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혁명 이후 한국

LA COREA DEL SUD DOPO LA «RIVOLUZIONE DELLE CANDELE»*

오세일 신부(예수회,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2017년 촛불 혁명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은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다른 많은 민족들처럼 한국인들도 비극적인 전쟁에 이은 국가의 분단, 그리고 독재자와 부패한 지도자로 점철된 현대사의 질곡을 거치며 크나큰 고통을 받아 왔다. 한편, 한국인들은 지난 세월 동안 정부의 부패를 종식시키고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시위를 멈추지 않았으며, 마침내 희망과 비폭력의 상징인 촛불을 높이 밝혀들었다. 한국의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함으로써 2016년 10월 29일부터 시작한 촛불 혁명은 마무리 되었다. 6개월 동안 토요일 저녁마다 광장에 모여 촛불을 밝혔는데, 한때는 참석자가 이백만 명에 이른 적도 있었다.

  사회 정의를 향한 시민들의 열망에 힘입어 2017년 5월에 새로 들어선 정부는 고질적인 사회 병폐를 개선해야 할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의 구속뿐만 아니라1) 남북 상황에서 비롯되는 지정학적이고 외교적 난제를 해결하는 일이 포함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되어 온 남북 분단 상황이 초래한 긴장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한반도에서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출 수 없을 것이다.(시편 85,11 참조) 한국천주교회는 정의와 평화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이 땅에서 정의와 평화가 입맞춤하는 그날을 향해 노력해 왔다.

  한국 현대사의 두 얼굴: 발전과 적폐

  대한민국은 한국 전쟁(1950-1953)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한강의 기적’이라 회자되는 과정을 거치며 경제화와 산업화를 급속하게 이룩하였고, 1987년 국민투표로 정치적 민주화를 일부분 확보하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주최하고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였으며 최근에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치르며 국가 위상을 높여 왔다.

  한국은 OECD에 가입할 만큼 세계적으로 ‘발전’한 국가의 대열에 진입한 사실을 자부해 왔지만, 극심해지는 사회 양극화와 OECD 국가들 가운데 높은 자살률로 대변되는 ‘삶의 질’의 저하 현상이 심각하게 부각되어 왔다. 한 마디로, 한국 사회의 외면적 발전과 내재적 문제가 마치 ‘빛과 그림자’처럼 시민 사회의 분열을 단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진보 진영은 인권과 사회정의 및 평화를 증진시키고자 하는 반면, 국가 안보와 경제 성장이라는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보수 진영은 반공을 내세우며 철저한 친미 노선을 추구해 왔다.

  한국사회의 두 얼굴은 어떻게 만들어져 왔을까?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 사회-역사적 차원에서 단계별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일제 강점기(1910-1945)에 대한 민족의 상처와 과오에 대한 역사적 성찰과 청산이라는 과제를 완수하지 못했다. 1948년 9월 7일 제헌국회는 반민특위를 설치하여 일본제국에 부역하고 독립운동가들을 박해한 ‘친일매국분자’들을 심판하려 했다. 그러나 초대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자기 정권의 지지 기반이었던 친일파를 보호하기 위해 이들을 ‘반공주의자’라는 명분으로 석방하고 1949년 6월 6일 반민특위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한국 전쟁으로 남북이 분단된 이후 냉전 상태가 지속되면서 친일 세력은 ‘반공주의’를 방패로 삼아 남한 사회에서 엘리트층으로서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결국, 남북분단 체제를 이용하려는 주류 정치인들에 의해 대한민국 초창기부터 사회정의와 민주주의의 실현이 위협받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 군사독재 정권(1961-1992)은 전체주의 이념을 앞세우며 국가가 주도하는 재벌 위주의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소외된 계층(농민, 노동자, 빈민 등)의 착취를 정당화하고 기본적 인권을 무시하였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반공주의를 앞세우며 종북주의를 배격해야 한다는 논리에 의해 억압되었다. ‘선성장 후분배’ 또는 ‘기업이 살아야 국민이 산다.’와 같은 구호로 표현되는 자유시장 경제의 에토스를 강화해 온 정부는 비판적 목소리를 탄압하였다. 게다가, 1998년 한국 경제가 IMF의 감독을 받게 되면서 IMF가 옹호하는 신자유주의 자유시장 체제가 한국의 경제구조의 변화를 가져오며 극심한 양극화를 초래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주도한 민주당 정권의 시기(1998-2008) 동안 IMF 외환위기를 극복했지만 신자유주의 세계 경제 질서 속에서 ‘경제 안정과 성장’을 지속해낼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이 두 대통령 모두 북한을 방문해, (현재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은의 아버지인)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가지며 남북 간의 협력을 논의하여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를 조성하였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셋째,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를 신봉하는 보수 정권(2008-2017)은 국가와 시민사회를 와해시켰다. 이명박 대통령은 재임 기간 동안(2008-2013) 자유무역협정(FTA)의 발효 및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일부 기업가와 정치인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 주었지만 일반 서민들의 삶과 국토환경에 엄청난 해를 끼치며 공동선의 가치를 무너뜨렸다. 최근 박근혜 정부(2013-2017)에서는 정경유착과 폐쇄적 국정비리가 더욱 심화되었다. 공적 책무성과 사회정의가 결핍된 채 사익을 추구해 온 이들 정권은 인권을 억압하고 남북 간의 긴장을 고조시켜 왔으며, 그 결과 사회정의와 평화를 이루어 내지 못하였다. 이 두 명의 전직 대통령 모두 현재 구속 수감되어 있다.

  촛불 혁명과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

  박근혜 대통령(이하 호칭 생략)은 1961년의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획득한 박정희 대통령(1963-1979)의 맏딸이자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영예를 안고 2013년 2월 25일 취임하였다. 이후, 한국의 국정 운영에 무질서와 분열이 지속되어 왔다. 집권 초기 박근혜는 대중적인 지지와 인기를 누렸는데 이는 한국의 산업화를 주도한 아버지 박정희의 후광에 힘입은 것이었다. 그런데 소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폭로되면서,2) 박근혜가 무지하며 국정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인물이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시민들의 연대와 6개월 동안 매주 주말마다 진행된 촛불 집회의 염원에 힘입어 2016년 12월 9일 국회는 (찬성 234표, 반대 56표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의결하였으며,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만창일치로 탄핵을 인용하였다. 이어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및 삼성 비리에 대한 특검이 진행되었다.

  박근혜 정권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공적 책무성’의 방기에 있다. 공적 책무성이란 공공 영역에서 특정한 문제 혹은 이슈가 발생할 때 그것에 대해 책임을 다해 설명해야 하는 의무를 일컫는다. 예를 들어, 2014년 4월 16일, 박근혜 정권은 학생이 대부분을 차지한 304명의 시민이 익사한 ‘세월호 참사’에 대하여 책임 있는 설명을 하지 않았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동안 박근혜가 7시간 동안 자리를 비웠으나 이를 국가 기밀로 밀봉해 둔 상태다. 한편, 교종 프란치스코는 2014년 8월 방한 중에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다.”3)고 말하며 세월호 희생자의 유가족들을 만나고 그들을 위로해 주었다.

  2017년 촛불집회는 독재 시절 비폭력 투쟁을 강조하며 어둠 속에 촛불을 밝히던 시국기도회가 일반 시민들의 염원과 소망을 평화롭게 태워 올리는 평화적인 시위문화로 발전된 것이다. 그런데 정치적 변화를 갈망하는 시민들의 열망에 기름을 부은 사건 하나가 촛불 집회의 도화선이 되었다. 2015년 11월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10개월 동안이나 사경을 헤매고 있던 가톨릭 농민회의 지도자 백남기(임마누엘)의 시신을 경찰이 유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검을 강행하려고 시도하였던 것이다. 그의 죽음 앞에서 병원측은 외인사가 아니라 병사라고 기재하였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부검을 집행하려고 경찰력을 동원한 정부에 대해 종교계와 시민들은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정부와 경찰은 죽음을 ‘그의 탓’으로 몰고 가려고 했다.4)

  2016년 11월 5일 백남기 농민의 장례식을 치르고 이어서 진행된 민중총궐기 대회가 촛불 집회의 도화선이 되었다. 시민 누구나 촛불을 들고 모이는 집회에서 시민들은 ‘보다 나은 국가 사회’를 염원하며 인간이 참으로 주인이 되는 ‘새로운 질서’에 대한 갈망을 표출하였다.

  촛불집회는 10월 19일부터 4월 29일까지 6개월 동안 매주 토요일에 서울의 중심지인 광화문 광장과 전국 도심에서 총 24차례 진행되었다. 특히, 국회에서 탄핵안을 의결하기 직전인 2016년 12월 3일 제6차 촛불집회에서는 서울에서 170만 명, 전국 232만 명이 참여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보수 단체들의 태극기 맞불 집회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전개되었지만, 한국 국민들의 절대다수는 촛불집회를 지지했다.5)  탄핵 그 자체는 법제적으로 국회와 헌법재판소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이와 같은 정치제도 안에서의 혁명적 결과는 촛불집회로부터 기인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촛불집회의 전개 양상에는 세계 사회운동사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특기할 만한 요인이 많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반년 넘는 긴 투쟁이 ‘평화 시위’로 전개되었다는 사실이다. 촛불집회가 시작되던 초기 단계에서는 성난 군중이 공식 집회에 이후 행진을 막기 위해 세워둔 경찰 버스 위에 올라가 무력으로 경찰 저지선을 뚫고자 하는 시도도 없진 않았다. 그러나 절대 다수의 시민들은 “평화, 평화, 평화…”를 연호하며 평화 시위가 이루어져야 함을 일깨웠으며, 시민과 경찰 양측 모두에게 무력 충돌로 인한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 이후 사람들이 차벽을 치고 있는 경찰 버스에 항의하는 뜻으로 버스 옆면에 포스트잇을 도배하다시피 하였지만, 양심적인 시민들이 무고한 어린 경찰들에게 과한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포스트잇마저도 자체적으로 모두 제거하였다.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에 참여하여 축제를 즐기듯 어린 자녀를 데리고 온 젊은 부부들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했는데, 이들은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도 교훈이 될 수 있는 평화 집회를 간절히 요구하고 있었다. 또한 어린 중고생들과 수많은 시민이 집회가 끝나가는 밤 11시 전후로 쓰레기봉투를 들고 집회 현장에 버려진 각종 쓰레기를 주워 담으며 함께 청소하는 공감대가 확산되었다. 또한 국정 농단에 대한 분노가 거세지면서 집회에 참석한 군중이 점점 더 청와대 가까이 접근해서 시위를 하였지만, 단 한 건의 불상사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 결과 평화 집회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이루어냈다. 특별히, 서울 광화문 광장과 지방 번화가에서 진행된 시민들의 자발적인 3분 스피치 릴레이인 ‘자유 발언대’는 흥겹고 감동적으로 이어졌다. 

  이를 통해서 대한민국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간절한 열망과 정치 의식이 매우 고양되어 나갔다. ‘아래로부터의 참여 민주주의’가 집회장에서의 ‘집합 정신’을 통해서 역동적으로 구성되고 확산되어 제도적인 정치권에도 강력한 영향을 끼쳐 나갔던 것이다.

  시민들이 비폭력 평화 시위를 위하여 밝혀든 촛불이 결국 합법적인 정권교체를 평화롭게 이루어낸 것은 기적과도 같았다. 2016년에서 2017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계절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6개월 동안 지속된 대규모 집회가 국가의 봄,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점을 자랑스러워하는 한국 국민들이 이를 ‘촛불혁명’이라고 부른다. 30년 전 1987년 민주화 투쟁은 대통령 직선제를 성취하였지만, 한국정치는 대의정치제도의 한계와 정경유착, 적폐로 인하여 실질적 민주주의의 위기에 봉착했다.

  하지만 촛불혁명은 ‘국가의 주인은 국민임’을 공표하며 정치적 주체로서 국민의 힘을 각성하게 되고 시민 연대와 정의로운 국가를 향한 강한 열망을 바탕으로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실현하였다. 대통령 탄핵과 새 대통령 선출의 과정은 아래로부터 올라온 정의와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들의 깊고도 열렬한 갈망이 합법적인 입법부와 사법부의 최고 권력에 의해서 확인되어 체제 안에 편입된 것이다.

  국가 통합과 평화를 향한 새로운 여정을 향하여

  새로 선출된 문재인 대통령은 많은 점에서 준비된 정치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제16대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역임했고 2009년 노대통령의 서거 이후 정치에 입문했다. 2012년 제18대 대선에서 고배를 마신 후, 그는 2014년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며 유가족들의 눈물 어린 단식 투쟁에 열흘 간이나 동참했으며 촛불혁명과 연대하고 민주당의 개혁과 신뢰를 재구축해 왔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문재인은 2017년 5월 10일 41%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이후 대통령으로서의 국정지지율은 80%에 이르기까지 했다.6)  더욱이,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 언론, 교육, 대기업 개혁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국가의 근간을 새롭게 정립하고자 하고 있으며, 핵발전소 사업을 포함한 각종 개발 사업에 단호한 규제를 하고 있다.

  그런데만, 대한민국은 안팎으로 산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다른 나라들처럼 한국도 국제 경기의 변동으로 인한 경제 불안정에 직면하고 있다. 삼성의 실질적 소유주뿐만 아니라 전직 대통령인 이명박도 비리와 뇌물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으며, 노동 시장에서의 비정규직 근로자 해고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마련되지 못한 상황이다. 특히, 대한민국은 신자유주의 세계 자본주의 시장의 외압과 분단국으로서 냉전 체제의 대립에서 오는 안보 위협을 동시에 겪고 있다. 이 모든 어려움과 문제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국가 통합과 국제 질서의 평화로운 재편을 향한 길을 활발히 모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다.

  한반도 평화라는 난제

  이제 남북 관계를 살펴보자. 2017년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된 한반도에서 평화가 없이는 정의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모든 국민이 잘 알고 있다. 1985년 북한은 핵무기 확산을 금지하는 핵확산방지조약(NPT)에 참여했지만, 1993년에 이를 철회하고 핵무기를 보유하기 위해 시도해 왔다.7) 특히 최근에는 모든 주변 국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개발을 추진해 왔다. 2017년 9월 북한이 제6차 핵실험에서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뉴스는 남한과 일본, 미국과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국가들에 충격을 주었다. 국가 지도자로서는 평범하지 않은 두 인물,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주고받은 말싸움은 국가 안보와 전쟁 가능성에 대한 불안을 증폭시켰다.8)

  미국은 한국전쟁 이래로 남한의 군사 작전 통제 권한을 갖고 있다. 남한 정부는 미국의 정치적 압력 아래에서 2007년에서 2016년에 걸쳐 제주도에 해군 기지를 건설하였으며, 2016년에는 일본과 연합하여 중국에 대항하고자 하는 미국의 지정학적 전략에 발맞추어 사드(THAAD) 미사일을 국내에 배치하였다. 미국 국내 경제의 보호를 강조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몇몇 한국 상품 일부에 특별 관세를 부과하고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한국 경제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남한은 사드 배치를 취소시키려는 의도로 한국 제품 불매운동이나 한국 관광 금지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중국의 압박을 강하게 받고 있다. 요컨대, 미국과 중국이 남한을 궁지로 몰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현재의 정치적 불확실성을 해결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하기 위해 시도해 왔다. 올해 1월 남북한 당국자들은 동계올림픽에 함께 참가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이에 교종 프란치스코는 올림픽 기간 중에 휴전하는 전통이 “분쟁이 대화와 상호존중을 통하여 평화롭게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상징으로서 특별한 중요성을 가진다는 메시지를 발표하였다.9) 동계올림픽에 참석한 북한 지도자의 여동생 김여정은 단정한 외모와 조신한 행동으로 남한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북한 선수들과 응원단 및 가수들은 북한에 대해서 남한 사람들이 품었을 법한 냉랭한 태도를 따뜻하게 녹여주었다.

  개회식에서 남북한 선수들이 공동으로 입장하는 장면과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이 활약하는 모습을 본 남한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통일을 향한 염원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화해 분위기는 올해 4월 말에 성사될 남북한 정상회담으로 가는 길을 놓았다.

  한국인들은 이제 정상회담을 고대하고 있다.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한 결정은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 사이에 이루어질 또 다른 정상회담이 5월 말에 성사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물론, 남북한 양측의 지도자가 정상회담에서 기대하는 바는 제각기 다를 수 있다. 김정은은 대북 경제제재의 수위를 낮추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남북 정상회담이 북한의 핵무장 해제로 이어질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남한 사람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어떻게 국가의 주권을 확실히 행사하면서 세계의 열강들이 한반도의 평화를 좌지우지할 수 없도록 할 것인지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10)

  한국천주교회의 공적 역할

  한국천주교회는 1784년 유입되어 근 백 년 동안 박해기를 거쳤다. 20세기 전반기를 차지하는 일제침략기 동안 교회를 보호하기 위하여 정교분리 정책으로 일관하며 독립운동을 거부한 외국 선교사의 영향으로 교세가 미약하였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증거한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공신력이 높아지면서 교세가 급격히 성장하였다. 가톨릭 신자 인구는 현재 전체 인구의 8% 정도를 차지하지만,11) 천주교의 사회적 공신력은 모든 종교 중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발표되고 있다.12) 한국천주교주교회의(CBCK)와 교구별 정의평화위원회는 국정의 혼란기에 시국성명서를 통해서 사회복음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해 왔다.

  특히, 1987년 민주대항쟁 과정에서 한국천주교회는 역사적이고 명시적인 기여를 하였다. 김수환 추기경(1969-1998 서울대교구장 역임)은 군사독재에 저항한 최고사령관과 같은 상징적 존재였으며, 그가 머물던 명동대성당은 ‘민주화의 성지’라는 호칭을 얻었다. 한편,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역할을 주목할 만하다. 사제단은 1987년 호헌철폐를 주장하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폭로함으로써 꺼져가던 민주대항쟁에 불씨를 새롭게 피워 올렸다. 사제단은 계속해서 국가의 전체주의, 군국주의, 시장주의 정책을 비판하며 한미군사협정 문제,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환경 문제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왔다.

  2014년 이후 한국천주교회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유가족을 지원하며 촛불기도회를 이어가고 세월호 참사와 백남기 농민 사망의 진상규명을 위한 길거리 미사를 봉헌했다. 또한 2016-2017년에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수도자 연합회와 평신도 사회활동 단체와 더불어 앞장서서 투신함으로써 한국천주교회가 촛불혁명에 지속적인 기여를 하게 되었다.

  한반도의 분단은 1948년 러시아와 미국에 의해 최초로 설정되고 한국전쟁과 더불어 공고하게 되었는데, 아직도 교회와 사회 전반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촛불집회의 진보세력과 태극기 집회의 보수세력 간의 극명한 대립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남북한의 분단 상황은 시민사회의 뿌리 깊은 분열과 맞닿아 있다. 한국천주교회는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출 수 있도록 보다 통합적인 방식을 국민들에게 안내해 줄 필요가 있다.

  2014년 8월 방한했던 프란치스코 교종은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그렇다면 대화와 만남, 차이의 해소를 위하여 새로운 기회가 생기도록,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게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하는 데 끊임없이 너그러워질 수 있도록, 모든 한국인들이 형제자매요, 한 가족, 하나의 민족임을 더욱 더 인식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13) 남한과 북한에 있는 모든 국민들은 가까운 미래에 교황의 이 기도가 실제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

 


 * La Civiltà Cattolica 2018 II 124-136 | 4028 (21 aprile 2018)

 1) 지난 4월 6일 박근혜 전대통령은 권력 남용과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24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 최순실의 태블릿 PC에 관한 JTBC의 특종 보도는 전 국민에게 박근혜의 무능과 무책임함을 명백히 설명하는 단서가 되었다. 최순실의 태블릿 PC에는 박근혜의 공적 연설문을 수정해 주던 최순실의 자료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개인 명의의 재단 설립을 통해서 정부의 지금으로 대기업의 불법적인 후원금을 받아 낸 국정 농단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 대한 삼성의 승마 지원과 이화여대 부정 입학 비리가 밝혀지면서 촛불 집회로 표현된 국민적 분노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2017년 5월 30일 JTBC 보도 담당 사장인 손석희 앵커는 이 보도와 관련하여 가톨릭 매스컴 대상을 수상하였다.

 3) A. Spadaro, «Il viaggio di papa Francesco nella Repubblica di Corea. Custodia, empatia, consolazione(교종 프란치스코의 한국 방문: 보호, 공감, 위로)», in Civ. Catt. 2014 III 403-418 참조.

 4) 경찰과 정부의 태도는 나봇의 땅을 빼앗고 그를 죽인 후 그 죽음을 정당화하려 했던 아합 왕과 이사벨의 간계를 떠올리게 한다.(1열왕 21,1-10 참조)

 5) 보수 단체들은 태극기 맞불 집회를 전개하며 국가 안보를 내세우며 촛불집회를 비난하고 JTBC가 태블릿 PC를 조작하였다는 가짜 뉴스를 만들어 퍼뜨렸다. 2017년 3월 10일 박근혜의 탄핵에 반대하기 위한 집회에서는 무력 충돌로 인하여 몇 명의 시민이 사망하기도 했다.

 6) 문재인 대통령의 소탈한 품성과 탈권위주의적인 행보는 80%에 이르는 지지율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례로, 문재인 대통령은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에서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표현한 편지를 낭독한 젊은 여성에서 선뜻 다가가 따뜻하게 포옹해 주었다. 이 광경은 국민들의 가슴을 어루만져 주는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청와대 입주를 앞둔 영부인은 민원을 호소하며 울부짖는 여인을 부둥켜안고 집으로 데려가 컵라면을 대접하였다. 대통령과 영부인의 즉흥적이며 자연스럽되 격을 지나치지 않는 겸손한 태도는 국민들이 바라 마지않던 ‘인간미 넘치는 지도자’의 모습으로 환영받고 있다. 2017년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혁명과 더불어 시민의식을 구현하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공로로 미국 대서양협의회에서 수여하는 ‘세계시민상’을 수상하였다.

 7) A. Macchi, «Il ritiro della Corea del Nord dal trattato di non proliferazione nucleare(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 in Civ. Catt. 2003 I 337-344 참조.

 8) G. Sale, «Corea del Nord e crisi nucleare(북한과 핵위기)», in Civ. Catt. 2017 II 339-354 참조.

 9) www.vaticannews.va/it/papa/news/2018-02/appello-di-papa-francescoper-le-olimpiadi-invernali-di-pyeongch.html 참조.

 10) A. Spadaro, «Presente e futuro della Corea. Intervista a mons. Hyginus Kim Hee-joong», in Civ. Catt. 2017 IV 166-177 참조.(『치빌타 카톨리카』 한국어판 제5권(2018년 봄호)에 「한국의 현재와 미래: 김희중 히지노 대주교와의 인터뷰」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다. ― 편집자 주)

 11) 한국의 종교인구는 2015년 인구 센서스 자료에 의하면, 개신교 19.7%, 불교 15.5%, 천주교 7.9%, 종교 없음 56.1%로 나타난다. 한국 천주교인의 비육은 2005년 10.8%에서 2015년 7.9%로 다소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탈세속화 맥락에서의 교회의 위기와 사목적 성찰에 관한 논의는 Seil Oh, 2015, “The Crisis of Korean Catholic Church in the Post-Secular Society: In the Light of the Legitimacy Crisis,” The Catholic Theology and Thoughts, vol.76, 83-113 참조.

 12)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실시한 2017년 여론조사 결과, 한국 시민들이 가장 신뢰하는 종교기관으로 천주교(32.9%), 불교(22.1%), 개신교(18.9%)로 나타난다.(기독교윤리실천운동, 2017,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

 13) Francesco, Omelia nella Messa per la pace e la riconciliazione, nella cattedrale di Myeong-dong a Seul(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강론), 2014.8.18., in w2.vatican.va/content/francesco/it/homilies/2014/documents/papa-francesco_20140818_corea-omeliapace-riconciliazione.html/ 또한 A. Spadaro, «Il viaggio di papa Francesco in Corea. Custodia, empatia, consolazione(교종 프란치스코의 한국 방문: 보호, 공감, 위로)», in Civ. Catt. 2014 III 403-418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