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백성이 어디에서 창조적이었나?”
칠레와 페루 예수회원들과의 대화

«DOV’È CHE IL NOSTRO POPOLO È STATO CREATIVO?»
Conversazioni con i gesuiti del Cile e del Perù*1)

교종 프란치스코

  교종 프란치스코는 2018년 1월 16일 화요일, 바빴던 칠레와 페루 사도적 순방 공식 일정 첫날 저녁 7시에 산티아고의 우르타도Hurtado 센터에서 90명의 칠레 예수회원들을 만났다. 그 장소에는 작은 녹색 화물차량 복제본이 전시되어 있었다. 칠레 예수회원이었던 성 알베르토 우르타도가 도시의 소외된 이들에게 구호물품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 이 작은 차를 사용했었다. 이 전시물은 성인의 사도적 열정을 상징한다. 교종은 관구장 크리스티안 델 캄포 신부의 안내에 따라 성인의 유해가 모셔진 경당으로 갔다. 1995년에 축성된 이 성지에는 성인의 무덤과 칠레 각 지방의 흙을 모아 놓은 석관이 있다. 이 석관은 칠레의 모든 신자를 마음에 품고 있었던 성인의 사랑을 상징한다. 관구장 신부는 모든 예수회원을 대표해서 교종에게 인사했다. 그 자리 모인 예수회원들 중에 젊은이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관구장은 교종에게 “칠레 방문 소감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칠레인들의 환영을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여쭈어 보았다. 이 질문으로 예수회원과 만남은 아주 친근하고 따뜻하게 시작되었다. 관구장은 참석자 중에 친형제인 101세인 카를로스 알두나테와 100세인 호세 알두나테 신부를 소개하였다.

  다음에 나오는 대화 본문은 교황청에서 인정한 형식에 따라 게재되었다.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예수회)
  황정연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예수회) 옮김

  교종 프란치스코는 다음과 같은 담화로 시작하였다.

  카를로스 신부님을 뵙게 되어 기쁩니다! 신부님은 제가 서원 직후 인문학 과정을 밟던 1960년대에 저의 영적지도 신부님이셨습니다. 호세 신부님은 당시에 수련장이셨고, 다음에 관구장이 되셨습니다. 카를로스 신부님은 관리자이셨고 좋은 의미로 왕이었습니다! 정말로 아주 훌륭한 정신이 담긴 영적 조언을 주셨습니다. 한번은 제가 어떤 사람에게 무척 화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 때문에 신부님을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을 만나서 혼내 주고 싶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하게! 정말로 당장 그 사람과 관계를 끊어 버릴 생각인가? 다른 길을 찾아 보게.” 이 충고를 결코 잊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신부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칠레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어제 도착했습니다. 오늘 하루 가는 곳마다 극진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저에게 큰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한 예수회원이 질문했다. “교종직을 수행하시면서 체험하신 큰 기쁨과 아픔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지금 교종으로 아주 차분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콘클라베에서 아주 놀랄 일이 저에게 곧 일어나리라는 것을 감지하였을 때부터 커다란 평화를 체험했습니다. 오늘까지도 그 평화가 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에 감사드립니다. 이 평화는 정말로 순수하고 온전한 선물로 느껴집니다. 이 평화를 앗아가지는 못하지만, 저를 아프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험담입니다. 저는 험담을 싫어합니다. 험담은 저를 슬프게 합니다. 이런 일은 폐쇄된 환경에서 주로 일어납니다. 사제나 수도자가 험담하는 것을 볼 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이렇게 물어 보고 싶습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당신 곁에 여인을 두지 않기로 했고, 결혼하지 않았고, 자녀도 가지지 않습니다. 험담이나 하는 미혼남으로 인생을 끝내고 싶습니까?” 정말로 참담한 삶입니다!

  아르헨티나/우루과이 관구 예수회원이 질문했다. “교종으로서 어떤 저항을 마주치셨고, 어떻게 대응하셨습니까? 식별을 하셨습니까?”

  어려움 앞에서 저는 결코 ‘저항’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식별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식별을 하고 싶습니다. 저항이 있다고 쉽게 말해 버리고 낙담해서, 이런 대립 상황에도 어떤 진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반대되는 의견을 통해서 도움을 얻으려고 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다른 이에게 자주 물어봅니다. 이 질문이 아주 유익합니다. 많은 경우 저항이 실제로는 오해나 불충분한 설명에서 나온 반응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처음에 저에 대한 저항으로만 보였던 것을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제 단점이 될 수도 있는데, 간혹 상대방이 저의 생각을 바로바로 잘 이해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내용을 중요하지 않게 여겨 자세히 설명하지 않기도 하고, 논리적으로 비약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제가 설명을 더 잘했어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설명을 하면, 상대방이 그 순간에 “아 그러셨군요. 동의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상반되는 견해들의 의미를 잘 살펴보는 것이 저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그렇지만 정말로 저항하는 것이라고 알게 될 때, 제 마음이 분명히 편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변화를 추구하고자 하면 저항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항상 그래왔어.”와 같은 상투적인 표현이 만연합니다. “항상 그렇게 해왔는데, 왜 바꾸어야 합니까? 이런 일들은 늘 그렇고, 항상 같은 방식으로 처리해왔는데, 왜 다른 식으로 합니까?” 이는 우리 모두가 살아가면서 겪는 커다란 체험입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 모두 제2차 바티칸 공회의 이후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까지도 공의회에 대한 저항이 지속됩니다. 이 저항은 공회의의 정신을 상대화하고 희석하려는 시도를 의미합니다. 이런 저항 캠페인에 참여하는 이들을 볼 때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아쉽게도 이런 광경을 목격합니다. 따라서 저항이 존재하느냐는 질문 앞에서 이런 현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저항을 보고 있고, 알고 있습니다.

  교의에 대한 저항도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이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정신건강을 위해서 이런 류의 ‘저항’을 내용으로 삼는 인터넷 웹사이트를 보지 않습니다. 누구인지 알고 있고, 어떤 단체들인지 알지만, 단순히 제 정신건강을 위해서 그런 글을 읽지는 않습니다. 정말로 심각한 것이 있다면, 다른 분들이 저에게 알려주십니다. 여러분도 그런 문제는 다 아시게 되죠.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역사학자들은 한 공의회가 뿌리를 내리려면 한 세기가 걸린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중간 지점에 있습니다.

  종종 사람들에게 공의회 문헌을 읽었냐고 질문합니다. 이 문헌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읽었지만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십 년이 지났습니다! 저희들은 공의회 이전에 철학을 공부했지만, 신학은 공의회 이후에 공부하는 혜택을 누렸습니다. 관점의 변화를 삶으로 체험했습니다. 그 당시에 이미 공의회 문헌들이 있었습니다.

  저항을 감지할 때, 가능하다면 대화를 시도합니다. 그러나 저항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진정한 교의를 소유하고 있고 상대방은 이단이라고 비방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말이나 글에서 영적 선의를 찾지 못하기 때문에, 저는 그들을 위해서 단순하게 기도만 합니다. 기분이 좋을 수는 없지만, 정신건강을 생각해서 이런 부정적인 감정에 머물지 않습니다.

  이어서 한 수련자가 질문했다. “많은 이들이 교회를 주교와 사제로 간주합니다. 저는 일부 주교와 사제들의 가난 실천의 문제, 그리고 여성의 참여 제한과 청소년의 입지 축소 등에 대해서 아주 비판적입니다. 이러한 의견 앞에서, 우리가 속한 교계제도가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무엇을 제시하시겠습니까?”

  조금 전에 주교들에게 그들과 하느님 백성과의 관계에 대해서 제가 생각하는 바를 말했습니다. 작년에 사도좌 정기방문ad limina 기간 중에 두 번에 걸쳐 긴 모임을 가졌던 것을 고려해서, 이번에는 아주 짧게 제 생각을 전달했습니다. 현재 라틴 아메리카 교회의 가장 큰 해악은 성직주의입니다. 성직주의란 교회가 하느님의 거룩한 믿음의 백성이며, 이 백성 전체는 믿음에 있어서 무류성(無謬性)을 지닌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제 제가 잘 알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서 말하겠습니다.

  오래 전에 제가 교황청 라틴아메리카위원회에 편지를 하나 썼습니다. 오늘날 이 내용이 다시 토론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선교사 정신을 지니는 은총은 성품성사나 수도서원이 아니라, 세례성사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백성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자신을 바치는 공의회의 길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볼 때 저는 큰 위안을 체험합니다. 그러나 일부는 아직 군주처럼 행동합니다. 반드시 하느님의 백성에게 본래 그들의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합니다.

  같은 방식으로 여성에 대한 주제를 다룰 수 있습니다. 제가 한 교구의 주교로 지낼 때 아주 특별한 체험을 했습니다. 어떤 주제를 논의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물론 주교들과 사제들의 견해를 들으면서 시작했고, 결정해야 할 여러 문제들을 두고 성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같은 주제를 남성 신자들, 여성 신자들의 모임에서 다루었습니다. 그리하여 훨씬 더 다채롭고, 실용적이고, 풍요로운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이 단순한 체험이 지금 생각납니다. 단순하지만 성찰해 볼 만합니다. 여성 신자는 ‘마리아의 차원’이라고 폰 발타살이 지칭한 풍요로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성 신자들은 그들이 지닌 풍요로움을 교회에 모두 바쳐야만 합니다. 이것이 없다면, 교회는 절름발이가 되거나 의족을 사용해야 되므로 잘 걸어갈 수가 없습니다. 걸어가야 할 길은 아주 길게 놓여 있습니다. 제가 오늘 주교에게 말한 것을 반복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군주가 되지 마시고, 백성에게 가까이 다가가 머무르십시오.

  후안 디아스 신부가 말을 하자, 교종은 그를 알아보고, “후아니토!”라며 애칭으로 불렀다.

  디아스 신부는 다정하게 인사를 전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과 다른 여러 곳에서 세속성의 위험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예수회원들이 세속성을 추구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삶의 어떤 측면에서 주의해야 합니까?”

  앙리 드 뤼박의 저서 「교회에 관한 묵상』의 마지막 장에서 세속성에 관한 경고를 찾았습니다. 그는 교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악을 세속성이라고 말한 베네딕도회 안스칼 보니에르 아빠스의 견해를 인용합니다. 이를 읽으면서 세속성을 더 잘 이해하고 싶은 바람을 느꼈습니다. 물론 성 이냐시오는 영신수련의 첫 주간의 세 번째 기도에서 세상의 속임수를 알아차리라고 당부합니다. 이 묵상에서 죄의 회개를 위해 청하는 세 가지 은총은 죄의 고통, 수치심, 그리고 세상과 악마와 악마의 도구에 대한 인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성은 세속성을 간과하지 않고 유혹으로 간주합니다.

  세속성을 단지 편하고 경박하게 생활하는 것으로만 보는 것은 피상적입니다. 이것은 결과에 불과합니다. 세속성은 세속의 기준을 사용하고, 그 기준을 따르고, 그 기준에 기초해서 선택하는 것입니다. 즉, 식별을 하는 데 있어서 세속의 기준을 선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무엇이 세속의 기준인지 질문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 이냐시오가 세 번째 기도에서 질문하도록 초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세속의 기준을 발견하는 데 도움을 얻도록,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모님에게 간청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세속적인지 찾아야 합니다. 간단하고 일반적인 응답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나는 어떤 면에서 세속적인가?” 이것이 진정한 질문입니다. 세속성이 일반적으로 어떤 것인지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신학 교수가 멋지게 보이고 싶어서 최신 이론을 찾는 것은 세속적입니다. 이는 세속성의 한 예이고, 수많은 다른 예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세속성이 무엇인지 식별하는 과정에서 속아 넘어가지 않는 은총을 주님께 청해야 합니다.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교황님은 개혁을 계속해 오신 분입니다. 교황청과 교회의 개혁 외에, 저희 예수회가 적극적으로 지지해야 할 개혁으로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저는 오늘날 교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들 중 하나는 식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의 사목적 관점과 목표에 매우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해도 된다 또는 안 된다’는 사고방식에 익숙합니다. 「사랑의 기쁨」에 활용된 도덕성은 아주 전통적인 토마스주의에 기초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 도덕성은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이 직접 다룬 철학에서 나온 것이지, 퇴색한 후기 토마스주의에 기초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할 수 있다 또는 할 수 없다’, 혹은 ‘여기까지는 해도 된다 또는 여기까지는 해서는 안 된다’는 사고방식을 교육하던 시대에 양성을 받았습니다. (교종은 참석자들 중에 한 명을 바라보며) 막시모 대학에 윤리신학을 가르치러 왔던 콜롬비아 예수회원을 아직 기억하십니까? 그가 여섯 번째 계명을 가르칠 때 한 학생이 대담하게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약혼한 남자와 여자가 서로 키스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서로 키스할 수 있는지 없는지, 그것이 질문이었습니다! 그 상황을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리고 그 교수는 대답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전혀 문제없습니다! 다만 두 사람의 입술 사이에 손수건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신학적 사고방식이었습니다. 한계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방식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런 사고방식의 결과를 보고 있습니다.

  「사랑의 기쁨」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살펴보면, 이 사도적 권고의 8장 ‘이혼한 사람이 성체를 모실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비판이 가장 컸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기쁨」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이런 식의 구분을 하지 않고, 식별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것은 이미 진정으로 위대한 고전적 토마스주의 도덕성의 핵심이었습니다. 따라서 제가 바라는 예수회의 기여는 교회가 식별의 측면에서 성장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식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식별이라는 은총을 예수회원들에게 주셨습니다.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이 이야기를 예수회원들과 다른 모임에서도 한 적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하면, 레도콥스키Ledóchowski 총원장 신부의 임기 말에 예수회 영성에서 가장 큰 결과물로 나온 것이 「에피토메Epitome(완벽한 본보기)」입니다. 그 안에 회원들이 지켜야만 하는 규칙들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예수회 기본법과 회헌을 혼합해서 만든 거대한 규정집이었습니다. 요리사를 위한 규칙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규정들 사이에 위계질서를 세우지 않고, 모든 규정들을 우선순위 없이 섞어 놓았습니다. 레도콥스키 신부는 한 베네딕도 수도원 아빠스와 가까운 친구 사이였는데, 어느 날 규정집을 가지고 아빠스를 방문했습니다. 그 직후 아빠스는 그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총원장 신부님, 당신은 이 규정집으로 예수회를 죽였습니다.” 그 아빠스가 옳았습니다. 왜냐하면 「에피토메」가 식별의 능력을 앗아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습니다. 얀센 신부님은 전쟁 후에 예수회를 인도해야 했습니다. 그가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역할을 잘 했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루페 신부님이 총원장직을 수행하는 은총이 내렸습니다. 베드로 아루페 신부님은 이냐시오 영성 센터, 교양지 「크리스투스Christus」, 그리고 영신수련에 대한 열정으로 우리 예수회의 은총인 식별에 대한 인식과 실천을 쇄신하였습니다. 그는 에피토메를 극복하고, 파브르와 이냐시오에게로, 즉 사부들의 가르침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당대의 교양지 「크리스투스」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또한 루이스 곤잘레스 신부님이 자신의 영성 센터를 통해서 하셨던 역할이 있습니다. 신부님은 영신수련을 지도하기 위해서 전 세계 예수회를 돌아다녔습니다. 곤잘레스 신부님은 문을 열어젖히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오늘날 크게 예수회가 성장한 면은 바로 이 쇄신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 예수회의 역사를 상기하면서, 우리가 식별의 감각을 잃어버린―우리가 완전히 잃어버린 것은 아닐 수도 있지만, 거의 활용하지 않았던―순간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이 식별의 감각을 교회에 바치십시오. 교회는 이것이 정말로 필요합니다. 우리가 교회에게 줍시다.

  페루 관구의 한 신학자가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협력에 관한 질문입니다. 예수회가 교황님께 어떤 도움을 주었습니까? 어떤 협력이 있었습니까? 교황님과 예수회는 어떤 관계입니까?”

  제가 선출되고 이틀 만에 총원장 아돌포 니콜라스 신부가 산타 마르타의 제 방으로 저를 찾아 왔습니다. 그렇게 협력이 시작되었습니다. 인사차 저를 방문했습니다. 그때 저는 지금 사용하는 방이 아니라, 콘클라베 중에 머물던 작은 방에서 계속 지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대화했습니다. 그리고 아돌포와 아르투로 두 총원장 모두 이 협력을 매우 중시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아마 스파다로 신부가 여기 계실 텐데…

  스파다로 신부: “저 여기 있습니다!”

  저기 객석에 계시네요. 이 신부님은 저와 예수회의 관계가 처음 시작될 때부터 증인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예수회는 저에게 가능한 모든 도움을 주려고 열려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에서, 특히 교리와 같은 지성적인 면에서 큰 도움을 줍니다. 아무도 현재 ‘예수회 방식’의 교황청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진지하게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는 교회의 정신 안에서 어떻게 교회와 함께 일하는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교회 안에서 교회와 함께 생각하는 정신은 예수회 카리스마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지난 총회의 문서 공표과정에서 교종의 승인을 생략했습니다. 저는 이제 예수회가 어른이기 때문에, 그런 승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예수회가 실수하면, 불만이 저에게 알려질 것이고, 그때 보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협력하는 방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 가지 아주 중요한 것을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양심현현2)입니다! 권고합니다! 예수회원들에게 양심현현은 보물입니다. 예수회의 은총입니다.  절대로 이를 소홀히 하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예수회원들과의 사적인 만남은 자연스럽게 이 성지의 넓은 공간으로 이어졌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연대 프로그램에서 도움을 받는 노동자, 학생, 노인, 노숙자 및 이민자들이 그 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리스도의 집” 사목활동 전반을 담당하는 예수회 신부 파블로 워커는 인사말에서 “친애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 식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교황님을 환영합니다. 몇 해 전에 저희는 이 자리에서 교황님과 함께 한잔하려고, 교황님을 초대하였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먹는 것이 기적이다.”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워커 신부는 소니아 카스트로 여사가 그의 딸 이자벨 레이날과 함께 간식으로 준비한 빵을 축복해 달라고 교종에게 부탁하였다. 교종은 강복 기도를 다음과 같이 하였다. “주님, 우리가 나누고자 하는 이 음식을 축복해 주십시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손수 만든 음식입니다. 이 음식을 만든 손, 이를 나누어 주는 손, 이를 받는 손을 축복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마음을 축복해 주시고, 이 나눔이 우리의 여정을 나누도록, 우리의 삶을 나누고, 나아가 천상행복을 나누도록 가르쳐 주시옵소서. 아멘.” 교종은 하느님의 백성 성경을 선물로 받고, 테레시아 세들라코바Terezia Sedlakova의 자비로우신 예수 성화를 성전에 바친 후, 모든 참석자들과 함께 주님의 기도를 바쳤다. 그런 다음 교종은 모두를 강복하였다.

  ***

  2018년 1월 19일 페루 방문 첫날, 교종은 파블로 쿠친스키 대통령을 예방하고 저녁에 예수회 신부들이 활동하는 산 페드로 성당으로 갔다. 예수회는 16세기에 이 성당을 지었다. 이 성당은 리마의 유적지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들 중에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이 성당은 예수 성심 국립 성지이다. 이 성당의 모습은 로마의 제수 성당을 떠올리게 한다. 성당의 전면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세 개의 출입문이 있다. 그리고 장대한 종탑이 있다. 성당 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품위 있게 장식되어 있고, 자연광이 내부로 잘 들어오게 되어 있다. 성전은 세 신랑으로 나누어져 있고 좌우 측면에 열 개의 경당이 있다. 산 페드로는 페루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성당이다.

  고해소가 자리한 경당 입구에서 관구장 후안 카를로스 모란테 신부와 지역 장상 호세 엔리케 로드리게스 신부가 프란치스코 교종을 맞이하였다. 성전의 좌측 신랑을 지나서 약 100명의 예수회원이 모여 있는 제의실에 도착했다. 모란테 신부는 교종에게 방문에 대한 감사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알론소 데 바르사나Alonso de Barzana(1528-1598), 프란시스코 델 카스티요Francisco del Castillo(1615-1673), 안토니오 루이스 데 몬토야Antonio Ruiz de Montoya(1585-1652)와 다른 신부들을 거명하면서, 원주민 선교와 교육을 위해서 예수회가 헌신해왔다고 설명하였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영향으로 새롭게 가지게 된 전망에 대해서 말하고, 가난한 이를 위한 우선적 선택, 영신수련, 평신도와 협력, 새로운 식별이 필요한 사도직의 도전 등 여러 과제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그런 다음 교종의 말씀이 시작되었다.

  여기에 기록된 대화는 교황청의 승인을 받은 형식에 따라 게재되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이야기를 시작합시다. 몇 가지 질문을 준비하셨죠. 아주 자유롭게 말씀해 보십시오.

  첫 번째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 페루의 예수회원들은 최근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화해와 정의를 위해 헌신해왔습니다. 요즈음 정치 세력들이 갑자기 합의에 도달한 것처럼 보이고, 화해는 대중을 향한 감정적 호소로 보입니다. 화해가 어떤 필요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제안되었습니다. 제 질문은 우리가 화해를 원할 때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고, 무엇을 명심해야 합니까? ‘화해’라는 단어가 남용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정의가 충분히 공들여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교황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감사합니다. ‘화해’라는 단어가 남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각하게 훼손되었습니다. 오늘날 이곳뿐만 아니라 다른 중남미 국가에서도 ‘화해’라는 단어가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성 바오로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과 하느님의 화해를 설명할 때는 강한 의미를 지닌 단어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화해’는 겉치레로 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 의미가 소진되어 버렸습니다.  종교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우리가 서로 눈을 바라보며 마음을 나누는 것과 같은 인간적인 측면에서도 그 의미가 약화되었습니다. 지금은 이 화해가 협상 테이블 밑에서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그릇된 행동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런 움직임을 거슬러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화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그 의미를 약화시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당신들은 그렇게 사용하십시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개념이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을 화해시키려 애쓰면서 계속 일할 필요가 있습니다. 낮은 곳에서 시작해서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직접 찾아가서 유익한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상호이해를 돕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힘을 주고 기적을 일으키는 기도의 무기에 의지해야 합니다. 특히, 겸손한 설득이라는 인간적인 도구를 가지고 노력해야 합니다.

  제가 제안하는 길은 설득입니다. 기회가 되면 반대자들을 찾아가서 만나십시오. 제가 페루의 상황과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자세히 모르기 때문에, 현재 제안되는 화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의 말을 신뢰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다른 라틴 아메리카 국가에서 같은 일이 발생되고 있고, 저는 이것이 진실하고 깊은 화해가 아니라 협상이라고 여러분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정치 지도력의 예술은 협상 방법에 대한 이해를 포함한다고 봅니다. 문제는 이 협상에서 무엇을 협상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협상 테이블에 가져온 많은 안건들이 당신의 사적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그 협상은 이미 끝난 것입니다. 이것은 협상도 아닙니다. 이미 다른 것입니다.

  따라서, ‘화해’ 대신에 ‘희망’에 대해 말하는 것이 낫습니다. 충만한 의미를 실현하지 못하는 저속하고 근시안적인 방식으로 이런 개념을 사용할 생각을 마십시오. 반복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페루의 상황을 자세히 모르지만, 여러분의 말을 믿습니다. 나아가 이는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국가의 현상이기 때문에,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교황님, 우리 관구의 회원 숫자가 줄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늙어 가고 있고, 젊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책임이 부여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많은 기관을 가지고 있고, 상황이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스스로를 격려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고 우리의 성소를 지속적으로 강화하도록 저희에게 어떤 권고를 해 주실 수 있습니까? 우리가 속상해 하고 화를 내는 대신에, 어떻게 이 상황에서 기쁜 삶을 추구할 수 있겠습니까? 현재 젊은 회원이 얼마 없기 때문에, 과거에 해왔던 일이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는 현실을 바라보고 있는 연로한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습니까? 오늘날 어려운 상황을 대면하고 있는 젊은 회원들에게는 무슨 말을 해야 합니까?”

  신부님께서 우리는 많은 ‘기관’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단어를 바꾸어 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활동과 기관을 구별해야 합니다. 예수회에서 기관은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모든 활동이 기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 과거에는 그랬었는지 모르지만, 세월이 흘렀고 이제는 더 이상 기관으로 존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날 기관이라고 하는 것과 활동이라고 하는 것을 식별해야 합니다. 무엇이 매력적이고, 힘을 주고, 전망을 밝히고, 예언자적 모습을 드러내는지 살펴야 합니다. 지난 시대에는 하나의 기관으로 존속하였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남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언제나 하는 사목적인 공동 식별을 해야 됩니다.

  아루페 신부님은 기준을 가지고 활동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이냐시오 성인께서 생각하신 기관은 사람들을 이끌면서 현실적 요구에 대한 해답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스스로 식별하는 삶을 살아가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아마도 이것이 여러분이 대면하고 있는 도전일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과 인력이 감소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기관 전체가 실망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실망하지 마십시오. 예수회는 리치 총원장 신부 시기에 기관으로 볼 때 아주 절망스러운 시기를 체험했습니다. 이 리치 신부님은 산탄젤로 성에서 죄수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3) 그 시기에 리치 신부님이 예수회원들에게 쓴 편지에 한 기관 전체가 실망에 빠지는 것을 극복하기 위한 훌륭한 행동 기준과 식별 기준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실망은 당신을 바닥으로 끌어 내립니다. 이런 실망은 마치 젖은 담요를 둘러쓰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은 얼마나 큰 실망에 빠져 있는지 느끼며, 괴로움과 환멸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희망을 포기하고 엠마오로 떠나는 제자들처럼 “우리는 기대하였는데……”와 같은 담화를 합니다. 예를 들어, “영광스러운 예수회는 달랐었지”, “교회의 민첩한 기사였지. 그러나 지금은……”과 같은 표현들입니다.  

  실망의 영은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리치 신부님의 편지를 읽어 볼 것을 권고합니다. 나중에, 루탄4) 신부님 시기에 예수회는 프리메이슨 때문에 또 다른 실망의 기간을 경험했습니다. 리치 신부님 시기보다 심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리치 신부님 때 예수회에 대한 억압이 절정에 이르렀었습니다. 그리고 예수회의 역사에서 다른 실망의 시기들이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예수회를 설립하신 사부들, 즉 이냐시오와 파브르 등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저에게 감화를 주시는 바르사나5) 신부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분은 아르헨티나의 산티아고델에스테로Santiago del Estero에 계셨었는데, 12개 원주민 언어를 구사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이 신부님을 ‘서인도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로 불렀습니다. 사막과 같던 그곳에서 믿음의 씨를 뿌렸고, 신앙을 세웠습니다. 이 신부님은 유대인 출신으로 본래 이름이 바 샤나Bar Shana라고 합니다. 낙담하지 않고 신앙의 제도와 기관을 세워 나아갔던 이런 분들을 바라보는 것이 유익합니다. 저는 하비에르 성인이 중국을 바라볼 수 있으나 중국에 들어갈 수 없는 실패의 상황에 처했을 때, 성인이 실망했었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비에르가 주님을 향해서 “당신께서 이 일을 원하지 않으시군요. 괜찮습니다. 이 일과 작별합니다.”라고 말씀하셨을 것 같습니다. 성인은 자신에게 제시된 길을 따라갔습니다. 이 경우에는 죽음이었습니다. 하지만 다 괜찮습니다!

  영적 실망, 이 실망이 우리 삶에 영향을 행사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대신 우리는 영적 위안을 받고 살아가는 예수회원을 찾아야만 합니다. 이 조언을 드리는 것이 얼마나 유익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항상 영적 위안을 구하십시오. 영적 위안을 여러분 영적 생활의 시금석으로 여기고 늘 찾으십시오.

  중국 입구에 있었던 하비에르와 마찬가지로 항상 앞을 바라보십시오. 하느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미소가 시들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레시피를 드릴 수는 없습니다. 위안 중에 사도직과 기관에 대해 식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로렌조 리치 신부님의 편지를 읽어 보시라고 권고합니다. 유럽의 법원이 예수회에게 치명적인 판결을 선고하는 것을 알았던 가장 큰 실망의 순간에도 위안을 선택하기를 원했던 것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교회는, 특히 성직자와 수도자들은 사제 성추행 문제를 목격하면서 크게 좌절했습니다. 성추행에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스캔들로 인해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저희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시겠습니까? 격려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어제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칠레의 성직자와 수도자들에게 이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겪고 있는 가장 큰 영적 실망입니다. 수치심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 수치심을 이냐시오 영성에서 중요한 은총으로 보고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성 이냐시오가 첫 번째 주간에 삼중담화6)를 통해서 청하라고 권고한 은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수치심을 은총으로 수용하고, 수치심을 절실하게 느껴야 합니다. 우리는 상처받은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는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 사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3월 24일에 군사 쿠데타, 독재, 그리고 희생된 이들을 기억합니다. 매해 3월 24일마다 마요르 광장은 그 기억으로 가득 채워집니다. 어느 해 3월 24일에 저는 그곳의 주교관을 나와 고해성사를 위해서 가르멜 수녀원에 갔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마요르 광장에서 내리지 않고, 그곳에서 여섯 구역 떨어진 역에서 내렸습니다. 광장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여섯 구역을 지나 광장의 측면으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길을 건너려고 할 때, 두세 살 된 아이와 함께 있던 한 부부를 보았습니다. 그 아이가 부모들보다 앞서 제 쪽으로 뛰어왔는데, 아버지가 아이에게 “이리 와! 이리 와! 이리 와! 소아성애자 조심해!”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큰 수모를 겪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대주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그냥 신부인 줄 알았을 것 입니다. 너무나 수치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때로는 ‘값싼 위로’를 구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이 문제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통계를 보세요. 잘 모르지만, 소아성애자의 70%는 피해자 가족이나 잘 알고 지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체육관과 수영장과 같은 장소에서 주로 일어납니다. 가톨릭 성직자 중 소아성애자 비율은 2%에 미치지 못합니다. 1.6%입니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형제 중 단 한 명이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도 정말로 끔찍한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사제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어린이와 어른을 축복하도록 명하셨는데, 축복하는 대신에 그들을 파괴했습니다. 끔찍합니다! 우리는 학대를 당한 이들의 체험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때로는 공개적으로, 때로는 비공개적으로, 저는 금요일마다 피해자들을 지속적으로 만나왔습니다. 이번 칠레 방문 중에도 이런 모임을 가졌습니다. 너무나 힘든 과정을 거쳐 왔기 때문에 그들은 완전히 무너져 있었습니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교회의 커다란 굴욕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허약함을 드러내는 것만이 아닙니다. 분명히 말해서, 우리가 위선자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기관이 관여된 성추행에서는 조직적 비리가 드러났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설립된 수도회의 창립자들이 성추행을 저질렀습니다. 이미 공개된 사례들입니다. 교종 베네딕토 16세는 많은 회원을 지닌 남자 수도회에 제재를 가해야 했습니다. 이 수도회 창립자가 그 죄악을 습관적으로 범했습니다. 이 수도회에는 여성 수도회도 있었는데, 여성 창립자도 그 악습을 퍼뜨렸습니다. 남성 창립자는 나이가 어리고 미성숙한 수도자들을 학대했습니다. 베네딕토 16세가 여성 수도회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고, 제가 그 수도회를 제재했습니다. 여기에는 많은 고통스러운 사례가 있습니다. 이런 성추행은 주로 번성하던 일부 신규 수도회에서 일어났습니다. 매우 특이한 현상입니다.

  이 수도회에서 일어난 성추행은 권력의 노예가 되어버린 정신상태가 초래한 결과입니다. 이는 그 악의 뿌리에서만 치유될 수 있습니다. 좀 더 말씀드리자면, 세 가지 수준의 학대가 함께 일어납니다. 내적 법정과 외적 법정의 혼돈7) 등과 같은 권위의 남용, 성추행 및 재정 관리 문제입니다.

  항상 돈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악마는 지갑을 통해 들어갑니다. 이냐시오는 악마가 유혹하는 첫 번째 단계를 재물로 봅니다. 그 후에 허영심과 교만이 따라옵니다. 첫째는 재물입니다. 이 내부 성추행 문제가 드러난 신규 ​수도회에서 세 가지 차원의 문제가 함께 드러났습니다.

  겸손하지 못한 제안일 수 있지만, 칠레인들에게 이에 대해서 제가 드린 연설을 한번 읽어 보십시오. 지금 즉석에서 말씀드리는 것보다 더 깊이 생각해서 체계적으로 표현한 내용이 그 안에 있습니다.

  “전체 예수회의 식별 과정에 대한 도움을 청합니다, 총원장 소사 신부가 우리의 강점과 약점을 고려하여 예수회가 오늘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교황님은 전 세계를 보시는 안목이 있고, 저희를 잘 알고 계시고, 보편 교회를 위해 예수회가 어떻게 공헌할 수 있는지도 아십니다. 예를 들어 성령께서 오늘날 교회를 미래로, 또는 앞으로 다가올 것을 향해서 어떻게 인도하신다고 보고 계시는지 말씀해주시면 저희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페루 관구에 국한하지 말고, 지금 우리가 있는 장소에서 성령의 길을 따라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가 프로그램을 바꾸는 데 몇 가지 유익한 지침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마디로 대답하겠습니다. 아마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제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한 마디의 말은 ‘공의회’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을 다시 집어 들고 「인류의 빛Lumen Gentium」을 읽으십시오. 칠레 주교들과 어제 만났는지, 그 전날 만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 주교들에게 탈성직주의를 촉진하라고 격려했습니다. 아주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충실한 하느님 백성이 지닌 믿음에서의 무류성에 대한 인식입니다. 공의회는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이 가르침이 교회를 발전시킵니다. 선교사 정신과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은총은 세례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화가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에 의해 이루어짐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주님께서 세상을 복음화하는 교회를 원하신다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인식합니다. 이것이 내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이고, 이를 콘클라베 이전 총회에서 몇 분간 단순하게 말했습니다. 외부로 나아가는 교회,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러 나아가는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하고 그리스도로 자신을 채우는 바로 그 순간, 그리고 그 이후로 지속되는 순간을 살아가는 교회입니다. 저는 항상 묵시록의 예를 사용합니다.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겠다.”(묵시 3,20) 주님께서는 밖에 계시고 들어오시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때때로 우리의 집 안에 계시면서 당신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해 달라고 문을 두드리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밖에 자리한 교회, 나가는 교회가 되라고 요구하시고 있습니다. 야전병원과 같은 교회, 하느님 백성의 상처를 치료하는 교회입니다! 때로는 하느님의 백성들이 증언의 부재, “해도 된다, 안 된다”에만 관심을 두는 가르침, 또는 엄격하고 도덕주의적인 교리로 인해 상처받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 가난한 사람들은 공산당의 이론적 문구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핵심입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성령께서 이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강한 저항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항이 발생한다는 것도 좋은 표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갈 길은 바로 이 길입니다. 만일 아니라면, 악마가 저항하기 위해서 고생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난, 선교사 정신, 충실한 하느님의 백성 의식을 기준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에서 “그러나 우리 백성이 어디에서 창조적이었나?” 질문해야 합니다. 일부 빗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바로 대중 신심에서 창조성이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 백성은 대중 신심에서 그렇게 창조적일 수 있었을까?” 질문해야 합니다. 성직자들이 관여하지 않고, 알아서 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었기 때문에, 백성들은 계속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오늘날 예수회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겸손으로 식별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저는 어디를 가든지 이에 대해서 말해왔습니다. 이런 내용을 매체를 통해 전달하는 스파다로 신부님은 지칠 정도로 이에 대해서 많은 글을 썼습니다. 교종인 제가 공식적으로 여러분에 진심으로 요청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수도자, 성직자와 주교의 틀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식별력이 부족합니다. 심각하게 부족한 식별력을 지닌 모습이 자주 드러납니다. 저희 세대는 지금과 다른 아주 형식주의적인 신학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어떻게 식별해야 할지 모릅니다. 칠레 예수회원들에게 「사랑의 기쁨」에 대한 저항에 대해서 말하면서, “해도 된다, 안 된다”는 방식을 그만두자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두 번에 걸쳐 열렸던 시노드가 이룬 모든 일과 결과를 “해도 된다, 안 된다”로 축소시키고 있습니다. 확실히, 식별할 줄 모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식별하는 법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식별하기 위해서는 영신수련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자신을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항상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 성당 주임 신부는 교종에게 그를 위해서 마련한 의자의 의미를 설명했다. 1992년에 ‘빛나는 길’8)의 공격으로 인해 성전의 일부가 손상되었다. 복원을 위한 벽 보강작업 중에 1672년에 만든 목재 창문틀을 벽에서 떼어냈다. 이 목재를 리마의 바로크식으로 잘라서 이 방문을 위해 의자를 만들었다. 교종은 그에게 미소 지으며 농담을 했다. “저는 1672년 위에 앉았네요. 복권 살 때 이 번호를 사용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관구장 신부는 교종에게 단체사진 촬영을 제안했다. 교종은 감사의 마음으로 답했다.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여러분에게 큰 은총을 기대합니다. 제가 교종으로 선출되리라는 것을 감지했을 때부터 큰 평화를 느꼈습니다. 오늘날까지 그 평화가 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제가 그 평화에 머무는 것을 허락하시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모임이 끝나자 교황은 이탈리아의 금세공인 안토니오 베델이 1981년에 만든 은 십자가를 예수회원들에게 선물했다. 그 십자가 안에는 십자가의 길의 여러 처가 새겨져 있다. 이 십자가의 길은 일반적인 14처가 아니라, 15처로 묘사되었다. 이 예술가가 주님의 양팔 사이에 그리스도 부활의 표상을 새겨 놓기 원했기 때문이다. 베델은 교종 프란치스코 가슴에 걸린 십자가를 디자인한 금세공이다. 이 십자가 양식은 그의 제자 주세페 알브리지가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을 위해 은으로 만들었던 것과 같은 양식이기도 하다.

  교종과 단체사진을 찍고 모임이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교종은 산 페드로 성전을 가로질러 성당 정문으로 나가기 전에 리마의 사도인 가경자 프란치스코 델 카스티요Francisco del Castillo 사제의 무덤 앞에 머물렀다.


*1) La Civiltà Cattolica 4024, 313-330 (17 feb/3 mar 2018)

2) 양심현현은 예수회의 고유한 생활양식으로 회원이 자신과 하느님의 관계, 사도적 활동, 공동체 생활, 자기 관리 등 삶의 전반에 대한 자신의 사정을 장상에게 투명하게 전달하는 만남이다. 장상의 회원 파견 결정 등에 도움을 주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 역자 주

3) 로렌조 리치Lorenzo Ricci(1703-1775) 신부는 유럽 국가의 정부들과 예수회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예수회가 역사상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총원장직을 수행했다. 재임 시 예수회는 포르투갈, 프랑스, 스페인 등의 국가에서 추방되었다. 예수회는 클레멘스 14세에 이르러 해산되었다. 예수회원들은 교구와 다른 수도회에 합류하게 되었다. 리치는 산탄젤로 성에 투옥되었고, 2년 후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그곳에 혼자 머물렀다. 온갖 굴욕을 겪으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회가 해산 당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4) 얀 필립 루탄Joannes Philippe Roothaan(암스테르담, 1783 또는 1785.11.23. – 로마, 1853.5.8.) 신부는 네덜란드 예수회원으로 1829년 7월 9일부터 선종할 때까지 예수회 총원장직을 수행하였다. 예수회 회복 후 두 번째 총원장이었던 그는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예수회를 위해서 유익한 일을 많이 했다. 그의 주된 관심은 예수회의 정신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있었다. 그의 일반 편지 11통 중 9통이 이를 주제로 삼았다. 그는 선교지역의 활동을 확대했다. 그 시기에 예수회원의 숫자가 두 배로 늘어나 5,000명에 달했다. 그러나 예수회는 1848년 혁명 시기에 여러 나라에서 추방되면서 고통을 겪었다.

5) 알론소 데 바르사나(쿠엔카, 1530 – 쿠스코, 1597) 신부는 1577년 페루 남동쪽 티티카카 호숫가 줄리 지역에서 봉사하는 사명을 받았다. 그리고 현재 볼리비아의 중심부에 11년간 머물렀다. 그 후 투쿠만에 파견 되었다. 1589년까지 파라과이와 그 지역의 많은 부족들 사이에서 일을 계속했다. 1593년까지 칼카퀴에스Calchaquies 계곡과 그란차코Gran Chaco 지방에서 원주민들을 선교했다. 많은 원주민의 언어를 습득했고. 여러 언어로 문법서, 사전 및 교리서를 발간했다.

6) 삼중담화는 성 이냐시오 영신수련에서 어떤 관상이나 묵상의 마지막 부분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모님에게 세 번에 걸쳐 은총을 구하고 대화를 나누는 기도 방식을 지칭한다. ― 역자 주

7) 개인의 양심에 따라 판단해야 될 행위들이 속한 내적 법정과 공동체의 외적이고 공적인 관계와 관련된 행위들이 속한 외적 법정의 구분을 분명히 하지 않고, 두 법정을 혼합하여 권위를 행사하는 문제를 지칭한다. 내적 법정에 속한 문제들은 하느님과 개인의 관계에 해당되는 것으로 원장이나 장상이 외적 법정에 해당하는 권위를 가지고 개입할 수 없다. 그 반대의 경우도 불가하다. ― 역자 주

8) ‘마리아테기 빛나는 길의 페루 공산당’은 모택동주의를 따르는 페루의 게릴라 조직이다. 1969년에서 1970년 사이에 아비마엘 구즈만이 ‘페루 공산당-붉은 깃발(PCP-BR)’과 단절하면서 이 조직을 수립했다. 이 빛나는 길은 무장 투쟁을 통해서 페루의 정치 체제를 전복하고 사회주의를 수립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