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리아인가?”

파티마의 프란치스코: 상처 입은 세상,
예언자 목동들과 어머니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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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E MARIA?»Francesco a Fátima: il mondo ferito, i pastori profeti e Maria madre

디에고 파레스 신부 –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예수회)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성삼의 딸들 수녀회)

  교종 프란치스코의 파티마 여행은 지난 5월 12일에서 13일까지, 곧 동정 마리아께서 파티마에 발현하신 지 정확히 100주년이 되는 날에 이루어졌다. 교종 프란치스코는 1917년 이 체험을 한 세 목동 중 두 명인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 마르토를 시성했다. 셋째인 루치아는 2005년에 죽었는데 현재 시복소송 중이다.
베드로의 후계자의 파티마 여행은 복자 바오로 6세(1970년 성모님의 발현 50주년에)께서 방문하신 이후로부터 치면, 요한 바오로 2세(1982년 성 베드로 광장에서의 피격 1년 후에, 그리고 1991년과 2000년에), 그리고 베네딕도 16세(2010년,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 목동들의 시복 10주년에)의 여행에 이어 다섯 번째이다.
아래에 교종의 여행 일지를 제공한다. 그에 이어서 발현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여행의 핵심적 요점이었다고 여겨지는 세 가지 요소를 밝힐 터인데,2 이 요소들은 여행의 “정치적” 가치, 어린 목동들에게 맡겨진 예언적 메시지의 중요성, 마리아 신심의 참된 의미이다.

여행 일지

교종의 항공기는 16시 35분에 몬테 레알 공군기지에 착륙했다. 도착 후 교종은 포르투갈 공화국 마르셀로 르베로 소사(Marcelo Rebelo de Sousa) 대통령과 약 천 명 정도 되는 신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관례에 따른 인사를 나눈 후 일행은 자동차로 공군기지 내 경당으로 이동했는데, 그곳에는 병자군인 몇 명과 그 가족들이 있었다. 그 후 공군기지를 떠나 헬리콥터로 파티마의 경기장을 향했다. 그곳에서는 레이리아와 파티마(Leiria-Fátima)의 주교 안토니오 아우구스투 두쉬 산토쉬 마르투(António Augusto dos Santos Marto)와 시장의 환대를 받았는데, 예식이나 연설 없이 즉시 발현 경당으로 향했다.
기념성당의 넓은 마당은 대략 5십만 명 정도의 신자들로 가득 찼는데, 이들은 교종이 도착하자 크게 기뻐하였다. 순례자들은 이미 도착해서 전날 저녁부터 비가 내리는 가운데 머물고 있었다. 기쁨은 서서히 열렬한 기도로 바뀌어 갔다. 즐겁게 나누는 인사들은 기도에 잠긴 깊은 침묵이 되어 교종의 침묵을 동반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주치의인 쏘코르시 교수의 동반을 받으며 동정녀께 기도를 바쳤다. 이어서 “황금장미” 한 송이를 성모상의 발치에 놓아 바쳐드렸다. 이 모든 것이 햇볕 아래서 이루어졌는데, 태양은 교종이 머무는 시간 내내 광장을 떠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교종이 간략한 저녁식사를 위해 인근의 노싸 쎄뇨라 두 까르무(가르멜의 성모 Nossa Senhora do Carmo)의 집으로 이동했다가 저녁 9시 반경 초를 축복하고 묵주 기도를 드리기 위해 돌아올 때까지 기도하면서 기다렸다. 광장에는 불이 켜지고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가 가득 했다. 기도는 교종의 인사로 시작되었는데, 교종은 “마리아의, 마리아와 함께” 하는 순례자들을 향하면서 모두를, 특히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끌어안았다. 이 인사에서 그는 마리아에 대해, 마리아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하나 하면서 아주 효과적인 마리아 교리를 했는데 좀 있다가 이에 대해 살펴보겠다.
묵주 기도를 드린 후 교종은 물러갔고, 밤 10시 30분 경 5월 13일 마리아 대축일을 위한 전야 미사가 삐에트로 빠롤린(Pietro Parolin) 추기경 집전으로 시작되었다. 기다란 행렬이 경당에서 출발하여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기념성당을 거쳐 대성당 마당 앞에 설치된 제대에 도착했다. 미사는 밤 한 시 가까이에 끝났다.
13일 토요일, 교종은 포르투갈의 국무총리 안토니오 루이쉬 싼토쉬 다 코스타(António Luís Santos da Costa)와의 만남과 노싸 쎄뇨라 두 카르무의 집을 떠나 어린 목동들의 무덤을 참배하러 대성당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였다. 그 후 교종은 발현 100주년을 기해서 거행되는 시성미사를 준비하기 위해 제의실로 향했다.
55개국 이상에서 온 사람들로 넘쳐나는 광장 앞에서 프란치스코는 성 프란치스코와 성 히야친타를 선포하였다. 깊은 침묵이나 기쁨에 찬 성가가 이어진 미사 중에 있었던 수많은 감동적인 순간들 중 모두가 주목한 순간은 뇌의 외상外傷으로 삶을 마칠 뻔했다가 목동들의 전구로 치유된 브라질 소년을 교종이 오랫동안 정겹게 포옹한 순간이었다. 그 치유는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의 시성소송을 마무리한 기적이었다.
강론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은 “우리에겐 어머니가 계십니다!” 하고 두 번 반복해서 말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말했다. “자녀들로서 그 어머니를 붙드십시오. 예수님께 기초한 희망으로 살아갑시다.” 순례자 교종은 모두를 위해 기도하는데, 특히 “병자들과 장애인들, 갇힌 이들과 실업자들, 가난한 이들과 버림받은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는 수많은 순례자들이 자신과 함께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루치아 수녀의 『회고록』(III, n. 6)에서 방금 환시의 은혜를 받은 히야친타에게 이렇게 말하는 부분을 인용하면서 그것을 상기시켰다. “수많은 거리, 수많은 길과 굶주림에 울면서 먹을 것이라곤 없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들판이 보이지 않니? 성당 안에서 티 없으신 성모성심 앞에서 기도하고 계시는 교종이 보이지 않니? 그분과 함께 기도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니?” 그리하여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렇게 외쳤다. “저와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미사 끝에 성체조배 시간을 가지고 나서 병자들을 위한 성체강복과 함께 성체행렬이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병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특별한 인사를 하였다. “사랑하는 병자 여러분, 여러분의 삶을 하나의 선물로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이 목동들처럼 성모님께 여러분의 삶을 온 마음으로 하느님께 봉헌하고 싶다고 말씀드리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그저 자선활동 안에서 이루어지는 연대의 대상자로만 여기지 마시고 교회의 삶과 사명에 온전한 자격으로 참여한다고 생각하십시오. 조용하지만 많은 말들보다 더 웅변적인 여러분의 현존, 여러분의 기도, 세상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고통에 합하여 날마다 여러분의 고통을 바치는 것, 여러분의 처지를 인내를 가지고, 더 나아가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 등은 하나의 영적 자원이요 모든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하나의 자산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의 소중한 보물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끝으로 언급할 것은 70명 정도의 성공회 순례자들과 함께 온 영국 교회의 주교 다섯 명이 제대 앞에 있었다는 사실인데,3 그 중 넷은 ‘파티마의 벗들의 교회일치 협회’4 소속이다. 이는 미사거행에 마리아의 이름으로 에큐메니즘의 숨결을 부여해 준 현존이었다.
미사가 끝나자 교종은 포르투갈 주교들 및 그 수행원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그 직후에 교종은 몬테 레알 공군기지로 이동하여 공화국 대통령의 환대를 받았다. 약 700명 정도의 신자들이 참석한 대표자들의 인사 후에 프란치스코 교종은 포르투갈 항공사 탑(Tap) 항공기에 탑승하여 로마로 돌아갔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3차 세계대전 사이의 파티마: 상처 입은 세상

이 순례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이집트 여행5과 그에 이어지는 5월 24일에 있었던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바티칸 방문 사이에 자리한다. 그래서 교종은 성모상 앞에서 바친 기도에서 세상을 위한 자신의 지향을 모아들일 수 있는 기도를 이렇게 올려 드릴 수 있었다. “당신 손으로부터 저희에게 오시는 빛의 순례자인 저는 모든 시간과 장소에서 인간역사 안에 일하시는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곳에서 당신이 선포하시는 평화의 순례자인 저는, 우리의 평화이신 그리스도께 찬미를 드리고 세상을 위해서 모든 민족들 사이의 화합을 간청합니다.”
먼저 생각해 볼 것은 이 여행이 평화의 탄원이었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국제적 상황이 “짙은 구름을 통과했음을, 따라서 긴장을 감소시킬 평화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 필요한 태도와 행동에 대한 더 깊은 인식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6 여행의 모토는 그래서 “마리아와 함께, 희망과 평화 속의 순례자로”였다. 사실 이는 어쩌면 교종이 하루하루 수행하는, 영적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부드러운 힘(soft power)으로 이루어지는 평화를 위한 활동의 절정을 이루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 기도에서는 또한 그의 정치적 메시지들이, 그리고 알 아자르(al-Azhar)의 이맘(Imam)을 끌어안았던 것과 같은 포옹들이 진동한다. 하느님의 어머니께 바치는 그 기도에는 최근 어떤 폭탄의 이름에 붙인 “어머니”라는 명칭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담겨 있다. 아울러 하느님 앞에서, 그리고 동정 성모 앞에서, 세계대전 중이라는 시대적 배치로 인해 파티마가 잘 대표하고 있는 역사의 해석학이 전개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파티마의 성모상 왕관에 1981년 5월 13일 성 요한 바오로 2세를 저격한 9구경짜리 권총의 그 총알이 박혀 있다는 점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출발하기 전에 5월 10일 수요일의 교리교수에서 그렇게 말했었다. “복음서 안의 역사에 처음 나타나시는 순간부터 [마리아라는 인물은] 마치 드라마의 인물처럼 부각됩니다.”7
프란치스코 교종은 파티마에 도착해서 자신의 순례의 의향이 “세상, 세상의 평화”라고 말했던 바오로 6세의 입장을 확인했다. 당시 바오로 6세 교종은 “모든 것이 세상을 형제관계로, 일치로 몰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인류의 안에서는 아직도 무시무시하고 지속적인 갈등이 폭발하고 있습니다”라고 지적했다.8 그 지적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지구상의 상처 입은 나라들을 알기 위해서는 5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이 들고 있는 깃발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또 방구이에서 카라카스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중동에 이르기까지 대륙들에서 들려오는 도움의 요청들과 수많은 “벽들”의 그림자가 하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몇몇 표지판들을 읽는 것으로 충분했다.
기도의 맥락 안에는 지난 1월 9일 교종이 외교관들에게 했던 연설이 되울렸다. 실제로 5월 12일 밤의 강론에서 빠롤린 추기경은 교종의 말을 인용하였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말씀은 이러하였다. “많은 사람에게 오늘날 평화가 어떤 식으론가 당연한 선善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미 획득한 권리여서 거의 더 이상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그런 권리로 보일지 모르지만, 너무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평화는 여전히 먼 곳의 신기루일 뿐입니다. 수백만의 사람들은 아직도 무의미한 갈등의 한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한 때는 안전하다고 여겨져 온 장소들에서도 보편적인 공포감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자주 죽음의 표상들에, 도움과 위로를 애원하는 무죄한 이들의 고통에, 증오와 폭력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우는 사람의 슬픔에, 전쟁을 피해 달아난 피난민들이나 비극적으로 사라져 가는 이주민들의 드라마에 압도당합니다.”
교종은 또 13일 오전 개인적인 시간에 팔레스티나 출신의 한 난민 가족 아홉 명을 만나기를 원했는데, 그 중 셋은 어린이였다. 이 가족은 4세대를 대변하고 있었다. 첫 세대는 1948년에 이라크로 이주했으나 2003년의 전쟁으로 인해 가족은 시리아로 피신해야만 했고, 또 다른 분쟁으로 인해 2012년에는 리비아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떠나 2015년 11월에 람페두사에 도착했다. 이후 신청자들을 위한 난민시설 카스텔누오보 디 포르토Castelnuovo di Porto(로마) 구호원에 잠시 머물렀는데, 거기서 2016년 성 목요일 교종을 만났었다. 이제는 난민 재배치 덕분에 파티마에서 그리 멀지 않은 버탈랴(Batalha)에서 살고 있다. 그야말로 교종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전지구적인 정치적 매듭”9이라고 규정했던 바를 대표하는 이민의 면면을 살아온 가족이다. “우리 두 번째 만나네요. 예루살렘에서 세 번째로 성하를 뵙고 싶습니다.”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하며 자신을 포옹하는 프란치스코 교종에게 할머니가 마음을 열고 하는 말이다. 프란치스코는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제3차 세계대전”이 제1차 세계대전 중이나 ‘냉전’ 중에 하늘로 올라간 기도만큼이나 열렬한 청원기도를 요구한다는 것을 알면서 세상의 상처를 만진다. 이 기도는 한낱 목동들에 불과한 “예언자들”, 주님께서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이 아니라 “철부지들”을 위해 보존해 두신(마태 11,25-26 참조) 진정성의 보호자들에 의해 선포된 참으로 예언적인 파티마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예언자들”로서의 목동들

  두 번째로 고려할 것은 이들이 순교자가 아닌 어린이들로서는 처음으로 성인으로 선포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메시지들”로부터 발산되는 본질적인 메시지, 곧 파티마의 가장 두드러진 “비밀”은 “지혜롭다는 자들”에게 감추어진 것들이 철부지 어린이들에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메시지를 이해하고 그 말씀을 단순하게 실천한다.
히야친타는 발현 당시 여섯 살밖에 되지 않았었고 프란치스코는 아홉 살, 루치아는 10살이었다. 최초의 “기쁜 소식”은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그 후로 일어난 모든 일에서 이 사실을 보고 읽어내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 사건들은 1916년 봄에 어린이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기도를 가르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는 1917년 매달 13일에 여섯 번 성모님이 발현한 것으로 이어진다. 그 사건들의 극적인 순간은 프란치스코가 스페인 독감에 걸려 일찍 죽고(1919년 4월 4일) 이어서 히야친타가 1920년 2월 20일에 죽었을 때였다. 모든 사건은 루치아의 이야기와 함께 한쪽에 놓였었다. 이제 그 사건들은 교회 역사상 최연소자들인 이 두 성인들의 시성과 함께 영광의 관을 받게 되었다.
교종은 5월 14일 삼종기도에서 그들의 성덕을 요약하여 이렇게 설명하였다. “파티마에서 동정 마리아께서는 당신 메시지의 보전자로서 어린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와 루치아의 티 없는 마음과 단순함을 선택하셨습니다. 이 아이들은 그 메시지를 합당하게 받아들여 발현의 믿을 만한 증거자들로 인정받음으로써 그리스도교인의 삶의 모델이 된 것입니다.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의 시성으로써 저는 전체 교회에 그들이 보여 준 그리스도께 대한 헌신과 복음적 증거의 표양을 제시하고 싶었으며, 또한 온 교회에 어린이들을 돌볼 것을 제안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들의 성덕은 발현의 결과가 아니라 그들이 충실성과 열렬함으로 동정 마리아를 볼 수 있는 특권에 부응했던 것의 결과입니다.”
성모님은 목동들에게 나타나셨고, 처음에는 그들끼리 있을 때, 나중에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루치아는 회고록에서 그 당시에는 자기가 알던 세계와는 무관해 보이던 어떤 것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지금 신약성경에서 예수님께서 팔레스티나를 거니시는 매혹적인 장면을 읽을 때, 저는 주님께서 제가 아직 어렸음에도 알쥬스트렐(Aljustrel)에서 파티마와 코바 데 이리아(Cova de Iría)에 이르는 초라한 작은 길들과 거리들에서 저에게 보여 주신 그 장면들을 기억합니다. 저는 그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착한 우리 포르투갈 백성의 신앙을 바쳐드립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이 세 명의 가난한 어린이들 앞에 부복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그들에게 자비롭게도 하느님의 어머니와 이야기하는 은총이 부여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자기들 앞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보았다면 무엇인들 하지 않았겠습니까?”10
그렇게 쓰고 나서 루치아는 자신이 “원하지 않던 곳에서 펜이 벗어나 또다시 빗나간” 것으로 여겼다. “사족蛇足이지만 삭제하지 않습니다. 글 전체를 무익한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요.” 하지만 “착한 우리 포르투갈 백성의 신앙”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우리 시대에는 기적과 우주적 현현顯現과 비밀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 준다.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그 신실한 포르투갈 민족의 일원으로서 어린이들은 각자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그리고 서로 통합하면서 메시지의 본질을 이해했다. 프란치스코는 동정녀를 보기는 했지만 듣지는 못했다. 그에게 동정녀께서 하신 말씀을 전해 준 것은 그의 사촌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사명이 천사가 세 번째 발현에서 명한 바, “너희 하느님을 위로해 드려라” 하는 말과 연결되어 있음을 깊이 이해했다. 그 말은 어린 목동의 마음에 무척 깊은 인상을 남겨서, “그는 자신에게 몹시 슬픈 모습으로 나타나신 주님과 성모님을 위로하는 일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11 지옥의 환시에 몹시 동요된 히야친타는 “오직 죄인들을 회개시키고 영혼들을 지옥에서 해방시킬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았다.”12 루치아에게 돌아온 몫은 이 이야기를 알리는 것일 터였다.
그 어린이들은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다. 천사의 확고한 기도는 환상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나의 하느님! 저는 당신을 믿고 흠숭하고 희망하고 사랑합니다! 당신을 믿지 않고, 흠숭하지 않고, 희망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당신께 용서를 청하나이다.”13 하지만 기도가 “하느님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고 “불쌍한 죄인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은 적잖은 의미를 지닌다. 자주 “의무”와 “징벌에 대한 두려움”의 관점에서 해석되어 온 기도를, 기쁨과 자비의 열쇠로 해석할 때 새롭게 조명을 받게 되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희생의 가치를 이해했다. 루치아가 “저희가 어떻게 희생을 할까요?” 하고 어린이답게 구체적으로 물었을 때 천사는 똑같이 구체적으로 대답한다. “너희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에서 죄인들을 위한 보상으로 하느님께 희생을 바쳐라.”14 어린이들이 중재기도의 힘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을 향한 작은 희생들을 바치기 시작하는 방식은 참으로 놀랍다. 매우 자연스럽게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기네 무화과와 포도를 주었다고 말한다. 어떤 희생들은 지나치게 커지려는 경향이 나타나지만(어린이들이 건강이 위험해지지 않도록 동정녀께서 어떤 아이에게는 희생을 완화시켜 주신다) 말이다. 이러한 기도와 보속의 요청이 가져온 첫 번째 효과는 처음에 그들이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 천사의 기도를 반복”15했던 것이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어린 목동들인 그들은 “하느님을 위로할 수 있음을”, 크고 작은 희생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한 중재기도의 가치가 있음을, 그리고 자신들이 받는 은총은 백성 전체를 위하고 인류 전체를 위한 것임을 아주 잘 이해한다. “불쌍한 죄인들”이 어린이들 안에 불러일으키는 고통은 하느님의 슬픔을 느끼게 하는 그 동일한 고통이다. 여기서 상기되는, 그리고 어린이들 안에서 구체적인 활동으로 옮겨지는 근본적인 감정은, 자비의 감정이다.
파티마의 메시지에서 가장 흥미로운 비밀은 어쩌면 “하느님과 인간의 작음 사이의 대화”가 존재한다는 것일 것이다. 하느님은 작은 이들 – 작은 사람들과 작은 민족들 – 을 택하신다. 그들과는 대화할 수가 있고, 그들을 직함으로가 아니라 “이름으로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성모님도 당신의 “작음”을 주님께서 양선하심으로 바라보셨다고 말씀하신다. 교종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당신 백성을 선택하셔야 할 때는 항상 작은 존재들을 택하십니다.”16 더 나아가, 그분은 “우리의 작음을 사랑하시는”18 하느님이시다. 교종이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환경에 대해 말할 때도, 곧 “작은 문화들”의 가치와 그 문화들의 비전과 우리의 자매요 어머니인 땅을 돌볼 필요성을 강조할 때, 민중운동을 향해 말하면서 “작은 이 안에서, 가까이 있는 이 안에서 일하는”19 것을 높이 평가할 때, 그의 모든 이야기는 이 충만하고 의미심장한 작음에 근원을 둔다.
매우 다양하고 서로 무척 다른 이념들을 가진 군중 앞에서 자주 교종은 정치사회적 내용의 연설 안에 동정녀 성모님을 등장시킨다.20 한번은 청중의 마음에 호소를 하면서 이렇게 청했다. “노숙자이신 어머니”이신 “동정 마리아를 항상 마음 안에 모시도록 합시다.”21 파티마의 동정녀께 드리는 봉헌에서 교종의 기도는 이러하였다. “작은 이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배제된 이들과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죄인들과 마음을 잃어 버린 이들을 위한 당신의 그 각별한 마음의 사랑을 저희에게 가르쳐 주소서. 모든 이를 당신 보호 아래 모아들여 주시고 모든 이를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에게로 인도하소서.”22

교종 프란치스코의 관점에서 본 마리아는 누구인가

  초 축복과 묵주 기도를 위한 인사에서 교종은 마리아가 누구인지에 대한, 그분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또 그 분 현존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세 번째로 살펴볼 것은 바로 이것이다.
“어떤 마리아인가?” 프란치스코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영적 생활의 스승, 십자가의 ‘좁은 길’로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우리에게 모범을 제공한 최초의 사람인가, 혹은 ‘도달할 수 없는’, 따라서 본받을 수 없는 어떤 여인인가?” 그는 또 질문한다. “항상, 그리고 모든 상황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믿으셨으니 복되신 분’(루카 1,42.45 참조)인가, 혹은 싼 값으로 부탁한 바를 얻어내기 위해 의탁하는 대상으로서의 ‘성녀’인가?” 끝으로 세 번째 질문은 이렇다. “기도하는 교회의 공경을 받는 복음서의 동정 마리아인가, 혹은 당장 벌을 주려고 쳐든 하느님의 팔을 붙잡고 있는 분, 곧 무자비한 심판관으로 간주되는 그리스도보다 더 나은 마리아, 우리를 위해 희생제물이 되신 어린양보다 더 자비로운 마리아로 보는 주관적인 감수성이 그려내는 마리아인가?”
이 질문들을 통해 교종 프란치스코는 “(복음서가 말하는 대로) 하느님의 자비로 용서받는다는 것을 앞세우지 않고, 하느님의 정의로 죄인은 벌을 받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하느님과 그분의 은총을 거슬러 말하게 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범하게 되는 ‘커다란 불의’를 경계한다. “우리는 자비를 심판에 앞세워야 합니다. 어쨌건 하느님의 심판은 항상 당신 자비에 비추어서 행해질 것입니다.”
교종 프란치스코의 삶에서 마리아는 언제나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한다. 마리아의 다양한 호칭들 – 여왕, 여인… – 은 결국 다 올바른 호칭이지만, 본질적으로 “그분은 어머니이십니다. 왜냐면 우리를 예수님께 데려가시고, 우리들 안에 예수님이 태어나시고 자라나시도록 성령의 힘을 통해 우리를 도와 주시기 때문입니다.”23 파티마에서 교종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삶 안에서의 마리아의 현존을 어떻게 깨닫는지에 대한 묵상을 제시하면서, 더 깊고 참된 이해로 초대하였다.
파티마에서 인사말 중에 제기된 질문은 또 프란치스코의 영성 안에서 동정 마리아의 자리는 어떤 것인지에 대해 묻도록 우리를 이끌어간다. 마리아의 중요성은 그의 행위 안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곧 그는 대중적 신비학의 전형적인 동작을 통해 “영적 감각을 활용하면서”24, 기도하고 십자성호를 긋기 위해 먼저 성화를 만지는 등 단순한 사람들에게서 배운 신심을 표현한다.
습관이 된 한 가지 신심은 교종이 해외여행을 시작할 때와 마치고 돌아와서, 그리고 중요한 일들이 있을 때, 하느님의 어머니께 자신의 사명을 부탁하기 위해, 그리고 감사드리기 위해 성모님께 드릴 꽃다발을 들고 로마에 있는 산타 마리아 마죠레 대성당(Santa Maria Maggiore)으로 향하는 것이다.
이것이 2013년 3월 14일 교종직에 선출된 다음날 아침 그의 첫 번째 공식 행위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예수회원으로서 로마에 처음 왔을 때부터 산타 마리아 마죠레를 찾았다. 그리고 동정 마리아에게 꽃을 가져가는 습관은 그의 가족에게서, 도움이신 마리아께 대한 그의 신심에서 나온 것이다. 예수회원으로서, 그리고 나중에는 주교와 추기경으로서 베르골료는 매달 23일이나 24일에는 [역주: 매달 24일은 도움이신 마리아를 기념하는 날이다.] 자기가 세례를 받았던 성 가롤로 성당 안의 동정 마리아 경당으로 기도하러 가면서 마리아께 꽃을 가져가곤 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25
하느님의 어머니를 향한 이러한 행위들에는 교종 프란치스코의 모든 신학이 집약되는데, 이 때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특별한 말이나 생각, 그분께 드리는 행동이, 결국은 보편 교회와, 그리고 믿는 이들 개개인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말이 된다.26 산타 마리아 마죠레에서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의 어머니. 이는 성모님의 주요하고 본질적인 호칭입니다. 그리스도인 백성이 하늘 엄마를 향한 그 다정하고 참된 신심 안에서 처음부터 깨달아 왔던 하나의 자질이자 역할인 것입니다. […] 그것은 자기네 어머니를 잘 아는 자녀들의 자발적이고 진실한 태도이지요. 그들은 그분을 크나큰 다정함으로 사랑하니까요. 하지만 그 뿐만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그것은 하느님의 충실하고 거룩한 백성이 지난 신앙감각(sensus fidei)으로서, 이는 일치 안에서 결코 오류를 범하지 않습니다.”27
베르골료 추기경은 이렇게 표현하곤 했다. “그리스도인 백성은 하느님의 보호가 개별화되고 독특한 마리아라는 표상을 향한 기도를 통해 자신에게 온다는 것을, 따라서 마리아는 그 백성을 개별화하고 독특하게 한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백성은 그렇게 마리아의 표상과 스스로 동일시됨을 느낍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그분께 의탁했듯이 오늘날 그들은 자기네 문제들을 위해 그분께 의탁합니다. 마리아의 개인적 덕행들에 감탄하면서 대중 신심은 하느님께 도달하기 위해 그분의 특성들을 활용합니다. 마리아의 기적적 행위는 어떤 한 장소에 대한, 그리고 어떤 한 장소로부터 나오는 개별화된 보호의 주요한 표징입니다.”28
프란치스코 교종의 마리아론은, 마리아와 백성과 각 신자 개인 사이의 이러한 신비로운 관계에 중점을 두는 이 관상에서 샘솟는다. 그의 마리아론은 그의 몸짓과 강론과 글에도 나타나고, 그의 신학적 성찰만이 아니라 교회론과 윤리관과 정치사회적 견해에도 스며들어 있다.
실례로, 쇤슈타트(Schönstatt) 운동에 속한 신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에, 마리아에 대해 무슨 말을 해 줄 것인지 그에게 물었던 한 부부에게 해준 간략한 답변에서는 교종이 마리아에 대해 듣고 묵상하는 방식이 실제로 보인다. 프란치스코는 마리아께서 본질적으로 어머니이심을 강조했다. 즉시 그의 묵상은 각 신자에게로 향한다. “그리스도인은 ‘구아쵸’, 곧 고아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악惡의 표지를 드러내는, 곧 혼자서 가 버리는 …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를 고아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주는 가르침은 “그리스도인은 고아일 수 없습니다.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고 있으니까요.”라고 할 수 있다. 묵상은 교회론으로 확장된다. “마리아 없는 교회는 고아원이지요.” 그리고 한 가지 예를 덧붙였다. “남부 이탈리아에는 만다린(역주: 감귤류의 하나)의 동정녀에 대한 신심이 있는데 부랑배들, 도둑들… 이런 사람들이 그 신심을 가지고 있지요.” 동정녀께서 당신께 대한 이런 신심을 가진 이들 중 하나가 하늘에 도착한 사람들 사이에서 줄을 서 있는 것을 보시면 그에게 줄에서 떨어져 나와서 기다리라는 표시를 하시고는 밤에 성 베드로가 보지 않을 때 당신 자신이 문을 열어 주신다는 전승을 이야기한다. 교종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마리아 신심가는 단죄 받지 않습니다.” “마리아께서는 사람들의 양심을 움직이시는 방법을 아십니다.” 교종은 이는 “대단히 위대한 신학”이라고 말한다. “어머니는 자기 자녀를 끝까지 돌본다”고 하는 위대한 진리를 드러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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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는 파티마를 여행하면서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 목동들에게 주셨던 회개의 메시지가 이곳으로부터 퍼져나간다는 사실을 기렸다. 그것은 세상에 관한 메시지이고 “세상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점점 더 확산되어 가는 수많은 전쟁의 종식을, 그리고 인류의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크고 작은 부조리한 갈등의 종식”29을 바라는 메시지이다.


1 La Civiltà Cattolica 2017 II 462-475 | 4007 (3/2017년 6월 17일)
2 마리아 발현의 메시지가 지닌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2000년 6월 26일 신앙교리성에서 발간한 파티마의 메시지에 대한 당시의 라칭거 추기경의 신학적 해설을 읽는 것이 좋다.
3 풀햄의 주교 Jonathan Baker, 비벌리의 주교 Glyn Webster, 리치보로우의 주교 Norman Bank, 엡스플리트의 주교 Jonathan Goodall, 휘트비의 은퇴주교 Robert Ladds.
4 이 협회는 2001년 5월 15일 창립되어 레이리아-파티마의 전임주교 쎄라핀 프레이라 이 실바(Serafim Ferreira e Silva)가 참석한 가운데 리치보로우의 성공회 주교 에드윈 반즈(Edwin Barnes)에 의해 파티마의 티 없으신 성모성심께 봉헌되었다. 협회의 목적은 마리아의 중재를 통한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이다. 매년 5월 12일과 13일의 행사에 참여하는 일정으로 파티마의 기념성당 순례를 기획한다.
5 A. Spadaro, ‘문명과 계약의 땅 이집트. 프란치스코의 드라마틱하고 치유적이며 예언적인 여행’, in Civ. Catt. 2017 II 285-299 참조.
6 프란치스코 교종은 파티마에서 돌아온 지 며칠 지나지 않은 5월 18일 모리타니아, 네팔, 트리니다드 토바고, 수단, 카자키스탄과 니제르의 대사들에게 신임장을 수여하기 위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7 강조는 필자의 것.
8 바오로 6세, 1967년 5월 13일 파티마의 대성전에서 봉헌한 미사 중 강론.
9 “교종 프란치스코, 4000호 간행을 기념하는 ‘라 치빌타 카톨리카’를 만나다”, Civ. Catt. 2017 I 439-447.
10 루치아 수녀의 회고록, 제1권, Fátima, Secretariado dos Pastorinhos, 2007, 175.
11 같은 책, 153.
12 같은 곳.
13 같은 책, 77.
14 같은 책, 78.
15 같은 곳.
16 프란치스코, 2014년 1월 21일, 싼타 마르타에서의 강론.
17 Id., 2014년 12월 24일, 성탄 전야미사 강론.
18 A. Spadaro – D. Fares, “교종 프란치스코와 아메리카 삼국. 쿠바, 미국, 멕시코”, in Civ. Catt., 2016 I 472-488 참조.
19 프란치스코, “민중 운동의 두 번째 세계 모임 담화”, 2015년 7월 9일.
20 D. Fares, “교종 프란치스코와 정치”, in Civ. Catt., 2016 I 373-385 참조.
21 같은 곳.
22 프란치스코, 2013년 10월 13일, 파티마의 동정녀 마리아께 의탁하는 기도.
23 Id., 2014년 10월 25일, 사도적 운동 Schönstatt와의 만남에서 있었던 대화.
24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영신수련』, 121항.
25 A. Leon, 『교종 프란치스코와 돈 보스코』, 바티칸 시국, 바티칸 출판사와 서점, 2015, 90-93쪽의 돈 호르헤 카사노바와 돈 호세 마리오 레포브즈의 증언 참조.
26 교종 프란치스코가 반복해서 말하길 좋아하는 이 문장은 복자 스텔라의 이사악의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성경에서는 합당하게, 동정이신 어머니 교회에 대해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것은 개별적으로 동정녀이신 어머닌 마리아를 의미한다. 그리고 특별히 동정이신 어머니 마리아에 대해 말해지는 것은 동정이신 어머니 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또한 신앙인 개개인의 영혼도 하느님 말씀의 신부로, 동정녀이자 생명을 낳는 그리스도의 어머니요 딸이자 누이로 간주되어야 한다. 결국 일반적으로는 교회에 대해서, 특별하게는 마리아에 대해서, 특수한 방식으로는 또한 신앙인의 영혼에 대해서도 성부의 말씀이신 하느님의 지혜 자신이 말씀하신다.” J. M. Bergoglio, 제 49차 세계 성체대회에서의 교리교수, 2008년 6월 18일 (이탈리아어 번역본은 Nei tuoi occhi è la mia parola, Milano, Rizzoli, 2016, 646 [주 6]) 참조. Isacco della Stella, Discorsi, 51 (PL 194, 1862-1863.1865)도 참조.
27 프란치스코, 2014년 1월 1일,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 대축일 강론.
28 J. M. Bergoglio, 『신앙의 토착화로서의 대중신심』, 2008년 1월 19일(위의 책 이탈리아어 번역본 Nei tuoi occhi è la mia parola, 601).
29 프란치스코 교종은 2017년 5월 14일, 곧 파티마 순례에서 돌아온 다음날 삼종기도에서 이렇게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