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참여하는 교회

‘젊은이, 신앙, 성소 식별’에 관한 주교 시노드

Una chiesa che “frequenta il futuro”
Il Sinodo dei Vescovi su giovani, fede e discernimento vocazionale
*

안토니오 스파다로 S.J.**
이진현 라파엘 S.J. 옮김

  비 내리던 크라코프에서

  2016년 7월 30일 세계청년대회가 열린 폴란드 크라코프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교종 프란치스코는 해외 방문마다 종종 하던 대로 대주교 관저에서 28명의 예수회원들을 만났다. 교종은 만남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오늘날 교회는 영적 식별력을 키워야 합니다.”1) 두 달 뒤인 2016년 10월 6일, 교종은 2018년 10월 3일부터 28일까지 로마에서 ‘젊은이, 신앙과 성소 식별’I giovani, la fede e il discernimento vocazionale을 주제로 제15차 주교대의원총회를 연다고 공표했다.

  주목할 부분은 시노드 논의의 기초를 이루는 ‘의안집’Instrumentum Laboris 서두부터 식별이 언급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식별을 통해 삶의 길과 방식과 근본 태도 그리고 활동 방법도 인식한다. 이는 함께 걸어가는 길이며, 그 길을 통해 우리는 제자의 눈으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와 문화의 역동성을 바라본다. … 식별은 … 선교를 위해 기존의 것이 아니라 성령을 따르도록 해 주는 우리 여정의 결실인 지침과 제안을 제공할 수 있다.”2) 프란치스코 교종은 청년과 식별이라는 두 주제를 언제나 붙여서 생각한다. 둘은 서로 깨우침을 돕는 관계이다. 이 점을 알아두면 주교대의원회의 주제 선정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젊은이들은 누구인가?

  프란치스코 교종은 대담집 『God is Young: 이 시대 청년들에게 전하는 희망 메시지』3)에서 다음을 분명히 말한다. “젊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젊음을 말할 때, 우리는 종종 무의식적으로 젊음에 대한 신화를 언급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젊음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 대신 청년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길 좋아합니다.”4) 젊은이들은 별도의 ‘계층’casta으로 분류될 수 없다.

  물론 우리는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말했던 바와 같이 청년기를 “방종한 열정, 불가피한 실패, 극복할 수 없는 위기들, 퇴폐적인 비관주의, 해로운 이기주의 등의 시기로 여겨서는 안 된다. 젊다는 것은 은총이고 큰 자산이다.”5)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선사된 은총이자 자산이다. 우리는 모두 지금 젊거나 과거에 젊었었다. 따라서 청년들에 관해 말하는 것은 사람됨에 관해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무엇보다도 교회는 청년들에게서 삶에 열린 이들의 행복과 충만의 본능을 본다. 폐막미사 마지막에 읽은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서한’에도 나오듯이 시노드 교부들은 젊은이들의 불안을 인식하지만, 또 한편으로 세상과 교회에는 ‘청년의 열정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바오로 6세 성인은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을 괴롭히는 불만과 사회에 대한 여러분의 비판에서 … 한 줄기 빛이 비치고 있습니다.”6) 교회는 이러한 직관과 그에 따른 모든 반향이 있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시노드 개최를 알리며 청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교회는 여러분의 목소리, 여러분의 감수성, 여러분의 신앙은 물론, 여러분의 의심과 여러분의 비판까지 듣고자 합니다.”7) 그리고 청년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언약에 관해 이야기함을 뜻한다. 청년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예언자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다. 시노드는 이 예언을 모으고 해석하기 위해 소집되었다.

  시노드 준비 과정

  시노드 주제 선택에서부터 교회는 복잡하고도 풍요로운 과정을 추진하고 시도했다. 첫 단계로 2017년 1월 13일에 ‘예비 문서’Documento preparatorio가 발표되었다. 이 문서에는 각국 주교회의, 동방 가톨릭 교회들의 시노드, 기타 교회 단체들에 보내는 중요한 질문지 외에도 새로운 사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젊은이들의 기대와 현실의 삶에 관한 구체적인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다.

  2017년 4월 5일부터 9일까지 열린 국제회의에서는 전 세계 청년 사목 책임자들이 참석하여 시노드 절차를 제시하였다.

  2017년 9월 11일부터 15일까지는 청년들의 현황에 관한 국제 세미나가 열려 여러 전문가와 많은 청년들이 참석하였다. 뒤이어 교종은 2017년 10월 4일 일반알현 교리교육 때 시노드 사전회의에 관해 발표했다. “주교 시노드 사무국이 2018년 3월 19일부터 24일까지 주교 시노드 사전회의를 소집합니다. 여기에 세계 여러 지역의 청년들, 가톨릭 청년, 타 종파의 청년, 다른 종교를 믿거나 신앙이 없는 청년들을 초대합니다.” 오대양 육대주를 대표하는 315명의 남녀 청년이 이 회의에 참석했다. 전 세계 젊은이들을 가능한 한 많이 참여시키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사전회의에 직접 참석하지 못한 청년들은 SNS를 사용하여 로마에 모인 이들과 합류했다. 모두가 공동의 이야기에 동참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도록 초대받았다.

  이 모임은 2017년 4월 8일, 제32차 청소년 주일 전야기도에서 교종이 표명한 바람에 대한 응답이었다. 이때 프란치스코 교종은 ‘교회는 시노드에서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고 단언했다.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원하며, 무엇을 비판하고, 무엇을 뉘우치는지 듣고 싶습니다.” 뒤이어 사목자들과 교회 단체들의 의견과 온라인 설문 응답을 종합한 결과물인 시노드 사전회의의 결과를 모은 의안집이 나왔다.

  여전히 시노드를 준비하고 있던 2018년 여름에는 이탈리아 전역의 200여개 교구에서 모인 젊은이들 7만여 명이 도보 순례를 시작하여 자기 고장의 옛 순례길을 재발견하고 마침내 8월 11일 토요일과 12일 일요일에 로마로 모여들었다. 교종은 이들을 치르코 마시모 경기장 터에서 만났고, 다시 성베드로 광장에서 만나 이들에게 선교 임무를 부여했으며 이탈리아 젊은이들이 2019년 1월 파나마 세계청년대회에 가져갈 선물인 산다미아노 십자가와 로레토 성모상을 축복했다. 또한 세계 곳곳에서 시노드 주제와 관련해 여러 행사가 진행되었다.

  젊은이들의 참석

  마침내 267명의 교부들이 시노드 참석을 위해 로마에 모였다. 더구나 교황청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에 잠정합의문이 체결된 뒤 처음으로 본토에서 주교 두 명이 2주 동안 참석했다. 허베이성 청더 교구 궈진차이 주교와 산시성 얀안 교구 양사오팅 주교였다. 이들이 온 것은 역사적 참가였으며, 되찾은 교회 일치의 기쁨이라는 열매를 주교들의 회합에 가져다주었다.

  18세부터 29세까지 36명의 젊은이들이 참관인으로 시노드에 동참했다. 2017년 1월에 시작된 준비 작업들을 포함해 전체 시노드 과정에서 한 가지가 분명히 드러났다. 교회와 청년들을 ‘분리해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청년들을 마치 마케팅 ‘대상’oggetto으로 여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청년 없이 청년 시노드를 조직했다면 아무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시노드 개막 연설에서 곧바로 교종은 ‘벌써부터 긍정과 열정을 발산하는 그들 현존의 힘을 느낀다.’고 밝혔다. 교종은 ‘스스로 교회의 일원이라고 느끼거나 교회와 대화하는 데 수고를 들일만한 가치가 있다고 희망을 걸어준’ 젊은이들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부단히 움직이고 경청하는 ‘공감하는 교회’

  시노드 교부들의 대화는 교회 안팎에서 길들여지지 않는 젊은이들의 ‘부단한 움직임’inquietudini에서 자양분을 얻었고, 여기서 모두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부단한 움직임’8)이라는 말은 ‘최종 보고서’Documento finale(DF)에서 여덟 번에 걸쳐 다양한 문맥에서 거듭 울려 퍼진다. 이 말은 비슷한 의미로 쓰인 다른 표현들과 함께 전체 문서의 핵심 단어들 중 하나이다.

  한 가지 방법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해석하고 선택하기에 앞서 경청해야 하고, 현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여러 대륙에서 온 시노드 참가자들은 그들 눈앞에 있는 현실에 대해 논의했다. 경험과 직면은 동요를 일으킨다. 이는 기본적으로 교회 고유의 강점이다. 그 목소리는 참으로 보편적이다. 그리고 드물다기보다 독특한 경우인데,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도전을 통해 차이점뿐만 아니라 공동의 원의를 발견하게 된다.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마저도 다른 그 모든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다섯 대륙에서 온 젊은이들과 사목자들은 손을 맞잡고 교회와 세계 전체를 함께 가로질렀다. 이들은 현재와 미래 세계의 거대한 도전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시노드 최종 보고서는 현실에 귀 기울이는 이러한 경청을 완수한 여정의 표현으로, 젊은이들을 일깨우는 ‘도전의 열망’desiderio di confronto을 불러일으킨다(DF 39 참조).9)

  성찰을 동반했던 성화는 엠마우스로 가는 길의 제자들을 묘사한 그림이었다(DF 4 참조). 세상의 거리에서 청년들과 함께 걷지 않는다면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시노드는 엉뚱한 곳으로 향하던, 즉 예루살렘과 반대 방향인 엠마우스로 향하던 낙담한 제자들과 함께 걷는 여정까지도 예수님이 기꺼이 받아들이셨다는 점을 우리에게 강조한다. 그런데 그 여정에서 비로소 그분은 그들의 눈이 열리고 그들의 마음이 타오르게 하실 수 있었다.

  시노드 회의장에 모인 교회 사목자들은 젊은이들과 함께 길을 걷지 않으면 교회가 지키고 있는 복음의 메시지를 전할 수 없다는 점과, 또한 하느님 백성들 가운데 청년들이 앞장설 수 있음을 깨달았다. 복음 선포에는 부단한 인간학적, 신학적, 사목적 정교함이 필요하다(DF 150 참조). 성령의 도움을 받아 계시를 이해할 때도(「계시헌장」 8항 참조) 청년들 덕분에 발전한다. 요한은 첫 서한을 청년들을 향해 썼다. 그들이 ‘강하고 하느님 말씀이 [그들] 안에 머무르기 때문’이었다.(1요한 2,14) 청년들은 노인들과 진리의 충만함을 향해 함께 걷는다.

  최종 보고서의 8항을 읽어보자.

  이따금 청년들에게서 참신한 질문들이 떠오를 여지를 주지 않고, 그 질문들의 도발적인 도전에 응 답할 여지도 주지 않은 채, 기존에 만들어진 답과 미리 준비된 처방을 주려는 경향이 우세하다. 경청은 공감의 맥락에서 서로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게 한다. 그럼으로써 젊은이들이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고 공동체는 새로운 감각을 파악하여 날것의 질문을 할 수 있게 된다. 동시에 진정으로 마음에 와 닿는 복음 선포의 조건을 예리하고도 풍성한 방식으로 마련해준다.

  이는 최종 보고서의 핵심 구절이며 ‘모든 대답이 준비되어 있다.’risposte pronte고 착각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구절(DF 30), 상황, 문화, 청년 세계의 차이를 인정하자는 구절(DF 10), 성령의 징표를 인지하면서 질문들을 잘 받아들이고 읽어내자고 말하는 구절(예를 들어 DF 50; 59; 62; 64; 66; 70; 78; 97 참조) 등 다른 많은 항목들과 연결되어 있다. 세속적인 우리 사회에서 ‘하느님과 영성을 재발견’riscoperta di Dio e della spiritualità하는 일도 부정할 수 없다(DF 14). 이것은 ‘사제 사목이 통상적으로 취하는 형태들을 쇄신하고 사목의 우선순위를 재고’하는 데(DF 9)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또한 교육과 청소년 사목에 대한 헌신, 신학생 양성뿐만 아니라 본당의 ‘선교 소명’vocazione missionaria과 그리스도교 입교 과정을 숙고하는 데까지 이어진다(DF 15-20 참조).

  최종 보고서는 세 가지 ‘핵심 연결점’snodi cruciali을 분명히 밝혔다(DF 21-31). (1) 디지털 환경: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가져다주며 새로이 퍼지고 있다. (2) 이주: 우리 시대 청년들이 처한 상황의 패러다임으로도 읽힌다. (3) 학대의 비극: 경제 · 지각(知覺) · 성 권력의 남용에서 비롯한다.

  보고서는 가족, 세대 간 관계, 우정, 신체와 정서에 관한 문제, 성 정체성 문제 등을 고려한 ‘정체성과 관계’identità e relazioni에 관한 고찰도 담았다(DF 32-44 참조). 또한 오늘날 청년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고찰을 포함하여, 사회 참여, 미술, 음악, 스포츠,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는 종교적 탐구와 영성 등을 숙고하고, 리더가 되고픈 욕구의 의미를 심화시켰다(DF 45-57 참조). 보고서에 의하면 “청년들은 일반적으로 다양성을 향해 자발적으로 마음을 열며, 다양한 문화와 종교 간 평화와 포용 및 대화에 관심을 둔다. 세계 곳곳에서의 수많은 체험은 평화로운 공존의 시각에서 청년들이 문화와 종교 간 만남과 대화의 개척자가 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증언한다.”(DF 45)

  그러나 시노드는 또한 ‘상당수 젊은이가 다양한 이유로 교회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음’을 인지한다. “왜냐하면 청년들은 자신들의 실존에 교회가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교회라는 존재가 성가시고 심지어 짜증스럽게 느껴진다며 자신들을 혼자 편안히 있게 놔두라고 분명히 요구한다.” 시노드는 또한 이러한 요구가 종종 ‘무비판적이고 충동적인 경멸에서가 아니라 진지하고 납득할만한 이유들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인정한다. 이를테면, “성적 · 경제적 추문, 그리고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적합하게 포착할 줄 모르는 서품 사목자들의 자질 부족, 강론을 준비하고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일에 들이는 정성 부족, 교회 공동체 안에서 청년들에게 주어지는 수동적인 역할, 교회가 현대사회에 대한 교리적이고 윤리적인 입장을 설명하기를 어려워함 등이 있다.”(DF 53)

  시노드 과정은 이렇게 분석가의 차가움이 아니라 제자의 따뜻한 시선과 안주하지 않는 마음으로 청년들의 메시지와 요구들을 포착한 거대한 안테나와 같았다.

  어느 주교가 말했듯이 시노드 회의장에 ‘공감하는 교회’Chiesa empatica가 나타났다. 그리고 이것은 최종 보고서에 반영되었다. 교회는 모든 질문을 받아들이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복음에 비추어 개개인의 탐구가 정당하게 권장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사목자들은 항상 ‘미리 준비된 사전 포장형 대답’una risposta preconfezionata già pronta을 제공하는 기관으로가 아니라, 교종도 시노드 기간에 트위터에서 거듭 강조한 것처럼, 질문을 던지고 마음을 불태우는 말씀으로 젊은이들과 함께 복음을 선포하기를 원한다.

  노인은 꿈을 꾸고 청년은 미래를 본다

  이제 최종 보고서 32-36항에서 언급된 주제를 강조하고자 한다. 어른들이 자기 자녀와도 같은 젊은이들과 경쟁하는 세상에서 시노드는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충만함을 찾는 인류, 여전히 겸손하게 미래의 약속에 희망을 두는 인류에 관해 이야기했다. 교회는 카누라고, 시노드 참관인 중 사모아제도에서 온 젊은이가 말했다. 이 배에서 노인들은 별들의 위치를 파악하여 방향을 잡도록 도와주고, 젊은이들은 노인들과 대화하며 힘껏 노를 젓는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에게 젊은이는 예언자이다. 그러나 젊은이도 자기보다 앞서 인생 여정을 걸은 이들의 꿈을 들어야 진정으로 예언할 수 있다.

  이번 시노드가 진행되던 중에 『세월의 지혜』La saggezza del tempo라는 책10)을 소개하는 행사가 있었던 점도 주목할만하다. 이때 교종도 참석하여 세대 간 관계라는 주제에 관해 노인과 청년의 질문을 경청했다.

  이미 프란치스코 교종은 시노드 개막 연설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세대 간 관계는 편견과 고정관념이 너무나 쉽게 뿌리를 내리는 영역이며, 우리는 종종 이에 대해 무감합니다. 청년들은 어른들을 고리타분하다고 여기고, 어른들은 청년들을 미숙하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어떠한지 어떻게 되어야 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태도는 세대 간 대화와 만남에 큰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프란치스코 교종은 사목자들이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범주와 사고 체계로 젊은이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위험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이렇게도 말했다.

  노인들은 신체적 약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우리 인류의 기억, 우리 사회의 뿌리, 우리 문명의 ‘맥박’polso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노인들을 경멸하거나, 내버리거나, 따로 떼어놓고 가두거나 냉대하는 것은 우리 가정을 안에서부터 삼켜버리는 세속적 사고에 굴복시키는 표시입니다. 지금의 세대가 물려받고 다음 세대로 전해야 할 보물 같은 경험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자기 파괴 행위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통찰은 요엘 예언서의 묵상에서 비롯된다. “너희 아들딸들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며 젊은이들은 환시를 보리라.”(요엘 3,1) 역사를 통한 인간 경험의 축적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물려주는 가장 소중하고 믿을만한 보물’이다. 세대 간 관계의 불화는 역사에 단절을 초래할 수 있다.

  동반하고 식별하기

  최종 보고서의 2부는 1부에서 경청하고 수집한 현실 읽기에 대한 성찰을 모은 내용으로 본회의 중에 나온 조정안들의 첫 부분과 언어권별 ‘소모임’circoli minori 작업을 차례로 고찰한다. 이 부분은 명확하게 젊은이들 가운데 활동하시는 성령의 징표를 식별하는 데 중점을 두며, 젊은이들을 “주님께서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당신의 기대와 도전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신학적 장소들’luoghi teologici 중 하나”로 규정한다(DF 64).

  이 성찰에서 청년기는 이 세상에 대한 ‘선교의 사명’essere una missione을 깨닫는 선택의 시기로 나타난다(DF 69 참조). 권위, 동반, 자유 등의 주제들은 ‘모든 진정한 삶의 선택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DF 73). 성소라는 주제도 강조되는데, 성소란 “인간에게 주어진 대로 낭독만 하면 되는 이미 쓰인 대본도 아니고, 지침이 없는 즉흥극도 아니다.” 또한 “우리의 선택은 당신 사랑의 계획이 역사 안에서 전개될 때 실질적으로 기여한다.”(DF 78) 그래서 성소를 여러 형태로 이해하여 혼인성사, 축성생활, 성품성사뿐만 아니라 오늘날 점점 더 늘어나는 ‘싱글’single의 삶까지 포함한다(DF 84-90 참조).

  교회는 ‘동반’accompagnare과 ‘식별’discernere이라는 주제에 각각 한 장씩 할애하여 자신의 사명을 재확인한다(DF 91-103, 104-113 참조). ‘동반이란 모든 자질과 능력을 포함해 자신의 처분을 주님의 성령과 함께 걷는 사람에게 전부 내어 맡긴 뒤, 겸손하게 옆으로 비켜 설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으로 이해한다(DF 101). 반면, 식별이란 ‘예수님 삶의 양식의 핵심 차원’으로 이해한다(DF 104). 식별을 다룬 장은 짧지만 조밀하고 명료하며 ‘식별’discernimento 이라는 용어가 어떻게 여러 가지로 사용되는지를 살핀다.

  특히 시노드는 ‘주 예수님과의 인격적 관계 안에서, 또한 그 관계에 비추어, 실천이성을 올바로 활용하여 책임감 있는 결정을 내릴 때, 또한 그 결정의 근거가 될 선익을 알기 위한 노력을 통해’(DF 109) 식별이 이루어진다고 인식했다. 이는 숙고하여 작성된 표현으로, 주님과의 관계와 선을 아는 능력에 비추어 각 개인의 자유를 강조한다. 이 정의는 모든 사람을 예외 없이 돕는 데 주의를 기울여 다양한 상황에 적용된다.

  이와 관련해 동성애자들의 경우는 매우 흥미롭다. 시노드는 동성애자들이 이미 많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살아가고 있고 신앙 안에서 동반의 길을 걷고 있음을 인정하며 “이 여정을 장려할 것을 권고한다.” 이 여정에서 “그들은 도움을 받아 자신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세례 때 받은 소명에 충실할 수 있으며, 공동체 생활에 참여하고 헌신하려는 원의를 확인하고, 이를 가능케 하는 제일 나은 방법을 식별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청년들은 “성적 지향성을 자신의 인격에 점점 더 통합시키고, 관계성 안에서 성장하며 온전한 자기 자신이라는 선물을 향해 나아가도록 도움을 받는다(DF 150).”

  교회에 관한 시노드

  최종 보고서 제3부는 교회의 선교 사명에 관해 말하며 도입부에서부터 시노드 중에 성숙한 열매를 보여준다. 청년들을 ‘위하여’per 무엇을 하는 것만이 아니라, 청년들과 ‘함께’con 살아가는 것이다. 청년들은 복음을 이해하고 살아가고 증거하기 위해 더 진실한 삶의 형태를 추구하며 함께 성장한다. “교회 삶에 관한 청년들의 책임 있는 참여는 선택이 아니라 세례받은 삶의 필수조건이자 모든 공동체 삶에 근본적인 요소이다.” 또한 “청년들의 비판도 우리에게 필요하다. 우리는 때때로 그들을 통해 마음의 회개와 구조의 쇄신을 요청하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기 때문이다(DF 116).”

  시노드는 또한 교회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교회 안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젊은이들만이 아니라, ‘삶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고 다른 신앙을 고백하거나 스스로 종교적 지평 밖에 있다고 선언하는 모든 청년’을 염두에 둔다(DF 117). 이것은 중요한 구절로 시노드 성찰의 두 번째 부분, 즉 ‘식별’discernimento에서 직접 비롯한다. 하느님이 세상 어디에서나 일하고 계시며 교회의 임무는 어디에서나 그분을 발견하고 알아보는 일임을 우리는 인식한다.

  따라서 이 시노드는 단순히 ‘청년들’i giovani이라는 하나의 주제만 논의하는 시노드가 아니었다. 오히려 프란치스코 교종의 직관은 새로운 역동성이 작용할 주제를 선택하게 하였다. 당연히 많은 지역 주교회의들은 젊은 주교들 또는 청년들을 직접 만나고 있는 주교들을 파견했다.

  한 달간 매일 만난 후 분명해진 것이 있다. 이 회합은 교회, 교회의 선교 사명, 교회의 동반과 식별 방식에 관한 시노드였으며(DF 91-113 참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과 직접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청년들은 교회의 공동합의성(DF 121 참조), 즉 ‘선교를 위한 공동합의성’sinodalità per la missione(DF 118)을 일깨우며 교회가 이것을 재발견하도록 도와주었다. 오직 청년들만이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시노드 교부들은 주교들 서로를 결속시키고 또한 주교단과 교황을 결속시키는 단체성이 어떻게 청년들을 참여시킨 ‘모든 단계에서 공동합의성’sinodalità tutti i livelli(DF 119)의 (이론적 진술만이 아닌) 효과적인 실천으로 명확해지고 풍성해지는지 주목했다.11) 사실 청년들은 앞서 언급했듯이 지난 2년간 시노드 활동과 성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앞으로 지역 교회의 공동식별 절차에 ‘가정, 종교 기관과 단체들, 신앙 운동들 및 청년들’(DF 120)이 참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시노드 회의장에서 수차례 언급되었듯이, 이 공동합의성은 교구 현실 안으로, 삶의 영역 속으로 육화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교회는 ‘우애의 대화와 증거를 위한 공간’(DF 1)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청년들과 함께 한 성찰은 ‘교회의 공동합의적 형태에 초점을 맞추는 데’(DF 121, 이탤릭체 추가) 도움이 되었다. 그 형태란 ‘참여와 공동책임을 가능하게 하고 교회를 구성하는 다양성이 지닌 풍성함을 소중히 여기며 젊은이와 여성을 비롯한 평신도들의 기여와 남녀 축성생활자, 단체와 기관들 및 신앙 운동들의 공헌까지 감사히 받아들이는’(DF 123) 태도이다. ‘모든 수준의 교회 조직 및 책임을 수행하는 위치에 여성이 함께하고, 교회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서품 사목직의 역할을 존중하되 여성도 참여’(DF 148)해야 한다는 강력한 요청도 있었다.

  이 모든 방식은 소위 교회의 ‘민주화’democratizzazione를 뜻하지 않는다. 교회적 행사를 사회학적 또는 정치적 범주로 읽는다면 잘못이다. 시노드는 하나의 합의를 이루기 위한 단순한 법적 도구가 아니다. 요컨대 권한을 부여하는 시노드는 마치 의회처럼 밑에서부터의 선출이 아니다. 교종은 이 차이점을 여러 번 역설하면서 재확인하였다. 공동합의성은 교회를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 주님께 함께 부름을 받은 회중으로 규정한다. 함께 걷는 여정에는 회중이 함께 모여 부활하신 주님을 찬미하고 성령께서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식별하는 것이 포함된다. 회중을 이루어 모여 있는 것은 복음 전파의 사명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식별의 특별한 순간들이다.

  선교를 향하여

  청년들과 함께한 이 시노드는 세상의 역사 안에서 걸어가는 하느님의 충실한 백성인 교회에 관한 시노드이며 교회 ‘개혁’riforma이 나아갈 정확한 길을 보여주었다(DF 118 참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수용과 교회 개혁의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는 점, 즉 하느님 백성 전체가 그리고 그 안의 모두가 함께 걸어가고 선교사가 되는 전환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함께 걷는’camminare insieme 체험은 섬긴다는 관점에서 권위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DF 124 참조), 선교를 지향하도록 교회를 재촉하고 교회의 선교적 투신을 명확하게 함으로써(DF 125-127 참조), 교회가 시민단체들과도 현실과 사회의 도전과 대화를 나누도록 이끈다(DF 132 참조). 이것은 구체적인 변화와 선택으로 이어지리라고 기대된다. 예를 들어 그중 하나는 교구가 “[고정적] ‘사무실’uffici 업무에서 벗어나 [역동적] ‘프로젝트’progetti에 초점을 맞춘 활동을 통해 서로 다른 분야 간의 더 나은 조정과 통합을 개발할 것”(DF 141)을 제안한다.

  최종 보고서는 시노드 논의에서 드러나고 이전에 제기된 주요 주제들을 포함하면서, 디지털 환경, 이주, 정서, 경제, 정치, 노동, 생태, 양성 등의 주제들을 선교적 관점에서 새롭게 다루고 있다. 이 문서는 또한 ‘성인으로서 그리스도인다운 삶에서 성숙해지기 위한 시간’과 같은 구체적 제안들도 빠짐없이 담았다. 일상적 환경과 관계에서 충분한 거리를 두고, 성인 교육자와 형제애를 나누는 삶을 체험하며, 기도와 성사 생활에 뿌리를 둔 영성으로 함께 살아가는 굳건하고 의미 있는 사도적 [대안을] 제시한다(DF 161 참조). 마찬가지로 서품 사목직 양성에서 ‘여성을 포함하는 차별화된 유형의 교육팀’을 구성하고 다양한 성소가 상호 작용하게 하자는 내용도 담겼다. 그것은 “초기 양성에서 젊은이들의 심성에 새겨지는 작지만 귀중한 형태의 공동합의성이 될 것이다(DF 163).”

  요컨대 최종 보고서는 시노드 과정의 결론이 아니라 “다음 단계로 안내하는 지도로써, 교회는 그에 따라 발걸음을 옮기라는 부름을 받고 있다(DF 3).” 이 지면에서 모든 접점, 제안, 의견을 다룰 수는 없지만 적어도 보고서 전체를 읽기 위한 도입으로서 큰 틀을 가리키고자 노력했다.

  시노드―‘교회적 훈련’

  프란치스코 교종은 교종으로서 직무를 시작한 후로 줄곧 교회의 ‘공동합의성’sinodalità 에 큰 중요성을 부여해왔다.12) 교종은 청년에 관한 이번 시노드 개막 연설에서 이 회합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시노드는 ‘교회가 식별을 실행하는 장’으로서, “신앙 행위에 뿌리를 둔 내적 태도이다. 식별은 방법인 동시에 우리가 설정한 목표이다. 식별은 하느님께서 세상 역사 안에서, 인생의 사건들 안에서, 내가 만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안에서 활동하신다는 확신에 근거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종종 예측할 수 없는 방법과 경로로 성령께서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것을 경청하라는 소명을 받았다.” 공동식별은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들려주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알아차리게 한다. 시노드의 의미를 뒷받침하는 핵심은 성령에 힘입어, 참가자들 사이의 합의를 이끌어내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이다.

  흥미롭게도 최종 보고서는 전례의 중심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렇게 기술한다. “성찬례에서 교회의 공동체적 삶과 공동합의성이 나온다(DF 134).” 이 단락은 아주 중요하다. 이에 따르면 공동합의성과 전례의 결속은 시노드에서 일어나는 일이 올바른 방식으로 기념될 때 성찬례에서 일어나는 일, 즉 모두를 한뜻으로 모으시는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의 현존(필리 2,1-5 참조)과 연결된다는 확신을 준다.

  교종은 시노드 회합의 근본적 특징들 가운데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를 확인했다. 첫째는 정직하고 용감한 나눔으로서 이것은 ‘파레시아’parresia로 특징지어진다. 이는 또한 ‘시노드에 참석하지 않은 세상 수많은 젊은이들이 들려주는 목소리’도 포함한다. 그러나 말할 수 있는 용기는 ‘다른 이의 말을 듣는 겸손’이 선행되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다. 교종에 따르면 이 진정한 대화는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고서 자신의 원래 의견을 수정하고 각자 준비했던 발언을 고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꺼이 타인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자유를, 그리하여 우리의 확신과 태도를 바꿀 수 있는 자유를 느껴봅시다. 이것은 인간적 영적 성숙의 위대한 표징입니다.”

  경청은 ‘파레시아’parresia와 더불어 교회의 근본적인 태도로, 프란치스코 교종은 경청에 있어서 교회가 젊은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종종 교회가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시노드는 “진정한 경청의 태도를 보이는 교회의 표지로서, 교회는 자신이 마주하는 이들의 입장에서 의견을 듣고자 한다.” 반면 “듣지 않는 교회는 새로움에 귀를 막고, 하느님의 놀라움 앞에 문을 닫아버린다. 이런 교회는 신뢰를 얻을 수 없다. 특히 청년들로 하여금 가까워지기보다는 필연적으로 멀어지게 만든다.”

  이런 이유로 프란치스코 교종은 전체 회의와 그룹 토의 때 다섯 발언마다 한 번씩 3분간 침묵의 시간을 지키도록 당부했다. 이 시간은 “발언을 듣고서 마음에 올라오는 방향에 귀를 기울이고, 더 깊이 들어가 가장 와닿는 것을 포착하기 위한 침묵이다. 이러한 내면으로의 집중은 알아차리고 헤아리고 선택하는 과정을 완수하기 위한 열쇠이다.”

  미래를 향한 개방

  지금까지 우리는 최종 보고서 주요 구절들을 소개하고 설명하면서 시노드 활동을 요약했다. 이 문서는 전체 맥락을 고려할 때, 대의원 과반수의 표를 얻어 광범위하게 합의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13) 그러므로 교종에게 전달된 텍스트는 충분히 무르익은 상태였다. 한편으로, 최종 보고서는 시노드가 여러 가지 문제들을 솔직하고 직접 경청했음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 이 작업이 늘 선형적이지는 않지만, 항상 고무적이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명확히 설명하고 실행할 장을 하느님 백성과 교종 모두에게 제공했으므로 후속 사도권고를 위한 기초로 삼을 수 있다.

  청년에 관한 시노드를 조직할 생각을 한 것은 현재를 고찰함과 동시에 미래에 열린 자세를 갖추는 것을 뜻한다. 시노드 교부들이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서한’Lettera dei Padri sinodali ai giovani에서 밝힌 바와 같이, 청년들을 동반하는 교회는 그들 또한 ‘이 여정에서 가장 약하고 가난하고 삶에서 상처받은 이들의 동반자’가 되라고 요청한다.

  “‘미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데’ 힘을 기울이십시오.” 이는 프란치스코 교종이 시노드 개막 연설에서 요한 23세를 인용하며 던진 호소였다. 그러면서 교종은 시노드가 맡은 임무를 언급했다. 우리의 성찰을 마무리하며 교종의 말한 시노드의 임무를 여기 다시 싣는다.

  꿈을 심고, 예언과 비전을 끌어내며, 희망을 꽃피우고, 신뢰를 고취하며, 상처를 싸매주고, 서로의 관계를 긴밀히 하며, 희망의 새벽을 일깨우고, 서로에게서 배우며, 정신을 조명하는 빛나는 풍요로움을 만들어내고, 마음을 데우며, 우리 손에 힘을 주고, 누구도 제외됨 없이 모든 젊은이에게 복음의 기쁨으로 가득 찬 미래의 비전을 고취하는 것입니다.


* La Civiltà Cattolica, 4042 IV (17 novembre 2018), 376-390.
** Antonio Spadaro S.J.
1) Francesco, “Oggi la Chiesa ha bisogno di crescere nel discernimento. Un incontro privato con alcuni gesuiti polacchi”, La Civiltà Cattolica, 3989 III (10 settembre 2016), 345-349.
2) 편집자 주: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5차 정기 총회 의안집: 젊은이, 신앙과 성소 식별」, 2항. http://www.cbck.or.kr/bbs/bbs_read.asp?board_id=k1200&bid=13013525 (접속일: 2019.2.19).
3) 프란치스코 교황·토마스 레온치니, 『God is Young: 이 시대 청년들에게 전하는 희망 메시지』, 윤주현 옮김, (서울: 가톨릭출판사, 2018).
4) Ibid., 21.
5) Paolo VI, s., “Allocuzione per la beatificazione di Nunzio Sulprizio”, 1° dicembre 1963.
6) Paolo VI, s., “Omelia nella Messa ai giovani dell’Australia”, Sydney, 2 dicembre 1970.
7) Francesco, “Lettera ai giovani in occasione della presentazione del Documento Preparatorio della XV Assemblea Generale Ordinaria del Sinodo dei Vescovi”, 13 gennaio 2017.
8) 역자 주: Inquietudine는 ‘불안, 걱정, 동요, 가만히 있지 못함’ restlessness, worry, disquietude, disquiet, anxiety 등의 부정적인 뜻을 갖지만, 프란치스코 교종은 예수회원들의 ‘기동성’mobilità과 청년들의 역동성을 설명할 때 안주하려는 수동성이나 타성에 젖은 ‘평범함’mediocrità 대신 sana inquietudine, 즉 ‘건강한 동요, 거룩한 조바심, 쉼 없이 움직임’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인터넷에서 “Papa Francesco, inquietudine”로 검색하면 관련 어록을 찾을 수 있다). 여기서는 문맥상 ‘정지하지 않고 계속 움직인다’는 의미로 ‘부단한 움직임’으로 번역했다.
9) 역자 주: 2018년 10월 27일 시노드 대회의장에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5차 정기총회 최종 보고서가 승인됐다. 최종 보고서는 총 3부, 12장, 167개 문단, 60쪽 분량으로 구성된다. 제1부: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제2부: “그들의 눈이 열렸다.” 제3부: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떠났다.”
10) Francesco, La saggezza del tempo, (Venezia: Marsilio, 2018). 프란치스코 교종이 전 세계 노인들과 나눈 대화를 모은 책이다. 노인들의 삶의 체험과 그들의 이야기에 관한 교종의 대답을 담았다.
11) ‘시노드의 공동합의적 역동’dinamismo sinodale이란 세례 받은 ‘모든’tutti 이들의 참여와 공동책임이 ‘일부’alcuni 구성원(주교들)의 ‘단체협의적’collegiale 권한의 구체적 행사와 ‘한 사람’(교종)의 통솔로 명확해짐을 뜻한다. 이것은 각 지역 교구에서처럼 마찬가지로 전체 교회에도 적용된다. 모두의 참여는 시노드 준비 과정에서 자문을 통해 활성화되었다. 참조: Commissione Teologica Internazionale, La sinodalità nella vita e nella missione della Chiesa; Costituzione apostolica, Episcopalis communio. 이 교황령은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시노드 전개과정을 규정하였다; Antonio Spadaro – Carlos Galli, “La sinodalità nella vita e nella missione della Chiesa”, La Civiltà Cattolica, 4039 (6 ottobre 2018), 55-70. 역자 주: Spadaro와 Calli의 글은 https:// laciviltacattolica.com/the-synodal-church에서 영어로 읽을 수 있다.
12) 로렌초 발디세리 추기경이 시노드 의안집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이미 2013년, 교종으로 선출된 지 몇 달이 지나지 않아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탈리아 『치빌타 카톨리카』와의 대담에서 ‘시노드 방식을 바꿀 때가 된 것 같다. 현재 형식은 정적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참조: Antonio Spadaro, “Intervista a papa Francesco”, La Civiltà Cattolica, 3918 (19 settembre 2013), 449-477.
13) 최종 보고서의 각 조항에 대한 찬반 투표 결과 역시 공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