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위기와 영성 : 아프리카의 공헌

CRISI ECOLOGICA E SPIRITUALITÀ

Il contributo dell’Africa*

마르셀 우비내자 신부 (예수회)**

곽승용 비오 신부 (대전교구, 대전 가톨릭 대학교)옮김

서론

“누구도 한 잔의 우유에 돌을 던지지 않는다.” 우리가 환경개발로 인한 착취를 특별히 생각한다면, 위의 르완다 잠언은 역사에서 벌어졌던 것과 다르게 우리에게 많이 필요하지 않는 말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 “공동의 집”1)을 파괴하는 돌을 우리가 계속 던지고 있다. 이 잠언이 주는 지혜가 필요한데, 이는 아프리카의 윤리기준들이 “다양한 공동체들 사이에서, 자연과 함께, 공동체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조화 그리고 형평성을 유지”2) 하기 위해서 하지 말아야하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을 상세히 설명하는 제재들 또는 터부의 미신 위에 기초되고 있다.

기후 변화와 환경 위기에 관한 연구의 대부분은 서방에 의해 만들어졌고 인도되었다. 그럼에도 그것으로 위기가 악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로렌티 마게사(Laurenti Magesa)와 같은 여러 신학자들과 아프리카 영성이 생태위기 앞에서 대체하는 윤리의 공헌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선언하기 위해 뜻을 함께 하고 있다. 오로바토르(Agbonkhianmeghe E. Orobator)는 다음과 같이 관찰하고 있다. “주의를 기울이는 시험에서 아프리카 영성전통의 지혜가 〔…〕 적합한 덕목들을 닦고 생태적인 책임들을 지기 위한 자원들을 제공하고 있다.”3) 우리는 르완다에서 기원이 되는 몇 가지 예들과 함께 아프리카 영성을 제시하려고 생각한다. 우리 공동의 집과 대화하고, 우리 “공동의 집”의 치료를 위한 프란치스코 교종의 권고를 깊이 이해하면서 아프리카 전통의 원천들을 활용하고, 우리 기원에로의 회복, “쇄신”에로 우리를 새롭게 초대하고 있다.

생태학은 신학적 윤리를 위한 새로운 경계를 제시한다. 하지만 환경 박탈의 복합성 때문에 다양한 지역의 영역들이 서로 배울 필요가 있다. 모든 의견을 동일하게 갖도록 주장할 수 있는 개인 또는 공동체는 없다. 분명한 것은 증가하는 환경파괴가 인간 활동에 최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교종 프란치스코는 회칙 「찬미받으소서」(LS)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우리의 집인 지구가 점점 더 엄청난 쓰레기 더미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LS 21) 땅이 커다란 목소리로 부르짖고 있는 동안, 망가지는 지구의 잔해 속에 남아 있는 수많은 가난한 사람과 남자와 여성들이 있다. 증가하는 지구의 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동해결과 실천을 찾아내고자 노력하면서 창조적 연대로 화해하는 응급조치가 필요하다.

중요한 아프리카 신학자들 가운데 로렌티 마게사는 다음과 같이 관찰하고 있다. “땅의 초월생명에 위협하는 것을 만장일치로 인식하면서 〔…〕 인간존재들은 어마어마한 재앙의 이러한 상황에 적합한 응답을 발견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함께 일할 수 있다.”4) 인도의 예수회 신학자 마이클 아말라도스(Michael Amaladoss)는 “금일 이 땅 위에서 우리 인간 순례를 위한 본질적인 구성요소, 대화를 통한 연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5)을 비유적인 양식으로 지적하고 있다. 다른 말로, 환경적인 일치와 보호막들을 유효하게 찾기 위해, 협력하는 윤리의무가 존재한다. 인류가 지구를 치유하고자 노력하는 동안, 서로 서로를 자기관용과 신실한 개방에로 인도하는 초대도 존재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우리에게 경고한다. “만약 우리가 파괴한 모든 것을 바로잡게 하는 생태론을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어떠한 학문 분야나 지혜를 배제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종교와 그 고유한 민족의 언어도 포함됩니다.”(LS 63)

기술과학 홀로 지구와 인간존재에 가하는 생태적 공격을 해결할 수 없다. 인간존재의 모든 단계들, 지역과 보편적 수준에 광의적으로 옮겨진 변형이 필요하다. 실천적인 것이 필요한데, 이는 지구전체가 현실화 되도록 접근하기 위해 경제구조들이 지구에서의 물질적 원천들을 사용하고 소유하는데 있어서 형평성을 고려하는 복원이 되는 것이다. 모든 인격의 존엄성과 규칙을 언급하기 때문에 정치적 이념들이 지속적으로 변형되어야 한다. 사회적 관계들이 필요한 정치적 구조에서 지구의 연대 또는 상호이해와 대화에서 적합하게 된다. 건강한 영성이 어디서나 발전되어야 한다.6) 왜냐하면 우리는 파괴된 환경을 공유하기 때문에 누구도 이 결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러므로 “금언을 낭독하듯이, 우리 모두 같은 구조선 위에 있다.”

생태학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아프리카 영성이 공헌할 수 있는 바를 논하기에 앞서, 우리는 세상이 어떤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지 살펴 보고자 한다.

파멸 직전에 놓인 지구와 인류

우리 지구촌은 최악의 상태이고, 환경 훼손에 의해 무겁게 상처를 입었다. 그 효과들은 기후변화의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에밀리 빈스(Emily Binns)는 그의 책 『창조로서 세상, 진화 세상의 시선에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창조』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여전히 최악의 상태가 도달해야 한다. 우리는 온실 효과가 우리에게 고통을 줄, 기후변화의 넘치는 힘의 경험을 아직도 해야 한다. “결핍과 사회적 혼란 상태는 우리 운명을 살해하고 있는 바다오염과 산성비로 옮겨가는 유황 산화물과 탄소에서 피할 수 없는 현재의 이산화탄소 결과들이다.”7)

남태평양 솔로몬 군도의 5개 섬들이 이미 침몰됐다. 바다는 가나의 어떤 도시들 해변을 삼켜버렸다. 마샬 군도 역시 갑작스럽고 절박한 위험 속에 있다. 세계은행 김용 총재는 2014년이 마지막 15년 동안 기록된 가장 무더워진 한 해였다고 확언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세상은 인간존재와 동물들이 견딜 수 있는 가운데 생리학적 한계들에로 도달하는 극단적 온도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8)

지구 온난화는 지구의 다양한 협지에서 발생하는 홍수와 한발로서 다른 파괴효과를 만들었다. 2014년 말라위는 경작지를 침해당하였고, 경작수확물이 파괴되는 고통을 겪었다. “2015년 3월에 60만 명이 타격을 받았고 6만4천 헥타르의 땅이 물에 의해 범람됐다. 유행성 콜레라와 다른 질병들이 그래서 뒤따랐다.”9) 말라위는 단지 일례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의 또 다른 지역에서 다른 많은 것들이 발생하였다. 2016년 5월에 르완다(키갈리) 수도부근 도시들은 홍수가 발생하여 접근할 수 없었다. 불행하게도 지구 온난화와 홍수 결과들의 대부분을 통감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가난하고 취약한 국민들이다. 코끼리 두 마리가 싸울 때 고통 받는 것은 초목들이라는 아프리카의 유명한 금언이 외치듯이 자연이 인간 편에서 착취당하고 개발되며 다시 움직일 때 그렇다. 정말 불쌍한 사람들은 그와 같은 결과들을 만나 인내하고, 좋은 환경들, 건강치료, 안전, 교육을 가능하게 할 방법이 없는 이들이다.

지구를 치유하려는 염려는 거주하는 인간과 땅이 허탈하고 절박한 위험에 처한 사실에서 기인한다. “세상과 비교하여 인간의 태도와 행위가 변하지 않는다면 이는 조만간 강력한 타격을 가할 것이다.”10) 프란치스코 교종은 환경을 살리기 위해 즉각적인 변화를 필요로 하는 인간 행동의 수많은 방면을 강조한다. 인간의 초월생명과 생태적 건강을 위해 본질적인 생물 다양성의 필연적인 손실과 기후변화에 처한 오염의 다양한 형태들이 있다. 천연자원의 지속된 낭비와 소비들이 발생하는데, 그것은 생명에 필수 불가결한 물과 같은 것이다. 모든 단계들에서 평화를 공격하는 민족들과 다른 국가들 사이 그리고 국민들의 내면에 불평등과 사회적 불의가 존재한다. 아프리카 영성에서 기인되는 유용한 어떤 공헌이 존재할까? 우리는 그런 의문에 어떤 응답을 제공하고자 원한다.

아프리카 영성의 공헌

아프리카 영성은 생명 혹은 문화의 모델을 출발점으로 제안하면서 아프리카의 인격을 하느님과 관련짓고자 한다. 이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에 뿌리를 두고 있는 영성이다. 여기에는 신앙 체계와 행동 패턴이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으며, 이는 개인 및 사회 전체의 생각과 행동을 가리킨다. 서로 다른 문화 안에서도 비슷한 생명 유형을 찾아낼 수 있는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이 영성을 공유하고 있다.11) 그것은 창조계 전체가 부여받은 영적 힘을 고려할 때 종교적 중요성을 띠고 있다. 요컨대, 그것은 창조세계가 본질적으로 성스럽다는 것을 인간에게 상기시켜 주는 영성이다.

다른 차원에서, 생태적 빈곤화에 관해서는 아프리카인들에게 특별한 것이 아니다. 많은 것들 땅, 물, 가스, 동물, 숲 등 천연자원의 불법사용과 남용의 경우들인데, 이는 과도한 탐욕, 농업 그리고 강력한 사육, 탈산림화의 원인 때문이다. 아프리카 인구의 광범위한 비율은 생존할 수 있기 위해 생활수단의 농업 그리고 각각 생태를 위한 산림을 신용하고 있다.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 국민의 70%이상이 그들의 식량을 위해 숲으로 뒤덮은 땅과 산림에 의존하고 있다. 시골가정들을 위한 일용품 5가지는 산림에서 온다. 땅, 숲, 산림들은 전방적인 에너지 60%정도 공급하고 있다. 산림지대에 결속된 활동들은 대다수 대륙 국가들의 교목(喬木)부분에서 무거운 부담이 되고 있다.”12) 사람은 성장에 있어서 그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도록 경작이 가능한 땅을 확장하는 목표에 숲들을 취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땔감을 모으고, 또는 처마지붕을 건설하고, 도구공구를 연단하기 위해 목재와 가루석탄을 취하고 있다. 다른 이들은 초목과 잔디 숲과 나무를 활용한다. 이 활동들은 순응적으로 적합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존재를 위해 인간존재들이 의존되는 것에 의해 재생된 것을 모두 써버리는 것은 전문화할 필요가 없다.

지구의 증대된 빈곤은 아마도 가톨릭 신학이 우리 내부에 상처 나고 찢긴 인간성을 언급할 때 귀를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빈곤은 존재하지 않는 누구로부터 오는 “원죄”의 현시이다. 창조의 경우에서 분명히 나타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인간 편에서 죄의 남용 때문에 죄안에 결합된 것이다. “인간존재의 편에서 거절은 ―원죄의 동기로― 피할 수 없는 창조의 결과와 인간의 파괴를 예상하게 한다.”13)

지금 이러한 악화를 이겨내기 위해 아프리카 영성에서 현존하는 방책은 무엇이 있는가? 만일 적절하게 포함된 또는 각각의 팩트들이 우리 생태학적 자각과 의식 그리고 환경보존을 장려할 수 있다면, 우리는 아프리카 문화에서 기인하는 7개 상징과 주제들을 제안하고자 한다.

1) 탯줄. 이는 충만한 의미가 포함된 요소이다. 인간존재와 자연 사이의 상호의존을 장려하기 위해 활용될 수 있다. 탯줄의 선은 모친의 태중에서 아기를 엄마와 관계를 맺고 있다. 태아는 생명의 탯줄 없이 엄마의 태중에서 살 수 없다. “많은 아프리카 문화에서 결연한 아기의 탄생 이후, 탯줄은 그의 기원과 씨족의 토지 그러나 일반적으로 양도되지 말아야 했던 선조의 땅에 신생아의 출발을 의미하는 농가(農家)의 특별한 곳에 묻는다.”14) 어머니와 결합된 태아가 탯줄을 통하여 그 안에서 자라고 치유되며, 어머니는 아기를 품은 여성과 같은 모양으로 우리는 이 지구와 결속되어있다. 하지만 그 지구의 파멸이 우리 스스로의 파괴를 자초하고 있다.

대부분 아프리카 문화에서 탯줄은 그러므로 엄마와 아이가 산 이와 죽은 이들, 조상들과 결합된 양도할 수 없고, 나눌 수 없는 관계로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선조의 땅에 묻힌다. 만일 탯줄이 생각 없이 버려졌다면, 그것은 그런 관계에 대해 빈약한 사고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프리카 사람들이 “자신의 집으로서 공간이 없다”고 말할 때, 이것은 태어난 국가 음식 혹은 각각 부모들의 망각을 느끼는 누군가에 의한 단순한 팩트 증거가 아닌 것이다. 아프리카인들의 대부분은 오히려 그들 공동체와 아비(avi)새의 땅과 함께하는 결속을 넌지시 말하고 있다. 이것이 대부분 공허함을 느끼게 하는 것인데, 이는 특별한 공간, “집”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각자 태어난 땅과 함께 하는 탯줄의 결속은 생태적 차원을 소유하고 있다. 이것은 인류가 지구와 함께 소유한 결속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탯줄을 모욕하는 혹은 천박한 모양으로 다루는 것은 지구전체와 함께 인간성의 결속을 파괴하는 것을 뜻한다. 마게사에게 “그것은 인류의 죽음, 멀어져 가는 것을 수반한다. 자연을 파괴하면서, 인간성은 소속감을 조금씩 잃는다. 죽음 이후 일치로 들어가는 것으로 그리고 삶을 이어가는 동안 의미 있는 수단으로 그리고 깊이 있게 결속되고 있는 어떤 환경도 아닌 그리고 집을 부를 수 있는 다른 장소도 없고, 소속된 곳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15) 진실로 이는 돌을 던지지 않는 초대이며, 그곳에서 우리는 탯줄을 팔았고, 마치 처음에 인용한 금언을 암송하였듯이 ― 옆으로 제쳐둔 우유를 우리가 그곳에서 팔았던 것처럼…, 또는 유비를 위해, 우리 “공동의 집” 전체에 균열들이 생겨 악화되지 않고 더 나쁘게 하지 않도록 하는 초대이다.

2) 아프리카의 많은 문화에서 하느님은 창조와 연결되고, 시간자체에 그 한계를 넘고 있다. 하느님은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내부로부터 움직이신다.”16) 일치, 조화, 상호성, 내적 의존성은 대부분 아프리카 문화의 존재개념을 위한 초대들이다. 왜냐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른 이들과 함께 하는 존재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생명이란 오직 생명의 요소를 전복시키는 것이 지구 전체에 목적을 두기 시작하는 의미로 그렇게 엮게 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물리적 세상은 신성이 거처하는 장소이다. 이 모든 아프리카 전통들은 땅이 신성의 “발바닥을 위한 접는 의자”라는 것을 다시 취한다. “자연은 신들과, 이상들, 신성, 조상들의 영들을 만나기 이한 특혜 공간이다.”17) 르완다인들은 “하느님이 당신의 날을 통과하고 있지만 르완다에서 잠자고 있다”고 단언하면서 그 너머로 도달하고 있다. 이는 하느님께서 창조한 것에서 멀리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마가렛(Magaret G. Gecaga)이 말한 바에 따라서, 물리적 지구의 환경에서 하느님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이 영성은 물리적인 세상을 “모독과 어둠의 영역으로”18) 고려하는 것을 잊어버리는 인간존재들에게 동의한다. 다른 말로 아프리카 우주론은 세속으로부터 거룩함(聖)을 분리하는 이중적 경향을 피하고 있다. 마게사에게 “영적인 것은 하느님의 영 자체를 포함해서 분리하지 않고, 구별하지 않으며, 함께하는 것으로서, 물리적인 것에서만 존재한다.”19)

아프리카 전통 신앙과 성 이냐시오의 영성은 다음과 같은 책무를 공유한다. 즉, 하느님은 창조세계 안에 현존하시는 동시에 이 창조세계를 향하여 자신을 드러내시는데, 이 창조세계의 일부인 우리에게는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그렇게 해야 할 소명이 있다는 것이다. 로욜라의 이냐시오는 “하느님이 어떻게 피조물 안에 거하시는지, 즉 물질에 존재를 부여하시고, 식물 안에서 살아 성장하게 하시고, 동물 안에서 감각을 느끼게 하시며, 사람에게는 지성을 부여하시는 것을 살펴보라고”20) ‘영신수련’을 받는 사람들을 초대하였다. 이 성찰은 세상을 치료하려는 윤리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대우주, 소우주, 숲, 별의 아름다움, 인간생명의 경이로움, 창조의 기적을 기뻐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아프리카 사회는 우리가 공기와 땅, 대양에 고통을 주면서 취하는 불이익들을 멈추도록 초대된 절박함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우리에게 “인간과 땅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정의감 안에 우리의 지평이 넓어지도록”21) 권고되고 있다.

3) 연대는 아프리카 토착민들의 생활양식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로서 실천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프리카 전통의 정치경제 구조에서, 누군가 풍족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공동체에서라면 아무도 굶어 죽지 않는다. 이 원리가 공동체의 친교라는 정신을 지탱하였는데, 종종 ‘아프리카 사회주의’라고도 불린 이 정신은 주로 (모두에게 베풀어 주는 우두머리로서의) ‘부양자 추장’이라는 존재로 나타났다.”22) 공동체를 보살펴주는 자로서 아프리카에서 ‘부양자 추장’의 역할은 창조를 보존하기 위한 유용한 상징이다. ‘부양자 추장’의 전통적인 상징은 온정적인 가족주의의 어떤 척도를 확실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그의 긍정적인 해석에서 아프리카는 모든 아들과 딸의 일상에서 필요한 것을 제공하고자 찾는 ‘부양자 추장’으로서, 오히려 인간 정의의 상징이다. 많은 아프리카 사회에서 부양자 추장은 다양한 타이틀로 인해 더욱 부유한 인격을 최고의 라인 안에 있던 순간에서, 어떤 것들도 소유한 그는 공동체에 속하곤 했는데 이는 그의 첫 의무가 심각한 요청의 상황 안에 있던 자를 치유하였던 것을 뜻한다. 그의 근본 과제는 그의 사람들을 보살피는 것이었다.

‘부양자 추장’의 상징이 갖고 있는 이러한 연대적 해석에서 기원이 되는 지구적 단계에 이런 사회적인 정의의 어떤 연관이 있다. 연대에 대한 이런 책무는 이 세상의 가난한 이들을 협력하도록 부유한 나라들에게 도전하는 것이다. 그들의 생활양식을 바꾸고, 그들 이웃들의 필요성에 몰두하도록 아프리카의 능력있고 부유한 남자와 여성들에게 도전한다. 신학자들도 고통당하는 가난한 이들에게 중대함을 주는 신학을 하도록 서로 도전하게 된다. 쉴러벡스(Edwad Schillebeeckx)는 주장한다. “하느님을 믿고 있는 신학자로서 나는 인간성의 세 가지, 노예, 아사(餓死), 자유를 잃어버릴 때, 하느님을 믿는 나의 신앙에서 구원을 발견하고자 찾아다닌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23) 이러한 질문에 대한 응답들 가운데 한 가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그리고 하느님 백성의 삶의 조건으로부터 끊어진 신학, 상아탑 같은 신학을 우리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구원은 우리와 같이 세상도 구원되는 것이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것이다.

로렌티 마게사는 정의롭게 관찰한다. “대부분의 기초 필수품들이 풍족하지 않도록 조절해야 한다.”24) 이는 윤리적 생태적 결과들을 책임지게 한다. 우리 지구의 한계 자원들의 보호와 가난한 자들의 권리와 존엄성을 위한 고려를 강력히 요구한다. 「찬미받으소서」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은 땅의 가난한 자들뿐만 아니라 땅 자체를 파괴하는 자들처럼 바라보고, 삶의 각자 양식을 재검토하도록 아프리카인을 포함한 모든 이들을 초대한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토마스 베리가 “더 자비심 없는 현존의 방식”25)으로 초래하는 것에 몰두하도록 우리를 초대하는데, 이는 “우리가 마지막 2세기 동안처럼, 남용하였고, 우리 공동의 집을 공격했다”(LS 53)고 고백하는 것을 통해서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자연세상을 위해 자비와 사랑의 배려 안에서 우리의 시선들을 확장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 참으로 더 이상 우리가 땅을 사랑하고 존경하지 않으면 다른 것을 참으로 사랑할 수 없다.

4) 생태적 위기와 강한 개인주의 시대에 우리는 인간관계를 다시 해석해야 한다. 공동체 삶을 무척 가치 있게 여긴다고 알려진 우리 아프리카 사람들은 연대적 관계를 넘어 창조세계와의 동등한 상호관계(reciprocità con il creato)를 향하여 갈 수 있는 법을 배우도록 세상 사람들을 초대한다. 생명은 식물, 동물, 자연을 이해하는 통합적 창조현실을 포함한다. “생명은 영적 물적 나라들의 내면에 그리고 그들 사이에 있는 총제성과 우주적 조화의 보증이다.”26) 지구에 살고 있는 자연과 사회 사이에서 나눌 수 없는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환경’이라고 말할 때 이는 자연과 그 안에 존재하는 사회가 이루는 특별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을 우리 자신과 분리된 것이나 단순한 우리 삶의 틀로만 여기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에 속하므로 자연과 끊임없는 상호 작용을 합니다.”(LS 139) 라고 교종 프란치스코는 말한다. 다시 말해, 상호성과 존중으로써 자연과 관계 맺는다면 의미가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2004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 왕가리 마타이(Wangari Maathai)가 훌륭히 말한 것처럼, “자연은 우리와 분리되어 있거나 우리가 대항해야 하는 그 무엇이 아니다. 자연은 우리가 그 안에 있으면 인간성을 상실하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장소도, 반대로, 도시나 건물이 주는 타락함과 배신감으로부터 벗어나 경치 좋은 곳에서 소박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장소도 아니다. 그 대신, 자연은 인간을 감싸고 있는 어떤 것이다.”27) 상호성과 연대성에서 출발하면서 앞으로 가는 것은 인간의 파트너로서 자연을 다루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베네제트 부조(Bénézet Bujo)는 “세상의 에토스(특질)”, “구원의 에토스(ethos)”로 정의하고, “아프리카의 내적 세상은 종교적이라는”28) 인식을 언급하며, 더 중요한 것, 인간존재의 편에서 환경을 위한 존중의 윤리학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5) ‘동맹’(또는 협정)이라는 성경적 주제는 많은 아프리카 사회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르완다 전통사회에서 동맹(kunywana)은 우정을 나타내는 강력한 징표로서, 이것에 따라서 동맹 관계에 들어가는 두 집안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한 배를 타고 있을 것이라고 서로에게 약속하게 된다. 오르바토르에 따르면, 동맹 관계에는 다양한 여러 차원이 있다. 첫째, 그것은 “‘인간과 자연’ 사이에 상호성과 공통 이익이 있음을 전제한다. 그것은 비인격적인 협정일 수가 없으며, 깊은 차원에서 상호 인격적이다.”29) 왜냐하면 다른 자에 직면하여 어떤 감정 없이 계약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아프리카 신학자 녹스(Peter Knox)는 “신비적 접근을 채택하지 않으면 우리 지구의 구원을 향한 첫 걸음은 지구와 그 거주자들의 누군가를 위해 그 친족들의 감각을 발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30)을 선언할 때, 그는 충분히 옳다.

동맹 관계는 영구적이고 책임감이 있는 상호결속을 추측하고 있다.31) 원인에 있어서 모든 부분들이 알고 있는 것은 기능적인 관계 때문에 안정 그리고 협동하는 경우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같은 모양으로 자연과 함께 인류의 결속은 책임감과 긴 결말에의 과제를 용인하고 있다. 인류는 “자연에 대해 존경과 함께 유심히 보고 보호하며 영광으로 여기고 있다. 한편 마지막 이것이 양식들의 양에서 인간성을 지탱하고 있다.”32) 주는 것과 갖는 것(guha uguha) 위에 기초된 관계이다. 이것이 우리의 개별적인 이해와 우리 스스로 일치가 살고 있는 환경을 느끼도록 하는 우리 양식으로 바라보는 무엇인가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베네딕토16세 전임 교종이 말할 때, 그의 주장에 가깝게 된다. “인류가 환경을 대하는 방식은 인류가 인류를 대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33)결과적으로 동맹 관계는 확대되어야 하며, 인류와 환경 사이의 계약까지 포함해야 한다.

6) 많은 아프리카 사회는 덕스러운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난 조상들과 그들의 행동 모델에 커다란 중요성을 부여한다. 르완다에서는 “행동 모델을 소유하지 않는 공동체는 저주 받았다(umuryango utagira abawuhagarariye ube uvumye).”라는 말을 한다. 아프리카인들의 행동 모델은 생명을 대표한다. 그밖에 “인간존엄성에 대한 어떠한 형태의 억압과 탄압에도 반대한다.”34) 지구의 과다한 착취를 포함하는 압박이다. 우리는 환경의 여걸, 영웅 모델들을 지지하고, 용기를 줘야 한다. 케냐인 왕가리 마타이는 환경 모델로 남아 있다. 그녀는 “우리 공동의 집”의 치유를 위한 관심에 몰입하고 있다. 그녀는 케냐의 많은 지역들의 나무 다시 심기 촉진자였고, 건축물들의 위치로서 정확히 나이로비 중심(uhuru)에 자연공원을 활용하려고 할 때 그의 국가정부를 기소하려고 협박하였다. 노르웨이의 노벨상 위원회는 그런 그의 확고한 의무를 요약하여 말하였다. “마타이 교수는 아프리카와 케냐에서 생명, 생태적 사회와 경제 및 문화발전을 증진하기 위해 첫째 방어선에서 싸우고 있다.” 노벨상 위원회는 그 작업의 전인적인 접근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더 나은 힘들이 그 대륙에서 삶의 좋은 조건들과 평화를 증진하기 위하여 말하는 한 가지 강한 목소리”35)를 결정하였다.

7) 아프리카 영성에는 창조세계에 대한 존경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어떤 나무들, 냇물들은 인간존재와의 관계에서 신성하게 생각되고 있다. 오로바토르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우리의 자연환경에서 존경의 어떤 잣대를 요구하지 않는 어떤 것은 없다. 조상의 나무는 경의의 대상이었다. 사실 예배적인 묘사와 경배의 거룩한 장소였다.”36) 결국 자연은 공경을 강하게 요구하는 그의 신성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왕가리 마타이가 기록하고 있는 대로 “이는 또는 다른 나무들은 그들 조상들과 그들의 영들이 거주하는[…] 여기 그 장소들의 것과 함께 저쪽 넘어 세상과 접속하는 교차점으로서 그들의 공동체들에 의해 깨달은 것들이다.”37)

아프리카 전통의 믿음에서 우리는 결국 영적 차원들과 우리 공동의 지구가 처한 창조적 수단 안에서 공헌할 수 있는 상상력을 발견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연은 인간존재들에게 생계를 안전하게 하기 때문에, 생명을 느끼는 우리 습관은 “땅과 비 그리고 수확물들”로서 지구 생태학적 생명과 숲들, 동물들을 더하면서 자연을 포함하는 목적에 전체현실의 “팽창력을 갖고 포함시켜야” 한다.38) 이는 인간들이 지구로부터 받을 수 있는 동기뿐만 아니라 종교적 확신과 의무계약의 질문을 위하여 창조된 전체질서가 보호되어야 하는 것을 당연히 포함시키고 있다.

결국, 교사들은 “공동선을 위한 책임과 의무, 다른 이들과 자연을 위한 존경, 자기훈련, 이타적이고 미적인 태도들, 그리고 용기, 정의, 지혜”39)를 훈련하고 쌓도록 학생들을 도와야 할 윤리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 생명과 자연을 위하는 이러한 특성은 이미 아프리카 영성 안에 현존하지만, 아프리카 대부분의 학교 현장에서 활발하게 장려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들은 학생들로 하여금 인간 생명과 자연 사이의 연결 시스템이 지닌 온전한 의미를 깨닫도록 해 준다.

기도 역시 변화와 교육의 도구가 될 수 있다. 환경보호를 위한 국가와 지방차원에서 정화된 매일 드리는 기도처럼 마을에서 일상기도는 생명성과 큰 추진력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른 지역들에서 이와 반대로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을의 원로들, 지도자들, 그와 관련 된 다른 모습들은 아프리카 마을에서 이 기도들을 현대화하고, 깊이 있게 하기 위해 함께 모으고 일치하도록 용기를 줘야한다. 환경을 정확히 사용하는데 마음과 정신의 변화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다. 다음의 관용구 “함께 기도하는 공동체는 함께 머문다.”를 낭독하듯이, 이 일치는 자연을 받아들인다. 돌을 던질 수 없는 그 곳에서 자연의 치유를 취하는 공동체는 거기에 우유의 용기(容器)를 놓았다.  이 그릇이 자연자체이다.

결론

“태어나게 한 자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어머니를 모독하고 있다(ulazi ikimuhase atika nyina).” 르완다 금언의 지혜는 생태위기 시대 때 다시 울림의 소리로 나고 있다. 개별적이고 공동체적 차원에서 생태 시스템의 남용과 학대는 무거운 징표로 드러나는 데, 이는 엄마가 자신의 자녀들을 돌보듯이, 자연이 우리를 양육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 중요성을 조금만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원죄로부터 회개를 해야 한다.

이 논문에서 아프리카 영성의 어떤 분명한 상징들을 적용하면서, 우리는 아프리카인들 대부분이 환경을 다루는 양식이 그들의 전통적인 신뢰 시스템에 의해 영향 받기를 선언하도록 원하였다. 분명히 아프리카 영성에 관하여 비판적 시각이 있다. 하지만 그런 비판을 하는 자들을 움직이는 자들에게서 우리 영성의 많은 긍정적인 공헌들이 무시되기 쉽다. 이 글에서 우리는 아프리카 영성이 말하는 우리 공동 의무 안에서 유용한 긍정적인 원천들을 제공하는 것을 바라보도록 찾고자 하였다. 우리 어머니-땅만이 우리가 그녀를 반대해 던지는 많은 돌멩이들을 되돌려 놓기 위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개별적이고, 공동체적이며, 법적, 정치적 원의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원천들(ressourcement)에로의 회복과 우리 문화 안에서 뿌리박기를 역시 요구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 서술된 모든 논제들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아프리카 영성과 그 상징들이 옳은 생각들, 늘 유효할 기회와 질문들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  La Civiltà Cattolica 2017 II 519-533|4008 (17 giu/1 lug 2017)
** Marcel Uwineza S.I.
1) FRANCESCO, Lettera enc. Laudato si’, n. 21.
2) L. MAGESA, ≪African Spirituality and the Environment: Some Principles, Theses, and Orientations≫, in Hekima Review, n. 53, dicembre 2015, 119.
3) A. E. OROBATOR, ≪“An Immense Pile of Filth”: Human Ecology and Communitarian Salvation≫, in Duffy Lecture at Boston College, testo inedito (29 marzo 2016), 1.
4) L. MAGESA, ≪African Spirituality and the Environment≫, cit., 119.
5) M. AMALADOSS, The Asian Jesus, New York, Orbis Books, 2006, 164.
6) Cfr LS 205.
7) E. BINNS, The World as Creation: Creation in Christ in an Evolutionary World View, Wilmington (DE), Micahael Glazier, 1990, 71.
8) J. YONG KIM, 《Plan for the Planet: Confronting Climate Change》, in Public Lecture at Georgetown University, Washington (D.C.), aprile 2015; cfr www.georgetown.edu/news/world-bank-group-president-on-climate-change.html/
9) lvi.
10) L. MAGESA, 《African Spirituality and the Environment》, cit., 120.
11) Dalla nostra conversazione con Laurenti Magesa, del 25 marzo 2017.
12) THE WORLD BANK – AFRICA REGION, Forests, Trees, and Woodlands in Africa: An Action for World Bank Engagement, 14 giugno 2012, cfr www.documents.worldbank.org/
13) L. MAGESA, <<African Spirituality and the Environment>>, cit., 121.
14) Ivi, 122.
15) Ivi, 122 s.
16) Ivi, 72
17) A. E. OROBATOR, Theology Brewed in an African Pot, Nairobi, Paulines Publications Africa, 2008, 132.
18) M. G. GECAGA, 《Creative Stewardship for a New Earth》, in M. N. GETUI – E. A. OBENG(eds), Theology of Reconstruction: Exploratory Essays, Nairobi, Action Publishers, 1999,33.
19) L. MAGESA, 《African Spirituality and the Environment》, cit., 127.
20) IGNAZIO DI LOYOLA, s., Esercizi Spirituali, n. 235.
21) F.WILFRED, Asian Public Theology: Critical Concerns in Challenging Times, Delhi, Ispck, 2010, 153.
22) L. MAGESA, 《African Spirituality and the Environment》, cit., 123.
23) E. SCHILLEBEECKX, Church: The Human Story of God, New york, Crossroad, 1990, 54.
24) L. MAGESA, What Is Not Sacred? African Spirituality, Maryknoll (NY), Orbis Books, 2013, 155.
25) TH. BERRY, The Great Work: Our Way into the Future, New York, Bell Tower, 1999, 7.
26) A. E. OROBATOR, <<“An Immense Pile of Filth”…>>, cit., 8.
27) W. MAATHAI, Replenishing the Earth: Spiritual Values for Healing Ourselves and the World, New York, Doubleday, 2010, 93.
28) B. BUJO, African Religion in Its Social Context, Maryknoll (NY), Orbis Books, 1992, 121.
29) A. E. OROBATOR, <<“An Immense Pile of Filth”…>>, cit., 11.
30) Ivi, 11
31) Ivi.
32) Ivi.
33) BENEDETTO XVI, Lettera enc. Caritas in veritate, n. 51.
34) Ivi.
35) D. KAMMEN, 《Wangari Muta Maathai: a Life of firsts》, in The Great Energy Challenge(www.energyblog.nationalgeographic.com/2011/09/26/wangari-muta-maathai-a-life-of-firsts), 26settembre 2011.
36) A. E. OROBATOR, 《“An Lmmense Pile of filth”…》, cit., 4.
37) W. MAATHAI, Replenishing the Earth…, cit., 93.
38) A. E. OROVATOR, Theology Brewed in an African Pot, cit., 132.
39) E WABENHU, 《The Ecological Crisis and the Normative Ethics of Being》, in Hekima Review, n. 53, dicembre 2015,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