화를 초월한다. 멕시코에서 가르치는 물리학은 나이지리아에서 가르치는 물리학과 동일하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지식 문화가 우세하고 인문학 문화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학문 지식을 제공하는 유일한 곳이 사실상 학교이기는 하지만, 넓은 의미의 문화에 다양한 가치 주체들도 이바지하고 있다. 특히 가정이 그러하고, 소속된 종교, 정당, 단체, 매체, 인터넷 등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사회적 관습을 만들어낸다. 거기에는 좋은 것들도 있지만 별로 좋지 않은 것들이나 절대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것들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부패와 협박을 일삼는 마피아 문화, 학교에서부터 광신과 무관용을 부추기는 문화, 법에 정해진 것과는 달리 실제로는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충분한 예가 될 것이다. 그래서 ‘식별’discernimento이 필요하다. 그러나 누가 젊은이들에게 식별을 가르칠 것인가? 누가 그릇되고 기만적이고 파괴적인 것에서 참되고 정의롭고 선한 것을 식별하는 법을 가르칠 것인가?

  그래서 젊은이들이 인문학 문화와 접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지식 교육이 지배적인 곳에서 특히 그러하다. ‘인문학 문화’cultura umanistica란 위대한 ‘고전’classici―모든 민족은 저마다 고유한 고전을 지니고 있다―작가들뿐 아니라, 우리 시대의 작가들을 일컫는다. 참된 작가는 인간에 관해 따져 묻는 사람이며, 인간의 물음과 인간의 문제와 비극에서 출발한다. 신비가 존재함을 감지하지 못한다면 인간에 관해 말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저술가들뿐 아니라, 회화, 조각, 건축, 음악 등으로 표현하는 예술가들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이들 가운데 그 누구에게도 해답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물음을 던지고 의문을 제기하는 자체가 중요하다. 그릇된 문화와 획일적 사고의 독재에 조종당하지 않으려면 젊은이에게 바로 이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문학 작품이나 미술 작품에 담긴 본질적 질문을 밖으로 꺼내기는 쉽지 않다.10) 이러한 인문학적 문화를 전수하기 위해서 직접 그 과정을 겪었던 사부들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일이 그리 단순하지 않을 때가 많다. 왜냐하면 언제 어디서나 교육의 참된 자유가 보장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세계에는 이러한 자유가 없는 곳이 많다. 정부가 학교를 통제하고 종종 자신들의 이념을 주입하며 현실에 이념을 맞추기보다는 자신들의 이념에 현실을 구겨 넣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른바 ‘자유 세계’mondo libero에서도 사상의 참된 다원성이 늘 존재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대학에서마저 지배적인 획일적 사고에서 벗어나면 따돌림을 당하거나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도 교회는 아직 자유의 여지를 조금이나마 제공하고 있기는 하지만, 차라리 침묵해 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가 제시한 아우구스티누스와 바실리우스의 본보기는 인문학적 문화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 문화가 반드시 종교적일 필요는 없다. 참으로 인간적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다시 말해, 오늘의 젊은이들을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길러낼 질문과 문제의식을 샘솟게 할 수만 있으면 된다. 그리하여 내적인 진리 자체를 향한 길을 제시할 수만 있으면 된다.


* La Civiltà Cattolica, 4013 III (2/16 settembre 2017), 375-384.
** Enrico Cattaneo S.J.
성경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 역자 주: 여기서는 최민순과 성염의 『고백록』 번역에 기댔다.
2) “항해란 인간의 실패에 대한 불안이 담긴 은유이다. 이 항해에는 자기 인생의 다양한 사건들과 공들인 성찰들이 한데 엮인다. 키케로의 책을 읽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내면에서는 안전한 귀항에 대한 그리움이 다시 깨어난다. 이 그리움은 방향 전환을 위한 키잡이가 되었지만, 좌초로 이어질 수도 있는 짙은 안개에서 벗어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Luigi Alici, “Introduzione generale”, in Agostino d’Ippona, La dottrina cristiana, ed. Vincenzo Tarulli, (Roma: Città Nuova, 1992), XX.]
3) 이 부정적인 첫 체험은 매우 강렬하다. 이를 바탕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이 어떻게 성경의 열매에 다가가게 되었는지 긴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근본주의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자유 해석의 거짓 자유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이런 방식들은 ‘사랑을 차근차근 가르쳐주는’inculcare la carità 성경의 목적에 방해가 되는 요인이다. 참조: Enrico Cattaneo, Evangelo, Chiesa e carità nei Padri, (Roma: AVE, 1995), 85-98.
4) 아우구스티누스, 『행복한 삶』, 교부 문헌 총서 23, 성염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16), 1.2.
5) 참조: 1코린 1,20. “지혜로운 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율법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논객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으셨습니까?”
6) 참조: Mario Naldini, ed., Basilio di Cesarea. Discorso ai giovani (Oratio ad adolescentes), (Firenze: Nardini, 1990).
7) 바실리우스의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내용을 간추려 싣는다.
8) 성 아우구스티누스도 바실리우스의 이러한 입장을 온전히 인정했을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앎에 대한 열성이 있고 지력의 재능이 있으며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젊은이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는 그런 젊은이들이 온 존재를 걸고 ‘행복한 삶’beatam vitam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이 열망은 젊은이들을 ‘가만히’tranquilli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학문’scienze이나 ‘인문 교육’istituzioni umane이 그들이 찾는 행복을 주기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맑은 정신으로 부지런히’con mente lucida e con diligenza 모든 것을 따져보아야 한다. 참조: Agostino, Dottrina cristiana, II, 39, 58.
9) 파키스탄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 이야기를 대표적 예로 들 수 있다. 말랄라는 15살이던 2012년 10월 9일, 탈레반 병사 두 명이 발사한 총탄에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그들은 학교 통학 버스에 올라 그 소녀의 입을 다물게 할 작정이었다. 말랄라가 저질렀다는 잘못이라고는 여자아이들의 교육을 반대한 탈레반 정책을 널리 알렸다는 것뿐이었다.[참조: Giancarlo Pani, “Il caso ‘Malala’: l’istruzione contro la violenza”, La Civiltà Cattolica, 3952 I (21 febbraio 2015), 391-399] 현재 말랄라는 가족과 함께 영국에 살면서 초등교육뿐 아니라 고등교육 차원에서도 여아의 학습권을 지지하는 국제 캠페인을 주도하고 있다. 말랄라는 유엔 연설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어린이 한 명, 교사 한 명, 책 한 권, 펜 한 자루가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참조: Malala Yousafzai, “One child, one teacher, one book and one pen can change the world”, https://www.unicef.ie/stories/one-child-one-teacher-one-book-and-one-pen-can-change-the-world/ (접속일: 2019. 2.1)]
10) 아름다운 본보기에 관해서는 Ferdinado Castelli, El gran teatro del mundo. Scenografie letterarie, (Città del Vaticano: Libreria Editrice Vaticana, 2012)를 참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