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레시아”: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말의 자유

«PARRHESIA»: LA LIBERTÀ DI PAROLA

NEL PRIMO CRISTIANESIMO*

 엔리코 카타네오 신부(예수회)**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전주교구, 광주가톨릭대학교) 옮김

철학자 미셸 푸코는 파레시아(parrhesia)를 “마음의 솔직함과 개방, 말의 개방, 표현의 개방, 말의 자유”1)라고 정의한다. 그렇다고 원하는 대로 바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파레시아는 그 본성상 도덕적인 자세이며 “필요해서든 유익해서든, 끝으로 진실해서든”2) 말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파레시아는 진리와 선(善)에 연관되어 있으며, 이는 중상, 모욕, 비방은 배제하는 반면 풍자는 받아들였다.3)

그레코로만 세계에서의 ‘파레시아’

라틴어에서 이 용어는 무엇보다 리베르타스(libertas, “자유”)로 번역되었지만 (“능력”이란 어원학적 의미에서) 리첸시아(licentia, “권한”)로 옮겨지기도 하였다. 그리스도교에서 사용된 라틴어에서는 콘스탄시아(constantia, “항구성”), 피두치아(fiducia, “신뢰”)로 옮겨졌으나 그 단어에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본래의 의미를 다소 상실하였다.4) 말할 때 “솔직함”의 태도는 기회주의자들의 전형적인 특징인 아첨 및 아첨과 보조를 같이 하는 공허한 수사와 구분된다.5)

그러나 어떤 대화도 “대화술”이라는 차원에서 수사학을 무시할 수는 없다. 시기적절하고 효과적으로 말을 잘 한다는 것은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장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특히 말하는 사람이 힘 있는 자 앞에서 또는 여론에 맞서 말해야 할 때 위험의 소지가 있음을 전제한다.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많은 이들은 침묵을 택하거나 아첨에 의존한다.

특히 오늘날 보기 드문 덕목, 즉 진리를 이야기하는 솔직함은 견유학파와 스토아 철학자들의 특징이었다. “1세기 철학자들이 이루고자 한 목표 가운데 하나는 파레시아, 다시 말해 대담하고 용기 있으며 솔직한 대화였다.” 이런 대화는 황제 앞에서도 행하여졌다. “황제 앞에서 대담하고 용기 있게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는 그런 대화들은 그에 따른 결과를 맞이하였다. (…) 1세기 말, 특히 네로와 플라비우스 왕주 하에서, 유명한 몇몇 철학자들은 그들이 행한 끝없는 도덕적인 대화로 죽음이나 유배를 당해야 했다.”6)

그 당시 말의 자유가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중대한 것이었지만 “아첨꾼”으로 살지 않았던 사람도 있었다.

신약성경에서의 ‘파레시아’

공관복음서 가운데 오로지 마르코만 그 복음서의 중심점에서, 곧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장면과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수난을 예고하는 장면 사이에서 파레시아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parrhesia) 하셨다”(마르 8,32).7)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요한 11,14; 16,25.29 참조) 및 세상에(요한 18,20) “드러내 놓고(parrhesia)” 이야기하셨다고 여러 차례 말한다. 사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다루셨을 때 당신 말씀을 비유로도 전해주셨지만, 당신의 윤리적인 가르침에서 당신께서 사용하신 표현은 솔직담백하셨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말씀이 모두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라셨다. “너희는 말할 때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라고 말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 5,37).

예수님의 원수들도 그분의 이런 특성을 인정하였다.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마르 12,14).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말의 자유는 올바른 길을 걷는 사람(행복하여라, 너희 …하는 사람들!)과 멸망의 길을 걷는 사람(“불행하여라, 너희 …하는 사람들!)을 식별하는 그분 능력에서도 이끌어낼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에게 “얘야, 용기를 내어라.”라고, 혈루증을 앓는 여자에게 “딸아, 용기를 내어라.”(마르 9,2.22) 하시며 대단히 부드러운 말을 건네실 줄 아신다. 하지만 “위선자들아!”(마태 22,18),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마태 23,16.27)와 같이 매우 단호한 말씀도 하신다.

사도행전에서 복음을 전할 때 솔직함은 박해의 상황에서 성령께서 주시는 “용기”도 된다. “이렇게 기도를 마치자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이 흔들리면서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meta parrhesias) 전하였다”(사도 4,31). 이렇게 “파레시아는 사도의 탁월한 덕목이다.”8) 하지만 그리스도교의 새로움은 무엇보다 하느님과 맺는 관계와 연관된다. 성령에 이끌려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확신을 가지고”(에페 3,12; 히브 4,14-16) 아버지를 향하여 자녀로서 “아빠, 아버지!”(갈라 4,6)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파레시아는 이런 하느님 사랑에 대한 신뢰, 곧 당신께 청하는 기도를 들어주실 때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사랑, 하느님께서 보여주시고 심판 날에 보여주실 사랑(1요한 4,16-17 참조)을 신뢰하는 것이다.”9)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도 형제들 사이의 관계는 항상 사랑을 지키면서 솔직함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형제적 교정”은 점진적인 단계를 요구하지만 반드시 실행되어야 한다(마태 18,15-17; 갈라 6,1 참조). 1코린 5,1(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그리스도인)에서 진술되는 내용과 같이 분명 부도덕한 행실은 참을 수 없다.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린다는 것을 모릅니까?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1코린 5,6-7). 바오로는 코린토 공동체의 신자들에게 “매우 솔직하게”(pollē parrhesia, 2코린 7,4) 말하고자 하며, 신도들이 참되고 거짓이 없으며 위선 없는(로마 12,9 참조) 사랑을 그들 가운데에서도 나누기를 바란다. 따라서 바오로는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무질서하게 지내는 이들을 타이르고 소심한 이들을 격려하고 약한 이들을 도와주며, 참을성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대하십시오.”(1테살 5,14)라고 말한다. 누가 순종하지 않고 반항한다면 공개적으로 대놓고 지적해야 하나, “그를 원수처럼 여기지는 말고 형제처럼 타이르”(2테살 3,15)라는 것이다.

끝으로 복음으로 문제가 발생되었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의 위험 앞에서도 똑같이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데 두려워하지 않았던 구약 예언자들의 자세를 물려받아, 통치자들 앞에서도 파레시아를 행하였다.10) 사실 복음의 정신으로 고무된 사람은 하느님 나라를 국가와 동일시하려는 신권정치적 이상도, 세속국가의 전체주의적 주장도 모두 거부한다.11)

그리스도인들은 성실한 성도들이었고, 황제와 통치자들12)을 위해 기도하였으나, 우상숭배를 인정하거나 인간 품위를 짓밟는 지시나 풍습에 따르는 것을 거부하였다. 이 때문에 “순교자는 탁월한 ‘파레시아스타’(parresiasta, 솔직하게 말한 사람)”13)이다. 여기서 양심 때문에 특별하게 행동하기를 거부할 때 파레시아는 말없이도 표현될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바로 순교자의 경우에서 “신앙고백”의 용기는 신앙을 저버리라는 구체적인 요구, 곧 그것이 우상숭배 행위이든 또는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행위이든 이 모든 것을 거부하는 것과 보조를 같이 한다.14)

「클레멘트의 첫째 편지」에서의 ‘파레시아’

신약시대 파레시아 전통은 「로마의 클레멘트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 또는 「클레멘트 첫째 편지」(이하 「1클레멘트」)15)라고 하는, (신약성경을 제외하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 텍스트에도 이어진다. 대부분 학자들은 이 편지가 작성된 시기를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살해된 직후인 96/97년으로 본다.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말년에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을 잔인하게 박해하였기 때문이다.16) 그러나 소수의 학자들은 이 편지가 작성된 시기가 그보다 더 오래된 시기, 곧 티투스 황제가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70년 8월)하기 전인 69/70년으로 주장한다. 클레멘트 첫째 편지를 이 후자의 시기에 놓고 보면 역사적 상황은 더욱더 흥미진진해진다. 베스파시아누스가 등장(69년 7월 1일)하면서 로마의 역사적 상황은 유대인 유혈전쟁의 종식뿐만 아니라 네로를 계승한 “네 명의 황제”(갈바, 오토, 비텔리우스, 베스파시아누스)로 점철된 격동기의 종지부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1클레멘트」는 무엇보다도 머리말에서 도출할 수 있는 것처럼, 이 편지를 로마 교회(ekklesìa)의 공적 편지라고 소개한다. “로마에 체류하고 있는 하느님의 교회(ekklesìa)가 코린토에 체류하는 하느님의 교회(ekklesìa)에 (이 편지를 씁니다)”(「1클레멘트」 1,1). 에클레시아(ekklesìa) 용어는 절대적으로 세속적인 의미를 띠고 있었으나 그리스 세계에도 잘 알려져 있는 개념이었다. 어쨌든 유대인 회당(synagogē)이 건물을 가리켰던 것과는 달리 이 용어는 결코 건물을 가리키지 않았다. (단수로 사용된) 에클레시아(ekklesìa)는 단순히 아델포테스(adelphotes, 형제적 관계), 형제애(「1클레멘트」 2,4)로 정의된다. 그 일원들은 분명 모두가 같은 장소에 모일 수 없지만 여러 도시에 흩어져 있는 서로 다른 교회들(ekklesìai) 안에 따로 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교회(ekklesìa)로 소개되기를 좋아하였다. 이 점은 이미 바오로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다.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만드신 실재를 나타내기 위해서, 복수형태(ekklesìai) 외에도 단수형태(ekklesìa)를 사용하여 모든 지역 교회들(ekklesìai)의 전체, 곧 어디서든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을 포함하는 실재를 나타내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후 에클레시아(ekklesìa)를 전형적인 성서 표현, 에클레시아 투 테우(ekklesìa tou theou), 곧 “하느님의” 교회로 형용하면서 이 모임은 곧 예민하게 그 종교적 특징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특징은 사회적, 가시적인 차원을 갖추었고 집회(ekklesìa)로 “다시 모인”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로마 제국 안에 완전한 시민권을 가진 사람으로가 아니라 “국외자”(paroikousa)로 체류한다고 표명하면서, 교회(ekklesìa)는 로마의 대부분 지역에 실제로 거주하고 있던 국외자들과 같은 의미로서가 아니라, 로마 국가 안에서 자신의 시민권을 주장하지 않으면서, 로마 제국의 환대를 인정하는 동시에 자신의 참된 시민권(politeia)을 “다른 곳”에서 누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파레시아라는 용어는 「1클레멘트」에 명확하게 등장한다. 「1클레멘트」 34,1-5에서 우리는 성실한 종이 일을 맡긴 주인의 얼굴을 “맞대고”(meta parrhesias) 바라보며 자신의 품삯을 받는 것처럼, 게으르거나 약하지도 않으며 선한 일만 행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앞에 나아가 그분 안에 “자신의 덕성과 확신(parrhesia)”을 둘 수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전례 기도를 바칠 때 이루어진다. 온 공동체가 주님을 섬기는 천사들과 하나 되어 세 번 “거룩하시다”17)을 힘차게 부르며 노래할 때 “그분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약속에 참여”18)하게 된다.

모세도 하느님 앞에서 이런 “담대함”의 본보기를 보여준 인물이다. 그는 하느님과 백성 가운데에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우상숭배에 빠진 백성을 멸망시키려는 당신의 계획을 멈추어 주시라고 감히 하느님께 청한다. “얼마나 위대한 사랑입니까! 최고의 완전함이여! 종 하나가 주님께 자유롭게(parrhesiazetai) 말씀드리며, 백성을 위해 용서를 청하거나 자신도 그들과 함께 생명의 책에서 지워 주시라고 했으니”(「1클레멘트」 53,5).

파레시아라는 용어와 파레시아조(parrhesiazō) 동사가 단지 몇 번19)밖에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담대하게 말하는” 자세는 온 편지 안에 담겨 있다. 훌륭한 저술가인 클레멘트20)는 당연히 화법을 구사하였다. 우리는 파레시아가 수사법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첨에 속하는 “공허한 수사법”과 대립한다는 점을 이미 살펴보았다. 나아가 말할 때의 솔직함은 비난과 훈계와 연관될 뿐만 아니라 찬사와 찬양도 수반한다. 이런 보완적인 두 가지 형태는 종종 동시에 찾아볼 수 있고 수사학 기술에서도 많이 사용된다. 종종 찬사(laudatio), 곧 세련되게 도입하는 방식(captatio benevolentiae)으로 시작한 다음 질책으로 넘어간다. 또는 질책(vituperatio)으로 시작하지만 회개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는다.

「1클레멘트」의 저자도 이 두 가지 형태를 매우 능숙하게 번갈아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그가 두 가지 형태를 모순되지 않게 잘 활용하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먼저 교회(ekklesìa) 안에서, 그 다음 황제와 국가 앞에서 행하여지는 파레시아의 자세를 살펴볼 것이다.

‘교회’(ekklesìa) 안에서 ‘파레시아’

코린토 교회(ekklesìa)에 대해 「1클레멘트」는 질책-찬사-질책의 도식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 공동체에 정확하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 공교롭게도 저자는 수사학 규칙에 따라 간접적으로만 말하며 단지 문제의 중심점만 드러낼 뿐 세부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간단히 말하면 코린토 공동체는 몇몇의 선동에 따라 몇 명의 원로들(presbyteroi)을 그들 직무에서 해임시켰다. 우리에게 이 사건은 사소한 문제로 보일 수 있지만 로마 교회(ekklesìa)의 판단에 따르면 대단히 위중한 일이었다.

질책 부분에서 사용한 매우 진지한 용어들에서 이런 사실을 끄집어낼 수 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의 선택받은 사람들과 무관한 그 무례한 행위에 대해 (말합니다). 그 행위는 극악하고 불경스런 분쟁입니다. 분별력 없고 오만한 몇몇 사람들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모든 사람한테 애정 넘치게 칭찬받고 평판이 좋으며 존경받는 여러분의 이름이 크게 훼손되기에 이르렀습니다.”(「1클레멘트」 1,1) 더 나아가 “분쟁”의 발단에 있었던 사람들은 곧장 “파렴치한 자들”, “비천한 자들”, “어리석은 자들”, “미성숙한 이들”(「1클레멘트」 3,3)과 같은 용어들로 불렸다. 계속해서 그들은 “어리석은 자들”, “헛말로 자랑을 늘어놓는 자들”, “우쭐대는 자들”(「1클레멘트」 21,5)로 비난을 받았다. “지각없는 이들”, “우둔한 이들”, “무식한 이들”과 같이 대체로 비슷한 칭호들이 「1클레멘트」 39,1에서 반복된다. 저자는 그들을 향해 직접 이렇게 말한다. “복종하는 법을 배워 여러분의 혀가 내두르는 자만하고 오만한 불손을 떨쳐버리십시오.”(「1클레멘트」 57,2)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형제들에게 말하는 편지의 담대함은 인상적이다. 사실 넘치는 찬사를 내뿜는 「1클레멘트」가 보여주는 사랑(「1클레멘트」 49장)은 거짓을 담은 것이 아니다. 이런 입장은 대체로 “담대함(parrhesia) 안에서 진리”(「1클레멘트」 35,1)라는 양식으로 요약된다. 곧 진리는 절대적으로 담대하게 말해야 한다.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보다 (….) 그런 자들을 거스르는 것이 낫습니다.”(「1클레멘트」 21,5) 코린토에서 일어난 상황의 중대성은 마지막 훈계(「1클레멘트」 58,2-59,2ㄱ)의 엄숙함에도 나타난다. 그 훈계에서 로마 교회는 불순종하는 이들에게, 구원을 받고자 한다면 순명하라고 단죄한다.21)

그러나 엄한 질책은 탄원을 묵살하는 처벌이 아니라 원상태를 회복하도록 하는 회개(metanoia)22)로 초대하고 있다. 이는 요한 묵시록의 저자가 에페소 교회의 천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과 같다.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묵시 2,4-5)

코린토 신자들이 먼저 보여준 이런 행실에는 무엇이 있는가? 「1클레멘트」가 제시하는 목록은 주목할 만하다. 무엇보다도 “훌륭하고 굳건한 신앙”, 그 다음 “그리스도 안에서 절제와 중용으로 충만한 신앙심”, 그리고 “친절한 환대 행위”, 끝으로 “완전하고 확실한 지식”(「1클레멘트」 1,2)이 그것이다. 코린토 공동체는 참으로 모범적인 공동체였다. “여러분은 가리지 않고 모든 일을 했고, 하느님의 법에 따라 살았습니다.”(「1클레멘트」 2,3) “여러분은 사소한 일에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였고, 명령하기보다는 오히려 복종하는 것을 좋아했고, 받기보다는 오히려 주는 것을 더 좋아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도움에 만족하였고, 그분 말씀을 정성들여 간직하면서 그분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겼으며, 여러분은 두 눈으로 그분의 고통을 직접 체험하였습니다.”(「1클레멘트」 2,1)

이런 태도의 결실은 평온하게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진술되었다. 하지만 수사학적 과장 때문에 이런 결실이 그리스도의 은총을 통해 가능해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약간 긴 문장이지만 이 마지막 찬사는 전부 읽어볼 가치가 있다. “그리하여 깊고 눈부신 평화가 모든 이에게 내려졌으며, 선한 일을 행하려는 끝없는 갈망과 성령의 충만함이 모든 이들 위에 충만히 내려졌습니다. 건전한 열망이 깃든 거룩한 결심과 경건한 확신에 차 있는 여러분은 전능하신 하느님을 향해 두 팔을 펼쳐, 고의로 지은 죄가 아니라면 자비를 베풀어 주시라고 빌었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이들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온 형제애를 위해 (하느님께 청하면서) 자비롭고 깨어있는 마음으로 밤낮으로 노력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진실하고 솔직하여 서로에게 아무런 원한도 없었습니다. 모든 불목과 분열이 여러분에게는 혐오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형제들의 잘못한 일에 대해 슬퍼했고, 그들에게 부족한 것을 여러분 자신에게 부족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선행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었고, 오히려 모든 선행을 행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런 모범적이고 존경스러운 태도를 갖춘 여러분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모든 일을 완수하였습니다. 주님의 명령과 계명이 여러분의 마음에 새겨져 있습니다.”(「1클레멘트」 2,2-8)

바오로 역시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을 대단한 찬사로 시작하였다. “나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에게 베푸신 은총을 생각하며, 여러분을 두고 늘 나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느 모로나 풍요로워졌습니다. 어떠한 말에서나 어떠한 지식에서나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여러분 가운데에 튼튼히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어떠한 은사도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1코린 1,4-7) 그러나 이는 코린토 신자들의 부족한 점을 분명하게 다룰 때 바오로가 담대하게 말하는 것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실상 바오로와 클레멘트의 찬사는 공동체의 모습을 “사진”으로가 아니라 지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을 지시하는 표시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넘어져 금방 제자리로 돌아오기 쉽기 때문이다. 바오로도 이렇고 쓰고 있다.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1코린 10,12) 「1클레멘트」의 코린토 신자들에게 일어난 일은 그들이 너무 살쪄 “말을 듣지 않기”(「1클레멘트」 3,1) 시작한 어린 소처럼 행동하였던 것이다. 이는 갈라티아의 신자들에게 보낸 바오로의 말을 듣는 것처럼 보인다. “여러분은 잘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여러분을 가로막아 진리를 따르지 못하게 하였습니까?”(갈라 5,7) 클레멘트는 근심스럽게 주목한다. “이 때문에 정의와 평화가 서로 멀어졌습니다. 그리하여 각자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을 저버렸고 그분에 대한 믿음마저 잃어버렸습니다. 그분께서 가르쳐 주신 계명대로 걷지 않고, 그리스도께 합당한 삶처럼 살지 않고, 각자 자신의 사악한 마음의 욕망에 따라 제멋대로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불의하고 불경스런 질투에 빠졌고, 이로써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지혜 2,24 참조).”(「1클레멘트」 3,4)

통치자들 앞에서 ‘파레시아’

「1클레멘트」는 그리스도 교회(ekklesìa)가 (유다 회당과는 달리) 어떤 법적인 보호도 받지 않아 국가 앞에서 여전히 나약하다는 점을 안다. 그러므로 이름을 언급하는 것을 신중하게 피한다. 제기된 문제에서 원로들(presbyteroi)이라 불리지만 주교(episkopē) 직무를 수행하는 로마와 코린토의 두 교회(ekklesìa)의 책임을 맡고 있는 이들에게 서로 다른 칭호를 사용하더라도 신기하게도 어떤 이름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제자 한 명, 곧 아폴로 이외에 오로지 베드로와 바오로 두 사도의 이름(「1클레멘트」 5,4-5; 47,1-3)만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세상은 떠난 과거의 인물들이다. 유일하게 거명되는 생존 인물은 편지를 전달한 사람, 곧 클라우디우스 에페부스(Claudius Ephebus)와 발레리우스 비토(Valerius Bito)이다. 이들은 그들의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처럼, 황실가에 연관된 두 명의 자유 노예였다. 한 명은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이름을 붙였고 다른 한 명은 그 황제의 이전 아내, 발레리아(메살리나)의 이름을 붙였다. 종종 이 자유 노예들은 사회, 경제적으로 높은 지위에 올랐고 그들이 편지를 전달하기 위한 여행비용을 스스로 부담하였다는 점을 배제할 수 없다. 포르투나투스(Fortunatus)도 이들과 함께 언급되는데 어쩌면 코린토 교회(ekklesìa)에 소속된 신자이며 분명 로마 출신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신중함과 “암호화된 표현”에도 불구하고 「1클레멘트」는 비록 간접적인 방식을 쓰면서도 담대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실레우스(basileus, 임금 또는 황제)를 언급하는 옛 성서의 본보기를 반복하면서 분명한 것은 메시지가 동시대인들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금의 명령에 따라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의 경우를 인용하고,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에 의해 활활 타는 불가마 속에 던져진 세 젊은이의 운명을 기억하면서 저자는 근래에 벌어진 잔인함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듯이 이렇게 말한다. “형제 여러분, 우리가 무슨 말을 더 해야 할까요? 다니엘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 의해 사자굴에 던져졌습니까? 하난야와 아자르야와 미사엘은 지극히 높으신 분께 장엄하고 영광스런 예배를 드리던 사람들에 의해 활활 타는 불가마 속에 던져졌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짓을 한 이들은 누구였습니까? 온갖 사악함으로 가득 찬 가증스런 이들은 거룩하고 흠 없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기던 사람들에게 난폭할 짓을 할 정도로 격정에 불타올랐습니다. 그들은 지극히 높으신 분이 지극히 거룩하신 그분의 이름을 순수한 양심으로 섬기는 많은 사람들의 수호자이며 보호자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확신을 갖고 그런 시험을 견디어 낸 사람들은 영광과 영예를 상속받았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에 의해 들어 높여졌고 그분 기억 속에 새겨져 영원히 기억됩니다.”(「1클레멘트」 45,6-8)

견유학파-스토아파 논쟁 문체로 제시되는 수사학적 질문은, 참으로 “온갖 사악함으로 가득 찬 혐오스러운”23) 임금, 네로 황제의 박해를 공공연히 드러내는 암시를 사용함으로써, 파레시아의 전형적인 본보기를 드러내고 있다. 그 밖의 다른 부분에서, 불의한 자들이 의인들을 박해하는 것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역사 속 일반 현상을 표현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는 근래에 일어난 사건을 단지 분명하게 지칭하고 있다. “의인들이 박해를 받았지만, 그것은 불의한 자들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의인들이 감옥에 갇혔지만, 그것은 불경한 자들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의인들이 범죄자들이 던진 돌에 맞았습니다. 의인들이 혐오스럽고 불의한 질투심에 사로잡힌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1클레멘트」 45,4)

이 표현들 역시 네로 황제와 그 추종자들, 곧 “불의한” 사람들, “불경한” 사람들, “잔인하고” “사악한” 사람들의 잔인함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상 자세할 수 없다. “거룩하고 흠 없는 마음으로”, “순수한 양심으로” 하느님을 섬기면서도 고문당한 사람들이 “많은 고문과 고초를 당하고 우리에게 놀라운 모범을 보여 주었으며”(「1클레멘트」 6,1) 하느님으로부터 “영광과 영예를 상속”받았던 로마의 순교자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는 64년 네로 황제가 일으킨 심한 박해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전에는 두 명의 “훌륭한 사도”, 곧 베드로와 바오로가 언급되었다. 두 사도 모두 말과 삶을 통해 통치자들 앞에서 “증언하였다(martyreō)”(「1클레멘트」 5,3-7).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이 잘 주지한 대로, 자기 권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전제주의 국가에 대한 비난은, 제대로 작동하는 시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를 거부하는 무정부주의와는 다르다.24) 「1클레멘트」가 불경한 박해자인 임금(basileus)을 맹렬하게 비난하고 나서 통치자들의 안녕을 위해 하느님께 열렬한 기도를 들어 올리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 “주님, 그들에게 건강과 평화, 화목과 안정을 주시어, 그들이 당신께서 그들에게 주신 통치의 직무를 어려움 없이 잘 수행하게 하소서. (…) 주님, 당신 보시기에 선하고 마음에 드시는 대로 그들의 계획을 인도하소서. 그리하여 당신께서 그들에게 주신 권한을 평화롭고 온유하게 헌신적으로 수행하면서, 그들이 당신의 자비하심을 체험하게 하소서.”( 「1클레멘트」 61,1-2)25)

문맥을 통해, 저자가 국가에 대한 명확한 신학적 가르침, 즉 권위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음이 드러나므로, 이것이 아첨 섞인 찬양(laudatio)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님, 임금이신 하느님, 당신은 존엄하고 형언할 수 없는 권세를 통하여 우리 조상들에게 왕의 권한을 주셨나이다.”(「1클레멘트」 61,1) 이는 신하들이 “순종”할 의무, 곧 공동선을 위해 권력자에게 협력할 의무가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이 순종은 무비판적 순종이 아니다. 권력자도 하느님 심판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는, 평화를 추구하면서 연민과 중용으로 통치하였는지, 아니면 권력 남용과 폭력으로 다스렸는지, 하느님 앞에서 해병해야 한다.26)

결론

우리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 앞에서, 교회(ekklesìa) 안에서, 그리고 끝으로 통치자들을 향하여 취한 파레시아의 자세를 살펴보았다. 사람들에 관해서 이런 말의 담대함이나 자유는 칭찬(laudatio) 또는 질책(vituperatio)이란 두 가지 모습을 취하지만 아첨이나 모욕이라는 극단에 빠지지 않는다. 클레멘트에게서도 나타나듯이, 그리스도교 파레시아의 중심 개념 가운데 하나는 에피에이케이아(epieikeia)인데, 이는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관심”, 즉 “이해”, “온유” 또는 “중용”27)을 뜻한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선(善)을 바라보면서 그에 부족한 것이나 방해가 되는 것을 분명하게 일깨워 주는 것이다.

「1클레멘트」는 코린토 교회에 큰 찬사를 보내지만, 모든 선(善)이 하느님 은총의 열매이며 깨어 있지 않으면 이 은총을 잃을 수도 있다는 점도 잊지 않음으로써 “중용”을 이룬다. 다른 한편, 질책(vituperatio)은 “형제적 교정”28)의 맥락 안에서 사랑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비록 강하게 질책하고 있지만, 항상 열려 있는 회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둠으로써 “중용”을 이룬다.

세속 권력에 대하여, 엄한 단죄의 말은 불경하고 부당한 행위에 대한 것으로 한정된다. 반면에 찬사(laudatio)는 기도의 형태로 표현되면서 하느님의 절대적 통치권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는 자각으로써 중용을 이룬다. 통치자들을 비롯하여 모든 이들은 하느님 앞에서 셈을 해야 하며, 더욱이 통치자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 때문에 더 큰 책임을 지닌다.


*  La Civiltà Cattolica 2017 III 519-533|4009 (1/15 luglio 2017)
** Enrico Cattaneo S.I.
1) M. Foucault, L’ermeneutica del soggetto. Corso al Collège de France (1981-1982), Milano, Feltrinelli, 2003, 326.
2) M. Foucault, 앞의 책, 327. 파레시아라는 주제는 푸코가 1981년부터 그가 사망한 1984년까지 콜레쥬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에서 행한 모든 강의를 가로지른다. 푸코가 행한 마지막 강의(1984년 3월 28일)는 모두 그리스도교 파레시아(parrhesia)에 관한 것이었다(Le courage de la vérité. Le gouvernement de soi et des autres. II, Paris, Gallimard-Seuil, 2009, 296-312).
3) 고대 세계의 라틴 저술가들 가운데에서 오라티우스와 페르시우스 그리고 요베르날리스를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세네카도 “은근히 빈정대는 표현”을 적지 않게 사용한다(P. Wendland, La cultura ellenistico-romana nei suoi rapporti con giudaismo e cristianesimo, Brescia, Paideia, 1986, 114).
4) G. Scarpat, Parrhesia greca, parrhesia cristiana, Brescia, Paideia, 2001 참조.
5) 파레시아와 대립되는 양극, 곧 아첨과 공허한 수사학은 미셸 푸코에 의해 잘 규명되었다. M. Foucault, 앞의 책, 332-344.
6) S. Mason, Giuseppe Flavio e il Nuovo Testamento, Torino, Claudiana, 2001, 245. 그러나 종종 견유학파의 파레시아는 모욕과 동일한 것으로 여겼다.
7) 신약성경에서 파레시아라는 용어는 30번, 파레시아조마이(parrhesiazomai) 동사는 9번 사용된다. H. Schlier, “parrhesia”, in Grande Lessico del Nuovo Testamento IX, 891 이하; G. Scarpat, 앞의 책, 93-99 참조.
8) M. Foucault, 앞의 책, 301. 사도 28,31에서 사도 바오로 역시 언급한 내용이다.
9) M. Foucault, Le courage de la vérité, II, 301.
10) 지혜서에서도 말할 때 담대함은 가치가 있었다. 지혜 6,1-11에서 세력가들 앞에서 파레시아의 훌륭한 본보기를 보라.
11) O. Cullmann, Dieu et César. Le procès des Jésus, Saint Paul et l’autorité, L’Apocalypse et l’État totalitaire, Neuchâtel-Paris, Delachaux & Niestlé, 1956, 12 참조.
12) E. Cattaneo, “La preghiera per coloro che ci governano”, in Civ. Catt. 2003 III 258-271 참조.
13) M. Foucault, Le courage de la vérité, II, 302; 순교자들의 파레시아에 관해서는 G. Scarpat, 앞의 책, 103-119를 보라; A. Carfora, I cristiani al leone. I martiri cristiani nel contesto mediatico dei giochi gladiatori, Trapani, Il Pozzo di Giacobbe, 2009.
14) 말과 행위의 일치는 묵시 12,11에 잘 표현되어 있다. “우리 형제들은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그자(고발자)를 이겨 냈다. 그들은 죽기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15) 옛날에는 두 편지를 로마 클레멘트의 작품으로 여겼다. 첫째 편지는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것(여기서 「클레멘트 첫째 편지」라는 이름이 연유한다)이고 둘째 편지는 2세기 익명 저자의 강론이다. 두 편지 모두 로마 전례의 시간 전례(첫째 편지의 13구절과 둘째 편지의 7구절이 수록)에 들어있다. 「1클레멘트」의 최근 비평본으로는 에마누엘라 프린치발리(Emanuela Prinzivalli)가 감수한 폭넓은 머리말과 해제를 보라. E. Prinzivalli-M. Simonetti, Seguendo Gesù. Testi cristiani delle origini, vol. I, Mondadori, Milano, 2010, 77-275 참조. 저자 클레멘트에 대해서는 아래의 각주 20번 참조.
16) 그러나 참되고 고유한 “박해”에 대해 말하기는 어렵다.
17) 「1클레멘트」 34,6: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분의 영광이 가득하시다.’(이사 6,3 참조)”.
18) 「1클레멘트」 34,7.
19) 「1클레멘트」 35,2의 문장은 나중에 살펴볼 것이다.
20) 본래 이름은 편지에 등장하지 않는다. 모든 그리스도교 문학에서 “로마에 체류하고 있는 교회(ekklesìa)”가 발신인으로 나타내는 경우는 유일하다. 이 편지를 편집하는 임무가 클레멘트에게 맡겨졌다는 것은 170년경 헤게시푸스 및 코린토의 주교인 디오니시우스에 의해 증언되었다(에우세비우스, 「교회사」 4,22,1; 23,11). 그러나 그들은 이 클레멘트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는다. 반면에 이레네우스(180년경)의 소식이 널리 퍼져있다. 이레네우스는 클레멘트가 베드로와 바오로에 이어 세 번째로 로마 교회에서 주교직을 수행하였고 두 사도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다(「이단반박」 3,3,3)고 언급한다. 또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이 클레멘트 아래 코린토 형제들 가운데에서 일어난 작지 않은 반란을 입증하였다. 당시 로마 교회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매우 강한 어조의 편지를 보내어 평화롭게 서로 화해하고 그들이 얼마 전에 사도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앙과 전통을 새롭게 하도록 하였다”(앞의 책).
21) 이 문장은 그 중간 부분을 가르는 영광송 때문에 결코 그 단일 구조 안에 고려되지 않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E. Cattaneo, “Un ‘nuovo passo’ della ‘Prima Clementis’: la ‘grande ammonizione’ di 58,2-59,2A”, in Ph. Luisier (ed.), Studi su Clemente Romano, Roma, Pontificio Istituto Orientale, 2003, 57-82.
22) 회개 역시 편지의 중심 주제들 가운데 하나이다.
23) 이 문장에서 네로 황제가 실제로 행한 고문들, 곧 (사자) 맹수형과 (타키투스의 이야기에 따르면) 인간 횃불과 같은, 화형이 언급되었음을 주지할 수 있다.
24) 이 점에 대한 예수와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은 서로 모순되지 않고 오히려 복합적이며 “종말론적 개념”으로 특징을 이루었다. O. Cullmann, 앞의 책, 6 이하 참조.
25) 이 기도에 대해 살펴보려면, G. Pani, “La ‘Prima Clementis’: l’originalità della preghiera per i governanti”, in Studia Patristica 40 (2006) 475-481; E. Cattaneo, “I ‘vota’ della Chiesa di Roma per l’‘adventus’ di Vespasiano nel 69 d.C.(1Clem 60,4-61,3)”, in Rassegna di Teologia 52 (2011) 533-553 참조.
26) 로마 13,1-2와 1베드 2,13-14와 비슷한 사상이다. 오로지 하느님 통치권만을 인정하고 인간 권력을 거부하였던 젤롯당의 과격주의와는 거리가 먼, 이런 국가에 대한 개념은 지혜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알렉산드리아 유대교에서 성숙되었다. “너희의 권력은 주님께서 주셨고 통치권은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주셨다. 그분께서 너희가 하는 일들을 점검하시고 너희의 계획들을 검열하신다. 너희가 그분 나라의 신하들이면서도 올바르게 다스리지 않고 법을 지키지 않으며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지체 없이 무서운 모습으로 너희에게 들이닥치실 것이다. 정녕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은 엄격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미천한 이들은 자비로 용서를 받지만 권력자들은 엄하게 재판을 받을 것이다”(지혜 6,3-6).
27) 2코린 10,1; 필리 4,5 참조. 이 용어는 번역하기 쉽지 않지만 분명 클레멘트의 사상을 이루고 있다. G, Pani, “Il concetto di ‘epieikeia’ nella struttura della ‘Prima Clementis’”, in Studia Patristica, vol. 36, Leuven, Peeters, 2001, 282-292를 보라.
28) E. Cattaneo, “La ‘Prima Clementis’ come un caso di ‘correptio fraterna’”, in Ph. Luisier (ed.), Studi su Clemente Romano, cit., 83-105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