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결코 강요하지 않으신다”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 식별과 그리스도교적 성숙
«GESÙ NON IMPONE MAI»
«Amoris laetitia», discernimento e maturitàcristiana

피에트로 M. 스키아보네 신부(예수회)
안소근 실비아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대전 가톨릭 대학교) 옮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 1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의 기쁨」은 인간들의 도덕 규범이나 교회법적 규정들이 아니라 무엇보다 먼저 그리고 무엇보다 특별하게 하느님의 자비와 연민을 기억한다는 점을 고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주제는 프란치스코 교종이 그의 교종직 초기부터 되풀이하여 다루었던 주제이다. 로마 교구의 교회대회를 개막하면서 교종은 “하느님께서 바라보시는 섬세함으로 우리 가정들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양심을 하느님 방향으로 위치시킬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리고 “자비를 강조하는 것은 현실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실제 상황 앞에 서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현실주의가 아니라 하느님의 현실주의입니다.”라고 단언했다. 또한 “참으로 다른 이들의 구체적인 삶을 접하는 것을 수용하고 자애로움의 힘을 깨닫기 위해서는 얽히고설킨 인간 드라마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게 해 주는 ‘울타리’를 포기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 수용하고, 동반하고, 식별하고, 통합하는 가정 사목을 펼쳐갈 것을 명합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교종이 “우리 공동체들 안에서 이중적인 윤리, 곧 까다로운 윤리와 관용적 윤리, 엄격한 윤리와 방임적 윤리가 생겨나는 것을 어떻게 피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중에 이런 말들을 하였다. “두 가지 모두 진리가 아닙니다.”라고 규정한 다음, 교종은 이렇게 말했다. “복음은 다른 길을 택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도덕 생활에 참견하지 않으면서 이 네 단어를 – 수용, 동반, 식별, 통합 – 택합니다.”

식별과 통합은 정상을 참작하고 상황들을 고려한다. 이는 「사랑의 기쁨」(이하 AL)에서 말하듯이 “교회는 정상 참작의 요인들과 상황에 관한 확고한 생각이”(AL 301)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식별과 통합은 감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현실을 깨닫고 그 체험으로부터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로마 12,1)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세례받고 이혼한 다음 사회법적으로 재혼한 이들에 관한 “통합의 논리는 그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의 핵심입니다.”(AL 299)라는 단언과 함께 우리가 하나의 지침으로 여기는 지침들이다.

“구체적 현실에 주의를 기울이기”

「사랑의 기쁨」 제2장인 “가정의 현실과 도전” 첫머리의 말은 근본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요한 바오로 2세 교종의 「가정 공동체(Familiaris consortio, 이하 FC)」 4항을 인용하면서, 교종은 이렇게 말한다. “구체적인 현실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한 이유는 ‘성령의 부르심과 요구가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서 울려 퍼지며’ 이를 통하여 ‘교회는 또한[…] 혼인과 가정의 끝없는 신비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AL 31). 이것은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이하 GS)」 4항과 11항에서 말했던 가르침이다. 4항은 “교회는 시대의 징표를 탐구하고 이를 복음의 빛으로 해석하여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각 세대에 알맞은 방법으로 교회는 현세와 내세의 삶의 의미 그리고 그 상호 관계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물음에 대답해 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그 세계의 기대와 열망 그리고 때로는 극적이기도 한 그 특성을 인식”해야 할 의무를 재천명한다(GS 4).

두 번째 본문도 이에 못지않게 명확하다. “하느님의 백성은 온 누리에 충만하신 주님의 성령께 인도되고 있음을 믿는 그 신앙에 따라, […] 사건과 요구와 염원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과 그 계획의 진정한 징표가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신앙이야말로 모든 것을 새로운 빛으로 밝혀 주고 인간의 소명 전체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드러내 주며, 따라서 참으로 인간적인 해결로 마음을 이끌어 준다”(GS 11). 이 말들은 사람, 시간, 장소, 그리고 그 밖의 상황들을 고려할 필요성의 근거를 제시하는 말들이다. 바로 성령께서 역사의 사건들 안에서 현존하시고 활동하시기 때문이다.

이어서, 식별을 통하여 성령의 요청과 호소를 찾아내기 위하여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얽혀 있는 현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의무를 말한다. 베르골료 교종은 「최종 보고서」 51항을 인용하며 이를 다시 강조한다(보고서는 다시 FC 84항을 인용한다). “어려운 상황이나 상처 입은 가정들과 마주할 때, 다음과 같은 일반 원칙을 늘 명심하여야 합니다. ‘사목자들은 진실을 알기 위하여 상황 파악을 조심스럽게 해 나갈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AL 79).

이는 바로 이어서 다시 「최종 보고서」에 따라 밝히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책임의 정도는 경우에 따라 다르며, 판단력을 제한하는 요인들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목자들은 교회의 가르침을 명확히 설명하여야 하지만, 여러 복잡한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은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그들이 처한 상황 때문에 겪는 고통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교종이 “구체적인 상황들의 엄청난 다양성”을 열거한다는 점도 보아야 한다. 그래서 주교대의원회의도, 이 교종 권고도 “모든 경우에 적용될 수 있는 일종의 교회법과 같은 새로운 일반 규범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개별 상황에 대한 책임 있는 개인적 사목적 식별을 다시 한 번 촉구할 수 있을 뿐입니다. ‘모든 경우마다 따르는 책임이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식별에서 규정의 결과나 효과가 늘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AL 300). 그래서 “시노드 교부들은, 사목자의 식별이 늘 상황을 ‘적절히 고려하여’ 잘 식별하는 시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쉬운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AL 298).

구체적 현실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초대는 교종 권고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된다. “상황”이라는 단어가 90회 이상 사용된다는 것만 보아도 충분히 이를 알 수 있다. “배경”에 대해 15회 정도 말하고, 명사 “정상 참작”과 “참작하다”는 9회 반복된다.

특히 상황들에 관련해서는, 때로는 “혼인을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인위적인 신학적 이상, 곧 실제 가정의 구체적 상황과 현실적 가능성에 동떨어진 것으로 제시하였습니다.”(AL 36)고 개탄한 다음 “종종 우리는 믿는 이들이 자신의 양심을 키워 나가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 어려워한다.”고 보충하였다. 그리고 “신자들은 자신의 한계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여 복음에 응답하며 모든 도식이 무용지물이 되는 복잡한 상황 안에서도 자신만의 식별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AL 37)라고 밝히고, “우리는 신자들의 양심을 대체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양심을 함양시키도록 부름받았습니다.”(상동)라고 결론을 내린다. 이어서 “긍정적이고 환대하는 사목적 접근법[…] 부부들이 복음의 요구를 더 잘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는”(AL 38) 사목을 지향할 필요성을 말한다. “어려운 이상을 제시하셨지만 사마리아 여자나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와 같은 취약한 이들에게 측은한 마음으로 다가가시는 일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으셨던”(상동) 예수님을 본받아야 한다.

물론 그리고 언제나, “사제들은 ‘[이혼한 뒤 재혼한 이들과] 동행하며 그들이 교회의 가르침과 주교들의 지침에 따라서 자신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의무가 있다(AL 300).

식별과 하느님의 뜻

지금까지 설명한 것은 구체적 현실 곧 하느님의 뜻과 조화를 이루는 데에 기여할 수 있는 객관적 및 주관적 질서의 요소들에 대한 주의 깊은 평가를 내포한다.

그러나 그러한 요소들로부터 어떻게 하느님의 뜻을 찾아내는 데에 이르고 주님 안에서(in Domino) 그것을 실천할 것인가? 이것은 분별을 요구하는 질문이다. 성 바오로는 에페소서 5,8-17에서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라고 권고하고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로움과 진실입니다.”라고 가르치며, “무엇이 주님 마음에 드는 것인지 가려내십시오”, “미련한 사람(asophoi)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sophoi)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잘 살펴보십시오.”라고 권고하며 결론을 내린다. “그러니 어리석은 자(aphrones)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십시오”(에페 5,8-10.15-17).

어리석은 자로 처신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주의 깊게 찾는 이들이 되도록 돕는 것은 사제의 임무들 가운데 하나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령 「사제품(Presbyterorum ordinis, 이하 PO)」에서 이를 볼 수 있다. “사제들은 신앙의 교육자로서 스스로 또는 다른 이들을 통하여, 모든 신자가 각기 성령 안에서 복음에 따라 자기 소명을 계발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실 그 자유와 실천하는 진실한 사랑에 이르도록 보살펴 주어야 한다”(PO 6,2). 바로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아름다운 의전도, 화려한 모임도, 사람들을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교육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그다지 쓸모가 없다”(상동).

그러나 그 성숙함은 과연 무엇인가? 명백한 대답이 있다. “이러한 성숙을 촉진하기 위하여 신자들이 크고 작은 모든 일에서 그 일이 당연하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고 또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quid res exigant, quae sit Dei voluntas) 읽어 낼 수 있게 되도록 도와주는 법을 사제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상동).

이 “그 일이 요구하는 것”(quid res exigant, 여기서 “그 일”은 구체적 현실이다)이 「사랑의 기쁨」 31항에서 되울린다. 여기에는 상황, 배경, 참작할 조건들이 포함된다. 여기서 “quid res exigant(그 일이 요구하는 것)”와 “quae sit Dei voluntas(하느님이 뜻하시는 것)”를 나란히 놓고 살펴보는 것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를 인용하면서, 어떻게 이를 실행할 것인지를 살펴볼 것이다.

“해석”하는 한 방법

이냐시오에게 분별은 성령의 선물이라는 점을 바로 강조해 둔다. 예수회 회헌(C)에서는, 책임자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영원한 빛께서 주실 분별로 사람, 장소, 시간, 그리고 그 밖의 상황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C 746). 또한 “애덕과 성령의 분별이 따라야 할 절차를 알려 줄 것이다.”라고도 말한다(C 219). “애덕과 분별”은 함께 존재해야 하는 두 가지 덕이다. 이 discreta caritas라는(참조. C 209; 237; 269; 582 등) 표현의 의미는 “식별과 분별이 가득한 애덕, 식별과 사랑으로 감도되고 사랑을 향하는 사랑, 식별하며 성령으로부터 내려오는 사랑”이다. 바오로의 기도가 떠오른다. “내가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온갖 이해로 더욱더 풍부해져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필리 1,9-10).

지식에서 성장하고 온전한 분별이 도달하기 위해서는 “상황의 다양성과 주체들의 상이성”을 고려하면서(C 367; 참조. 64) “우리 주님 안에서 큰 주의를 기울이고 숙고하며 행할” 필요성을 강조할 만한 가치가 있다(C 204).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연령, 기질, 성향, 각자의 특별한 기초와 예상되는 공동선”(C 354; 참조. 92), 재능(C 522), 그리고 “신체적 상태”(C 298; 301), “분별에 따른 각자의 인내력”(C 285), 교정이나 참회를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의 태도”, 또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모든 사람들과 그 각자의 교화”(C 269), 그리고 “하느님과 보편적 선에 대한 더 큰 기여”(C 618; 623; 625)를 고려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실제적인” 인간(재능과 은사, 지적 및 의지적 능력, 습관과 상황, 기질과 성격 등)을 고려하고 환경적 상황(전통, 관습, 사고방식, 그 지역 사람들의 요구 등), 그리고 하나의 결정이 사람들, 가정, 집단,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일반적으로 일으키게 되는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영향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개인들에 따른 적응은 분별의 구성적 원리이며, 신앙 교육자를 특징짓지 않을 수 없는 자질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계시에 대해 하신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요한 16,12)라는 말씀과 『영신 수련』(ES)의 다음과 같은 원리를 기억할 것이다. “이 수련은 그것을 하고자 하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적용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나이, 교육 또는 지성에 맞추어 적용해야 한다. 교육을 적게 받았거나 신체적으로 약한 사람에게, 잘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 주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ES 18,1-2).

이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그 사실 자체로 무분별한 사람이 될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찾기 시작하기 전에 “모든 애착에서 벗어나” 내적 자유를 기르며 “하느님의 더 큰 영광, 공동선, 그리고 가능한 한에서의 개별적 선”을 우선해야 하며(C 222), 주님께 빛을 청하고 다른 이들의 조언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책임자들은 “어려움과 의심이 많을수록 우리 주 하느님께 그 일을 맡길 것이며, 그 일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듣도록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다른 이들과 그 문제에 대해 더 논의할 것이다”(C 211). 더 정확히 말한다면 이는 “우리 주 하느님께서 이 경우에 대한 당신의 지극히 거룩한 뜻을 알려 주시기를” 청하는 것이다(C 220).

마지막으로, “두 가지 각각의 이유들”을 헤아리고(C 222) 그에 따른 결정들을 할 것이다. 더 간략하게 말하면, 통치하도록 부름받은 이는 “모든 것을 헤아려, 최고선인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그리고 그분을 더 잘 섬기고 그분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것을 행할 것이다”(C 437).

“하느님의 최고선에 더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이라는 표현은 회헌에서 매우 자주 사용되는 in Domino와 같은 의미이다. 이는 성령께 주의를 기울이고 성령께 순응하면서 기억하고 검토하고 평가하고 숙고하고 기도하고 결정하고 행하는 주체를 지칭한다. 분별의 판단은 이러한 깊은 검토로부터 나와야 할 것이다. 양심 안에서 모든 것을 고찰하고서, 곧 인식과 확신 속에서, 하느님 앞에서(in Domino)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더 큰 영광과 또한 관련된 모든 사람과 그 각 개인들의 온전한 선을 위하여 (다른 것이 아닌) 이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마술 지팡이를 사용할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예수회 총원장이었던 피터-한스 콜벤바흐(Peter-Hans Kolvenbach)는 이렇게 말했다. “사방에서 우리에게 매달리는 서로 반대되는 가치들 앞에서, 오늘날 자유로운 선택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어떤 선택에 대한 동기들이 모두 한편인 경우는 드물다. 언제나 찬성과 반대의 동기들이 있다. 여기서 식별은 근본적인 일이 되는데, 식별은 사실에 관한 자료들을 알고, 숙고하고, 우리를 움직이는 동기들을 살펴보고, 가치들과 우선순위를 검토하고, 어떤 결정이 가난한 이들에게 가져올 영향을 고려하고, 결정하고, 우리의 선택을 사는 것이다.”

“단단한 음식은 성숙한 사람들을 위한 것”

교종 권고 「사랑의 기쁨」에서 “식별” 또는 “식별하다”라는 단어는 약 40회 사용된다. 특히 사목자들 곧 주교들과 사제들, 지역 교회, 부부, 신자들은 식별하도록 부름받는다. 물론 여기서는 필요한 준비와, 히브리서 저자가 말하는 바와 같은(참조. 히브 5,12-14) 적절한 체험을 당연히 전제한다.

사목자들과 관련해서는, 고해 사제는 “규범을 적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참회자의선과 그의 그리스도교인의 여정에 직접 관여하는 목자이며 아버지”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 「사랑의 기쁨」에서 지적한 태도는 고해 사제가 자비로운 마음과 치유적인 지향을 가지고 참회자와 그의 행위에 연관된 사람들의 선을 평가하는 데에서 더 큰 개인적 책임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그의 역할은 분명 훨씬 더 무겁지만, 또한 더 의미 있고 더 풍요로우며 더 사목적으로 충만해진다고 말해야 한다.”

신자들과 부부들에 관해서는, 이미 성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회에 대해 말했던 바가 있다. 교회는 “사목자들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평신도들을 통해서도 자신의 복음적 식별을 수행”한다. “그리스도인 배우자와 부모들은 남녀가 혼인생활과 가정생활을 하는 다양한 상황과 문화 안에서 진정한 복음적 식별을 발전시키는 데에 특수하고 고유한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가정 공동체」, 5).

히브리서 저자는 수신인들에게, “사실 시간으로 보면 여러분은 벌써 교사가 되었어야 할 터”라고 지적한 다음, “ 아직도 하느님 말씀의 초보적인 원리를 다시 남에게서 배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젖이 필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히브 5,12)라고 말한다. 그리고 또 “젖을 먹고 사는 사람은 모두 아기이므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에 서툽니다.”라고 언급하고, 모든 이들이(특히 사제들이) 개인적으로 양심을 성찰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단단한 음식은 성숙한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들은 경험으로,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는 훈련된 지각을 가지고 있습니다”(히브 5,13-14).

요셉 로비라 벨로소(Josep Rovira Belloso)가 말하듯이 “현명한 식별은 특정한 실제 상황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요소들에 명확하게 대처할 수 있는, 의식과 자유를 지닌 인간의 양도할 수 없는 활동으로 나타난다.” 이는 “순전한 본능”의 단계를 넘어섰음을, 그리고 “식별이 인간 정신의 고유한 성찰 활동”이며 “모든 인간은 그와 그의 세계에 관련된 문제들 앞에서 책임을 갖도록 부름받는다”는 것과 “이 책임에 비례하여 자신의 개인적 문제들과 그의 세상의 문제들에 – 진리, 정의, 사랑을 존중하면서 – 더 적절한 응답을 식별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할 충분한 이유들이 있음을 뜻한다.

이탈리아 주교회의가 『성인 교리서』에서 제시한 원칙도 고려할 것이다. “각자의 개인적 책임은 다양한 정신적, 문화적, 사회적 조건들로 특징지어진 어떤 상황 안에서 선을 존중하고 원하는 실제적 능력에 비례한다. 충만한 그리스도교적 생활을 한다는 것은 추상적으로 가장 완전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가능한 것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산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발걸음으로 정상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다”(919항). 그러나 언제나 “개인의 양심”을 온전히 존중해야 한다(AL 303). 이를 위하여 “계몽되고 양성되어, 사목자의 책임 있고 신중한 식별을 따르는 양심의 성숙을 촉구하고 은총에 대한 신뢰를 더욱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식별은 “역동적이라는 것[…] 성장의 새로운 단계와, 이 이상을 더욱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결정에 늘 열려 있어야”(상동) 한다는 점 때문에도 그렇다.

마지막으로, 교종의 다른 가르침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결코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겸손하십니다. 예수님은 초대하십니다. 네가 하고자 한다면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겸손함은 그렇습니다. 그분은 늘 초대하시고,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생각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예수님께도 양심 곧 당신 마음 안에서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이를 따르는 것이 중요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또한 교종은 “예수님은 우리가 자유롭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강조하고, “이 자유가 어디에서 이루어지는지” 묻는다. 그 대답은 이렇다. “자신의 양심 안에서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에서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하느님과 이야기할 줄 모른다면, 자신의 양심 안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줄 모른다면, 그는 자유롭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양심에 더 귀 기울이기”를 배울 필요가 나온다. 특히 “양심은 진리에, 선에 귀를 기울이고 하느님께 귀를 기울이는 내면의 공간이기에, 내가 그분과 관계를 맺는 내면의 장소이기에 그러합니다. 그분은 나의 마음에 말씀하시고, 내가 가야 할 길을 식별하고 깨닫도록, 그리고 일단 결정을 하고 나면 앞으로 나가고 충실히 머물도록 도와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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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하여, 복자 존 헨리 뉴먼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내가 점심 식사 후에 건배를 하면서 종교를 끌어들여야 한다면[…], 여러분이 원한다면 교종을 위해 건배를 하겠다. 그러나 먼저 나의 양심을 위해 건배를 하고, 그 다음에 교종을 위해서 하겠다.”

같은 편지의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로 흥미롭고 적절하다. “양심은 우리 정신의 법이지만 정신을 넘어서는 법이고, 명령을 내리는 법이며, 책임과 의무, 경외심과 희망을 뜻하는 법이기도 합니다. […] 양심은 은총의 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연계에서도 은밀히 말씀하시며 우리를 가르치시고 다스리시는 분의 사자입니다. 양심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들 가운데 첫째입니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특별서기 몬시뇰 브루노 포르테의 글도 생각할 것이다. 키에티-바스토의 대주교인 그는 “교회는 이혼 후에 재혼한 이들에게 영성체를 주기 위해서 또는 주지 않기 위해서 주교 대의원회의를 한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축소적”이라고 덧붙인 다음, “그 목적은 각자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발견하도록 동반하고 통합하는 어머니인 교회가 되는 능력에서 성장할 수 있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교종이 고해 사제들에게 요청하는 바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모든 이를 환대하고 심각한 죄에도 아버지의 사랑을 증언하며 참회자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악을 반성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배려와 도덕적 원칙을 분명하게 제시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참회의 여정에 있는 신자들 곁에서 끈기 있게 기꺼이 동행해 주며 개인들의 사정을 현명하게 식별하고 하느님의 용서를 베푸는 데에 관대할 것을 요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