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삶과 사명에서 공동합의성

LA SINODALITÀ
NELLA VITA E NELLA MISSIONE DELLA CHIESA*

안토니오 스파다로 S.J. – 카를로스 갈리**
최현순 데레사 옮김 (교의신학박사. 서강대학교 교수)

  40년 전, 예수회 사제 아리즈 뢰스트 크롤리우스Arij Roest Crollius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토착화에 있어 무엇이 그렇게 새로운가?”1) 그의 성찰은 토착화라는 단어를 이해하는 데에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노선에 있는 신학적 및 사목적 언어체계에서 이 개념을 받아들이는 데에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교황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에서 그리고 국제신학위원회가 「교회의 삶과 사명에서 공동합의성」La sinodalità nella vita e nella missione della Chiesa(SIN)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문헌에서2) ‘공동합의성’sinodalità 이라는 용어가 받고 있는 자극 앞에 그와 유사한 질문을 하게 된다. 그리고 교황령Costituzione Apostolica 「주교들의 친교」Episcopalis communio도 최근 발표되었다. 우리는 지속적 의미를 가진 어떤 밀도 있는 새로운 개념 앞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지나가버릴 유행을 반영하는 소리에 불과한 어떤 것을 다루고 있는 것일까? 이 글을 통하여 우리는 국제신학위원회가 발표한 공동합의성에 대한 문헌에 주목하고 그 주제에 어떤 새로움이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질문: 구성적 새로움인가 혹은 지나가는 유행인가?

  “공동합의성의 여정은 하느님께서 3천년기 교회에 기대하시는 길입니다.”3) 교황 프란치스코는 2015년 10월 17일, 바오로 6세에 의해 제정된 주교대의원회의 50주년 기념 담화에서 이와 같이 말하였다. 교황의 이 발언은 사목적 회심과 선교적 파견을 통한 교회 개혁으로 초대하려는 계획을 염두에 둔 선언이다.

  이 담화에서 교황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어떤 의미로는 이미 ‘시노드’Sinodo라는 말 속에 모두 들어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원하시는 모든 것이 시노드 그리고 공동합의성의 개념들 안에 다 들어있지 않은가? 하느님의 뜻이 ‘복음’Vangelo, ‘하느님 나라’Regno di Dio, ‘사랑’amore, ‘생명’vita, ‘친교’comunione, ‘거룩함’santità, ‘선교’missione와 같은 성경적 언어에 표현되어 있다면, 이 단어들과 시노드 그리고 공동합의성이라는 단어 사이의 관계는 무엇일까? 게다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동합의성이 ‘교회의 구성적 차원’dimensione costitutiva della Chiesa이라고 선언했다. 그런 신조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느님 백성의 친교의 신비를 표현하는가? 공동합의적 교회란 무엇인가? 시노드는 공동합의성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신학, 사목, 영성에 있어서 그 새로움은 무엇인가? 젊은이들을 주제로 다룬 것과 같은 주교 시노드 모임에 대해 ‘공동합의적 교회’Chiesa sinodale를 말하는 것은 어떤 함의를 갖는가?4)

  공동합의성에 관한 국제신학위원회의 문헌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이 위원회의 여러 소위원회 중 하나가 실행한 연구의 결과물로서, 2017년 총회에서 승인되어 위원장이며 신앙교리성 장관인 루이스 라다리아 추기경에게 제출되었으며, 2018년 3월 2일 교황의 호의적 의견을 들은 후 이 추기경이 발행을 인준했다. 이 교회론 문헌은 성경주석, 교회사, 조직신학, 사목신학, 교회법, 영성신학, 전례학, 교회일치 및 사회 교리의 내용들로 뒷받침되고 있다.

  문헌의 목적과 구조

  이 문헌은 공동합의성의 의미를 가톨릭교회론적 전망 안에서 심화하여 다루었다. 교황청 공식 홈페이지를 통하여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 그리고 영어로 발행되었고, 121개의 문단과 170개의 각주로 이루어졌으며 긴 서문, 네 개의 장, 짤막한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에서는 현재 교회 안에서 공동합의성의 시대kairos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기술하고 몇 가지 기본적 개념의 의미를 명확히 한다.(SIN 1-10) 제1장은 성경, 성전, 그리고 교회의 2천년 역사에서 나타나는 규범적 자료들 가운데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받아들이고 전한 하느님 계시의 역사적 발전에 뿌리를 두고 있는 ‘공동합의적 모습’figura sinodale을 밝힌다.(SIN 11-41)

  제2장은 신학적 기초에서 출발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공동합의성 신학’una teologia della sinodalità을 간단하게 전개한다. 세상 안에서 순례하고 선교하는 하느님 백성의 친교의 신비, 특히 하나이고, 거룩하며,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특징을 고려하며 교회의 공동합의적 삶을 설명한다.(SIN 42-70) 이러한 신학적 기초 위에서 사목적, 영성적 방향성을 제안한다.

  제3장은 하느님 백성의 공동합의적 소명의 틀 안에서 공동합의성의 주체, 구조, 과정 및 공동합의적 사건들을 고려하면서 공동합의성이 다양한 수준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되는지를’la concreta messa in atto 다룬다. 공동합의성은 교구에서 시작하여 지역 내 교구들 간의 친교로 나아가고, 보편교회 전체에서 절정을 이룬다. 동방과 서방교회의 구조와 전통에 나타나는 내용들이 이러한 논의에 기여한다.(SIN 71-102)

  제4장은 쇄신된 공동합의성을 향한 ‘영적 및 사목적 회심’la conversione spirituale e pastorale의 기본 노선을 제공하고, 친교의 영성 및 경청, 대화, 공동합의적 식별을 통한 그 영성의 실현을 분석하며, 교회일치적 여정과 사회적 봉사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 등을 강조한다.(SIN 103-119)

  논의의 출발점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이루어진 신학적 언어의 쇄신이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사용된 신학적, 교회법적, 사목적 저술에서 형용사 ‘시노드적’synodale과 연관된 명사/i>‘공동합의성’synodalità이 새로운 용어로서 윤곽이 드러났음을 볼 수 있다. 두 단어 모두 ‘시노드’synodo에서 파생되었다. 그리하여 공동합의성을 교회의 ‘구성적 차원’dimensione costitutiva으로 설명하게 되었다. 즉 ‘공동합의적 교회’Chiesa sinodale에 대해 말하게 되었다.

  이 언어의 새로움 때문에 신학적 정립에 주의가 요구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서 출발하여 그때부터 지금까지 지역교회들과 보편교회가 겪은 체험에 이르는 교회의 인식 안에서 무언가 성숙해왔음을 이 언어의 새로움을 통해 볼 수 있다. 비록 ‘공동합의성’synodalità이라는 용어와 개념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 안에 명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공동합의성의 문제가 공의회로부터 약속된 쇄신 작업의 핵심에 있다고 할 수 있다.(SIN 5-6 참조)

  그리스도론적 열쇠와 교회적 체험

  문헌은 그리스도론적 그리고 삼위일체론적 열쇠로 공동합의성을 이해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기쁜 소식을 선포하신 분, 나그네 생활을 하며 복음을 선포했던(루카 9,11 참조) “예수님을 바라본다.”(히브 12,2) 교회는 ‘주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사도 9,2)의 공동체이다. 예수는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길이요,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바로 ‘그 길’(요한 14,6)이다. 그리스도는, 나그네이며, 길이자, 도달해야할 목적지인 우리의 고국으로서 ‘최고의 길’(1코린 12,31ㄴ)을 통하여 우리를 이끄신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시노드는 교회를 칭하는 이름’synodo è nome che sta per Chiesa 이라고 하며, 친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정이라고 선언했다.

  ‘시노드’Sinodo는 희랍어로서 ‘함께’를 뜻하는 전치사 쉰syn과 ‘길, 여정’을 뜻하는 명사 호도스hodos의 합성어이다. 이것은 부활하신 주님의 인도 아래 하느님 백성 전체가, 그 다양한 구성원이 책임감을 갖고 협동하며 공동선을 위해 다양한 은사와 직무를 행하는 함께 걸어가는 여정을 의미한다.5)

  예루살렘 공의회의 모범적 특징은(사도 15,4-29 참조) 그리스도교의 기원에서부터 존재했던 공동합의적 삶을 보여준다. 교회는 그리스도교를 유대교화하려는 위기 앞에서, 곧 사목적이고 교의적인 측면의 결정적 도전에 직면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아 공동체적이며 사도적인 식별 방법을 사용했다.(사도 15,28) 이 결정적 모임에 다양한 방법으로 ‘전체 교회와 함께 사도들과 원로들’gli apostoli e gli anziani, con tutta la Chiesa이 참여했다.(사도 15,4.6.22) 이 사건을 토대로 시노드적이며 공의회적인 전통이 세워졌다.6)

  공동합의성은 교회를 여정 중에 있는 하느님 백성으로 그리고 주님에 의해 불려 모인 회중으로 그려낸다. 하느님 나라의 계획을 실현하고 민족들을 복음화하기 위해 ‘함께 걸어가는’camminare insieme 과정은 부활하신 주님을 기념하고 성령께서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식별하기 위해 ‘회중으로 모여 함께 있음’stare insieme in assemblea을 내포한다. 회중으로 ― 특히 교회 전체의 차원에서 열리는 보편공의회와 주교 대의원회의에 ― 모인다는 것은 복음화에 봉사하기 위하여 성령의 인도 아래 식별하는 특별한 역사적 순간들이다. 이렇게 교회는 삶의 리듬을 따라가는 움직임이자 휴식이요 여정이자 모임인 ‘공동합의성이며 시노드’sinodalità e sinodo이다.

  문헌은 결론의 한 단락에서 교황 프란치스코가 2017년 5월 22일 이탈리아 주교회의 제70차 총회 개막에서 행한 연설을 인용한다.7)

  교회는 성체성사Eucaristia로 형성된 신비이다. 성체성사적 회중은 여타 회중의 샘이요, 중심이며, 정점이다.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의 몸과의 친교를 거행하며, 이 친교로 인해 그리스도는 충만하게 역사 안에 현존한다. 살아있는 신앙의 체험으로부터 교회적 회중들이 생겨나며, 이 회중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마주치는 교리적, 전례적, 교회법적 그리고 사목적 문제들을 식별하려고 한다. 회중들은 교구 차원, 관구 차원, 지역 차원 그리고 보편적 차원에서 끊임없이 공동합의적 실천들을 수행해 왔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론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LG)은 삼위일체에 의해 모인 교회적 백성들의 친교에서 공동합의성을 이해할 수 있는 근본 원리들을 제시한다.(LG 4 참조) 교회헌장 1장부터 3장이 배치된 순서는 교도권과 신학의 역사에서 새로운 것이다. ‘교회의 신비(1장), 하느님의 백성(2장), 교계제도(3장)’의 순서는 구원의 삼위일체적 계획 안에서 교계제도, 곧 로마의 주교를 머리로 하는 주교단이 선교하는 하느님 백성에게 봉사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공동합의성은 3장에서부터만 아니라 이미 앞의 두 개 장에서부터 고려해야 한다.

  공동합의성은 주체의 조건을 나타내는데 여기에서 주체란 교회 전체와 교회 안에 속한 모두에게 해당한다.8) 세례받은 모든 이는 여정의 동반자이고, 거룩함과 선교의 소명에 있어서 능동적 주체이다. 모두가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에 참여하고 모두가 성령의 은사로 풍요로워졌기 때문이다. 이 노선에서 교황 프란치스코는 공의회의 풍부한 표현을 보충하여 교회를 항상 ‘하느님께 충실한 거룩한 백성’santo Popolo fedele di Dio이라고 부른다.(LG 12a 참조)9)

  이 신학적 맥락에서 신조어 ‘공동합의성’sinodalità은 단지 활동과정의 묘사만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인 교회가 생활하고 활동하는 ‘특별한 방식’modus vivendi et operandi을 표현하며, 그것은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걸어가면서, 회중으로 함께 모이는, 그리고 복음화의 사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면서 구체적으로 이루는 친교를 드러내고 또 실현한다. 공동합의성은 그리스도 안에 이미 현존하는 하느님 나라의 충만함을 향하여 나아가는 역사 안에서 교회의 본성과 사명을 표현하고 실현한다. 그러므로 ‘교회’Chiesa는 ‘시노드’Sinodo를 위해 있는 이름이며 ‘시노드’Sinodo는 ‘교회’Chiesa를 위해 있는 이름이다.

  앞의 두 개의 장을 요약하면서 문헌은 교회의 삶과 사명에 있는 다양한 실재들을 고려하여 공동합의성의 세 가지 의미를 구분한다.(SIN 70 참조) 첫째는 생활하고 활동하는 일상적 방법을 특징짓는 ‘고유한 스타일’stile peculiare이다. 둘째는 제도적 차원에서 공동합의적 친교를 표현하는 ‘구조’strutture와 ‘과정들’processi이다. 마지막으로 교구 시노드에서부터 보편공의회까지에 이르는 ‘사건들 혹은 행동들’eventi o atti의 시의적절한 실현인데, 이러한 사건들 안에서 교회는 교구적, 지역적, 그리고 보편적 차원에서 공동합의적으로 행동하도록 초대된다.

  현대 세계에서 가정의 소명과 사명을 검토하는 목적으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3년 사이에 열린 두 번의 회합에서 교황 프란치스코가 진작시켰던 참여와 협의 과정에 의해 그의 동일한 가르침이 뒷받침된다.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은 그러한 공동합의적sinodale 그리고 단체적collegiale 실천이 성숙한 결과이다.

  공동합의적 교회의 역전된 피라미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통적인 피라미드 형태를 극복한다. 사실 집단 이미지 안에 여전히 이 형상이 남아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역전된 피라미드’una piramide rovesciata 이미지를 빌려 ‘공동합의적 교회’una Chiesa sinodale를 제안한다. 이 이미지 역전은 공의회에 의해 이루어졌고, 아르헨티나 출신 교황에 의해 공고해졌다.10) 공동합의성의 신학은 공의회 사건과 공의회의 교회론적 가르침에서 기원하고 그것과 동질성을 띠고 발전한다. 공동합의성 신학은 교회헌장 18항의 논리를 따르면서 하느님 백성(피라미드의 바닥, 꼭대기에 위치)에의 겸손한 봉사로 교계제도(피라미드의 꼭짓점, 밑에 위치)의 직무를 이해하고 수행하기 위한 해석틀을 제공한다.

  공동합의성은 두 개의 기둥에 의존한다. 하느님 백성 전체의 ‘신앙 감각’sensus fidei ― 국제신학위원회의 또 다른 문서의 주제이기도 했다11) ― 과 로마 주교좌와의 친교 안에서 띠는 주교직의 성사적 단체성이 그것이다. 공동합의성은 그리스도인 백성이 받은 은혜들, 주교직의 사명, 베드로의 후계자가 수행하는 봉사를 설명하면서, “‘모든 이들’tutti, ‘몇몇 사람들’alcuni, 그리고 ‘한 사람’uno 사이의 공동합의적 친교를 수행”하도록 초대한다.

  신자들의 예언직, 주교단의 식별, 베드로 직무가 수행하는 주재자의 역할 사이에 이루어지는 교환은 교회를 풍요롭게 하며, 하느님 백성, 주교직의 단체적 친교, 로마 주교의 ‘봉사적 수위권’primato diaconale 간의 공동체적 차원을 연결하도록 돕는다. 비슷한 과정이 지역교회들 안에서 그리고 교회들의 연합에서도 일어난다. 국제신학위원회는 몇몇이 받은 권위와 모두가 수행하는 참여를 연결하는 공동합의적 사건들과 그 주체, 구조, 과정들을 분석한다. ‘공동합의적 교회는 참여적이며 공동책임적 형태의 삶을 산다.’12)

  공동합의성의 개념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가르침의 핵심인 친교 및 단체성의 개념과 구분되는 동시에 연결된다. 친교comunione와 관련해서, ‘공동합의성’sinodalità은 친교를 살아가는 구체적인 방법을 명료히 하는데, 역사 안에서 선교의 사명을 받은 제자들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사랑의 친교 안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공동합의성은 또한 단체성collegialità과 관련해서도 특별한 무언가를 말해주는데, 이 단체성의 개념은 지역교회와 보편교회에 봉사하는 데에 있어 로마 주교와 맺는 교계적 친교 안에서 주교단 일원으로서 띠는 주교 직무의 의미와 수행을 구체적으로 표현한다.13) 국제신학위원회는 ‘공동합의적 역동성’dinamismo sinodale이 각 교구에서만이 아니라 교회 전체에서, 세례받은 ‘모든 이’tutti의 참여와 공동책임성이 ‘몇몇’alcuni이 지닌 단체적 권위의 특별한 수행 및 ‘한 사람’uno이 행하는 주재 역할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함축한다고 강조한다.

  교구에서의 공동합의성을 다루는 부분에서 문헌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교구 시노드와 교구 회의는 ‘통치 행위인 동시에 친교의 사건’이므로, 하느님 백성의 교회적 공동책임 의식을 새롭게 하고 심화하며, “‘모든 사람’, ‘몇몇 사람’, ‘한 사람’의 논리”에 따라 모든 구성원의 참여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도록 부름받는다. ‘모든 사람’tutti의 참여는 시노드 준비 과정에서 의견을 물음으로써 실행되어야 한다. 그 목적은 개별 교회 안에서 하느님 백성의 표현인 모든 목소리에 도달하는 것이다. 직무상으로, 선출에 의하여, 또는 주교의 임명으로 회의와 시노드에 참여하는 이들은 ‘교구 시노드’Sinodo diocesano 또는 교구 회의 거행의 임무를 맡은 ‘몇몇 사람’alcuni이다. 집합체로서의 시노드 참여자들은 개별 교회에 관한 유의미하면서도 균형 잡힌 표상을 제시해야 하며, 소명과 직무와 은사와 능력과 사회 계층과 지리적 연원의 다양성을 반영해야 한다. 개별 교회의 시노드를 소집하고 주재하는 사도들의 후계자이며 양떼의 목자인 주교는 그에게 고유한 권위, 곧 일치와 지도의 직무를 행사하도록 부름받는다.(SIN 79)

  공동합의적인 모든 구조와 과정에 남녀 평신도들이 참여하도록 부름받았다.14)

  공동합의적 여정: 회심의 길, 선교적 개혁의 길

  1965년 칼 라너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회의 공동합의적이며 단체적인 원리를 보여주었다고 주장했다.15)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우리는 공의회 수용 그리고 교회 개혁의 새로운 단계에 들어갔다. 교황에 따르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현대 문화에 비추어 복음을 새로이 읽게 했고 되돌릴 수 없는 쇄신의 과정을 시작했다. 회칙 『찬미받으소서』(LS)에서 교황 프란치스코는 『복음의 기쁨』(EG)에 관해 ‘교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지속적인 선교 쇄신을 촉구하고자’ 썼다고 말했다.(LS 3) 개혁은 하느님 백성 전체의 그리고 하느님 백성을 이루는 모두의 공동합의적이고 선교적인 회심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라틴아메리카 변두리로부터 촉진된 사목적 회심의 공동합의적 역동은 선교적 개혁에 기여했다.16) 이 지역교회는 1968년 바오로 6세가 시작한 메델린 주교회의부터 푸에블라 회의(1979)와 산토도밍고 회의(1992)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지역화한 방식으로 수용했다. 50년 전 메델린 주교회의는 이 교회의 라틴아메리카적 얼굴, 복음의 예언자적 차원, 가난한 이를 위한 과제, 파스카 신앙의 기쁨을 보여주었다. 2007년, 아파라시다에서 개최된 제5차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주교회의에서 베르골료 추기경은 문헌 편집 위원회를 주재하였고 단체적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최초의 남반구 출신 교황인 그는 자신의 공동합의적 체험을 온 세상 안에서 걸어가는 교회와 공유한다.17) “많은 개혁은 변두리로부터 온다.”18)고 했던 1950년 이브 콩가르의 말을 확인한 셈이다.

  교회의 개혁에는 모든 사람이 한 명 한 명 관여할 수 있는 ‘공동합의적 실천의 쇄신을 증진하기 위한 전진’이 요청된다. 단순한 제도 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신학위원회는 개인적 차원에서든 사목적 차원에서든, 시대의 징표에 응답하면서, 복음의 기쁨을 전해야 한다는 요청들을 더욱 존중하는 공동합의적 실천들과 삶의 형태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무엇보다 회심의 과정에 들어가고, 그리스도의 영의 선물에 유연해지는 것에 대해 말한다. 바오로 6세는 대화하는 교회를 장려했고,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가 친교의 집이자 학교가 되도록 요청했다. 오늘날 교황 프란치스코는 ‘식별과 정화와 개혁’discernimento, purificazione e riforma의 ‘과정으로 들어서기를 권고’entrare in processi 한다.(EG 30) 모든 교회적 공동체와 기구들은 이 공동합의적 개혁의 길을 발전시키도록 초대된다.19)

  공동합의성의 신학과 신비주의와 실천에서 핵심은 경청하고, 대화하며, 공동 식별하는 태도와 과정에 있다. 문헌 4장의 핵심 부분 제목은 ‘공동 식별을 위한 경청과 대화’L’ascolto il dialogo per il discernimento comunitrio이다. 이 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식별은 공동합의의 과정과 그 사건의 핵심이다. 교회의 공동합의적 삶에서는 항상 그러하였다. 친교의 교회론과 거기에서 나오는 고유한 영성과 실천은, 사명 안에 하느님 백성 전체를 참여시키면서 ‘오늘날 과거의 어떤 때보다도 … 개인 식별뿐 아니라 공동 식별의 원리와 방법들을 교육하는 것을 필요하게’ 한다. 교회는 성령의 인도 아래 시대의 표징들을 신학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종말론적으로 실현되었고 역사의 모든 때kairos에 실현되고자 하는 하느님의 계획에 봉사하기 위하여 따라야 할 길을 찾아내고 걸어가야 한다. 공동 식별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께서 특정한 역사적 상황 안에서 들려주시는 부르심을 발견하게 한다.(SIN 113)

  공동합의성에 대한 교회일치적 성찰과 사회적 성찰

  공동합의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고 가시적인 일치에 도달하기 위한 교회들 및 교회적 공동체들과의 교회일치적 여정도 밝혀준다. 국제신학위원회는 키에티 문헌Documento di Chieti(2016)을 언급한다. 이 문헌은 가톨릭교회가 동방교회들의 공동합의적 체험으로부터 배울 것이 있음을 강조한 교황의 가르침(EG 246 참조)과 노선을 같이하며, 가톨릭교회와 정교회가 신학적 대화를 위한 국제위원회를 구성하여 작업한 노력의 결과이다. 국제신학위원회는 세계교회협의회 문헌 「교회, 공통의 비전을 향하여」The Church. Towards a Common Vision(2013)도 인용한다.20)

  또한, 공동합의성은 우리 시대 글로벌 사회의 맥락에서 수행해야 할 교회적 증거도 밝혀준다. 인류 가족이 대면해야 하는 치명적 도전들은 만남의 문화를 요청하고 더욱이 대화, 봉사, 협력의 태도를 양성할 것을 요구한다. 오늘날 국가적 또는 국제적 공동선에 투신할 관심과 확신이 부족한 현실 앞에서 공동책임적이며 연대적인 참여를 다시 만들기 위한 과정과 공간을 확대해야 한다. 교회는 복음화적 개혁의 길을 걸음으로써 공동합의성의 ‘사회적 봉사’diaconia sociale를 이끌어내고 정의, 평화, 공통의 집에 대한 보살핌을 증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더욱 공동합의적인 신학을 위하여

  회심은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야 하고 교회는 항상 모범과 증거의 논리를 따라야 한다. 문헌은 신학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의 공동합의성도 다룬다. 공동합의적 삶에는 하느님 말씀과 신학적 대화, 그리고 새 복음화에 봉사하기 위하여 신앙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는 도전이 포함되어 있다. 1967년 주교대의원회의의 제안을 발전시켜 1969년 바오로 6세가 설립한 국제신학위원회가 걸어온 지난 반세기가 이를 증언한다.

  이 문헌은 신학위원회에서 이전에 낸 문헌을 인용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명들이 그렇듯이 신학자의 직무도 개인적인 동시에 공동체적이고 단체적이다.”21) 그리고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그러므로 교회의 공동합의성은 신학자들이 서로 경청하고 대화하고 식별하고 많고도 다양한 요구와 기여들을 통합하는 능력을 촉진하며 공동합의적인 형태로 신학을 하도록 요구한다.”(SIN 75) 성령께서 우리를 움직이시어 공동합의성의 신학을 생각하게 하시고, 공동합의적으로 신학을 할 새로운 길을 상상하게 하신다.

  공동합의적 대화를 언급하면서 문헌은 우리 모두가 취하도록 초대받은 태도를 명시한다.

  공동합의적 대화는 말할 때나 들을 때에나 용기를 내포한다. 이는 말하는 사람이 다른 이들을 이기려고 하거나 무딘 논거들로 그들의 주장을 물리치려 하는 토론에 가담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 안에서 성령께서 공동체 식별에 유용한 것으로 알려주신다고 느껴지는 바를 표현하는 것이며,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견해 중에서 같은 성령께서 ‘공동선을 위하여’(1코린 12,7 참조) 드러내 보여주신 것을 수용하도록 열려있는 것이다.(SIN 111)

  문헌은 ‘일치가 갈등보다 우월하다’는 원리가 대화를 실행하고 의견과 체험의 다양성을 다룰 때 유효하다고 하면서 공동합의적 대화에서 취할 이 태도를 강조한다. 사실 대화는 항상 새로운 전망과 새로운 관점을 얻을 기회를 제공한다. 베네딕토 16세가 강조하듯이, “대화dialogos를 창조하고 그럼으로써 소통과 친교를 창조하는 것은 말logos이다.”(SIN 111)

  교황령 「주교들의 친교」

  공동합의적 교회의 모습은 경청, 자문, 대화, 식별, 환대, 교환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 백성 구성원 모두의 참여를 쇄신하도록 이끈다. 공동합의성은 모든 신자들, 주교들, 로마 주교가 받은 은혜들을 조화롭게 연결하는 새로운 방법의 근간이다.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공동합의적 구조, 과정, 절차의 쇄신을 요청한다. 특별히 ‘주교대의원회의’라는 단체적 기구가 더욱 공동합의적이고 선교적인 교회를 표현하고 또 그런 교회에 활기를 넣을 수 있도록 이 기구에 관한 교리, 규범, 실천을 쇄신하는 일이 필요하다.22)

  이와 노선을 같이하여 2018년 9월 18일 교황 프란치스코는 주교대의원회의에 관한 교황령 「주교들의 친교」를 발표했다. 이 교황령으로써 ‘구성적으로 공동합의적인 교회’Chiesa costitutivamente sinodale가 걷는 여정의 모든 단계가 규범이 된다. 이 교회의 여정은 ‘하느님 백성의 소리를 들음으로써 시작하고’inizia ascoltando il Popolo di Dio, ‘목자의 소리를 들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며’prosegue ascoltando i pastori, ‘모든 그리스도인의 목자요 박사’Pastore e Dottore di tutti i cristiani로 불리도록 초대된 로마 주교의 소리를 들음에서 절정에 도달한다.

  2014년과 2015년 가족을 주제로 한 주교대의원회의의 경험이 결정적이었다. 이 시노드에서 발전한 공동합의적 실천이 이제 안정적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특히 공동합의적 과정의 각 단계를 규정하는 원리들이 정착되었는데, 바로 하느님의 백성, 주교단, 로마 주교, 서로 경청하는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성령에 귀 기울이는 모든 이들’e tutti in ascolto dello Spirito Santo이다. 그리고 경청, 결정, 실행이라는 세 단계의 전개 방식을 따름으로써, 시노드는 교구 신자들에게까지 확대하여 얻은 자문의 참된 결과가 될 것이 틀림없으며 실행 단계에서의 동반도 미리 기획하게 될 것이다.

  교황령 「주교들의 친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23) “주교 시노드는 하느님 백성의 소리를 듣는 점점 더 탁월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구성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주교적 기관의 모습을 보이겠지만’, ‘나머지 신자들과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고, “반대로 하느님 백성 전체가 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데 적합한 도구이다.” 이 때문에 시노드 준비에서 “모든 교구들의 자문이 특별한 주목을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문 단계에서 주교들은 사제들, 부제들, 그리고 교구의 평신도들에게 시노드에서 다룰 문제들을 제출해야 한다. ‘교회교구의 참여조직들, 특히 사제단, 사목평의회의 기여’가 매우 중요한데, “그러한 기구들로부터 공동합의적 교회의 형태가 갖추어지기 시작할 수 있다.”

  신자들의 이러한 자문에 이어, 시노드 거행 동안 ‘목자들의 식별’discernimento da parte dei pastori이 따르는데, 이들은 ‘인간적 논리로부터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에 대한 공동 순종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동의를 추구하면서’ 일치를 이룬다. 이들은 “하느님 백성의 신앙 감각에 주목하는데 이들은 여론의 종종 변화무쌍한 흐름들로부터 신앙 감각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교회 안에 ‘하느님에 의해 당신 양떼의 목자로 세워진 서품된 직무자들 각각이 세례 받은 이들 가운데에 한 사람이기 때문에, 목자들과 신자들 사이에든’, 주교들과 교황 사이에든 ‘하나의 심오한 친교가 있다’는 것이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교황은 “주교들 가운데 주교이며, 동시에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로마 교회를 인도하도록 부름받은 사람이고 모든 교회들을 사랑 안에서 주재한다.”

  교황령에서는 공의회에 비해 어떤 진보가 이루어졌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사실 교회 안에서 주체들과 그들의 고유한 기능을 회복했다면 교황령은 그 지침들을 교회적 실천 안에서 적용하고 해석해 낸다.

  또 다른 중요한 새로운 점은, 회합이 최종 문헌을 승인한 후 (자문적 성격을 갖는 회합의 통상적 방식으로) 그것을 승인할지, 아니면 (결정권이 있는 특별한 회합인 경우) 인준하고 반포할지를 교황이 결정할 수 있다. 두 경우 모두 최종 문헌은 베드로의 후계자가 지니는 교도권에 속하게 된다. 즉 특별한 교도적 권위를 획득하게 된다. 결정권을 가진 시노드인 경우에 교황이 인준한 문헌이 보편공의회와 유비적으로 시노드에 참여한 모든 교부들의 서명과 함께 출판된다는 점이 의미 있다.

  교황령을 발표할 때 로렌초 발디세리 추기경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미 2013년, 교황 프란치스코는 성좌에 선출되고 몇 달 뒤 진행된 이탈리아 『치빌타 카롤리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아마도 시노드 방법론을 바꿀 때인 것 같습니다. 현재 시노드는 정적으로 보입니다.”24) 새 교황령의 목적 중 하나는 시노드를 보다 ‘역동적’dinamico 으로 만들어 이 때문에 교회의 삶에서 더욱 적합한 것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촉진한 제도적 개혁은 주교 시노드를 더욱 공동합의적 교회 안에 자리 잡게 한다.


* La Civiltà Cattolica, 4039 IV (6/20 ottobre 2018), 55-70.
** Antonio Spadaro S.J. – Carlos Galli
성경·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 참조: Arij Roest Crollius, “What is so new about inculturation? A concept and its implications”, Gregorianum, 59 (1978), 721-738.
2) Commissione teologica internazionale, La sinodalità nella vita e nella missione della Chiesa, (2 marzo 2018), http://www.vatican.va/roman_curia/congregations/cfaith/cti_documents/rc_cti_20180302_sinodalita_it.html
3) Francesco, Commemorazione del 50° anniversario dell’istituzione del Sinodo dei Vescovi, (17 ottobre 2015), no 9.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it/speeches/2015/october/documents/papa-francesco_20151017_50-anniversario-sinodo.html
4) 참조: Lorenzo Baldisseri, ed., Il Sinodo dei Vescovi al servizio di una Chiesa sinodale. A cinquant’anni dall’“Apostolica Sollicitudo”, (Città del Vaticano: Libr. Ed. Vaticana, 2016).
5)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길’il cammino di Dio (참조: 루카 20,21)을 알리시고 그 방향을 따라가시며(루카 9,51-19,28)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시는(참조: 루카 4,14-15; 8,1; 9,57; 13,22; 19,11) 순례자이시다. 그분 자신이 아버지께로 가는 ‘그 길’la via (참조: 요한 14,6)로서 성령 안에서(참조: 요한 16,13) 사람들에게 진리, 그리고 하느님과 또한 형제들과의 친교라는 생명을 전해 주신다. 예수님의 새 계명의 기준에 따라 친교를 산다는 것은 역사 안에서 새 계약의 하느님 백성으로서 자신이 받은 선물에 합당하게 걸어감을 뜻한다.(참조: 요한 15,12-15) 당신 말씀으로 비추시고 생명의 빵으로 길러주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인도로 길을 걸어가는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살아있는 표상을, 루카 복음서 저자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이야기에서 그려 보인다.(참조: 루카 24,13-35)”(SIN 16)
6) 이러한 문제는 전통적으로 ‘예루살렘 사도 공의회’Concilio apostolico di Gerusalemme ammino 라고 불러온 회의에서 다루어진다.(참조: 사도 15장; 또한, 갈라 2,1-10) 여기에서 사도 교회가 여정의 결정적 순간에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에 비추어 사명의 관점에서 자신의 소명을 사는 공동합의의 사건이 이루어짐을 알아볼 수 있다. 이 사건은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교회 안에서 거행된 시노드들의 원형적 모습으로 해석될 것이다.(SIN 20)
7)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렇게 가르친다. 함께 걸어감은 교회의 ‘구성적 방식’la via costitutiva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눈과 마음으로 실재를 해석하게 해주는 ‘암호’la cifra입니다. 주님이신 예수님을 따르고 상처입은 이 시대에 생명의 종이 되기 위한 ‘조건’la condizione입니다. 공동합의적인 호흡과 발걸음은 우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우리의 결정들을 고무하는 친교의 역동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지평 안에서만 우리는 참으로 우리의 사목을 혁신할 수 있고 그것을 오늘의 세계 안에서 교회의 사명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우리는 지금까지 해온 과정에 대해 감사하고, ‘담대’parresia하게 이 과정을 계속하겠다고 결심하며 이 시대의 복잡함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SIN 120)
8) 참조: Alphonse Borras, “Trois expressions de la synodalité depuis Vatican II”, Ephemerides Theologicae Lovanienses, 90 (2014), 643-666.
9) “공동합의성은 교회 전체와 교회 안의 모든 이들이 주체임을 표현한다. 신앙인들은 σύνoδοι 곧 여정의 동반자들이며,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에 참여하는 이들로서 그리고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께서 베푸시는 다양한 은사를 받는 이들로서 능동적 주체들이 되도록 부름받고 있다. 공동합의적인 삶은 자유롭고 다양하면서도 친교로 결합된 주체들로 구성된 하나의 교회를 증언한다. 이 교회는 공동체적인 단일 주체로서 역동적인 형태로 나타나며, 모퉁잇돌이신 그리스도와 기둥인 사도들을 기초로 하고 수없이 많은 살아있는 돌이 모여 하나의 ‘영적 집’(1베드 2,5), ‘하느님 영의 거처’(에페 2,22)를 이룬다.”(SIN 55)
10) 참조: Ghislain Lafont, Petit essai sur le temps du pape François, (Paris: Cerf, 2017), 26; 131-197; 218-233; 251-260.
11) 참조: Commissione teologica internazionale, Il “Sensus fidei” nella vita della Chiesa, (2014), http://www.vatican.va/roman_curia/congregations/cfaith/cti_documents/rc_cti_20140610_sensus-fidei_it.html 편집자 주: 우리말 번역은 다음을 참조할 것.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교회 생활에서의 신앙 감각』, 송용민 옮김,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6).
12) “교회의 공동합의적 차원은 모든 교회적 결정들을 감도하는 친교의 역동을 드러낼 수 있는 참여와 식별 절차들의 실천과 통치로 드러나야 한다. 공동합의적 삶은, 여러 단계(준비, 거행, 수용)를 통하여 교회가 자신의 구성적 요소인 공동합의성을 실현하는 다양한 차원들에 따라 소집되는 공동합의적 사건들에 이르는 제도적 구조들과 절차들로 표현된다.”(SIN 76)
13) 참조: Dario Vitali, Verso la sinodalità, [Magnago (Bi): Qiqajon, 2014]; Un Popolo in cammino verso Dio, [Cinisello Balsamo (Mi): San Paolo, 2018].
14) “이러한 전망 안에서, 평신도 신자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그들은 하느님 백성의 절대 다수이다. 교회 공동체의 삶과 사명, 대중 신심, 그리고 사목 전반의 다양한 표현에 대한 그들의 참여와, 문화와 사회생활의 다양한 영역 안에서 발휘되는 그들의 고유한 능력에서 배울 점이 많다.”(SIN 73)
15) 참조: Karl Rahner, Das Konzil. Ein neuer Beginn, (Freiburg i. : Br., Herder, 1965), 13; 6; 15; 20s.
16) 참조: Carlos M. Galli, “Synodalität in der Kirche Lateinamerikas”, Theologische Quartalschrift, 196 (2016), 75-99.
17) 참조: Diego Fares, “A 10 anni da Aparecida. Alle fonti del pontificato di Francesco”, Civiltà Cattolica, 4006, (2017, II) 338-352.
18) 참조: Yves Congar, Vraie et fausse réforme dans l’Église, (Paris: Cerf, 1950), 277.
19) “‘교회의 모든 쇄신은 본질적으로 교회 소명에 대한 충실성의 증대에 있다.’(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일치의 재건」, 6) 교회는 자신의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끊임없는 회심으로 부름받으며, 그 회심은 또한 늘 자신의 소명에 더욱 충실하기 위한 사고방식과 태도와 관습과 구조의 쇄신을 포함하는 ‘사목적이고 선교적인 쇄신’la conversione spirituale e pastorale이기도 하다. (참조 EG 25-33; Aparecida 365-372) 공동합의적 의식에 의하여 형성된 교회적 사고방식은, ‘모든 세례 받은 이들이 제자이며 선교사로서의 자격과 부름을 받게 되는’ 은총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촉진한다. 그에 따르는 오늘날 교회 생활을 위한 사목적 회심의 도전은, 언제나 ‘평신도를 의사 결정에서 제외시키는 지나친 성직주의’(EG 102)의 유혹을 피하고 평신도를 성직자처럼 만들거나 성직자들을 세속화하지 않으면서 각자의 선물과 역할에서 출발하여 복음화를 위한 증언에서 모든 이들의 상호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다.”(SIN 104) 참조: Carlos M. Galli, “Una reforma de la Iglesia según el Papa Francisco”, in La reforma y las reformas en la Iglesia, eds., Antonio Spadaro – Carlos M. Galli, (Santander: Sal Terrae, 2016), 51-77; Carlos M. Galli, “Una Facultad más sinodal y una teología más profética. La Teología y la Facultad en una ‘Ecclesia semper reformanda’”, Teología, 123, (2017) 9-43; Id., La mariología del Papa Francisco. Cristo, María, la Iglesia y los pueblos, (Buenos Aires: Agape, 2018), 93-111.
20) “지난 몇 년 동안 교회일치 대화가 공동합의성을 교회의 본성을 계시하는 차원의 하나이며 다양한 표현을 지닌 교회 단일성의 구성적 요소임을 인정하는 데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기쁘게 기억해 두어야 한다. 이것은 각 지역 교회 안에서 그리고 지역 교회와 다른 교회들 사이에 고유한 공동합의적 구조들과 과정들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관계들 안에서 실현되는 ‘친교’koinonia로서의 교회라는 개념에 대한 의견 일치이다.”(SIN 116)
21) Commissione teologica internazionale, La teologia oggi: prospettive, princìpi e criteri, (8 marzo 2012). http://www.vatican.va/roman_curia/congregations/cfaith/cti_documents/rc_cti_doc_20111129_teologia-oggi_it.html 편집자 주: 우리말 번역은 다음을 참조할 것. http://www.cbck.or.kr/book/book_search.asp?p_code=k5110&seq=402010&page=1&Cat=A&key=Title&kword=%BF%C0%B4%C3%C0%C7 또는 http://www.vatican.va/roman_curia/congregations/cfaith/cti_documents/rc_cti_doc_20111129_teologia-oggi_ko.html
22) 참조: Lorenzo Baldisseri. ed., Il Sinodo dei Vescovi al servizio di una Chiesa sinodale. A cinquant’anni dall’Apostolica Sollicitudo, (Città del Vaticano: Libr. Ed. Vaticana, 2016).
23) 편집자 주: 교황령Costituzione Apostolica「주교들의 친교」Episcopalis communio에 관한 우리말 번역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홈페이지를 참고. http://www.cbck.or.kr/bbs/bbs_read.asp?board_id=k1200&bid=13013832 (접속일: 2019.3.31).
24) Antonio Spadaro, “Intervista a papa Francesco”, Civiltà Cattolica, 3918, (2013, III), 449-4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