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사목방문을 앞둔 교종 프란치스코와의 인터뷰

INTERVISTA A PAPA FRANCESCO. In occasione del viaggio apostolico in Svezia

울프 욘손 신부(예수회, 표징Signum 발행인)
최현순 데레사 옮김(교의신학 박사)

예수회 유럽 문화잡지 편집장 모임 기간에, 나는 치빌타 카톨리카 편집장인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에게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생각을 이야기하였다. 즉, 2016년 10월 31일,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개최되는 교회일치적 공동기념제에 참여하기 위해 스웨덴을 방문하는 교종 프란치스코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목방문 동안 교종께서 사람들에게 전할 메시지에 대하여 스웨덴에서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인터뷰라고 생각했다. 스웨덴 예수회 문화잡지 표징Signum의 편집장으로서 나는 이것이 우리의 사명에 충만하게 부합한다고 보았다.

교회일치는―종교인들과 그리고 신앙이 없는 이들과도―교종의 핵심적인 관심사 중 하나이다. 교종은 그것을 여러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교종 자신이 화해의 사람이다. 교종은 사람들이 그 어떤 것에 대한 장애물이나 장벽이든 그것을 넘어야 한다는 것을 깊이 확신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인류의 공동선을 위해 협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교종께서 스웨덴에 도착하시기 전에 그분의 이러한 비전이 많은 이들의 마음과 정신을 건드리기를 바랐고, 인터뷰는 이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나는 이런 생각을 스파다로 신부에게 말했고, 8월 말까지 우리는 함께 이것에 대해 성찰했다. 우리는 교종께 인터뷰를 제안하기로, 그래서 교종께서 그 수락 여부를 결정하실 수 있도록 하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교종께서는 이에 대하여 얼마간 숙고하셨다. 마침내 긍정적인 답을 주셨고, 9월 24일 오후 늦게 산타 마르타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으셨다.

그날은 날씨도 정말 좋았고 하늘은 쾌청했다. 스파다로 신부와 함께 자동차로 혼잡한 로마 시내를 지나면서 나는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만족했다. 도착해서 기다릴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우리는 즉시 교종께서 사용하시는 방으로 올라오도록 안내를 받았다. 승강기가 열렸을 때 우리에게 정중하게 인사하는 스위스 근위병을 보았다. 교종께서 다른 사람들과 스페인어로 정중하게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었지만 교종을 보지는 못했다. 잠시 후 교종은 두 사람과 친근하게 대화하면서 나타나셨다. 교종은 나와 스파다로 신부에게 미소로써 인사하셨고, 당신 방을 가리키며 들어가도록 하셨다. 교종은 아마도 얼마 전에 도착하신 듯했다.

나는 이 단순하고 따뜻한 가족 같은 환대에 놀랐다. 이미 현관에서 교종께서 하루 종일 쉬지 못하셨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하루가 끝나가는 이 시간에 매우 지쳐 계실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마치 휴식이라도 취한 듯 그토록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에 나는 매우 놀랐다.

당신 방에 들어서셔서 교종께서는 우리에게 원하는 자리에 앉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소파에 앉았고, 스파다로 신부도 내 맞은편에 앉았으며, 교종께서는 우리 사이에 앉으셨다. 나는 유창하지는 않아도 알아듣고 간단히 대화할 수는 있는 이탈리아어로 나를 소개하고 싶었다. 몇 마디 말을 나눈 후에, 녹음기를 켜고 대화를 시작했다. 내가 교종께 하고 싶었고 또 준비했던 몇 가지 질문들을 영어로 하면 스파다로 신부가 통역했지만, 우리의 대화는 곧 매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그리고 어떤 인위적인 거리감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특히 대화는 솔직하고 직접적이었으며, 돌려서 말한다거나, 대단한 지도자들이나 존경받는 인물들을 만날 때의 전형적인 그런 분위기가 없었다. 나는 교종 프란치스코가 대화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더 이상 어떠한 의심도 갖지 않는다. 때때로 응답하시기 전에 조금 시간을 갖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 대답은 진중하게 심사숙고한 의미를 전달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겁거나 슬프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우리가 있는 동안 교종은 유머감각을 매우 자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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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종 성하, 10월 31일에 성하께서는 세계 루터교 연합과 교황청 그리스도교 일치 평의회가 공동 주체하는 종교개혁 500주년 공동 기념제에 참여하시기 위해 룬트Lund와 말뫼Malmö를 방문하십니다. 이 역사적 사건에 대하여 성하께서 희망하시고 기대하시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단 한 마디 말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즉 ‘가까이 다가가기’입니다. 나의 희망과 기대는 나의 형제자매들에게 좀 더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가까이 간다는 것은 모두에게 좋은 것입니다. 반면에 거리라는 것은 우리를 아프게 만듭니다. 서로 멀어질 때, 우리는 서로 만나는 대신에 우리 자신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각자가 개별적 단자들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우리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만듭니다. 다른 이들을 만나기 위해서 초월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 또한 분열로 인해 아파할 것입니다. 내가 기대하는 것은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고, 스웨덴에 살고 있는 나의 형제자매들에게 좀 더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루터파 신자들이 다소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성하께서는 예전에 그들을 직접 만날 방도가 있으셨습니까?

네, 충분하게요. 내가 처음으로 루터파 교회에 갔던 일이 기억납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에스메랄다 거리calle Esmeralda에 있는, 그들의 아르헨티나 본부가 되는 교회였어요. 그때 나는 17살이었습니다. 그날을 아주 잘 기억합니다. 아헬 바흐만Axel Bachmann이라는 내 직장 동료가 결혼했거든요. 그는 루터파 신학자인 메르세데스 가르시아 바흐만Mercedes García Bachmann의 아저씨였습니다. 그리고 메르세데스의 어머니 잉그리드Ingrid도 내가 일하던 곳에서 일했습니다.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참여했던 루터교 전례였습니다. 두 번째는 그보다 조금 더 강한 경험이었는데요. 우리 예수회원들은 산 미겔San Miguel에 신학교를 가지고 있고, 나도 거기에서 가르쳤습니다. 거기에서 10킬로미터도 채 되지 않는 가까운 곳에 루터파 신학교가 있었습니다. 그 신학교의 학장은 레스코 벨라Leskó Béla라는 헝가리 사람이었는데, 아주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과 나는 매우 진실된 관계를 맺었습니다. 영성신학과 교수로 있었던 나는 루터파 신학교의 영성신학 교수였던 스웨던 사람 앤더스 루스Anders Ruuth를 초대해서 함께 영성수업을 진행했습니다. 그 때에 내 영혼은 정말로 어려운 시기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나는 그를 아주 많이 신뢰했고 그에게 내 마음을 열었습니다. 당시 그는 나를 아주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브라질에 초대되었다가―그분은 포르투갈어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스웨덴으로 돌아갔습니다. 거기에서 70년대 말 브라질에서 일어났던 “하느님 나라의 보편적 교회Chiesa universal del Regno di Dio”에 대한 교수취득 학위논문을 발간했습니다. 스웨덴어로 썼지만 그 중 한 장(章)은 영어였습니다. 그는 그것을 나에게 보냈고 나는 영어로 쓴 그 장을 읽었는데, 정말 보석 같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지요…. 얼마 후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보좌주교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당시 웁살라Uppsala의 수석 대주교arcivecovo primate가 주교관으로 나를 만나러 왔습니다. 콰라시노Quarracino 추기경은 그때 부재중이었고요. 그는 나를 아쏘파르도 거리calle Azopardo,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이글레시아 노르디카Iglesia Nórdica에서 있었던 그들의 미사에 초대했습니다. 그 교회는 이전에는 “스웨덴 교회Chiesa svedese”라고 불리던 교회였습니다. 나는 수석대주교에게 앤더스 루스에 대해 말했지요. 그 후 앤더스 루스는 결혼식 주례를 하기 위해 아르헨티나에 한 번 더 왔습니다. 그 기회에 우리는 다시 만났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의 두 아들 중 한 명은 음악가였는데,―다른 하나는 의사입니다―어느 날 나에게 전화를 걸어 그분이 돌아가셨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루터파 사람들과 내가 맺은 또 다른 관계는 덴마크 교회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나는 앨버트 앤더슨Albert Anderson 목사님과 좋은 관계를 가졌습니다. 그분은 지금 미국에 있습니다. 그분은 나를 강론에 두 번 초대했습니다. 첫 번째는 전례에서였는데, 그 경우는 매우 예민한 상황이었습니다. 영성체와 관련하여 당혹스러운 기회를 만들지 않기 위해 그분은 미사를 거행하지 않고 세례식만 했습니다. 이어서 그들 젊은이들과의 모임에 나를 초대했습니다. 목사님과 나는 서로 떨어져 있으면서도 함께 아주 거센 토론을 했는데, 그분이 미국에 계실 때였습니다. 목사님은 아르헨티나에서의 종교 문제에 관련된 법률에 대한 나의 발언 때문에 아주 심하게 나를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매우 정직하고 진실하게 나를 꾸짖었다는 것도 말해야 합니다. 그분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돌아왔을 때, 나는 사실 그때 내가 표현했던 방식이 약간 공격적이었다는 점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그 후 루터연합 복음 교회Iglesia Evangélica Luterna Unidad의 아르헨티나인 목사인 다비드 칼보David Calvo와 매우 가깝게 지냈습니다. 그분 또한 아주 좋은 분이었습니다.
그 외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9월 말 거행되는 ‘성경의 날Giorna della Bibbia’에 에스메랄다 거리의, 내가 젊었을 때 갔었던 그 첫 번째 교회에 다시 갔습니다. 거기에서 메르세데스 가르시아 바흐만을 만났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것이 내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주교로 있었을 때 루터파 사람들과 직분상 가졌던 마지막 만남입니다. 반면 그 후에는 개인적으로 개별 루터파 신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내 삶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사람은 앤더스 루스입니다. 많은 애정과 감사한 마음으로 그를 기억합니다. 스웨덴 교회의 수석 대주교가 이곳으로 나를 만나러 왔을 때, 우리 둘 사이의 우정에 대해서 말했었습니다. 2015년 5월 안체 작클렌Antje Jackelén 대주교가 이곳 바티칸을 공식방문을 했을 때 대단히 아름다운 담화를 했습니다. 나는 마리아 엘리사벳 헤젤블라트Maria Elisabethe Heeselblad 시성식 때에 그분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때 그분의 남편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는데, 그분들은 정말로 사랑스러운 사람들입니다. 그 후 교종으로서, 로마에 있는 루터파 교회에 강론하기 위해 갔었습니다. 그들이 던진 질문들은 매우 감동적이었는데, 상호 영성체에 대한 어떤 아이와 부인의 질문이 그것이었습니다. 아름답고 심오한 질문들이었습니다. 그 교회의 목사님은 매우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교회일치적 대화에서 서로 다른 공동체들은 각자의 전통들로서 서로를 더 풍요롭게 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교회는 루터적 전통으로부터 어떤 것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두 단어가 떠오릅니다 즉 ‘개혁’과 ‘성경’입니다. 설명하자면, 첫 번째는 ‘개혁’이라는 말입니다. 처음에 루터의 개혁은 교회로서는 어려운 시기에 행해진 개혁의 한 제스처였습니다. 루터는 복잡한 상황에서 어떤 치료제를 제시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후 이 제스처는―정치적 상황 등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의 영지에 그의 종교cuius regio eius religio”라는 문구를 생각해 보십시오―전체 교회의 개혁의 한 ‘과정’이 아니라 분리의 어떤 ‘상태’가 되었습니다. 사실 “항상 개혁되어야 하는sempre reformanda”교회이기 때문에 교회의 개혁은 근본적인 것인데 말입니다. 두 번째는 ‘성경’, 곧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루터는 하느님의 말씀을 백성의 손 안에 놓는 데에 있어서 큰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개혁과 성경은 루터적 전통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심화시킬 수 있는 두 가지 근본적인 것들입니다. 콘클라베가 열리기 전 총회Congregazioni Generali에서 우리가 얼마나 개혁의 요청에 대해 활발하게 토론했었는지가 지금 생각납니다.

교종 성하 전에는 오직 한 분의 교종, 곧 요한 바오로 2세가 1989년에 스웨덴을 방문하셨습니다. 그때는 교회일치적 열광의 시대였고, 가톨릭과 루터파 사이에 일치에 대한 깊은 염원이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 이후로 교회일치 운동은 그 생기를 잃은 것 같고, 새로운 장애물들이 생겨났습니다. 이 방해물들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요? 성하의 생각에는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증진하기 위해 어떤 보다 나은 방법들이 있겠습니까?

계속해서 대화하고 문제들을 연구하는 것은 분명히 신학자들의 몫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신학적 대화는 계속되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통과해야만 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의화에 대한 교회일치적인 위대한 문헌과 함께 이 길이 도달한 결과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것은 위대한 발걸음이었습니다. 분명히 몇 가지 신학적 문제들에 대해 서로 다르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걸음에 이어 앞으로 더 전진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총대주교 아테나고라스가 이야기 했던 것, 즉 바오로 6세가 “앞으로 나아갑시다. 그리고 신학자들은 따로 자기들끼리 토론하게 합시다”라고 이야기했다는 말이 사실인지 내가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에게 질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는 그것이 정말 있었던 대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비록 쉽지 않다 하더라도 신학적 대화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열광의 방향을 공동 기도와 자비로운 행위 쪽으로, 즉 병자들, 가난한 이들, 감옥에 갇힌 이들을 함께 도와주는 쪽으로 이동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수준 높고 효과적인 대화의 형태입니다. 교육 또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종파별로 나누지 않고 함께 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경우에 하나의 준거가 있어야 하는데, 교회적 영역에서 개종주의를 펼친다는 것은 죄라는 것이 그 준거입니다. 베네딕토 16세께서는 교회는 개종주의로서가 아니라 매력을 통하여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개종주의는 죄스러운 처신입니다. 그것은 교회를 하나의 조직으로 변형시키는 것입니다. 함께 말하고 기도하고 일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하는 길입니다. 보십시오. 일치 안에서 결코 실수하지 않는 것은 적, 곧 사탄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박해를 받고 살해당한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지 루터파나 칼뱅파, 성공회 신자나 가톨릭 신자, 정교회 신자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피의 교회일치가 있습니다.
함부르크 반츠Wandsbek의 상트 요제프Sankt Joseph 성당의 본당 신부와 함께 살았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 본당 신부는 히틀러가 교리를 가르친다는 이유로 단두대에서 처형한 순교자들의 시복절차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차례로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는데, 가톨릭 신자 두 사람이 먼저 처형된 후 루터파 목사도 같은 이유로 단죄되었습니다. 세 사람의 피가 섞였지요. 본당 신부는 그 목사님을 제외한 채 두 가톨릭 신자들만의 시복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자기로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피는 서로 섞였던 것입니다. 1964년 우간다에서 바오로 6세께서 하셨던 강론도 생각납니다. 그 강론에서 교종께서는 가톨릭 신자들과 성공회 신자들을 함께 언급하셨습니다. 내가 우간다를 방문했을 때 나 또한 이것을 생각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즉 정교회 신자들, 콥트교 신자들이 리비아에서 순교했습니다…. 이것은 피의 교회일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기도하고, 함께 일하며, 피의 교회일치를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불안 중 하나는 종교라는 옷을 입은 테러리즘의 확산입니다. 아시시에서의 만남은 종교간 대화의 중요성 또한 강조했었습니다. 성하께서는 어떠셨습니까?

산트에지디오Sant’Egidio와 접촉했던 모든 종교들이 거기 있었습니다. 산트에지디오가 접촉했던 사람들과 만났는데, 누구를 만날지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지요. 만남은 매우 존경할 만했고 혼합주의는 없었습니다. 모두 함께 평화에 대해 말했고 평화를 요청했습니다. 우리 모두 평화를 위해 강력하게 말했으며, 종교들은 참으로 평화를 원합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이름으로 전쟁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신성모독이고, 사탄의 것입니다. 오늘 나는 니차Nizza에 있었던 400명의 사람들을 만났고 희생자, 부상자들, 그리고 아내나 남편, 혹은 자녀들을 잃은 사람들에게 인사했습니다. 그런 대학살을 저지른 미치광이는 신의 이름으로 한다고 믿으면서 그런 짓을 저질렀습니다. 불쌍한 사람, 미친 사람입니다. 우리는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를 찾으려 했던 미친 사람이 있었다고 애덕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아시시에서의 만남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하께서는 최근에 또 다른 형태의 테러리즘에 대해, 즉 수다떠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합니까?

네, 근절시키기 어려운 악습인 내부적 및 땅속에 숨은 테러리즘이 있습니다. 나는 험담을 하거나 수다를 떠는 악습을 테러리즘의 한 형태라고 봅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영혼 안에 가지고 있는 그리고 깊은 회심을 필요로 하는 강력한 폭력의 한 형태입니다. 이 테러리즘의 문제는 우리 모두가 그것을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각자는 단순하게 혀를 사용함으로써도 테러리스트가 될 수 있습니다. 전쟁과 같이 공개적으로 하는 싸움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음흉하게 숨겨진 테러리즘에 대해 말하는 것인데, 그것은 ‘폭탄’처럼 말을 던짐으로써 아주 큰 악을 저지릅니다. 이 테러리즘의 뿌리는 원죄 안에 있고 범죄의 한 형태입니다. 다른 이들을 파괴시키면서 자신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하나의 방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유혹을 이기기 위해 깊은 회심이 필요하며, 이 점에 대하여 아주 많은 성찰이 필요합니다. 칼은 많은 사람을 죽입니다만, 혀는 칼보다 더욱 더 많은 사람을 죽입니다. 야고보서 3장에서 사도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혀는 몸의 작은 지체이지만 악의 불꽃을 키울 수 있고 우리의 생명 전체를 불살라버릴 수 있습니다. 혀는 치명적 독으로 가득 채워질 수 있습니다. 이 테러리즘을 정복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종교는 하나의 축복일 수 있지만, 또한 저주일수도 있습니다. 대중매체는 종종 세상에서 종교집단 사이의 충돌에 대한 소식을 전합니다. 어떤 이들은 만약에 종교가 없다면 좀 더 평화로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비판에 대하여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종교에 기초한 우상들이 있습니다만, 그것들은 종교가 아닙니다. 종교와 결합된 우상들이 있습니다. 즉 돈의 우상, 적개심의 우상, 공간의 영토성에 대한 욕심인, 시간에 우선하는 공간의 우상 등입니다. 공간, 지배권을 정복하려는 우상이 있는데 이것은 나쁜 바이러스처럼 종교들을 공격합니다. 그리고 우상은 종교의 끝장이자, 잘못된 종교성입니다. 나는 그것을 ‘하나의 내재적 초월성una trascendenza immanente’, 즉 하나의 모순이라고 부릅니다. 반면 참된 종교는 절대자를 향하여 초월하려는 인간 능력의 발전입니다. 종교적 현상은 초월적인 것이고 그것은 진리, 아름다움, 선, 그리고 일치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러한 개방성이 없다면 초월도 없고 참된 종교도 없으며, 우상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초월에의 개방성은 테러리즘의 원인이 결코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개방성은 항상 진리, 아름다움, 선, 그리고 일치를 추구하는 것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하께서는 종종 중동지역의 몇몇 지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처한 끔찍한 상황에 대하여 매우 분명한 언어로 말씀하십니다. 그 지역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다 평화롭고 인간적인 어떤 발전의 희망이 있을까요?

나는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며 그들을 버리지 않으실 것을 믿습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겪은 매우 어려운 시험들에 대해 읽을 때, 혹은 순교자들이 겪은 시험들을 기억할 때 주님께서 어떻게 당신 백성을 도우러 오셨는지를 확인합니다. 구약성경 마카베오서에서 어머니와 함께 일곱 아들이 살해된 이야기를 기억해 봅시다. 혹은 엘르아자르의 순교를 기억해 봅시다. 분명히 순교는 그리스도교적 삶의 형태 중 하나입니다. 성 폴리카르포를, 그리고 그의 체포와 죽음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스미르나 교회에 보낸 편지」를 기억해 봅시다. 네, 지금 이 순간 중동은 순교자의 땅입니다. 의심할 나위 없이 우리는 순교자, 순교를 당한 시리아에 대해 말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개인적인 기억 하나를 인용하고 싶습니다. 레스보Lesbo에서 두 아이를 둔 아빠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나에게 자기 아내를 무척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슬람교 신자였고 그의 아내는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테러리스트들이 왔을 때 그들은 그의 아내와 아이들에게서 십자가를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고 테러리스트들은 남편과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그녀를 학살했습니다. 남편은 나에게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나는 그녀를 많이 사랑합니다, 많이 사랑합니다.” 네, 그녀는 순교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들의 씨앗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옛날부터 늘 알고 있습니다.

성하께서는 1,200여년 만에 처음으로 비유럽인으로서 교종이 되신 분이고, 종종 세상의 ‘변두리’로 여겨지는 지역에서의 교회의 삶을 강조해 오셨습니다. 성하의 생각에 가톨릭교회는 향후 20년 어디에서 가장 활기찬 공동체를 찾아볼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유럽교회들이 미래의 가톨릭교회에 공헌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이 질문은 공간, 지리에 관련된 질문입니다. 나는 공간에 대해 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만 중심으로부터보다는 항상 변두리로부터 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교회적 공동체의 활기는 공간, 지리가 아니라 영spirit에 좌우됩니다. 젊은 교회들이 보다 더 생기 있는 영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나이든 교회들이 있으며 조금은 잠든 교회들, 그래서 단지 자신들의 공간을 보존하는 데에만 관심 있는 것처럼 보이는 교회들이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경우에 영이 결여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이 있습니다, 그러나 공간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에 차서 경직된 방식으로 하나의 구조에 갇혀 있습니다. 몇몇 나라들의 교회는 정말로 생기 없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변두리가 가진 생기는 영에 여지를 더 많이 줍니다. 교회의 못된 늙음의 효과들을 피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엘서 3장을 읽는 것이 좋은데, 이 성경에서 노인들이 꿈을 꾸고 젊은이들이 환시를 본다고 말합니다. 노인들의 꿈속에 우리 젊은이들이 새로운 환시를 볼, 미래를 새롭게 가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면에 교회들은 가끔 프로그램들과 프로그램화에 갇혀버립니다. 나는 그것들을 허용합니다. 그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압니다만, 그러나 조직도들 안에 많은 희망을 둔다는 것이 내게는 힘겨운 일입니다. 영은 우리를 고무하고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영은 꿈꾸는 능력, 그리고 예언하는 능력에 자리합니다. 내게 이것은 전체 교회를 위한 하나의 도전입니다. 노인들과 젊은이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내게 있어서 교회를 위하여 이 순간 하나의 도전, 그 생기 있음의 능력에 대한 하나의 도전입니다. 이 때문에 크라쿠프에서 개최되었던 세계 청년대회에서 나는 젊은이들에게 노인들과 대화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젊은 교회는 젊은이들이 노인들과 대화하는 만큼, 그리고 노인들이 위대한 것을 꿈꾸는 그만큼 젊어집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젊은이들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하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이 예언을 하지 않는다면, 교회에는 공기가 없어집니다.

성하의 스웨덴 방문은 세상에서 가장 세속화된 나라 중 하나를 건드리게 될 것입니다. 인구의 상당수가 하느님을 믿지 않으며 종교는 공적인 생활과 사회에서 상당히 빈약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성하께서는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무엇을 잃는다고 보십니까?

무엇을 잃는 것이 아닙니다. 초월성의 능력을 적합하게 발전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초월성에의 길은 하느님께 자리를  드리는 것이고, 여기에는 작은 발걸음들, 심지어 무신론자로서나 불가지론자로서의 발걸음까지도 중요합니다. 내가 볼 때 문제는 자신의 삶을 그 자체로 완전한 것으로 여기고 스스로 갇히는, 그래서 근원적 초월성의 필요 없이 자기 자신 안에 갇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로 하여금 초월에로 개방하도록 하기 위해서 많은 말이나 담화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초월성을 사는 사람은 눈에 드러납니다. 즉 그는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크라쿠프에서 몇몇 젊은이들과 점심식사를 할 때 그들 중 한 명이 내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내 친구에게 무엇을 말해야 할까요? 어떻게 내가 그를 회개시키나요?” 그래서 이렇게 답했습니다. “무언가를 말하는 것은 네가 해야 할 것들 중 마지막 일이다. 먼저 행동해라, 살아라.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너의 삶과 네가 하는 증거를 보고 아마도 너에게 네가 왜 그렇게 사는지 물을 것이다.” 나는 하느님을 믿지 않거나 혹은 하느님을 찾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어떤 증거하는 삶의 고민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이것은 복지benessere와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고민은 삶의 윤택함 속에서는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무신론, 즉 초월에 대한 폐쇄성에 대항해서 오직 기도하고 증거하는 것만이 가치 있습니다.

스웨덴에서 가톨릭신자들은 아주 적은 소수이고 더욱이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민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하께서는 그 둘 중 몇몇을 11월 1일 말뫼Malmö에서 봉헌될 미사에서 만나게 되실 것입니다. 스웨덴 같은 문화 안에서 가톨릭 신자들의 역할이 어떤 것이라고 보십니까?

나는 각자 자신의 신앙을 살 수 있고 개방적이고 교회일치적 정신으로 증거의 삶을 살 수 있는 곳에서 건전하게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봅니다. 가톨릭적이자 교파적일 수 없습니다.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톨릭적”과 ”교파적”이라는 말은 서로 모순되는 말입니다. 이 때문에 처음에 나는 이 여행에서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미사를 거행하리라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교회일치적 증거를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이후 나는 노르웨이나 덴마크 같이, 이웃 나라에서도 오게 될 가톨릭 신자 양떼의 목자인 나의 역할에 대해서 성찰했습니다. 그래서 가톨릭 공동체의 열렬한 요청에 응답해서 여행 일정을 하루 더 연장하고 미사를 봉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사실 계획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교회일치적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과는 다른 장소와 다른 날에 미사를 봉헌하고 싶었습니다. 교회일치적 만남은 일치의 정신에 따라 그 깊은 의미를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이것은 일정을 계획하는데 있어서 문제를 야기했는데, 왜냐하면 내가 모든 성인의 날에도 스웨덴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고 이 날은 로마에서는 매우 중요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나는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성하께서는 예수회원입니다. 1879년부터 예수회원들은 스웨덴에서 본당 활동, 영신수련 지도, 표징 잡지 등의 사도직을 해왔고, 최근 15년 동안은 뉴만 연구소Instituto universitario “Newman” 덕분에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에서 예수회원들의 사도직의 과제와 가치를 어떻게 특징지을 수 있겠습니까?

스웨덴에서 예수회원들의 첫 번째 과제는 세속화된 사회에 살고 있는 이들 그리고 믿지 않는 이들과의 대화를 어찌 되었든 증진시키는 일입니다. 즉 말하고, 공유하고, 이해하고 곁에 있어 주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교회일치적 대화를 증진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스웨덴 예수회원들을 위한 모델은 성 베드로 파브르일 것인데, 그분은 항상 선하고 개방된 영에 의해 안내되어 걸었습니다. 예수회원들은 정적인 구조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역동적인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으며, 구조를 가질 필요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역동적인 구조이어야 합니다.

호세 마리오 베르골료에게 예수는 누구입니까?

나에게 예수는 나를 자비로이 바라보고 나를 구하신 분입니다.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에는 항상 이 원리와 기초가 있습니다. 예수는 이 지상에서의 나의 삶에 의미를 주었고, 미래의 삶을 위한 희망을 주었습니다. 자비로 나를 바라보셨고, 나를 취하시어 길 위에 놓으셨습니다…. 나에게 중요한 은총을 주셨는데, 곧 부끄러움의 은총입니다. 나의 영적 삶은 모두 에제키엘서 16장에 쓰여 있습니다. 특별히 마지막 구절에서,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이스라엘과의 계약을 세우실 것이라는 것을 계시하십니다. “너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는 네가 저지른 모든 일을 내가 용서할 때, 네가 지난 일을 기억하고 부끄러워하며, 수치 때문에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부끄러움은 긍정적인 것입니다. 당신을 움직이게 하지만 당신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온갖 교만과 허영을 가로막으면서 당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스웨덴 여행에 대해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 나에게 떠오르는 것은 단순합니다. 가서 함께 걷자. 경직된 전망 안에 갇혀 있지 말자, 왜냐하면 거기에는 개혁의 어떠한 가능성도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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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종 성하와 스파다로 신부, 그리고 나는 거의 한 시간 반 정도 담화를 나누었다. 끝으로 교종께서는 우리를 승강기까지 동반하셨다. 그분은 우리에게 당신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셨다. 교종께서 손을 흔들며 환한 미소로 인사하시는 동안 문이 닫혔다. 나는 그것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밖은 어두웠다. 저녁식사를 위해 자동차로 치빌타 카톨리카 공동체로 돌아오는 동안, 베드로 대성당의 돔이 조명을 받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