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트로 보바티 SJ

박수현 로사리아 (교회법 석사) 옮김

부활의 경험

  파스카 시기에 우리는 나자렛의 예수님께서 이루신 부활 사건을 거행한다. 교회는 이 기념안에서 우리 신앙의 핵심적인 교의 가운데 하나인, 구원을 위한 결정적인 진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가 “신비”라고 부르는1) 이것은 믿기 어려운 사건이기도 하다. 2) 만약 우리가 진지하게 우리의 인식에 물음을 던진다면, 아마도 약간의 동요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셨던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 돌아오셨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가 없음을 인지하게 된다. 3) 우리는 예수님이 몸소 당신의 제자들에게 스스로를 드러내 보였던 그 순간에 직접 함께 하는 체험을 통해서 부활에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육안으로 부활을 목격한 이들의 증언들과 선한 이들에 의해 여러 세대를 거치며 전해진 증언들을 부활 신앙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 토마스처럼 의심으로부터 변화된 진정한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또한 예수님의 못자국에 손을 대어 보고 그분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볼 수 있기를 원할 수도 있다(요한 20,27).

조반니 쿠치 SJ

김민 요한 신부(예수회) 옮김

의심에 도움이 되는 상담

의심을 품고 있는 이들을 상담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교가 시작된 이래에 널리 입증된 자비의 영적 활동이다. 이는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 그리고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Caritas in veritate에서 환기시켰던 진리의 봉사로 실현된 사랑의 활동이 갖는 지적이고 지혜로운 차원을 드러내준다. 인간들은 진리에 목말라 하고 진리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진리를 알지 못하는 이들은 살아갈 가치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비록 많은 좋은 것들로 둘러쌓여 있다 하더라고 말이다. 

체사레 지라우도 SJ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광주대교구) 옮김

공의회의 자취를 따라 본 「대원칙」(Magnum Principium)과 전례의 토착화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거룩한 공의회」(Sacrosanctum Concilium)가 36항에서 천명한 것은 참으로 ‘위대한 원칙’이다. 거기에는 각 전례 회중들에게 자신의 언어로 하느님과 대화할 권리를 인정한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이미 9세기 중반에 치릴로 성인과 메토디오 성인이 전례 언어 문제를 제기하였고 성공적으로 해결하였다고 한다. 세 언어만이 ‘하느님을 찬양하는 데 합당하며, 이는 히브리 말, 그리스 말, 라틴 말’, 곧 실제로 십자가의 명패 위에 쓰였던 언어들이라고 제한하는 이들에게 이 두 성인은, 전례 언어는 마치 ‘하느님께서 모든 이에게 똑같이 내려 주시는’ 비나, ‘모든 이 위에 똑같이 비치는’ 해(마태 5,45 참조) 그리고 ‘모든 이가 똑같이 숨 쉬는’ 공기와 같이 누구에게서도 빼앗을 수 없는 여러 선익 가운데 하나라고 열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