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말은 그대의 눈에

베르골료 추기경(1999-2013)의 강론과 연설 모음집 소개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 (교황청 국무원장)
최원오 빈첸시오 교수 옮김 (대구가톨릭대학교)

오늘 소개하는 이 책은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 시절 호세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의 강론과 연설과 메시지를 아우르고 있다. 이 모든 본문을 책 한 권에 모아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신 주교직 “총서”Opera omnia인 셈이다. 1850년에 창간되어 사도좌와 긴밀한 유대 속에서 간행되고 있는 『치빌타 카톨리카』의 편집장 안토니오 스파다로 예수회 신부가 편집을 맡았다.

스파다로 신부는 2013년 8월에 교종과 폭넓게 나눈 첫 대화를 『나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La mia porta è sempre aperta(분도출판사 2016)라는 감성적인 제목의 책으로 출간한 바 있다. 이어서 스파다로 신부는 전 세계 30명의 어린이들이 교종에게 그림과 질문을 보내 드리고, 교종이 짧지만 함축적이고 깊이 있는 문장으로 답하는 방식으로 책을 엮어 『세상 이전의 사랑』L’amore prima del mondo을 펴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 예수회 관구장이었던 베르골료 신부의 글들을 『모든 아버지의 마음에』Nel cuore di ogni padre라는 책에 모아내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깊고도 넓은 영적 진보의 여정을 뒤따를 수 있게 되었다. 편집자가 나에게 고백한 바로는 이 책은 교종의 팔순을 기념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재임 초기부터 힘 있게 쏟아내고 있는 행동하는 말씀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목자로 살던 시절부터 빚어진 것들로서, 따뜻하고 알찬 내용들은 듣는 이의 마음 깊이 스며든다. 우리가 소개하는 이 책은 어떤 의미로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공방工房”이라 하겠다. 예컨대 『복음의 기쁨』, 곧 “복음화의 기쁨” alegría de evangelizar 같은 주제는 교종의 설교에 항상 들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지역 교회의 사목자였다가 지금은 보편 교회의 사목자가 된 베르골료의 세계에 들어가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곧, 현실을 바라보는 그분의 시선과 그분의 방식 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교종의 현재 가르침을 실어내는 많은 저술들의 핵심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나의 말은 그대의 눈에』에 다가가는 독자는 자기 도시와 교구의 길거리를 걸어 다니거나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니는 한 주교를 떠올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성 베드로 대성당의 강복 발코니에 마주 서 있는 그분을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책장을 한쪽씩 넘겨갈수록 식별과 자비를 당신의 핵심 직무로 삼은 한 교종의 말씀과 행동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최근 국제 여론 조사 기관인 갤럽에서 밝힌 대로, 아마도 세계적 차원에서 가장 많이 귀를 기울이는 세상의 윤리적 영적 지도자들 가운데 한 분으로 평가되기도 하는 인물의 가르침을 더 잘 깨닫게 될 것이다.

베르골료의 사목 직무에서 나온 말씀들은 실제로 겪은 삶, 열린 질문들, 넘나드는 경계, 몸소 누빈 변두리, 생생한 얼굴과 이름을 지닌 도전들로 자라난 것이다. 사목 연수나 학교 수업에서 얻은 생각이나 세상의 도피처에서 나온 묵상이 아니다. 스파다로 신부가 해제에서 설명하듯 “활동으로 관상하는” in actione contemplativus 이냐시오의 모토에 따라 관상하고 활동하는 예수회원의 침묵에서 나오지 않은 말씀은 없으며, 관상과 활동에는 앞뒤 순서가 따로 없다. 이 책에서 베르골료 추기경은 시대의 염원과 상황들을 하느님 말씀의 빛으로 읽어내면서 조화를 이루어 낸다. 벌어지는 사건들 안에서 하느님의 메시지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날카로운 영적 감각이 필요하다. 이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찾아 기웃거리는 일을 훌쩍 뛰어넘는 “복음적 식별” 훈련이다.

교종의 말씀은 듣는 이를 배려했고, 청중의 눈높이에 맞추어져 있다. 추상적 개념을 늘어놓지 않고, 눈앞에 있는 인간을 품어 안는다. 바로 여기서 『나의 말은 그대의 눈에』라는 책 제목이 나왔다. 그 눈은 아버지다운 말, 풍요롭고 생명력 넘치는 말을 실제로 길어내야 하는 신자들의 눈, 하느님의 자녀인 거룩한 백성의 눈이다. 이 책에서 교종의 글도 만나게 되지만, 교종이 따로 기회를 만들어 스파다로 신부와 나눈 두 번째 긴 대담도 책의 첫머리에 실려 있다. 바로 이 대화에서 교종은 자신이 눈길을 주는 사람들의 눈을 어떻게 바라보고 싶어 하는지 드러난다. 프란치스코는 자기 앞에 있는 존재를 “집단” massa으로 보는 법이 없고, 눈앞의 서류 뭉치만 들여다보지 않는다.

스파다로 신부는 교종의 사목 경험과 설교의 뿌리에 접근하기 위해 프란치스코의 살아 샘솟는 말씀을 이미 여러 차례 모아낸 바 있는데, 교종은 그와 함께하는 대화를 또 다시 허락했다. 전혀 편집되지 않은 기억들과 일화들도 나온다. 이 대담에서 얼마나 많은 사목 경험을 들려주는가! 교종은 교리를 배우는 어린 아이들과 함께했던 자신의 본당 사목 경험도 들려주면서 지난 세월로 되돌아가곤 한다.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고백한다. “저는 행복했습니다. 저는 사목을 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어린이 사목을 하고 싶었습니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일화들도 있지만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 둔다. 그러나 베르골료는 교종으로서 노인들을 향한 특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교종은 스파다로 신부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교종 방탄차에서 내리고 싶은 열망을 이따금 느끼곤 합니다. 종종 늙은 할머니들 앞에서 그렇습니다. 나는 늙은 할머니들, 특히 영리한 할머니들에게 약합니다!”

대담은 전례와 거룩한 전통[聖傳]에 관해 말하는 기회도 만들었다. 교종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전례 헌장은 있는 그대로 전진해야 합니다. ‘개혁의 개혁’을 말하는 것은 오류입니다”라고 반박한다. 긴장과 갈등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인 문학과 창의성과 삶 자체를 “굳이 해소하고 확증할 필요는 없습니다.” 프란치스코의 강한 인품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총서”는 본문을 연대순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주제별 발췌나 즉흥적이고 임시적인 조합이 아니다. 편집자가 조언하는 대로, 본문이 탄생한 그대로 점진적으로 읽어야 한다. 주제별 독서는 유용하고 흥미롭지만 기능주의의 과오를 범하게 된다. 사목 경험은 사상 총서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르헨티나 혁명 기념일인 5월 25일에는 국가적 관심사에 관한 정치적 담화와 더불어 사은 찬미가를 바치고, 노동자들의 수호자 성 가에타노 축일에는 사회적 강론을, 루안의 성모 성지에서는 순례자들을 위한 강론을 행한다. 베르골료 추기경은 다양한 기회에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차원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줄 알았다.

교종은 매우 힘겨운 시절에도 늘 노동자들과 실업자들을 편들어 설교를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러한 설교는 아르헨티나 사회 종교인들과 시민의 양심을 흔들어 깨웠고, 심지어 정계에서도 책임의식을 회복시키는 각성의 계기가 되었다. 베르골료 추기경은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지닌 사람들끼리 대화로 만나게 함으로써 사회 “조직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늘 크게 힘썼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부를 향해 민중의 이름으로 분명한 도전장을 던졌고, 이데올로기 병에 걸린 엘리트에 맞서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교종은 국가의 복잡한 역사, 자신의 십자가, 세계화와 연대 사이의 딜레마를 알고 있다. 고통스러운 위기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수난을 신앙의 눈으로 볼 줄 안다. 베르골료의 현실 비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와 유대가 해체되는 상황에 관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민중이 맞닥뜨린 진짜 참극이며, 오늘날 대도시의 뿌리 없는 부평초 생활이 이를 부추겨 왔다는 것이다.

스파다로 신부는 강론이 정치적 타격을 줄 수도 있느냐고 대담에서 묻는다. 교종은 이렇게 대답한다. “강론은 언제나 정치적politico입니다. 왜냐하면 도시polis 안에서 민중 한가운데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활동은 정치적 측면을 지니고 있으며, 문명의 건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고해소에서 사죄경을 해 줄 때에도 그대는 공동선을 건설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종 설교의 다른 부분은 전례시기에 맞추어져 있다.

이 책의 상당 부분이 메시지와 만남, 교리교사와 교육자들을 위한 강론으로 엮어져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학교와 그리스도교 교육 분야에 대한 베르골료 추기경의 성찰의 질과 양이 놀랍다. 불안정하고 훈육되지 않은 청소년들에 대한 관심이 감동적이다. 수많은 본문들 가운데 하나를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불안한’ 청년이란 세상과 사회의 자극에 민감한 청년이라는 뜻입니다. 청년은 위험한 일에도 인생을 걸고 투신합니다. 청년은 한계에 저항하면서도 그것이 정의롭기만 하면 고통을 겪더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존재입니다. 청년은 오염된 사회가 제시하는 문화적 상투어에 순응하지 않습니다. 청년은 배우고 토론하려 합니다. …” 베르골료 추기경은 그들의 불안을 “읽고” 평가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을 “진정”시키려는 모든 시스템은 어떤 식으로든 “실존적 무사안일주의”로 끌고 간다는 점에서 위험천만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2013년 3월 28일 강론으로 마무리된다. 베르골료 추기경은 2013년 3월 13일, 곧 그로부터 보름 전에 교종이 되었다. 그는 아르헨티나로 돌아가리라 확신하고 있었고, 로마로 떠나기 전에 그해 성유축성미사 강론 원고를 미리 써 두었다. 귀국하면 바로 쓸 수 있도록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이 강론에서 베르골료 추기경은 “아론의 수염에 바른 보배로운 기름은 자신의 인격을 향기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퍼져나가 변두리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 기름부음은 가난한 이를 위한 것, 갇힌 이들을 위한 것, 아파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 슬퍼하고 외로워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강론은 다른 여느 강론들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프란치스코의 함축적이고 시적이고 민중적인 언어로 표현되어 있다. 호세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은 대교구장 시절의 바로 이 마지막 말을 프란치스코 교종의 베드로 직무의 시작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