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일깨운 교회의 공동합의성

청년들이 일깨운 교회의 공동합의성1)

I GIOVANI HANNO RISVEGLIATO LA SINODALITÀ DELLA CHIESA2)

La Civiltà Cattolica 사설

노우재 미카엘 신부 옮김 (부산교구 수정동 본당 주임신부)

  ‘젊은이, 신앙과 성소 식별’(Giovani, fede e discernimento vocazionale)를 주제로 2018년 10월 3-28일에 바티칸에서 열린 제15차 세계 주교 시노드(세계주교대의원회의)가 이제 끝났다. 시노드 과정과 최종 문서(Documento finale, DF)에 대한 더욱 체계적인 성찰은 다음 호에 이어질 것이다.3)

  시노드 본회의와 2017년 1월에 시작된 준비 과정에서 선명하게 드러난 생각이 한 가지 있다. 교회와 청년이 논의의 소재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마케팅을 목적에 두고서 청년을 그렇게 다루는 유감스러운 상황도 있지만, 사실 그들은 ‘대상’(oggetto)이 아니다. 청년들의 참여 없이 청년에 대한 시노드를 조직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성령께서 젊은이들의 탐색, 희망, 불안, 요청을 통하여 오늘날 교회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 젊은이들을 통해 들려오는 그 말씀을 때로는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바오로 6세 성인은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과 인생은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을 괴롭히는 불만과 사회에 대한 여러분의 비판에서 … 한 줄기 빛이 비치고 있습니다.”(1970년 12월 2일)

  우리는 모두 교회 안팎에서 젊은이들이 갖는 길들여지지 않는 불안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불안’(inquietudine)이라는 표현은 최종 문서의 다양한 맥락에서 여덟 번 등장한다. 같은 의미로 쓰인 다른 표현들과 함께 문서 전반의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이다.

  진정한 과제는 젊은이들의 동행이 되고 동반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젊은이들이 정당한 질문, 참되고 중요하며 근본적인 물음을 갈라진 세상 앞에, 공허한 내면에,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향한 그들의 갈망에 던지고 나누도록 도와야 한다. 사실 시노드는 젊은이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제는 그들이 ‘가장 약한 이들, 가난한 이들, 삶에서 상처받은 이들의 동행’(compagni di strada dei più fragili, dei poveri, dei feriti dalla vita)이 되어야 한다고 요청한다. 이는 젊은이들이 교회에 행복과 충만에 대한 감각을 회복시켜 교회가 성령의 숨결을 향해 열리게 하라는 호소다.

  어른들이 젊은이들과 경쟁하고, 자녀가 있는 어른은 자기 자녀들과도 경쟁하는 세상이지만, 여전히 시노드는 충만을 추구하는 인류, 미래의 약속을 겸손한 마음으로 희망하는 인류에 대해 우리에게 말했다. 36명의 청년 참관인 중 사모아제도에서 온 청년이 교회를 카누에 비유해 이야기했다. 노인들은 별들의 위치를 보며 방향을 잡고 청년들은 노인들과 대화하면서 힘껏 노를 젓는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에게 젊은이는 예언자와 같다. 하지만 그 예언자도 인생 여정에서 먼저 살아간 이들의 꿈을 들어야만 참으로 예언할 수 있다.4)

‘공감하는’(empatica) 교회.

  시노드에서 한 가지 방법이 분명하게 등장했다. 해석하거나 결정하기 이전에 먼저 경청하고 현실을 식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과 함께한 이 시노드의 위대한 첫걸음은 많은 의견을 들으면서 시작되었다. 2017년 1월부터 지속적인 공청회, 국제적인 모임과 디지털 네트워크를 이용한 만남을 통해 수많은 의견이 로마로 모였다. 세상의 길 위에서 젊은이들과 함께 걷지 않으면[시노드의 어원인 희랍어 synodos는 함께(syn) 걷는다(odos)는 의미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시노드 본회의 첫 주에는 시노드 교부들이 전체 또는 언어권별로 모여 그들이 본 여러 대륙의 현실을 두고 토론했다. 토론하면서 현실을 직면하는 경험은 예상 밖으로 흘러가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교회가 가진 고유의 강점이 드러났다. 교회의 목소리는 참으로 보편적이라는 점이다.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도전에 부딪혔을 때 차이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공통된 갈망이 드러났다. 드물다기보다 가히 유일한 경우라 하겠다.

  다섯 대륙에서 온 젊은이들과 사목자들은 저마다 배경이 달랐고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도 달랐지만 손에 손을 잡고 전체 교회와 세상의 현안들을 살펴 나갔다. 세상의 문제, 현재와 미래에 닥칠 큰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었다. 시노드는 디지털 환경이라는 신문물을 비롯하여 이민, 모든 수단을 동원해 물리쳐야 할 학대적 사고방식 등 첨예한 주제도 다루었다. 가정, 세대 간 관계, 몸과 정서에 관해 논하면서 젊은이들에게 동력이 되는 ‘직면의 열망’(desiderio di confronto)을 끌어내기도 했다.(참조: DF 39) 일, 사회적 불안정, 박해, 사회 참여, 여성의 역할, 동성애에 관해서도 논했다.

  시노드 과정은 젊은이들의 메시지와 요청을 수신하는 대형 안테나와 같았다. 다만, 차가운 분석이 아닌 따뜻한 시선과 제자다운 뜨거운 마음으로 귀를 기울였다. 어느 주교의 말처럼 시노드 회의장에 ‘공감하는 교회’(Chiesa empatica)가 등장했다. 이는 최종 문서에 반영되었다.

  과연 교회는 ‘모든 물음을 받아들이는 곳, 개개인의 탐색이 복음에 비추어 정당하게 격려받는 곳’이어야 한다.5) 사목자들은 청년들과 함께, 시노드 기간에 교종이 트위터에 쓴 표현처럼 언제나 ‘이미 준비된 대답’(una risposta preconfezionata già pronta)을 공급하는 기관으로서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마음을 뜨겁게 하는 말씀으로서 복음을 선포하고자 한다.

양심의 중요성.

  이런 전망에서 양심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해야 한다.(DF 106-109) 특히 시노드는 영적 식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영적 식별을 이렇게 설명했다. “영적 식별은 양심의 진지한 작업이며, 어떤 선을 이룰 수 있는지 인식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로부터 실천이성을 올바로 활용하고 주 예수님과 맺는 인격적 관계에 비추면서 책임감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DF 109)

  이는 주님과 맺는 고유한 관계와 선을 인식하는 능력에 비추어 각자의 자유를 긍정하는 심사숙고된 표현이다. 또한 여러 상황에 적용하여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내용이다. ‘자신의 개인 역사를 읽고,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세례 때 받은 성소에 충실하며, 공동체 생활에 속하고 기여하고자 하는 열망을 인식하고, 이 열망을 실현하는 최선을 방법을 식별하는’ 데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DF 150)

시노드 정신을 사는 교회상에 관한 시노드.

  이번 시노드는 ‘청년’(i giovani)이라는 특정 주제만을 다룬 시노드가 아니었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의향은 새로운 역동을 북돋는 주제를 선택하여 전 세계의 젊은 주교들을 불러모으는 데 있었다. 각국 주교회의는 대부분 젊은 주교나 청년층을 직접 만나는 주교를 선발했다.

  한 달 동안 매일 회의하면서 분명해진 사실이 있다. 이번 시노드는 교회에 관한, 교회의 사명에 관한, 교회의 동반과 식별 방식에 관한 시노드이며(참조: DF 91-113), 사목헌장부터 교회헌장에 이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과 직접 관련된 시노드였다는 점이다. 청년들은 교회의 공동합의성을 일깨웠다.(참조: DF 121) 교회가 시노드 정신을 다시 발견하도록 도왔다. 청년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시노드 교부들은 주교들 간의 일치 및 교종과의 일치를 가능하게 하는 단체성이 이론적 언명으로만 아니라 ‘교회의 공동합의성을 모든 수준에서’(sinodalità a tutti i livelli) 효율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선명해지고 풍성해졌다고 밝혔다.(DF 119) 그리고 이 과정에 청년들의 참여가 있었다. 실로 2년 동안 청년들은 시노드 작업과 성찰에 능동적으로 참여했다.6)

  청년들과 함께 ‘젊은이, 신앙과 성소 식별’(Giovani, fede e discernimento vocazionale)을 성찰하면서 시노드적인 교회의 모습, 즉 ‘참여적이며 함께 책임을 맡는’(partecipativa e corresponsabile; DF 123) 교회상을 드러낼 수 있었다. 이번 시노드는 교회를 ‘대화의 공간이며 형제애를 증언하는 공간’(spazio di dialogo e testimonianza di fraternità)으로 규정했다.(DF 1) 본회의에서 자주 언급되었듯이 교회의 공동합의성은 교구와 지역의 현실에 체화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참조: DF 148)

  최종 문서는 ‘교회가 부름 받은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다음 발걸음을 잡아 주는 지도’(una mappa per orientare i prossimi passi che la Chiesa è chiamata a muovere)이다.(DF 3) 다시 말해, 청년들과 ‘함께한’(con) 이번 시노드는 교회 전체의 시노드, 즉 이 세상 역사 안에서 순례하는 충실한 하느님 백성의 시노드임이 드러났다. 그리고 이 사실이 교회의 ‘쇄신’(riforma)을 향한 길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참조: DF 118)


1) 편집자 주. 국제신학위원회는 2018년 3월 2일에 공동합의성에 관한 문헌을 발표하였다. 이 문헌은 “공동합의성의 여정은 3천년기 교회로부터 하느님이 기대하시는 길이다.”라는 교종 프란치스코의 2015년 교황청 주교 시노드 설립 50주년 기념 연설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이 문헌은 공동합의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동합의성은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의 ‘생활 방식과 활동 방식’(modus vivendi et operandi)의 고유한 특성을 가리킨다. 교회는 함께 걸어가는 데에서, 회합에 모이는 데에서, 그리고 모든 구성원들이 복음화 사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데에서 자신이 친교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실현하는 것이다.” Commissione teologica internazionale, “La sinodalità nella vita e nella missione della chiesa”(2018), 6항, http://www.vatican.va/roman_curia/congregations/cfaith/documents/rc_con_cfaith_pro_14071997_it.html. 치빌타 카톨리카 포럼은 2018년 11월 17일에 “이 희년에 너희는 저마다 제 자리를 되찾아야 한다.”라는 주제로 치빌타 카톨리카 오픈 포럼을 주최했다. 이 자리에서 최현순 박사는 “공동합의성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신학적 성찰”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교회 공동체가 공동합의적 삶의 원리를 살아냄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삶의 원리를 비추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2) La Civiltà Cattolica, 4041 (3/17 novembre 2018), 209-212.
3) 편집자 주. 이 글은 2019년 4월 1일자 치빌타 카톨리카 한국어판에 실릴 예정이다.
4) 참조: Francesco, La saggezza del tempo, (Venezia: Marsilio, 2018). 이 책은 2018년 10월 23일 젊은이들을 주제로 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서 소개되었다. 편집자 주. 이 책에서 교종 프란치스코는 청년과 노인이 서로 포옹하는 삶을 제시한다. 이날 출판 기념회에서 교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노인들은 그들이 삶에서 무엇을 했는지 꿈으로 젊은이들에게 말해 줄 것입니다. 실수와 실패와 성공을 말해 줄 것입니다. … 그 인생의 경험 전체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시간의 지혜』는 이냐시오 영성연구소에서 2019년 5월에 출간할 예정이다. https://www.vaticannews.va/ko/pope/news/2018-10/ko-synod-youth-2018-incontro-papa-giovani-anziani-saggezza.html
5) Jorge M. Bergoglio, “Messaggio alle comunità educative”, Buenos Aires, 21 aprile 2004.
6) 참조: Antonio Spadaro-Carlos Galli, “La sinodalità nella vita e nella missione della Chiesa”, La Civiltà Cattolica, 4039 (6 ottobre 2018), 55-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