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회의 자취를 따라 본 「대원칙」(Magnum Principium)과 전례의 토착화

«MAGNUM PRINCIPIUM» E L’INCULTURAZIONE LITURGICA
NEL SOLCO DEL CONCILIO*

체사레 지라우도 신부(예수회)**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광주대교구) 옮김

하느님과 회중이 같은 언어를 말한다는 놀라움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거룩한 공의회」(Sacrosanctum Concilium)가 36항에서 천명한 것은 참으로 ‘위대한 원칙’이다. 거기에는 각 전례 회중들에게 자신의 언어로 하느님과 대화할 권리를 인정한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이미 9세기 중반에 치릴로 성인과 메토디오 성인이 전례 언어 문제를 제기하였고 성공적으로 해결하였다고 한다. 세 언어만이 ‘하느님을 찬양하는 데 합당하며, 이는 히브리 말, 그리스 말, 라틴 말’, 곧 실제로 십자가의 명패 위에 쓰였던 언어들이라고 제한하는 이들에게 이 두 성인은, 전례 언어는 마치 ‘하느님께서 모든 이에게 똑같이 내려 주시는’ 비나, ‘모든 이 위에 똑같이 비치는’ 해(마태 5,45 참조) 그리고 ‘모든 이가 똑같이 숨 쉬는’ 공기와 같이 누구에게서도 빼앗을 수 없는 여러 선익 가운데 하나라고 열거하였다.1)

  치릴로와 메토디오의 사도직 활동은 오로지 슬라브 민족에게만 관련이 있었다. 이 문제가 라틴 민족에게 드러날 때까지는 수 세기가 흘러야 했고, 이때까지는 성과가 없었다. 당시는 16세기였고, 약속들로 가득한 시기였지만, 교의적인 혼란들로 불안한 시기였다. 이런 들끓는 듯한 환경에서 트리엔트 공의회는 그리스도 신앙의 일부를 이미 왜곡했던 부산물들을 막아 내느라 분주했고, 백성들의 언어로 거행하는 전례에 호의적이었던 개혁가들의 청원을 받아들일 여력이 없었다. “미사는 오로지 자국어로 거행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는 누구나 파문하면서도(Denzinger–Schömetzer[DS] 1759), 공의회는 “목자들과 영혼을 돌보는 모든 이에게 미사 중에 직접 또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 미사에 읽히는 것들을 자주 설명해 주기를 명령하는” 신중함을 보였다(DS 1749). 루도비코 안토니오 무라토리(Ludovico Antonio Muratori)는 이탈리아의 그리스도교 백성들의 손에 – 그가 말하곤 했던 것처럼 “하느님의 영광과 무지한 이들의 선익을 위해” – 감사 기도를 포함한 미사의 모든 기도문의 번역을 전해 준 첫 번째 사람이었고, 이는 1747년 출판된 그의 소책자 Della regolata divozione de’Cristiani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이 용기 있는 시도에 이어 다른 시도들이 이탈리아와 다른 나라에서도 함께 있었다. 다른 한편, 전례 거행을 위해 이런 언어들을 효과적으로 적응시키면서, 미사의 본문을 – 특히 감사 기도를 – 자국어로 백성들의 손에 쥐어 주는 데에는 아직 그 안에 깊은 구렁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구렁을 메우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 헌장’을 통하여 긴 기다림에 긍정적으로 응답하였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교회의 흐름이 바뀌었고, 가톨릭과 종교 개혁파 사이의 격렬한 대립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공의회 시기와 함께 열린 교회의 온화한 적응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전례 헌장 「거룩한 공의회」 36항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1. 라틴어 사용이, 특수법은 유지되지만, 라틴 예법에서 보존되어야 한다. § 2 그러나 미사 또는 성사 집전 또는 전례의 다른 부분에서 드물지 않게 모국어의 사용이 백성에게 크게 유익할 수 있으므로, 더 많은 여지가 거기에 부여될 수 있다. 주로 독서, 권고, 어떤 기도문과 노래에서, 이 일에 관하여 다음 장들에서 낱낱이 세워지는 규범에 따라 그러할 수 있다. § 3. 이러한 규범을 준수하며, 관할 지역의 교회 권위는 제22항 2)의 규정에 따라, [……] 모국어의 사용과 방법에 대하여 결정하고, 사도좌의 승인 또는 추인을 받아야 한다. § 4. 전례에서 사용할 라틴어 본문의 모국어 번역은 위 규정에 따라 관할 지역 교회 권위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approbari debet).”

  바오로 6세 교황께서 1964년 1월 25일 발표하신 자의 교서 「거룩한 전례」(Sacram Liturgiam)에 따라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실행 위원회’(Consilium ad exsequendam Constitutionem de sacra Liturgia)를 설립하심으로써, 전례 개혁은 시동을 걸었고, 첫 번째로 대훈령들을 발표하며 차분하게 그 여정을 시작하였다. 곧 「세계 공의회」(Inter Oecumenici, 1964), 「삼년 전」(Tres Abhinc Annos, 1967), Comme le Prévoit(1969)와 「전례 쇄신」(Liturgicæ Instaurationes, 1970)이 그것들이다. 비록 조금 뒤에, 이념상의 이유들로, 훈령 Comme le Prévoit[전례 헌장 「거룩한 공의회」 36항이 예견하듯이], 곧 레르카로(Lercaro) 추기경이 전례서의 번역과 관련하여 각 주교회의 의장들에게 보낸 서한은 더 이상 대훈령들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지 않지만, 이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고, 또 그대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 시기를 살았던 이들은 전례 체계의 본디 윤곽을 점진적으로 재발견하는 데 쏟은 열정을 기억한다.2) 이 전례 체계는 수 세기가 흐르는 동안 적지 않은 무게를 견뎌 왔던 것이다.

  개혁에 호의적이었던 이런 사실들을 확인하면서 곧바로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수용 단계에서는 이미 그 첫 해부터, 그리고 특히 그 이후의 시기에, 공의회의 제안이 지닌 선의를 자주 흐리게 하는 가벼운 행동들이 개입되었다는 것이다. 흔히 개혁을 외형적으로만 받아들여 쉽게 변형시켜 버리고, 자발성을 즉흥성과 동일시하며, 거룩함의 의미를 상실하고, 서방의 온전한 전통을 특징지었던 라틴어와 음악의 유산을 무분별하게 방치한 것 등이다. 이런 것들은 취약함의 징후들인데, 몇 년 뒤에는 이에 대하여 정당하고 특별한 어떤 권위 있는 경고가 있었다.3)

  첫 번째 대훈령들에 이어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작업으로 또 다른 두 개의 훈령이 추가되었다. 「합법적 다양성」(Varietates Legitimae, 1994)과 「올바른 전례」(Liturgiam Authenticam, 2001)가 그것이다. 특히 후자는 체계적이고 규범적인 기준으로서 – 부제가 언급하듯이 – 다만 “로마 전례서 발행에서 모국어 사용을 위해서”뿐 아니라,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의 올바른 실천을 위해서(36항)”도 제시되었다.

「올바른 전례」(Liturgiam Authenticam): 가치와 한계 사이에서

  이 훈령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무엇보다, 이는 단절된 하나의 문서가 아니라 “올바른 실천을 위한 다섯 번째 훈령”이라는 부제가 알려주듯이, 공의회가 바라는 전례 개혁을 이끌려 한 다른 훈령들에 이어서 나온 것이다. 분명히 거기에 포함된 규범들을 평가하는 데 더욱더 적합한 사람은 전례학자와 신학자, 그리고 사목자들이다.

  전례학자들은 이 문서의 특징을 이루고 있는 자국어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환영한다. 왜냐하면, 하느님 아버지와 전례 회중이 서로 잘 소통하도록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훈령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심의와 교령들을 통하여 전례 예식, [……] 개별 교회, 특히 사도들에게서 교부들을 통하여 내려온 전통을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내는 유서 깊은 동방 교회의 고유한 그리스도교 생활 규율에 독특한 중요성을 부여하였다.”(4항)고 하는 점을 기억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훈령은, 전례서 번역이 라틴어 원문에서 출발하도록 계획되어야 하며, 성경 본문일 경우에는 히브리 말, 아람 말, 그리스 말에서 번역되어야 한다(24항)고 강조한다. 모든 언어권에 대하여, “전례에 적합한 것으로 인정하게 될 거룩한 문체”(27항; 참조: 47항과 50항 다)로 작업할 필요성을 제시한다. 그리고 “용어의 직역이 모국어에서 처음에는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듣는 이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교리 교육에 대한 기회를 제공할 수도”(43항) 있으므로, 전례적 표현을 추상적이고 막연한 표현들로 단조롭게 만들지 말라고 권고한다.

  “전례문은 본질상 전례 거행에서 입으로 선포하고 귀로 듣도록 의도된 것이므로”, 훈령은 번역자들이 구두 전달의 기술들, 곧 구문과 문체, 장엄하고 고양된 어조, 두운과 모음운, 구체적이고 생생한 표상, 반복, 대구, 대조, 운율과 같은 것들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격려한다(59항).

  이러저러한 강조점들을 존중하고 공유하면서도, 전례학자들은, 예를 들어 ‘전례 개혁’이라는 개념이, 훈령 전체에서 여섯 차례밖에 나오지 않은 ‘전례의 쇄신’(instauratio liturgica)이라는 표현(2.3.6.7.20.76항)에 의지하고 있음을 확인하고서는 당혹감을 감추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원했고 바오로 6세 교황께서 개인적으로 지혜롭게 관리하신 전례 개혁이라는 이처럼 위대한 규모의 교회 사건을 왜 슬며시 덮으려 하는가? 그리고 필요한 검증과 관련하여, 주교회의들의 역할을 해치고 지역 교회의 품위를 손상할 위험이 있는 중앙 집권화를 왜 그렇게도 강조하는가?

  때로는 동일한 논증들을 이끌면서 결론의 성격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로마 예법 자체가 참된 토착화의 훌륭한 표본이며 도구”라는 것을 언급한 뒤에, 그러나 “전례서를 번역하려고 할 때에는 로마 예법의 본질과 통일된 표현을 …… 보존하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확인하고, 더 나아가 “모국어 번역 작업을 포함하는 토착화 작업은 새로운 종류나 계보의 예식을 만드는 길로 여기기보다는, 오히려 문화적 사목적 필요에서 도입된 모든 적응이 토착화 작업을 통하여 로마 예법의 일부가 되게 하고 그 안에 조화롭게 자리 잡을 수 있게 하는 길로 인식하여야 한다.”(5항)고 강조한다. 달리 말하면, 토착화의 개념은 새로운 형태들과 구조들에 대한 개방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실제로 받은 형태들과 구조들을 단순히 유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이와 비슷한 불확실성은 “이 훈령의 규범들은 이 문제에 관하여 이전에 발표된 모든 규범을 대신하여야(substituantur) 하지만, …… 「합법적 다양성」은 예외”(8항)라고 하는 주장에서 비롯된다. 이처럼 단언적인 선언에 대해, 전례학자는 다음과 같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훈령 「세계 공의회」, 「삼년 전」, Comme le prévoit와 「전례 쇄신」은 다른 할 말이 없을까? 공의회 이후의 전례 개혁을 지혜롭게 이끌었던 그 메시지들이 어떻게 갑자기 사라져 버릴 수 있을까? 첫 번째 교도권의 훈령들로 퉁명스럽게 종결한다면, 그리고 통풍구로서 「합법적 다양성」만 놓아둔다면, 이 문제에 관해 미래에 있을 수 있는 선언들에도 문을 닫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올바른 전례」를 읽고 또 읽어 보면서 적어도 몇 명은 전례서들의 편찬에 있어서 자국어를 활용하는 것이 진짜로 종점에 도달한 것은 아닌지 자문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자의 교서 「대원칙」(Magnum Principium)은 중요하고도 명확한 답변을 제시하였다.

  의무로나 다른 합법적 이유로 전례서들을 번역하는 데 관심을 가진 이라면, 얼마 전부터 그것을 승인받는 데 필요한 과정이 얼마나 힘들어졌는지를 안다. 이에 대한 설명은 「올바른 전례」가 80항에 있는 ‘recognoscere/recognitio’(인준하다/인준)라는 한 쌍의 단어를 자주 반복하는 데 있다.4) 이 용어의 의미는 전치사 ‘re-’에 딸린 어원사전을 펼쳐 보면 알 수 있는데, ‘re-cognoscre’(인준하다)는 이미 알고 있는 어떤 것을, 스스로나 다른 사람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는 것으로, 그것이 문서들의 문제라면, 교정이나 수정 작업을 목표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사전은 말한다. 이에 대해 2006년 4월 28일의 ‘교회법해석평의회의 주석’이 확인해 주는데, 거기에는 “이 교회법이나 전례서들의 ‘recognitio’(인준)는 개괄적이거나 총괄적인 승인도 아니고, 단순한 ‘인가’는 더더욱 아니다. 반대로, 검토나 주의 깊고 섬세한 교정의 문제이다. 주교회의들이 선포하거나 출판하려고 하는 관련 서적들에 대하여 적법성과 교회법적 전례적 보편 규범들과의 상응성을 판단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이 설명도 훈령 「올바른 전례」에 달려 있음을 인지해야 하는데, 바로 이어서 그에 대해 제시된 해석을 확인하면서 대폭적인 수정도 제시한다.5) 결국, ‘주석’을 보고 ‘recognitio’(인준)라는 용어가 훈령에서 지닌 가치를 연구하는 이는 일종의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petitio principii)에 직면하는 인상을 갖게 된다. 이는 설명해야 하는 것을 거론하기 위해서는 그 설명 자체의 대상이 개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주교회의들이 준비한 번역들을 상세하고 신중하게 교정하는 책무를 받아들이면서,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자신의 실제 권한을 넘어서는 직무를 짊어졌다. 실제로, 그 직무자들이 역량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체로 유럽어가 아닌 수많은 언어들에 대한 평가를 위해 요구되는 그런 지식들을 결코 갖추지는 못할 것이다. 게다가 ‘기호 논리학적’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이런 사고 외에도, 더 두드러지는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주교회의들의 역할인데, 그들은 공의회의 헌장들과 보완 문서들이 주교회의에 인정해 주었던 어떤 권한을 점진적으로 박탈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계시 헌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법으로 허용된 권한에 따라 일정한 범위 안에서 전례에 관한 규정은 합법적으로 구성된 다양한 관할 지역 주교회의에도 달려 있다”(22항 2).

  ‘recognitio’(인준)의 개념에 대한 과도한 극단화가 침체기로 이끌었던 과정들을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하여, 특히 지역 주교회의들이 전례 문제에서 부당하게 빼앗겼던 그 권한들을 다시 그들에게 되돌려주기 위하여,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개입을 결정하셨다.

중앙과 주변 사이에 권한들의 재분배

  2017년 9월 3일 발표된 자의 교서 형태의 교황 교서는 그 시작인 ‘대원칙’(Magnum Principium)이라는 단어로 공의회의 헌장 36항을 떠올리게 한다.6) 교황께서는 이 규정의 대상이 라틴 교회법 제838조의 내용과 충돌하는 것을 잘 알고 계셨기에, 제목에서 서둘러 개정 소식을 알리신다.

  문헌은 “자국어를 전례에 도입하고 전례서의 번역판들을 마련하고 승인하는 막중한 책무(grave […] mandatum)를 주교들에게 맡기도록” 예고하면서 시작한다. 따라서 라틴 교회가 “전례 고유 언어의 일부가 소실될 위험이 따르는 희생”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안에서 제기될 수 있는 어려움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자국어 점진적으로만 전례 언어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점진적으로만이) 전례 라틴어와 같이 신앙 증진을 위하여 유려한 문체와 심오한 생각으로 빛나는 전례 언어가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개별 단어와 그것이 흐르는 문맥 사이의 미묘한 관계, 그리고 가톨릭 전통의 광범위한 배경에서 비롯되는 번역의 어려움들에 관하여 언급을 한 뒤, 문헌은 “이러한 긴 작업 과정에서 주교회의들과 이 사도좌 사이에 어떤 어려움들이 발생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 곧 경신성사성과 주교회의들 사이에 완전한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깨어 있고 창의적인 한결같은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제안 사항이 시작되는데, 이를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공의회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몇 가지 원칙들”을 재확인하고 실천해야 한다. 2) “주교회의들의 권리와 직무(ius et munus)를 잊지 말아야 하고, …… 각 언어의 특성을 보존하면서 원문의 의미를 충만하고 충실하게 살려야” 한다. 3) “교회법 제838조의 현행 법규를 명료하게” 드러내야 한다. 곧 ‘전례 헌장’뿐만 아니라, 공의회 폐막 며칠 뒤에 바오로 6세 교황께서 공포하신 자의 교서 「거룩한 전례」와도 보조를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지금은 개정된 교회법 제838조 2항과 3항은 다음과 같다. “§2 보편 교회의 거룩한 전례를 조정하고 전례서를 출판하며, 주교회의가 법 규범에 따라 승인한 적응들을 인준하고(recognoscere), 또한 전례의 예규가 어디서나 충실히 준수되도록 감독하는 것은 사도좌의 소임이다. §3. 규정된 범위 안에서 충실하고 적절하게 적용한 전례서의 각국어 번역판들을 준비하고 승인하는 것, 그리고 사도좌의 추인을 받은 후에(post confirmationem), 관할 지역을 위하여, 전례서를 발행하는 것은 주교회의에 속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전례서들의 ‘인준’(recognitio) 권한을 인가하는 경신성사성에 관한 규정이 교황령 「착한 목자」(Pastor Bonus) 제64조 3항 – “[경신성사성은] 주교회의에서 합법적으로 준비한 전례서의 번역과 그 적용을 인증한다(recognoscit).” – 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자의 교서는 향후 조문과 규칙은 새로운 규범을 기초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라고 규정한다. 실제로, 이 조항은 ‘인증하다’(recognoscit)라는 동사의 첫 번째 목적어(“전례서의 번역”)를 삭제하고, 오직 두 번째 목적어(“전례서의 변경사항들”)만을 남겨 놓는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계속해서 모든 것이 핵심 단어인 ‘recognitio’(인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전에는 경신성사성이, 앞서 주교회의들이 작업하고, 「올바른 전례」의 엄격한 조사를 통과한 전례서들의 ‘recognitio’(인준)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번역에 대한 모든 권한이 주교회의들에게 되돌려진다. 그들이 자기 신앙의 권위 있고 유일한 보증이 되는 것이다. 경신성사성은 자기의 입장에서, 모든 절차가 존중되었고, 본문들이 전체가 번역되었는지를 보증하는 번역에 대한 ‘confirmatio’(추인)와 함께, 만일 주교회의 스스로 제안한 변경 사항들이 있다면, 그에 대한 인준 권한을 행사한다. 라틴어 본문의 내용에 대한 것이 아니다.

  공식 문헌들은 본문의 중요성을 밝혀 주거나 그 의미를 이차적으로 확인해 주는 첨부 문서들을 함께 발표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자의 교서 「대원칙」도 이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공포될 때 “주석”과 “해설”이 함께 발표되었는데, 두 문서 모두 경신성사성 차관 아서 로시(Arthur Roche) 대주교가 서명하고, 자의 교서 자체의 첨부 문서로 9월 9일에 발표되었다.

  “공의회와 공의회 이후의 근거 자료에 비추어 본 제838조”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주석은, 동사 ‘reconoscere’(인준하다)와 ‘probare seu confirmare’(승인하다 또는 추인하다)라는 표현의 가치에 특별히 주목하면서, 그 조항의 2항과 3항에 대한 근거 자료들을 제공한다. 그리하여 앞서 언급한 법 조항들에서 드러나는 새로움을 밝힌다. 다음과 같은 설명은 주목할 만하다. “‘추인’은 유권 행위이며, 이로써 경신성사성은 번역의 책임을, 충실히 할 것으로 이해하고 주교회의의 교리적 사목적 ‘임무’에 맡긴 가운데 주교회의의 승인을 인허한다. 요컨대, 통상적으로 신뢰와 확신을 바탕으로 인정하는 ‘추인’은, 라틴어 표준판과 비교하여 특히 가장 중요한 전례문들(예컨대, 교황 성하의 승인이 필요한 성사 양식문, 미사 통상문, 감사 기도와 서품 기도는 모두 세부적 검토가 필요함)을 고려하여 마련한 본문의 충실성과 일치성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전제로 한다.”

  “주석”에 이어 “해석의 열쇠”(Una chiave di lettura)라는 제목으로 자의 교서에 대한 “해설”이 따라오는데, 이미 앞서 제시되었던 주요 주제들을 다시 한번 짚어 간다. 여기까지는 모든 것이 명확해 보였으나, 새로운 장면이 다시 등장한다.

후속적인 해석 작업과 이어지는 권위 있는 답변

  10월 12일에서 14일 사이에 몇몇 언론 기관들에 이탈리아어 번역문이 먼저 등장하는데, 원문은 프랑스어로 된 «Humble contribution pour une meilleure et juste compréhension du Motu Proprio “Magnum Principium”»(자의 교서 「대원칙」의 정확하고 더 바람직한 이해를 위한 소고)라는 제목의 긴 서한이다. 이는 로베르 사라(Robert Sarah) 추기경이 10월 1일자로 교황께 제출했던 것이다.7) 여기에서 추기경은 경신성사성이 주교회의들에 보냈던 9월 26일자 서한을 두 번씩이나 언급하고, 이 서한의 연장선에 이 소고를 연결시킨다. 이는, 자의 교서와 함께 발표된 두 개의 첨부 문서들처럼,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자의 교서 발표 이전과 이후의 교회법 제838조의 비교와 하나의 “해설”이다.

  장관은 “우리 성의 입장에서, 주교회의들의 적응과 번역 작업에 협력하는 것은 교회법 제838조에 있는 이 두 개의 단어, 곧 ‘recognitio’(인준)과 ‘confirmatio’(추인)에 온전히 포함된다. 정확하게 무엇들을 뜻하는가?”라고 상기시킨다. 어쨌든, 질문에 답을 하면서 그는 앞서 알려진 상항에 대한 새로운 절차를 다시 안내한다. 실제로, 향후 경신성사성이 하는 ‘recognitio’(인준)는 오로지 주교회의들이 제안한 변경사항들에만 행사될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기는 하지만, ‘recognitio’(인준)라는 용어가 앞서 번역들의 정확한 검증에 관해 의미했던 만큼을 ‘confirmtio’(추인)라는 개념에 얹어 놓는다. “전례서 번역의 기준이 되는 문서는 계속해서 훈령 「올바른 전례」이다.”라는 서문에 이어서, 순조롭게 결론을 풀어낸다. “그러므로 모든 전례서에 있어서 제시된 요구들과 거기에 따라오는 결과에 아무런 변화가 감지되지 않는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recogitio’와 ‘confirmatio’라는 두 단어는, 엄밀하게 동의어는 아니지만, 서로 대체 가능한 단어들이므로, 훈령 「올바른 전례」에서 첫 번째 단어를 두 번째 단어로 교체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는 특별히 79-84항에 대해서 유효하다.” 그러나 그렇다면 우리는 왜 교도권이 개입을 했는지에 대하여 물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해석에 직면하여, 교황께서는 당신의 대화 상대인 추기경에게 개인적 서신을 보내시어, 이 편지를 “해설”이 발표되었던 해당 사이트들에 공개할 뿐 아니라, “모든 주교회의에, 또한 해당 경신성사성의 위원과 자문 위원들에게” 전달하도록 청하시면서, – 참관자들이 한마음으로 ‘비공개’라고 정의하는 방식으로 어쩔 수 없이 개입하실 수밖에 없으셨다. 이러한 요구에 순명하면서 이 편지가 공개되었다.

  여기에 드러난 논쟁은 번역의 문제를 훨씬 넘어서고, 성좌와 주교회의들 사이의 관계가 개재되어 있기 때문에, 제안된 번역들에 대한 교황의 결정들을 다음과 같이 8가지로 요약해 보고자 한다.

  무엇보다 먼저 명백한 것은, (1) “교회법 제838조 2항과 3항에 규정된 ‘recognitio’(인준)와 ‘confirmatio’(추인)와 관련하여, 새로운 자의 교서 「대원칙」이 제정한 인준과 추인의 차이를 강조”한다. “이는 경신성사성이 「올바른 전례」 이후로 채택한 관행을 폐지하고자 한 것이다.” (2) “교회법 제838조의 새로운 규정은 ‘recognitio’(인준)와 ‘confirmatio’(추인)의 구별을 통하여, 이러한 두 행위를 수행하는 데 사도좌와 주교회의의 다른 책임을 밝히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어서 중요한 결정이 따라온다. (3) “「대원칙」은, 과거에 해 왔던 대로, 번역이 「올바른 전례」의 규범과 모든 점에서 합치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법전에서 번역을 위하여 요구하는 것들과 합법적 적응을 위하여 요구하는 것들을 구별하기 위하여, 「올바른 전례」 79-84항을 포함하여 그 개별 조항들을 주의 깊게 재이해하여야 한다. 그 결과 「대원칙」에서 개정한 새로운 교회법 조문에 따라 「올바른 전례」의 일부 조항(예컨대, 76항과 80항)이 폐지되거나 축소되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4) 주교회의들은 번역에 대하여 온전한 권한, 다시 말해서 “주교회의가 성좌와 대화를 나눈다면, 원문 번역에서 선익과 양편 용어들의 일치성을 판단할 권한”을 회복한다. 다른 결과로는 (5) “감사 기도와 특별히 교황의 승인을 받는 성사 양식문 같은 특히 중요한 양식문”에 대한 것이 아닐 때에는, ‘confirmatio’(추인)는 “표준판을 구성하는 모든 부분이 번역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제한된다. (6) “교회법 [제838조] 3항의 ‘fideliter’(충실하게)는 삼중의 충실성, 곧 우선적으로는 원문에 대한 충실성, 그리고 번역되는 개별 언어에 대한 충실성, 끝으로 신자들의 본문 이해를 위한 충실성”임을 상기시킨다. (7) 변경사항들에 관해서, 그리고 중요한 양식문들의 번역에 관해서 경신성사성이 행사하는 새로운 ‘recognitio’(인준)는 “교회법과 교회의 친교에 부합하는지를 확인하고 보호하는 것만을 가리킨다.”고 특정된다. 마지막으로 (8) 번역의 충실성에 대해 과거 ‘recognitio’(인준)가 가진 목적을 ‘confirmatio’(추인)에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천명한다.

공의회가 남긴 흔적들 안에서 이루어지는 전례 개혁의 연속성

  전례서들의 번역에 관한 온전한 권한을 주교회의들에 되돌려주면서, 자의 교서는 보조성의 원칙을 재확인하고자 하였다. 이 원칙에 따르면, 하급 기관이 자신에게 합법적으로 인정된 역할들을 수행하는 데에서, 상급 기관이 하급 기관에 우선하거나 대체되어서는 안 된다.8) 다른 한편, 정교하게 번역 작업을 수행했던 전문가들의 집단이 속한 각 주교회의들보다, 그 번역들이 원문에 상응하는지를 더 잘 판단할 수 있는 이가 누구인가? 게다가, 모든 번역은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해석이다. 70인역은 “iuxta Septuaginta interpretes”(70명의 번역자들에 따른 것)이라고 일컬어지지 않는가? 그리고 예로니모 성인은 별명으로 ‘interpres’(번역자)라고 정의되지 않는가?9) 완전무결한 번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가능성을 주장하는 이는 조만간 원문을 번역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반역하는 표현과 마주칠지도 모른다.

  이러한 까닭에 우리는 다시 훈령 Comme le prévoit에 간접적으로 발언권을 준 자의 교서에 감사한다. 이 훈령으로 이 시점에서 「올바른 전례」의 지침들이 조화를 이루고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전례 전통은 복제의 방식으로 발전하지 않고, 적절한 적응들과 섭리를 통한 풍요로움으로 이루어진 유기적인 발전이라는 확실한 기초 위에서 그리고 그 위에서만 앞으로 나아간다.

  감사를 드리는 또 다른 이유는 자의 교서가, 전례의 토착화, 특히 교부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그리고 아프리카와 마다가스카르 교회의 첫 번째 시노드(1994)와 조화를 이루며, 신생 교회들의 그리스도교 이전의 유산들 안에 있는 ‘말씀의 씨앗’을 연구하려는 전례의 토착화를 재가동한다는 사실이다.10) 토착화라는 주제와 같은 선상에서 –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와 긴밀하게 결속된 본문들의 번역과 같은 선상에서 – 우리는 암브로시오 성인의 말씀을 인용하며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성인은 밀라노 교회의 고유한 관습을 옹호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모든 것에서 로마 교회를 따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도 인간의 감각을 갖고 있습니다!”(In omnibus cupio sequi Ecclesiam Romanam; sed tamen et nos hominis sensum habemus!)11) 자기들 스스로에게 이 합법적이고 의무적인 권리 회복을 적용하고 적응시키며, 오늘날 신생 교회의 대표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우리도 또한 모든 것에서 로마 교회를 따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도 또한 인간의 감각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땅의 풍요로운 밭이랑에 씨를 뿌리는 말씀께서 처음부터 뿌려 놓으신 은총의 선물들과 조화를 이루며, 우리 자신들이 우리들의 전례 기도를 번역하도록 동의해 주십시오.” 로마 교회와 – 그리고 역사적으로 그들의 것이 되어 버린 예식과 – 기도하는 신앙의 친교가 사라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들의 기도하는 법에 새로운 자양분을 제공하는 데 확실히 효과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12) 모든 것에 앞서서, 교회가 성찬 전례를 거행하는 기도문이 그 시작이다.


* La Civiltà Cattolica 2017 IV 311-324 | 4018 (18 nov/2 dic 2017)
** Cesare Giraudo S.J.
1) 역사 자료와 참고 도서에 관해서는, C. Giraudo, «La costituzione “Sacrosanctm Concilium”: il primo grande dono del Vaticano II», in Civ. Catt. 2003 IV 521-533, 특히 527-529 참조.
2) ‘전례 헌장’의 본문에서는 보통 ‘riformare/riformatio’(개혁하다/개혁)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것들을 가리키는 ‘instaurare/instauratio’(쇄신하다/쇄신)라는 한 쌍의 본디 의미의 가치에 관해서는, C. Giraudo, «La riforma liturgica a 50 anni dal Vaticano II»(제2차 바티칸 공의회 50년 뒤에 바라본 전례 개혁), in Civ. Catt. 2016 IV 432-445, 특히 433 참조.
3)
베네딕토 16세, 자의 교서 「교황들」(Summorum Pontificum, 2007.7.7.)에 관해서는, 편집부, «La liturgia nel solco della tradizione»(전통의 자취를 따라 본 전례), in Civ. Catt. 2007 III 455-460 참조.
4) 「올바른 전례」(Liturgiam Authenticam)에는 ‘recognoscere/recognitio’(인준하다/인준)라는 한 쌍의 단어가 35번 나온다: 4.8.15.18.22.39.60.67(2번).68(2번).71.73.77.79.80(4번).81.82.83.87.97.104.106.108.114.126.127(2번).128.130(2번).131.
5) “또한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올바른 전례」 79-84항에서도, 특히 전례서에 관련해서 ‘recognitio’(인준)에 관한 주제가 광범위하게 제시되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 [주석은 본문 80항을 인용하면서 계속된다].”
6) 자의 교서는 2017년 9월 10일자 『로세르바토레 로마노』(L’Osservatore Romano) pp.4-5에 공표되었고, 이어서 10월 1일에 발효되었다.
7) 본문은 10월 12일에 웹 사이트 La Nuova Bussola Quotidiana에 이태리어 번역이 등장하고, 10월 14일에 불어 원문이 L’Homme Nouveau(p.9)라는 격주간지 지면에 단독으로 발표되었으며, 10월 20일에 해당 웹 사이트에 올라왔다.
8) 시민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이 원칙을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1883항) 참조. 만일 이 현명한 원칙이 사회단체의 내부 관계들을 규제한다면, 교회의 다양한 구성원들 사이의 상호 관계를 위해 언급할 내용들이 있을 것이다.
9) “Sidonio Apollinare는 갈리아에서 아우툰의 주교였던, ‘Papa’ Eufronio에게 편지를 쓰면서, 보편적인 찬사로 ‘풍유가(allegorista)’ 오리게네스를 ‘번역가’인 예로니모에게(Hieronymus interpres), 그리고 ‘논리가’(변증법 학자)인 아우구스티노에게 연결시켰다. [……]”(H. de Lubac, Exégèse médiévale, I, Paris, Aubier, 1959, 221, 라틴어 인용과 언급들은 같은 곳; 이탈리아어 번역은  Esegesi medievale, I, Milano, Jaca Book, 233 참조)

10) 이런 의미에서 시노드 후속 권고인 「아프리카 교회」(Ecclesia in Africa, 1995) 67항을 다시 읽는 것이 유익하다. 거기에서 아프리카의 전통 종교들이 가진 긍정적인 가치들은 “복음을 위한 준비로 여겨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가치들에는, 과거에 이미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을 ‘복음의 선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의 충만한 계시에 열려 있도록’ 이끌 수 있는 귀중한 ‘말씀의 씨앗’(Semina Verbi)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라는 것에 확신을 준다.
11) Ambrogio, s., De Sacramentis 3,5.
12)섭리를 통한 전례의 풍요로움 가운데 하나가 검증될 수 있는데, ‘10세기의 로마-게르만 주교 예식서’와 관련된 이야기와 유사하다. 로마에서 처음부터 풍요로웠던 이 예식서는 게르만 교회에 맞추어 변경되었는데, 이후 로마로 돌아와서 한 번 더 풍요로워졌다. 실제로 12세기의 로마 주교 예식서를 편집하는 데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