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하나의 큰 가정: 교종 프란치스코의 아일랜드 방문

IL MONDO, UNA GRANDE FAMIGLIA: Papa Francesco in Irlanda1)

안토니오 스파다로 S.J.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옮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홍보국장)

  8월 25일 아침 8시쯤 프란치스코 교종과 수행원 그리고 기자들이 탑승한 알리탈리아 항공기가 더블린을 향해 이륙했다. ‘가정의 복음, 세상의 기쁨’(Il Vangelo della famiglia: gioia per il mondo)을 주제로 8월 21일부터 26일까지 아일랜드의 수도에서 열린 제9차 세계가정대회에 참석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2015년 미국 사도 방문 때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8차 대회에도 참석했었다. 3년마다 열리는 중요한 이 국제 행사는 전 세계 가정이 한데 모여 생명, 사회, 교회에서 혼인과 가정이 갖는 근본적 중요성을 함께 축하하고 기도하며 성찰하는 자리이다.2)

  그러나 교종이 가정대회에 중점을 두고 방문한 이곳은 미디어가 주도하는 포스트모더니티에 익숙한 세대와 가톨릭 전통을 따르는 구세대 사이에 긴장이 있는 복잡한 땅이다. 아일랜드 교회는 근래까지 강성했으나 지금은 때때로 궁지에 몰려 굴욕을 겪는 듯하다.

  특히 미성년자에 대한 가톨릭 성직자들의 성적 학대를 밝힌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배심 보고서가 7월 말에 발표되어 학대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보고서가 발표된 뒤 8월 20일에 교종은 「하느님 백성에게 보내는 편지」3)를 썼다. 학대 사건의 반향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고 교종의 연설도 이를 상기시켰다.

  동시에 아일랜드 모든 본당에 기도와 봉사로 보람 있는 삶을 살아가는 가톨릭 신자들이 많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명암은 이미 본지에서 폭넓게 다뤘다.4)

아일랜드 당국자들과 만남

  환영식은 대통령 관저에서 거행되었다. 아일랜드 대통령 마이클 D. 히긴스 부부가 관저 정문에서 교종을 영접했다. 한 난민 가족과 난민에게 거처를 제공 중인 아일랜드 한 가족도 함께 교종을 맞이했다.

  대통령은 교종을 따로 맞은 뒤에 그를 관저 정원으로 안내했고, 교종은 거기서 기념식수를 했다. 그러고 나서 프란치스코 교종은 더블린 중심, 리피 강 남안에 위치한 더블린성(城)으로 이동하여 성 정문에서 ‘티샥’(아일랜드에서 총리를 이르는 명칭)의 영접을 받고 정치 종교 지도자, 시민사회 대표, 외교단 등 250명을 만났다. 북아일랜드 대표단도 그 자리에 참석했다. 교종은 아동청소년부 장관 캐서린 저폰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저폰은 짧지만 분명하게 학대의 비극을 말했고, 나중에 교종이 그 이야기를 다시 언급할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리오 버라드커 총리는 아일랜드 민족의 오랜 전통에 따라 프란치스코 교종을 더블린성(城) 안으로 맞아들이면서 1980년에 베르골료가 ‘예수회 센터에 머물면서 영어를 배운’ 것을 상기시켰다. 총리는 교종이 기후 변화와 같이 현재 절박한 도전을 강조하고 이민자와 난민 등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을 보인 데 감사를 표했다. “교회는 항상 우리가 더 넓은 세계의 시민이고 세계라는 한 가족에 속해 있음을 이해하도록 도왔습니다.”라고 하며 “그리고 용감한 우리 선교 사제들과 수녀들이 전 세계 많은 이에게 교육을 제공하고 아픈 이들과 가난한 이들, 취약한 이들을 도왔습니다.”라고 언급했다. 총리는 또한 아일랜드에서 교회가 의료보장제도와 교육을 보증하는 데뿐만 아니라 가장 가난한 이들을 맞아들이는 데에도 앞장섰다고 했다.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들’(coloro che sono ai margini della nostra società)에 대한 교종의 증언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뚜렷하게 이해된다.

  그러고 나서 버라드커 총리는 아동과 여성에 대한 폭력이 만든 ‘고통과 수치의 역사’(storia di dolore e di vergogna)를 떠올렸다. 그는 교종에게 정의가 실현되도록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달라고 요청했고, 무엇보다도 ‘피해자들에게 귀를 기울여 달라’(di ascoltare le vittime)고 청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아일랜드 사회는 다양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아일랜드인 여섯 명 중의 한 명은 여기서 태어나지 않았고,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으며, 어떤 제도 종교도 따르지 않는 이들도 늘고 있습니다.” 오늘날, “종교는 더 이상 우리 사회의 중심에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아일랜드 교회와 정부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구축할’(di costruire nuove relazioni tra la Chiesa e lo Stato in Irlanda) 순간이 왔다고 했다.

  그 후 프란치스코 교종은 첫 번째 대중 연설을 했다. 이번 방문의 구체적인 주제인 가정에 모든 초점을 맞춘 연설이었다. 그는 가족 제도의 사회적 중요성, 전체 사회 발전에서 가정이 갖는 고유한 역할과 연관을 지으면서 주제에 접근해 갔다. 교종은 가정 역동을 공생, 연대, 공동선을 위한 봉사의 모델로 제시했다. 그런 다음 관점을 넓혀, 보편 인류라는 결속이 어떻게 전 세계를 한 ‘가족’(famiglia)으로 만드는지 살폈다. 교종은 ‘인종 증오 및 민족 증오라는 끈질긴 악’(mali persistenti dell’odio razziale ed etnico), ‘해결되지 않는 갈등과 폭력’(conflitti e violenze inestricabili), ‘인간 존엄성과 기본 인권에 대한 무시, 점점 커지는 빈부 격차’(disprezzo per la dignità umane e i diritti umani fondamentali e il crescente divario tra ricchi e poveri)를 집어 언급했다. 그리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는 정치와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모든 민족들이 참으로 한 가족이라는 감각을 회복해야 합니다!”

  아일랜드는 그 섬에 사는 이들을 갈라놓는 오랜 분쟁으로 인해 가족에 관한 상처를 직접 겪은 나라다. 따라서 이는 현재 역사에서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상기시키는 기회였다. 특히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 탈퇴가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아일랜드 국경에 미칠 영향 등의 민감한 국면과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었다.

  교종은 ‘전 세계 민족들이 이루는 한 가족의 이상’(l’ideale di una famiglia globale di nazioni)을 상기시키며 ‘참으로 연대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고자’(costruire una società veramente solidale, giusta) 노력하지 않는다면 전 세계 가족의 이상도 ‘공허하고 진부한 말로만 남을 위험’(rischia di diventare nient’altro che un vuoto luogo comune)이 있다고 했다. 긴급한 상황들 중에서도 교종은 ‘대규모 이주 위기’(massiccia crisi migratoria)에 대해 ‘이 시대에 우리 양심을 더욱 자극하는 도전’(la sfida che più provoca le nostre cosceineze in questi tempi)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도전은 저절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며 해결하려면 ‘지혜, 넓은 시야, 근시안적 정치 결정을 넘어서는 인도주의적 관심’(saggezza, ampiezza di vedute e una preoccupazione umanitaria che vada ben al di là di decisioni politiche a breve termine)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프란치스코 교종은 ‘아동을 보호하고 교육할 책임을 맡은 교회 구성원들이 오히려 아동을 학대하여 아일랜드에 일으킨 추문’을 직접 언급했다. 그는 “주교, 수도회 장상, 사제 등 교회 당국이 이 끔찍한 범죄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당연히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이는 가톨릭 공동체가 겪는 고통과 수치의 원인으로 남아있습니다.”라고 인정했다.

  끝으로 교종은 1,500년도 더 전에 팔라디우스와 파트리키우스가 전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 아일랜드 문화에 통합되었던 기원을 아일랜드인들에게 상기시켰다. 그리고 연설을 맺으며, 변화와 긴장을 겪는 아일랜드를 ‘현대 정치-사회 담론의 다성 음악’(polifonia della contemporanea discussione politico-sociale)을 듣는 것과 같다고 묘사했다. 또한 이 음악을 들으면서 ‘과거에도 아일랜드를 지탱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강력한 가락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신자, 생존자, 예수회원, 가족

  오후 3시 30분쯤 프란치스코 교종은 세인트메리 임시대성당으로 이동했다. 더블린에서 가장 중요한 성당이자 더블린 가톨릭 부흥의 상징인 곳이었다. 성당의 역사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종교적 사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말버러가 중심에 위치한 이 건물은 1534년 영국 성공회가 가톨릭교회에서 갈라져 나온 뒤에 해산된 시토회 수도원 터에 세워졌다. 아일랜드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고전주의 양식의 성당으로 손꼽히는 이 성당은 더블린 대주교였던 도미니코회 존 토마스 트로이가 세웠고 1825년 11월 14일에 봉헌되었다.

  성당 정문에서 교종은 더블린 대주교와 대교구 참사회의 영접을 받았다. 교종은 제대 가까이에서 젊은 부부에게 받은 꽃을 성체 앞에 봉헌하고 잠시 침묵 중에 기도했다. 경당에는 학대 희생자들을 위해 불을 밝힌 초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노부부 한 쌍과 젊은 부부 두 쌍이 짧게 인사하며 교종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고, 교종은 자신의 가족과 관련된 개인 경험을 들며 질문에 대답했다. 그는 사랑을 꿈, 위험 부담, 투신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사랑하는 능력을 잃고 싶지 않거든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열려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 만남 다음에 교종은 카푸친회가 운영하는 노숙자 주간 보호 센터를 방문하여 환영 행사에 참석했다. 이 센터는 48년 전에 케빈 크롤리 신부가 세운 곳으로, 아일랜드의 경제 재정 위기와 더불어 증가한 노숙자, 극빈 가정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비스는 전적으로 자원봉사자들의 손으로 제공되며, 주로 개인 기부로 운영비를 충당하지만 다양한 기관, 학교, 본당 단체, 협회들도 재정에 기여하고 있다.

  센터를 운영하는 카푸친회 사제 열 명이 식당 옆문에서 교종을 맞았다. 마당에는 센터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도 있었다. 식당 안에는 센터 이용자 100여 명이 모여있었다. 센터장이 짤막하게 인사한 다음에 교종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몇 마디 말을 하고 강복한 다음 옆문으로 떠났다.

  그런 다음 교종은 대사관저로 돌아와 성직자에게 학대를 당한 피해자 여덟 명을 만났다. 교종은 한 시간 반 동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나눴다. 그들 중 두 사람이 서명한 성명에 따르면, “면담은 친절하고 온화하게 진행되었다. 적어도 10만 명의 미혼모가 과거에 자녀와 강제로 헤어져야 했다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교종에게 전달했다.”5)

  교종은 그다음으로 예수회원 62명을 만나 30분 동안 대화를 나눴다.6) 예수회원 주교 두 명, (아일랜드) 라포의 앨런 맥거키언 주교, 오타와의 테런스 프렌더개스트 대주교도 함께했다.

  오후 7시 15분, 프란치스코 교종은 빡빡하고 숨 가쁜 일정에 따라 크로크 파크 경기장으로 갔다. 이미 2012년에 약 35개국 7만 5천 명이 넘는 참가자가 제50차 세계성체대회 폐막미사를 드린 적이 있는 곳이다. 교종은 신자들 가운데를 지나며 인사한 뒤 가정대회 축제에 참석했다.

  환영의 열기로 가득했다. 케빈 패럴 추기경의 환영사와 기도에 이어 인도, 캐나다, 이라크, 아일랜드, 부르키나파소에서 온 가족들의 춤과 증언이 뒤따랐다. 세계 다양한 나라의 음악이 대축제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한몫을 했다. 참석한 인원은 8만 명이 넘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준비된 원고를 읽으며 연설했지만, 중간중간 즉석에서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그는 ‘지상에 널리 퍼져 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정을 이룬다’(una sola famiglia in Cristo, diffusa su tutta la terra)는 교회에 내재된 가족적 본성을 상기하면서 연설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 비춰 ‘일상생활’(routine quotidiana)에서 드러나는 가정의 모습을 이야기했다. “하느님의 은총은 매일 한 마음과 한 정신으로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심지어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서도 그렇습니다! 이게 쉽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는 차를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물을 끓이기는 쉽지만 좋은 차 한 잔을 내려면 시간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차가 잘 우러나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날마다 당신 사랑으로 우리를 따뜻하게 하시고 그 사랑이 우리 전 존재에 스며들게 하십니다.”

  교종은 연설에서 ‘전쟁과 박해로 인한 폭력과 파괴 한가운데에서도 가정 안의 사랑과 믿음이 힘과 평화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알린 에나스와 사르마드의 증언 등을 다시 언급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종은 연설의 중심 주제인 ‘한 가족으로서의 인류’(l’umanità come famiglia)로 돌아가, 그리스도교 가정들이 ‘하느님의 모든 자녀를 가까이 모아, 일치를 이루고 전 세계가 대가족처럼 평화롭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배우도록’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초대했다. 만남은 기도와 마침 강복으로 마무리되었다.

노크 성지 방문 및 주교들과의 만남

  다음 날인 8월 26일 주일, 교종은 대사관저 직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후 더블린 공항에서 에어링구스 비행기를 타고 노크로 이동했다. 주민이 천 명도 되지 않는 이 마을은 아일랜드 마요 카운티에 속했으며, 19세기 성모 발현지인 노크 성지로 유명하다.7) 매년 150만 명의 순례자가 이곳을 찾는다. 2013년 8월 15일에는 이 성지에서 아일랜드를 원죄 없으신 성모 성심께 봉헌하는 장엄 예식이 있었다. 성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크로아 패트릭이 있다. 441년에 성 파트리키우스가 아일랜드 섬에서 뱀들을 쫓아내고 사순절 40일 동안 단식했다는 전설이 있는 산이다. 매년 7월 마지막 주일(Reek Sunday)에는 수천 명의 순례자들이 이 산에 오르며 그들 중 일부는 맨발로 올라간다. 노크에는 1979년 9월 30일에 성 요한 바오로 2세가 성모 발현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방문하기도 했다.

  투암 대주교와 네 관구 주교가 프란치스코 교종을 맞았다. 어린이 몇 명도 함께 있었다. 발현 경당에 도착해서는 성지 원장이 교종을 환영했다. 경당에는 약 200명의 신자가 모여있었다. 교종은 성모 조각 앞에서 기도하고 조용히 묵상한 다음 금으로 만든 묵주를 봉헌했다. 그리고 광장에 마련된 연단으로 나가 삼종기도를 바쳤다.

  그의 발언에서 학대의 비극으로 인한 고통이 다시금 올라왔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렇게 말했다. “성모님께서 고통을 받는 당신 아들의 모든 가족을 자비로이 살펴주시길 빕니다.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면서 나는 특히 아일랜드 교회 구성원이 저지른 학대에서 살아남은 모든 희생자를 그분께 바쳤습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학대를 당하고, 순결을 짓밟히고, 어머니와 헤어지고, 고통으로 일그러진 기억 속에 버려진 어린이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벌어진 이 상처는 확고한 결단력으로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라고 우리를 촉구합니다. 나는 이 죄들과 하느님의 가정 안에서 많은 이가 느끼는 추문과 배신감에 대해 주님께 용서를 청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온갖 학대의 생존자 모두를 위해 간구해주시기를, 이런 상황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게 하겠다는 모든 그리스도교 가정의 결심을 확인해주시기를, 그리고 그러한 폭력이 우리 손에 달린 만큼 이제는 언제나 정의와 치유로 행동하도록 간구해주시기를’ 성모님께 청했다고 했다.

  또한, 삼종기도에서 교종은 ‘사랑하는 북아일랜드인들’(l’amata gente dell’Irlanda del Nord)을 떠올리며 기도 안에서 그들에 대한 애정과 친밀감을 확인했다. “나는 아일랜드 가족 모두가 형제자매로서 화해를 이루어가는 데 끈기를 발휘하도록 성모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그리고 교종은 ‘교회일치운동이 진보하고 그리스도교 공동체들 간의 우정과 협력이 의미 있는 성장을 이루고 있음’을 상기했다.
삼종기도 후에 프란치스코 교종은 특별히 재소자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마침내 더블린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다시 공항으로 향했다.

  오후 2시 20분, 교종은 유럽에서 가장 넓은 도심 공원 가운데 하나인 피닉스 파크로 갔다. 700헥타르가 넘는 드넓게 펼쳐진 녹지로서, 더블린 중심가에서 북서쪽으로 3킬로미터 거리에 위치하며 둘레 16킬로미터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또한 1979년 9월 29일에 성 요한 바오로 2세가 미사를 주재했던 일을 기념하는 거대한 십자가가 있다. 바로 이곳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이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과 미사를 거행했다.

  교종은 이 미사를 위해 통회의 기도를 따로 작성하여 직접 스페인어로 읽었고 뒤이어 영어 번역문이 낭독되었다.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어제 나는 권력의 학대, 양심의 학대, 성적 학대를 겪은 생존자 8명을 만났습니다.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묵상하며 이 범죄를 주님의 자비 앞에 맡기고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교종은 강론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한 가정을 통해 이 세상에 강생했고, 그 사랑이 세세대대 내려오는 그리스도교 가정들의 증언을 통해 힘을 얻어 모든 장벽을 무너뜨리고 세상을 하느님과 화해시키고 애초에 우리에게 목적된 바를 이룰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정의와 성덕과 평화 안에서 함께 사는 하나의 인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교종은 화해를 이룬 인류, 한 가족을 이루는 인류라는 관점에서 다시금 가정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 세상의 소명은 한 가족이 되는 것이다. 최초의 아일랜드 선교사들을 기억하면서 프란치스코 교종은 복음에 대한 그들의 증언이 ‘유럽 문화가 탄생하는 데’(a far nascere la cultura europea) 이바지했다고 단언했다. 교종은 그들이 주는 교훈을 현재 다시 상기하면서 유럽 문화가 직면한 매듭들, 즉 이번 방문에서 두 번째로 다룬 주제인 ‘이민자와 외국인을 맞아들임’(accogliere il migrante e lo straniero)과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의 자유에 지장을 준다고 여겨졌던 나약한 이들, 태어나지 않은 이들, 노인들의 권리를 보호함’을 강조했다.

  오후 5시에 프란치스코 교종은 가까이 있는 도미니코회 수녀원으로 자리를 옮겨 아일랜드 주교회의 주교들을 만났다. 아일랜드 주교회의는 대교구 4곳과 아일랜드 및 북아일랜드 교구 22곳의 주교들, 보좌주교 4명으로 구성되었다. 현 의장은 (북아일랜드) 아마의 대주교이며 아일랜드 수석주교인 에이먼 마틴 대주교이다.8)

  교종은 지난해 아일랜드 주교들이 사도좌 정기 방문(ad limina)을 왔을 때 그들과 나눴던 형제적 대화를 토대로 중요한 연설을 했다. 그는 세 번째로 학대의 주제로 돌아와 ‘학대 희생자들과의 화해와 정화의 길’(i percorsi di purificazione e riconciliazione con le vittime di abuso)만이 아니라, 젊은이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아일랜드 교회의 아동보호 전국위원회의 협조를 받아 제정된 엄격한 규범들도 상기시켰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종은 ‘전통적으로 신앙이 굳건한 아일랜드 민족’(la fede tradizionalmente forte del popolo irlandese)이 겪고 있는 이 시련의 시기에 “신앙을 전수하는 데 가정이 맡은 역할은 달리 대체할 수 없음을 가정들 스스로 점점 더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최근 몇 년의 격변으로 인해 이 나라 교회가 내적 쇄신할 기회가 생겼고 교회의 삶과 사명을 새로운 방식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교종은 이런 메시지를 통해, 엄청난 도전을 의식하면서도 위기가 주는 기회에 마음을 열고, 주교들이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말고 ‘아일랜드에서 하느님 가정의 아버지요 목자’(padri e pastori della famiglia di Dio in questo Paese)가 되라고 초대했다.

  교종은 주교들과 만난 후 더블린 공항으로 가서 송별식을 치렀다. 교종이 탄 에어링구스 항공기는 오후 6시 45분에 출발하여 오후 10시 45분 로마 참피노 공항에 도착했다. 교종은 처음으로 조종실에 앉아 착륙했고, 그 덕분에 로마를 내려다보고 감상하며 이 도시를 위해 기도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 밖으로 떠나기는 스물네 번째였던 프란치스코 교종의 아일랜드 사도방문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

  프란치스코 교종의 이번 여정에서 중심 주제는 가정이 교회와 사회에 대해 갖는 깊은 의미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도 가정을 통해 강생하셨다. 교회는 ‘가족들의 가정’(famiglia di famiglie)이며 그리스도교 메시지는 그리스도교 가정의 증언을 통해 널리 퍼진다.

  그리고 가정은 ‘사회의 접착제’(collante della società)로서 사회 구조의 발전에 근본적 역할을 띤다. 가정은 한 처음부터 인간에게 목적된 바, 즉 단 하나의 인류 가족을 이루어 정의와 평화 안에 함께 사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가정을 더 넓은 맥락에 대입해 메시지를 전하며, 민족들 간의 분열과 터질 듯한 갈등으로 어지러운 세상에 깊은 일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교회는 이 세상에 가정의 정신을 가꿀 임무가 있다. 사목자들 또한 하느님 백성과 가정의 관계를 맺고 살도록 부름을 받는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아일랜드 주교들에게 말한 바와 같다. “우리는 선한 아버지답게, 격려하고, 영감을 주고, 화해하고, 일치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일랜드 교회라는 이 대가족 안에서 대대로 물려받은 모든 선익을 보존하고자 합니다.”


1) La Civiltà Cattolica, 4038 (15 set/ 6 ott 2018), 502-512.
2) 세계가정대회는 성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청 가정 평의회(현재 평신도와 가정과 생명에 관한 부서에 병합)에 요청하여 1994년에 시작되었다. 그는 가정들 간의 결속을 강화하고 사회 전체를 위한 혼인과 가정의 근본적 중요성을 증언할 목적으로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이 기도, 교리교육, 축제에 참여하는 국제 행사를 기획하도록 했다. 올해 이 행사는 네 가지 주요 구성, 즉 개막식, 대회 본행사(강연, 워크숍, 세미나, 신앙 고백, 토론, 전시, 문화 공연 및 음악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 축제와 장엄 미사로 전개되었다. 전체 프로그램은 공식 사이트 www.worldmeeting2018.ie에서 볼 수 있다.
3) 참조: w2.vatican.va/content/francesco/it/letters/2018/documents/papa-francesco_20180820_lettera-popolo-didio.html.
4) Alan McGuckian, “Irlanda tra passato e futuro”, Civiltà Cattolica, 4034 (21 luglio 2018), 141-154.
5) 성명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종은 교회 안의 부패와 학대 은폐를 ‘똥’(cacca)이라는 말로 비판했다.” 면담에 참석한 이들은 이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고 통역자는 ‘말 그대로, 화장실에서 볼 수 있는 오물’이라고 옮겼다. 그대로 드러내지 못할 표현이지만 분명 효과적이었다.
6) 참조: Francesco, “‘Occorre ridare vita’, Papa Francesco in dialogo con i gesuiti in Irlanda”, La Civiltà Cattolica, 4038 (6 ottobre 2018), 447-451.
7) 1879년 8월 21일 폭우 속에서 동정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과 성 요셉이 동네 성당의 남쪽 처마에서 발현했다. 발현은 두 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처음에는 두 여인이 목격했고, 이어서 지역 주민 열 명이 목격했다. 1879년 10월 8일 당시 투암 대주교 존 맥헤일이 발현 진위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위원회를 구성했다. 2차 위원회는 1936년에 구성되었다. 두 번의 위원회 조사에서 모두 놀라운 일을 목격한 이들의 증언이 ‘신뢰할 만하고 이해할 만하다’고 인정했다. 성지를 방문한 몇몇 환자가 치유된 덕분에 노크의 성모 신심이 퍼지기 시작했다. 곧 본당 근처에 투명 유리벽으로 꾸민 경당이 세워지고 순례지가 조성되었다. 이제는 ‘성모 성지’로 인정받고 있다. 1976년에는 본당 건물에 추가로 더 큰 성당이 신축되었다. 아일랜드를 구성하는 32개 카운티를 상징하는 기둥 32개가 떠받치는 건축물로서,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으로서도 현대적 건물이다. 현재 노크 성지는 다섯 구역으로 나뉜다. 즉 발현 성당, 본당, 바실리카, 성체 경당, 화해 경당이다.
8) 아마의 대주교는 그 주교좌에서 아일랜드의 주보성인 파트리키우스의 후계자로서 이 나라 전체 교회 수장의 직무를 수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