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이 초래한 영적 상처

LE FERITE SPIRITUALI CAUSATE 

DAGLI ABUSI SESSUALI*

한스 졸너 신부(예수회)**

임숙희 레지나(엔아르케성경삶연구소) 옮김

  어느 성폭행1) 희생자는 프란치스코 교종을 만나자 깊은 슬픔과 절망에 차서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은 고통을 겪으며 돌아가실 때 어머니가 바로 그분 곁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제가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제 어머니인 교회는 저를 홀로 내버려두었습니다.” 이 말에 이미 성폭행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특히 교회에서 행해지는 미성년자 성폭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교회와 교회 안에서 책임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태도를 바꾸어야하는지 여실히 드러나 있다.

  일반인이 아니라 교회의 사람에 의해 성폭행이 저질러질 때 종교적-영성적 요소가 중요하게 부각된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생물학적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면 도움을 청하기 위해 부를 수 있는 타인이 항상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제, 자기 직분의 길을 통해 하느님을 대표하는 사람, 신학이 ‘제2의 그리스도alter Christus’라고 말하는 사람이 성폭행 가해자라면 하느님 이미지는 흐려지고 희생자는 어둠과 심연의 고독에 빠질 수 있다. 성폭행 가해자가 교회의 사람이 아니라 해도 희생자는 그런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에서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에는 다른 성폭행의 경우와 질이 다른, 더 심각한 차원이 발생한다. 무엇보다도 신앙, 전례, 하느님과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특히 그렇다. 많은 사람이 그런 체험을 겪을 때 신앙생활과 하느님에 대한 신뢰 자체의 가능성이 훼손되거나 아예 단절되어 버린다.

  희생자들: 그들의 관점과 고통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은 희생자들은 교회 책임자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며 진지하게 자신의 말을 경청해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희생자들은 오히려 말썽꾼으로 비난받고 거부당하거나 침묵을 지키도록 요구받는다. 이런 경우에도 심리적, 신체적 트라우마 외에도 영적 트라우마에 빠질 위험이 아주 심각하게 대두된다. 이 모든 사항이 얼마나 중요한지 교회의 많은 사람, 교회 책임자들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지 않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사목을 통해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은 인생에서 이런 결정적인 사건이―이 경우에 심각한 트라우마―피해를 입은 신자의 영성 가장 내밀한 부분에 얼마나 큰 고통의 짐을 지울 수 있는지를 알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지만, 아주 소수만이 이것을 제대로 알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아마도 이런 현실이 왜 주교와 수도회 장상들이 성폭행의 영적, 신학적 측면보다는 정치적, 법적 및 심리적 영향에 더 관심을 갖는지 설명해줄 것이다.

  그러므로 희생자들에 대해 교회가 대처하는 반응을 보면서 교회를 “사랑하는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만을 걱정하는 제도로 간주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교종 프란치스코의 자의 교서motu proprio가 바로 이 ‘사랑하는 어머니’라는 말로 시작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교종은 주교들과 수도회 장상들이 성폭행을 공개하고 예방해야 하는 고유한 책임을 지라고 격려한다).

  교회: 거룩하고 죄가 많은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 선포를 위해 세워지고 그분의 사명을 위임받았다. 그 기쁜 소식이란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시며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인간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하시는데, 심지어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신 당신의 아드님까지 주셨다는 것이다. 지난 이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 사명에 헌신했다. 교회는 가난한 사람, 병자와 특히 약한 사람들을 위해 구원의 경이로운 성사가 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 안에는 교회와 예수님이 선포했던 것과 정확하게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다는 사실도 말해야 한다. 지난 십여 년간 여러 교종은 교회의 사람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용서를 청하였다.

  돌아감: 그리스도를 찾고 그리스도께 호소하기  

  사제의 아동 성추행이라는 주제를 거론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놀랍고 충격적이다. 이 주제는 교회 안에서 이루어진 성(性)과 폭력, 신뢰 유린과 파괴된 삶과 위선에 대해 말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을 우회하거나 회피하려는 유혹은 개인적, 제도적 보존 본능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대 심리학뿐만 아니라 예수님 자신과 그분 이후 많은 영적 스승들은 이런 자세가 얼마나 예측할 수 없고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 가르쳐 왔다. 자신의 어두운 면을 대면하지 않는 사람은 머지않아 그에 대해서 더 크게 값을 치르게 되는 것이다. 영화 「스포트라이트Spotlight2)는 사제들의 성추행이 수십 년 은폐된 사실을 고발하며 이런 메커니즘을 잘 묘사하고 있다.

  교회의 아동 성추행은 세계 각지에서 발생한다.3) 많은 지역에서 일어난 일과 관련된 자료를 확보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신앙 교리성―교회 안에서 고소당한 사제들을 상대로 처벌 절차를 진행하는 기관―의 태도에서 이런 종류의 학대는 모든 지역 교회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 자주 언급되는 논제들 가운데 하나인 아동 성추행이 쇠락하는 서구 교회의 문제라고 치부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이며 문제의 본질을 벗어난 셈이다. 교회의 삶 안에 성추행을 선호하거나 그것을 은폐하고 처벌하는 것을 가로막는 요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한다. 이 주제를 글로벌한 관점에서 다룰 때, 가톨릭 교회가 온 세상에 퍼져 있으며 아주 다양한 형태를 띠면서도 놀랄 만큼 일관적으로 계층화되어 있는 공동체, 일상 신앙 실천의 내적 유사성과 변할 수 없는 요소가 현존하는 종교 공동체임을 파악하게 된다.4)

  앞에서 말했듯이 그렇게 악하고 그렇게 고통스러운 성폭행을 공개적으로 다루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이것은 당사자가 직접적인 책임이 없는 경우에 특히 그러하다. 그러나 세상 어디든지 사제와 주교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선과 악, 그리고 그들의 동료 형제들이 하는 일들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 그들의 일상생활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사제들은 그리스도와 그분 교회의 대표자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것은 신학적 차원에서도 그러하다. 교회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더욱 더 교회와 사제를 단일체로 상상한다. 이것이 사제의 온갖 성폭행이 전반적으로 사제와 교회와 관련된 문제로 부각되는 이유다.

   

  사제들: 신분과 양성 

  가톨릭 사제들에 의한 성폭력이 큰 스캔들이 되는 이유는 단지 사제의 역할 자체만이 아니라 그들이 중재자이며 실제적이고 영성적인 권력의 소유자라는 사실과 관련된다. 이 척도는 가톨릭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 안에서 발견된다. 이슬람―영국의 마드라사5) 안에서 이루어진 놀라운 성폭력을 기억하자―에서, 힌두교, 유다교나 자연 종교에서도 이런 일들이 발생한다. 독신 의무도 라틴 예식을 따르는 가톨릭 교회만의 독점적인 특징은 아니다. 다른 종교 안에도 독신 생활을 하는 성직자, 수도승, 수녀가 있기 때문이다.6) 아래 내용들은 가톨릭 교회나 가톨릭 교회 사제들에게만 해당되지는 않는다.

  고유한 섹슈얼리티sessualità를 돌보기

  고유한 섹슈얼리티sessualità7)를 돌보는 것은 각자에게 끊임없는 도전이다. 독신 생활을 서약하는 많은 사제에게는 인간적, 영적으로 기댈 곳에 충분하지 않다. 서약은 독신 생활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진지한 발전 과정을 거친 후에 해야 한다. 사제 서품 후에도 평생 양성의 교육 시스템을 통해 견고한 심리적, 영적 지원을 주는 다양한 통합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명확하고 탁월한 사제양성지침―2016년 12월 성직자성에서 반포한 Ratio Fundamentalis에 제시된 것8)―이 반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래 수도자와 사제 교육 과정의 많은 부분에서 인간 성숙을 위한 양성은 아직도 부차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성소 위기가 대부분 사랑에 빠지고 그 다음 순간에―대개 처음으로 경험하는 일이라고 한다―자신이 부부생활이나 가정생활을 갈망함을 깨닫게 되는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본다면 양성 책임자들이 이 중요한 영역에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9)

  심층 심리학은 충동의 거부와 부인에서 비롯되는 이런 방어 기제에 대해 말한다. 영적 차원에서는 이것을 무감각acedia과 관성inertia, 태만과 나태라고 부를 수 있다. 양성담당자가 영적인 경험이나 인간적인 발전 단계를 진지하게 다루지 못할 때에, 그리고 피양성자들이 내리는 결정을 받아들이는 데에 실패할 때에, 이것이 피양성자들에게 직접적, 간접적으로 전이된다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심리적으로 억압되면 한 개인이, 성적인 욕망의 경우, 이론적으로는 거부하거나 고려하지 않았던 것을 행동으로 옮기게 만들 위험이 있다. 해소되지 않은 욕구들과 더불어서 말이다. 적극적으로 또는 수동적으로 성적 갈망과 관련된 모든 것을 억누르거나, 또는 저항을 크게 할 수 없는 아동과 젊은이를 대상으로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성적 충동을 표현할 때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

  가톨릭 교회 안에서 사제직의 개념 

  훨씬 이후에야 밝혀진 것이지만, 가톨릭 교회에서 사제 직분과 역할을 이해하는 방식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상의 많은 지역에서 사제는 아직도 흠 없는 하느님의 사자로 여겨진다. 사제에게 특별한 힘, 권위와 지도 권한이 맡겨진다. 이와 유사한 사제 이미지는 신자들에게 침범할 수 없는 존재로 사제를 이상화시킨다. 이것 때문에 사제의 면모를 비판하거나 사제가 나쁜 일을 할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교회 밖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는 까닭을 다소 설명할 수 있다. 성폭행 희생자들은 사제와 성적 접촉을 했을 때 사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잘못이 있고 자신이 더러운 존재라고 느낀다. 어떤 이들은 사제가 자신에게 가지는 육체적, 감정적 관심 때문에 특별한 존재, “사제의 영역 안으로 들어 올려진 것”으로 자신을 여기기도 한다. 수년간, 그리고 십여 년간 당한 성폭력을 희생자들이 왜 말할 수 없었는지 답을 찾을 때 그것에 대한 설명 가운데 하나는 양심의 갈등, 자신이 저항할 수 없는 폭력 행위의 희생자라고 느끼는 것,  잔인한 행위의 당사자로 사제를 지목해야 한다는 사실에 엄청난 부담을 갖는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 희생자들은 성추행을 한 사제들과 가까웠다. 사제들은 청소년 그룹의 사목자나 책임자로서 또는 학교라는 환경 안에서 그들과 함께 있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아주 열성적이고 다른 이들을 신뢰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 신뢰는 이용당하고 파괴되었다.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 또는 사제직 지망자 때 사제가 흠 없는 존재라고 배운 사람은, 사제가 스스로를 정당화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쉽게 형성한다. 신성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취할 수 있다는 생각. 이런 종류의 사고방식은 왜 어린이와 젊은이를 성폭행한 사제들이 그 행위를 부정하거나 그들 자신도 희생자, 또는 단지 공범자(“그가 나를 유혹했다.”, “그가 좋아했다.”)라고 여기는지, 그리고 그들이 초래한 고통을 왜 알지 못하는지 설명해 준다.

  어떤 사제직 지망자들은 신학생이나 사제로서 자신의 신분을 ‘직업’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근무 시간이 끝나면 ‘사적으로’ 사제라는 신원과 어긋나는 일들을 하게 된다. 이들은 특권이나 권력, 그리고 그 신분이 주는 외적 아름다움을 열망하고 복음이 요구하는 소명의 대가―가난, 정결, 순명―를 치르거나 예수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으려는 자세를 갖추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참호 사고방식 

  마지막으로 사제의 성폭력을 가능하게 하고 그것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을 가로막는 가톨릭적 혼합 요소가 있다. 우리가 ‘참호 사고방식mentalità da trincea’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태도다. 교회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면 공적 차원을 배제하면서 ‘내부’에서 해결하기를 원한다. 교회 스스로에 대해서나 제도 자체에 대한 평판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침묵을 강요당하는) 희생자들의 고통을 간과하고, 다음과 같은 중요한 미디어 법칙을 망각한다. “먼저든 나중이든 일들은 알려지게 된다. 당신이 주도권을 잡고, 무엇을 실수했는지 파악하고 솔직하게 사과하면, 신뢰를 얻을 것이다.”

  여기에 주교와 그의 사제의 특별한 관계와 책임에 대한 일방적 해석이 등장한다. 한편으로는 ‘부성적인 돌봄’은 용서와 자비만이 아니라 의로운 처벌을 의미한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주교들은 집단정신으로 무엇보다도 자기 ‘편’을 보호하고 약한 사람과 곤궁한 사람들의 선(善)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덧붙여서 말하고 싶은 것은 성폭행 가해자들이 자신의 행위를 그럭저럭 무마하고 자기 장상들을 조종하는 데 아주 능숙하다는 사실이다. 장상들은 그들의 약속(“저는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을 과신하여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거짓, 잘못된) 자비를 베푼다. 장상은 외부로부터 유능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자신의 수단과 전략으로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렇게 자신의 참호 안에 머물면서 그 참호가 폐쇄된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무시한다, 아일랜드, 호주, 미국의 가톨릭 환경에서 자주 그리고 지속적으로 자행된 성폭력이 은폐되어 있다가 밝혀지는 것이 이런 경우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시기에 등장한 수도원들과 새로운 영성 공동체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곳에 오랜 기간 상대적으로 성소가 많았으므로 교회에 큰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이들 수도자 집단―그중 일부는 전통적인 형태의 전례와 신학과 결부되어 뚜렷하게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여 왔다―에서 심각하고 다양한 성폭력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널리 알려진 사례로 그리스도의 레지오Legionari di Cristo(멕시코에서 설립), 베아티튜디네 공동체Communauté des Béatitudes(프랑스에서 창립)와 북이탈리아 빌라레지아 선교 공동체Comunità Missionaria di Villaregia, 그리스도교 삶 공동체Sodalitium Christianae Vitae(특히 페루), 칠레 산티아고의 페르난도 카라디마Pernando Karadima 신부를 중심으로 한 그룹을 들 수 있다.

  이런 사례들은 항상 아동만을 성폭행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다. 남녀 수련자나 학생처럼 자기 보호 아래 있는 사람이 희생자가 되었다. 순명 서원과 엄격한 종교적 행실을 빌미로 극단적인 의존 관계가 형성되고 그 안에서 모든 형태의 비판이 금지되고 처벌을 받는다. 내적 포럼과 외적 포럼과 같은 영적 전통의 근본적 규범이 무시되는 것은 물론이고, 성사의 오용(고해성사의 비밀 준수, 그리고 공범자에 대한 사면absolutio complicis, 즉 사제가 제6계명을 거스르는 행위의 상대방에 대한 사면)도 자행된다.

  이 점과 관련해서 창립자의 인격에 대해서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성폭행, 재정 문제와 표절 행위로 자신의 공동체에서 추방당하고, 파문도 포함하는 교회의 처벌을 받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수십 년간 권세를 부릴 수 있었다. 아무도 감히 영적으로 정당화된 그들의 절대 권력과 요구에 의문을 제기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어떤 통제 조직도 움직이지 않았고 어떤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 시스템도 채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다.

  이들 전부가 모두 사제였거나 사제인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것은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를 표면화시킨다. 교회 내 폐쇄적인 환경에서, 그리고 열린 커뮤니케이션이나 적절한 양성과 발전 과정을 거부하는 곳에서는 성폭력 위험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또한 명확하지 않은 정부 구조와 모호한 위계의 경계도 성폭력이 가능한 조건을 촉진한다. 이 측면에 대해서는 소위 디트먼 보고서Deetman Report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보고서는 네덜란드 가톨릭 교회의 성폭력 사례들을 다루고 있는데, 이를 통해 해소되지 않은 절차적인 문제들이 많다는 점이 드러났다. 책임 소재가 분명하게 결정되지 않을 때 사람들이 책임을 회피하기가 쉽다.

  참호 사고방식도 혼란스러운 조직 체계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교들과 수도회 장상들의 권위와 지도력은, 이 이슈가 인간 생명 보호를 다루는 것이기에 참으로 필요한 것이다. 어떠한 경우이든지, 이들의 역할에 관련된 권한은 외적인 통제와 내적인 헌신을 요청하며, 이는 다시금 권한을 지닌 이들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 입각하여 자신들의 위치와 역할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23,11)

  우리 모두를 위한 질문과 과제 

  신뢰가 가장 중요한 곳에서, 성폭력으로 지금 겪고 있는 위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우리는 교회의 존재 방식에 대해 재검토할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자신에게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어느 지점까지 그렇게 하기를 회피하는가? 어느 만큼 정의를 피하고 가해진 피해가 미친 해악을 외면하는가? 스캔들을 직면하면서 어떻게 다시 우리의 사목 활동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어느 지점까지 우리 시선은 우리 자신을 향하고 우리 에너지와 우리의 사도적 창조력을 막아버리는가? 교종 베네딕토 16세는 고위 성직자를 포함하여 성폭행 가해자들에게 일관성 있게 조치를 취했다. 그는 (교회 안에서) 권력을 어떻게 행사할 수 있는지 뛰어난 모범을 자발적인 사임으로 보여주었다. 교종 프란치스코는 성직주의, 직업주의, 편안한 삶이라는 병들에 낙인을 찍고 복음의 단순성과 진정성으로 돌아오라고 지치지 않고 설교한다.

  우리가 이런 사항들을 성폭력 희생자의 영적 트라우마의 원인과 결과들에 대한 문제에 적용한다면 다른 질문들이 떠오른다. 오늘날 복음적인 의미에서 권력 행사를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까? 남성과 여성이 권력을 이해하고 다루는 방식이 어떻게 서로 보완할 수 있을까? 교회 구조 안에서 효과적인 공동 책임을 수행하고 검증 가능한 통제 메커니즘을 채택할 수 있기 위하여 사회 및 경제 분야에서 기업 관리와 규정corporate governance e compliance으로 정의하는 것에 어떻게 동조할 수 있을까? 사제들의 사목에서 정말로 핵심은 무엇이며 사제들이 본당 및 기타 기관에서 수행하는 지도력을 협력자들에게 얼마나 위임할 수 있고 위임되어야하는가? 개인과 공동체 차원에서 영의 식별, ‘참호’와 ‘혼돈’ 사이에서 믿을 만한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데 필요한 일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을까? 주교들과 수도회 장상들은 어떻게 여러 결정들을 저울질하고 올바른 순간에 그것들을 취하는 것, 즉 올바른 식별을 배울 수 있을까? 미래의 사제들과 수도자들은 어떻게 양성되어야 하는가? 양성 분야에서 책임을 맡아야 하는 사람들의 양성에 우리는 얼마나 투자하는가?

  여기에서부터 우리는 이미 교회에서 책임을 맡은 사람들만이 아니라 또한 일반 신자들에게도 예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을 믿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들여다보게 된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2) 순수하고 단순하게 진실을 대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울 수 있는 현실을 직면할 수 있는 용기와 의지를 요구한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개인과 제도의 실패에 직면할 때 자신보다는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눈과 정신과 마음을 여는 사람들은 인간적 영적 차원에 대해 자신과 다른 사람에 관한 것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또한 회심과 용서의 은총에도 자신을 개방한다. 이 은총은 진심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이것은 또한 수치심, 낙담, 의혹 및 불신에 노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면서 자신의 힘듦을 짊어질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믿는 이의 공동체 안에서 지지를 얻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도움이 주어진다.

  이 태도는 하나의 길을 열어준다. 그 길은 인간적인 심연abissi을 관통하면서, 그리고 (성 이냐시오가 말하듯이) “영적 어둠”을 통해, 은총의 도움으로 완화와 치유에 이르기까지 데려갈 수 있다. 이런 체험은 무한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에게도 일어난다. 수십 년간 우울증과 고통 안에서 절망하며 자살의 위기를 겪었지만 생명의 샘으로 이끄는 길을 발견하는 단계에 도달한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지옥을 통과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권세에 대해 신뢰할 만한 증인이다. 전율과 트라우마에 다시 빠질 위험을 견뎌내고 이 삶을 증언한 많은 이들은 이어서 자신이 예수님의 수난, 죽음, 부활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했다는 것을 확신했다

  성폭력과의 투쟁은 아직도 더 길게 지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한 규정 소개나 안내 지침이 그것에 대한 해결이라는 환상에는 이제 작별을 고해야한다. 그 해결은 희생자들에게 정의를 행하고 온전한 예방을 위해 근본적인 회심과 단호한 태도를 지닐 것을 요구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전한 하느님의 메시지는 이런 활동과 복음의 핵심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의 샘이자 힘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특히 작은 이들과 상처 입은 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악을 결정적으로 물리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성년자 성폭행도 마찬가지다―그럴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치명적인 오판일 것이다. 그러나 가능한 한 그 위험을 줄이고 더 예방10)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보편 교회에서 균형의 바늘은 천천히 굳건하게 올바른 방향으로 돌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전임자의 노선을 지속하고 강화하였다. 특히 교황청 아동보호 위원회를 설립하였다. 교종은 그렇게 보편교회 차원에서 가톨릭 교회 전역에서 아동 보호를 효과적으로 가속화 할 수 있는 구조적, 실질적 조건을 창안했다.


* La Civiltà Cattolica 2017 IV 244-254 | 4017 (4/18 novembre 2017)
** Hans Zollner S.J.
1) 성폭력(性暴力, 영어: sexual violence)이란 심리적, 물리적, 법적으로 타인에게 성(性)과 관련해 위해를 가하는 폭력적 행위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성적인 접근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성폭행(강간), 성추행, 성희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 역자 주
2)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가톨릭 교회에서 수 십 년에 걸쳐 벌어진 아동 성추행 스캔들을 폭로한 미국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의 ‘스포트라이트’팀 기자들의 실화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2002년에 그들은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스캔들을 폭로하고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가톨릭교회의 행태를 만천하에 밝히며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스포트라이트’팀은 집요한 취재를 바탕으로 사건의 진실을 밝힌 공로를 인정받아 2003년 미국 최고의 언론상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 역자 주
3) B. Böhm – J. Fegert et al., «Child Sexual Abuse in the Context of the Roman Catholic Church. A Review of Literature from 1981-2013», in Journal of Child Sexual Abuse 23 (2014) 635-656 참조.
4) C. J. Scicluna – H. Zollner e al., Verso la Guarigione e il Rinnovamento. Chiesa e abusi sessuali sui minori, Pontificia Università Gregoriana, 6-9 febbraio 2012 참조.
5) 12세기말 마드라사는 다마스쿠스, 바그다드, 모술 및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 도시에서 번성했다. 마드라사(Madrasa)라 불리는 이슬람 신학과 철학 그리고 코란을 교육하던 모스크의 부속학교에서 출발했다. ― 역자 주
6) 미국과 호주에서 나온 두 개의 John-Jay-Reports의 놀라운 통계 수치로서, 아동 성폭력에 대한 제도적 응답을 위한 왕립 위원회는, 이슬람 영적 지도자와 랍비를 포함하여, 성직자에 의해 저질러지는 폭력이 그리스도교만이 아니라 여러 종교 공동체에서 거의 같은 수준으로 벌어지고 있음을 보고하였다.
7) 섹슈얼리티Sexuality 또는 성(性)은 생물의 성별과 성적 행위 따위를 일컫는 말로, 인간의 경우 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 사고, 감정, 가치관 등을 포함한다. 섹슈얼리티는 인간의 성적 태도의 심리적, 사회적, 문화적 측면들을 가리킨다. 반면에 성적 행위sexual activity는 바로 성행위 자체를 가리킨다. ― 역자 주
8) G. Cucci – H. Zollner, “il nuovo documento sulla formazione sacerdotale”, in Civ. Catt. 2017 II 61-75 참조.
9) 독일주교회의에서 나온 성추행 사례 연구 DBK (Deutsche Bischofskonferenz, Conferenza episcopale tedesca)와 그레고리안 대학교 아동 보호 센터(Centre for Children Protection della Pontificia Università Gregoriana)에서 수행한 국제 연구 시리즈 첫 자료들 참조.
10) 예방의 조건과 예방 작업의 가능성에 대해서, S. Witte – B. Böhm et al., «E-Learning Curriculum “Präention von sexuellem Kindesmissbrauch für pastorale Berufe. Forschungsergebnisse”», in Nervenheilkunde 34 (2015) 547-554; K. A. Fuchs – H. Zollner, «Präention in der katholischen Kirche: Drei Beispiele aus der Praxis katholischer Institutionen», in J. Fegert – M. Wolff (eds), Sexueller Missbrauch in Institutionen: Entstehungsbedingungen, Pr¦vention und Intervention, Weinheim – Basel, Beltz, 2015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